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3 [1:1/백합] 안녕이라는 말대신 안녕 (86)
작성자:◆HqtdN5ly7S
작성일:2026-05-24 (일) 02:11:45
갱신일:2026-06-03 (수) 14:27:59
#0◆HqtdN5ly7S(d9319d04)2026-05-24 (일) 02:11:45
헤어질 때의 안녕과 다시 만날 때의 안녕 사이.
그 긴 공백을 채운 건 무성한 소문도, 화려한 경력도 아닌 너를 향해 앓았던 낮은 열기뿐이었다.
안녕이란 말 대신,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진심에 관하여.
그 긴 공백을 채운 건 무성한 소문도, 화려한 경력도 아닌 너를 향해 앓았던 낮은 열기뿐이었다.
안녕이란 말 대신,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진심에 관하여.
#37◆lHp/w/X9b.(b85604e9)2026-05-26 (화) 12:50:07
나란히 붙어 앉은 자리에서 전해지는 미미한 온기가 생경했다.
"오랜만이에요. 아사히나 씨...... 아니, 아사히나 선배."
고심 끝에 고쳐 부른 그 호칭이 히요리의 귓가에 차갑게 박혔다. 한때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예사롭게 오가던 이름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딱딱한 성씨와 사회적인 직함만이 남았다. 아사히나 선배. 그 짧은 음절 사이에 가로놓인 2년이라는 시간이 새삼 아득한 절벽처럼 느껴졌다.
히요리는 옅게 떨리는 손끝을 숨기려 잔을 고쳐 쥐었다. 자신을 밀어내는 듯한 '씨'라는 호칭에는 가슴 한구석이 가라앉았으나, 뒤이어 붙여진 '선배'라는 단어에는 비겁한 안도감이 일었다. 적어도 우리가 공유했던 계절이 아주 지워지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 그 일말의 연결고리가 지금의 히요리에겐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밧줄이었다.
아키호는 시선을 외면한 채 누군가 부어준 미지근한 맥주를 단숨에 비워냈다. 잔이 테이블에 놓이는 둔탁한 소리가 소란스러운 주변 소음을 뚫고 히요리의 귓가에 유독 선명하게 맺혔다.
"정장 잘 어울리네요."
이어지는 아키호의 말은 무척이나 정중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네는 예의 바른 인사처럼. 히요리는 제 어깨에 걸린 정장이 갑자기 무겁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아키호가 기억하는 교복 입은 선배는 이제 어디에도 없고, 여기엔 매일 아침 피로를 가리는 화장을 하는 사회인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대학생인 아키호는 여전히 자유로운 청춘의 향취를 간직하고 있는데, 자신만 어느새 네게 칭찬받아야 할 만큼 낯선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히요리는 테이블 위에서 초조하게 까딱이는 아키호의 손가락 끝을 가만히 응시했다. 감정이 갈 곳을 잃으면 나타나던 저 작은 습관마저 여전해서, 히요리는 겨우 목소리를 골라내어 낮게 대답했다.
"......고마워. 아키호는 여전하네. 여전히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라서, 조금...... 안심이 돼."
내뱉고 난 말은 안부보다 고백에 가까웠다. 변해버린 자신과 달리 여전히 그때의 계절에 머물러 있는 듯한 상대에 대한 이기적인 안도감. 히요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미소 끝에는 차마 닿지 못한 말들이 쓸쓸하게 맴돌았다.
"오랜만이에요. 아사히나 씨...... 아니, 아사히나 선배."
고심 끝에 고쳐 부른 그 호칭이 히요리의 귓가에 차갑게 박혔다. 한때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예사롭게 오가던 이름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딱딱한 성씨와 사회적인 직함만이 남았다. 아사히나 선배. 그 짧은 음절 사이에 가로놓인 2년이라는 시간이 새삼 아득한 절벽처럼 느껴졌다.
히요리는 옅게 떨리는 손끝을 숨기려 잔을 고쳐 쥐었다. 자신을 밀어내는 듯한 '씨'라는 호칭에는 가슴 한구석이 가라앉았으나, 뒤이어 붙여진 '선배'라는 단어에는 비겁한 안도감이 일었다. 적어도 우리가 공유했던 계절이 아주 지워지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 그 일말의 연결고리가 지금의 히요리에겐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밧줄이었다.
아키호는 시선을 외면한 채 누군가 부어준 미지근한 맥주를 단숨에 비워냈다. 잔이 테이블에 놓이는 둔탁한 소리가 소란스러운 주변 소음을 뚫고 히요리의 귓가에 유독 선명하게 맺혔다.
"정장 잘 어울리네요."
이어지는 아키호의 말은 무척이나 정중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네는 예의 바른 인사처럼. 히요리는 제 어깨에 걸린 정장이 갑자기 무겁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아키호가 기억하는 교복 입은 선배는 이제 어디에도 없고, 여기엔 매일 아침 피로를 가리는 화장을 하는 사회인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대학생인 아키호는 여전히 자유로운 청춘의 향취를 간직하고 있는데, 자신만 어느새 네게 칭찬받아야 할 만큼 낯선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히요리는 테이블 위에서 초조하게 까딱이는 아키호의 손가락 끝을 가만히 응시했다. 감정이 갈 곳을 잃으면 나타나던 저 작은 습관마저 여전해서, 히요리는 겨우 목소리를 골라내어 낮게 대답했다.
"......고마워. 아키호는 여전하네. 여전히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라서, 조금...... 안심이 돼."
내뱉고 난 말은 안부보다 고백에 가까웠다. 변해버린 자신과 달리 여전히 그때의 계절에 머물러 있는 듯한 상대에 대한 이기적인 안도감. 히요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미소 끝에는 차마 닿지 못한 말들이 쓸쓸하게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