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84여관◆zAR16hM8he(ca47ad90)2026-05-12 (화) 22:30:46
《한여름 밤의 군주들》

6장. 커튼콜 전에 들른 여관

연회가 끝나갈 무렵, 밤은 아주 조용해졌다.

처음에는 축제의 소리가 있었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
아이들이 은꽃을 들고 뛰어다니는 소리.
민다우가스의 하프가 또 한 번 끔찍한 음을 내고, 벨라가 짧게 “아직이다”라고 평하는 소리.
라이자가 웃고, 호흐마이스터가 “전술적으로 문제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소리.
푸리나가 또 무언가를 제안하려다가 그레이의 시선에 입을 다무는 소리.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모든 소리는 하나씩 낮아졌다.

아이들은 잠들었다.
기사들은 잔을 내려놓았다.
군주들은 다시 각자의 왕관을 챙겼다.
은꽃은 몇 송이만 희미하게 빛났다.

그리고 연회장 한가운데에는, 처음 무대를 열 때 썼던 작은 막이 다시 내려와 있었다.

푸리나는 그 막 앞에 섰다.

이번에는 요정 날개도 없었다.
손에 붓도 없었다.
푸른 무대관만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그녀는 잠시 객석을 보았다.

왕과 여왕들.
황제와 차르들.
성좌와 대리자들.
기사와 가신들.
그리고 오늘 밤만큼은 모두가 손님이었던 사람들.

푸리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럼.”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낮았다.

장난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더 부드러웠다.

“오늘 밤의 공연, 《한여름 밤의 군주들》은 여기서 막을 내립니다.”

그 말에 연회장 안의 소리가 잦아들었다.

푸리나는 양팔을 살짝 펼쳤다.

“왕관을 벗어보았고, 배역을 입어보았고, 웃었고, 조금 찔렸고, 조금 들켰고, 아주 조금은 쉬었습니다.”

죠니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주 조금이 아니라 꽤 찔렸지.”

그레이가 낮게 말했다.

“조용히 하십시오.”

푸리나는 들은 듯 웃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겠지요.”

그녀는 군주들을 바라보았다.

“리투아니아의 숲은 여전히 침략자를 기억할 것이고, 헝가리의 성벽은 계속 쌓여야 할 것이며, 니케아의 자주빛 왕관은 아직 피와 평화 사이에서 흔들릴 것입니다.”

미하일라는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요안나는 별등불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보헤미아의 은꽃은 누군가를 안으려 할 것이고, 튜튼의 갑주는 여전히 죄를 입을 것이며, 불가리아의 새벽과 검은 하늘과 가시꽃은 아직 같은 하늘 아래에서 싸우겠지요.”

레플리카, 알렉산드리나, 스토얀카는 각자 다른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멈추지 않았다.

“조지아의 황혼은 죽은 자를 기다릴 것이고, 기록의 성좌는 우리가 저지른 우스꽝스러운 대사까지 기록하려 할 것이며, 여관의 성좌는 또 조용히 차를 내어주겠지요.”

아카식은 웃으며 손을 들었다.

“우스꽝스러운 대사는 특히 중요해.”

알토가 말했다.

“선별은 필요합니다.”

“알토, 너무 냉정해.”

“문명 보존입니다.”

짧은 웃음이 퍼졌다.

푸리나는 그 웃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러니 오늘 밤의 극은 결론이 아닙니다.”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저 막간입니다.”

그 말에 몇몇이 고개를 들었다.

“전쟁과 전쟁 사이.
장례와 즉위 사이.
상처와 재건 사이.
왕관을 다시 쓰기 전, 잠시 들른 여관 같은 밤.”

푸리나는 미소 지었다.

“그러니 부디, 이 밤을 너무 대단한 해답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녀는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하지만 너무 하찮게 여기지도 마십시오.”

레이튼은 작게 웃었다.

“좋은 균형이군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우리는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나씩 챙겼습니다.”

그녀는 민다우가스를 보았다.

“복수의 불로 밥을 지을 수 있는가.”

민다우가스는 웃었다.

“하하. 쉽지 않겠군. 하지만 해볼 만한 계산이다.”

푸리나는 벨라를 보았다.

“무서움을 아는 손으로 성벽을 세울 수 있는가.”

벨라는 짧게 답했다.

“세운다.”

푸리나는 미하일라와 요안나를 보았다.

“활이 등불을 가리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미하일라는 낮게 말했다.

“해야 한다.”

요안나는 덧붙였다.

“같이요.”

푸리나는 라이자와 호흐마이스터를 보았다.

“모든 것을 안으려는 자도 안길 수 있는가. 죄를 입은 갑주에도 꽃이 남을 수 있는가.”

라이자는 환하게 웃었다.

“남을 수 있어!”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시야를 가리지 않는 한.”

라이자가 바로 말했다.

“그건 거의 긍정이야.”

푸리나는 불가리아의 세 차르를 보았다.

“고통은 줄일 것인가, 딛고 설 것인가, 피울 것인가.”

레플리카는 차분하게 말했다.

“줄일 것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딛고 서겠습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피울 거야.”

그 세 대답은 서로 화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숨어 있지도 않았다.

푸리나는 타마르를 보았다.

“막이 닫힌 자에게는 박수보다 방이 필요한가.”

타마르는 잔을 들어 올렸다.

“때로는 그렇답니다, 어린양.”

마지막으로 푸리나는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무대를 여는 자도, 언젠가 객석에 앉아 쉬어야 하는가.”

죠니가 바로 말했다.

“예.”

그레이도 말했다.

“예.”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답이 드문 질문이지만, 이번만큼은 답이 명확하군요.”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아니라고 대답한 가능성은 모두 피곤해 보였소.”

푸리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너희들, 이럴 때만 한마음이네.”

죠니는 말했다.

“좋은 팀이잖아.”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그러고는 웃었다.

“응. 좋은 팀이야.”

그녀는 다시 모두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니 이제, 커튼콜입니다.”

푸리나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가장 먼저 박수를 친 것은 아이들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은꽃을 한 손에 쥔 아이들이 손뼉을 쳤다.
그다음은 병사들.
그다음은 가신들.
그다음은 군주들.

박수는 아주 크지 않았다.

밤이 늦었고, 사람들은 지쳤고, 내일의 정치와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박수는 분명했다.

한여름 밤의 숲을 지나온 자들이, 서로의 배역을 보았다는 박수였다.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조금 반짝였다.

“고마워.”

그 한마디는 공적인 선언이 아니었다.

그냥 푸리나의 말이었다.


---

커튼콜이 끝나자, 여관의 성좌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여전히 여관지기처럼 차분했다.

손에는 작은 열쇠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열쇠들은 금도 은도 아니었다.
오래된 놋쇠와 나무 손잡이, 무늬가 다른 작은 열쇠들.

그가 말하자, 연회장의 공기가 조금 바뀌었다.

“손님 여러분.”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밤이 깊었습니다.”

푸리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무대를 여관의 성좌에게 넘겼다.

여관의 성좌는 고개를 숙였다.

“먼 길을 오신 분도 있고, 먼 길로 돌아가셔야 할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왕관을 다시 쓰고, 어떤 분은 갑주를 다시 조이고, 어떤 분은 장부를 다시 펼치고, 어떤 분은 활시위를 다시 확인하시겠지요.”

그는 천천히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그 모든 길을 제가 대신 걸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은 부드러웠다.

그래서 분명했다.

“여관지기는 손님의 여행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다만 손님이 길을 잃고 들어왔을 때, 불을 켜두고, 젖은 외투를 말릴 자리를 내어드리고, 다시 떠나실 때 문을 열어드릴 뿐입니다.”

민다우가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좋은 말이군.”

여관의 성좌는 살짝 웃었다.

“대공께서는 늘 말의 끝을 살피시는군요.”

“말끝에 함정이 많으니까.”

“오늘 제 말에는 함정보다 의자가 많습니다.”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하! 의자라. 좋다. 앉을 수 있는 함정이라면 나쁘지 않지.”

여관의 성좌는 이번에는 벨라를 보았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시는 분께는, 손을 녹일 난로가 필요합니다.”

벨라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다.”

“두려움을 아는 자가 성벽을 세운다고 하셨지요.”

“그렇다.”

“그러면 쉬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길.”

벨라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손에 든 작은 벽돌을 내려다보았다.

“노력하겠다.”

그 말은 짧았다.

그러나 소피아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여관의 성좌는 미하일라와 요안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활을 든 분과 등불을 든 분께는, 같은 복도의 다른 방을 준비해두겠습니다.”

미하일라가 물었다.

“같은 방은 아닌가.”

요안나가 그녀를 보았다.

여관의 성좌는 부드럽게 답했다.

“아직은 아니겠지요.”

그 대답에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미하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다.”

요안나도 작게 말했다.

“네. 아직은요.”

여관의 성좌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복도는 같습니다. 문을 열고 나와 서로의 등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요안나는 그 말에 미소 지었다.

미하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거절하지도 않았다.

여관의 성좌는 라이자를 보았다.

“모든 것을 안아주려는 손님께는 큰 소파가 필요하겠군요.”

라이자는 눈을 반짝였다.

“정말요?”

“예. 다만 혼자 앉는 소파는 아닙니다.”

라이자는 웃었다.

“좋아요!”

그는 호흐마이스터를 보았다.

“갑주를 입은 손님께는, 갑주를 벗지 않아도 앉을 수 있는 의자를 준비하겠습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멈췄다.

“갑주를 벗으라고 하지 않으십니까?”

“손님이 아직 벗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억지로 벗기지 않습니다.”

여관의 성좌는 그녀의 갑주 틈에 꽂힌 은꽃을 보았다.

“다만 꽃이 눌리지 않게 등받이는 조금 넓게 하지요.”

라이자가 작게 웃었다.

호흐마이스터는 아주 낮게 말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불가리아의 세 차르에게는 서로 다른 말이 돌아갔다.

“고통을 줄이려는 손님께는 조용한 병실을.”

레플리카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새벽을 향해 걷는 손님께는 동쪽 창문이 있는 방을.”

알렉산드리나는 미소 지었다.

“좋군요. 해가 뜨는지 확인할 수 있겠어요.”

“가시꽃을 들고 온 손님께는.”

여관의 성좌는 스토얀카를 보았다.

“꽃병은 드리겠습니다. 다만 다른 손님의 침대맡에 꽂지는 말아주시길.”

스토얀카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네, 여관주인.”

“여관에서는 규칙이 필요합니다.”

“내 꽃은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서 꽃병을 드리는 겁니다.”

스토얀카는 가시꽃을 들어 올렸다.

“좋아. 오늘 밤은 꽃병에 꽂아두지.”

레플리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알렉산드리나는 그 장면을 눈에 담아두었다.

여관의 성좌는 타마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황혼의 여왕께는 방을 권하기보다, 포도주와 물을 함께 준비하겠습니다.”

타마르는 웃었다.

“짐이 정말 손님 대접을 받는군요.”

“오늘 밤은 모두 손님입니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답니다.”

마지막으로 여관의 성좌는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나는?”

“극장주께는.”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무대가 보이지 않는 방을 드리겠습니다.”

푸리나는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왜?!”

죠니가 바로 말했다.

“좋네.”

그레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합니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무대가 보이면 계속 연출을 생각하실 테니까요.”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무대가 보이는 방에서는 잠들지 못한 가능성이 많았소.”

푸리나는 배신당한 얼굴로 모두를 보았다.

“너희들 진짜 너무해!”

여관의 성좌는 웃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침에는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말?”

“예.”

“그럼…… 괜찮을지도.”

죠니가 말했다.

“이 정도면 큰 진전이네.”

푸리나는 팔짱을 꼈다.

“하지만 방에 작은 무대 모형 하나 정도는—”

“안 됩니다.”

그레이의 말은 즉각적이었다.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

이제 정말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왕관들은 다시 머리에 있었다.

혹은 손에, 혹은 수행원의 품에, 혹은 아직 식탁 위에 잠시 놓여 있었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었다.

새벽이 오면, 그것들은 다시 완전히 각자의 자리에 놓일 것이다.

민다우가스는 하프를 챙겼다.

푸리나가 눈을 반짝였다.

“진짜 가져가네?”

“받은 물건은 쓴다.”

“연습해서 다음에 들려줄 거야?”

민다우가스는 활짝 웃었다.

“그 질문은 외교적으로 위험하군.”

“아쉽다.”

“하지만 언젠가 숲속에서 늑대가 도망쳤다는 소문이 들리면, 내 연습이 시작된 줄 알아라.”

푸리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벨라는 작은 벽돌을 소피아에게 맡겼다.

“잃어버리지 마라.”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벨라는 덧붙였다.

“가벼워 보여도 기억은 무겁다.”

“알겠습니다.”

“아직은 전부 들지 않아도 된다.”

소피아는 벽돌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떨어뜨리지는 않을게요.”

벨라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라는 요안나와 함께 문 앞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 거리는 처음보다 조금 덜 차가웠다.

요안나가 말했다.

“폐하, 내일 회의에서 봬요.”

미하일라는 답했다.

“늦지 마라.”

요안나는 웃었다.

“하얀 토끼도 아니고요?”

미하일라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오늘 밤의 극이 그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군.”

“조금요.”

미하일라는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나쁘지 않다.”

라이자는 호흐마이스터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꽃 상태 확인할게!”

호흐마이스터는 정중하게 답했다.

“정기 점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응! 정기 점검!”

라이자가 웃었다.

튜튼 기사단의 수행원들은 여전히 그 문장을 어떻게 보고서에 적을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불가리아의 세 차르는 각자 다른 문으로 향했다.

레플리카는 부상병을 먼저 보낸 뒤 걸었다.
알렉산드리나는 종이 왕관을 접지 않고 상자에 넣었다.
스토얀카는 가시꽃을 정말로 꽃병에 꽂아두고 갔다.

그 꽃병에는 작은 표지가 붙었다.

만지지 마시오.

그레이의 글씨였다.

타마르는 마지막까지 느긋했다.

그녀는 푸리나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말했다.

“좋은 밤이었답니다.”

푸리나는 미소 지었다.

“정말?”

“네. 조금 시끄러웠고, 조금 무모했고, 조금 덜 준비되었지만.”

“칭찬 맞지?”

“물론이지요.”

타마르는 푸리나의 머리 위 무대관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언젠가 더 큰 무대를 열겠지요.”

“응.”

푸리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럴 거야.”

타마르는 웃었다.

“그때도 잊지 말아요. 무대 옆에는 방이 있어야 한답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엔 잊지 않을게.”

“잊어도 괜찮답니다.”

타마르는 포도향이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대를 말려줄 사람들이 많아 보이니까요.”

푸리나는 뒤를 보았다.

그레이, 죠니, 레이튼, 하융.

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대답은 충분했다.

푸리나는 웃었다.

“응. 너무 많아.”

죠니가 말했다.

“많아도 모자랄 때가 있어.”

“너무해!”

“사실이야.”


---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연회장에는 마지막 등불만 남았다.

그레이는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총평.”

푸리나가 의자에 기대어 물었다.

“응?”

“오늘 밤의 총평입니다.”

그레이는 장부를 넘겼다.

“외교적 충돌 없음. 경미한 감정적 찔림 다수. 무대 장치 일부 손상. 은꽃 변성 지속. 하프 1개 반출. 벽돌 소품 1개 헝가리 측 이관. 가시꽃 1개 격리 보관. 물감 사용 제한 필요.”

푸리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공?”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성공입니다.”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좋아!”

“다만 다음부터는 사전 심의가 필요합니다.”

“으.”

죠니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그레이 말이 맞아.”

푸리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죠니, 오늘 너무 그레이 편이야.”

“그레이 편이 아니라 식탁과 건물 편이야. 둘 다 무너지면 밥 못 먹거든.”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오늘 밤은 질문이 잘 살아남았습니다. 좋은 공연이었지요.”

하융도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가능성보다 살아 돌아온 가능성이 많았소. 드문 밤이오.”

푸리나는 그 말을 조용히 들었다.

“그럼 됐어.”

그녀는 천장을 보았다.

은빛 종이별 몇 개가 아직 매달려 있었다.

“다들 자기 발로 서 있었지?”

죠니가 말했다.

“그래.”

“내가 끌어올린 거 아니지?”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폐하께서 무대를 열었습니다. 올라온 것은 각자의 선택이었습니다.”

레이튼이 덧붙였다.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던질 수는 있지만, 답하게 만들 수는 없지요.”

하융은 말했다.

“답하지 않은 가능성도 있었소. 하지만 오늘의 그들은 답했소.”

푸리나는 눈을 감았다.

“좋네.”

죠니는 접시에 남은 마지막 조각을 밀어주었다.

“먹어.”

“또?”

“쉬는 연습.”

푸리나는 그를 보다가 웃었다.

“기사단장이 아니라 여관 주인 같아.”

죠니는 바로 말했다.

“그건 싫은데.”

“어울릴지도?”

“더 싫어.”

푸리나는 마지막 조각을 먹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그녀가 다 먹을 때까지,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

밤의 끝에서, 푸리나는 혼자 무대에 한 번 더 올랐다.

아니, 혼자는 아니었다.

여관의 성좌가 객석 맨 뒤쪽에 앉아 있었다.

“방에 무대 모형은 없다고 하셨잖아요.”

푸리나가 말했다.

“그래서 직접 보러 오셨습니까?”

“응.”

푸리나는 무대 중앙에 섰다.

막은 내려가 있었다.

객석은 비어 있었다.

조명도 거의 꺼져 있었다.

“이상하네.”

“무엇이 말입니까?”

“비어 있는 극장도 나쁘지 않아.”

여관의 성좌는 미소 지었다.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는, 비어 있어도 따뜻할 때가 있습니다.”

푸리나는 객석을 보았다.

왕들이 앉았던 자리.
아이들이 박수쳤던 자리.
타마르가 포도주를 들었던 자리.
민다우가스가 웃었던 자리.
미하일라와 요안나가 침묵했던 자리.
라이자가 손을 흔들고, 호흐마이스터가 고개를 숙였던 자리.

비어 있었다.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푸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오늘 공연은 끝났습니다.”

그녀는 아무도 없는 객석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막은 아직 닫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더 작게 말했다.

“닫힌 분들에게는, 좋은 방이 있기를.”

여관의 성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훌륭한 마무리였습니다.”

푸리나는 돌아보았다.

“정말?”

“예.”

“너무 짧지 않았어?”

“쉼에는 긴 대사가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푸리나는 웃었다.

“그건 배워야겠네.”

“천천히 배우시면 됩니다.”

여관의 성좌는 무대 옆 문을 열었다.

그 문 너머에는 복도가 있었다.

극장의 복도이면서, 여관의 복도였다.

따뜻한 등불.
조용한 방들.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숨소리.

“이쪽입니다.”

푸리나는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내일 아침에는 다시 무대 볼 수 있지?”

“물론입니다.”

“그리고 또 사고 칠 수도 있고?”

여관의 성좌는 잠시 생각하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가급적 그레이 양과 상의하신 뒤에.”

푸리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아주 현실적인 신탁이네.”

“여관 운영에는 현실이 필요합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대의 마지막 등불이 꺼졌다.

하지만 여관의 복도에는 불이 남아 있었다.

그 밤, 왕관들은 각자의 방에서 잠시 쉬었다.

어떤 이는 꿈속에서 숲을 보았고,
어떤 이는 성벽을,
어떤 이는 자주빛 활과 작은 등불을,
어떤 이는 은꽃과 갑주의 틈을,
어떤 이는 검은 하늘과 새벽과 가시꽃을 보았다.

그리고 푸리나는, 아주 오랜만에 무대가 보이지 않는 방에서 잠들었다.

한여름 밤의 군주들은 끝났다.

새벽이 오면, 그들은 다시 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아주 잠깐.

그들은 손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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