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94여관◆zAR16hM8he(c14fec70)2026-05-13 (수) 07:47:12
《잘못 배달된 왕관의 편지》
2장. 두려운 밤에도 불을 피우는 이에게
민다우가스는 봉투를 열었다.
종이는 얇았다.
향도 없고, 장식도 없고, 봉랍도 없었다.
그저 잘 접힌 편지 한 장.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종이는 손 안에서 조금 따뜻했다.
민다우가스는 웃었다.
“하하. 편지가 불을 품었군.”
그는 편지를 펼쳤다.
그리고 읽었다.
> 당신의 웃음은 두려운 밤에도 불을 피우게 합니다.
당신이 숲을 말할 때, 사람들은 늑대를 떠올리지만, 저는 가끔 야영지를 떠올립니다.
당신이 복수를 말할 때도, 저는 그 안에 살아남고 싶은 사람의 불이 있음을 압니다.
당신 곁에서라면 숲도 길이 됩니다.
다만, 길을 내는 손이 언제나 도끼만 들 필요는 없기를 바랍니다.
조용해졌다.
민다우가스는 편지의 마지막 줄을 다시 보았다.
아스테르다스는 옆에서 그의 얼굴을 살폈다.
푸리나는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죠니는 팔짱을 낀 채 말없이 기다렸다.
그레이는 장부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사적인 편지는 기록하지 않는다는 규칙 때문이었다.
아카식도 기록장을 펴지 않았다.
알토는 그걸 보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다우가스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달콤하군.”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그렇지?”
민다우가스는 편지를 접지 않은 채 말했다.
“달콤한 문장은 먼저 의심해야 한다. 달콤함은 혀를 느슨하게 하고, 느슨해진 혀는 성문보다 먼저 열린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역시 그렇게 가네.”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대공, 그냥 좋은 말일 수도 있어.”
민다우가스는 편지를 들어 보였다.
“좋은 말일수록 더 봐야 한다. 이 편지는 나를 치켜세우면서 동시에 도끼를 내려놓으라 권한다. 그러면 이득을 보는 자가 누구냐?”
푸리나는 살짝 당황했다.
“그렇게까지?”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하! 물론 그렇게까지다. 왕에게 온 말은 술잔과 같아서, 향을 맡고 마셔야 한다.”
아스테르다스가 고개를 저었다.
“향만 맡다가 식으면 어쩌려고?”
“편지는 식지 않는다.”
“마음은 식을 수 있어.”
민다우가스는 아스테르다스를 보았다.
아스테르다스는 부드럽게 웃었다.
“대공, 모든 문장을 도끼로 쪼개면 장작밖에 안 남아.”
“장작은 쓸모가 있다.”
“맞아. 하지만 숲이 전부 장작이면 야영지는 하루밖에 못 버텨.”
그 말에 민다우가스의 웃음이 아주 조금 낮아졌다.
“내 망치가 오늘도 혀를 잘 쓰는군.”
아스테르다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그냥 편지가 예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민다우가스는 다시 편지를 보았다.
“예쁘다라.”
그는 그 말을 입 안에서 굴리듯 했다.
“예쁜 말은 위험하지. 하지만 위험하다고 해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죠니가 말했다.
“그건 대공식 칭찬이야?”
아스테르다스가 대답했다.
“아마 굉장히 높은 칭찬일걸.”
민다우가스는 편지를 접었다.
“이 편지는 나를 너무 많이 안다.”
푸리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분 나빠?”
“아니.”
민다우가스는 웃었다.
“기분 나쁜 편지는 태우면 된다. 하지만 이 편지는 태우기 전에 한 번 더 읽을 가치가 있군.”
아스테르다스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그럼 잘못 온 게 아닐지도 모르지.”
민다우가스는 그를 보았다.
“네가 썼나?”
아스테르다스는 손을 들어 보였다.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웃지?”
“대공이 편지를 정치문서처럼 분석하다가 결국 품에 넣는 걸 보는 게 재미있어서.”
민다우가스는 잠시 편지를 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품에 넣었다.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넣었네.”
민다우가스는 태연했다.
“증거 보관이다.”
아스테르다스가 웃었다.
“물론이지.”
그레이는 아주 작게 장부를 열었다가 닫았다.
민다우가스가 그녀를 보았다.
“기록하지 않나?”
그레이는 말했다.
“사적인 편지 본문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민다우가스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다. 킬리키아의 장부는 오늘 균형을 안다.”
아카식이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기록하지 않는 것도 어렵네.”
알토가 말했다.
“참는 것도 기록자의 덕목입니다.”
아카식은 알토를 보았다.
“그 말은 나한테 하는 거야?”
“예.”
“너무 정직해.”
“필요해서입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았다.
왕관 우편함은 다시 사각거렸다.
두 번째 봉투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봉투가 바닥에 닿자마자 곧장 앞으로 미끄러졌다.
자주빛 천이 드리운 자리.
미하일라의 앞이었다.
봉투에는 이름이 없었다.
대신 단정하지 못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켜주지 못한 이를 위하여.
요안나가 숨을 멈췄다.
미하일라는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루나리아의 시선이 조용히 미하일라의 손목으로 향했다.
카를로타는 말없이 시선을 내렸다.
슈샤니크는 얼굴을 바꾸지 않았지만,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푸리나는 무대 중앙에서 그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종을 치지 않았다.
죠니가 작게 말했다.
“읽을지 말지는 본인 몫이지.”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라는 봉투를 들어 올렸다.
“이 편지는 짐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폐하 앞에 왔어요.”
“그렇다.”
미하일라는 봉투의 가장자리를 보았다.
“그러니 책임은 생겼군.”
요안나는 낮게 말했다.
“책임이 아니라…… 선택일지도 몰라요.”
미하일라는 그녀를 보았다.
“그대는 편지를 가볍게 여기는군.”
“아니요.”
요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겁게 여기니까, 선택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짧은 편지가 있었다.
> 그때 나는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
변명할 수 없다.
네가 무서웠다는 것도, 내가 약했다는 것도, 아무것도 너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네가 살아 있다면, 언젠가 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싶다.
용서해달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네가 아직 나를 볼 수 있는지 묻는 것일 테니까.
미하일라는 편지를 다 읽었다.
그녀는 곧바로 접지 않았다.
눈동자는 차가웠지만, 손끝은 아주 조금 굳어 있었다.
요안나는 그 편지의 내용을 다 듣지 못했다.
미하일라는 소리 내어 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편지를 읽는 미하일라의 침묵만으로도, 그것이 어떤 종류의 편지인지는 알 수 있었다.
푸리나가 아주 작게 물었다.
“무대 위에서 읽지 않아도 돼.”
미하일라가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조금 긴장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건…… 규칙이니까.”
그레이가 차분히 말했다.
“사적인 내용 공개 금지 조항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죠니는 덧붙였다.
“그리고 읽기 싫으면 안 읽어도 되는 극이잖아.”
미하일라는 잠시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좋은 규칙이다.”
푸리나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미하일라는 편지를 접었다.
“문장 구조는 불완전하다. 감정이 앞섰고, 책임의 대상도 명확하지 않다.”
요안나는 작게 한숨을 쉬듯 웃었다.
“폐하.”
“그러나.”
미하일라는 말을 이었다.
“책임 인정은 명확하다.”
요안나는 그녀를 보았다.
미하일라는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사과문은 위험하다. 증거보다 오래 남을 수 있다.”
요안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필요한 말이죠.”
“필요하다는 이유로 안전해지지는 않는다.”
“네.”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안전한 말만 남기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을 때도 있어요.”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동안 편지를 접은 채 들고 있었다.
요안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그 편지는 폐하에게 온 걸까요?”
미하일라는 편지를 보았다.
“알 수 없다.”
“그럼?”
“그러나 짐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도착한 이상, 그것이 묻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요안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사과는 판결이 아니에요.”
미하일라는 그녀를 보았다.
요안나는 이어 말했다.
“시작일지도 몰라요.”
“시작은 늘 불편하다.”
“그래도 시작이 없으면, 계속 끝난 척만 해야 하니까요.”
그 말에 자주빛 침묵이 내려앉았다.
미하일라는 요안나를 오래 보았다.
“그대는 때때로 너무 쉽게 어려운 말을 한다.”
요안나는 약하게 웃었다.
“폐하께 배웠을지도요.”
“그런 것을 가르친 적은 없다.”
“그래도 배웠어요.”
미하일라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편지를 자기 곁에 두었다.
태우지도 않고, 돌려주지도 않고, 무대 위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냥 곁에 두었다.
여관의 성좌는 조용히 말했다.
“편지가 잠시 방을 얻었군요.”
미하일라는 낮게 대답했다.
“임시 보관이다.”
죠니가 작게 말했다.
“그 말치고는 되게 오래 보관할 것 같은데.”
미하일라는 그를 보았다.
죠니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뒤 미하일라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심사위원은 오늘도 무례하군.”
“편지극에도 심사위원이 필요한가 해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그냥 관객으로 할게.”
요안나는 웃음을 참았다.
왕관 우편함은 다시 흔들렸다.
세 번째 봉투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작았다.
아이의 손으로 접은 것처럼 모서리가 조금 삐뚤어져 있었다.
봉투는 바닥 위를 느리게 미끄러졌다.
그리고 벨라 4세와 소피아 앞에서 멈췄다.
봉투 겉면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무서워도 괜찮습니까?
소피아가 숨을 삼켰다.
벨라는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죠니도 마찬가지였다.
벨라는 봉투를 들었다.
그리고 소피아에게 건넸다.
“읽어라.”
소피아는 놀랐다.
“제가요?”
“그렇다.”
소피아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아주 짧은 편지가 있었다.
> 무서워도 괜찮습니까?
성벽이 있어도 무섭고,
왕이 있어도 무섭고,
내일 밥이 있어도 밤이 무섭습니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으면, 저는 겁쟁이가 아닙니까?
소피아는 편지를 읽다가 손을 멈췄다.
그녀는 벨라를 보았다.
“어머니.”
벨라는 짧게 말했다.
“괜찮다.”
소피아는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만 답하면 되나요?”
“때로는.”
소피아는 다시 편지를 보았다.
“하지만 이 사람은 겁쟁이가 아니냐고 물었어요.”
벨라는 대답하기 전, 잠시 눈을 감았다.
모히의 불.
무너진 들판.
달아나는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자들.
다시 세운 성벽들.
그 모든 것은 긴 말이 아니었다.
벨라는 눈을 떴다.
“무서움을 아는 손이 문을 만든다.”
소피아는 숨을 멈췄다.
벨라는 이어 말했다.
“무서움을 모르는 손은 문을 열어둔다.
무서움만 아는 손은 문을 닫고 나오지 못한다.
무서움을 알고도 빗장을 고치는 손이, 왕국을 지킨다.”
소피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떨리는 글씨로 편지 아래에 답을 적기 시작했다.
> 괜찮습니다.
무서워도 괜찮습니다.
도망치지 않는 것만이 용기는 아닙니다.
무서운 밤에 문을 고치는 것도 용기입니다.
소피아는 멈췄다.
“어머니, 이렇게 써도 되나요?”
벨라는 쪽지를 보았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좋다.”
소피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벨라는 그 편지를 접지 않고 잠시 들고 있었다.
“이 편지는 돌려보내야 한다.”
그레이가 물었다.
“원래 수신자를 찾으시겠습니까?”
벨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녀는 왕관 우편함을 보았다.
“물은 자에게.”
여관의 성좌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왕관 우편함의 작은 문이 열렸다.
소피아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넣었다.
편지는 사라졌다.
누구에게 갔는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하융은 회색 창호 너머를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한 가능성에서, 누군가 밤에 문을 고쳤소.”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됐다.”
푸리나는 그 말을 들으며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종을 치지 않았다.
이 장면은 종으로 닫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왕관 우편함은 다시 한 번 사각거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꺼번에 두 개의 봉투가 떨어졌다.
하나는 은꽃이 아주 작게 붙은 봉투.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반듯하고 군용 보고서처럼 접힌 봉투.
두 봉투는 서로 빙글 돌더니, 결국 같은 방향으로 미끄러졌다.
라이자와 호흐마이스터 앞이었다.
라이자는 눈을 반짝였다.
“내 거야?”
호흐마이스터는 봉투 두 개를 보았다.
“둘 중 하나는 제게 온 것으로 보입니다.”
죠니가 말했다.
“이 둘한테 동시에 편지가 가면 조합이 뻔한데.”
푸리나는 웃음을 참았다.
그레이는 조용히 규칙문을 다시 확인했다.
“즉흥 약혼 금지 조항 유효.”
라이자가 얼굴을 붉혔다.
“그런 거 아니야!”
호흐마이스터는 진지하게 물었다.
“즉흥 약혼 가능성이 있었습니까?”
라이자는 더 붉어졌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편지를 열기 전부터 재밌네.”
은꽃 봉투가 먼저 열렸다.
안에는 밝은 글씨가 있었다.
> 무거운 갑주에도 꽃은 꽂힐 수 있어.
네가 빼고 싶지 않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좋은 일이야.
꽃이 갑주를 가볍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갑주를 입은 사람이 아직 무언가를 간직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줄 수는 있잖아.
호흐마이스터는 편지를 읽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말했다.
“이 편지는 사기 유지 제안서입니까?”
라이자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
“아니, 편지야!”
“개인 감정 전달 문서입니까?”
“그렇게 말하면 갑자기 부끄러워져!”
죠니는 지나가듯 말했다.
“편지를 그렇게 분류하면 대부분 죽어.”
호흐마이스터는 편지를 보았다.
“죽지 않게 분류하려 한 것입니다.”
라이자는 멈췄다.
“어?”
호흐마이스터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 보관할 수 있습니다.”
라이자는 편지를 바라보았다.
그레이는 장부를 든 채 아주 조용히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는 마침내 말했다.
“그렇다면 보존하겠습니다.”
라이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거 좋아한다는 뜻이야?”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보존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라이자는 미소 지었다.
“좋아한다는 뜻이네.”
호흐마이스터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때 반듯한 봉투가 저절로 열렸다.
그 안에는 보고서처럼 정리된 문장이 있었다.
> 행군 중 단맛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으나, 정정한다.
긴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것과, 생존 이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모두 필요하다.
은꽃은 위치 노출 위험이 있으나, 제한된 조건에서 사기 회복 효과가 인정된다.
결론: 작은 단맛은 보급품이 될 수 있다.
단, 너무 많이 반짝여서는 안 된다.
라이자는 편지를 끝까지 듣고 눈을 빛냈다.
“이거 고백이야?”
호흐마이스터는 즉시 말했다.
“보급 검토입니다.”
죠니가 말했다.
“튜튼식 고백 같긴 하네.”
호흐마이스터는 그를 보았다.
“그 표현은 부정확합니다.”
라이자는 웃었다.
“하지만 보존할 거지?”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편지를 보았다.
“예.”
라이자는 아주 행복하게 말했다.
“그럼 됐어.”
그레이는 조용히 장부에 적었다.
즉흥 약혼 없음. 외교 분쟁 없음. 보급 검토와 개인 감정의 경계 모호. 관찰 필요.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관찰 필요가 또 붙었어.”
죠니는 말했다.
“저 둘은 필요하지.”
왕관 우편함은 조용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곧 다시 뚜껑이 열렸다.
이번에는 세 통의 편지가 동시에 나왔다.
검은 봉투.
새벽빛 봉투.
하얀 꽃잎이 그려졌지만 향이 없는 봉투.
푸리나가 숨을 들이켰다.
“불가리아다.”
그레이는 곧장 규칙문을 들었다.
“편지로 인한 결투 및 내전성 발언 금지.”
스토얀카는 웃었다.
“그런 조항도 있었나?”
레플리카가 말했다.
“있었어야 했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세 봉투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열어봅시다. 오늘은 편지 안에서만 싸우는 것으로 하죠.”
세 봉투가 각자의 손에 닿았다.
레플리카의 검은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알렉산드리나의 새벽빛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은 진짜입니까?
스토얀카의 하얀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꽃은 왜 찌릅니까?
세 차르는 각자 편지를 보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이건 좀 길어지겠네.”
푸리나는 종을 들었다.
이번에는 아주 작게 울렸다.
딸랑.
“제2막.”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불가리아의 편지.”
그리고 왕관 우편함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2장. 두려운 밤에도 불을 피우는 이에게
민다우가스는 봉투를 열었다.
종이는 얇았다.
향도 없고, 장식도 없고, 봉랍도 없었다.
그저 잘 접힌 편지 한 장.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종이는 손 안에서 조금 따뜻했다.
민다우가스는 웃었다.
“하하. 편지가 불을 품었군.”
그는 편지를 펼쳤다.
그리고 읽었다.
> 당신의 웃음은 두려운 밤에도 불을 피우게 합니다.
당신이 숲을 말할 때, 사람들은 늑대를 떠올리지만, 저는 가끔 야영지를 떠올립니다.
당신이 복수를 말할 때도, 저는 그 안에 살아남고 싶은 사람의 불이 있음을 압니다.
당신 곁에서라면 숲도 길이 됩니다.
다만, 길을 내는 손이 언제나 도끼만 들 필요는 없기를 바랍니다.
조용해졌다.
민다우가스는 편지의 마지막 줄을 다시 보았다.
아스테르다스는 옆에서 그의 얼굴을 살폈다.
푸리나는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죠니는 팔짱을 낀 채 말없이 기다렸다.
그레이는 장부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사적인 편지는 기록하지 않는다는 규칙 때문이었다.
아카식도 기록장을 펴지 않았다.
알토는 그걸 보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다우가스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달콤하군.”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그렇지?”
민다우가스는 편지를 접지 않은 채 말했다.
“달콤한 문장은 먼저 의심해야 한다. 달콤함은 혀를 느슨하게 하고, 느슨해진 혀는 성문보다 먼저 열린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역시 그렇게 가네.”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대공, 그냥 좋은 말일 수도 있어.”
민다우가스는 편지를 들어 보였다.
“좋은 말일수록 더 봐야 한다. 이 편지는 나를 치켜세우면서 동시에 도끼를 내려놓으라 권한다. 그러면 이득을 보는 자가 누구냐?”
푸리나는 살짝 당황했다.
“그렇게까지?”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하! 물론 그렇게까지다. 왕에게 온 말은 술잔과 같아서, 향을 맡고 마셔야 한다.”
아스테르다스가 고개를 저었다.
“향만 맡다가 식으면 어쩌려고?”
“편지는 식지 않는다.”
“마음은 식을 수 있어.”
민다우가스는 아스테르다스를 보았다.
아스테르다스는 부드럽게 웃었다.
“대공, 모든 문장을 도끼로 쪼개면 장작밖에 안 남아.”
“장작은 쓸모가 있다.”
“맞아. 하지만 숲이 전부 장작이면 야영지는 하루밖에 못 버텨.”
그 말에 민다우가스의 웃음이 아주 조금 낮아졌다.
“내 망치가 오늘도 혀를 잘 쓰는군.”
아스테르다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그냥 편지가 예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민다우가스는 다시 편지를 보았다.
“예쁘다라.”
그는 그 말을 입 안에서 굴리듯 했다.
“예쁜 말은 위험하지. 하지만 위험하다고 해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죠니가 말했다.
“그건 대공식 칭찬이야?”
아스테르다스가 대답했다.
“아마 굉장히 높은 칭찬일걸.”
민다우가스는 편지를 접었다.
“이 편지는 나를 너무 많이 안다.”
푸리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분 나빠?”
“아니.”
민다우가스는 웃었다.
“기분 나쁜 편지는 태우면 된다. 하지만 이 편지는 태우기 전에 한 번 더 읽을 가치가 있군.”
아스테르다스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그럼 잘못 온 게 아닐지도 모르지.”
민다우가스는 그를 보았다.
“네가 썼나?”
아스테르다스는 손을 들어 보였다.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웃지?”
“대공이 편지를 정치문서처럼 분석하다가 결국 품에 넣는 걸 보는 게 재미있어서.”
민다우가스는 잠시 편지를 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품에 넣었다.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넣었네.”
민다우가스는 태연했다.
“증거 보관이다.”
아스테르다스가 웃었다.
“물론이지.”
그레이는 아주 작게 장부를 열었다가 닫았다.
민다우가스가 그녀를 보았다.
“기록하지 않나?”
그레이는 말했다.
“사적인 편지 본문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민다우가스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다. 킬리키아의 장부는 오늘 균형을 안다.”
아카식이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기록하지 않는 것도 어렵네.”
알토가 말했다.
“참는 것도 기록자의 덕목입니다.”
아카식은 알토를 보았다.
“그 말은 나한테 하는 거야?”
“예.”
“너무 정직해.”
“필요해서입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았다.
왕관 우편함은 다시 사각거렸다.
두 번째 봉투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봉투가 바닥에 닿자마자 곧장 앞으로 미끄러졌다.
자주빛 천이 드리운 자리.
미하일라의 앞이었다.
봉투에는 이름이 없었다.
대신 단정하지 못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켜주지 못한 이를 위하여.
요안나가 숨을 멈췄다.
미하일라는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루나리아의 시선이 조용히 미하일라의 손목으로 향했다.
카를로타는 말없이 시선을 내렸다.
슈샤니크는 얼굴을 바꾸지 않았지만,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푸리나는 무대 중앙에서 그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종을 치지 않았다.
죠니가 작게 말했다.
“읽을지 말지는 본인 몫이지.”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라는 봉투를 들어 올렸다.
“이 편지는 짐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폐하 앞에 왔어요.”
“그렇다.”
미하일라는 봉투의 가장자리를 보았다.
“그러니 책임은 생겼군.”
요안나는 낮게 말했다.
“책임이 아니라…… 선택일지도 몰라요.”
미하일라는 그녀를 보았다.
“그대는 편지를 가볍게 여기는군.”
“아니요.”
요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겁게 여기니까, 선택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짧은 편지가 있었다.
> 그때 나는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
변명할 수 없다.
네가 무서웠다는 것도, 내가 약했다는 것도, 아무것도 너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네가 살아 있다면, 언젠가 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싶다.
용서해달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네가 아직 나를 볼 수 있는지 묻는 것일 테니까.
미하일라는 편지를 다 읽었다.
그녀는 곧바로 접지 않았다.
눈동자는 차가웠지만, 손끝은 아주 조금 굳어 있었다.
요안나는 그 편지의 내용을 다 듣지 못했다.
미하일라는 소리 내어 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편지를 읽는 미하일라의 침묵만으로도, 그것이 어떤 종류의 편지인지는 알 수 있었다.
푸리나가 아주 작게 물었다.
“무대 위에서 읽지 않아도 돼.”
미하일라가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조금 긴장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건…… 규칙이니까.”
그레이가 차분히 말했다.
“사적인 내용 공개 금지 조항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죠니는 덧붙였다.
“그리고 읽기 싫으면 안 읽어도 되는 극이잖아.”
미하일라는 잠시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좋은 규칙이다.”
푸리나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미하일라는 편지를 접었다.
“문장 구조는 불완전하다. 감정이 앞섰고, 책임의 대상도 명확하지 않다.”
요안나는 작게 한숨을 쉬듯 웃었다.
“폐하.”
“그러나.”
미하일라는 말을 이었다.
“책임 인정은 명확하다.”
요안나는 그녀를 보았다.
미하일라는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사과문은 위험하다. 증거보다 오래 남을 수 있다.”
요안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필요한 말이죠.”
“필요하다는 이유로 안전해지지는 않는다.”
“네.”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안전한 말만 남기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을 때도 있어요.”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동안 편지를 접은 채 들고 있었다.
요안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그 편지는 폐하에게 온 걸까요?”
미하일라는 편지를 보았다.
“알 수 없다.”
“그럼?”
“그러나 짐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도착한 이상, 그것이 묻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요안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사과는 판결이 아니에요.”
미하일라는 그녀를 보았다.
요안나는 이어 말했다.
“시작일지도 몰라요.”
“시작은 늘 불편하다.”
“그래도 시작이 없으면, 계속 끝난 척만 해야 하니까요.”
그 말에 자주빛 침묵이 내려앉았다.
미하일라는 요안나를 오래 보았다.
“그대는 때때로 너무 쉽게 어려운 말을 한다.”
요안나는 약하게 웃었다.
“폐하께 배웠을지도요.”
“그런 것을 가르친 적은 없다.”
“그래도 배웠어요.”
미하일라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편지를 자기 곁에 두었다.
태우지도 않고, 돌려주지도 않고, 무대 위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냥 곁에 두었다.
여관의 성좌는 조용히 말했다.
“편지가 잠시 방을 얻었군요.”
미하일라는 낮게 대답했다.
“임시 보관이다.”
죠니가 작게 말했다.
“그 말치고는 되게 오래 보관할 것 같은데.”
미하일라는 그를 보았다.
죠니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뒤 미하일라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심사위원은 오늘도 무례하군.”
“편지극에도 심사위원이 필요한가 해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그냥 관객으로 할게.”
요안나는 웃음을 참았다.
왕관 우편함은 다시 흔들렸다.
세 번째 봉투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작았다.
아이의 손으로 접은 것처럼 모서리가 조금 삐뚤어져 있었다.
봉투는 바닥 위를 느리게 미끄러졌다.
그리고 벨라 4세와 소피아 앞에서 멈췄다.
봉투 겉면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무서워도 괜찮습니까?
소피아가 숨을 삼켰다.
벨라는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죠니도 마찬가지였다.
벨라는 봉투를 들었다.
그리고 소피아에게 건넸다.
“읽어라.”
소피아는 놀랐다.
“제가요?”
“그렇다.”
소피아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아주 짧은 편지가 있었다.
> 무서워도 괜찮습니까?
성벽이 있어도 무섭고,
왕이 있어도 무섭고,
내일 밥이 있어도 밤이 무섭습니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으면, 저는 겁쟁이가 아닙니까?
소피아는 편지를 읽다가 손을 멈췄다.
그녀는 벨라를 보았다.
“어머니.”
벨라는 짧게 말했다.
“괜찮다.”
소피아는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만 답하면 되나요?”
“때로는.”
소피아는 다시 편지를 보았다.
“하지만 이 사람은 겁쟁이가 아니냐고 물었어요.”
벨라는 대답하기 전, 잠시 눈을 감았다.
모히의 불.
무너진 들판.
달아나는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자들.
다시 세운 성벽들.
그 모든 것은 긴 말이 아니었다.
벨라는 눈을 떴다.
“무서움을 아는 손이 문을 만든다.”
소피아는 숨을 멈췄다.
벨라는 이어 말했다.
“무서움을 모르는 손은 문을 열어둔다.
무서움만 아는 손은 문을 닫고 나오지 못한다.
무서움을 알고도 빗장을 고치는 손이, 왕국을 지킨다.”
소피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떨리는 글씨로 편지 아래에 답을 적기 시작했다.
> 괜찮습니다.
무서워도 괜찮습니다.
도망치지 않는 것만이 용기는 아닙니다.
무서운 밤에 문을 고치는 것도 용기입니다.
소피아는 멈췄다.
“어머니, 이렇게 써도 되나요?”
벨라는 쪽지를 보았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좋다.”
소피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벨라는 그 편지를 접지 않고 잠시 들고 있었다.
“이 편지는 돌려보내야 한다.”
그레이가 물었다.
“원래 수신자를 찾으시겠습니까?”
벨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녀는 왕관 우편함을 보았다.
“물은 자에게.”
여관의 성좌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왕관 우편함의 작은 문이 열렸다.
소피아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넣었다.
편지는 사라졌다.
누구에게 갔는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하융은 회색 창호 너머를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한 가능성에서, 누군가 밤에 문을 고쳤소.”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됐다.”
푸리나는 그 말을 들으며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종을 치지 않았다.
이 장면은 종으로 닫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왕관 우편함은 다시 한 번 사각거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꺼번에 두 개의 봉투가 떨어졌다.
하나는 은꽃이 아주 작게 붙은 봉투.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반듯하고 군용 보고서처럼 접힌 봉투.
두 봉투는 서로 빙글 돌더니, 결국 같은 방향으로 미끄러졌다.
라이자와 호흐마이스터 앞이었다.
라이자는 눈을 반짝였다.
“내 거야?”
호흐마이스터는 봉투 두 개를 보았다.
“둘 중 하나는 제게 온 것으로 보입니다.”
죠니가 말했다.
“이 둘한테 동시에 편지가 가면 조합이 뻔한데.”
푸리나는 웃음을 참았다.
그레이는 조용히 규칙문을 다시 확인했다.
“즉흥 약혼 금지 조항 유효.”
라이자가 얼굴을 붉혔다.
“그런 거 아니야!”
호흐마이스터는 진지하게 물었다.
“즉흥 약혼 가능성이 있었습니까?”
라이자는 더 붉어졌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편지를 열기 전부터 재밌네.”
은꽃 봉투가 먼저 열렸다.
안에는 밝은 글씨가 있었다.
> 무거운 갑주에도 꽃은 꽂힐 수 있어.
네가 빼고 싶지 않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좋은 일이야.
꽃이 갑주를 가볍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갑주를 입은 사람이 아직 무언가를 간직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줄 수는 있잖아.
호흐마이스터는 편지를 읽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말했다.
“이 편지는 사기 유지 제안서입니까?”
라이자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
“아니, 편지야!”
“개인 감정 전달 문서입니까?”
“그렇게 말하면 갑자기 부끄러워져!”
죠니는 지나가듯 말했다.
“편지를 그렇게 분류하면 대부분 죽어.”
호흐마이스터는 편지를 보았다.
“죽지 않게 분류하려 한 것입니다.”
라이자는 멈췄다.
“어?”
호흐마이스터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 보관할 수 있습니다.”
라이자는 편지를 바라보았다.
그레이는 장부를 든 채 아주 조용히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는 마침내 말했다.
“그렇다면 보존하겠습니다.”
라이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거 좋아한다는 뜻이야?”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보존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라이자는 미소 지었다.
“좋아한다는 뜻이네.”
호흐마이스터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때 반듯한 봉투가 저절로 열렸다.
그 안에는 보고서처럼 정리된 문장이 있었다.
> 행군 중 단맛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으나, 정정한다.
긴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것과, 생존 이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모두 필요하다.
은꽃은 위치 노출 위험이 있으나, 제한된 조건에서 사기 회복 효과가 인정된다.
결론: 작은 단맛은 보급품이 될 수 있다.
단, 너무 많이 반짝여서는 안 된다.
라이자는 편지를 끝까지 듣고 눈을 빛냈다.
“이거 고백이야?”
호흐마이스터는 즉시 말했다.
“보급 검토입니다.”
죠니가 말했다.
“튜튼식 고백 같긴 하네.”
호흐마이스터는 그를 보았다.
“그 표현은 부정확합니다.”
라이자는 웃었다.
“하지만 보존할 거지?”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편지를 보았다.
“예.”
라이자는 아주 행복하게 말했다.
“그럼 됐어.”
그레이는 조용히 장부에 적었다.
즉흥 약혼 없음. 외교 분쟁 없음. 보급 검토와 개인 감정의 경계 모호. 관찰 필요.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관찰 필요가 또 붙었어.”
죠니는 말했다.
“저 둘은 필요하지.”
왕관 우편함은 조용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곧 다시 뚜껑이 열렸다.
이번에는 세 통의 편지가 동시에 나왔다.
검은 봉투.
새벽빛 봉투.
하얀 꽃잎이 그려졌지만 향이 없는 봉투.
푸리나가 숨을 들이켰다.
“불가리아다.”
그레이는 곧장 규칙문을 들었다.
“편지로 인한 결투 및 내전성 발언 금지.”
스토얀카는 웃었다.
“그런 조항도 있었나?”
레플리카가 말했다.
“있었어야 했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세 봉투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열어봅시다. 오늘은 편지 안에서만 싸우는 것으로 하죠.”
세 봉투가 각자의 손에 닿았다.
레플리카의 검은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알렉산드리나의 새벽빛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당신은 진짜입니까?
스토얀카의 하얀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꽃은 왜 찌릅니까?
세 차르는 각자 편지를 보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이건 좀 길어지겠네.”
푸리나는 종을 들었다.
이번에는 아주 작게 울렸다.
딸랑.
“제2막.”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불가리아의 편지.”
그리고 왕관 우편함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