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88여관◆zAR16hM8he(ca47ad90)2026-05-12 (화) 23:46:34
《왕관의 식탁》
4장. 식탁에 남은 기록
왕관의 식탁이 깊어지자, 사람들은 더 이상 음식 앞에서 나라 이름을 먼저 묻지 않았다.
“이건 어디 음식입니까?”보다,
“조금 더 받을 수 있습니까?”가 먼저 나왔다.
그 사실이 푸리나는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각자의 깃발이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숲, 헝가리의 성벽, 니케아의 자주빛 불, 보헤미아의 은꽃, 튜튼의 행군식, 불가리아의 세 접시, 조지아의 황혼, 세르비아의 침묵, 리보니아의 허브.
그런데 먹는 사람들의 손을 지나자, 그것들은 조금씩 섞였다.
요안나의 빵으로 민다우가스의 스튜를 찍어 먹는 아이가 있었고, 벨라의 수프를 먹은 뒤 아스트리트의 허브차를 마시는 노병이 있었다.
호흐마이스터의 보존식을 씹다가 라이자의 은꽃 과자를 받아든 튜튼 기사는 한동안 자기 신앙과 보급 규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아카식은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아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는 민다우가스의 숲 스튜를 한 숟가락 먹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알토가 옆에서 그를 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이거 맛있네.”
“맛있으면 드십시오.”
“아니, 그러니까 정말 맛있어. 기록 가치가 있다기보다 그냥 맛있어.”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그 차이를 지금 깨달으셨습니까?”
아카식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대단하네. 굶지 않기 위한 음식을 이렇게 만들다니.”
알토는 그릇을 받아 한 숟가락 맛보았다.
그리고 아주 짧게 말했다.
“좋군요.”
아카식이 눈을 빛냈다.
“알토가 좋다고 했어.”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기록할까?”
“조용히 드십시오.”
“너무해.”
“식기 전에 드시는 편이 낫습니다.”
아카식은 잠시 알토를 보다가 웃었다.
“그래. 그 말이 맞네.”
그는 정말로 조용히 한 숟가락을 더 먹었다.
정말 잠시였다.
푸리나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아카식이 조용해졌어.”
죠니가 옆에서 그릇을 들고 말했다.
“맛있는 건 가끔 성좌도 조용하게 만드나 보지.”
“죠니, 그거 엄청난 발견 아니야?”
“학회 발표는 하지 마, 여왕님.”
“왜?”
“밥 먹다 귀찮아져.”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아카식은 그런 푸리나를 알아차린 듯 손을 흔들었다.
“푸리나! 이 스튜, 좋은데?”
푸리나는 기뻐서 손을 흔들었다.
“그렇지?”
“응. 기록하고 싶은 맛이라기보다, 한 그릇 더 먹고 싶은 맛이야.”
알토가 조용히 덧붙였다.
“그것도 기록이 됩니다.”
아카식은 알토를 보았다.
알토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이 다시 먹고 싶어 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남길 만합니다.”
아카식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부드럽게 웃었다.
“그건 네 말이 맞아.”
알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은, 오래 함께한 두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한 종류의 침묵이었다.
---
그레이는 남은 음식의 양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남은 음식, 남은 그릇, 깨진 접시, 빌려온 조리도구, 손상된 식탁보, 은꽃 장식, 격리 보관 중인 스토얀카의 꽃, 라플리 경이 “실험하지 않은” 번개 조리 가능성까지 전부 확인하고 있었다.
“라플리 경.”
그레이가 불렀다.
라플리는 허브차를 홀짝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왜?”
“조리장 내 천상계 마력 잔류 반응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안 쐈다니까.”
“쏘지 않았는데 남아 있으면 더 문제입니다.”
라플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 재능이 너무 뛰어나서?”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루나리아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라플리, 그 대답은 방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카를로타도 덧붙였다.
“냄비 손잡이에 전하가 남아 있습니다. 접촉 시 따끔합니다.”
라플리는 투덜거렸다.
“귀족 놈들 냄비가 약한 거야.”
그레이는 장부에 적었다.
“라플리 경의 주방 내 마력 사용은 향후 사전 허가제로 전환.”
“야, 그거 너무하지 않아?”
하융이 조용히 말했다.
“허가제가 아니었던 가능성에서는 천장이 없었소.”
라플리는 입을 다물었다.
스토얀카는 옆에서 웃었다.
“그 가능성, 점점 마음에 드는데.”
그레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스토얀카 전하와 라플리 경은 향후 모든 조리 행사에서 최소 두 식탁 이상 거리 유지입니다.”
“나는 아직 같이 안 했다니까!”
“그래서 이 식탁이 남아 있습니다.”
죠니가 지나가며 말했다.
“그레이 말이 맞아.”
라플리는 억울한 얼굴로 미하일라를 보았다.
“폐하, 저거 너무 과하지 않아?”
미하일라는 빵을 찢으며 말했다.
“라플리.”
“네.”
“주방은 전장이 아니다.”
라플리는 살짝 눈을 피했다.
“전장보다 까다로운데요.”
미하일라는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 점은 인정한다.”
루나리아가 곧장 말했다.
“인정하시면 안 됩니다. 라플리가 용기를 얻습니다.”
라플리는 빙긋 웃었다.
“이미 얻었어.”
그레이는 더 빠르게 적었다.
“라플리 경 관찰 필요.”
알토가 멀리서 조용히 말했다.
“해당 문장은 공식 기록보다 안전 지침에 적합합니다.”
아카식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알토, 너도 이제 식탁 기록에 꽤 익숙해졌네.”
“아카식이 너무 많이 웃으니 누군가는 정리해야 합니다.”
“나 지금 별로 많이 안 웃었는데?”
“계속 웃고 계십니다.”
아카식은 자기 얼굴을 만져보았다.
“아, 그러네.”
---
한편 벨라와 소피아는 비워진 솥을 확인하고 있었다.
벨라는 솥 바닥에 남은 국물을 보았다.
많이 남지 않았다.
그것은 좋은 일이었다.
소피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 성공한 건가요?”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맛있어서요?”
“맛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벨라는 빈 그릇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다시 내밀었다.”
소피아는 그릇들을 보았다.
작은 손이 내민 그릇.
떨리는 손이 내민 그릇.
나이 든 손이 내민 그릇.
한 그릇을 다 먹고, 조금 더 받을 수 있냐고 묻던 사람들.
“빈 그릇이 좋은 건가요?”
“좋다.”
벨라는 짧게 말했다.
“빈 그릇은 먹었다는 뜻이다.
다시 내민 그릇은 살겠다는 뜻이다.”
소피아는 그 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왕은…… 빈 그릇을 봐야 하나요?”
벨라는 딸을 보았다.
“왕은 가득 찬 창고도 봐야 한다.
비어가는 솥도 봐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내미는 그릇도 봐야 한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벨라는 잠시 침묵했다.
“잘했다.”
소피아의 눈이 커졌다.
벨라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피아는 그 짧은 말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민다우가스가 그 옆을 지나가다 웃었다.
“하하! 헝가리의 여왕은 칭찬도 요새처럼 짓는군. 짧고 단단하다.”
벨라는 그를 보았다.
“칭찬도 많이 쓰면 약해진다.”
“좋은 전략이다.”
민다우가스는 웃으며 자기 솥 쪽을 보았다.
“우리 쪽은 어떻지, 아스테르다스?”
아스테르다스는 국자로 솥 안을 긁어보았다.
“거의 없어. 마지막 한 그릇 정도?”
민다우가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병참표에서 가장 아름다운 숫자는, 굶지 않고 남기지 않는 숫자다.”
아스테르다스는 마지막 그릇을 보고 웃었다.
“그럼 이건?”
민다우가스는 말했다.
“요리한 자가 먹어야지.”
아스테르다스는 그릇을 들고 대공에게 내밀었다.
“대공부터.”
“아니, 내 망치가 간을 살렸으니 절반은 네 몫이다.”
“그럼 나누자.”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하! 좋다. 리투아니아의 마지막 스튜가 둘로 갈라지는군. 다만 다음 전쟁에서는 이렇게 쉽게 나누지 않을 것이다.”
아스테르다스는 따뜻하게 웃었다.
“오늘은 전쟁 아니니까.”
“그렇지.”
민다우가스는 마지막 스튜를 나누어 들었다.
“오늘은 숲이 쉬는 날이다.”
---
니케아의 식탁에서는 요안나가 남은 빵을 싸고 있었다.
미하일라는 그것을 보고 물었다.
“가져가려는가?”
“남으면 아깝잖아요.”
“그대가 만든 빵은 이미 충분히 배식되었다.”
“그래도 내일 아침에 먹을 수 있어요.”
미하일라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평화주의자들은 남은 빵도 외교적으로 다루는군.”
요안나는 웃었다.
“그럼 폐하 몫도 싸드릴까요?”
“짐은……”
미하일라는 거절하려다 멈췄다.
루나리아가 조용히 옆에서 말했다.
“아침 식사는 중요합니다.”
카를로타가 덧붙였다.
“손목 회복에도 도움이 됩니다.”
슈샤니크는 장부를 보며 말했다.
“공동황제 두 분께서 같은 빵을 다음 날 나누어 드시는 것은 상징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미하일라는 세 사람을 천천히 보았다.
“니케아의 신하들이 오늘 정말 지나치게 조직적이군.”
요안나는 빵을 포장하며 말했다.
“그러면 두 조각 넣을게요.”
미하일라는 한숨처럼 짧게 웃었다.
“좋다. 하나는 짐의 몫이고, 하나는 그대의 몫이다.”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먹는 게 좋으니까요.”
미하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아카식은 그 장면을 멀리서 보다가 작게 웃었다.
알토가 말했다.
“기록하지 않으십니까?”
아카식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조금만 볼래.”
알토는 그를 보았다.
아카식은 빵을 싸는 요안나와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미하일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록하면 남지. 그런데 가끔은, 먼저 맛을 보는 게 좋아.”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아카식은 알토를 보았다.
“기록하지 말고?”
“모든 기억이 곧장 문장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아카식은 부드럽게 웃었다.
“알토, 오늘 꽤 인간적인 말을 하네.”
“아카식이 계속 인간적인 일을 하시니,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카식은 기쁜 듯했다.
“그 말은 기록해도 돼?”
“안 됩니다.”
“치사하네.”
“기억하십시오.”
“응. 그럴게.”
---
라이자의 은꽃 과자는 결국 한 접시만 남았다.
그것도 남은 것이라기보다는, 그레이가 “예산 산정용 표본”이라며 압수한 것이었다.
라이자는 아쉬운 얼굴로 그 접시를 보았다.
“하나만 더 나눠주면 안 돼?”
그레이는 단호했다.
“안 됩니다. 표본입니다.”
“먹는 표본?”
“분석하는 표본입니다.”
“먹으면서 분석하면?”
“안 됩니다.”
호흐마이스터가 그 옆에서 진지하게 말했다.
“표본 보존은 중요합니다.”
라이자는 그녀를 보았다.
“너까지?”
“보급안 검토에 필요합니다.”
라이자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다음엔 덜 비싸게 만들게.”
그레이의 손이 멈췄다.
“정말입니까?”
“응. 호흐마이스터가 행군 중에도 먹을 수 있게 해야 하니까.”
호흐마이스터는 시선을 내렸다.
그녀의 갑주 틈에 꽂힌 은꽃은 여전히 작게 빛나고 있었다.
“라이자 전하.”
“응?”
“오늘의 디저트는 사기 유지에 유효했습니다.”
라이자는 눈을 반짝였다.
“정말?”
“예.”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라이자는 그대로 환하게 웃었다.
“그거 엄청난 칭찬이지?”
죠니가 지나가며 말했다.
“튜튼식으로는 거의 노래 부른 수준이네.”
호흐마이스터는 그를 보았다.
“노래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비유야.”
“그렇다면 수용하겠습니다.”
라이자는 웃다가 거의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
불가리아의 세 접시는 거의 비었다.
레플리카의 죽은 가장 먼저 사라졌다.
알렉산드리나의 요리는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맛본 뒤 다시 찾았다.
스토얀카의 요리는 그레이의 감시 때문에 적게 나갔지만, 먹은 사람들 대부분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했다.
스토얀카는 빈 접시를 보며 말했다.
“봐. 다들 좋아했잖아.”
그레이가 말했다.
“제한 배식 덕분입니다.”
레플리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스토얀카는 살짝 입술을 내밀었다.
“재미없어.”
알렉산드리나는 빈 접시를 정리하며 말했다.
“재미만으로 식탁을 운영하면, 다음 날 의사가 필요합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레플리카가 있잖아.”
레플리카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저를 사고 후처리 담당으로 쓰지 마십시오.”
“그럼 사고 예방 담당?”
“더더욱 싫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작게 웃었다.
“오늘만큼은 우리 셋이 한 식탁에서 살아남았군요.”
스토얀카가 말했다.
“그레이 덕분이네.”
그레이는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왜? 칭찬이야.”
레플리카는 아주 작게 말했다.
“오늘만큼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레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상하군요. 불가리아의 세 접시가 킬리키아의 장부에 감사하게 되다니.”
스토얀카는 턱을 괴었다.
“그러게. 세상 끝났나?”
레플리카는 말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정리해야 합니다.”
“너는 정말 변하지 않네.”
“그 점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그렇군요.”
---
타마르의 식탁에는 마지막 빵 한 조각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남겨둔 듯한 조각이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보고 물었다.
“저건 누구 거야?”
타마르는 포도주잔을 천천히 돌렸다.
“아직 이름을 부르지 못한 이의 몫이랍니다.”
“그런 사람도 있어?”
“많지요.”
타마르는 조용히 웃었다.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어떤 이름은 입술에 닿기까지 아주 오래 걸리지요.”
푸리나는 빵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럼 계속 남겨둬?”
“오늘 밤은요.”
타마르는 여관의 성좌를 보았다.
“여관에서는 빈자리도 밤을 보낼 수 있지요?”
여관의 성좌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아레는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말을 들었다.
그녀는 자기 솥을 닫고 있었다.
푸리나는 타마르와 아레를 번갈아 보았다.
타마르는 빈자리를 남겨두는 사람.
아레는 돌아온 자에게 따뜻한 것을 주는 사람.
둘은 닮았지만 같지 않았다.
푸리나는 그 차이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레이튼이 옆에서 말했다.
“수수께끼가 하나 풀렸습니까?”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아니. 더 생겼어.”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더 좋은 밤일 때가 많지요.”
---
아스트리트는 마지막 허브차 주전자를 비웠다.
그녀는 아직도 조금 어색해 보였다.
그러나 처음처럼 당황하지는 않았다.
푸리나가 물었다.
“어때? 요리대회도 나쁘지 않았지?”
아스트리트는 생각했다.
“검술 시연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응!”
“하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손이 덜 떨리게 되는 것도, 생명을 긍정하는 방식이겠지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이야.”
아스트리트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다만 다음 초대장에는 정확히 적어주십시오.”
푸리나는 시선을 피했다.
“아, 그건……”
그레이가 옆에서 말했다.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아스트리트는 깊게 안도했다.
“감사합니다.”
죠니가 말했다.
“그레이가 확인하면 검술 시연이 요리대회가 되진 않겠네.”
푸리나는 항의했다.
“그건 우연이야!”
알토가 멀리서 말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반복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푸리나의 초대장 사고, 이건 기록할 가치가 있는데.”
푸리나는 바로 말했다.
“그건 기록하지 마!”
아카식은 알토를 보았다.
“어떻게 할까?”
알토는 잠시 생각했다.
“공식 기록에서는 ‘행사 성격 조정’으로 완화하겠습니다.”
푸리나가 안도했다.
아카식은 웃으며 말했다.
“비공식 기억에는 남겨둘게.”
“아카식!”
“왜? 귀여웠어.”
“그게 더 부끄럽잖아!”
---
밤이 식어갈 무렵, 여관의 성좌는 식탁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빈 그릇들은 쌓였고, 냄비들은 바닥을 보였으며, 식탁보에는 수프 자국과 포도주 자국이 남았다.
그레이는 그것을 보고 잠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탁 비용이……”
죠니가 말했다.
“그레이.”
“예.”
“오늘은 조금 늦게 계산해도 되지 않아?”
그레이는 그를 보았다.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식탁이 방금 끝났잖아. 숫자는 도망 안 가.”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숫자는 도망가지 않지만, 폐하의 추가 지출은 도망치듯 발생합니다.”
푸리나는 딴청을 피웠다.
“누가?”
“폐하입니다.”
“아.”
여관의 성좌는 웃었다.
“정산도 식탁의 일부입니다. 다만 오늘은 마지막 잔을 마신 뒤에 하셔도 좋겠지요.”
그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장부를 닫았다.
“그럼 마지막 잔까지입니다.”
푸리나는 감동한 얼굴이 되었다.
“그레이가 장부를 닫았어.”
죠니가 낮게 말했다.
“이건 오늘의 진짜 기적일지도 모르겠네.”
그레이는 그를 보았다.
“다시 열 수 있습니다.”
“미안.”
여관의 성좌는 모두에게 따뜻한 차를 나누어주었다.
아카식은 그 차를 받아들고 말했다.
“알토.”
“예.”
“이 밤은 어떻게 기록하면 좋을까?”
알토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식탁을 보았다.
민다우가스와 아스테르다스가 마지막 스튜를 나누는 모습.
벨라가 소피아에게 빈 그릇의 의미를 가르치는 모습.
미하일라가 요안나가 싸준 빵을 받아들이는 모습.
라이자가 호흐마이스터의 작은 칭찬에 웃는 모습.
불가리아의 세 차르가 같은 식탁을 치우는 모습.
아레의 솥 앞에 말없이 쌓인 빈 그릇들.
타마르가 이름 없는 빵 조각을 남겨두는 모습.
아스트리트가 빈 주전자를 들고 안도하는 모습.
푸리나가 자기가 연 대회가 대회가 아니게 된 것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
알토는 천천히 말했다.
“왕들이 무엇을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아카식은 그를 보았다.
알토는 이어 말했다.
“사람들이 무엇을 다시 찾았는지로 기록하면 좋겠습니다.”
아카식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너, 오늘 정말 좋은 말 많이 하네.”
“아카식.”
“응?”
“이번에는 기록해도 됩니다.”
아카식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알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말은 저도 남기고 싶습니다.”
아카식은 기록장을 펼쳤다.
하지만 곧장 쓰지 않았다.
그는 먼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좋네.”
알토가 물었다.
“차가 말입니까, 기록이 말입니까?”
“둘 다.”
아카식은 웃었다.
“인간들이 왜 식탁을 오래 기억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아.”
알토는 조용히 답했다.
“그것도 좋은 기록입니다.”
---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식탁 중앙에 섰다.
처음처럼 종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종을 크게 울리지 않았다.
작게, 딸랑.
한 번만 울렸다.
사람들이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국자가 아니라 빈 그릇 하나를 들고 있었다.
“오늘의 요리대회는…….”
그녀는 잠시 멈췄다.
“아니, 오늘의 식탁은 여기서 마무리할게.”
죠니가 작게 말했다.
“좋아. 이번엔 제대로 불렀네.”
푸리나는 그를 보며 살짝 웃었다.
그리고 다시 모두를 보았다.
“누가 이겼는지는 정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정하려고 했는데, 다들 먹고 나니까 좀 이상해졌어.”
민다우가스가 웃었다.
“하하! 좋은 혼란이다.”
벨라는 짧게 말했다.
“이길 필요 없는 식탁도 있다.”
미하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보다 배식이 우선된 밤이었다.”
요안나는 웃었다.
“그리고 모두가 조금씩 나눴죠.”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서 오늘의 상은 이것입니다.”
그녀는 빈 그릇을 들어 올렸다.
“다시 내밀어진 그릇상!”
잠시 침묵.
죠니가 낮게 말했다.
“이름은 좀 이상한데, 의미는 괜찮네.”
그레이는 장부를 열려다가 참았다.
“공식 명칭은 추후 조정하겠습니다.”
푸리나는 모른 척했다.
“이 상은 모든 요리와, 모든 조리자와, 모든 먹은 사람에게 드립니다!”
라이자가 박수를 쳤다.
아스트리트도 조금 늦게 따라 쳤다.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고, 벨라는 짧고 무겁게 손뼉을 쳤다.
미하일라는 아주 절제되게 박수를 보냈고, 요안나는 그 옆에서 조금 더 밝게 박수를 쳤다.
호흐마이스터는 정확한 박수 간격을 유지했고, 라이자는 그보다 두 배 빠르게 쳤다.
불가리아의 세 차르는 서로 다른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타마르는 포도주잔을 들었고, 아레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여관의 성좌는 말했다.
“좋은 상입니다.”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정말요?”
“예.”
그는 빈 그릇을 보았다.
“빈 그릇은 끝난 식사의 흔적이지만, 다시 내민 그릇은 내일을 믿는 손짓입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천천히 들었다.
그러고는 웃었다.
“그럼 성공이네요.”
여관의 성좌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늘 밤은 성공한 식탁입니다.”
밖에서는 새벽 전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왕들은 곧 다시 왕관을 쓰고 각자의 길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의 앞에는 아직 따뜻한 차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빈 그릇 몇 개가, 다시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4장. 식탁에 남은 기록
왕관의 식탁이 깊어지자, 사람들은 더 이상 음식 앞에서 나라 이름을 먼저 묻지 않았다.
“이건 어디 음식입니까?”보다,
“조금 더 받을 수 있습니까?”가 먼저 나왔다.
그 사실이 푸리나는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각자의 깃발이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숲, 헝가리의 성벽, 니케아의 자주빛 불, 보헤미아의 은꽃, 튜튼의 행군식, 불가리아의 세 접시, 조지아의 황혼, 세르비아의 침묵, 리보니아의 허브.
그런데 먹는 사람들의 손을 지나자, 그것들은 조금씩 섞였다.
요안나의 빵으로 민다우가스의 스튜를 찍어 먹는 아이가 있었고, 벨라의 수프를 먹은 뒤 아스트리트의 허브차를 마시는 노병이 있었다.
호흐마이스터의 보존식을 씹다가 라이자의 은꽃 과자를 받아든 튜튼 기사는 한동안 자기 신앙과 보급 규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아카식은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아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는 민다우가스의 숲 스튜를 한 숟가락 먹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알토가 옆에서 그를 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이거 맛있네.”
“맛있으면 드십시오.”
“아니, 그러니까 정말 맛있어. 기록 가치가 있다기보다 그냥 맛있어.”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그 차이를 지금 깨달으셨습니까?”
아카식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대단하네. 굶지 않기 위한 음식을 이렇게 만들다니.”
알토는 그릇을 받아 한 숟가락 맛보았다.
그리고 아주 짧게 말했다.
“좋군요.”
아카식이 눈을 빛냈다.
“알토가 좋다고 했어.”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기록할까?”
“조용히 드십시오.”
“너무해.”
“식기 전에 드시는 편이 낫습니다.”
아카식은 잠시 알토를 보다가 웃었다.
“그래. 그 말이 맞네.”
그는 정말로 조용히 한 숟가락을 더 먹었다.
정말 잠시였다.
푸리나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아카식이 조용해졌어.”
죠니가 옆에서 그릇을 들고 말했다.
“맛있는 건 가끔 성좌도 조용하게 만드나 보지.”
“죠니, 그거 엄청난 발견 아니야?”
“학회 발표는 하지 마, 여왕님.”
“왜?”
“밥 먹다 귀찮아져.”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아카식은 그런 푸리나를 알아차린 듯 손을 흔들었다.
“푸리나! 이 스튜, 좋은데?”
푸리나는 기뻐서 손을 흔들었다.
“그렇지?”
“응. 기록하고 싶은 맛이라기보다, 한 그릇 더 먹고 싶은 맛이야.”
알토가 조용히 덧붙였다.
“그것도 기록이 됩니다.”
아카식은 알토를 보았다.
알토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이 다시 먹고 싶어 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남길 만합니다.”
아카식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부드럽게 웃었다.
“그건 네 말이 맞아.”
알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은, 오래 함께한 두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한 종류의 침묵이었다.
---
그레이는 남은 음식의 양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남은 음식, 남은 그릇, 깨진 접시, 빌려온 조리도구, 손상된 식탁보, 은꽃 장식, 격리 보관 중인 스토얀카의 꽃, 라플리 경이 “실험하지 않은” 번개 조리 가능성까지 전부 확인하고 있었다.
“라플리 경.”
그레이가 불렀다.
라플리는 허브차를 홀짝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왜?”
“조리장 내 천상계 마력 잔류 반응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안 쐈다니까.”
“쏘지 않았는데 남아 있으면 더 문제입니다.”
라플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 재능이 너무 뛰어나서?”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루나리아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라플리, 그 대답은 방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카를로타도 덧붙였다.
“냄비 손잡이에 전하가 남아 있습니다. 접촉 시 따끔합니다.”
라플리는 투덜거렸다.
“귀족 놈들 냄비가 약한 거야.”
그레이는 장부에 적었다.
“라플리 경의 주방 내 마력 사용은 향후 사전 허가제로 전환.”
“야, 그거 너무하지 않아?”
하융이 조용히 말했다.
“허가제가 아니었던 가능성에서는 천장이 없었소.”
라플리는 입을 다물었다.
스토얀카는 옆에서 웃었다.
“그 가능성, 점점 마음에 드는데.”
그레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스토얀카 전하와 라플리 경은 향후 모든 조리 행사에서 최소 두 식탁 이상 거리 유지입니다.”
“나는 아직 같이 안 했다니까!”
“그래서 이 식탁이 남아 있습니다.”
죠니가 지나가며 말했다.
“그레이 말이 맞아.”
라플리는 억울한 얼굴로 미하일라를 보았다.
“폐하, 저거 너무 과하지 않아?”
미하일라는 빵을 찢으며 말했다.
“라플리.”
“네.”
“주방은 전장이 아니다.”
라플리는 살짝 눈을 피했다.
“전장보다 까다로운데요.”
미하일라는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 점은 인정한다.”
루나리아가 곧장 말했다.
“인정하시면 안 됩니다. 라플리가 용기를 얻습니다.”
라플리는 빙긋 웃었다.
“이미 얻었어.”
그레이는 더 빠르게 적었다.
“라플리 경 관찰 필요.”
알토가 멀리서 조용히 말했다.
“해당 문장은 공식 기록보다 안전 지침에 적합합니다.”
아카식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알토, 너도 이제 식탁 기록에 꽤 익숙해졌네.”
“아카식이 너무 많이 웃으니 누군가는 정리해야 합니다.”
“나 지금 별로 많이 안 웃었는데?”
“계속 웃고 계십니다.”
아카식은 자기 얼굴을 만져보았다.
“아,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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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벨라와 소피아는 비워진 솥을 확인하고 있었다.
벨라는 솥 바닥에 남은 국물을 보았다.
많이 남지 않았다.
그것은 좋은 일이었다.
소피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 성공한 건가요?”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맛있어서요?”
“맛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벨라는 빈 그릇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다시 내밀었다.”
소피아는 그릇들을 보았다.
작은 손이 내민 그릇.
떨리는 손이 내민 그릇.
나이 든 손이 내민 그릇.
한 그릇을 다 먹고, 조금 더 받을 수 있냐고 묻던 사람들.
“빈 그릇이 좋은 건가요?”
“좋다.”
벨라는 짧게 말했다.
“빈 그릇은 먹었다는 뜻이다.
다시 내민 그릇은 살겠다는 뜻이다.”
소피아는 그 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왕은…… 빈 그릇을 봐야 하나요?”
벨라는 딸을 보았다.
“왕은 가득 찬 창고도 봐야 한다.
비어가는 솥도 봐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내미는 그릇도 봐야 한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벨라는 잠시 침묵했다.
“잘했다.”
소피아의 눈이 커졌다.
벨라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피아는 그 짧은 말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민다우가스가 그 옆을 지나가다 웃었다.
“하하! 헝가리의 여왕은 칭찬도 요새처럼 짓는군. 짧고 단단하다.”
벨라는 그를 보았다.
“칭찬도 많이 쓰면 약해진다.”
“좋은 전략이다.”
민다우가스는 웃으며 자기 솥 쪽을 보았다.
“우리 쪽은 어떻지, 아스테르다스?”
아스테르다스는 국자로 솥 안을 긁어보았다.
“거의 없어. 마지막 한 그릇 정도?”
민다우가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병참표에서 가장 아름다운 숫자는, 굶지 않고 남기지 않는 숫자다.”
아스테르다스는 마지막 그릇을 보고 웃었다.
“그럼 이건?”
민다우가스는 말했다.
“요리한 자가 먹어야지.”
아스테르다스는 그릇을 들고 대공에게 내밀었다.
“대공부터.”
“아니, 내 망치가 간을 살렸으니 절반은 네 몫이다.”
“그럼 나누자.”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하! 좋다. 리투아니아의 마지막 스튜가 둘로 갈라지는군. 다만 다음 전쟁에서는 이렇게 쉽게 나누지 않을 것이다.”
아스테르다스는 따뜻하게 웃었다.
“오늘은 전쟁 아니니까.”
“그렇지.”
민다우가스는 마지막 스튜를 나누어 들었다.
“오늘은 숲이 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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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의 식탁에서는 요안나가 남은 빵을 싸고 있었다.
미하일라는 그것을 보고 물었다.
“가져가려는가?”
“남으면 아깝잖아요.”
“그대가 만든 빵은 이미 충분히 배식되었다.”
“그래도 내일 아침에 먹을 수 있어요.”
미하일라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평화주의자들은 남은 빵도 외교적으로 다루는군.”
요안나는 웃었다.
“그럼 폐하 몫도 싸드릴까요?”
“짐은……”
미하일라는 거절하려다 멈췄다.
루나리아가 조용히 옆에서 말했다.
“아침 식사는 중요합니다.”
카를로타가 덧붙였다.
“손목 회복에도 도움이 됩니다.”
슈샤니크는 장부를 보며 말했다.
“공동황제 두 분께서 같은 빵을 다음 날 나누어 드시는 것은 상징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미하일라는 세 사람을 천천히 보았다.
“니케아의 신하들이 오늘 정말 지나치게 조직적이군.”
요안나는 빵을 포장하며 말했다.
“그러면 두 조각 넣을게요.”
미하일라는 한숨처럼 짧게 웃었다.
“좋다. 하나는 짐의 몫이고, 하나는 그대의 몫이다.”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먹는 게 좋으니까요.”
미하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아카식은 그 장면을 멀리서 보다가 작게 웃었다.
알토가 말했다.
“기록하지 않으십니까?”
아카식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조금만 볼래.”
알토는 그를 보았다.
아카식은 빵을 싸는 요안나와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미하일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록하면 남지. 그런데 가끔은, 먼저 맛을 보는 게 좋아.”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아카식은 알토를 보았다.
“기록하지 말고?”
“모든 기억이 곧장 문장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아카식은 부드럽게 웃었다.
“알토, 오늘 꽤 인간적인 말을 하네.”
“아카식이 계속 인간적인 일을 하시니,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카식은 기쁜 듯했다.
“그 말은 기록해도 돼?”
“안 됩니다.”
“치사하네.”
“기억하십시오.”
“응.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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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자의 은꽃 과자는 결국 한 접시만 남았다.
그것도 남은 것이라기보다는, 그레이가 “예산 산정용 표본”이라며 압수한 것이었다.
라이자는 아쉬운 얼굴로 그 접시를 보았다.
“하나만 더 나눠주면 안 돼?”
그레이는 단호했다.
“안 됩니다. 표본입니다.”
“먹는 표본?”
“분석하는 표본입니다.”
“먹으면서 분석하면?”
“안 됩니다.”
호흐마이스터가 그 옆에서 진지하게 말했다.
“표본 보존은 중요합니다.”
라이자는 그녀를 보았다.
“너까지?”
“보급안 검토에 필요합니다.”
라이자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다음엔 덜 비싸게 만들게.”
그레이의 손이 멈췄다.
“정말입니까?”
“응. 호흐마이스터가 행군 중에도 먹을 수 있게 해야 하니까.”
호흐마이스터는 시선을 내렸다.
그녀의 갑주 틈에 꽂힌 은꽃은 여전히 작게 빛나고 있었다.
“라이자 전하.”
“응?”
“오늘의 디저트는 사기 유지에 유효했습니다.”
라이자는 눈을 반짝였다.
“정말?”
“예.”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라이자는 그대로 환하게 웃었다.
“그거 엄청난 칭찬이지?”
죠니가 지나가며 말했다.
“튜튼식으로는 거의 노래 부른 수준이네.”
호흐마이스터는 그를 보았다.
“노래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비유야.”
“그렇다면 수용하겠습니다.”
라이자는 웃다가 거의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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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세 접시는 거의 비었다.
레플리카의 죽은 가장 먼저 사라졌다.
알렉산드리나의 요리는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맛본 뒤 다시 찾았다.
스토얀카의 요리는 그레이의 감시 때문에 적게 나갔지만, 먹은 사람들 대부분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했다.
스토얀카는 빈 접시를 보며 말했다.
“봐. 다들 좋아했잖아.”
그레이가 말했다.
“제한 배식 덕분입니다.”
레플리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스토얀카는 살짝 입술을 내밀었다.
“재미없어.”
알렉산드리나는 빈 접시를 정리하며 말했다.
“재미만으로 식탁을 운영하면, 다음 날 의사가 필요합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레플리카가 있잖아.”
레플리카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저를 사고 후처리 담당으로 쓰지 마십시오.”
“그럼 사고 예방 담당?”
“더더욱 싫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작게 웃었다.
“오늘만큼은 우리 셋이 한 식탁에서 살아남았군요.”
스토얀카가 말했다.
“그레이 덕분이네.”
그레이는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왜? 칭찬이야.”
레플리카는 아주 작게 말했다.
“오늘만큼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레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상하군요. 불가리아의 세 접시가 킬리키아의 장부에 감사하게 되다니.”
스토얀카는 턱을 괴었다.
“그러게. 세상 끝났나?”
레플리카는 말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정리해야 합니다.”
“너는 정말 변하지 않네.”
“그 점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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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르의 식탁에는 마지막 빵 한 조각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남겨둔 듯한 조각이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보고 물었다.
“저건 누구 거야?”
타마르는 포도주잔을 천천히 돌렸다.
“아직 이름을 부르지 못한 이의 몫이랍니다.”
“그런 사람도 있어?”
“많지요.”
타마르는 조용히 웃었다.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어떤 이름은 입술에 닿기까지 아주 오래 걸리지요.”
푸리나는 빵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럼 계속 남겨둬?”
“오늘 밤은요.”
타마르는 여관의 성좌를 보았다.
“여관에서는 빈자리도 밤을 보낼 수 있지요?”
여관의 성좌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아레는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말을 들었다.
그녀는 자기 솥을 닫고 있었다.
푸리나는 타마르와 아레를 번갈아 보았다.
타마르는 빈자리를 남겨두는 사람.
아레는 돌아온 자에게 따뜻한 것을 주는 사람.
둘은 닮았지만 같지 않았다.
푸리나는 그 차이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레이튼이 옆에서 말했다.
“수수께끼가 하나 풀렸습니까?”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아니. 더 생겼어.”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더 좋은 밤일 때가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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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트는 마지막 허브차 주전자를 비웠다.
그녀는 아직도 조금 어색해 보였다.
그러나 처음처럼 당황하지는 않았다.
푸리나가 물었다.
“어때? 요리대회도 나쁘지 않았지?”
아스트리트는 생각했다.
“검술 시연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응!”
“하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손이 덜 떨리게 되는 것도, 생명을 긍정하는 방식이겠지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이야.”
아스트리트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다만 다음 초대장에는 정확히 적어주십시오.”
푸리나는 시선을 피했다.
“아, 그건……”
그레이가 옆에서 말했다.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아스트리트는 깊게 안도했다.
“감사합니다.”
죠니가 말했다.
“그레이가 확인하면 검술 시연이 요리대회가 되진 않겠네.”
푸리나는 항의했다.
“그건 우연이야!”
알토가 멀리서 말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반복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푸리나의 초대장 사고, 이건 기록할 가치가 있는데.”
푸리나는 바로 말했다.
“그건 기록하지 마!”
아카식은 알토를 보았다.
“어떻게 할까?”
알토는 잠시 생각했다.
“공식 기록에서는 ‘행사 성격 조정’으로 완화하겠습니다.”
푸리나가 안도했다.
아카식은 웃으며 말했다.
“비공식 기억에는 남겨둘게.”
“아카식!”
“왜? 귀여웠어.”
“그게 더 부끄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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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식어갈 무렵, 여관의 성좌는 식탁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빈 그릇들은 쌓였고, 냄비들은 바닥을 보였으며, 식탁보에는 수프 자국과 포도주 자국이 남았다.
그레이는 그것을 보고 잠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탁 비용이……”
죠니가 말했다.
“그레이.”
“예.”
“오늘은 조금 늦게 계산해도 되지 않아?”
그레이는 그를 보았다.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식탁이 방금 끝났잖아. 숫자는 도망 안 가.”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숫자는 도망가지 않지만, 폐하의 추가 지출은 도망치듯 발생합니다.”
푸리나는 딴청을 피웠다.
“누가?”
“폐하입니다.”
“아.”
여관의 성좌는 웃었다.
“정산도 식탁의 일부입니다. 다만 오늘은 마지막 잔을 마신 뒤에 하셔도 좋겠지요.”
그레이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장부를 닫았다.
“그럼 마지막 잔까지입니다.”
푸리나는 감동한 얼굴이 되었다.
“그레이가 장부를 닫았어.”
죠니가 낮게 말했다.
“이건 오늘의 진짜 기적일지도 모르겠네.”
그레이는 그를 보았다.
“다시 열 수 있습니다.”
“미안.”
여관의 성좌는 모두에게 따뜻한 차를 나누어주었다.
아카식은 그 차를 받아들고 말했다.
“알토.”
“예.”
“이 밤은 어떻게 기록하면 좋을까?”
알토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식탁을 보았다.
민다우가스와 아스테르다스가 마지막 스튜를 나누는 모습.
벨라가 소피아에게 빈 그릇의 의미를 가르치는 모습.
미하일라가 요안나가 싸준 빵을 받아들이는 모습.
라이자가 호흐마이스터의 작은 칭찬에 웃는 모습.
불가리아의 세 차르가 같은 식탁을 치우는 모습.
아레의 솥 앞에 말없이 쌓인 빈 그릇들.
타마르가 이름 없는 빵 조각을 남겨두는 모습.
아스트리트가 빈 주전자를 들고 안도하는 모습.
푸리나가 자기가 연 대회가 대회가 아니게 된 것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
알토는 천천히 말했다.
“왕들이 무엇을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아카식은 그를 보았다.
알토는 이어 말했다.
“사람들이 무엇을 다시 찾았는지로 기록하면 좋겠습니다.”
아카식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너, 오늘 정말 좋은 말 많이 하네.”
“아카식.”
“응?”
“이번에는 기록해도 됩니다.”
아카식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알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말은 저도 남기고 싶습니다.”
아카식은 기록장을 펼쳤다.
하지만 곧장 쓰지 않았다.
그는 먼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좋네.”
알토가 물었다.
“차가 말입니까, 기록이 말입니까?”
“둘 다.”
아카식은 웃었다.
“인간들이 왜 식탁을 오래 기억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아.”
알토는 조용히 답했다.
“그것도 좋은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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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리나는 마지막으로 식탁 중앙에 섰다.
처음처럼 종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종을 크게 울리지 않았다.
작게, 딸랑.
한 번만 울렸다.
사람들이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국자가 아니라 빈 그릇 하나를 들고 있었다.
“오늘의 요리대회는…….”
그녀는 잠시 멈췄다.
“아니, 오늘의 식탁은 여기서 마무리할게.”
죠니가 작게 말했다.
“좋아. 이번엔 제대로 불렀네.”
푸리나는 그를 보며 살짝 웃었다.
그리고 다시 모두를 보았다.
“누가 이겼는지는 정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정하려고 했는데, 다들 먹고 나니까 좀 이상해졌어.”
민다우가스가 웃었다.
“하하! 좋은 혼란이다.”
벨라는 짧게 말했다.
“이길 필요 없는 식탁도 있다.”
미하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보다 배식이 우선된 밤이었다.”
요안나는 웃었다.
“그리고 모두가 조금씩 나눴죠.”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서 오늘의 상은 이것입니다.”
그녀는 빈 그릇을 들어 올렸다.
“다시 내밀어진 그릇상!”
잠시 침묵.
죠니가 낮게 말했다.
“이름은 좀 이상한데, 의미는 괜찮네.”
그레이는 장부를 열려다가 참았다.
“공식 명칭은 추후 조정하겠습니다.”
푸리나는 모른 척했다.
“이 상은 모든 요리와, 모든 조리자와, 모든 먹은 사람에게 드립니다!”
라이자가 박수를 쳤다.
아스트리트도 조금 늦게 따라 쳤다.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고, 벨라는 짧고 무겁게 손뼉을 쳤다.
미하일라는 아주 절제되게 박수를 보냈고, 요안나는 그 옆에서 조금 더 밝게 박수를 쳤다.
호흐마이스터는 정확한 박수 간격을 유지했고, 라이자는 그보다 두 배 빠르게 쳤다.
불가리아의 세 차르는 서로 다른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타마르는 포도주잔을 들었고, 아레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여관의 성좌는 말했다.
“좋은 상입니다.”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정말요?”
“예.”
그는 빈 그릇을 보았다.
“빈 그릇은 끝난 식사의 흔적이지만, 다시 내민 그릇은 내일을 믿는 손짓입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천천히 들었다.
그러고는 웃었다.
“그럼 성공이네요.”
여관의 성좌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늘 밤은 성공한 식탁입니다.”
밖에서는 새벽 전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왕들은 곧 다시 왕관을 쓰고 각자의 길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의 앞에는 아직 따뜻한 차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빈 그릇 몇 개가, 다시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