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75여관◆zAR16hM8he(ca47ad90)2026-05-12 (화) 18:42:07
제11막
마지막 세히스문도
길은 무대 아래로 사라졌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얀 지도 위에 새겨졌던 불완전한 선은 극장의 바닥 아래에서 아직 희미하게 빛났다.
그 길은 곧지 않았고, 빠르지도 않았으며, 중간중간 끊어지고 돌아갔다.
하지만 누군가가 걸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길이었다.
푸리나는 세히스문도의 가면을 들고 홀로 무대 위에 섰다.
가면에는 열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거울.
평화.
길.
마지막 자리는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늘 다음 꿈이 찾아왔다.
기록의 별빛이.
황제의 활이.
복수의 숲이.
이름 없는 인형의 은빛이.
불가리아의 새벽이.
죄의 갑주가.
떠밀린 왕관이.
닫힌 여관이.
평화의 낮은 단상이.
지도 없는 길이.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어떤 성좌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문도 열리지 않았다.
어떤 창도 먼저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조명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푸리나를 향해 돌아왔다.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나?”
객석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 속에서 극장이 숨을 들이쉬었다.
[여관:극장].
그녀가 늘 열어왔던 공간.
다른 사람의 상처와 꿈과 선택을 받아, 막과 조명과 대사로 빚어내던 여관.
누군가를 무대 위로 부르고, 누군가의 침묵을 기다리고, 누군가의 이름을 객석 앞에 세우던 장소.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푸리나가 극장을 연 것이 아니었다.
극장이 푸리나를 불렀다.
무대 중앙에 원형 조명이 켜졌다.
피할 곳은 없었다.
푸리나는 처음으로 연출자석이 아니라 배우의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안쪽에서 하나의 특성이 고개를 들었다.
《신은 적절히 준비된 자를 부른다》.
지금까지 푸리나는 이 특성으로 다른 이들을 불렀다.
준비된 자.
자기 안에 대사를 품은 자.
아직 흔들리더라도 자기 막을 마주할 수 있는 자.
상처를 말할 준비가 된 자.
선택을 다시 붙잡을 수 있는 자.
그러나 이번에 부름받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푸리나였다.
그녀는 준비되어 있었다.
완성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답을 알기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지금까지 타인의 꿈을 보아왔기 때문에.
타인의 탑과 감옥과 길을 무대 위에 올려왔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물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푸리나는 가면을 쥐었다.
“마지막 꿈.”
그녀가 말했다.
“마지막 세히스문도.”
무대가 흔들렸다.
극장은 변했다.
객석이 높아졌다.
조명은 화려해졌다.
금빛 커튼이 내려왔다.
수많은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박수 속에서 바실리오가 걸어 나왔다.
이번의 바실리오는 왕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고, 탐험가도 아니었다.
그는 극장주처럼 보였다.
검은 연미복.
하얀 장갑.
손에는 대본.
입가에는 정중한 미소.
그리고 그 미소는 푸리나의 미소와 조금 닮아 있었다.
푸리나는 그를 보자마자 알았다.
이번 바실리오는 외부의 적이 아니었다.
자기 그림자였다.
바실리오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대단한 극장이었습니다, 여왕 폐하.”
그는 박수치는 시늉을 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거울. 평화. 길.”
그가 단어들을 하나씩 읽었다.
“훌륭합니다. 참으로 훌륭해요.”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실리오는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묻고 싶군요.”
그는 대본을 펼쳤다.
“그 단어들은 누구의 것입니까?”
무대가 멈췄다.
“그들이 직접 가져온 것입니까?
아니면 폐하께서 보기 좋게 골라낸 것입니까?”
푸리나의 손가락이 가면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바실리오는 부드럽게 웃었다.
“당신은 소망을 본다고 말하지요.”
푸리나의 뒤에 거대한 펜이 떠올랐다.
극장 위에, 하늘처럼.
《무대 위의 극작가》.
푸리나는 세상 만물의 소망의 흐름을 감지한다.
어디서 대사가 끊겼는지.
어느 장면에서 사람이 멈췄는지.
어떤 막이 아직 올라가지 않았는지.
어떤 결말이 바뀔 수 있는지.
그녀는 본다.
그리고 그 흐름을 기승전결의 극으로 구체화한다.
그것은 은혜였다.
그러나 위험이기도 했다.
바실리오가 속삭였다.
“하지만 보는 순간, 이미 장면으로 고르고 있지 않습니까?”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바실리오가 대본을 넘겼다.
“누군가의 침묵을 ‘좋은 장면’이라 부르고.
누군가의 실패를 ‘아름다운 비극’으로 조명하고.
누군가의 꿈을 ‘극적 결말’로 배열하고.”
그는 웃었다.
“정말로 그들이 주인공이었습니까?
아니면 푸리나 헤툼의 극장에 초대된 훌륭한 배우들이었습니까?”
푸리나가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바실리오는 손을 들었다.
무대 위에 푸리나의 선언이 떠올랐다.
《세상은 무대요, 모든 이는 주인공일지니!》.
그 문장은 푸리나의 믿음이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삶은 무대이고, 선택은 대사이며, 상처도 꿈도 누군가의 막이다.
그러나 바실리오가 그 문장을 다시 읽자, 그것은 조금 다르게 들렸다.
“모든 이는 주인공.”
그가 미소 지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는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나 편리한 말입니까.”
푸리나는 눈을 들었다.
바실리오는 조명 아래에서 말했다.
“모두가 주인공이라면, 누구든 무대 위에 올릴 수 있지요.
상처 입은 자도, 죽어간 자도, 침묵하는 자도, 닫힌 문 뒤의 자도.”
그는 손가락으로 푸리나의 가면을 가리켰다.
“그런데 폐하. 당신이 조명을 비추지 않은 사람은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바실리오는 다시 대본을 펼쳤다.
그 안에서 또 하나의 신술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세기의 대극작가와 만난 위대한 주인공에 대하여》.
배우 계약.
서로의 소망을 이루어주기로 서약하고, 상대를 [배우]로 세우는 힘.
상대를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세우는, 푸리나다운 아름다운 계약.
바실리오는 그것마저 부드럽게 비틀었다.
“계약이라 부르면 아름답지요.”
그는 속삭였다.
“그러나 결국 네 극장에 초대된 순간, 그 사람은 네 배우가 됩니다.”
푸리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바실리오는 마지막으로 손을 들어 극장 전체를 가리켰다.
“여관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극장입니다.
손님이 쉬러 온 줄 알았더니, 어느새 배우가 되어 있지요.”
그는 웃었다.
“푸리나. 너는 구원자인가?
연출자인가?
아니면 모두가 자유롭다고 믿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감옥의 주인인가?”
그 말이 떨어지자, 무대의 커튼들이 닫히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닫힌 커튼 뒤에서 박수 소리가 커졌다.
푸리나는 그 박수를 들었다.
처음에는 따뜻했다.
그러나 점점 무거워졌다.
박수는 그녀에게 몰렸다.
모든 조명이 그녀에게 돌아왔다.
모든 대사가 그녀의 손끝으로 모였다.
모든 꿈이 그녀의 극장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아름다웠다.
숨이 막힐 만큼.
그 순간,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푸리나.”
죠니였다.
그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농담하지 않았다.
“이번엔 네가 조명 밖으로 도망치면 안 돼.”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죠니는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의 눈에 푸리나의 극장은 선으로 보이지 않았다.
회전으로 보였다.
《황금의 동경》.
수많은 소망의 흐름.
배우들의 선택.
군상극의 박자.
앙코르의 잔향.
박수와 조명과 대사의 흐름.
아름다웠다.
그러나 모든 궤적이 너무 정확하게 푸리나의 조명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회전은 찰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박수를 향하고 있었다.
죠니는 낮게 말했다.
“흐름이 예쁘게 돌고 있어.”
푸리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럼 괜찮은 거 아니야?”
“아니.”
죠니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예쁘게 돌아. 전부 네 조명으로 돌아오니까.”
그 말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비난은 아니었다.
죠니는 이어 말했다.
“멀리 돌아가.”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멀리 돌아가는 길》.
죠니의 말은 명령이 아니었다.
방향이었다.
“네가 중앙에 서지 않아도 되는 길로.”
푸리나는 가면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그레이가 무대 뒤편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장부를 들고 있었다.
[여관:기억이 잠드는 거리]의 등불이 커튼 뒤에 하나씩 켜졌다.
문패들이 나타났다.
알토.
미하일라.
민다우가스.
라이자.
알렉산드리나.
가브리엘라.
레플리카.
스토얀카.
호흐마이스터.
아스트리트.
슈샤니크.
요안나.
벨라.
소피아.
아스테르다스.
하융.
레이튼.
아레.
죠니.
그리고 수많은 이름들.
무대 위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던 사람들.
대사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
객석에서만 울었던 사람들.
막이 오르기 전에 죽었던 사람들.
그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군상극이어도, 한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레이는 장부에 펜을 댔다.
“모두가 주인공이라면, 모두의 이름도 따로 적혀야 합니다.”
박수 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 아래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아레가 나타났다.
그녀의 발밑에서 가장 낮은 바다가 열렸다.
《가장 낮은 바다》.
박수가 커질수록, 무대 아래 바다는 깊어졌다.
그곳에는 박수에 닿지 못한 침묵들이 있었다.
말하지 못한 사람.
무대에 오를 준비가 되지 않았던 사람.
푸리나의 조명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빛을 고통으로 느꼈던 사람.
닫힌 여관 안쪽에 아직 남아 있는 이름들.
아레는 푸리나를 보았다.
“아름답구나.”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온당하지 않단다.”
《온당한 결말을 애도하는 것》.
화려한 대단원의 빛이 한 번 낮아졌다.
푸리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해?”
그 질문이 나오자, 레이튼이 걸어 나왔다.
[여관:문답의 서재]의 별들이 푸리나의 머리 위에 떴다.
푸리나 위에 이름들이 붙으려 했다.
구원자.
극장주.
연출가.
여왕.
성녀.
사기꾼.
바실리오.
배우.
세히스문도.
아이.
신의 대리인.
외로운 사람.
레이튼은 손끝을 들었다.
《별들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
그 이름들이 잠시 흐려졌다.
레이튼은 물었다.
“당신은 연출자입니까, 배우입니까, 구원자입니까, 아니면 아직 자기 이름을 고르지 못한 사람입니까?”
푸리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하융의 창호가 열렸다.
[여관:비껴간 창].
하융은 창가에 서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오래된 바람 같았다.
“보겠소?”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이 열렸다.
첫 번째 창.
푸리나의 극장은 모두를 살렸다.
조명은 밝았고, 무대는 완벽했고, 모두가 자기 대사를 얻었다.
그러나 아무도 극장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하융이 말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의 극장이 모두를 살렸소.
허나 모두가 그 극장 밖으로 나가지 못했소.”
두 번째 창.
푸리나는 두려워서 조명을 껐다.
상처는 조용해졌다.
아무도 아프게 비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서로를 보지 못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가 조명을 껐소.
그러자 상처는 조용해졌으나, 누구도 서로를 보지 못했소.”
세 번째 창.
푸리나는 박수만 좇았다.
극장은 갈수록 커졌고, 관객은 열광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얼굴은 점점 사라졌다.
“어느 창에서는 박수만 남았소.
그대의 이름은 길어졌으나, 배우들의 이름은 짧아졌소.”
네 번째 창.
푸리나는 도망쳤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아무 막도 열지 않았다.
극장은 안전했다.
그리고 텅 비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가 아무도 부르지 않았소.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으나,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소.”
마지막 창.
푸리나는 조명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 중앙에 서 있지 않았다.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서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막을 열었다.
어떤 이는 무대 위에 섰고, 어떤 이는 객석에 남았고, 어떤 이는 문밖 길로 나갔다.
푸리나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다만 조명이 꺼지지 않게 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허나 저 창에서는…… 그대가 조명을 들고, 무대 중앙에서 한 걸음 물러섰소.”
푸리나는 그 창을 오래 보았다.
그때 무대 뒤편에서 하나씩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알토였다.
기록의 별빛이 작게 떠올랐다.
“기록은 주인공을 대신하지 않아.”
알토는 말했다.
“다만 그가 선택한 흔적을 남길 뿐이지.”
아카식의 기척도 있었다.
웃음 섞인, 그러나 차가운 기록자의 목소리.
“꿈이라도 기록할 만하네.
다만 기록자가 결말을 대신 쓰면, 그건 기록이 아니지.”
다음은 미하일라였다.
자주빛 활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네 조명이 화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녀의 목소리는 황제답게 단단했다.
“화살은 내 몫이다. 네 몫은 그것이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착각하지 않게 비추는 것이다.”
요안나가 그 옆에서 작게 말했다.
“저도 몰랐어요.”
그녀는 푸리나를 보았다.
“그래도 말했어요. 모른다고.”
푸리나의 입술이 떨렸다.
“푸리나도 말해도 돼요.”
요안나가 웃었다.
“모른다고.”
민다우가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무대는 국가가 아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민다우가스는 이어 말했다.
“그러나 국가는 때때로 무대가 필요하다. 백성이 자기가 무엇을 지키는지 잊었을 때, 무대는 칼보다 오래 남는다.”
그 옆에서 아스테르다스가 청흑빛 궤적을 남기며 웃었다.
“어디에 떨어질지는 네가 정해.”
그가 말했다.
“조명 아래든, 조명 밖이든.”
순간 그의 발밑에 낙점이 생겼다.
《발을 디디다》.
“남이 정한 곳에 떨어질 필요는 없잖아.”
라이자의 은빛이 무대 한편에 피어났다.
성은의 꽃.
그녀는 푸리나를 보고 말했다.
“이름을 주는 것과, 이름을 대신 정하는 건 달라.”
그 옆에서 소피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극장도 재료네요.”
푸리나가 소피아를 보았다.
소피아는 작은 도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문제는 뭘 만들지 정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거고요.”
벨라의 낮은 목소리가 뒤따랐다.
“보이느냐.”
그녀는 무대와 객석, 문과 길을 모두 가리켰다.
“왕관도, 극장도, 버티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있다.”
다음은 알렉산드리나였다.
새벽빛의 차르는 푸리나를 똑바로 보았다.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그렇다면 연출자라면 누구보다 배우의 자유를 두려워해야겠지.”
가브리엘라가 그 곁에서 고개를 숙였다.
“왕도를 걷는 이가 왕이듯, 무대에 서는 이가 배우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따뜻했다.
“부르는 자가 배우를 소유하지는 않습니다.”
레플리카가 말했다.
“내가 배우가 된 건 누가 역할을 줘서가 아니야.”
그녀는 자기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내가 그 역할을 다시 썼기 때문이야.”
스토얀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차갑게 웃었다.
“고통을 무대로 꾸미는 건 쉽지.”
그 말은 칼처럼 들어왔다.
“고통받는 쪽이 아니라면.”
푸리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호흐마이스터가 나타났다.
그녀의 어깨에는 아직 죄의 갑주가 잔흔처럼 남아 있었다.
“죄는 아름답게 입힐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아름답다고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아스트리트가 그 옆에 섰다.
금목서 잎이 하나 떨어졌다.
“떠밀린 배역도 다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푸리나를 보았다.
“하지만 선택했다는 말로, 떠밀렸던 사실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슈샤니크가 걸어 나왔다.
그녀의 뒤에는 닫힌 여관의 문이 있었다.
문은 아직 닫혀 있었다.
그러나 그 앞에는 식지 않은 찻잔과 작은 등불이 있었다.
슈샤니크는 푸리나를 향해 말했다.
“폐하.”
그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대는 제 닫힌 여관 앞에서 조명을 낮추는 법을 배웠습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슈샤니크가 물었다.
“이제 묻겠습니다.”
잠시 침묵.
“그대 자신에게도 조명을 낮출 수 있습니까?”
그 말에 푸리나는 무너질 뻔했다.
자기 자신에게 조명을 낮춘다는 것.
자기 극장을, 자기 박수를, 자기 대단원을 덜 아름답게 보는 것.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자신이 모두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푸리나는 가면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나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모두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싶었어.”
그 말은 어린 고백처럼 흘러나왔다.
“누구도 배경이 되지 않았으면 했어. 누구도 이름 없이 지나가지 않았으면 했어. 누군가의 고통이 그냥 고통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했어. 누군가의 꿈이 비웃음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했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서 무대를 만들었어.”
바실리오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 무대는 네 것이 되었지.”
푸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맞아.”
무대가 조용해졌다.
푸리나가 인정했다.
“내 극장은 위험해.”
바실리오의 미소가 커졌다.
하지만 푸리나는 계속 말했다.
“나는 사람들의 소망을 너무 쉽게 장면으로 보고, 상처를 너무 쉽게 대사로 들을 수 있어. 때로는 내가 비추고 싶은 방식으로 조명을 잡고 싶어. 아름답게 끝내고 싶어. 박수받고 싶어.”
그녀는 가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게 누군가에게는 감옥이 될 수 있어.”
그 말이 끝나자, 극장 전체가 한 번 흔들렸다.
그것은 붕괴가 아니었다.
정직해지는 소리였다.
바실리오가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극장을 닫아라.”
푸리나는 눈을 감았다.
8막의 닫힌 여관이 떠올랐다.
슈샤니크의 문.
그 문 앞의 찻잔.
그레이의 등불.
아레의 바다.
하융의 창.
요안나의 “모른다”.
죠니의 “멀리 돌아가”.
푸리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니.”
그녀가 말했다.
“닫지 않을 거야.”
바실리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푸리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내가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조명을 꺼버리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가면을 가슴에 안았다.
“나는 극장주일 거야.”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하지만 모두의 결말을 쓰는 극작가는 되지 않을 거야.”
그 순간, 푸리나의 안쪽에서 별빛 하나가 떠올랐다.
절망 속에서, 아직 바라볼 수 있는 별.
《희극: 저 별을 향하여!》.
그것은 웃으라는 명령이 아니었다.
비극을 부정하는 조명도 아니었다.
해피엔딩을 강요하는 힘도 아니었다.
다만 무너진 배우의 눈앞에, 아직 바라볼 별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걸어두는 빛이었다.
푸리나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웃어, 라고 말하지 않을게.”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별빛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아직 바라볼 별이 있어.”
그 말과 함께, 극장이 바뀌기 시작했다.
금빛 커튼이 낮아졌다.
너무 높던 객석이 내려왔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경계가 넓어졌다.
그리고 극장 뒤편에 문이 생겼다.
무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
길로 이어지는 문.
푸리나는 손을 들었다.
《세상은 무대요, 모든 이는 주인공일지니!》.
이번에는 선언이 달랐다.
예전처럼 모두를 중앙으로 끌어올리는 힘이 아니었다.
푸리나는 천천히 말했다.
“세상은 무대야.”
그녀는 객석을 보았다.
무대 위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문밖 길을 보았다.
“하지만 내가 모두의 막을 열 권리는 없어.”
그녀는 조명을 낮췄다.
낮추었지만 끄지는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자기 막을 올릴 때 조명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뿐이야.”
그 순간, 배우 계약의 빛이 다시 떠올랐다.
《여기 세기의 대극작가와 만난 위대한 주인공에 대하여》.
푸리나는 그 빛을 자기 손 안에서 다시 쥐었다.
“배우는 소유물이 아니야.”
그녀는 말했다.
“무대에 오른 사람은, 자기 막을 끝낸 뒤 자기 길로 나갈 수 있어야 해.”
바실리오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 네 극장은 무엇이 남지?”
푸리나는 대답했다.
“여관.”
무대가 잠시 멈췄다.
“잠시 쉬고, 자기 이야기를 보고, 필요하면 다시 나가는 곳.”
그녀는 웃었다.
작지만 진심 어린 웃음이었다.
“그게 내 극장이야.”
그리고 마침내 군상극이 시작되었다.
《군상극: 아르메니아의 노래》.
처음에는 작은 선율이었다.
킬리키아의 성벽 아래에서 누군가가 빵을 굽는 소리.
항구에서 상인이 흥정하는 소리.
기사들이 말안장을 조이는 소리.
그레이가 장부를 넘기는 소리.
죠니가 낮게 농담을 삼키는 소리.
아레의 침묵.
하융의 창호.
레이튼의 질문.
백성들의 웃음.
피난민의 울음.
아이의 노래.
그 노래는 아르메니아만의 승리를 찬양하지 않았다.
아르메니아가 살아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있게 된, 다른 사람들의 꿈까지 품었다.
그러나 그때 그레이가 펜을 들었다.
“한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녀는 조명을 나누었다.
누구도 합창 속에 묻히지 않게.
그리고 그 군상극은 더 커졌다.
국가 단위의 서사로.
《세기극: 아르메니아 대서사시》.
킬리키아 아르메니아가 무대 전체에 떠올랐다.
성벽.
항구.
여관.
극장.
도로.
산맥.
묘지.
시장.
성당.
가신들의 집무실.
배우들의 대기실.
수많은 군상극에서 발생한 소망과 선택의 흐름이 하나의 거대한 국가 단위 서사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푸리나는 그 순간 가장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이 대서사시는 사람들을 삼키는 제목이 아니어야 했다.
바실리오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아름답군.”
그가 말했다.
“군상극을 국가의 대서사시로 묶는다. 결국 모든 사람의 삶은 네 아르메니아라는 제목 아래 편집되는 것 아닌가?”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르메니아는 그들을 삼키는 제목이 아니야.”
그녀는 손을 펼쳤다.
대서사시의 중심에 여관 문이 나타났다.
“그들이 쉬고, 노래하고, 다시 자기 막으로 나갈 수 있는 여관의 이름이야.”
세기극은 결말로 사람을 몰아넣지 않았다.
오히려 문을 만들었다.
들어오는 문.
쉬는 문.
나가는 문.
극장과 여관은 하나가 되었다.
그 다음에는 앙코르가 왔다.
《재연극: 앙코르》.
하지만 죽은 자를 끌어내지 않았다.
과거의 배우들을 강제로 다시 세우지도 않았다.
앙코르는 사람을 부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남긴 박자와 선택의 감각을, 지금 무대 위에 조용히 되돌렸다.
알토의 기록하는 손.
미하일라의 활시위를 놓지 않는 호흡.
민다우가스의 냉정한 시선.
라이자의 은빛 이름.
알렉산드리나의 새벽을 향한 걸음.
호흐마이스터의 죄를 입은 어깨.
아스트리트의 고쳐 잡은 검로.
슈샤니크의 닫힌 문 앞에 놓인 차.
요안나의 작은 손.
개척되지 않은 길의 첫 발.
그 잔향들이 푸리나를 지나갔다.
푸리나는 그것을 붙잡지 않았다.
그저 들었다.
아레가 고개를 들었다.
무대 아래 바다에서 수많은 작은 별들이 보였다.
무대에 오르지 못한 이름들.
푸리나는 그들을 향해 노래했다.
《재연극: 스러져간 별을 위한 세레나데》.
세레나데는 죽은 자를 무대 위에 세우지 않았다.
죽음을 취소하지도 않았다.
다만 스러진 별들이 남긴 빛을, 산 자들이 길에서 잊지 않도록 노래했다.
아레가 조용히 말했다.
“노래하거라.”
푸리나는 그녀를 보았다.
아레는 덧붙였다.
“다만 그들을 다시 무대 위에 세우지는 말거라.”
그레이도 말했다.
“이름은 제가 적겠습니다.”
잠시 침묵.
“노래는…… 너무 오래 붙잡지 말아주세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노래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박수가 찾아왔다.
박수는 처음에는 작았다.
그리고 점점 커졌다.
바실리오는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그 박수는 네 것이 될 수 있다.”
푸리나는 박수를 들었다.
아름다웠다.
달콤했다.
위험했다.
그녀는 한 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을 내렸다.
《그대여, 박수를! 대단원의 막이 올랐으니!》.
박수가 터졌다.
그러나 이번 박수는 푸리나에게 몰리지 않았다.
박수는 흩어졌다.
무대 위에 서고, 내려가고, 다시 자기 길로 걸어간 모든 사람에게 돌아갔다.
기록한 자에게.
망설인 자에게.
칼을 든 자에게.
이름을 얻은 자에게.
새벽을 향한 자에게.
죄를 인정한 자에게.
책임을 고른 자에게.
거울 앞에 선 자에게.
평화를 말한 자에게.
길을 걸은 자에게.
그리고 무대에 오르지 못한 이름들에게도.
박수는 커튼콜이 아니었다.
배웅이었다.
푸리나는 무대 중앙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그녀의 왕좌가 아니었다.
여관의 홀 같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
잠시 머무는 곳.
다시 나가는 곳.
바실리오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는 푸리나를 보았다.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선택하지?”
푸리나는 세히스문도의 가면을 들었다.
열 단어가 빛났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거울.
평화.
길.
푸리나는 마지막 빈자리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조명을 켤 거야.”
그녀는 극장을 보았다.
“하지만 걸어 나오는 건, 그대의 몫이야.”
마지막 단어가 새겨졌다.
선택.
가면이 완성되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거울.
평화.
길.
선택.
바실리오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꿈은 깨어나면 사라진다.”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좋은 꿈은 깨어난 뒤에도, 조금은 남아.”
바실리오는 사라졌다.
극장이 조용해졌다.
그때 무대 가장 뒤편에 문 하나가 열렸다.
그 문 너머에는 여관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여관.
그리고 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여관의 성좌.
그는, 혹은 그 모습은, 오늘은 믿음직한 여관지기처럼 보였다.
잔잔한 눈.
과장 없는 미소.
문 앞에는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여관좌는 푸리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극장주.”
푸리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관좌는 부드럽게 말했다.
“문을 여는 것도, 닫는 것도, 손님의 몫입니다.”
찻잔에서 김이 올랐다.
“여관지기는 다만 불을 꺼뜨리지 않을 뿐이지요.”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그럼 저는?”
여관좌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오늘의 당신은 여관지기이기도 했고, 배우이기도 했고, 손님이기도 했습니다.”
푸리나는 가면을 내려다보았다.
“복잡하네요.”
“좋은 극은 대개 그렇지요.”
그 말에 푸리나는 결국 웃었다.
그때 여관 안쪽에서 부드러운 향이 흘러나왔다.
포도와 흙과 저녁빛의 향.
타마르 여왕이 문 안쪽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죽은 자의 여왕.
안식농원의 주인.
그녀는 느릿하게 웃었다.
“꿈은 깨어나기 때문에 꿈이지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달콤했다.
“그러나 깨어난 뒤에도 향이 남는 꿈이 있답니다.”
푸리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타마르는 푸리나의 가면을 보았다.
“그대의 극은 그런 꿈이었을까요?”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요안나의 말이 떠올랐다.
모른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
푸리나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타마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아직 포도는 익어가겠지요.”
푸리나는 무대 쪽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잔향은 남아 있었다.
알토의 기록.
죠니의 찰나.
그레이의 등불.
아레의 바다.
하융의 창.
레이튼의 질문.
슈샤니크의 닫힌 문.
요안나의 평화.
개척의 성좌의 흰 여백.
그리고 푸리나 자신의 조명.
푸리나는 세히스문도의 가면을 천천히 무대 중앙에 내려놓았다.
더 이상 쓰지 않았다.
그러나 버리지도 않았다.
그것은 오늘의 꿈이었고, 질문이었고, 답이 아니었다.
푸리나는 객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대여, 박수를.”
그녀는 말했다.
“대단원의 막이 내렸으니.”
잠시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하지만 삶의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커튼이 내려왔다.
이번에는 푸리나가 커튼을 붙잡지 않았다.
내려가게 두었다.
막이 닫혔다.
박수는 이어졌다.
그러나 그 박수는 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을 향해,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 세히스문도
길은 무대 아래로 사라졌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얀 지도 위에 새겨졌던 불완전한 선은 극장의 바닥 아래에서 아직 희미하게 빛났다.
그 길은 곧지 않았고, 빠르지도 않았으며, 중간중간 끊어지고 돌아갔다.
하지만 누군가가 걸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길이었다.
푸리나는 세히스문도의 가면을 들고 홀로 무대 위에 섰다.
가면에는 열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거울.
평화.
길.
마지막 자리는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늘 다음 꿈이 찾아왔다.
기록의 별빛이.
황제의 활이.
복수의 숲이.
이름 없는 인형의 은빛이.
불가리아의 새벽이.
죄의 갑주가.
떠밀린 왕관이.
닫힌 여관이.
평화의 낮은 단상이.
지도 없는 길이.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어떤 성좌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문도 열리지 않았다.
어떤 창도 먼저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조명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푸리나를 향해 돌아왔다.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나?”
객석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 속에서 극장이 숨을 들이쉬었다.
[여관:극장].
그녀가 늘 열어왔던 공간.
다른 사람의 상처와 꿈과 선택을 받아, 막과 조명과 대사로 빚어내던 여관.
누군가를 무대 위로 부르고, 누군가의 침묵을 기다리고, 누군가의 이름을 객석 앞에 세우던 장소.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푸리나가 극장을 연 것이 아니었다.
극장이 푸리나를 불렀다.
무대 중앙에 원형 조명이 켜졌다.
피할 곳은 없었다.
푸리나는 처음으로 연출자석이 아니라 배우의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안쪽에서 하나의 특성이 고개를 들었다.
《신은 적절히 준비된 자를 부른다》.
지금까지 푸리나는 이 특성으로 다른 이들을 불렀다.
준비된 자.
자기 안에 대사를 품은 자.
아직 흔들리더라도 자기 막을 마주할 수 있는 자.
상처를 말할 준비가 된 자.
선택을 다시 붙잡을 수 있는 자.
그러나 이번에 부름받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푸리나였다.
그녀는 준비되어 있었다.
완성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답을 알기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지금까지 타인의 꿈을 보아왔기 때문에.
타인의 탑과 감옥과 길을 무대 위에 올려왔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물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푸리나는 가면을 쥐었다.
“마지막 꿈.”
그녀가 말했다.
“마지막 세히스문도.”
무대가 흔들렸다.
극장은 변했다.
객석이 높아졌다.
조명은 화려해졌다.
금빛 커튼이 내려왔다.
수많은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박수 속에서 바실리오가 걸어 나왔다.
이번의 바실리오는 왕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고, 탐험가도 아니었다.
그는 극장주처럼 보였다.
검은 연미복.
하얀 장갑.
손에는 대본.
입가에는 정중한 미소.
그리고 그 미소는 푸리나의 미소와 조금 닮아 있었다.
푸리나는 그를 보자마자 알았다.
이번 바실리오는 외부의 적이 아니었다.
자기 그림자였다.
바실리오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대단한 극장이었습니다, 여왕 폐하.”
그는 박수치는 시늉을 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거울. 평화. 길.”
그가 단어들을 하나씩 읽었다.
“훌륭합니다. 참으로 훌륭해요.”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실리오는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묻고 싶군요.”
그는 대본을 펼쳤다.
“그 단어들은 누구의 것입니까?”
무대가 멈췄다.
“그들이 직접 가져온 것입니까?
아니면 폐하께서 보기 좋게 골라낸 것입니까?”
푸리나의 손가락이 가면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바실리오는 부드럽게 웃었다.
“당신은 소망을 본다고 말하지요.”
푸리나의 뒤에 거대한 펜이 떠올랐다.
극장 위에, 하늘처럼.
《무대 위의 극작가》.
푸리나는 세상 만물의 소망의 흐름을 감지한다.
어디서 대사가 끊겼는지.
어느 장면에서 사람이 멈췄는지.
어떤 막이 아직 올라가지 않았는지.
어떤 결말이 바뀔 수 있는지.
그녀는 본다.
그리고 그 흐름을 기승전결의 극으로 구체화한다.
그것은 은혜였다.
그러나 위험이기도 했다.
바실리오가 속삭였다.
“하지만 보는 순간, 이미 장면으로 고르고 있지 않습니까?”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바실리오가 대본을 넘겼다.
“누군가의 침묵을 ‘좋은 장면’이라 부르고.
누군가의 실패를 ‘아름다운 비극’으로 조명하고.
누군가의 꿈을 ‘극적 결말’로 배열하고.”
그는 웃었다.
“정말로 그들이 주인공이었습니까?
아니면 푸리나 헤툼의 극장에 초대된 훌륭한 배우들이었습니까?”
푸리나가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바실리오는 손을 들었다.
무대 위에 푸리나의 선언이 떠올랐다.
《세상은 무대요, 모든 이는 주인공일지니!》.
그 문장은 푸리나의 믿음이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삶은 무대이고, 선택은 대사이며, 상처도 꿈도 누군가의 막이다.
그러나 바실리오가 그 문장을 다시 읽자, 그것은 조금 다르게 들렸다.
“모든 이는 주인공.”
그가 미소 지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는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나 편리한 말입니까.”
푸리나는 눈을 들었다.
바실리오는 조명 아래에서 말했다.
“모두가 주인공이라면, 누구든 무대 위에 올릴 수 있지요.
상처 입은 자도, 죽어간 자도, 침묵하는 자도, 닫힌 문 뒤의 자도.”
그는 손가락으로 푸리나의 가면을 가리켰다.
“그런데 폐하. 당신이 조명을 비추지 않은 사람은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바실리오는 다시 대본을 펼쳤다.
그 안에서 또 하나의 신술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세기의 대극작가와 만난 위대한 주인공에 대하여》.
배우 계약.
서로의 소망을 이루어주기로 서약하고, 상대를 [배우]로 세우는 힘.
상대를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세우는, 푸리나다운 아름다운 계약.
바실리오는 그것마저 부드럽게 비틀었다.
“계약이라 부르면 아름답지요.”
그는 속삭였다.
“그러나 결국 네 극장에 초대된 순간, 그 사람은 네 배우가 됩니다.”
푸리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바실리오는 마지막으로 손을 들어 극장 전체를 가리켰다.
“여관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극장입니다.
손님이 쉬러 온 줄 알았더니, 어느새 배우가 되어 있지요.”
그는 웃었다.
“푸리나. 너는 구원자인가?
연출자인가?
아니면 모두가 자유롭다고 믿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감옥의 주인인가?”
그 말이 떨어지자, 무대의 커튼들이 닫히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닫힌 커튼 뒤에서 박수 소리가 커졌다.
푸리나는 그 박수를 들었다.
처음에는 따뜻했다.
그러나 점점 무거워졌다.
박수는 그녀에게 몰렸다.
모든 조명이 그녀에게 돌아왔다.
모든 대사가 그녀의 손끝으로 모였다.
모든 꿈이 그녀의 극장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아름다웠다.
숨이 막힐 만큼.
그 순간,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푸리나.”
죠니였다.
그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농담하지 않았다.
“이번엔 네가 조명 밖으로 도망치면 안 돼.”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죠니는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의 눈에 푸리나의 극장은 선으로 보이지 않았다.
회전으로 보였다.
《황금의 동경》.
수많은 소망의 흐름.
배우들의 선택.
군상극의 박자.
앙코르의 잔향.
박수와 조명과 대사의 흐름.
아름다웠다.
그러나 모든 궤적이 너무 정확하게 푸리나의 조명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회전은 찰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박수를 향하고 있었다.
죠니는 낮게 말했다.
“흐름이 예쁘게 돌고 있어.”
푸리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럼 괜찮은 거 아니야?”
“아니.”
죠니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예쁘게 돌아. 전부 네 조명으로 돌아오니까.”
그 말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비난은 아니었다.
죠니는 이어 말했다.
“멀리 돌아가.”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멀리 돌아가는 길》.
죠니의 말은 명령이 아니었다.
방향이었다.
“네가 중앙에 서지 않아도 되는 길로.”
푸리나는 가면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그레이가 무대 뒤편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장부를 들고 있었다.
[여관:기억이 잠드는 거리]의 등불이 커튼 뒤에 하나씩 켜졌다.
문패들이 나타났다.
알토.
미하일라.
민다우가스.
라이자.
알렉산드리나.
가브리엘라.
레플리카.
스토얀카.
호흐마이스터.
아스트리트.
슈샤니크.
요안나.
벨라.
소피아.
아스테르다스.
하융.
레이튼.
아레.
죠니.
그리고 수많은 이름들.
무대 위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던 사람들.
대사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
객석에서만 울었던 사람들.
막이 오르기 전에 죽었던 사람들.
그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군상극이어도, 한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레이는 장부에 펜을 댔다.
“모두가 주인공이라면, 모두의 이름도 따로 적혀야 합니다.”
박수 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 아래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아레가 나타났다.
그녀의 발밑에서 가장 낮은 바다가 열렸다.
《가장 낮은 바다》.
박수가 커질수록, 무대 아래 바다는 깊어졌다.
그곳에는 박수에 닿지 못한 침묵들이 있었다.
말하지 못한 사람.
무대에 오를 준비가 되지 않았던 사람.
푸리나의 조명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빛을 고통으로 느꼈던 사람.
닫힌 여관 안쪽에 아직 남아 있는 이름들.
아레는 푸리나를 보았다.
“아름답구나.”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온당하지 않단다.”
《온당한 결말을 애도하는 것》.
화려한 대단원의 빛이 한 번 낮아졌다.
푸리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해?”
그 질문이 나오자, 레이튼이 걸어 나왔다.
[여관:문답의 서재]의 별들이 푸리나의 머리 위에 떴다.
푸리나 위에 이름들이 붙으려 했다.
구원자.
극장주.
연출가.
여왕.
성녀.
사기꾼.
바실리오.
배우.
세히스문도.
아이.
신의 대리인.
외로운 사람.
레이튼은 손끝을 들었다.
《별들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
그 이름들이 잠시 흐려졌다.
레이튼은 물었다.
“당신은 연출자입니까, 배우입니까, 구원자입니까, 아니면 아직 자기 이름을 고르지 못한 사람입니까?”
푸리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하융의 창호가 열렸다.
[여관:비껴간 창].
하융은 창가에 서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오래된 바람 같았다.
“보겠소?”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이 열렸다.
첫 번째 창.
푸리나의 극장은 모두를 살렸다.
조명은 밝았고, 무대는 완벽했고, 모두가 자기 대사를 얻었다.
그러나 아무도 극장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하융이 말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의 극장이 모두를 살렸소.
허나 모두가 그 극장 밖으로 나가지 못했소.”
두 번째 창.
푸리나는 두려워서 조명을 껐다.
상처는 조용해졌다.
아무도 아프게 비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서로를 보지 못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가 조명을 껐소.
그러자 상처는 조용해졌으나, 누구도 서로를 보지 못했소.”
세 번째 창.
푸리나는 박수만 좇았다.
극장은 갈수록 커졌고, 관객은 열광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얼굴은 점점 사라졌다.
“어느 창에서는 박수만 남았소.
그대의 이름은 길어졌으나, 배우들의 이름은 짧아졌소.”
네 번째 창.
푸리나는 도망쳤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아무 막도 열지 않았다.
극장은 안전했다.
그리고 텅 비었다.
“어느 창에서는 그대가 아무도 부르지 않았소.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으나,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소.”
마지막 창.
푸리나는 조명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 중앙에 서 있지 않았다.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서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막을 열었다.
어떤 이는 무대 위에 섰고, 어떤 이는 객석에 남았고, 어떤 이는 문밖 길로 나갔다.
푸리나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다만 조명이 꺼지지 않게 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허나 저 창에서는…… 그대가 조명을 들고, 무대 중앙에서 한 걸음 물러섰소.”
푸리나는 그 창을 오래 보았다.
그때 무대 뒤편에서 하나씩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알토였다.
기록의 별빛이 작게 떠올랐다.
“기록은 주인공을 대신하지 않아.”
알토는 말했다.
“다만 그가 선택한 흔적을 남길 뿐이지.”
아카식의 기척도 있었다.
웃음 섞인, 그러나 차가운 기록자의 목소리.
“꿈이라도 기록할 만하네.
다만 기록자가 결말을 대신 쓰면, 그건 기록이 아니지.”
다음은 미하일라였다.
자주빛 활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네 조명이 화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녀의 목소리는 황제답게 단단했다.
“화살은 내 몫이다. 네 몫은 그것이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착각하지 않게 비추는 것이다.”
요안나가 그 옆에서 작게 말했다.
“저도 몰랐어요.”
그녀는 푸리나를 보았다.
“그래도 말했어요. 모른다고.”
푸리나의 입술이 떨렸다.
“푸리나도 말해도 돼요.”
요안나가 웃었다.
“모른다고.”
민다우가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무대는 국가가 아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민다우가스는 이어 말했다.
“그러나 국가는 때때로 무대가 필요하다. 백성이 자기가 무엇을 지키는지 잊었을 때, 무대는 칼보다 오래 남는다.”
그 옆에서 아스테르다스가 청흑빛 궤적을 남기며 웃었다.
“어디에 떨어질지는 네가 정해.”
그가 말했다.
“조명 아래든, 조명 밖이든.”
순간 그의 발밑에 낙점이 생겼다.
《발을 디디다》.
“남이 정한 곳에 떨어질 필요는 없잖아.”
라이자의 은빛이 무대 한편에 피어났다.
성은의 꽃.
그녀는 푸리나를 보고 말했다.
“이름을 주는 것과, 이름을 대신 정하는 건 달라.”
그 옆에서 소피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극장도 재료네요.”
푸리나가 소피아를 보았다.
소피아는 작은 도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문제는 뭘 만들지 정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거고요.”
벨라의 낮은 목소리가 뒤따랐다.
“보이느냐.”
그녀는 무대와 객석, 문과 길을 모두 가리켰다.
“왕관도, 극장도, 버티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있다.”
다음은 알렉산드리나였다.
새벽빛의 차르는 푸리나를 똑바로 보았다.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그렇다면 연출자라면 누구보다 배우의 자유를 두려워해야겠지.”
가브리엘라가 그 곁에서 고개를 숙였다.
“왕도를 걷는 이가 왕이듯, 무대에 서는 이가 배우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따뜻했다.
“부르는 자가 배우를 소유하지는 않습니다.”
레플리카가 말했다.
“내가 배우가 된 건 누가 역할을 줘서가 아니야.”
그녀는 자기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내가 그 역할을 다시 썼기 때문이야.”
스토얀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차갑게 웃었다.
“고통을 무대로 꾸미는 건 쉽지.”
그 말은 칼처럼 들어왔다.
“고통받는 쪽이 아니라면.”
푸리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호흐마이스터가 나타났다.
그녀의 어깨에는 아직 죄의 갑주가 잔흔처럼 남아 있었다.
“죄는 아름답게 입힐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아름답다고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아스트리트가 그 옆에 섰다.
금목서 잎이 하나 떨어졌다.
“떠밀린 배역도 다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푸리나를 보았다.
“하지만 선택했다는 말로, 떠밀렸던 사실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슈샤니크가 걸어 나왔다.
그녀의 뒤에는 닫힌 여관의 문이 있었다.
문은 아직 닫혀 있었다.
그러나 그 앞에는 식지 않은 찻잔과 작은 등불이 있었다.
슈샤니크는 푸리나를 향해 말했다.
“폐하.”
그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대는 제 닫힌 여관 앞에서 조명을 낮추는 법을 배웠습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슈샤니크가 물었다.
“이제 묻겠습니다.”
잠시 침묵.
“그대 자신에게도 조명을 낮출 수 있습니까?”
그 말에 푸리나는 무너질 뻔했다.
자기 자신에게 조명을 낮춘다는 것.
자기 극장을, 자기 박수를, 자기 대단원을 덜 아름답게 보는 것.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자신이 모두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푸리나는 가면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나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모두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싶었어.”
그 말은 어린 고백처럼 흘러나왔다.
“누구도 배경이 되지 않았으면 했어. 누구도 이름 없이 지나가지 않았으면 했어. 누군가의 고통이 그냥 고통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했어. 누군가의 꿈이 비웃음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했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서 무대를 만들었어.”
바실리오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 무대는 네 것이 되었지.”
푸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맞아.”
무대가 조용해졌다.
푸리나가 인정했다.
“내 극장은 위험해.”
바실리오의 미소가 커졌다.
하지만 푸리나는 계속 말했다.
“나는 사람들의 소망을 너무 쉽게 장면으로 보고, 상처를 너무 쉽게 대사로 들을 수 있어. 때로는 내가 비추고 싶은 방식으로 조명을 잡고 싶어. 아름답게 끝내고 싶어. 박수받고 싶어.”
그녀는 가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게 누군가에게는 감옥이 될 수 있어.”
그 말이 끝나자, 극장 전체가 한 번 흔들렸다.
그것은 붕괴가 아니었다.
정직해지는 소리였다.
바실리오가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극장을 닫아라.”
푸리나는 눈을 감았다.
8막의 닫힌 여관이 떠올랐다.
슈샤니크의 문.
그 문 앞의 찻잔.
그레이의 등불.
아레의 바다.
하융의 창.
요안나의 “모른다”.
죠니의 “멀리 돌아가”.
푸리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니.”
그녀가 말했다.
“닫지 않을 거야.”
바실리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푸리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내가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조명을 꺼버리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가면을 가슴에 안았다.
“나는 극장주일 거야.”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하지만 모두의 결말을 쓰는 극작가는 되지 않을 거야.”
그 순간, 푸리나의 안쪽에서 별빛 하나가 떠올랐다.
절망 속에서, 아직 바라볼 수 있는 별.
《희극: 저 별을 향하여!》.
그것은 웃으라는 명령이 아니었다.
비극을 부정하는 조명도 아니었다.
해피엔딩을 강요하는 힘도 아니었다.
다만 무너진 배우의 눈앞에, 아직 바라볼 별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걸어두는 빛이었다.
푸리나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웃어, 라고 말하지 않을게.”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별빛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아직 바라볼 별이 있어.”
그 말과 함께, 극장이 바뀌기 시작했다.
금빛 커튼이 낮아졌다.
너무 높던 객석이 내려왔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경계가 넓어졌다.
그리고 극장 뒤편에 문이 생겼다.
무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
길로 이어지는 문.
푸리나는 손을 들었다.
《세상은 무대요, 모든 이는 주인공일지니!》.
이번에는 선언이 달랐다.
예전처럼 모두를 중앙으로 끌어올리는 힘이 아니었다.
푸리나는 천천히 말했다.
“세상은 무대야.”
그녀는 객석을 보았다.
무대 위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문밖 길을 보았다.
“하지만 내가 모두의 막을 열 권리는 없어.”
그녀는 조명을 낮췄다.
낮추었지만 끄지는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자기 막을 올릴 때 조명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뿐이야.”
그 순간, 배우 계약의 빛이 다시 떠올랐다.
《여기 세기의 대극작가와 만난 위대한 주인공에 대하여》.
푸리나는 그 빛을 자기 손 안에서 다시 쥐었다.
“배우는 소유물이 아니야.”
그녀는 말했다.
“무대에 오른 사람은, 자기 막을 끝낸 뒤 자기 길로 나갈 수 있어야 해.”
바실리오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 네 극장은 무엇이 남지?”
푸리나는 대답했다.
“여관.”
무대가 잠시 멈췄다.
“잠시 쉬고, 자기 이야기를 보고, 필요하면 다시 나가는 곳.”
그녀는 웃었다.
작지만 진심 어린 웃음이었다.
“그게 내 극장이야.”
그리고 마침내 군상극이 시작되었다.
《군상극: 아르메니아의 노래》.
처음에는 작은 선율이었다.
킬리키아의 성벽 아래에서 누군가가 빵을 굽는 소리.
항구에서 상인이 흥정하는 소리.
기사들이 말안장을 조이는 소리.
그레이가 장부를 넘기는 소리.
죠니가 낮게 농담을 삼키는 소리.
아레의 침묵.
하융의 창호.
레이튼의 질문.
백성들의 웃음.
피난민의 울음.
아이의 노래.
그 노래는 아르메니아만의 승리를 찬양하지 않았다.
아르메니아가 살아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있게 된, 다른 사람들의 꿈까지 품었다.
그러나 그때 그레이가 펜을 들었다.
“한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녀는 조명을 나누었다.
누구도 합창 속에 묻히지 않게.
그리고 그 군상극은 더 커졌다.
국가 단위의 서사로.
《세기극: 아르메니아 대서사시》.
킬리키아 아르메니아가 무대 전체에 떠올랐다.
성벽.
항구.
여관.
극장.
도로.
산맥.
묘지.
시장.
성당.
가신들의 집무실.
배우들의 대기실.
수많은 군상극에서 발생한 소망과 선택의 흐름이 하나의 거대한 국가 단위 서사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푸리나는 그 순간 가장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이 대서사시는 사람들을 삼키는 제목이 아니어야 했다.
바실리오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아름답군.”
그가 말했다.
“군상극을 국가의 대서사시로 묶는다. 결국 모든 사람의 삶은 네 아르메니아라는 제목 아래 편집되는 것 아닌가?”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르메니아는 그들을 삼키는 제목이 아니야.”
그녀는 손을 펼쳤다.
대서사시의 중심에 여관 문이 나타났다.
“그들이 쉬고, 노래하고, 다시 자기 막으로 나갈 수 있는 여관의 이름이야.”
세기극은 결말로 사람을 몰아넣지 않았다.
오히려 문을 만들었다.
들어오는 문.
쉬는 문.
나가는 문.
극장과 여관은 하나가 되었다.
그 다음에는 앙코르가 왔다.
《재연극: 앙코르》.
하지만 죽은 자를 끌어내지 않았다.
과거의 배우들을 강제로 다시 세우지도 않았다.
앙코르는 사람을 부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남긴 박자와 선택의 감각을, 지금 무대 위에 조용히 되돌렸다.
알토의 기록하는 손.
미하일라의 활시위를 놓지 않는 호흡.
민다우가스의 냉정한 시선.
라이자의 은빛 이름.
알렉산드리나의 새벽을 향한 걸음.
호흐마이스터의 죄를 입은 어깨.
아스트리트의 고쳐 잡은 검로.
슈샤니크의 닫힌 문 앞에 놓인 차.
요안나의 작은 손.
개척되지 않은 길의 첫 발.
그 잔향들이 푸리나를 지나갔다.
푸리나는 그것을 붙잡지 않았다.
그저 들었다.
아레가 고개를 들었다.
무대 아래 바다에서 수많은 작은 별들이 보였다.
무대에 오르지 못한 이름들.
푸리나는 그들을 향해 노래했다.
《재연극: 스러져간 별을 위한 세레나데》.
세레나데는 죽은 자를 무대 위에 세우지 않았다.
죽음을 취소하지도 않았다.
다만 스러진 별들이 남긴 빛을, 산 자들이 길에서 잊지 않도록 노래했다.
아레가 조용히 말했다.
“노래하거라.”
푸리나는 그녀를 보았다.
아레는 덧붙였다.
“다만 그들을 다시 무대 위에 세우지는 말거라.”
그레이도 말했다.
“이름은 제가 적겠습니다.”
잠시 침묵.
“노래는…… 너무 오래 붙잡지 말아주세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노래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박수가 찾아왔다.
박수는 처음에는 작았다.
그리고 점점 커졌다.
바실리오는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그 박수는 네 것이 될 수 있다.”
푸리나는 박수를 들었다.
아름다웠다.
달콤했다.
위험했다.
그녀는 한 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을 내렸다.
《그대여, 박수를! 대단원의 막이 올랐으니!》.
박수가 터졌다.
그러나 이번 박수는 푸리나에게 몰리지 않았다.
박수는 흩어졌다.
무대 위에 서고, 내려가고, 다시 자기 길로 걸어간 모든 사람에게 돌아갔다.
기록한 자에게.
망설인 자에게.
칼을 든 자에게.
이름을 얻은 자에게.
새벽을 향한 자에게.
죄를 인정한 자에게.
책임을 고른 자에게.
거울 앞에 선 자에게.
평화를 말한 자에게.
길을 걸은 자에게.
그리고 무대에 오르지 못한 이름들에게도.
박수는 커튼콜이 아니었다.
배웅이었다.
푸리나는 무대 중앙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그녀의 왕좌가 아니었다.
여관의 홀 같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
잠시 머무는 곳.
다시 나가는 곳.
바실리오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는 푸리나를 보았다.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선택하지?”
푸리나는 세히스문도의 가면을 들었다.
열 단어가 빛났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거울.
평화.
길.
푸리나는 마지막 빈자리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조명을 켤 거야.”
그녀는 극장을 보았다.
“하지만 걸어 나오는 건, 그대의 몫이야.”
마지막 단어가 새겨졌다.
선택.
가면이 완성되었다.
아직.
망설임.
칼.
이름.
새벽.
죄.
책임.
거울.
평화.
길.
선택.
바실리오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꿈은 깨어나면 사라진다.”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좋은 꿈은 깨어난 뒤에도, 조금은 남아.”
바실리오는 사라졌다.
극장이 조용해졌다.
그때 무대 가장 뒤편에 문 하나가 열렸다.
그 문 너머에는 여관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여관.
그리고 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여관의 성좌.
그는, 혹은 그 모습은, 오늘은 믿음직한 여관지기처럼 보였다.
잔잔한 눈.
과장 없는 미소.
문 앞에는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여관좌는 푸리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극장주.”
푸리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관좌는 부드럽게 말했다.
“문을 여는 것도, 닫는 것도, 손님의 몫입니다.”
찻잔에서 김이 올랐다.
“여관지기는 다만 불을 꺼뜨리지 않을 뿐이지요.”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그럼 저는?”
여관좌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오늘의 당신은 여관지기이기도 했고, 배우이기도 했고, 손님이기도 했습니다.”
푸리나는 가면을 내려다보았다.
“복잡하네요.”
“좋은 극은 대개 그렇지요.”
그 말에 푸리나는 결국 웃었다.
그때 여관 안쪽에서 부드러운 향이 흘러나왔다.
포도와 흙과 저녁빛의 향.
타마르 여왕이 문 안쪽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죽은 자의 여왕.
안식농원의 주인.
그녀는 느릿하게 웃었다.
“꿈은 깨어나기 때문에 꿈이지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달콤했다.
“그러나 깨어난 뒤에도 향이 남는 꿈이 있답니다.”
푸리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타마르는 푸리나의 가면을 보았다.
“그대의 극은 그런 꿈이었을까요?”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요안나의 말이 떠올랐다.
모른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
푸리나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타마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아직 포도는 익어가겠지요.”
푸리나는 무대 쪽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잔향은 남아 있었다.
알토의 기록.
죠니의 찰나.
그레이의 등불.
아레의 바다.
하융의 창.
레이튼의 질문.
슈샤니크의 닫힌 문.
요안나의 평화.
개척의 성좌의 흰 여백.
그리고 푸리나 자신의 조명.
푸리나는 세히스문도의 가면을 천천히 무대 중앙에 내려놓았다.
더 이상 쓰지 않았다.
그러나 버리지도 않았다.
그것은 오늘의 꿈이었고, 질문이었고, 답이 아니었다.
푸리나는 객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대여, 박수를.”
그녀는 말했다.
“대단원의 막이 내렸으니.”
잠시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하지만 삶의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커튼이 내려왔다.
이번에는 푸리나가 커튼을 붙잡지 않았다.
내려가게 두었다.
막이 닫혔다.
박수는 이어졌다.
그러나 그 박수는 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을 향해,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