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95여관◆zAR16hM8he(c14fec70)2026-05-13 (수) 10:07:04
《잘못 배달된 왕관의 편지》

3장. 꽃은 왜 찌릅니까

불가리아의 세 편지는 무대 위에 서로 다른 색의 불씨처럼 놓였다.

검은 봉투.

새벽빛 봉투.

하얀 꽃잎이 그려진 봉투.

레플리카는 검은 봉투를 들고 있었다.

알렉산드리나는 새벽빛 봉투를 들고 있었다.

스토얀카는 하얀 봉투를 들고 있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그레이는 이미 규칙문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확인합니다. 편지로 인한 결투, 외교 분쟁, 즉흥 내전, 즉흥 종교 논쟁 확대는 금지입니다.”

스토얀카가 웃었다.

“즉흥 내전이라니, 단어가 좋네.”

레플리카는 조용히 말했다.

“좋지 않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차분하게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편지 안에서만 다투기로 했지요.”

죠니가 낮게 말했다.

“그게 가능하면 이미 많이 진전한 거지.”

푸리나는 작은 종을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그녀는 신나 보이기도 했고, 긴장한 것처럼도 보였다.

불가리아의 편지는 웃기게 시작할 수 있었지만, 잘못하면 정말 날카로워질 수 있었다.

왕관 우편함은 그런 점을 아는 듯, 더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치 우편함조차 숨을 죽인 것 같았다.

먼저 레플리카가 봉투를 열었다.

검은 봉투 안의 편지는 짧았다.

>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참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견디면 나아질 거라고 들었지만, 견뎌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레플리카는 편지를 끝까지 읽었다.

그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받아 드는 침묵이었다.

푸리나는 작게 물었다.

“읽어도 되는 편지였어?”

레플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편지는 읽히고 싶어 했습니다.”

그레이는 장부에 손을 대지 않았다.

레플리카는 편지를 접지 않고 양손으로 들었다.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그녀는 아주 낮게 말했다.

“고통을 없애는 것만으로 삶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이 너무 크면, 사람은 자기 삶을 생각할 힘도 잃습니다.”

스토얀카는 턱을 괴고 들었다.

평소 같으면 한마디쯤 비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레플리카는 편지 아래에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 그러겠습니다.

다만 아프지 않은 것만을 약속하지는 않겠습니다.
먹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잘 수 있게 하겠습니다.
말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고통이 당신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이가 있다면, 저는 그 말을 믿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고통보다 큽니다.



그녀는 펜을 멈추었다.

푸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거…… 되게 좋아.”

레플리카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 편지가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모릅니다.”

여관의 성좌가 말했다.

“길을 찾을 것입니다.”

레플리카는 왕관 우편함을 보았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돌아가도 됩니다.”

그녀가 답장을 접어 우편함에 넣자, 우편함은 소리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검은 봉투가 사라졌다.

스토얀카가 느리게 말했다.

“고통보다 크다라.”

레플리카는 그녀를 보았다.

“그렇습니다.”

“너답네.”

“나쁜 뜻입니까?”

스토얀카는 웃었다.

“아니. 오늘은 좋은 뜻으로 해둘게.”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드문 합의입니다.”

죠니가 말했다.

“기록할 만한데.”

아카식은 고개를 저었다.

“편지 내용은 안 해. 하지만 저 둘이 싸우지 않았다는 건 기억할 만하네.”

알토는 담담히 말했다.

“그 정도는 공식 사건 경과로 남길 수 있습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내가 싸우지 않았다는 게 사건이야?”

알렉산드리나는 담담하게 답했다.

“때로는 그렇습니다.”


---

다음은 알렉산드리나였다.

새벽빛 봉투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당신은 진짜입니까?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조금 숨을 멈췄다.

그건 너무 곧은 질문이었다.

돌려 말하지 않았고, 장식도 없었다.

칼처럼 찌르는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피할 곳이 없었다.

알렉산드리나는 봉투를 오래 보았다.

가브리엘라는 그녀 곁에 조용히 서 있었다.

“전하.”

알렉산드리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녀는 봉투를 열었다.

편지는 생각보다 짧았다.

> 당신은 진짜입니까?

왕의 피가 부족한 사람이 왕의 흉내를 내면, 그것은 왕입니까?

당신이 새벽을 말할 때, 나는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믿고 싶은 것과 믿을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니 묻습니다.
당신은 진짜입니까?



알렉산드리나는 편지를 다 읽은 뒤에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스토얀카가 낮게 휘파람을 불려다, 레플리카의 시선을 보고 멈췄다.

죠니는 팔짱을 풀지 않았다.

민다우가스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며 웃지 않았다.

벨라도 조용히 있었다.

그 질문은 알렉산드리나 한 사람만 찌르는 것이 아니었다.

왕관을 쓴 사람들 대부분은, 한 번쯤 자기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진짜인가.

자격이 있는가.

흉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알렉산드리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약간 떨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잔인하지만, 좋은 질문입니다.”

가브리엘라는 한 걸음 다가왔다.

“전하.”

알렉산드리나는 그녀를 보았다.

가브리엘라는 조용히 말했다.

“왕의 혈통을 타고난 것이 왕이 아닙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숨을 들이켰다.

“왕도를 걷는 이가 왕이지요.”

“예.”

가브리엘라는 고개를 숙였다.

“전하께서는 매일 걷고 계십니다.”

알렉산드리나는 편지를 다시 보았다.

“그렇다면 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군요.”

그녀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 아직 매일 증명하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흉내였습니다.
왕의 말, 왕의 걸음, 왕의 식탁, 왕의 침묵까지.

그러나 매일 같은 길을 걷다 보면, 발이 먼저 압니다.
이 길이 더는 남의 그림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아직 완성된 왕이 아닙니다.
그러나 완성된 왕인 척 멈추지도 않겠습니다.

새벽은 태양이 된 뒤에야 새벽인 것이 아닙니다.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새벽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펜을 멈추었다.

가브리엘라는 눈을 내리깔았다.

레플리카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스토얀카는 잠시 말없이 알렉산드리나를 보았다.

그러다 웃었다.

“가짜치고는 꽤 괜찮은 답이네.”

레플리카가 즉시 말했다.

“스토얀카.”

하지만 알렉산드리나는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작게 웃었다.

“가짜였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했습니다.”

스토얀카는 턱을 괴었다.

“그 말은 마음에 들어.”

“그렇습니까?”

“응. 나는 진짜니 가짜니보다는, 얼마나 피우느냐가 더 중요하거든.”

레플리카는 낮게 말했다.

“그 기준은 위험합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알아. 그래서 오늘은 편지 안에서만 말하잖아.”

그레이는 작게 말했다.

“그 점은 확인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답장을 접었다.

그러나 우편함에 곧장 넣지 않았다.

푸리나가 물었다.

“돌려보내지 않을 거야?”

알렉산드리나는 편지를 보았다.

“보내겠습니다. 다만 조금 뒤에요.”

“왜?”

“이 질문은 제게도 남아야 합니다.”

그녀는 자기 가슴 위에 답장을 잠시 올렸다.

“답을 보냈다고 해서, 질문이 사라지면 안 됩니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훌륭한 태도입니다. 좋은 질문은 답을 낳고, 더 좋은 질문은 답 이후에도 남지요.”

알렉산드리나는 레이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이것은 좋은 질문이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답장을 우편함에 넣었다.

새벽빛 봉투가 사라졌다.


---

마지막은 스토얀카였다.

하얀 꽃잎이 그려진 봉투.

그레이는 이미 한 발 더 가까이 와 있었다.

“스토얀카 전하, 편지에 꽃향기가 있는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스토얀카는 웃었다.

“내가 받은 편지인데도?”

“행사 안전상 필요합니다.”

스토얀카는 봉투를 그레이에게 건넸다.

“좋아. 오늘은 착하게 굴어줄게.”

그레이는 잠시 멈췄다.

“그 말이 오히려 불안합니다.”

“정직했는데.”

“그래서 더 불안합니다.”

검사 결과, 향은 없었다.

독도 없었다.

마력 반응도 없었다.

그레이가 봉투를 돌려주었다.

“개봉 가능합니다.”

스토얀카는 봉투를 열었다.

편지는 단 한 줄이었다.

> 꽃은 왜 찌릅니까?



스토얀카는 그것을 보자 웃었다.

처음에는 작게.

그다음에는 조금 더 크게.

푸리나는 긴장했다.

레플리카는 바로 그녀를 보았다.

알렉산드리나는 팔짱을 꼈다.

스토얀카는 편지를 들어 보였다.

“좋은 질문이네.”

레플리카는 말했다.

“대답을 조심하십시오.”

“왜? 찌르니까 꽃이지.”

“그런 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토얀카는 편지를 보았다.

“피우려고.”

그녀는 짧게 답했다.

레플리카의 표정이 굳었다.

“그 답은 위험합니다.”

“알아.”

스토얀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래서 재밌지.”

알렉산드리나는 낮게 말했다.

“오늘은 편지 안에서만 찌르십시오.”

“재미없어.”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필요합니다.”

스토얀카는 세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조금 얌전하게 앉았다.

“좋아. 그럼 조금 길게 답할게.”

그녀는 펜을 들었다.

모두가 긴장했다.

죠니가 작게 말했다.

“저건 펜인데 왜 무기처럼 보이지?”

하융은 창호를 보았다.

“한 가능성에서는 실제로 무기였소.”

그레이는 바로 말했다.

“그 가능성은 폐기합니다.”

스토얀카는 웃으면서 답장을 썼다.

> 꽃은 찌릅니다.
누군가 꺾으려 할 때, 누군가 뿌리째 뽑으려 할 때, 누군가 아름답다는 이유로 소유하려 할 때.

하지만 모든 가시가 방어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가시는 시험입니다.
피를 흘릴 각오도 없이 꽃을 말하지 말라는 시험.

나는 그런 꽃을 좋아합니다.
너무 쉽게 만져지는 꽃은 금방 시들거든요.



레플리카는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스토얀카는 손을 들어 막았다.

“아직 안 끝났어.”

그녀는 드물게 장난기 없는 눈으로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한 줄을 더 썼다.

> 그러나 모든 손을 찌를 필요는 없겠지.
물을 주러 온 손까지 피 흘리게 하면, 꽃은 결국 자기 목마름으로 죽을 테니까.



레플리카가 멈췄다.

알렉산드리나도 스토얀카를 다시 보았다.

그레이는 장부를 들고 있었지만 적지 않았다.

스토얀카는 답장을 접었다.

“어때?”

레플리카는 잠시 침묵했다.

“전반부는 위험합니다.”

“후반부는?”

“필요합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좋아. 반쯤 합격이네.”

알렉산드리나는 말했다.

“오늘의 스토얀카 전하 치고는 상당히 절제되었습니다.”

“칭찬이지?”

“오늘만큼은요.”

스토얀카는 만족한 듯 우편함을 보았다.

그러다 편지를 넣기 전, 푸리나를 보았다.

“이거 무대 위에서 읽어도 돼?”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예전의 푸리나라면, 아마 바로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극적인 대사니까.

위험하고 아름다우니까.

관객들이 숨을 멈출 테니까.

하지만 지금 푸리나는 편지를 보았다.

그리고 스토얀카의 손을 보았다.

“네가 읽고 싶으면.”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재미있어서 읽는 거면, 안 읽어도 돼.”

스토얀카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왜?”

“그 편지는 누군가가 진짜로 물은 거잖아. 꽃이 왜 찌르는지.”

푸리나는 살짝 웃었다.

“그럼 네가 진짜로 답했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할 때도 있지 않을까?”

스토얀카는 푸리나를 오래 보았다.

레플리카는 아주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죠니는 낮게 말했다.

“좋은 판단이네, 여왕님.”

그레이도 말했다.

“동의합니다.”

푸리나는 조금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나도 이제 조금은 배운다구.”

죠니는 말했다.

“이번엔 진짜 조금 더 배웠네.”

“죠니!”

스토얀카는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그럼 안 읽을래.”

그녀는 답장을 우편함에 넣었다.

하얀 꽃잎 봉투가 사라졌다.

왕관 우편함은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무대 위 공기가 조금 가벼워졌다.

푸리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불가리아의 편지, 종료!”

그레이는 장부를 보았다.

“결투 없음. 외교 분쟁 없음. 즉흥 내전 없음. 위험 꽃 반입 없음. 편지 향 첨가 없음.”

죠니가 말했다.

“대성공이네.”

레플리카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만큼은 그렇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만큼은 충분합니다.”

스토얀카는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재미는 조금 부족했지만.”

그레이가 그녀를 보았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그 말은 스토얀카식으로는 꽤 큰 양보였다.

왕관 우편함은 다시 뚜껑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봉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우편함의 작은 문 안쪽에서 아주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타마르가 조용히 말했다.

“다음 편지는 조금 느리게 오는 모양이군요.”

아레는 고개를 들었다.

푸리나는 그 시선을 보았다.

왕관 우편함 안에서, 이름 없는 봉투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봉투에는 수신자도, 발신자도 없었다.

그저 한 줄.

돌아오지 못한 이들에게.

무대 위의 공기가 다시 느려졌다.

푸리나는 종을 들었다.

하지만 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종소리조차 너무 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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