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87여관◆zAR16hM8he(ca47ad90)2026-05-12 (화) 23:35:47
《왕관의 식탁》
3장. 남은 냄비와 빈 그릇 — 개정본
식탁이 열리자, 요리대회는 대회가 아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심사였다.
누가 더 맛있게 만들었는가.
누가 더 왕답게 만들었는가.
누가 더 자기 나라다운 접시를 내놓았는가.
하지만 음식이 작은 그릇에 나뉘어 사람들 사이로 건너가기 시작하자, 그런 질문들은 조금씩 힘을 잃었다.
민다우가스의 숲 스튜는 피난민 아이들에게 먼저 갔다.
벨라의 재건 수프는 늙은 병사들과 성벽 공사에 동원되었던 장정들에게 갔다.
니케아의 전장요리와 평화의 빵은 사절단과 기사들에게 나뉘었다.
라이자의 은꽃 과자와 호흐마이스터의 보존식은 이상하게도 같이 돌아다녔다.
레플리카의 약초죽은 부상병과 지친 사람들에게, 아레의 침묵의 솥은 말없이 앉아 있는 이들에게, 타마르의 빵과 포도주는 이름을 부를 사람이 있는 자들에게 갔다.
아스트리트의 허브차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은 이들의 손에 조용히 쥐어졌다.
푸리나는 그 광경을 보며 국자를 들고 있었다.
“이상하네.”
죠니가 옆에서 자기 그릇을 들고 물었다.
“뭐가?”
“대회였는데, 이제 그냥 식사 같아졌어.”
“그게 더 낫지 않아?”
푸리나는 조금 생각했다.
“응. 더 나은 것 같아.”
죠니는 숲 스튜를 한 숟가락 먹고 말했다.
“요리대회라는 건 결국 누가 만들었는지 보려고 여는 건데, 밥은 누가 먹는지가 더 중요할 때도 있거든.”
푸리나는 그를 빤히 보았다.
죠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죠니가 또 좋은 말을 했어.”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평소엔 안 한다는 뜻이잖아.”
“아니었어?”
“부정하기 애매한데, 그래도 기분은 나쁘네.”
푸리나는 웃었다.
죠니는 그릇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웃지 말고 먹어, 여왕님. 네가 연 대회인데 네가 제일 늦게 먹고 있잖아.”
“나는 사회자니까!”
그레이가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이미 몇 차례 이상했습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레이!”
그레이는 장부를 들고 있었다.
“폐하, 지금은 식사 시간입니다. 항의는 식후에 받겠습니다.”
죠니가 낮게 웃었다.
“완벽한 답변이네.”
“죠니까지!”
하지만 푸리나는 결국 그릇을 받았다.
숲 스튜와 재건 수프가 조금씩 담긴 그릇이었다.
아스테르다스가 일부러 그렇게 떠준 것이었다.
“두 나라 음식 섞어도 돼?”
푸리나가 묻자,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냄비 안에서 싸우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민다우가스가 크게 웃었다.
“하하! 숲과 성벽이 한 그릇이라. 나쁘지 않다. 다만 어느 쪽이 국경인지 확인해야겠군.”
벨라는 짧게 말했다.
“국경보다 배가 먼저다.”
민다우가스는 그녀를 보았다.
“헝가리의 여왕은 가끔 내 계산을 단칼에 줄이는군.”
“필요 없는 계산은 줄인다.”
“좋다. 효율적이야.”
그는 웃었지만, 말끝에는 분명한 인정이 있었다.
푸리나는 한 숟가락을 먹었다.
진한 숲의 맛과, 오래 끓인 재건의 국물이 섞였다.
완전히 어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쁘지 않았다.
“맛있다.”
아스테르다스가 눈을 휘었다.
“다행이네.”
벨라는 푸리나의 그릇을 보며 말했다.
“너무 오래 두면 식는다.”
푸리나는 곧장 한 숟가락 더 먹었다.
“네!”
죠니가 옆에서 낮게 말했다.
“벨라한테 혼나니까 바로 듣네.”
“그건 혼난 게 아니라 조언이야.”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평화롭긴 하지.”
---
그레이는 배식 동선을 관리하느라 거의 앉지 못했다.
한 손에는 장부, 다른 손에는 국자가 있었다.
누군가 너무 많이 가져가려 하면 정중하게 제지했고, 아이가 뜨거운 그릇을 들고 비틀거리면 바로 받아주었다.
하융은 그런 그레이의 옆에 서 있었다.
“오른쪽 통로, 세 걸음 뒤 아이가 넘어질 가능성이 있소.”
그레이는 즉시 말했다.
“죠니 경.”
죠니는 말없이 일어나 오른쪽 통로로 갔다.
정말로 아이 하나가 뜨거운 수프 그릇을 들고 휘청거렸다.
죠니는 그릇을 받아 들었다.
“천천히 가. 밥은 도망 안 가.”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번 가능성은 살아남았소.”
그레이는 그를 보았다.
“하융 경, 오늘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융은 담담히 고개를 숙였다.
“망한 냄비들을 많이 보았을 뿐이오.”
“그 덕분에 실제 냄비가 덜 망했습니다.”
죠니가 돌아오며 말했다.
“그건 꽤 좋은 업적이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주방에서 듣기에는 드문 칭찬이오.”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중얼거렸다.
“하융을 다음에도 안전 담당으로—”
하융이 바로 말했다.
“한 가능성에서 나는 도망쳤소.”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레이는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몇 번째 업무부터 도망쳤습니까?”
“라플리 경의 번개 조리 재시도 때였소.”
라플리가 멀리서 외쳤다.
“아직 안 했다니까!”
루나리아가 바로 말했다.
“그래서 아직 안전합니다.”
카를로타는 냄비 손잡이를 점검하며 덧붙였다.
“냄비도 아직 무사합니다.”
라플리는 억울하게 허브차를 들었다.
“다들 천둥의 가능성을 너무 무서워해.”
그레이는 말했다.
“그 가능성이 천장을 그을렸기 때문입니다.”
라플리는 하융을 노려보았다.
“그 가능성 너만 봤잖아.”
하융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보지 않게 되었소.”
아카식은 매우 즐겁게 기록했다.
“좋아. ‘하융, 천장을 구하다.’”
알토가 즉시 말했다.
“제목은 부적절합니다.”
“그럼?”
“‘조리장 전기 사고 예방 사례.’”
아카식은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 재미없어.”
“그래서 공식 기록에 적합합니다.”
---
니케아 쪽 식탁에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미하일라의 전장요리와 요안나의 빵이 예상보다 잘 어울린 탓에, 사람들이 두 음식을 함께 가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요안나는 기뻐했다.
“폐하, 다들 같이 먹고 있어요.”
미하일라는 그릇을 든 사람들을 보았다.
“그대의 빵이 짐의 요리에 침투했군.”
“침투라니요.”
“전술적으로는 정확한 표현이다.”
요안나는 웃었다.
“그럼 평화의 침투네요.”
미하일라는 잠시 침묵했다.
“그 표현은 위험하지만, 오늘은 허용하겠다.”
슈샤니크는 두 음식을 함께 배식하는 사람들을 보며 장부를 넘겼다.
“통합 배식안의 실증 자료가 예상보다 빨리 확보되었습니다.”
요안나는 조금 당황했다.
“정말로 행정안으로 쓰실 건가요?”
“효율성이 확인되었으니까요.”
미하일라는 슈샤니크를 보았다.
“너는 연회에서도 제국을 굴리는군.”
슈샤니크는 고개를 숙였다.
“폐하께서 조리장에서도 전쟁을 끝내려 하셨으니, 저는 연회장에서 행정을 할 뿐입니다.”
요안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미하일라는 낮게 말했다.
“오늘 니케아의 신하들이 지나치게 솔직하군.”
루나리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폐하께서 칼을 내려놓으셨으니 모두 조금 편해진 겁니다.”
“짐이 칼을 내려놓으면 신하들이 말이 많아지는가.”
카를로타가 담담하게 답했다.
“폐하의 손목에 유익합니다.”
미하일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대들 모두 한통속이군.”
요안나는 빵을 찢어 그녀의 접시에 놓았다.
“그러면 같이 드세요.”
미하일라는 빵을 보았다.
“그대는 참 쉽게 짐의 퇴로를 막는다.”
“빵으로 막는 퇴로라면 나쁘지 않죠?”
미하일라는 아주 짧게 웃었다.
“나쁘지 않다.”
---
라이자는 자기 은꽃 디저트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지자 완전히 신이 났다.
“더 만들까?”
그레이는 멀리서 즉시 반응했다.
“안 됩니다.”
“왜? 재료 있어!”
“예산이 없습니다.”
“성은으로 조금만—”
“안 됩니다.”
“조금만 반짝이게—”
“안 됩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자기 보존식이 은꽃 과자와 함께 배식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튜튼 기사 몇 명이 그 조합을 받아 들고 매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총장님, 이것은 정식 보급안입니까?”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생각했다.
“시범안입니다.”
라이자가 즉시 말했다.
“채택 예정 시범안!”
호흐마이스터는 덧붙였다.
“검토 중입니다.”
튜튼 기사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죠니가 지나가며 말했다.
“먹어봐. 맛없는 걸 견디고 나면 단 게 더 맛있어져.”
호흐마이스터는 그 표현에 잠시 멈췄다.
“기사단 보존식의 공식 설명으로는 부적합합니다.”
“공식 설명은 그레이가 잘 꾸며줄 거야.”
그레이가 멀리서 말했다.
“제가 왜 튜튼 기사단 보급 문구를 작성해야 합니까?”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잘하니까?”
그레이는 부정하지 못했다.
라이자는 호흐마이스터의 갑주 쪽을 보았다.
이전 연극 때 꽂아준 은꽃은 아직 있었다.
“그 꽃은 아직도 괜찮아?”
호흐마이스터는 시선을 내렸다.
“움직임에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그럼 마음에도 지장 없어?”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그 질문은 전술적으로 분류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그냥 대답해도 돼.”
호흐마이스터는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직 빼고 싶지는 않습니다.”
라이자는 아주 밝게 웃었다.
“그거면 충분해.”
---
불가리아의 세 접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레이가 충돌을 우려해 따로 배치하려 했지만, 알렉산드리나가 말했다.
“너무 멀리 두면 오히려 우습습니다.”
레플리카는 조용히 동의했다.
스토얀카는 웃으며 말했다.
“가깝게 두면 더 재밌고.”
그래서 세 접시는 같은 식탁 위에 놓였다.
검은 약초죽.
새벽의 궁중요리.
검사된 가시꽃 요리.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먼저 레플리카의 죽을 먹고, 알렉산드리나의 요리를 맛보고, 스토얀카의 요리는 그레이가 허락한 조각만 가져갔다.
스토얀카는 그 모습을 보고 턱을 괴었다.
“내 접시 앞에 감시가 붙었네.”
그레이가 말했다.
“필요합니다.”
“인기 많다는 뜻으로 들을게.”
“그렇게 들으시면 곤란합니다.”
레플리카는 부상병에게 죽을 떠주었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드십시오.”
알렉산드리나는 식탁 위의 세 접시를 보았다.
“이상하군요.”
가브리엘라가 물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같은 식탁 위에 놓이니, 서로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는군요.”
스토얀카가 웃었다.
“그럼 섞어볼까?”
레플리카가 바로 말했다.
“안 됩니다.”
알렉산드리나도 말했다.
“오늘은 하지 맙시다.”
스토얀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둘 다 너무 단호해.”
레플리카는 그녀를 보았다.
“당신이 그러니까요.”
알렉산드리나는 접시를 다시 정돈했다.
“불가리아가 오늘 밤 평화롭다면, 그것은 합의해서가 아니라 그레이 양의 검사 도구와 레플리카 전하의 절제와 제 접시 배치 덕분입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그리고 내 인내심도.”
레플리카는 잠시 침묵했다.
“오늘만큼은 인정하겠습니다.”
스토얀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정말?”
“오늘만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작게 웃었다.
“좋군요. 오늘의 불가리아는 오늘만큼만 식탁 위에 있어도 충분합니다.”
---
아레의 솥 근처에는 말이 적은 사람들이 모였다.
부상병.
전투를 겪은 기사.
누군가를 잃은 수행원.
그리고 배가 고픈데도 큰 식탁의 소란이 부담스러운 아이들.
아레는 그들에게 급히 먹으라 하지 않았다.
그저 그릇을 내밀었다.
“뜨겁구나. 천천히 먹거라.”
그 말은 아주 평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천천히 먹게 되었다.
푸리나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레이튼이 그녀 곁에 섰다.
“아레 전하의 식탁은 무대와 반대편에 있군요.”
“응.”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조명이 없어.”
“그 대신 그늘이 있습니다.”
“좋은 뜻이야?”
“필요한 뜻입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아레는 그중 한 아이에게 물었다.
“더 먹을 수 있겠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요.”
“그래. 조금만 더 하자꾸나.”
아레는 작은 그릇에 콩스튜를 덜어주었다.
국자는 천천히 움직였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아이의 손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죠니도 자기 그릇을 들고 아레의 솥 앞에 다시 섰다.
아레는 그를 보자 국자를 들었다.
“두 번째 그릇이구나.”
죠니는 조금 민망한 듯했다.
“심사야.”
“심사는 끝났다고 들었다.”
“확인 심사.”
아레는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대는 이유를 붙이는 법을 아는구나.”
죠니는 그녀를 보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졌어. 그냥 더 먹으러 왔어.”
“좋은 일이란다.”
아레는 그릇에 콩스튜를 담아주었다.
“돌아온 자가 더 먹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
죠니는 그릇을 받아들고 잠시 말했다.
“이 음식, 시끄럽지 않아서 좋네.”
아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뒤의 사람에게는, 너무 큰 위로도 때로는 부담이 된단다.”
죠니는 아무 대답 없이 한 숟가락을 먹었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고 살짝 웃었다.
이번에는 놀리지 않았다.
아레의 솥은 박수받지 않았다.
누구도 “훌륭하다”고 크게 외치지 않았다.
하지만 빈 그릇은 조용히 돌아왔다.
그릇을 내민 사람들은 대체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조금 더.”
“가능하다면.”
“아직 따뜻합니까?”
아레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남아 있단다.”
“아직 식지 않았지.”
그 말들이, 그 식탁의 대사였다.
---
타마르의 식탁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름이 함께 있었다.
누군가는 빵을 찢으며 형의 이름을 불렀다.
누군가는 포도주잔을 들고 오래전 죽은 어머니를 떠올렸다.
누군가는 아무 이름도 부르지 않았지만, 빵 한 조각을 자기 앞이 아니라 빈 자리 앞에 놓았다.
타마르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도 된답니다.”
한 병사가 빈 자리 앞에 빵을 놓고 어쩔 줄 몰라 하자, 타마르가 부드럽게 말했다.
“먹지 않을 것을 안다고 해서,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이 헛된 것은 아니지요.”
병사는 고개를 숙였다.
여관의 성좌가 그 옆에 따뜻한 물을 놓았다.
“포도주가 무거우면 물도 좋습니다.”
타마르는 웃었다.
“참으로 여관지기답군요.”
“손님마다 필요한 잔이 다르니까요.”
푸리나는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문득 자기 극장의 객석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무대 위에 오르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객석에 앉아 있고 싶어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빈자리를 위해 빵을 놓고 싶어 한다.
푸리나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방도 필요하고, 식탁도 필요하네.”
여관의 성좌는 그 말을 들은 듯 미소 지었다.
“대체로 그렇습니다.”
---
아스트리트의 허브차는 예상외로 가장 늦게까지 남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샐러드와 차”라는 말에 고기와 수프보다 뒤로 미뤘다.
하지만 여러 음식을 먹은 뒤, 사람들은 하나둘 그녀의 식탁으로 왔다.
“차 한 잔 더 받을 수 있을까요?”
“저도요.”
“이거 마시니까 좀 가벼워졌습니다.”
아스트리트는 당황하면서도 잔을 채웠다.
“네, 물론입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아니, 그러니까 저는 원래 검술 시연을…….”
푸리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포기해, 아스트리트. 오늘은 요리대회였어.”
아스트리트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레이튼은 허브차를 들고 말했다.
“검으로 지키는 생명과, 차로 진정시키는 생명은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지요.”
아스트리트는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죠니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좋네. 과하게 멋 부리지 않아서 더 좋아.”
아스트리트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안심했다.
“그건 칭찬인가요?”
“응. 푸리나가 붙였으면 꽃이 세 배는 많았을 거야.”
푸리나는 항의했다.
“그게 뭐가 나빠!”
그레이가 대답했다.
“식용 꽃 수급량과 예산이 나빠집니다.”
아스트리트는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제가 덜 꾸민 것이 다행이었군요.”
“응!”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하지만 다음엔 조금 더 꾸며도 돼!”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사전 승인 후에만 가능합니다.”
---
식탁이 깊어질수록, 음식은 점점 섞였다.
누군가는 민다우가스의 스튜에 요안나의 빵을 찍어 먹었다.
누군가는 벨라의 수프 뒤에 아스트리트의 허브차를 마셨다.
누군가는 호흐마이스터의 보존식을 타마르의 빵과 비교했고, 곧 비교를 포기했다.
라이자의 은꽃 과자는 거의 모든 접시 옆에 하나씩 놓였다.
스토얀카의 요리는 그레이의 감독 아래 아주 조금씩만 나갔는데도, 묘하게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그레이는 마지막 배식표를 확인했다.
“남은 음식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푸리나는 놀라서 물었다.
“부족해?”
“아닙니다. 거의 적정량입니다.”
“그럼 좋은 거지?”
그레이는 장부를 닫았다.
“예. 좋은 일입니다.”
푸리나는 가슴을 폈다.
“봤지? 나의 요리대회는 성공이야!”
그레이는 그녀를 보았다.
“폐하께서는 요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열었잖아!”
“그 점은 인정합니다.”
죠니가 옆에서 말했다.
“열고, 휘젓고, 사고 치기 직전에 멈췄지.”
“마지막이 중요해?”
“아주.”
하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멈추지 않은 가능성에서는 스토얀카 전하의 꽃과 라플리 경의 번개가 만났소.”
그레이의 얼굴이 굳었다.
“결과는요?”
하융은 잠시 침묵했다.
“맛은 있었다고 하오.”
“그 외에는요?”
“천장이 없었소.”
그레이는 아주 천천히 라플리와 스토얀카를 보았다.
라플리는 시선을 피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그 가능성 재밌네.”
그레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폐기합니다.”
아카식이 아쉬워했다.
“기록만이라도—”
알토가 말했다.
“비공식 위험 사례로만 보존하겠습니다.”
푸리나는 작게 속삭였다.
“조금 보고 싶긴 하다.”
죠니가 바로 말했다.
“안 돼, 여왕님.”
“응…….”
---
밤이 더 깊어졌을 때, 여관의 성좌는 빈 그릇들을 바라보았다.
비어 있는 그릇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누군가 먹었다.
누군가 삼켰다.
누군가 한 숟가락 더 달라고 했다.
누군가 남은 빵을 싸가도 되는지 물었다.
그것은 식탁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식탁이 제 일을 했다는 뜻이었다.
여관의 성좌는 천천히 말했다.
“좋은 밤이군요.”
푸리나는 그의 옆에 섰다.
“정말요?”
“예.”
“대회 같지는 않았죠?”
“여관의 식탁은 대개 그렇습니다.”
여관의 성좌는 빈 그릇 하나를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다음에는 어떤 맛인지 이야기하지요.
하지만 마지막에는, 누가 더 먹을 수 있는지 묻게 됩니다.”
푸리나는 웃었다.
“그거 죠니 얘기 같네요.”
죠니가 멀리서 말했다.
“들었어.”
여관의 성좌는 부드럽게 웃었다.
“좋은 요리는 배를 채웁니다.
더 좋은 요리는, 길을 기억하게 하지요.”
그는 식탁 위의 남은 빵과 그릇들을 보았다.
“하지만 오늘 밤 가장 좋은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뭔데요?”
여관의 성좌는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다시 달라고 내밀어진 그릇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식탁을 보았다.
아이의 빈 그릇.
부상병의 빈 그릇.
죠니의 두 번째 그릇.
소피아가 깨끗이 비운 작은 그릇.
누군가 죽은 사람의 이름 앞에 놓았다가, 나중에 조용히 먹은 빵 접시.
그리고 아레의 솥 앞에 조용히 쌓인 그릇들.
말없이 먹고, 말없이 비우고, 조금 더 먹고 싶어 다시 내민 그릇들.
푸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녀는 아주 작게 말했다.
“그게 제일 좋네.”
그리고 그때, 그레이가 다가왔다.
“폐하.”
푸리나는 웃으며 돌아보았다.
“정산?”
“예.”
“지금?”
“식탁이 끝났으므로 지금입니다.”
죠니가 웃었다.
“현실이 돌아왔네.”
그레이는 장부를 펼쳤다.
“총평입니다. 중대한 식중독 없음. 심사위원 생존. 아이들 식사 완료. 부상병 식사 완료. 남은 음식 적정. 조리장 손상 경미. 단, 라플리님과 스토얀카 전하의 조합은 향후 모든 행사에서 사전 분리 배치가 필요합니다.”
라플리가 외쳤다.
“아직 같이 안 했다니까!”
스토얀카는 웃었다.
“다음엔 같이 해볼까?”
그레이는 즉시 말했다.
“불허합니다.”
푸리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크고 밝았다.
하지만 아주 조금 달랐다.
그것은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웃음이 아니라, 식탁 끝에서 누군가가 빈 그릇을 다시 내미는 것을 보고 짓는 웃음이었다.
왕관의 식탁은 그렇게 깊어졌다.
그리고 아직, 밤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3장. 남은 냄비와 빈 그릇 — 개정본
식탁이 열리자, 요리대회는 대회가 아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심사였다.
누가 더 맛있게 만들었는가.
누가 더 왕답게 만들었는가.
누가 더 자기 나라다운 접시를 내놓았는가.
하지만 음식이 작은 그릇에 나뉘어 사람들 사이로 건너가기 시작하자, 그런 질문들은 조금씩 힘을 잃었다.
민다우가스의 숲 스튜는 피난민 아이들에게 먼저 갔다.
벨라의 재건 수프는 늙은 병사들과 성벽 공사에 동원되었던 장정들에게 갔다.
니케아의 전장요리와 평화의 빵은 사절단과 기사들에게 나뉘었다.
라이자의 은꽃 과자와 호흐마이스터의 보존식은 이상하게도 같이 돌아다녔다.
레플리카의 약초죽은 부상병과 지친 사람들에게, 아레의 침묵의 솥은 말없이 앉아 있는 이들에게, 타마르의 빵과 포도주는 이름을 부를 사람이 있는 자들에게 갔다.
아스트리트의 허브차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은 이들의 손에 조용히 쥐어졌다.
푸리나는 그 광경을 보며 국자를 들고 있었다.
“이상하네.”
죠니가 옆에서 자기 그릇을 들고 물었다.
“뭐가?”
“대회였는데, 이제 그냥 식사 같아졌어.”
“그게 더 낫지 않아?”
푸리나는 조금 생각했다.
“응. 더 나은 것 같아.”
죠니는 숲 스튜를 한 숟가락 먹고 말했다.
“요리대회라는 건 결국 누가 만들었는지 보려고 여는 건데, 밥은 누가 먹는지가 더 중요할 때도 있거든.”
푸리나는 그를 빤히 보았다.
죠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죠니가 또 좋은 말을 했어.”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평소엔 안 한다는 뜻이잖아.”
“아니었어?”
“부정하기 애매한데, 그래도 기분은 나쁘네.”
푸리나는 웃었다.
죠니는 그릇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웃지 말고 먹어, 여왕님. 네가 연 대회인데 네가 제일 늦게 먹고 있잖아.”
“나는 사회자니까!”
그레이가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이미 몇 차례 이상했습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레이!”
그레이는 장부를 들고 있었다.
“폐하, 지금은 식사 시간입니다. 항의는 식후에 받겠습니다.”
죠니가 낮게 웃었다.
“완벽한 답변이네.”
“죠니까지!”
하지만 푸리나는 결국 그릇을 받았다.
숲 스튜와 재건 수프가 조금씩 담긴 그릇이었다.
아스테르다스가 일부러 그렇게 떠준 것이었다.
“두 나라 음식 섞어도 돼?”
푸리나가 묻자,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냄비 안에서 싸우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민다우가스가 크게 웃었다.
“하하! 숲과 성벽이 한 그릇이라. 나쁘지 않다. 다만 어느 쪽이 국경인지 확인해야겠군.”
벨라는 짧게 말했다.
“국경보다 배가 먼저다.”
민다우가스는 그녀를 보았다.
“헝가리의 여왕은 가끔 내 계산을 단칼에 줄이는군.”
“필요 없는 계산은 줄인다.”
“좋다. 효율적이야.”
그는 웃었지만, 말끝에는 분명한 인정이 있었다.
푸리나는 한 숟가락을 먹었다.
진한 숲의 맛과, 오래 끓인 재건의 국물이 섞였다.
완전히 어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쁘지 않았다.
“맛있다.”
아스테르다스가 눈을 휘었다.
“다행이네.”
벨라는 푸리나의 그릇을 보며 말했다.
“너무 오래 두면 식는다.”
푸리나는 곧장 한 숟가락 더 먹었다.
“네!”
죠니가 옆에서 낮게 말했다.
“벨라한테 혼나니까 바로 듣네.”
“그건 혼난 게 아니라 조언이야.”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평화롭긴 하지.”
---
그레이는 배식 동선을 관리하느라 거의 앉지 못했다.
한 손에는 장부, 다른 손에는 국자가 있었다.
누군가 너무 많이 가져가려 하면 정중하게 제지했고, 아이가 뜨거운 그릇을 들고 비틀거리면 바로 받아주었다.
하융은 그런 그레이의 옆에 서 있었다.
“오른쪽 통로, 세 걸음 뒤 아이가 넘어질 가능성이 있소.”
그레이는 즉시 말했다.
“죠니 경.”
죠니는 말없이 일어나 오른쪽 통로로 갔다.
정말로 아이 하나가 뜨거운 수프 그릇을 들고 휘청거렸다.
죠니는 그릇을 받아 들었다.
“천천히 가. 밥은 도망 안 가.”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번 가능성은 살아남았소.”
그레이는 그를 보았다.
“하융 경, 오늘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융은 담담히 고개를 숙였다.
“망한 냄비들을 많이 보았을 뿐이오.”
“그 덕분에 실제 냄비가 덜 망했습니다.”
죠니가 돌아오며 말했다.
“그건 꽤 좋은 업적이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주방에서 듣기에는 드문 칭찬이오.”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중얼거렸다.
“하융을 다음에도 안전 담당으로—”
하융이 바로 말했다.
“한 가능성에서 나는 도망쳤소.”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레이는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몇 번째 업무부터 도망쳤습니까?”
“라플리 경의 번개 조리 재시도 때였소.”
라플리가 멀리서 외쳤다.
“아직 안 했다니까!”
루나리아가 바로 말했다.
“그래서 아직 안전합니다.”
카를로타는 냄비 손잡이를 점검하며 덧붙였다.
“냄비도 아직 무사합니다.”
라플리는 억울하게 허브차를 들었다.
“다들 천둥의 가능성을 너무 무서워해.”
그레이는 말했다.
“그 가능성이 천장을 그을렸기 때문입니다.”
라플리는 하융을 노려보았다.
“그 가능성 너만 봤잖아.”
하융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보지 않게 되었소.”
아카식은 매우 즐겁게 기록했다.
“좋아. ‘하융, 천장을 구하다.’”
알토가 즉시 말했다.
“제목은 부적절합니다.”
“그럼?”
“‘조리장 전기 사고 예방 사례.’”
아카식은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 재미없어.”
“그래서 공식 기록에 적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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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쪽 식탁에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미하일라의 전장요리와 요안나의 빵이 예상보다 잘 어울린 탓에, 사람들이 두 음식을 함께 가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요안나는 기뻐했다.
“폐하, 다들 같이 먹고 있어요.”
미하일라는 그릇을 든 사람들을 보았다.
“그대의 빵이 짐의 요리에 침투했군.”
“침투라니요.”
“전술적으로는 정확한 표현이다.”
요안나는 웃었다.
“그럼 평화의 침투네요.”
미하일라는 잠시 침묵했다.
“그 표현은 위험하지만, 오늘은 허용하겠다.”
슈샤니크는 두 음식을 함께 배식하는 사람들을 보며 장부를 넘겼다.
“통합 배식안의 실증 자료가 예상보다 빨리 확보되었습니다.”
요안나는 조금 당황했다.
“정말로 행정안으로 쓰실 건가요?”
“효율성이 확인되었으니까요.”
미하일라는 슈샤니크를 보았다.
“너는 연회에서도 제국을 굴리는군.”
슈샤니크는 고개를 숙였다.
“폐하께서 조리장에서도 전쟁을 끝내려 하셨으니, 저는 연회장에서 행정을 할 뿐입니다.”
요안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미하일라는 낮게 말했다.
“오늘 니케아의 신하들이 지나치게 솔직하군.”
루나리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폐하께서 칼을 내려놓으셨으니 모두 조금 편해진 겁니다.”
“짐이 칼을 내려놓으면 신하들이 말이 많아지는가.”
카를로타가 담담하게 답했다.
“폐하의 손목에 유익합니다.”
미하일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대들 모두 한통속이군.”
요안나는 빵을 찢어 그녀의 접시에 놓았다.
“그러면 같이 드세요.”
미하일라는 빵을 보았다.
“그대는 참 쉽게 짐의 퇴로를 막는다.”
“빵으로 막는 퇴로라면 나쁘지 않죠?”
미하일라는 아주 짧게 웃었다.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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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자는 자기 은꽃 디저트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지자 완전히 신이 났다.
“더 만들까?”
그레이는 멀리서 즉시 반응했다.
“안 됩니다.”
“왜? 재료 있어!”
“예산이 없습니다.”
“성은으로 조금만—”
“안 됩니다.”
“조금만 반짝이게—”
“안 됩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자기 보존식이 은꽃 과자와 함께 배식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튜튼 기사 몇 명이 그 조합을 받아 들고 매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총장님, 이것은 정식 보급안입니까?”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생각했다.
“시범안입니다.”
라이자가 즉시 말했다.
“채택 예정 시범안!”
호흐마이스터는 덧붙였다.
“검토 중입니다.”
튜튼 기사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죠니가 지나가며 말했다.
“먹어봐. 맛없는 걸 견디고 나면 단 게 더 맛있어져.”
호흐마이스터는 그 표현에 잠시 멈췄다.
“기사단 보존식의 공식 설명으로는 부적합합니다.”
“공식 설명은 그레이가 잘 꾸며줄 거야.”
그레이가 멀리서 말했다.
“제가 왜 튜튼 기사단 보급 문구를 작성해야 합니까?”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잘하니까?”
그레이는 부정하지 못했다.
라이자는 호흐마이스터의 갑주 쪽을 보았다.
이전 연극 때 꽂아준 은꽃은 아직 있었다.
“그 꽃은 아직도 괜찮아?”
호흐마이스터는 시선을 내렸다.
“움직임에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그럼 마음에도 지장 없어?”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그 질문은 전술적으로 분류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그냥 대답해도 돼.”
호흐마이스터는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직 빼고 싶지는 않습니다.”
라이자는 아주 밝게 웃었다.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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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세 접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레이가 충돌을 우려해 따로 배치하려 했지만, 알렉산드리나가 말했다.
“너무 멀리 두면 오히려 우습습니다.”
레플리카는 조용히 동의했다.
스토얀카는 웃으며 말했다.
“가깝게 두면 더 재밌고.”
그래서 세 접시는 같은 식탁 위에 놓였다.
검은 약초죽.
새벽의 궁중요리.
검사된 가시꽃 요리.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먼저 레플리카의 죽을 먹고, 알렉산드리나의 요리를 맛보고, 스토얀카의 요리는 그레이가 허락한 조각만 가져갔다.
스토얀카는 그 모습을 보고 턱을 괴었다.
“내 접시 앞에 감시가 붙었네.”
그레이가 말했다.
“필요합니다.”
“인기 많다는 뜻으로 들을게.”
“그렇게 들으시면 곤란합니다.”
레플리카는 부상병에게 죽을 떠주었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드십시오.”
알렉산드리나는 식탁 위의 세 접시를 보았다.
“이상하군요.”
가브리엘라가 물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같은 식탁 위에 놓이니, 서로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는군요.”
스토얀카가 웃었다.
“그럼 섞어볼까?”
레플리카가 바로 말했다.
“안 됩니다.”
알렉산드리나도 말했다.
“오늘은 하지 맙시다.”
스토얀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둘 다 너무 단호해.”
레플리카는 그녀를 보았다.
“당신이 그러니까요.”
알렉산드리나는 접시를 다시 정돈했다.
“불가리아가 오늘 밤 평화롭다면, 그것은 합의해서가 아니라 그레이 양의 검사 도구와 레플리카 전하의 절제와 제 접시 배치 덕분입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그리고 내 인내심도.”
레플리카는 잠시 침묵했다.
“오늘만큼은 인정하겠습니다.”
스토얀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정말?”
“오늘만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작게 웃었다.
“좋군요. 오늘의 불가리아는 오늘만큼만 식탁 위에 있어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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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의 솥 근처에는 말이 적은 사람들이 모였다.
부상병.
전투를 겪은 기사.
누군가를 잃은 수행원.
그리고 배가 고픈데도 큰 식탁의 소란이 부담스러운 아이들.
아레는 그들에게 급히 먹으라 하지 않았다.
그저 그릇을 내밀었다.
“뜨겁구나. 천천히 먹거라.”
그 말은 아주 평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천천히 먹게 되었다.
푸리나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레이튼이 그녀 곁에 섰다.
“아레 전하의 식탁은 무대와 반대편에 있군요.”
“응.”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조명이 없어.”
“그 대신 그늘이 있습니다.”
“좋은 뜻이야?”
“필요한 뜻입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아레는 그중 한 아이에게 물었다.
“더 먹을 수 있겠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요.”
“그래. 조금만 더 하자꾸나.”
아레는 작은 그릇에 콩스튜를 덜어주었다.
국자는 천천히 움직였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아이의 손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죠니도 자기 그릇을 들고 아레의 솥 앞에 다시 섰다.
아레는 그를 보자 국자를 들었다.
“두 번째 그릇이구나.”
죠니는 조금 민망한 듯했다.
“심사야.”
“심사는 끝났다고 들었다.”
“확인 심사.”
아레는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대는 이유를 붙이는 법을 아는구나.”
죠니는 그녀를 보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졌어. 그냥 더 먹으러 왔어.”
“좋은 일이란다.”
아레는 그릇에 콩스튜를 담아주었다.
“돌아온 자가 더 먹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
죠니는 그릇을 받아들고 잠시 말했다.
“이 음식, 시끄럽지 않아서 좋네.”
아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뒤의 사람에게는, 너무 큰 위로도 때로는 부담이 된단다.”
죠니는 아무 대답 없이 한 숟가락을 먹었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고 살짝 웃었다.
이번에는 놀리지 않았다.
아레의 솥은 박수받지 않았다.
누구도 “훌륭하다”고 크게 외치지 않았다.
하지만 빈 그릇은 조용히 돌아왔다.
그릇을 내민 사람들은 대체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조금 더.”
“가능하다면.”
“아직 따뜻합니까?”
아레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남아 있단다.”
“아직 식지 않았지.”
그 말들이, 그 식탁의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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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르의 식탁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름이 함께 있었다.
누군가는 빵을 찢으며 형의 이름을 불렀다.
누군가는 포도주잔을 들고 오래전 죽은 어머니를 떠올렸다.
누군가는 아무 이름도 부르지 않았지만, 빵 한 조각을 자기 앞이 아니라 빈 자리 앞에 놓았다.
타마르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도 된답니다.”
한 병사가 빈 자리 앞에 빵을 놓고 어쩔 줄 몰라 하자, 타마르가 부드럽게 말했다.
“먹지 않을 것을 안다고 해서,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이 헛된 것은 아니지요.”
병사는 고개를 숙였다.
여관의 성좌가 그 옆에 따뜻한 물을 놓았다.
“포도주가 무거우면 물도 좋습니다.”
타마르는 웃었다.
“참으로 여관지기답군요.”
“손님마다 필요한 잔이 다르니까요.”
푸리나는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문득 자기 극장의 객석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무대 위에 오르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객석에 앉아 있고 싶어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빈자리를 위해 빵을 놓고 싶어 한다.
푸리나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방도 필요하고, 식탁도 필요하네.”
여관의 성좌는 그 말을 들은 듯 미소 지었다.
“대체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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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트의 허브차는 예상외로 가장 늦게까지 남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샐러드와 차”라는 말에 고기와 수프보다 뒤로 미뤘다.
하지만 여러 음식을 먹은 뒤, 사람들은 하나둘 그녀의 식탁으로 왔다.
“차 한 잔 더 받을 수 있을까요?”
“저도요.”
“이거 마시니까 좀 가벼워졌습니다.”
아스트리트는 당황하면서도 잔을 채웠다.
“네, 물론입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아니, 그러니까 저는 원래 검술 시연을…….”
푸리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포기해, 아스트리트. 오늘은 요리대회였어.”
아스트리트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레이튼은 허브차를 들고 말했다.
“검으로 지키는 생명과, 차로 진정시키는 생명은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지요.”
아스트리트는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죠니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좋네. 과하게 멋 부리지 않아서 더 좋아.”
아스트리트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안심했다.
“그건 칭찬인가요?”
“응. 푸리나가 붙였으면 꽃이 세 배는 많았을 거야.”
푸리나는 항의했다.
“그게 뭐가 나빠!”
그레이가 대답했다.
“식용 꽃 수급량과 예산이 나빠집니다.”
아스트리트는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제가 덜 꾸민 것이 다행이었군요.”
“응!”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하지만 다음엔 조금 더 꾸며도 돼!”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사전 승인 후에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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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이 깊어질수록, 음식은 점점 섞였다.
누군가는 민다우가스의 스튜에 요안나의 빵을 찍어 먹었다.
누군가는 벨라의 수프 뒤에 아스트리트의 허브차를 마셨다.
누군가는 호흐마이스터의 보존식을 타마르의 빵과 비교했고, 곧 비교를 포기했다.
라이자의 은꽃 과자는 거의 모든 접시 옆에 하나씩 놓였다.
스토얀카의 요리는 그레이의 감독 아래 아주 조금씩만 나갔는데도, 묘하게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그레이는 마지막 배식표를 확인했다.
“남은 음식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푸리나는 놀라서 물었다.
“부족해?”
“아닙니다. 거의 적정량입니다.”
“그럼 좋은 거지?”
그레이는 장부를 닫았다.
“예. 좋은 일입니다.”
푸리나는 가슴을 폈다.
“봤지? 나의 요리대회는 성공이야!”
그레이는 그녀를 보았다.
“폐하께서는 요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열었잖아!”
“그 점은 인정합니다.”
죠니가 옆에서 말했다.
“열고, 휘젓고, 사고 치기 직전에 멈췄지.”
“마지막이 중요해?”
“아주.”
하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멈추지 않은 가능성에서는 스토얀카 전하의 꽃과 라플리 경의 번개가 만났소.”
그레이의 얼굴이 굳었다.
“결과는요?”
하융은 잠시 침묵했다.
“맛은 있었다고 하오.”
“그 외에는요?”
“천장이 없었소.”
그레이는 아주 천천히 라플리와 스토얀카를 보았다.
라플리는 시선을 피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그 가능성 재밌네.”
그레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폐기합니다.”
아카식이 아쉬워했다.
“기록만이라도—”
알토가 말했다.
“비공식 위험 사례로만 보존하겠습니다.”
푸리나는 작게 속삭였다.
“조금 보고 싶긴 하다.”
죠니가 바로 말했다.
“안 돼, 여왕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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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더 깊어졌을 때, 여관의 성좌는 빈 그릇들을 바라보았다.
비어 있는 그릇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누군가 먹었다.
누군가 삼켰다.
누군가 한 숟가락 더 달라고 했다.
누군가 남은 빵을 싸가도 되는지 물었다.
그것은 식탁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식탁이 제 일을 했다는 뜻이었다.
여관의 성좌는 천천히 말했다.
“좋은 밤이군요.”
푸리나는 그의 옆에 섰다.
“정말요?”
“예.”
“대회 같지는 않았죠?”
“여관의 식탁은 대개 그렇습니다.”
여관의 성좌는 빈 그릇 하나를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다음에는 어떤 맛인지 이야기하지요.
하지만 마지막에는, 누가 더 먹을 수 있는지 묻게 됩니다.”
푸리나는 웃었다.
“그거 죠니 얘기 같네요.”
죠니가 멀리서 말했다.
“들었어.”
여관의 성좌는 부드럽게 웃었다.
“좋은 요리는 배를 채웁니다.
더 좋은 요리는, 길을 기억하게 하지요.”
그는 식탁 위의 남은 빵과 그릇들을 보았다.
“하지만 오늘 밤 가장 좋은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뭔데요?”
여관의 성좌는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다시 달라고 내밀어진 그릇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식탁을 보았다.
아이의 빈 그릇.
부상병의 빈 그릇.
죠니의 두 번째 그릇.
소피아가 깨끗이 비운 작은 그릇.
누군가 죽은 사람의 이름 앞에 놓았다가, 나중에 조용히 먹은 빵 접시.
그리고 아레의 솥 앞에 조용히 쌓인 그릇들.
말없이 먹고, 말없이 비우고, 조금 더 먹고 싶어 다시 내민 그릇들.
푸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녀는 아주 작게 말했다.
“그게 제일 좋네.”
그리고 그때, 그레이가 다가왔다.
“폐하.”
푸리나는 웃으며 돌아보았다.
“정산?”
“예.”
“지금?”
“식탁이 끝났으므로 지금입니다.”
죠니가 웃었다.
“현실이 돌아왔네.”
그레이는 장부를 펼쳤다.
“총평입니다. 중대한 식중독 없음. 심사위원 생존. 아이들 식사 완료. 부상병 식사 완료. 남은 음식 적정. 조리장 손상 경미. 단, 라플리님과 스토얀카 전하의 조합은 향후 모든 행사에서 사전 분리 배치가 필요합니다.”
라플리가 외쳤다.
“아직 같이 안 했다니까!”
스토얀카는 웃었다.
“다음엔 같이 해볼까?”
그레이는 즉시 말했다.
“불허합니다.”
푸리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크고 밝았다.
하지만 아주 조금 달랐다.
그것은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웃음이 아니라, 식탁 끝에서 누군가가 빈 그릇을 다시 내미는 것을 보고 짓는 웃음이었다.
왕관의 식탁은 그렇게 깊어졌다.
그리고 아직, 밤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