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79여관◆zAR16hM8he(ca47ad90)2026-05-12 (화) 20:27:56
《한여름 밤의 군주들》

2장 개정본. 숲으로 들어간 왕관들

숲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무대장치였다.
나무판을 세워 만든 줄기, 푸른 천을 겹쳐 만든 잎사귀, 은빛 종이로 접은 별, 배우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남겨둔 좁은 통로들.

그러나 푸리나가 막을 올린 뒤, 그 모든 것은 조금씩 달라졌다.

나무판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종이별은 등불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은 빛을 품기 시작했다.
무대 뒤편에 걸린 푸른 천은 바람도 없는데 천천히 흔들렸고, 바닥에 뿌려둔 나뭇잎에서는 젖은 흙냄새가 올라왔다.

관객석의 아이 하나가 속삭였다.

“진짜 숲 같아.”

그레이는 그 말을 듣고 무대 지지대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진짜 숲이면 곤란합니다.”

죠니는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미 반쯤 그런 것 같은데.”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내가 말 안 해도 푸리나가 할걸.”

무대 위에서 푸리나가 바로 외쳤다.

“자, 숲이 열렸습니다!”

죠니는 그레이를 보았다.

“봤지?”

그레이는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보았습니다.”

무대 중앙의 푸리나는 퍽의 짧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등에 단 요정 날개는 조금 삐뚤어져 있었지만,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삐뚤어진 날개가 그녀에게 더 어울렸다.

그녀는 손에 작은 붓을 들고 있었다.

붓 끝에는 금빛도, 붉은빛도, 검은빛도 아닌 이상한 색이 묻어 있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장미빛 같기도 했고, 새벽빛 같기도 했고, 누군가 막 웃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눈빛 같기도 했다.

레이튼이 무대 한쪽, 숲의 문지기 자리에서 말했다.

“폐하, 그 붓은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아주 자랑스럽게 붓을 들어 보였다.

“사랑의 묘약!”

그레이가 객석 아래에서 즉시 말했다.

“안 됩니다.”

푸리나는 곧장 말을 바꿨다.

“사랑의 묘약처럼 보이는 안전한 무대용 물감!”

“그것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이름을 너무 빨리 붙이지 않는 편이 좋겠군요. 사랑인지, 착각인지, 혹은 자기 자신을 잠시 다른 각도에서 보게 만드는 장치인지는 아직 묻지 않았으니까요.”

푸리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맞아! 그거야!”

그레이가 말했다.

“폐하, 방금 레이튼 경의 설명으로 즉석 승인하신 겁니까?”

“아니야.”

푸리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예술적으로 승인했어.”

죠니가 낮게 말했다.

“그게 더 나빠.”

하지만 이미 늦었다.

푸리나는 붓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 순간 무대 위의 숲길들이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했다. 통로는 원래 세 개였는데, 어느새 다섯 개가 되었고, 조금 뒤에는 다시 두 개로 줄었다. 객석에서는 똑같은 무대를 보고 있는데, 무대 위의 배우들은 서로 다른 숲을 걷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숲으로 들어간 것은 민다우가스였다.

그는 배우용으로 준비된 짙은 녹색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왕관은 없었지만, 왕관이 없다고 해서 그가 군주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숲의 그림자와 어울려, 오래전 피 묻은 숲속에서 부족들을 하나로 묶은 대공처럼 보였다.

다만 문제는 그의 손에 들린 소품이었다.

작은 하프였다.

민다우가스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무기인가?”

푸리나가 숲 뒤에서 말했다.

“악기야!”

“현을 끊어 덫으로 쓸 수는 있겠군.”

“연주하라고 준 거야!”

“연주는 사기를 올린다. 그 점에서는 군사용이다.”

푸리나는 잠시 침묵했다.

“좋아, 틀린 말은 아니네!”

민다우가스는 하프를 한 번 튕겨 보았다.

소리는 엉망이었다.

그는 크게 웃었다.

“하하! 숲의 몽상가 왕이라더니, 백성들이 들으면 반란을 일으키겠군.”

푸리나가 말했다.

“반란까지는 아니고 박수는 덜 나오겠지!”

“박수가 적으면 사기 문제가 생긴다.”

그는 하프를 다시 들었다.

“좋다. 그렇다면 배워야겠군. 왕이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계산에 들어간다.”

그 말은 호방했다.
왕답고, 넓고, 농담처럼 열려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은 늘 그렇듯 날카롭게 닫혔다.

숲의 다른 편에서는 벨라 4세가 이미 가짜 나무들을 옮기고 있었다.

“이쪽은 비어 있다.”

그녀는 낮고 짧게 말했다.

“피난민이 몰리면 빠져나갈 곳이 없다. 통로를 하나 더 열어라.”

시종 둘이 당황했다.

“폐하, 그건 무대 장치라서……”

“그러니 지금 고친다.”

벨라는 직접 나무판 하나를 옆으로 밀었다. 그 나무판 뒤에는 원래 없던 좁은 길이 드러났다. 푸리나의 [여관:극장]이 숲을 부풀린 탓인지, 아니면 벨라가 길을 찾아낸 탓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레이가 무대 아래에서 외쳤다.

“그 통로는 안전 확인이 안 됐습니다!”

벨라는 고개만 살짝 돌렸다.

“그럼 확인한다. 무너지는 길은 닫고, 살아남는 길은 남긴다.”

그녀는 손으로 바닥의 흙을 짚었다.
진짜 흙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닿은 부분에서 잠시 성벽의 결계처럼 흐릿한 빛이 얽혔다.

“숲이라 해도 피난처는 필요하다. 길 잃은 아이와 패잔병은 같은 방식으로 떤다.”

그 말에 객석의 몇몇 헝가리 사절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며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좋네.”

죠니가 옆에서 물었다.

“뭐가?”

“희극인데도 진짜가 나오는 거.”

죠니는 무대를 보았다.

“그게 네가 벌인 일이잖아.”

“그렇지!”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자랑스러워!”

“그건 알겠어.”

미하일라는 숲의 중앙부에 서 있었다.

그녀의 배역은 요정 여왕.

의상 담당은 그녀에게 자주빛과 은빛이 섞인 얇은 망토를 입히려 했다. 하지만 미하일라는 그 망토를 한 번 펼쳐보고, 천의 결보다 먼저 어깨와 팔꿈치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팔을 당기기 어렵다.”

의상 담당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폐하, 활을 쏘실 예정이십니까?”

“예정은 없다.”

미하일라는 망토를 다시 건넸다.

“그러나 예정이 없다는 것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은 다르다.”

결국 그녀는 장식은 최소화하고, 움직일 수 있는 형태의 의상만 걸쳤다.
자주빛 천은 과하지 않게 어깨에 내려앉았고, 은빛 장식은 별이라기보다 칙령의 문장처럼 보였다.

푸리나는 조금 아쉬워했다.

“요정 여왕은 좀 더 반짝여야 하는데.”

미하일라는 그녀를 보았다.

공적인 얼굴이었다.
우아하고, 절제되어 있고, 황제의 예법이 서늘하게 빛나는 얼굴.

“반짝임은 표적이 된다, 푸리나 헤툼.”

그리고 잠시 뒤, 아주 작게 덧붙였다.

“다만 오늘 밤의 표적이 박수라면, 짐도 조금은 양보하겠다.”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그거 방금 농담이야?”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요안나는 옆에서 작게 웃었다.

“잘 어울리세요, 폐하.”

미하일라는 그녀를 보았다.

요안나는 자신의 배역답게 작은 별 모양 등불을 들고 있었다. 숲의 아이. 평화의 별을 든 자.
그 모습은 지나치게 어울렸다.

“그대는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요안나.”

“쉬워 보여서 그렇지, 쉽지는 않아요.”

요안나는 등불을 조금 들어 올렸다.

“이 작은 별 하나로 전쟁을 막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어두운 숲에서 손을 잡을 이유는 될 수 있어요.”

미하일라는 그 말을 듣고 활이 없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을 잡는 동안 적이 쏘면?”

“그때는 폐하께서 막아주시겠죠.”

미하일라는 한숨처럼 짧은 숨을 내쉬었다.

“나를 평화의 장식으로 쓰려는군.”

“아니요.”

요안나는 미소 지었다.

“평화가 살아남기 위한 기둥으로요.”

그 말은 미하일라를 잠시 멈추게 했다.

그녀는 요안나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황제의 말투가 아니라, 조금 더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려운 부탁을 쉽게 하는구나.”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

미하일라는 짧게 웃었다.

“그렇다면 짐은 오늘 밤, 요정 여왕이 아니라 기둥 노릇을 해야겠군.”

“기둥도 꽃장식을 달 수 있어요.”

“루나리아가 들으면 기뻐할 말이다. 라플리는 비웃겠지.”

요안나는 더 크게 웃었다.

미하일라는 다시 숲을 보았다.

“좋다. 오늘 밤의 칙령은 칼끝이 아니라 등불 아래에 두겠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무대 위의 숲이 조용해졌다.

“짐은 이 숲에 칙한다.
오늘 밤, 칼은 칼집 안에서 꿈을 꾸고, 활은 별 아래에서 숨을 고르라.
길 잃은 자는 낮은 등불을 따르고, 다친 자는 먼저 앉아라.
평화는 장식이 아니다. 질서가 있어야 살아남는다.”

관객석의 웃음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무거워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희극의 숲이 잠시 황제의 말에 기대어 곧게 섰다.

요안나는 별등불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 저는 그 등불을 들겠습니다.”

미하일라는 낮게 대답했다.

“떨어뜨리지 마라.”

“떨어뜨리면요?”

“주워서 다시 들면 된다.”

잠시 침묵.

요안나가 웃었다.

“그건 평화로운 명령이네요.”

“오늘 밤은 그런 배역이라고 들었다.”

푸리나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며 붓을 빙글 돌렸다.

“좋아. 아주 좋아.”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폐하, 붓을 내려놓으십시오.”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그래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숲의 다른 길에서는 라이자가 이미 배역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녀는 은꽃 요정이었다.

정확히는, 무대 의상으로 준비된 은색 종이꽃을 머리에 얹은 상태였는데, 이미 그 종이꽃은 조금씩 진짜 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레이가 그것을 보고 눈을 좁혔다.

“라이자 전하.”

“응?”

“그 꽃, 혹시 변성시키셨습니까?”

“조금만.”

“얼마나 조금입니까?”

“꽃잎 끝부분만.”

그레이는 꽃을 보았다.
꽃 전체가 반짝이고 있었다.

“끝부분의 정의가 저와 다르신 것 같습니다.”

라이자는 환하게 웃었다.

“괜찮아. 무겁지 않게 했어. 모두가 하나씩 달아도 목 안 아플 정도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숲속 요정 역할을 맡은 아이들이 라이자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저도요!”

“저도 꽃 주세요!”

“저는 큰 거!”

라이자는 기뻐하며 손을 펼쳤다.

“물론이지! 다들 하나씩 가져. 아니, 두 개씩 가져도 돼!”

그레이가 급히 올라오려 했지만, 죠니가 말했다.

“늦었어.”

“막아야 합니다.”

“이미 꽃밭이야.”

정말로 그랬다.

라이자의 주위에는 은빛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무대 바닥에 깔린 천 사이에서 작은 꽃송이들이 올라왔고, 아이들은 그것을 손에 들고 웃었다.

호흐마이스터는 그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었다.

그녀는 용살 기사 역할로 검은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무대용 갑주라고 했지만, 그녀가 입으니 장난감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죄악의 갑주가 잠시 잠든 것처럼 보였다.

라이자가 그녀를 발견했다.

“호흐마이스터!”

호흐마이스터는 아주 미세하게 몸을 굳혔다.

라이자는 은꽃 하나를 들고 달려왔다.

“이거!”

“전투 중 장식은……”

“전투 아니야. 연극이야.”

호흐마이스터는 대답하지 못했다.

라이자는 그녀의 갑주 끈 사이에 꽃을 조심스럽게 꽂았다.

“이 정도는 방해 안 되지?”

호흐마이스터는 꽃을 내려다보았다.

“시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움직임도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럼 괜찮네!”

“다만 적에게 위치를 노출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적은 관객이잖아.”

호흐마이스터는 관객석을 보았다.

사절, 기사, 아이들, 피난민, 성직자.
그들의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창이나 화살이 아니었다.

그녀는 꽃을 빼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 말은 짧았다.

라이자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잘 어울려.”

호흐마이스터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 평가는 전술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분은 좋잖아?”

호흐마이스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라이자는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한편 알렉산드리나는 무대 뒤쪽에서 종이 왕관을 쓰고 있었다.

가짜 왕.

그녀의 배역은 희극적이어야 했다.
종이 왕관, 나무 홀, 너무 큰 망토,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장화.

하지만 알렉산드리나가 그것을 걸치는 순간, 우스꽝스러워야 할 배역은 이상하게도 진지해졌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종이 왕관의 각도를 맞췄다.

“조금 삐뚤어졌군요.”

푸리나가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게 매력인데?”

“삐뚤어진 왕관은 조롱거리입니다.”

“하지만 희극이잖아.”

알렉산드리나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대답했다.

“희극에서도 왕은 왕처럼 서야 합니다.”

그녀는 종이 왕관을 바로잡았다.

“가짜 왕이 우스운 이유는 가짜라서가 아닙니다. 진짜 왕도 우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들키기 때문이죠.”

푸리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이 배역 마음에 들어?”

“예.”

알렉산드리나는 웃었다.

“진짜 왕관은 피를 요구합니다. 종이 왕관은 연기를 요구하죠. 오늘 밤은 후자가 조금 더 친절하군요.”

“그래도 무겁지?”

“가볍습니다.”

그녀는 나무 홀을 들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합니다. 가벼운 것은 쉽게 찢어지니까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건 분명히 좋은 장면이 될 거야.”

“폐하.”

그레이가 무대 아래에서 불렀다.

“장면이 좋아지기 전에, 일정이 밀리고 있습니다.”

“알았어! 이제 숲속 첫 장면 시작!”

푸리나는 다시 무대 중앙으로 뛰어나갔다.

그녀가 붓을 휘두르자, 숲의 조명이 흔들렸다.
각 군주들은 정해진 위치에 섰다.
관객석은 조용해졌다.

레이튼이 숲의 문지기 역할로 앞으로 나왔다.

“오늘 밤, 숲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열립니다.”

그는 지팡이를 살짝 들었다.

“왕관을 내려놓은 군주는,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합니까?”

그 순간 숲속에서 푸리나가 튀어나왔다.

“정답! 아무도 모른다!”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폐하, 정답을 너무 빨리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모른다는 건 정답이 아니니까 괜찮아!”

“그렇다면 질문은 살아 있겠군요.”

푸리나는 붓을 들고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자, 그럼 시작하자. 길 잃은 왕관들의 숲!”

음악이 시작되었다.

처음 등장한 것은 민다우가스였다.

그는 하프를 들고 숲길을 걸었다. 대본상 그는 별을 사랑하는 몽상가 숲의 왕이었다.
그러나 민다우가스는 첫 대사부터 대본을 반쯤 뜯어고쳤다.

“아, 별들이여!”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너희는 아름답다. 그리고 방위 확인에도 유용하다.”

객석이 웃었다.

민다우가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길 잃은 자는 별을 보고 노래할 수도 있고, 행군 방향을 정할 수도 있다. 현명한 왕은 둘 다 한다.”

푸리나가 무대 뒤에서 속삭였다.

“좋아, 역시 자기식으로 바꿨어.”

레이튼이 조용히 답했다.

“오히려 더 본질에 가까워졌군요.”

민다우가스는 하프를 한 번 튕겼다.
여전히 엉망인 소리가 났다.

그는 활짝 웃었다.

“음악은 실패했다. 그러나 실패를 기록하면 다음 전투에서는 덜 틀린다.”

아카식이 객석에서 박수를 쳤다.

“훌륭해! 실패를 이렇게 실용적으로 말하는 몽상가는 귀하지!”

알토는 옆에서 말했다.

“몽상가가 아니라 작전참모 같습니다.”

“그 점이 재미있잖아.”

다음 장면은 미하일라의 등장.

그녀는 숲의 여왕으로 나와야 했다.
대본에는 “꽃과 달빛의 이름으로 이 숲에 평화를 명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미하일라는 대본을 보았다.

잠시 눈을 내리깐 뒤,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그 걸음은 전장에 나서는 전사의 것이 아니라, 궁정 중앙에 서는 황제의 것이었다.
자주빛 천이 흔들렸고, 은빛 장식이 낮은 별처럼 빛났다.

그녀는 대본을 접었다.

그리고 숲을 향해 말했다.

“꽃과 달빛의 이름이라.”

짧은 침묵.

“나쁘지 않다. 다만 짐의 입에는 조금 가볍구나.”

관객석에서 조용한 웃음이 흘렀다.

미하일라는 고개를 들었다.

“짐은 이 숲에 칙한다.
오늘 밤, 칼은 칼집에서 꿈을 꾸고, 활은 별 아래에서 숨을 고르라.
길 잃은 자는 낮은 등불을 따르고, 다친 자는 먼저 앉아라.”

그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하지만 숲의 잎사귀들이 그 말에 맞춰 정렬되는 듯했다.

“평화는 장식이 아니다.
질서가 있어야 살아남는다.”

그 말에 웃음은 사라졌지만,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모두가 잠시, 이 요정 여왕이 실제로 숲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다.

요안나가 별등불을 들고 그녀 곁에 섰다.

“여왕님, 오늘 밤은 모두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에요.”

미하일라는 대본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싸우러 오지 않은 자들이 가장 자주 전장에 휘말린다.”

요안나는 등불을 들어 그녀의 손끝에 비췄다.

“그러면 길을 잃지 않게 해주세요.”

미하일라는 그 빛을 보았다.

“그것은 명령인가?”

“부탁이에요.”

미하일라는 잠시 침묵했다.

“부탁은 명령보다 어렵다.”

요안나는 웃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객석의 웃음이 조금 잦아들었다.
희극 속에 아주 얇은 진심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때 푸리나가 등장했다.

“그런 진지한 분위기에는 요정의 장난이 필요하지!”

그녀는 붓을 휘둘렀다.

금빛 물감 한 방울이 공중에서 튀었다.
그것은 원래 요정 가루처럼 보이기만 해야 했다.

하지만 푸리나가 푸리나였고, 무대가 [여관:극장]이었으며, 이 숲은 이미 반쯤 꿈이었다.

물감은 허공에서 빛이 되어 갈라졌다.

그리고 몇몇 군주들의 어깨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레이가 바로 일어섰다.

“폐하.”

푸리나는 굳었다.

“응?”

“방금 것은 예정에 없었습니다.”

“아주 조금 예정에 있었어.”

“얼마나 조금입니까?”

“내 마음속에?”

그레이는 눈을 감았다.

“그것은 예정이 아닙니다.”

죠니가 한 손으로 망치를 들었다.

“수습할까?”

푸리나는 재빨리 말했다.

“아직 아니야! 이건 좋은 사고야!”

“좋은 사고는 없어.”

“있어! 예술에는 있어!”

“그럼 예술이 문제네.”

하지만 이미 물감은 작동하고 있었다.

민다우가스의 눈앞에 숲이 다르게 보였다.

그는 보았다.

복수의 숲.
피 묻은 숲.
기사를 삼키는 숲.
그리고 그보다 더 안쪽, 아이들이 노래하고 늙은 사냥꾼이 불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만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이런 장난을 준비했나, 푸리나 여왕.”

푸리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금?”

“조금이라.”

민다우가스는 하프를 들었다.

“리투아니아의 숲은 복수만을 위해 자라지 않는다. 그건 맞다.”

그는 현을 한 번 튕겼다.
이번에는 소리가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복수를 잊은 숲은 다음 도끼질을 막지 못한다. 노래와 칼, 둘 다 필요하지.”

그는 크게 웃었다.

“좋다. 오늘 밤은 노래 쪽을 조금 배워보마. 칼은 이미 충분히 배웠으니.”

푸리나는 작게 안도했다.

미하일라에게도 물감이 닿았다.

그녀는 잠시 숲이 고요해지는 것을 느꼈다.

화살이 필요 없는 숲.
명령이 부드러워도 무너지지 않는 숲.
누군가가 칼을 들기 전에 손을 잡는 숲.

그것은 불가능한 풍경이었다.

미하일라는 불가능한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다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말하는 무책임을 싫어했다.

그녀는 요안나를 보았다.

“이 숲은 거짓이다.”

요안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무대니까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는다.”

“잠시 믿는 것도 힘이 될 때가 있어요.”

미하일라는 손을 들어 숲의 조명을 만졌다.
빛은 손가락 사이로 흩어졌다.

“전쟁 없이 끝나는 전쟁은 없다.”

“그럴지도 몰라요.”

요안나는 별등불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처럼 살 필요는 없겠죠.”

미하일라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황제의 얼굴이 잠시 물러나고, 가까운 사람 앞의 미하일라가 짧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말은 칙령으로 쓰기 어렵다.”

“노래로는 쓸 수 있어요.”

미하일라는 아주 작게 웃었다.

“싸우지 않는 명령이라니, 나를 골탕 먹이려는 자가 있다면 꽤 훌륭한 취향이다.”

요안나가 웃었다.

“푸리나 전하께서 좋아하시겠네요.”

“그렇겠지. 그러니 더 위험하다.”

그리고 미하일라는 숲을 보았다.

“좋다. 오늘 밤은 노래로 두자.”

라이자에게 닿은 물감은 더 빠르게 반응했다.

은꽃이 숲 전체로 퍼졌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꽃마다 작은 꿈이 맺혔다.

버려진 인형.
부서진 장난감.
다친 병사.
길 잃은 아이.
쓸모없다고 버려진 금속 조각.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은빛 생명.

라이자는 그것들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안아주고 싶었다.
늘 그랬다.

그때 호흐마이스터가 옆에서 말했다.

“전부 들 수는 없습니다.”

라이자는 그녀를 보았다.

“알아.”

“그런데도 들려고 하시겠군요.”

“응.”

호흐마이스터는 은꽃이 꽂힌 자기 갑주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면 언젠가 무너집니다.”

라이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웃었다.

“그럼 누군가가 나도 안아주면 되지.”

호흐마이스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라이자는 한 걸음 다가가 말했다.

“너도 포함해서.”

“저는 갑주를 입었습니다.”

“갑주도 차가우면 안아줄 수 있어.”

“전술적으로 의미가……”

“기분은 좋을 수 있잖아?”

호흐마이스터는 또 침묵했다.

그날 밤, 그녀는 유난히 자주 침묵했다.

알렉산드리나에게 물감이 닿았을 때, 종이 왕관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녀는 가짜 왕이었다.

하지만 숲은 그녀에게 여러 왕관을 보여주었다.

진짜 왕관.
피로 얻은 왕관.
태어나며 잃은 왕관.
흉내 내며 만든 왕관.
새벽빛 아래 스스로 벼려낸 왕관.

알렉산드리나는 웃었다.

“이 숲은 꽤 무례하군요.”

푸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예.”

알렉산드리나는 나무 홀을 세웠다.

“무례한 거울은 쓸모가 있습니다.”

그녀는 종이 왕관을 눌러 썼다.

“가짜 왕이라. 좋습니다. 오늘 밤만큼은 그 이름을 받아들이죠.”

그녀의 눈빛이 새벽처럼 밝아졌다.

“다만 관객들은 보게 될 겁니다. 가짜가 언제 진짜보다 더 오래 버티는지.”

스토얀카가 멀리서 그 말을 듣고 기묘하게 웃었다.

“꽃이 피겠군.”

레플리카가 낮게 말했다.

“피를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피가 아니라 개화야.”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불가리아의 숲은 잠시 검은 하늘과 새벽빛과 가시꽃이 함께 흔들렸다.

푸리나는 그 모든 장면을 보며 기뻐했다.

그러나 그레이는 그보다 조금 더 빠르게 위험을 보았다.

“폐하.”

“응?”

“물감 효과가 예상보다 깊습니다.”

“하지만 다들 잘하고 있잖아?”

“잘하고 있다는 것과 안전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죠니도 고개를 들었다.

“그레이 말이 맞아. 웃고는 있는데, 다들 자기 진짜 칼을 만지고 있어.”

푸리나는 숲을 보았다.

정말 그랬다.

미하일라는 활이 없는데도 손가락으로 활시위를 찾고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는 은꽃을 단 채 보이지 않는 용의 숨결을 듣고 있었다.
민다우가스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숲의 모든 퇴로를 계산하고 있었다.
벨라는 무대의 통로를 피난로로 바꾸고 있었다.
알렉산드리나는 종이 왕관을 쓴 채, 진짜 왕보다 단단히 서 있었다.

푸리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웃었다.

“그럼 다음 장면이 필요해.”

그레이가 물었다.

“무슨 장면입니까?”

푸리나는 객석 아래쪽, 가신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보았다.

죠니, 그레이, 레이튼, 하융.
그리고 아카식과 알토.

“장인극단.”

죠니가 바로 눈을 가늘게 떴다.

“싫어.”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번에는 알아. 절대 싫어.”

“군주들을 풍자하는 극중극이야!”

죠니는 한참 그녀를 보았다.

“너 진짜 외교 사고가 뭔지 모르는 거 아니야?”

“예술적 안전 오해라니까!”

알토가 조용히 말했다.

“그 표현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아카식은 매우 즐거워했다.

“나는 찬성. 왕관들이 자기 모습을 객석에서 보게 되는 장면이라니, 최고야.”

그레이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폐하. 각국 군주를 풍자하는 극중극은 외교적으로 매우 위험합니다.”

푸리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아주 잘해야 해.”

“그 문제가 아닙니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레이 양, 질문 자체는 가치가 있습니다.”

“레이튼 경까지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왕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오늘 밤의 숲에는 적절한 질문이지요.”

하융은 천천히 말했다.

“이미 실패한 가능성에서는 세 명이 퇴장했소.”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어떤 이유로요?”

“한 명은 모욕이라 여겼고, 한 명은 너무 웃다가 의자에서 떨어졌으며, 한 명은 자기가 풍자된 줄 모르고 박수를 쳤소.”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은 누구야?”

하융은 죠니를 보았다.

“그 가능성은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소.”

죠니는 푸리나를 보았다.

“봤지? 위험하대.”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하지만 셋 중 둘은 살아 있잖아!”

그레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안전 기준이 아닙니다.”

그 순간 여관의 성좌가 조용히 차를 내려놓았다.

“풍자는 칼과 닮았습니다.”

모두가 그를 보았다.

여관의 성좌는 부드럽게 말했다.

“손님을 다치게 할 수도 있고, 빵을 나누는 데 쓸 수도 있지요. 중요한 것은 어느 쪽으로 내미느냐입니다.”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그럼 해도 된다는 뜻이죠?”

“조심히 하라는 뜻입니다.”

“좋아! 조심히 할게!”

그레이가 아주 작게 말했다.

“그 말이 가장 무섭습니다.”

하지만 무대는 이미 다음 장면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숲은 더 깊어졌다.
군주들은 각자의 배역과 자기 자신 사이에서 조금씩 흔들렸다.

그리고 무대 뒤편, 장인극단으로 지명된 가신들은 서로를 보았다.

죠니가 먼저 말했다.

“내가 민다우가스 흉내는 안 낸다.”

하융이 조용히 말했다.

“이미 하는 가능성을 보았소.”

“잘했어?”

“꽤.”

“그럼 더 안 해.”

레이튼은 모자를 고쳐 썼다.

“저는 미하일라 폐하의 칙령을 수수께끼로 바꾸는 역할을 맡으면 되겠군요.”

그레이는 절망적으로 말했다.

“왜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알토는 짧게 말했다.

“포기하면 편합니다.”

아카식은 기록장을 펼쳤다.

“좋아. 극중극의 제목은 어떨까?”

푸리나는 무대 위에서 외쳤다.

“《왕관들이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짧은 비극》!”

죠니가 말했다.

“비극이라며.”

푸리나가 대답했다.

“웃기면 희극이야!”

민다우가스가 숲속에서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하하! 좋다! 어디 한번 넘어뜨려 보라!”

그는 하프를 어깨에 걸쳤다.

“다만 왕을 넘어뜨릴 때는, 그 뒤에 누가 왕관을 주울지도 생각해야 한다!”

벨라는 무대 반대편에서 낮게 말했다.

“넘어진 자를 일으킬 손도 준비해야 한다.”

미하일라는 조용히 덧붙였다.

“그리고 넘어짐이 사고인지, 음모인지, 운명인지를 구분해야겠지.”

요안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번 희극은 꽤 안전하겠네요.”

미하일라는 그녀를 보고 낮게 말했다.

“그대의 안전 기준은 가끔 짐을 불안하게 한다.”

호흐마이스터는 은꽃을 단 채 말했다.

“안전한 희극은 없습니다.”

라이자는 환하게 웃었다.

“그래도 꽃은 있어!”

타마르는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황혼도 있답니다.”

푸리나는 그 모든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무대 중앙에서, 한여름 밤의 숲을 향해 크게 외쳤다.

“좋아! 그럼 다음 막!”

숲의 별들이 흔들렸다.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소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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