#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72여관◆zAR16hM8he(ca47ad90)2026-05-12 (화) 16:07:37
제8막
닫힌 여관의 재상
금목서 향기가 사라진 자리에, 잉크 냄새가 남았다.
리보니아의 눈은 천천히 녹았다.
아스트리트가 남긴 금목서 잎은 작은 씨앗처럼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고, 아스테르다스의 청흑빛 궤적도 밤하늘에서 마지막 불꽃을 남긴 뒤 사라졌다.
무대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었다.
종이 넘겨지는 소리.
펜촉이 긁히는 소리.
도장이 찍히는 소리.
멀리서 누군가가 숫자를 세는 소리.
그리고 닫힌 문 앞에 쌓인 먼지의 냄새.
푸리나는 세히스문도의 가면을 들고 무대 가장자리에 섰다.
가면에는 일곱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그리고 여덟 번째 자리는 비어 있었다.
푸리나는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마셨다.
무대 위에는 행정실이 나타났다.
화려한 궁전의 집무실이 아니었다.
바닥은 차갑고, 창문은 좁았다.
촛불은 필요한 만큼만 켜져 있었고, 벽에는 지도와 세율표와 피난민 명부, 군량 배급표, 사망자 보상 장부가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낡은 여관 문이 있었다.
그 문은 무대와 어울리지 않았다.
행정실 한복판에 세워진, 오래된 여관의 문.
문고리는 녹슬어 있었고, 문틈에는 먼지가 앉아 있었다.
문 위에는 간판이 있었지만,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에 지워졌거나, 주인이 스스로 긁어낸 것처럼.
그 여관은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주인이 닫아버린 것이었다.
푸리나는 그 문을 보았다.
그리고 무대 뒤편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슈샤니크 파흘라부니.
니케아의 재상.
장부와 시민권과 조세와 군량과 외교문서로 제국을 굴리는 여자.
한때는 여관의 성좌를 믿었고, 사람을 쉬게 하는 일을 자기 소명으로 알았으나, 결국 자기 안의 여관을 닫아버린 사람.
그녀는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대신 장부를 들고 있었다.
그 장부는 두꺼웠다.
너무 두꺼워서 한 사람의 손에 들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슈샤니크는 그것을 익숙하게 들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는 청록빛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까마귀는 죽음을 부르는 새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은 질서의 조각을 물고 돌아오는 새처럼 보였다.
망가진 문장, 끊어진 조약, 불탄 호적, 지워진 이름, 팔려간 사람의 흔적.
그런 것들을 주워와 장부 위에 내려놓는 새.
슈샤니크는 푸리나를 보았다.
정중했다.
그러나 따뜻하지는 않았다.
“킬리키아의 여왕 폐하.”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니케아의 신하, 슈샤니크 파흘라부니입니다.”
푸리나는 순간적으로 웃으며 답하려 했다.
“반가워요. 같은 아르메니아의……”
말이 멈췄다.
같은 아르메니아.
그 말이 너무 쉽게 나올 뻔했다.
슈샤니크의 눈이 그것을 붙잡았다.
비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놓아주지도 않았다.
푸리나는 아주 천천히 말을 고쳤다.
“……만나게 되어 기뻐요. 슈샤니크.”
슈샤니크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푸리나의 뒤편을 향했다.
그곳에는 [여관:극장]의 흔적이 있었다.
아직 완전히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무대는 이미 푸리나의 숨결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조명은 그녀의 손끝을 기다리고 있었고, 막은 언제든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슈샤니크는 그 극장을 보았다.
그리고 오래된 여관 문을 보았다.
“아름다운 극장이군요.”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슈샤니크가 말했다.
“아르메니아의 이름으로 웃고, 노래하고, 죽은 자를 기억하고, 산 자를 다시 일으키는 극장.”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 말의 끝에서 촛불이 흔들렸다.
푸리나는 가면을 품에 안았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슈샤니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저는 아름다운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장부를 펼쳤다.
“다만 아름다운 것은 가끔, 너무 많은 것을 덮습니다.”
푸리나의 손끝이 굳었다.
슈샤니크는 천천히 행정실 한복판으로 걸어왔다.
그녀가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바닥 위에 숫자와 이름들이 떠올랐다.
배급량.
인두세.
도망자 수.
사망자 수.
재편입 가능한 난민 가구.
노동 가능 인원.
보상 미지급 유족.
농지 복구 예상 연수.
실종자 명부.
그것은 노래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방식이었다.
슈샤니크가 말했다.
“폐하의 아르메니아는 살아 있습니까?”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슈샤니크는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아니면 제가 실패한 꿈을 아름답게 무대화한 환상입니까?”
무대가 조용해졌다.
그 질문은 칼보다 날카롭지 않았다.
그래서 더 깊게 들어왔다.
푸리나는 반박하고 싶었다.
내 아르메니아는 살아 있다고.
극장은 도피가 아니라고.
우리는 웃고, 싸우고, 먹고, 울고, 다시 무대에 오른다고.
그러나 슈샤니크의 뒤에 있는 닫힌 여관 문이 보였다.
그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 안쪽에서 들려야 할 웃음소리도, 접시 부딪히는 소리도, 여행자의 신발 털어내는 소리도 없었다.
그저 먼지.
푸리나는 말하지 못했다.
슈샤니크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저도 여관을 열고 싶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무대가 바뀌었다.
행정실의 벽 뒤로 오래전의 작은 여관이 나타났다.
낡았지만 따뜻한 여관.
식탁에는 빵이 있었고, 포도주가 있었고, 아이들이 의자 아래에서 장난치고 있었다. 여행자는 젖은 망토를 벗어 난롯가에 걸었고, 수도자는 조용히 기도했고, 노인은 문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젊은 슈샤니크가 그 여관 안에 있었다.
그녀는 지금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누군가의 망토를 받아주고, 아이의 이마를 닦아주고, 장례를 기다리는 가족에게 따뜻한 차를 내어주던 사람.
그녀가 믿었던 것은 단순한 행정이 아니었다.
사람은 길 위에서 지친다.
그러니 누군가는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니 누군가는 마지막 방을 준비해야 한다.
여관의 성좌를 믿는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슈샤니크의 목소리가 겹쳤다.
“저는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 말은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어린아이도, 순례자도, 굶주린 병사도, 겁먹은 상인도, 장례를 기다리는 가족도.”
여관의 장면 위로 어둠이 드리웠다.
불길.
말발굽.
비명.
항복하면 살 수 있으리라 믿었던 순간.
문을 열면 지킬 수 있으리라 믿었던 사람들.
그러나 문은 방패가 되지 못했다.
아이들이 사라졌다.
식탁은 엎어졌다.
난로의 불은 꺼졌다.
슈샤니크는 그 앞에 서 있었다.
지키지 못한 여관의 주인.
“그날 이후로 저는 생각했습니다.”
현재의 슈샤니크가 말했다.
“저는 더 이상 여관을 열 자격이 없다고.”
오래된 여관 문이 닫혔다.
쾅.
그 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 전체를 흔들었다.
문고리에 먼지가 앉았다.
창문 안쪽의 빛이 사라졌다.
슈샤니크는 장부를 덮었다가 다시 열었다.
“그 뒤로 제가 잡은 것은 열쇠가 아니었습니다.”
펜촉이 종이를 긁었다.
“장부였습니다.”
무대에는 노예 시장의 어두운 윤곽이 스쳤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팔려간 사람.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잘라낸 사람.
잔혹한 행정의 언어를 배운 사람.
사람을 사람으로 품지 못하게 된 대신, 숫자로 처리하는 법을 배운 사람.
슈샤니크는 그 장면을 피하지 않았다.
“저는 배웠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얼마를 더 걷으면 반란이 일어나는지. 어느 사람을 남겨두고 어느 사람을 팔면 생산성이 유지되는지. 어느 종교 공동체를 살려두면 통치가 편한지.”
푸리나의 얼굴이 굳었다.
슈샤니크는 담담히 말했다.
“저는 잔혹했습니다.”
청록빛 까마귀가 날개를 접었다.
“다만 무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말이 더 아팠다.
무능하지 않았기에, 더 많은 것이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무능하지 않았기에, 더 많은 것이 효율적으로 착취되었을지도 모른다.
슈샤니크의 장부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피가 마른 뒤 남는 얼룩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뒤로 니케아에 왔습니다.”
무대 위에 자주빛 깃발이 잠시 비쳤다.
“로마는 무너진 이름이었고, 살아남아야 할 제도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다시 장부를 잡았습니다.”
그녀의 눈이 푸리나에게 향했다.
“황제의 화살은 장부 없이는 날아가지 않습니다.
활을 만드는 이, 병사를 먹이는 이, 세금을 걷는 이, 죽은 이를 보상하는 이가 있어야 전쟁은 끝납니다.”
푸리나는 미하일라의 활을 떠올렸다.
요안나의 어린 이상도.
그리고 그 이상들이 서 있기 위해 필요한 차가운 계산도.
슈샤니크는 말했다.
“닫은 여관의 주인은, 이제 장부로 사람을 살립니다.”
그 말은 자조가 아니었다.
선언도 아니었다.
남은 삶에 대한 판결 같았다.
푸리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말이 다시 멈췄다.
당신은 여전히 여관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이 너무 쉬웠다.
닫힌 문 앞에서, 밖에 선 사람이 “아직 열려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푸리나의 손끝에서 [여관:극장]이 숨을 들이쉬었다.
조명이 켜지려 했다.
막이 오르려 했다.
무대는 상처 입은 재상을 위한 독백을 준비하려 했다.
푸리나의 극장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사람에게도 대사가 있다.
이 사람도 무대 위에 설 수 있다.
이 사람도, 어쩌면, 관객 앞에서 자기 상처를 말하고 나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순간 죠니가 낮게 말했다.
“푸리나.”
그의 목소리는 농담이 아니었다.
푸리나는 멈췄다.
죠니는 슈샤니크를 보지 않고, 푸리나의 손을 보았다.
“저건 독백이 아니야. 상처야.”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죠니가 덧붙였다.
“조명 낮춰. 지금은 잘 보이게 하는 것보다, 눈이 익을 시간을 주는 게 낫다.”
그 말은 짧았다.
하지만 충분했다.
푸리나는 손을 내렸다.
조명이 낮아졌다.
막은 오르지 않았다.
그때 푸리나의 안쪽에서 하나의 특성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신은 적절히 준비된 자를 부른다》.
그것은 강제로 사람을 무대 위에 끌어올리는 특성이 아니었다.
푸리나의 극장은 아무나 붙잡아 세우지 않는다.
마음속에 이미 대사가 무르익은 자.
자기 상처와 선택을, 아직 떨리더라도 무대 위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자.
혹은 아직 완전하지 않아도, 부름에 대답할 수 있는 자.
그런 자를 부른다.
슈샤니크는 준비되어 있었다.
푸리나와 마주 설 준비는.
그러나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닫힌 여관의 문을 여는 것은.
푸리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당신을 무대에 부를 수는 있어요.”
슈샤니크의 눈이 조금 움직였다.
푸리나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여관 문을 대신 열 수는 없어요.”
그녀는 닫힌 문을 보았다.
“그건 당신의 문이니까.”
슈샤니크는 오래도록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하융의 창호가 열렸다.
회색빛 방.
동방식 창호.
[여관:비껴간 창].
하융은 그 창가에 서 있었다.
그의 옷자락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지만, 창밖의 가능성들은 물결처럼 흔들렸다.
하융은 하오체로 조용히 말했다.
“보겠소?”
슈샤니크가 그를 보았다.
“무엇을 말입니까?”
“그대가 가지 못한 길이오.”
슈샤니크의 손이 장부를 붙잡았다.
하융은 억지로 창을 열지 않았다.
잠시 기다렸다.
슈샤니크는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융이 창을 열었다.
첫 번째 창.
여관의 문이 열려 있었다.
항복은 받아들여졌다.
아이들은 살았다.
불길은 지나갔지만, 여관은 타지 않았다.
슈샤니크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차를 내리고 있었다.
하융이 말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의 항복이 받아들여졌소.
아이들은 살았고, 여관의 등불도 꺼지지 않았소.”
슈샤니크의 얼굴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장부를 쥔 손가락이 희게 변했다.
두 번째 창.
슈샤니크는 도망치지 못했다.
노예 시장으로도 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죽었다.
여관 문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융이 말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가 여관을 닫을 틈도 없었소.”
세 번째 창.
슈샤니크는 살아남아 아르메니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돌아갈 집은 없었다.
여관의 터에는 잡초가 자라 있었고, 간판은 사라졌고,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가 돌아갔소.
허나 그곳에는 이미 돌아갈 집이 없었구려.”
네 번째 창.
푸리나의 아르메니아가 있었다.
웃음이 있었다.
극장이 있었다.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왕관을 쓰고 장난을 쳤다.
피난민들이 박수를 쳤다.
그 풍경은 따뜻했다.
그래서 슈샤니크에게는 잔인했다.
하융이 조용히 말했다.
“허나 저 창에서는…… 닫힌 여관 앞에 다른 여관의 불빛이 닿고 있소.”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것이 위로인지, 모욕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소.”
슈샤니크는 그 창을 오래 보았다.
푸리나도 보았다.
자신의 극장이 누군가에게는 구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실패한 꿈을 비추는 거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그레이가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작은 장부를 들고 있었다.
슈샤니크의 장부보다 훨씬 얇았다.
하지만 그 안의 글씨는 하나하나 눌러 쓴 것처럼 깊었다.
그레이의 발밑에 [여관:기억이 잠드는 거리]의 등불들이 켜졌다.
작은 거리.
비 온 뒤의 골목.
문패.
등불.
잊히지 않기 위해 잠시 머무는 이름들.
그 거리가 슈샤니크의 닫힌 여관 문 앞까지 천천히 이어졌다.
그러나 문을 열지는 않았다.
그레이는 문 앞에 작은 등불 하나를 내려놓았다.
“닫힌 문을 억지로 열지는 않겠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문 앞에 남은 이름은 적겠습니다.”
슈샤니크가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는 고개를 숙였다.
“살아남은 사람이 장부를 잡는 방식은 모두 다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래도 이름을 지우지 않는다면, 아직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슈샤니크의 표정이 아주 조금 무너졌다.
정말 조금이었다.
하지만 푸리나는 보았다.
그레이도 보았다.
슈샤니크는 곧 다시 얼굴을 가다듬었다.
“그런 위로는 위험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문이 닫힌 사람에게, 아직 열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잔혹할 수 있습니다.”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말합니까?”
“아니요.”
그레이는 등불을 보았다.
“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불을 놓아둡니다.”
슈샤니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레이튼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여관:문답의 서재]의 별들이 행정실 천장에 떠올랐다.
슈샤니크와 푸리나 사이에 여러 이름들이 맺히려 했다.
실패한 여관지기.
살아남은 아르메니아.
죽은 꿈.
아름다운 환상.
질투.
위로.
모욕.
귀환.
레이튼은 그 이름들을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름이 너무 빠르면, 질문은 죽습니다.”
《별들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
그 이름들이 잠시 흐려졌다.
레이튼은 슈샤니크와 푸리나를 번갈아 보았다.
“부인. 그리고 여왕 폐하.”
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이것은 실패입니까, 귀환입니까, 아니면 아직 문을 열지 못한 여관입니까?”
아무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 순간 무대 아래에서 아주 낮은 물소리가 들렸다.
아레 마가트로이드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푸리나를 비난하는 눈으로 보지 않았다.
슈샤니크를 동정하는 눈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 아래로 가라앉은 침묵을 듣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아레의 발밑에서 검은 바다가 열렸다.
《가장 낮은 바다》.
그 바다에는 박수가 닿지 않는 이름들이 있었다.
여관 앞에서 죽은 아이들.
장부에 적히기 전 팔려간 사람들.
살아남았지만 웃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푸리나의 극장이 너무 밝아질 때마다, 자기 슬픔이 부끄러워질지도 모르는 사람들.
아레가 조용히 말했다.
“아름답게 비추기에는, 아직 물 아래에 남은 이름들이 있구나.”
푸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어.”
아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알아가는 것이겠지.”
그 말은 날카롭지 않았다.
그저 깊었다.
아레의 손끝에서 물결이 잦아들었다.
《온당한 결말을 애도하는 것》.
무대 위에 떠오르던 아름다운 비극의 빛이 낮아졌다.
슈샤니크의 상처는 더 이상 장엄한 독백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냥 상처였다.
닫힌 여관은 상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말 닫힌 문이었다.
먼지.
녹슨 문고리.
열리지 않은 방.
푸리나는 그 앞에서 조용히 말했다.
“내가 조명을 켤게요.”
슈샤니크가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문을 열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의 손끝에서 [여관:극장]의 작은 조명이 켜졌다.
아주 작은 빛.
문을 비추지만, 문틈을 억지로 벌리지 않는 빛.
“막을 올릴지도, 내릴지도, 당신이 정하세요.”
슈샤니크는 그 빛을 보았다.
오래도록.
그녀는 화내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저 그 빛이 자기 닫힌 여관 문 앞에 머무는 것을 보았다.
“그대의 극장은 살아 있군요.”
슈샤니크가 말했다.
“그래서 제게는 잔인합니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슈샤니크는 장부를 닫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느리게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이 죄는 아니겠지요.”
푸리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슈샤니크는 푸리나를 보았다.
“저는 아직 문을 열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고백이었다.
“그 문 안쪽에는, 제가 이름 부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녀의 어깨 위 청록빛 까마귀가 낮게 울었다.
“하지만 그대의 불빛을 모른 척하지도 않겠습니다.”
푸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거면 충분해요.”
“충분하지 않습니다.”
슈샤니크가 바로 말했다.
“충분한 것은 없습니다.”
그 말에 푸리나는 살짝 숨을 멈췄다.
슈샤니크는 덧붙였다.
“다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푸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때 무대 뒤편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요안나 4세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어린 황제.
그러나 그 어깨에는 불가능한 평화의 문장이 놓여 있었다.
요안나는 슈샤니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멀리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슈샤니크.”
재상은 몸을 돌렸다.
“폐하.”
요안나는 두 손을 모았다.
“장부에서 지우지 말아주세요.”
“무엇을 말입니까?”
요안나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바라는 마음까지요.”
슈샤니크는 눈을 감았다.
아주 잠깐.
그리고 대답했다.
“그것은 가장 계산하기 어려운 항목입니다.”
요안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래도 적어주세요.”
슈샤니크는 고개를 숙였다.
“명하신다면.”
“명령이 아니에요.”
요안나가 말했다.
“부탁이에요.”
슈샤니크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더 어렵군요.”
요안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다음 막을 위한 작은 불씨.
요안나가 물러나자, 행정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푸리나는 세히스문도의 가면을 들었다.
가면에는 일곱 단어가 있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닫힌 여관의 문 앞에 놓인 조명과 그레이의 등불, 하융의 창호, 아레의 바다, 레이튼의 질문, 요안나의 작은 부탁이 한순간 겹쳤다.
그리고 여덟 번째 단어가 새겨졌다.
거울.
푸리나는 그 단어를 보았다.
“여덟 번째 꿈은 닫힌 여관이었어.”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아니.”
잠시 멈췄다.
“닫힌 여관을 바라보는 극장이었지.”
슈샤니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계속했다.
“거울은 대답하지 않았어.
다만 내가 비추고 싶었던 것과, 내가 외면했던 것을 함께 보여주었어.”
그녀는 가면을 낮추었다.
“타인의 실패한 꿈은 내 극장의 소재가 아니야.”
슈샤니크의 눈이 푸리나에게 향했다.
“하지만 그 꿈 앞에서 조명을 모두 꺼버리는 것도 답은 아니겠지.”
푸리나는 닫힌 문을 보았다.
“문을 열지는 않을게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문틈으로 당신의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날, 조명은 준비해둘게요.”
슈샤니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침묵은 처음과 조금 달랐다.
완전히 닫힌 침묵이 아니라, 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숨을 고르는 것 같은 침묵이었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오늘은 농담하면 쫓겨나겠네.”
푸리나는 그를 흘긋 보았다.
“할 수는 있었어?”
“할 수는 있지.”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지금 하면 말도 나도 극장에서 쫓겨날걸.”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조심스러웠다.
슈샤니크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레이는 닫힌 여관 문 앞의 등불을 다시 확인했다.
하융은 창호를 닫았다.
레이튼은 이름이 아직 굳지 않은 별들을 조용히 서재로 돌려보냈다.
아레의 바다는 무대 아래로 가라앉았다.
요안나의 작은 부탁은 장부 한 귀퉁이에 아주 희미하게 남았다.
그때, 닫힌 여관의 문 앞에 찻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무도 놓는 것을 보지 못했다.
찻잔에서는 김이 올랐다.
아직 식지 않았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누구도 “열어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 찻잔은 거기에 있었다.
기다리는 것처럼.
슈샤니크는 찻잔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잠시 멈췄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찻잔이 누구의 것인지, 모두가 알았다.
여관의 성좌는 닫힌 문을 부수지 않았다.
그저 문 앞에 차를 놓고 갔다.
슈샤니크는 아주 천천히 손을 뻗었다.
찻잔을 들지는 않았다.
다만 그 김이 아직 식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정도였다.
오늘은, 그 정도였다.
행정실의 촛불이 낮아졌다.
장부들이 닫혔다.
청록빛 까마귀는 날개를 접었다.
닫힌 여관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그러나 문 앞에는 등불이 있었다.
작은 조명이 있었다.
식지 않은 차가 있었다.
그리고 세히스문도의 가면에는 이제 여덟 단어가 있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거울.
아홉 번째 글자가 들어갈 자리는 비어 있었다.
무대 뒤편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이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동시에 황제의 목소리였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요안나 4세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너무 약해 보였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불가능한 꿈은 가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정치가 된다.
푸리나는 가면을 내려놓았다.
“다음 꿈.”
그녀의 목소리는 이번에는 조금 더 따뜻했다.
그리고 조금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닫힌 여관의 재상
금목서 향기가 사라진 자리에, 잉크 냄새가 남았다.
리보니아의 눈은 천천히 녹았다.
아스트리트가 남긴 금목서 잎은 작은 씨앗처럼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고, 아스테르다스의 청흑빛 궤적도 밤하늘에서 마지막 불꽃을 남긴 뒤 사라졌다.
무대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었다.
종이 넘겨지는 소리.
펜촉이 긁히는 소리.
도장이 찍히는 소리.
멀리서 누군가가 숫자를 세는 소리.
그리고 닫힌 문 앞에 쌓인 먼지의 냄새.
푸리나는 세히스문도의 가면을 들고 무대 가장자리에 섰다.
가면에는 일곱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그리고 여덟 번째 자리는 비어 있었다.
푸리나는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마셨다.
무대 위에는 행정실이 나타났다.
화려한 궁전의 집무실이 아니었다.
바닥은 차갑고, 창문은 좁았다.
촛불은 필요한 만큼만 켜져 있었고, 벽에는 지도와 세율표와 피난민 명부, 군량 배급표, 사망자 보상 장부가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낡은 여관 문이 있었다.
그 문은 무대와 어울리지 않았다.
행정실 한복판에 세워진, 오래된 여관의 문.
문고리는 녹슬어 있었고, 문틈에는 먼지가 앉아 있었다.
문 위에는 간판이 있었지만,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에 지워졌거나, 주인이 스스로 긁어낸 것처럼.
그 여관은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주인이 닫아버린 것이었다.
푸리나는 그 문을 보았다.
그리고 무대 뒤편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슈샤니크 파흘라부니.
니케아의 재상.
장부와 시민권과 조세와 군량과 외교문서로 제국을 굴리는 여자.
한때는 여관의 성좌를 믿었고, 사람을 쉬게 하는 일을 자기 소명으로 알았으나, 결국 자기 안의 여관을 닫아버린 사람.
그녀는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대신 장부를 들고 있었다.
그 장부는 두꺼웠다.
너무 두꺼워서 한 사람의 손에 들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슈샤니크는 그것을 익숙하게 들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는 청록빛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까마귀는 죽음을 부르는 새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은 질서의 조각을 물고 돌아오는 새처럼 보였다.
망가진 문장, 끊어진 조약, 불탄 호적, 지워진 이름, 팔려간 사람의 흔적.
그런 것들을 주워와 장부 위에 내려놓는 새.
슈샤니크는 푸리나를 보았다.
정중했다.
그러나 따뜻하지는 않았다.
“킬리키아의 여왕 폐하.”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니케아의 신하, 슈샤니크 파흘라부니입니다.”
푸리나는 순간적으로 웃으며 답하려 했다.
“반가워요. 같은 아르메니아의……”
말이 멈췄다.
같은 아르메니아.
그 말이 너무 쉽게 나올 뻔했다.
슈샤니크의 눈이 그것을 붙잡았다.
비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놓아주지도 않았다.
푸리나는 아주 천천히 말을 고쳤다.
“……만나게 되어 기뻐요. 슈샤니크.”
슈샤니크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푸리나의 뒤편을 향했다.
그곳에는 [여관:극장]의 흔적이 있었다.
아직 완전히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무대는 이미 푸리나의 숨결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조명은 그녀의 손끝을 기다리고 있었고, 막은 언제든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슈샤니크는 그 극장을 보았다.
그리고 오래된 여관 문을 보았다.
“아름다운 극장이군요.”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슈샤니크가 말했다.
“아르메니아의 이름으로 웃고, 노래하고, 죽은 자를 기억하고, 산 자를 다시 일으키는 극장.”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 말의 끝에서 촛불이 흔들렸다.
푸리나는 가면을 품에 안았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슈샤니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저는 아름다운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장부를 펼쳤다.
“다만 아름다운 것은 가끔, 너무 많은 것을 덮습니다.”
푸리나의 손끝이 굳었다.
슈샤니크는 천천히 행정실 한복판으로 걸어왔다.
그녀가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바닥 위에 숫자와 이름들이 떠올랐다.
배급량.
인두세.
도망자 수.
사망자 수.
재편입 가능한 난민 가구.
노동 가능 인원.
보상 미지급 유족.
농지 복구 예상 연수.
실종자 명부.
그것은 노래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방식이었다.
슈샤니크가 말했다.
“폐하의 아르메니아는 살아 있습니까?”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슈샤니크는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아니면 제가 실패한 꿈을 아름답게 무대화한 환상입니까?”
무대가 조용해졌다.
그 질문은 칼보다 날카롭지 않았다.
그래서 더 깊게 들어왔다.
푸리나는 반박하고 싶었다.
내 아르메니아는 살아 있다고.
극장은 도피가 아니라고.
우리는 웃고, 싸우고, 먹고, 울고, 다시 무대에 오른다고.
그러나 슈샤니크의 뒤에 있는 닫힌 여관 문이 보였다.
그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 안쪽에서 들려야 할 웃음소리도, 접시 부딪히는 소리도, 여행자의 신발 털어내는 소리도 없었다.
그저 먼지.
푸리나는 말하지 못했다.
슈샤니크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저도 여관을 열고 싶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무대가 바뀌었다.
행정실의 벽 뒤로 오래전의 작은 여관이 나타났다.
낡았지만 따뜻한 여관.
식탁에는 빵이 있었고, 포도주가 있었고, 아이들이 의자 아래에서 장난치고 있었다. 여행자는 젖은 망토를 벗어 난롯가에 걸었고, 수도자는 조용히 기도했고, 노인은 문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젊은 슈샤니크가 그 여관 안에 있었다.
그녀는 지금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누군가의 망토를 받아주고, 아이의 이마를 닦아주고, 장례를 기다리는 가족에게 따뜻한 차를 내어주던 사람.
그녀가 믿었던 것은 단순한 행정이 아니었다.
사람은 길 위에서 지친다.
그러니 누군가는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니 누군가는 마지막 방을 준비해야 한다.
여관의 성좌를 믿는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슈샤니크의 목소리가 겹쳤다.
“저는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 말은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어린아이도, 순례자도, 굶주린 병사도, 겁먹은 상인도, 장례를 기다리는 가족도.”
여관의 장면 위로 어둠이 드리웠다.
불길.
말발굽.
비명.
항복하면 살 수 있으리라 믿었던 순간.
문을 열면 지킬 수 있으리라 믿었던 사람들.
그러나 문은 방패가 되지 못했다.
아이들이 사라졌다.
식탁은 엎어졌다.
난로의 불은 꺼졌다.
슈샤니크는 그 앞에 서 있었다.
지키지 못한 여관의 주인.
“그날 이후로 저는 생각했습니다.”
현재의 슈샤니크가 말했다.
“저는 더 이상 여관을 열 자격이 없다고.”
오래된 여관 문이 닫혔다.
쾅.
그 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 전체를 흔들었다.
문고리에 먼지가 앉았다.
창문 안쪽의 빛이 사라졌다.
슈샤니크는 장부를 덮었다가 다시 열었다.
“그 뒤로 제가 잡은 것은 열쇠가 아니었습니다.”
펜촉이 종이를 긁었다.
“장부였습니다.”
무대에는 노예 시장의 어두운 윤곽이 스쳤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팔려간 사람.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잘라낸 사람.
잔혹한 행정의 언어를 배운 사람.
사람을 사람으로 품지 못하게 된 대신, 숫자로 처리하는 법을 배운 사람.
슈샤니크는 그 장면을 피하지 않았다.
“저는 배웠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얼마를 더 걷으면 반란이 일어나는지. 어느 사람을 남겨두고 어느 사람을 팔면 생산성이 유지되는지. 어느 종교 공동체를 살려두면 통치가 편한지.”
푸리나의 얼굴이 굳었다.
슈샤니크는 담담히 말했다.
“저는 잔혹했습니다.”
청록빛 까마귀가 날개를 접었다.
“다만 무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말이 더 아팠다.
무능하지 않았기에, 더 많은 것이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무능하지 않았기에, 더 많은 것이 효율적으로 착취되었을지도 모른다.
슈샤니크의 장부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피가 마른 뒤 남는 얼룩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뒤로 니케아에 왔습니다.”
무대 위에 자주빛 깃발이 잠시 비쳤다.
“로마는 무너진 이름이었고, 살아남아야 할 제도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다시 장부를 잡았습니다.”
그녀의 눈이 푸리나에게 향했다.
“황제의 화살은 장부 없이는 날아가지 않습니다.
활을 만드는 이, 병사를 먹이는 이, 세금을 걷는 이, 죽은 이를 보상하는 이가 있어야 전쟁은 끝납니다.”
푸리나는 미하일라의 활을 떠올렸다.
요안나의 어린 이상도.
그리고 그 이상들이 서 있기 위해 필요한 차가운 계산도.
슈샤니크는 말했다.
“닫은 여관의 주인은, 이제 장부로 사람을 살립니다.”
그 말은 자조가 아니었다.
선언도 아니었다.
남은 삶에 대한 판결 같았다.
푸리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말이 다시 멈췄다.
당신은 여전히 여관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이 너무 쉬웠다.
닫힌 문 앞에서, 밖에 선 사람이 “아직 열려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푸리나의 손끝에서 [여관:극장]이 숨을 들이쉬었다.
조명이 켜지려 했다.
막이 오르려 했다.
무대는 상처 입은 재상을 위한 독백을 준비하려 했다.
푸리나의 극장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사람에게도 대사가 있다.
이 사람도 무대 위에 설 수 있다.
이 사람도, 어쩌면, 관객 앞에서 자기 상처를 말하고 나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순간 죠니가 낮게 말했다.
“푸리나.”
그의 목소리는 농담이 아니었다.
푸리나는 멈췄다.
죠니는 슈샤니크를 보지 않고, 푸리나의 손을 보았다.
“저건 독백이 아니야. 상처야.”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죠니가 덧붙였다.
“조명 낮춰. 지금은 잘 보이게 하는 것보다, 눈이 익을 시간을 주는 게 낫다.”
그 말은 짧았다.
하지만 충분했다.
푸리나는 손을 내렸다.
조명이 낮아졌다.
막은 오르지 않았다.
그때 푸리나의 안쪽에서 하나의 특성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신은 적절히 준비된 자를 부른다》.
그것은 강제로 사람을 무대 위에 끌어올리는 특성이 아니었다.
푸리나의 극장은 아무나 붙잡아 세우지 않는다.
마음속에 이미 대사가 무르익은 자.
자기 상처와 선택을, 아직 떨리더라도 무대 위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자.
혹은 아직 완전하지 않아도, 부름에 대답할 수 있는 자.
그런 자를 부른다.
슈샤니크는 준비되어 있었다.
푸리나와 마주 설 준비는.
그러나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닫힌 여관의 문을 여는 것은.
푸리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당신을 무대에 부를 수는 있어요.”
슈샤니크의 눈이 조금 움직였다.
푸리나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여관 문을 대신 열 수는 없어요.”
그녀는 닫힌 문을 보았다.
“그건 당신의 문이니까.”
슈샤니크는 오래도록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하융의 창호가 열렸다.
회색빛 방.
동방식 창호.
[여관:비껴간 창].
하융은 그 창가에 서 있었다.
그의 옷자락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지만, 창밖의 가능성들은 물결처럼 흔들렸다.
하융은 하오체로 조용히 말했다.
“보겠소?”
슈샤니크가 그를 보았다.
“무엇을 말입니까?”
“그대가 가지 못한 길이오.”
슈샤니크의 손이 장부를 붙잡았다.
하융은 억지로 창을 열지 않았다.
잠시 기다렸다.
슈샤니크는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융이 창을 열었다.
첫 번째 창.
여관의 문이 열려 있었다.
항복은 받아들여졌다.
아이들은 살았다.
불길은 지나갔지만, 여관은 타지 않았다.
슈샤니크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차를 내리고 있었다.
하융이 말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의 항복이 받아들여졌소.
아이들은 살았고, 여관의 등불도 꺼지지 않았소.”
슈샤니크의 얼굴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장부를 쥔 손가락이 희게 변했다.
두 번째 창.
슈샤니크는 도망치지 못했다.
노예 시장으로도 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죽었다.
여관 문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융이 말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가 여관을 닫을 틈도 없었소.”
세 번째 창.
슈샤니크는 살아남아 아르메니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돌아갈 집은 없었다.
여관의 터에는 잡초가 자라 있었고, 간판은 사라졌고,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가 돌아갔소.
허나 그곳에는 이미 돌아갈 집이 없었구려.”
네 번째 창.
푸리나의 아르메니아가 있었다.
웃음이 있었다.
극장이 있었다.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왕관을 쓰고 장난을 쳤다.
피난민들이 박수를 쳤다.
그 풍경은 따뜻했다.
그래서 슈샤니크에게는 잔인했다.
하융이 조용히 말했다.
“허나 저 창에서는…… 닫힌 여관 앞에 다른 여관의 불빛이 닿고 있소.”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것이 위로인지, 모욕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소.”
슈샤니크는 그 창을 오래 보았다.
푸리나도 보았다.
자신의 극장이 누군가에게는 구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실패한 꿈을 비추는 거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그레이가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작은 장부를 들고 있었다.
슈샤니크의 장부보다 훨씬 얇았다.
하지만 그 안의 글씨는 하나하나 눌러 쓴 것처럼 깊었다.
그레이의 발밑에 [여관:기억이 잠드는 거리]의 등불들이 켜졌다.
작은 거리.
비 온 뒤의 골목.
문패.
등불.
잊히지 않기 위해 잠시 머무는 이름들.
그 거리가 슈샤니크의 닫힌 여관 문 앞까지 천천히 이어졌다.
그러나 문을 열지는 않았다.
그레이는 문 앞에 작은 등불 하나를 내려놓았다.
“닫힌 문을 억지로 열지는 않겠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문 앞에 남은 이름은 적겠습니다.”
슈샤니크가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는 고개를 숙였다.
“살아남은 사람이 장부를 잡는 방식은 모두 다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래도 이름을 지우지 않는다면, 아직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슈샤니크의 표정이 아주 조금 무너졌다.
정말 조금이었다.
하지만 푸리나는 보았다.
그레이도 보았다.
슈샤니크는 곧 다시 얼굴을 가다듬었다.
“그런 위로는 위험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문이 닫힌 사람에게, 아직 열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잔혹할 수 있습니다.”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말합니까?”
“아니요.”
그레이는 등불을 보았다.
“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불을 놓아둡니다.”
슈샤니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레이튼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여관:문답의 서재]의 별들이 행정실 천장에 떠올랐다.
슈샤니크와 푸리나 사이에 여러 이름들이 맺히려 했다.
실패한 여관지기.
살아남은 아르메니아.
죽은 꿈.
아름다운 환상.
질투.
위로.
모욕.
귀환.
레이튼은 그 이름들을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름이 너무 빠르면, 질문은 죽습니다.”
《별들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
그 이름들이 잠시 흐려졌다.
레이튼은 슈샤니크와 푸리나를 번갈아 보았다.
“부인. 그리고 여왕 폐하.”
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이것은 실패입니까, 귀환입니까, 아니면 아직 문을 열지 못한 여관입니까?”
아무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 순간 무대 아래에서 아주 낮은 물소리가 들렸다.
아레 마가트로이드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푸리나를 비난하는 눈으로 보지 않았다.
슈샤니크를 동정하는 눈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 아래로 가라앉은 침묵을 듣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아레의 발밑에서 검은 바다가 열렸다.
《가장 낮은 바다》.
그 바다에는 박수가 닿지 않는 이름들이 있었다.
여관 앞에서 죽은 아이들.
장부에 적히기 전 팔려간 사람들.
살아남았지만 웃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푸리나의 극장이 너무 밝아질 때마다, 자기 슬픔이 부끄러워질지도 모르는 사람들.
아레가 조용히 말했다.
“아름답게 비추기에는, 아직 물 아래에 남은 이름들이 있구나.”
푸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어.”
아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알아가는 것이겠지.”
그 말은 날카롭지 않았다.
그저 깊었다.
아레의 손끝에서 물결이 잦아들었다.
《온당한 결말을 애도하는 것》.
무대 위에 떠오르던 아름다운 비극의 빛이 낮아졌다.
슈샤니크의 상처는 더 이상 장엄한 독백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냥 상처였다.
닫힌 여관은 상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말 닫힌 문이었다.
먼지.
녹슨 문고리.
열리지 않은 방.
푸리나는 그 앞에서 조용히 말했다.
“내가 조명을 켤게요.”
슈샤니크가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문을 열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의 손끝에서 [여관:극장]의 작은 조명이 켜졌다.
아주 작은 빛.
문을 비추지만, 문틈을 억지로 벌리지 않는 빛.
“막을 올릴지도, 내릴지도, 당신이 정하세요.”
슈샤니크는 그 빛을 보았다.
오래도록.
그녀는 화내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저 그 빛이 자기 닫힌 여관 문 앞에 머무는 것을 보았다.
“그대의 극장은 살아 있군요.”
슈샤니크가 말했다.
“그래서 제게는 잔인합니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슈샤니크는 장부를 닫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느리게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이 죄는 아니겠지요.”
푸리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슈샤니크는 푸리나를 보았다.
“저는 아직 문을 열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고백이었다.
“그 문 안쪽에는, 제가 이름 부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녀의 어깨 위 청록빛 까마귀가 낮게 울었다.
“하지만 그대의 불빛을 모른 척하지도 않겠습니다.”
푸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거면 충분해요.”
“충분하지 않습니다.”
슈샤니크가 바로 말했다.
“충분한 것은 없습니다.”
그 말에 푸리나는 살짝 숨을 멈췄다.
슈샤니크는 덧붙였다.
“다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푸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때 무대 뒤편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요안나 4세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어린 황제.
그러나 그 어깨에는 불가능한 평화의 문장이 놓여 있었다.
요안나는 슈샤니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멀리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슈샤니크.”
재상은 몸을 돌렸다.
“폐하.”
요안나는 두 손을 모았다.
“장부에서 지우지 말아주세요.”
“무엇을 말입니까?”
요안나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바라는 마음까지요.”
슈샤니크는 눈을 감았다.
아주 잠깐.
그리고 대답했다.
“그것은 가장 계산하기 어려운 항목입니다.”
요안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래도 적어주세요.”
슈샤니크는 고개를 숙였다.
“명하신다면.”
“명령이 아니에요.”
요안나가 말했다.
“부탁이에요.”
슈샤니크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더 어렵군요.”
요안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다음 막을 위한 작은 불씨.
요안나가 물러나자, 행정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푸리나는 세히스문도의 가면을 들었다.
가면에는 일곱 단어가 있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닫힌 여관의 문 앞에 놓인 조명과 그레이의 등불, 하융의 창호, 아레의 바다, 레이튼의 질문, 요안나의 작은 부탁이 한순간 겹쳤다.
그리고 여덟 번째 단어가 새겨졌다.
거울.
푸리나는 그 단어를 보았다.
“여덟 번째 꿈은 닫힌 여관이었어.”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아니.”
잠시 멈췄다.
“닫힌 여관을 바라보는 극장이었지.”
슈샤니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계속했다.
“거울은 대답하지 않았어.
다만 내가 비추고 싶었던 것과, 내가 외면했던 것을 함께 보여주었어.”
그녀는 가면을 낮추었다.
“타인의 실패한 꿈은 내 극장의 소재가 아니야.”
슈샤니크의 눈이 푸리나에게 향했다.
“하지만 그 꿈 앞에서 조명을 모두 꺼버리는 것도 답은 아니겠지.”
푸리나는 닫힌 문을 보았다.
“문을 열지는 않을게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문틈으로 당신의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날, 조명은 준비해둘게요.”
슈샤니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침묵은 처음과 조금 달랐다.
완전히 닫힌 침묵이 아니라, 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숨을 고르는 것 같은 침묵이었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오늘은 농담하면 쫓겨나겠네.”
푸리나는 그를 흘긋 보았다.
“할 수는 있었어?”
“할 수는 있지.”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지금 하면 말도 나도 극장에서 쫓겨날걸.”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조심스러웠다.
슈샤니크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레이는 닫힌 여관 문 앞의 등불을 다시 확인했다.
하융은 창호를 닫았다.
레이튼은 이름이 아직 굳지 않은 별들을 조용히 서재로 돌려보냈다.
아레의 바다는 무대 아래로 가라앉았다.
요안나의 작은 부탁은 장부 한 귀퉁이에 아주 희미하게 남았다.
그때, 닫힌 여관의 문 앞에 찻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무도 놓는 것을 보지 못했다.
찻잔에서는 김이 올랐다.
아직 식지 않았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누구도 “열어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 찻잔은 거기에 있었다.
기다리는 것처럼.
슈샤니크는 찻잔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잠시 멈췄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찻잔이 누구의 것인지, 모두가 알았다.
여관의 성좌는 닫힌 문을 부수지 않았다.
그저 문 앞에 차를 놓고 갔다.
슈샤니크는 아주 천천히 손을 뻗었다.
찻잔을 들지는 않았다.
다만 그 김이 아직 식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정도였다.
오늘은, 그 정도였다.
행정실의 촛불이 낮아졌다.
장부들이 닫혔다.
청록빛 까마귀는 날개를 접었다.
닫힌 여관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그러나 문 앞에는 등불이 있었다.
작은 조명이 있었다.
식지 않은 차가 있었다.
그리고 세히스문도의 가면에는 이제 여덟 단어가 있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거울.
아홉 번째 글자가 들어갈 자리는 비어 있었다.
무대 뒤편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이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동시에 황제의 목소리였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요안나 4세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너무 약해 보였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불가능한 꿈은 가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정치가 된다.
푸리나는 가면을 내려놓았다.
“다음 꿈.”
그녀의 목소리는 이번에는 조금 더 따뜻했다.
그리고 조금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