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93여관◆zAR16hM8he(c14fec70)2026-05-13 (수) 05:59:46
《잘못 배달된 왕관의 편지》
1장. 대본 없는 편지극
푸리나 헤툼은 이번에야말로 준비되어 있었다.
정말로.
초대장은 정확했다.
행사명도 정확했다.
참여 방식도 정확했다.
검술 시연 여부도 정확했다.
요리대회 여부도 정확했다.
번개 조리 금지 조항도 정확했다.
위험 꽃 반입 금지 조항도 정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레이의 승인 도장이 찍혀 있었다.
아스트리트 나흐트로제는 초대장을 세 번 읽었다.
그녀는 첫 번째로 제목을 확인했다.
《잘못 배달된 왕관의 편지》
두 번째로 행사 내용을 확인했다.
형식: 참여형 편지극.
검술 시연 없음.
요리대회 없음.
다과 제공 있음.
세 번째로 주의사항을 확인했다.
초대장 내용은 실제 행사와 일치함.
그레이 승인 완료.
아스트리트는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정확하군요.”
푸리나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지!”
그레이는 옆에서 차분하게 말했다.
“초대장 문구는 제가 세 차례 검수했습니다.”
죠니 죠스타는 초대장을 흘끗 보았다.
“세 차례나 했으면 안전하겠네.”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죠니 경.”
“왜?”
“그 말은 오히려 불길하게 들립니다.”
“그럼 취소할게.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
“그것도 불길합니다.”
푸리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다들 너무해. 이번엔 진짜 제대로 준비했는데.”
아카식은 초대장을 들고 웃고 있었다.
“푸리나가 초대장을 제대로 썼다. 이건 기록할 만한데?”
알토가 옆에서 담담히 말했다.
“기록 전에 실제 행사가 초대장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푸리나가 외쳤다.
“일치해!”
라플리는 초대장 아래쪽을 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왜 ‘번개 조리 없음’이 아직도 있어?”
그레이는 즉시 답했다.
“필요해서입니다.”
“이번엔 요리대회도 아니잖아.”
“그럼에도 필요합니다.”
스토얀카 아센은 웃으며 손을 들었다.
“위험 꽃 반입 금지도 너무하지 않아?”
그레이는 그녀를 보았다.
“필요해서입니다.”
“꽃은 무죄야.”
레플리카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꽃은 무죄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유죄에 가깝습니다.”
스토얀카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레플리카, 아침부터 날카롭네.”
알렉산드리나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낮게 말했다.
“오늘은 편지극입니다. 꽃과 번개가 주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라플리는 코웃음을 쳤다.
“편지에도 번개 같은 문장이 있을 수 있는데.”
카를로타가 차분히 말했다.
“그건 비유일 때만 허용됩니다.”
루나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심계항진을 일으키지 않을 때만요.”
라플리는 입을 다물었다.
하융은 회색빛 창호를 접은 채 중얼거렸다.
“이 가능성은 아직 살아 있소.”
푸리나는 뿌듯하게 가슴을 폈다.
“봤지? 시작부터 아주 안정적이야.”
죠니는 무대 쪽을 보았다.
“근데 저건 뭐야?”
푸리나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렸다.
무대 중앙에는 우편함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우편함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표면은 오래된 여관 문처럼 따뜻했고, 뚜껑에는 작은 왕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옆면에는 열쇠구멍이 있었지만,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우편함 아래쪽에는 작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길 잃은 편지도 쉬어갈 방을 찾습니다.
푸리나는 양팔을 펼쳤다.
“오늘의 주역!”
그녀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왕관 우편함입니다!”
그레이는 바로 장부를 열었다.
“정식 명칭은 ‘여관좌 권능 보조형 임시 편지 배달 장치’입니다.”
푸리나가 고개를 휙 돌렸다.
“너무 길어!”
“정확합니다.”
죠니는 우편함을 바라보았다.
“무대 소품이야?”
그 말에 여관의 성좌가 조용히 앞으로 나왔다.
“소품이기도 하고, 소품만은 아니지요.”
그의 목소리가 낮게 퍼졌다.
무대 주변의 공기가 아주 조금 바뀌었다.
강한 신적 위압은 아니었다.
문이 열릴 때 나는 조용한 삐걱임.
긴 여행 끝에 등불을 발견했을 때의 작은 안도.
그런 종류의 힘이었다.
푸리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번 극을 위해서, 여관의 성좌께서 조금 힘을 보태주셨어.”
여관의 성좌는 웃었다.
“아주 작은 권능입니다. 손님들을 억지로 움직이는 힘은 아닙니다.”
그는 우편함 위에 손을 얹었다.
“이 우편함은 길을 잃은 편지를 조금 도울 뿐입니다.”
요안나가 눈을 깜빡였다.
“길을 잃은 편지요?”
“예.”
여관의 성좌는 부드럽게 말했다.
“여관에는 길을 잘못 든 손님도 오지요. 그렇다고 그분들이 반드시 필요 없는 손님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잘못 들어온 문이, 그날 밤 가장 필요한 방이 되기도 하지요.”
타마르 여왕은 포도주잔 대신 차잔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느긋하게 웃었다.
“편지도 손님처럼 대접하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여관의 성좌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소를 잃은 말이 잠시 머물 곳을 찾는다면, 여관지기는 문을 닫지 않습니다. 다만 문을 열지는, 그 방의 손님이 정해야겠지요.”
그레이는 즉시 규칙문을 펼쳤다.
“따라서 오늘의 편지극 운영 규칙입니다.”
푸리나는 속삭였다.
“드디어 나왔다.”
죠니도 낮게 말했다.
“그레이의 본편이네.”
그레이는 무시하고 읽었다.
“첫째, 타인의 편지를 함부로 개봉하지 말 것.”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하지.”
“둘째, 수신자가 다른 편지는 관리자에게 신고할 것.”
아카식이 손을 들었다.
“관리자는 그레이?”
“예.”
“푸리나는?”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진행자입니다.”
죠니가 말했다.
“즉, 사고를 칠 가능성이 있는 쪽.”
푸리나는 외쳤다.
“죠니!”
그레이는 계속 읽었다.
“셋째, 왕관 우편함의 권능으로 도착한 편지는 개봉 여부를 수신자가 직접 판단할 것.”
아레 마가트로이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여는 것은 손님의 몫이라는 뜻이구나.”
여관의 성좌는 미소 지었다.
“그렇습니다.”
“넷째, 사적인 내용은 무대 위에서 공개하지 말 것.”
푸리나는 약간 뜨끔했다.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중요하네.”
“나도 알아!”
“다섯째.”
그레이의 목소리가 조금 더 단호해졌다.
“편지로 인한 결투, 외교 분쟁, 즉흥 약혼, 즉흥 파혼, 즉흥 선전포고, 즉흥 개전, 즉흥 종교개혁 금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푸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즉흥 약혼도 금지야?”
그레이는 단호했다.
“필요합니다.”
죠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네.”
스토얀카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즉흥 개전은?”
레플리카가 즉시 말했다.
“당연히 금지입니다.”
라플리는 중얼거렸다.
“즉흥 종교개혁은 누가 해?”
슈샤니크가 담담하게 말했다.
“행사장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일이 가능합니다.”
아카식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건 기록하고 싶은 규칙이네.”
알토가 말했다.
“규칙은 기록해도 됩니다. 다만 편지 본문은 수신자 동의 없이는 안 됩니다.”
아카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편지는 먼저 받는 사람의 것이지.”
알토가 그를 보았다.
아카식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왜? 나도 배운다니까.”
“좋은 일입니다.”
“알토가 또 칭찬했어.”
“보고입니다.”
“응. 좋은 보고.”
푸리나는 흐뭇하게 그들을 보다가, 다시 무대로 올라섰다.
“좋아!”
그녀는 작은 종을 들었다.
“오늘의 극은 대본이 없습니다!”
그레이의 손이 멈췄다.
“폐하.”
“하지만 규칙은 있어!”
죠니가 말했다.
“그레이가 쓴 거겠지.”
“맞아!”
푸리나는 당당했다.
“오늘 밤, 편지를 받은 사람은 잠시 배우가 됩니다. 편지를 읽지 않기로 한 사람도 배우입니다. 침묵도 대사니까요.”
레이튼은 미소를 지었다.
“아주 흥미로운 형식입니다. 대본 없는 편지극이라.”
하융은 창호를 보며 말했다.
“대본 없는 가능성은 대체로 많이 갈라지오.”
그레이가 물었다.
“위험합니까?”
“푸리나 폐하께서 대본을 쓰신 가능성과 비교하면, 오히려 안정적일 수도 있소.”
푸리나는 상처받은 얼굴이 되었다.
“하융!”
죠니는 낮게 웃었다.
“그건 꽤 신뢰할 만한 평가네.”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푸리나는 종을 들어 올렸다.
“자, 그러면 시작합니다!”
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왕관 우편함의 뚜껑이 저절로 아주 조금 열렸다.
그 안은 비어 있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푸리나는 작은 봉투 묶음을 들었다.
“각자, 지금 떠오르는 말을 한 장씩 써주세요. 반드시 누군가에게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보내고 싶지만 보내지 못한 말도 좋고, 누구에게 가야 할지 모르는 말도 좋아요.”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쓰기 싫으면 안 써도 됩니다.”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그 시선을 알아차리고 작게 물었다.
“왜?”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은 판단이라고.”
푸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응. 억지로 쓰게 하면 편지가 아니라 숙제잖아.”
그레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푸리나는 잠시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이제 조금은 배운다구.”
죠니는 말했다.
“조금은.”
“거기서 끊지 마!”
작은 웃음이 퍼졌다.
그러나 곧 무대 위는 조용해졌다.
각자에게 종이와 펜이 건네졌다.
민다우가스는 펜을 들고 한동안 종이를 보았다.
“편지는 칼보다 오래 남을 때가 있지.”
아스테르다스가 옆에서 웃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거야?”
“조심스러운 왕은 오래 산다.”
“그런데 너무 조심하면 아무것도 못 써.”
민다우가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아스테르다스는 별처럼 부드러운 눈으로 말했다.
“가끔은 그냥 지금 마음에 걸리는 걸 쓰면 돼. 대공의 모든 문장이 동맹문일 필요는 없잖아.”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하! 내 망치가 오늘은 내 혀를 친다.”
미하일라는 종이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녀의 자세는 완벽했다.
편지를 쓰는 자세라기보다는 칙령을 내리는 자세였다.
요안나는 옆에서 살짝 웃었다.
“폐하, 편지예요.”
“알고 있다.”
“공문이 아니고요.”
미하일라는 잠시 멈췄다.
“편지는 공문보다 위험하다.”
“왜요?”
“공문은 효력이 정해져 있다. 편지는 읽는 자에 따라 계속 변한다.”
요안나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써야 할 때가 있죠.”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펜은 움직였다.
벨라는 짧게 썼다.
소피아는 그 옆에서 몇 번이나 문장을 고쳤다.
“어머니, 길게 써야 하나요?”
벨라는 말했다.
“짧아도 된다.”
“짧으면 마음이 덜 들어간 것처럼 보이면요?”
“짧아도 무거울 수 있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썼다.
라이자는 편지지 모서리에 은꽃을 붙이려다가 그레이의 시선을 느끼고 멈췄다.
“조금만 붙이면 안 돼?”
그레이는 말했다.
“봉투 무게 초과 시 우편함 작동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럼 아주 작은 꽃.”
호흐마이스터가 곁에서 말했다.
“우편 운송 효율을 고려하면 장식은 최소화하는 편이 좋습니다.”
라이자는 시무룩해졌다.
“편지까지 보급처럼 말하다니.”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장식이 수신자의 사기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면, 소량은 허용될 수 있습니다.”
라이자는 바로 살아났다.
“그렇지?”
그레이는 한숨을 쉬었다.
“소량입니다.”
레플리카는 조용히 한 줄을 썼다.
알렉산드리나는 오래된 궁정체로 시작했다가, 그것을 지우고 다시 썼다.
스토얀카는 편지지에서 꽃향기가 나게 하려다가 레플리카와 그레이에게 동시에 저지당했다.
“향 정도는 괜찮잖아.”
레플리카는 말했다.
“당신의 ‘정도’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레이도 말했다.
“향 첨가 금지입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다들 날 너무 잘 알아.”
아레는 종이를 앞에 두고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푸리나는 그녀를 보다가 다가가려 했지만, 죠니가 낮게 말했다.
“그냥 둬.”
푸리나는 멈췄다.
“응.”
아레는 잠시 뒤, 한 줄을 썼다.
타마르는 편지지를 접지 않은 채 잔 옆에 두었다.
아스트리트는 초대장을 먼저 다시 확인한 뒤에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푸리나가 물었다.
“아스트리트, 이번엔 정확하지?”
아스트리트는 진지하게 답했다.
“예. 그래서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중요합니다.”
“응. 이제 알아.”
라플리는 종이를 보다가 중얼거렸다.
“편지에 마력 회로를 새기면—”
그레이가 말했다.
“금지입니다.”
“아직 끝까지 말도 안 했는데.”
“끝까지 들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라플리는 투덜거리며 평범한 잉크로 쓰기 시작했다.
아카식은 종이를 들고 한참을 웃고 있었다.
알토가 물었다.
“쓰지 않으십니까?”
“쓰고는 싶은데, 내가 쓰면 기록이 될까 편지가 될까 생각 중이야.”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받는 이를 정하시면 편지가 됩니다.”
아카식은 그를 보았다.
“그럼 너한테 쓸까?”
알토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 경우 저는 읽을 권리가 있습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그 말 좋네.”
“놀리지 마십시오.”
“놀리는 거 아닌데.”
아카식은 편지지 위에 아주 짧게 무언가를 썼다.
알토는 보지 않았다.
그것은 예의였다.
모두가 편지를 쓴 뒤, 푸리나는 왕관 우편함 앞으로 갔다.
“자, 넣어주세요.”
하나씩 봉투가 들어갔다.
동맹문처럼 접힌 편지.
사과문처럼 무거운 편지.
아이의 질문처럼 짧은 편지.
은꽃이 아주 조금 붙은 편지.
향이 제거된 수상한 편지.
수신자 없는 편지.
읽힐지 알 수 없는 편지.
마지막으로 푸리나는 자기 편지를 넣었다.
죠니가 물었다.
“너도 썼어?”
“응.”
“뭐라고?”
푸리나는 웃었다.
“비밀.”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잘했네.”
“안 물어봐?”
“비밀이라며.”
푸리나는 조금 놀란 듯 그를 보았다.
“죠니도 배웠네.”
“난 원래 이 정도는 했어.”
그레이가 작게 말했다.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
“예.”
“오늘은 넘어가자.”
“알겠습니다.”
여관의 성좌가 왕관 우편함 앞에 섰다.
“그러면, 길을 잃은 편지들이 잠시 길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그가 우편함의 뚜껑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딱.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 순간, 우편함 안쪽에서 종이들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여러 개의 복도가 열리고, 봉투들이 제각기 다른 문 앞을 찾아가는 것처럼.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그레이는 장부를 들었다.
죠니는 팔짱을 꼈다.
아카식은 기록장을 펴려다가 멈췄다.
알토는 그걸 보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우편함의 옆구리에 있는 작은 투입구가 열렸다.
첫 번째 봉투가 떨어졌다.
그 봉투는 누구 앞에도 곧장 가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지더니, 스스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리고 민다우가스의 발 앞에서 멈췄다.
민다우가스는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봉투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부드러운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두려운 밤에도 불을 피우는 이에게.
민다우가스는 천천히 봉투를 들어 올렸다.
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하하.”
아스테르다스가 옆에서 물었다.
“왜 웃어?”
민다우가스는 봉투를 흔들었다.
“내 이름은 없는데, 나를 건드리는군.”
죠니가 말했다.
“읽을 거야?”
민다우가스는 봉투를 보았다.
여관의 성좌가 조용히 말했다.
“문을 여는 것은 손님의 몫입니다.”
민다우가스는 웃었다.
“좋다. 문 앞까지 왔다면, 왕이 문을 열지 않을 이유는 없지.”
그는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첫 번째 편지를 읽었다.
그 순간, 푸리나의 대본 없는 편지극은 정말로 시작되었다.
1장. 대본 없는 편지극
푸리나 헤툼은 이번에야말로 준비되어 있었다.
정말로.
초대장은 정확했다.
행사명도 정확했다.
참여 방식도 정확했다.
검술 시연 여부도 정확했다.
요리대회 여부도 정확했다.
번개 조리 금지 조항도 정확했다.
위험 꽃 반입 금지 조항도 정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레이의 승인 도장이 찍혀 있었다.
아스트리트 나흐트로제는 초대장을 세 번 읽었다.
그녀는 첫 번째로 제목을 확인했다.
《잘못 배달된 왕관의 편지》
두 번째로 행사 내용을 확인했다.
형식: 참여형 편지극.
검술 시연 없음.
요리대회 없음.
다과 제공 있음.
세 번째로 주의사항을 확인했다.
초대장 내용은 실제 행사와 일치함.
그레이 승인 완료.
아스트리트는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정확하군요.”
푸리나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지!”
그레이는 옆에서 차분하게 말했다.
“초대장 문구는 제가 세 차례 검수했습니다.”
죠니 죠스타는 초대장을 흘끗 보았다.
“세 차례나 했으면 안전하겠네.”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죠니 경.”
“왜?”
“그 말은 오히려 불길하게 들립니다.”
“그럼 취소할게.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
“그것도 불길합니다.”
푸리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다들 너무해. 이번엔 진짜 제대로 준비했는데.”
아카식은 초대장을 들고 웃고 있었다.
“푸리나가 초대장을 제대로 썼다. 이건 기록할 만한데?”
알토가 옆에서 담담히 말했다.
“기록 전에 실제 행사가 초대장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푸리나가 외쳤다.
“일치해!”
라플리는 초대장 아래쪽을 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왜 ‘번개 조리 없음’이 아직도 있어?”
그레이는 즉시 답했다.
“필요해서입니다.”
“이번엔 요리대회도 아니잖아.”
“그럼에도 필요합니다.”
스토얀카 아센은 웃으며 손을 들었다.
“위험 꽃 반입 금지도 너무하지 않아?”
그레이는 그녀를 보았다.
“필요해서입니다.”
“꽃은 무죄야.”
레플리카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꽃은 무죄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유죄에 가깝습니다.”
스토얀카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레플리카, 아침부터 날카롭네.”
알렉산드리나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낮게 말했다.
“오늘은 편지극입니다. 꽃과 번개가 주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라플리는 코웃음을 쳤다.
“편지에도 번개 같은 문장이 있을 수 있는데.”
카를로타가 차분히 말했다.
“그건 비유일 때만 허용됩니다.”
루나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심계항진을 일으키지 않을 때만요.”
라플리는 입을 다물었다.
하융은 회색빛 창호를 접은 채 중얼거렸다.
“이 가능성은 아직 살아 있소.”
푸리나는 뿌듯하게 가슴을 폈다.
“봤지? 시작부터 아주 안정적이야.”
죠니는 무대 쪽을 보았다.
“근데 저건 뭐야?”
푸리나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렸다.
무대 중앙에는 우편함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우편함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표면은 오래된 여관 문처럼 따뜻했고, 뚜껑에는 작은 왕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옆면에는 열쇠구멍이 있었지만,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우편함 아래쪽에는 작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길 잃은 편지도 쉬어갈 방을 찾습니다.
푸리나는 양팔을 펼쳤다.
“오늘의 주역!”
그녀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왕관 우편함입니다!”
그레이는 바로 장부를 열었다.
“정식 명칭은 ‘여관좌 권능 보조형 임시 편지 배달 장치’입니다.”
푸리나가 고개를 휙 돌렸다.
“너무 길어!”
“정확합니다.”
죠니는 우편함을 바라보았다.
“무대 소품이야?”
그 말에 여관의 성좌가 조용히 앞으로 나왔다.
“소품이기도 하고, 소품만은 아니지요.”
그의 목소리가 낮게 퍼졌다.
무대 주변의 공기가 아주 조금 바뀌었다.
강한 신적 위압은 아니었다.
문이 열릴 때 나는 조용한 삐걱임.
긴 여행 끝에 등불을 발견했을 때의 작은 안도.
그런 종류의 힘이었다.
푸리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번 극을 위해서, 여관의 성좌께서 조금 힘을 보태주셨어.”
여관의 성좌는 웃었다.
“아주 작은 권능입니다. 손님들을 억지로 움직이는 힘은 아닙니다.”
그는 우편함 위에 손을 얹었다.
“이 우편함은 길을 잃은 편지를 조금 도울 뿐입니다.”
요안나가 눈을 깜빡였다.
“길을 잃은 편지요?”
“예.”
여관의 성좌는 부드럽게 말했다.
“여관에는 길을 잘못 든 손님도 오지요. 그렇다고 그분들이 반드시 필요 없는 손님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잘못 들어온 문이, 그날 밤 가장 필요한 방이 되기도 하지요.”
타마르 여왕은 포도주잔 대신 차잔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느긋하게 웃었다.
“편지도 손님처럼 대접하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여관의 성좌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소를 잃은 말이 잠시 머물 곳을 찾는다면, 여관지기는 문을 닫지 않습니다. 다만 문을 열지는, 그 방의 손님이 정해야겠지요.”
그레이는 즉시 규칙문을 펼쳤다.
“따라서 오늘의 편지극 운영 규칙입니다.”
푸리나는 속삭였다.
“드디어 나왔다.”
죠니도 낮게 말했다.
“그레이의 본편이네.”
그레이는 무시하고 읽었다.
“첫째, 타인의 편지를 함부로 개봉하지 말 것.”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하지.”
“둘째, 수신자가 다른 편지는 관리자에게 신고할 것.”
아카식이 손을 들었다.
“관리자는 그레이?”
“예.”
“푸리나는?”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진행자입니다.”
죠니가 말했다.
“즉, 사고를 칠 가능성이 있는 쪽.”
푸리나는 외쳤다.
“죠니!”
그레이는 계속 읽었다.
“셋째, 왕관 우편함의 권능으로 도착한 편지는 개봉 여부를 수신자가 직접 판단할 것.”
아레 마가트로이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여는 것은 손님의 몫이라는 뜻이구나.”
여관의 성좌는 미소 지었다.
“그렇습니다.”
“넷째, 사적인 내용은 무대 위에서 공개하지 말 것.”
푸리나는 약간 뜨끔했다.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중요하네.”
“나도 알아!”
“다섯째.”
그레이의 목소리가 조금 더 단호해졌다.
“편지로 인한 결투, 외교 분쟁, 즉흥 약혼, 즉흥 파혼, 즉흥 선전포고, 즉흥 개전, 즉흥 종교개혁 금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푸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즉흥 약혼도 금지야?”
그레이는 단호했다.
“필요합니다.”
죠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네.”
스토얀카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즉흥 개전은?”
레플리카가 즉시 말했다.
“당연히 금지입니다.”
라플리는 중얼거렸다.
“즉흥 종교개혁은 누가 해?”
슈샤니크가 담담하게 말했다.
“행사장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일이 가능합니다.”
아카식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건 기록하고 싶은 규칙이네.”
알토가 말했다.
“규칙은 기록해도 됩니다. 다만 편지 본문은 수신자 동의 없이는 안 됩니다.”
아카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편지는 먼저 받는 사람의 것이지.”
알토가 그를 보았다.
아카식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왜? 나도 배운다니까.”
“좋은 일입니다.”
“알토가 또 칭찬했어.”
“보고입니다.”
“응. 좋은 보고.”
푸리나는 흐뭇하게 그들을 보다가, 다시 무대로 올라섰다.
“좋아!”
그녀는 작은 종을 들었다.
“오늘의 극은 대본이 없습니다!”
그레이의 손이 멈췄다.
“폐하.”
“하지만 규칙은 있어!”
죠니가 말했다.
“그레이가 쓴 거겠지.”
“맞아!”
푸리나는 당당했다.
“오늘 밤, 편지를 받은 사람은 잠시 배우가 됩니다. 편지를 읽지 않기로 한 사람도 배우입니다. 침묵도 대사니까요.”
레이튼은 미소를 지었다.
“아주 흥미로운 형식입니다. 대본 없는 편지극이라.”
하융은 창호를 보며 말했다.
“대본 없는 가능성은 대체로 많이 갈라지오.”
그레이가 물었다.
“위험합니까?”
“푸리나 폐하께서 대본을 쓰신 가능성과 비교하면, 오히려 안정적일 수도 있소.”
푸리나는 상처받은 얼굴이 되었다.
“하융!”
죠니는 낮게 웃었다.
“그건 꽤 신뢰할 만한 평가네.”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푸리나는 종을 들어 올렸다.
“자, 그러면 시작합니다!”
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왕관 우편함의 뚜껑이 저절로 아주 조금 열렸다.
그 안은 비어 있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푸리나는 작은 봉투 묶음을 들었다.
“각자, 지금 떠오르는 말을 한 장씩 써주세요. 반드시 누군가에게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보내고 싶지만 보내지 못한 말도 좋고, 누구에게 가야 할지 모르는 말도 좋아요.”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쓰기 싫으면 안 써도 됩니다.”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그 시선을 알아차리고 작게 물었다.
“왜?”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은 판단이라고.”
푸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응. 억지로 쓰게 하면 편지가 아니라 숙제잖아.”
그레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푸리나는 잠시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이제 조금은 배운다구.”
죠니는 말했다.
“조금은.”
“거기서 끊지 마!”
작은 웃음이 퍼졌다.
그러나 곧 무대 위는 조용해졌다.
각자에게 종이와 펜이 건네졌다.
민다우가스는 펜을 들고 한동안 종이를 보았다.
“편지는 칼보다 오래 남을 때가 있지.”
아스테르다스가 옆에서 웃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거야?”
“조심스러운 왕은 오래 산다.”
“그런데 너무 조심하면 아무것도 못 써.”
민다우가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아스테르다스는 별처럼 부드러운 눈으로 말했다.
“가끔은 그냥 지금 마음에 걸리는 걸 쓰면 돼. 대공의 모든 문장이 동맹문일 필요는 없잖아.”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하! 내 망치가 오늘은 내 혀를 친다.”
미하일라는 종이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녀의 자세는 완벽했다.
편지를 쓰는 자세라기보다는 칙령을 내리는 자세였다.
요안나는 옆에서 살짝 웃었다.
“폐하, 편지예요.”
“알고 있다.”
“공문이 아니고요.”
미하일라는 잠시 멈췄다.
“편지는 공문보다 위험하다.”
“왜요?”
“공문은 효력이 정해져 있다. 편지는 읽는 자에 따라 계속 변한다.”
요안나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써야 할 때가 있죠.”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펜은 움직였다.
벨라는 짧게 썼다.
소피아는 그 옆에서 몇 번이나 문장을 고쳤다.
“어머니, 길게 써야 하나요?”
벨라는 말했다.
“짧아도 된다.”
“짧으면 마음이 덜 들어간 것처럼 보이면요?”
“짧아도 무거울 수 있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썼다.
라이자는 편지지 모서리에 은꽃을 붙이려다가 그레이의 시선을 느끼고 멈췄다.
“조금만 붙이면 안 돼?”
그레이는 말했다.
“봉투 무게 초과 시 우편함 작동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럼 아주 작은 꽃.”
호흐마이스터가 곁에서 말했다.
“우편 운송 효율을 고려하면 장식은 최소화하는 편이 좋습니다.”
라이자는 시무룩해졌다.
“편지까지 보급처럼 말하다니.”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장식이 수신자의 사기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면, 소량은 허용될 수 있습니다.”
라이자는 바로 살아났다.
“그렇지?”
그레이는 한숨을 쉬었다.
“소량입니다.”
레플리카는 조용히 한 줄을 썼다.
알렉산드리나는 오래된 궁정체로 시작했다가, 그것을 지우고 다시 썼다.
스토얀카는 편지지에서 꽃향기가 나게 하려다가 레플리카와 그레이에게 동시에 저지당했다.
“향 정도는 괜찮잖아.”
레플리카는 말했다.
“당신의 ‘정도’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레이도 말했다.
“향 첨가 금지입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다들 날 너무 잘 알아.”
아레는 종이를 앞에 두고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푸리나는 그녀를 보다가 다가가려 했지만, 죠니가 낮게 말했다.
“그냥 둬.”
푸리나는 멈췄다.
“응.”
아레는 잠시 뒤, 한 줄을 썼다.
타마르는 편지지를 접지 않은 채 잔 옆에 두었다.
아스트리트는 초대장을 먼저 다시 확인한 뒤에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푸리나가 물었다.
“아스트리트, 이번엔 정확하지?”
아스트리트는 진지하게 답했다.
“예. 그래서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중요합니다.”
“응. 이제 알아.”
라플리는 종이를 보다가 중얼거렸다.
“편지에 마력 회로를 새기면—”
그레이가 말했다.
“금지입니다.”
“아직 끝까지 말도 안 했는데.”
“끝까지 들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라플리는 투덜거리며 평범한 잉크로 쓰기 시작했다.
아카식은 종이를 들고 한참을 웃고 있었다.
알토가 물었다.
“쓰지 않으십니까?”
“쓰고는 싶은데, 내가 쓰면 기록이 될까 편지가 될까 생각 중이야.”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받는 이를 정하시면 편지가 됩니다.”
아카식은 그를 보았다.
“그럼 너한테 쓸까?”
알토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 경우 저는 읽을 권리가 있습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그 말 좋네.”
“놀리지 마십시오.”
“놀리는 거 아닌데.”
아카식은 편지지 위에 아주 짧게 무언가를 썼다.
알토는 보지 않았다.
그것은 예의였다.
모두가 편지를 쓴 뒤, 푸리나는 왕관 우편함 앞으로 갔다.
“자, 넣어주세요.”
하나씩 봉투가 들어갔다.
동맹문처럼 접힌 편지.
사과문처럼 무거운 편지.
아이의 질문처럼 짧은 편지.
은꽃이 아주 조금 붙은 편지.
향이 제거된 수상한 편지.
수신자 없는 편지.
읽힐지 알 수 없는 편지.
마지막으로 푸리나는 자기 편지를 넣었다.
죠니가 물었다.
“너도 썼어?”
“응.”
“뭐라고?”
푸리나는 웃었다.
“비밀.”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잘했네.”
“안 물어봐?”
“비밀이라며.”
푸리나는 조금 놀란 듯 그를 보았다.
“죠니도 배웠네.”
“난 원래 이 정도는 했어.”
그레이가 작게 말했다.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
“예.”
“오늘은 넘어가자.”
“알겠습니다.”
여관의 성좌가 왕관 우편함 앞에 섰다.
“그러면, 길을 잃은 편지들이 잠시 길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그가 우편함의 뚜껑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딱.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 순간, 우편함 안쪽에서 종이들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여러 개의 복도가 열리고, 봉투들이 제각기 다른 문 앞을 찾아가는 것처럼.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그레이는 장부를 들었다.
죠니는 팔짱을 꼈다.
아카식은 기록장을 펴려다가 멈췄다.
알토는 그걸 보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우편함의 옆구리에 있는 작은 투입구가 열렸다.
첫 번째 봉투가 떨어졌다.
그 봉투는 누구 앞에도 곧장 가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지더니, 스스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리고 민다우가스의 발 앞에서 멈췄다.
민다우가스는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봉투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부드러운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두려운 밤에도 불을 피우는 이에게.
민다우가스는 천천히 봉투를 들어 올렸다.
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하하.”
아스테르다스가 옆에서 물었다.
“왜 웃어?”
민다우가스는 봉투를 흔들었다.
“내 이름은 없는데, 나를 건드리는군.”
죠니가 말했다.
“읽을 거야?”
민다우가스는 봉투를 보았다.
여관의 성좌가 조용히 말했다.
“문을 여는 것은 손님의 몫입니다.”
민다우가스는 웃었다.
“좋다. 문 앞까지 왔다면, 왕이 문을 열지 않을 이유는 없지.”
그는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첫 번째 편지를 읽었다.
그 순간, 푸리나의 대본 없는 편지극은 정말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