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채팅]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잡담방 -237- (1001)
종료
작성자:에주
작성일:2025-01-15 (수) 17:33:15
갱신일:2025-01-17 (금) 19:08:48
#0에주(2A49Canx/G)2025-01-15 (수) 17:33:15
메인위키: https://bit.ly/2UOMF0L
뉴비들을 위한 간략한 캐릭터 목록: https://bit.ly/3da6h5D
1:1 카톡방: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432087/recent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а́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뉴비들을 위한 간략한 캐릭터 목록: https://bit.ly/3da6h5D
1:1 카톡방: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432087/recent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а́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87Human in Orbit(LgroceUD0e)2025-01-16 (목) 09:27:00
외행성대 우주정거장 아약스 호의 슈퍼스타
아냑은 방을 나섰다. 나서기 전에 메모까지 꼼꼼히 하고 나왔다. ‘화장실에 물이 샌다.’ 그가 잡다한 방면의 지식을 알고 심지어 손도 바쁘게 움직일 줄 아는 과학자 겸 엔지니어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생명과도 같은 우주정거장의 내부 설비를 고지도 없이 함부로 고칠 수도 없었으며 비품도 없이 야매로 때울 수도 없었다.
큼지막한 손이 잠시 허공을 춤춘다. 손에 든 게 아무것도 없는 과학자의 슬픈 손짓이다. 그리고 이 상태로 연구동에 들렀다가 생길 미래를 며칠째 겪어 본 사람의 몸짓이기도 했다. 며칠째 얼굴을 비추러 가고 수다도 떨러 가고 겸사겸사 연구 진척도에 손도 얹어주려고 가는 거긴 하지만, 아냑은 매번 갈 때마다 심란했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어! 나비 발견한 놈이다!”
“대체 몇 번 씩이나 날 그런 호칭으로 부를 셈이야.”
“에이, 이제 반응이 싱거워 졌잖아.”
“난 어제부터 이런 반응이였거든.”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생명체를 발견하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우주 안에서 살고 있는 그들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사실 다이아몬드가 제일 싼 광석일 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였으니. 나무라는 유기물이야 말로 우주에서 제일 희귀한 자원이란 사실은 과학자들 뿐이 아닌 우주정거장 거주자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더군다나 아냑이 자리한 곳은 외행성계였다. 그나마 태양이 가까운 내행성계였다면 아주 작은 미생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을 수도 있었다. 혹은 골디락스 벨트가 지구가 있는 곳에서 뒤로 미루어져서 화성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는지 그 영향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나... 아, 아냑은 생각을 접었다. 눈앞에 들이밀어진 플랜카드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모르포 나비들은 어쩌다가 나온 거냐니까?”
“그거 연구하려고 내가 휴가 쓰고 쉬다가 복귀하러 준비하는 거잖아.”
“나비 발견한 소감은?”
“죽겠다 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나비 사진을 오려 대충 종이에 붙여 만든 플랜카드. 아냑이 연구동에 올 때마다 왔냐는 인사말 대신 다가오는 이미지였다. 아냑은 이제 환장할 기력도 남지 않은 듯 눈길만 주고 관뒀다. 과학자들도 플랜카드를 다시 회수했다. 농담의 본질이 반복인 걸 아는 사람들이지만 그걸 그렇다고 정직하게 반복하라고 한 적은 없다. 과학자들이 이래서 재미가 없다. 아냑은 자신도 과학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이런 의식의 흐름은 막지 않기로 했다.
아냑이 연구동 안을 둘러보면 여러 대형 프로젝트가 이뤄지던 방 중 두어 개의 불이 꺼져 있었다. 그리고 이 새롭고 흥미롭고 충격적인 ‘나비 사건’에 연구원들이 대부분 들러붙어 있는 것도 보였다. 오늘이 휴가 온 지 며칠 째더라. 연구동에 계속 얼굴을 비추던 아냑은 이제 슬슬 드러누워서 힘들다고 하는 과학자들도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쉬라고 만들어 놓은 소파에 늘어진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아냑은 저 사람들이, 지금 발견된 나비의 학명과 진짜 나비인지에 대한 고찰과 기타 등등 생물학적 연구까지만 가능하고 그 배후를 전혀 연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도파민에 쩔어서 밤을 샜다가 나가떨어진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다지 구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못 볼 걸 봤다는 듯 보안경을 쓸 뿐이다.
“왜 저래.”
“밥 안 먹었대.”
왜 또 다른 이유인데.
“에휴. 내가 마저 할 테니까 넌 가서 저 양반들 밥 좀 먹여라.”
아냑은 휴가 사이에 쌓인 연구 데이터를 마저 살폈다. 정말 정밀하게 연구했고, 자신이 가져온 모든 나비들을 삭삭 긁어모아 연구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데이터들. 동시에 발생과정을 전혀 알 수 없어 연구자 모두가 피상적이라고 말하며 우울해하는 데이터들.
아냑은 몇 장을 넘겼다. 그중 그나마 기이함과 이상함, 특이점을 기록한 부분이었다.
모든 나비들에게서 암수 구분이 불가능함.
보존 상태가 양호한 개체 일부의 몸통을 해석해 보았으나, 번식과 관련된 기관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그 밑에 더 추가된 것이 있다. 아마 오늘까지 쭉 나비들을 전부 돌려보면서 나온 결과의 요약본일 것이다.
정정. 모든 나비들에게서 소화기관이나 기타 장기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음.
모든 나비들에게서 채취된 체액은 곤충에게서 발견되는 체액이나 혈액과 유사.
나비의 대롱입에서 연결되는 내부 공간이 존재하지 않음.
아냑으로서는, 아니, 이 내용을 읽는 모든 과학자, 일반인은 서늘할 내용이였다.
‘나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전제가 생긴 셈이니까. 아냑은 며칠 전에 묵직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만큼의 서늘한 감각을 뒷목에서 느꼈다. 불가해에서 오는 본능적인 공포. 상식 바깥의 범주에 속하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의 절망감, 막막함.
...그리고 새로운 헤집어 놓을 것을 발견했을 때의 벅참과, 새로운 방점을 올바른 자리에 찍어야만 하는 막중한 무게감까지. 후우. 아냑은 요 며칠 사이 쉰 한숨의 숫자를 세지 않기로 했다. 오늘 새로 들어가야 하는 연구는 이전과 다를 것이 없다. 지구에서 발견되었던 나비와 아냑의 위성에서 발견된 ‘나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일. 올바른 방점을 찍기 위한 수천 번의 삽질.
아냑은 보안경을 고쳐 쓴 뒤, 남을 사람들 몇과 다시 인사하고 일을 시작했다. 아냑의 보랏빛 눈이 백열등 아래에서 자줏빛으로 충혈되어 갔다.
-
“난 말이야, 저 연구 말고 이전에 하던 프로젝트들 좀 마저 연구했으면 좋겠어.”
아냑이 오늘치 연구를 다른 사람들에게 또다시 위임해 주며 말했다.
“수경 재배할 수 있는 것들이나, 그 왜, 있잖아.”
“조개나 게 같은 거?”
“그래.”
아냑을 포함한 과학자들이 우주정거장 내 식당에 도착했다. 거기엔 이제 막 업무에서 복귀해 식사를 준비중이던 엔지니어 팀도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학술적인 연구를 한다고 해도, 일단 먹는 음식 종류를 더 늘려야 하지 않겠냐고.”
“오! 나비 발견자!”
“...아 젠장 또 시작이네!”
아냑은 이것마저 이젠 일상적이였다. 엔지니어 팀이 돌아와서 내부 연구자들한테 하루를 묻는다든가, 연구자들이 오늘은 이런저런 실험을 했었는데 혹시 이 시간대에 선체에 이상한 점이 있지 않았는지 묻는 것들 말이다. 다 같은 함선에 사는 사람들이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거기에 아냑 본인의 일이 끼워지니 매번 죽을 맛이긴 했다만.
“며칠째에요!”
“하하!”
“아오!”
참고로 이것까지가 레퍼토리다. 정말 과학자들은 재미가 없다... 엔지니어도 포함해서.
다 같이 모여 배식받은 식판을 식탁에 내려놓고 와글와글 이야기를 꺼낸다. 오늘은 어땠냐, 어제보단 어떻더라, 하는 일들. 개중에는 외부에서 흔치 않게 찾아오는 무역 함선이 이런 물자를 가지고 왔다더라 하는 소식을 한 발 빨리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고, 공돌이들이 새로 업그레이드한 물건이 오늘 세미나실에서 시연할 예정인데 보러 갈 사람 있냐는 사람도 있었다.
나비 주제는 아냑이 토할 것 같으니 그만 물어보라고 성질을 몇 번 낸 탓인지 그다지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아냑이 입안에 남은 음식물을 삼켰다.
“저 엔지니어실에 빌리 부품이 있는데요.”
“뭐가 또 고장났어?”
“아니, 별 건 아니고. 방 화장실에 물이 새서.”
“아, 연락 받긴 했어.”
엔지니어 몇이 이미 아냑의 신고를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 따고 들어가긴 했는데, 물이 실제로 화장실 문 앞에서 실실 새고 있었고.”
“꼭 구멍 난 기름통 같이 말이야.”
“그렇죠?”
“그런데 문 열어보니까 화장실 안 바닥이 말라 있던데?”
엥.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 전원이 그런 소리를 냈다. 추리극에서 본격적으로 수상한 부분이 시작될 때 꼭 나오는 소리 같았다고 아냑은 생각했다. 그렇다고 아냑이 그런 바람 빠진 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 새다 만 건가?”
“일단 안전 검침은 다 해 봤는데, 별달리 새는 부분이 없었다. 화장실 안은 말이지.”
“이거 꼭 화장실 밖에서 샜다는 소리 같잖아요.”
“너 혹시...”
“아니야.”
아냑은 테이블 위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헛소리를 바락바락 반박하면서 손을 붕붕 휘저었다. 와삭와삭, 싱싱하지 못하고 그저 영양소만 제대로 있는 야채가 매우 불만스럽게 아냑의 입속에서 신속하게 씹어 넘겨진다.
“너 염소 같아.”
“시끄러워. 아무튼 화장실 안 문제가 아니란 거죠?”
“확인해 봤을 때는 그렇지.”
“보통 이럴 땐 바닥 쪽 문제 아니던가?”
“역으로 천장일 때도 있고.”
이 모든 이야기가, 그들이 사는 곳이 우주정거장이라는 거대하고 목숨보다 소중한 시설이 아니었다면 정말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냥 단지 선조들이 살았다던 층층이 쌓인 아파트 같은 시설이었다면 그냥 윗집 밑집과 이야기를 나눴겠지. 그렇지 않아서 문제였다. 그들은 인류의 방주에 생명이 묶인 사람들이고 이 빌어먹을 방주는 더럽게 예민한 거대한 기계였다.
“...엔지니어링 비상 인력 충원을 해야 하나?”
그리고 이 말은 과학자들이 업무 중단을 하고 공구 들고 전원 점프수트 입고 따라오라는 소리와 같다. 아냑은 오늘따라 일이 참 많다고 느끼며 식판 안을 전부 비웠다. 식판을 수저로 긁어내는 소리가 한동안 말소리 없이 조용히 식당 안을 채웠다.
-
물론 결과적으로, 아냑을 비롯한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의 걱정과는 달리, 비상 점검과 검침 결과, 물이 샐 구석도 없었고 압력에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몇 시간 동안 시달린 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확인받아 한동안 진이 빠진 채 흐느적거렸다. 그 중에는 아냑도 있었다.
“그럼 그냥 네가 머리카락 말리다가 물이 고인 거 아냐?”
한 엔지니어가 말했다. 아냑의 긴 머리를 옛날부터 지적하던 사람이었다. 언젠가 아냑이 엔지니어로 일할 때도 하루에 세 번은 그 머리를 좀 자르라고 했던.
“그 기다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고인 건데 네가 그냥 물이 샜다고 착각한 거지.”
“아니, 이쯤 길렀으면 그렇게 뚝뚝 흘러서 떨어진 거랑 말 그대로 물이 샌 거랑 구분을 못 할 리가 있겠냐고.”
아냑이 둥글게 말아 묶은 제 머리를 매만졌다. 몇몇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어디 기계에 안 껴?”
“어, 이번이 스물다섯 번째 듣는 말이네. 안 껴. 이렇게 말아서 묶으면.”
“얼마나 길렀더라.”
“몰라.”
“안 자릅니까?”
“귀찮아요...”
아냑의 보랏빛 눈이 어둠 속에서 탁한 패리윙클 색으로 둥둥 떠다녔다. 빛이 유달리 없는 휴식 장소란. 아냑이 역으로 물었다.
“그러는 여러분들은 어둠의 자식들입니까. 나 불 켠다.”
“으아악!”
아냑은 저 깜찍한 엄살을 들어줄 정도의 자비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불을 켰다. 똑같이 하얗고, 나무 흉내 낸 캐비넷과 고철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캐비넷이 늘어서 있는 휴게실 겸 장비 정리실이였고, 그냥 그 뿐이였다.
“눈부셔!”
“플래시로 여기저기 비추고 다니니까 그냥 한동안 어둠 속에 있으면 눈이라도 덜 피곤할까 해서 있던 거야.”
“나.”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아냑도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과학자였다.
“그냥 지금 다들 대충 피곤하니까 자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냐?”
“...아마 맞을걸.”
“아니거든요. 엔지니어팀은 이따가 세미나실 가서 신형 기계 발표도 보고 그럴 거거든요.”
그런 사람 치고 느물거리고 있었다. 휴게 시설에 있는 거의 모두가 퍼진 상태이긴 했지만. 엔지니어팀을 이끌다시피 하는 팀장은 그 꼬라지를 보고서는 결국 세미나실에서 진행될 신형 기기인지 장비인지 하여튼 무언가의 발표회를 조금 미뤄달라고 연락하고 있었다. 아냑은 미적거리면서 다른 과학자 한 명과 함께 생수를 보급하고 있었다.
점프수트 색 굼벵이들이 한동안 휴게 시설 안에서 꿈지럭거렸다.
-
엔지니어들이 권유를 많이 해왔지만, 아냑은 거절했다. 무엇을? 그래, 그 세미나실에서 한다는 그 행사를. 아냑은 다른 과학자들에게 사용 후기를 알려달라고 부탁하면서 자기 방 안에서 일어난 이상한 물 침범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게 정말 자기가 머리를 감다가 물이 고인 건지, 밤늦게 요리를 하다가 물을 흘린 자리이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정말 점검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에서 액체가 새어나온 건지 확인이 불가능하지 않던가. 아냑은 보안경을 연구실 안에 도로 돌려놓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마음 같아선 곧장 잠들고 싶었다. 푹 쉬고 싶기도 했고.
엔지니어들이 네 방은 다시 정리하고 그 참에 물도 도로 닦아놨다는 말을 듣고, 그냥 쉴 겸 추리나 해볼까, 자기 방 안에서 사소한 이유나 더 찾아볼까, 하면서 휴가를 마저 즐길 셈이였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정말 기계나 만지러 도로 나갈 셈이었다.
그랬는데.
아냑은 다시 화장실 방향에서 새어나온 물이 있는 걸 보고 눈가를 가렸다.
이유도 없이 생긴 이변이 이걸로 두 번째다...
아냑은 고인 물에 한 조각의 작고 여린, 밥풀인지 꽃잎인지 모를 허연 무언가가 둥둥 떠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문은 유난히 느리게 열렸다.
아니, 어쩌면 아냑이 느끼기에 느렸을 수도 있다. 평소 속도와 같았는데, 단지 아냑의 인지 속도가 평소보다 조금 더 빨라진 나머지, 문이 열리는 게 조금 느리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런 일은 보통 사람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나 발동된다고 알음알음 괴담처럼 회자되다 말던 것이였는데.
아냑이 뒤늦게 눈을 굴려 물이 고인 자리에 있는 작고 납작하고 둥근 것을 발견했을 때, 이미 문은 열려 있었다.
그 앞에는 거대하고 찬란한 수국 꽃밭과 그 위에서 저들끼리 군무를 하는 나는 금붕어와 푸른 새와 나비 같은 것들이...
무수한 별들의 밑에서...
-
...아냑은 깨어났을 때 자신이 방 바닥에 있음을 알아챘다.
물이 샌 흔적은 온데 간데 없었다.
아냑은 자신이 아는 온갖 단어의 욕설을 타자리고 격렬하게 적어 내렸다가 그만 두었다.
아냑은 방을 나섰다. 나서기 전에 메모까지 꼼꼼히 하고 나왔다. ‘화장실에 물이 샌다.’ 그가 잡다한 방면의 지식을 알고 심지어 손도 바쁘게 움직일 줄 아는 과학자 겸 엔지니어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생명과도 같은 우주정거장의 내부 설비를 고지도 없이 함부로 고칠 수도 없었으며 비품도 없이 야매로 때울 수도 없었다.
큼지막한 손이 잠시 허공을 춤춘다. 손에 든 게 아무것도 없는 과학자의 슬픈 손짓이다. 그리고 이 상태로 연구동에 들렀다가 생길 미래를 며칠째 겪어 본 사람의 몸짓이기도 했다. 며칠째 얼굴을 비추러 가고 수다도 떨러 가고 겸사겸사 연구 진척도에 손도 얹어주려고 가는 거긴 하지만, 아냑은 매번 갈 때마다 심란했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어! 나비 발견한 놈이다!”
“대체 몇 번 씩이나 날 그런 호칭으로 부를 셈이야.”
“에이, 이제 반응이 싱거워 졌잖아.”
“난 어제부터 이런 반응이였거든.”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생명체를 발견하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우주 안에서 살고 있는 그들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사실 다이아몬드가 제일 싼 광석일 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였으니. 나무라는 유기물이야 말로 우주에서 제일 희귀한 자원이란 사실은 과학자들 뿐이 아닌 우주정거장 거주자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더군다나 아냑이 자리한 곳은 외행성계였다. 그나마 태양이 가까운 내행성계였다면 아주 작은 미생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을 수도 있었다. 혹은 골디락스 벨트가 지구가 있는 곳에서 뒤로 미루어져서 화성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는지 그 영향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나... 아, 아냑은 생각을 접었다. 눈앞에 들이밀어진 플랜카드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모르포 나비들은 어쩌다가 나온 거냐니까?”
“그거 연구하려고 내가 휴가 쓰고 쉬다가 복귀하러 준비하는 거잖아.”
“나비 발견한 소감은?”
“죽겠다 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나비 사진을 오려 대충 종이에 붙여 만든 플랜카드. 아냑이 연구동에 올 때마다 왔냐는 인사말 대신 다가오는 이미지였다. 아냑은 이제 환장할 기력도 남지 않은 듯 눈길만 주고 관뒀다. 과학자들도 플랜카드를 다시 회수했다. 농담의 본질이 반복인 걸 아는 사람들이지만 그걸 그렇다고 정직하게 반복하라고 한 적은 없다. 과학자들이 이래서 재미가 없다. 아냑은 자신도 과학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이런 의식의 흐름은 막지 않기로 했다.
아냑이 연구동 안을 둘러보면 여러 대형 프로젝트가 이뤄지던 방 중 두어 개의 불이 꺼져 있었다. 그리고 이 새롭고 흥미롭고 충격적인 ‘나비 사건’에 연구원들이 대부분 들러붙어 있는 것도 보였다. 오늘이 휴가 온 지 며칠 째더라. 연구동에 계속 얼굴을 비추던 아냑은 이제 슬슬 드러누워서 힘들다고 하는 과학자들도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쉬라고 만들어 놓은 소파에 늘어진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아냑은 저 사람들이, 지금 발견된 나비의 학명과 진짜 나비인지에 대한 고찰과 기타 등등 생물학적 연구까지만 가능하고 그 배후를 전혀 연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도파민에 쩔어서 밤을 샜다가 나가떨어진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다지 구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못 볼 걸 봤다는 듯 보안경을 쓸 뿐이다.
“왜 저래.”
“밥 안 먹었대.”
왜 또 다른 이유인데.
“에휴. 내가 마저 할 테니까 넌 가서 저 양반들 밥 좀 먹여라.”
아냑은 휴가 사이에 쌓인 연구 데이터를 마저 살폈다. 정말 정밀하게 연구했고, 자신이 가져온 모든 나비들을 삭삭 긁어모아 연구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데이터들. 동시에 발생과정을 전혀 알 수 없어 연구자 모두가 피상적이라고 말하며 우울해하는 데이터들.
아냑은 몇 장을 넘겼다. 그중 그나마 기이함과 이상함, 특이점을 기록한 부분이었다.
모든 나비들에게서 암수 구분이 불가능함.
보존 상태가 양호한 개체 일부의 몸통을 해석해 보았으나, 번식과 관련된 기관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그 밑에 더 추가된 것이 있다. 아마 오늘까지 쭉 나비들을 전부 돌려보면서 나온 결과의 요약본일 것이다.
정정. 모든 나비들에게서 소화기관이나 기타 장기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음.
모든 나비들에게서 채취된 체액은 곤충에게서 발견되는 체액이나 혈액과 유사.
나비의 대롱입에서 연결되는 내부 공간이 존재하지 않음.
아냑으로서는, 아니, 이 내용을 읽는 모든 과학자, 일반인은 서늘할 내용이였다.
‘나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전제가 생긴 셈이니까. 아냑은 며칠 전에 묵직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만큼의 서늘한 감각을 뒷목에서 느꼈다. 불가해에서 오는 본능적인 공포. 상식 바깥의 범주에 속하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의 절망감, 막막함.
...그리고 새로운 헤집어 놓을 것을 발견했을 때의 벅참과, 새로운 방점을 올바른 자리에 찍어야만 하는 막중한 무게감까지. 후우. 아냑은 요 며칠 사이 쉰 한숨의 숫자를 세지 않기로 했다. 오늘 새로 들어가야 하는 연구는 이전과 다를 것이 없다. 지구에서 발견되었던 나비와 아냑의 위성에서 발견된 ‘나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일. 올바른 방점을 찍기 위한 수천 번의 삽질.
아냑은 보안경을 고쳐 쓴 뒤, 남을 사람들 몇과 다시 인사하고 일을 시작했다. 아냑의 보랏빛 눈이 백열등 아래에서 자줏빛으로 충혈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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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야, 저 연구 말고 이전에 하던 프로젝트들 좀 마저 연구했으면 좋겠어.”
아냑이 오늘치 연구를 다른 사람들에게 또다시 위임해 주며 말했다.
“수경 재배할 수 있는 것들이나, 그 왜, 있잖아.”
“조개나 게 같은 거?”
“그래.”
아냑을 포함한 과학자들이 우주정거장 내 식당에 도착했다. 거기엔 이제 막 업무에서 복귀해 식사를 준비중이던 엔지니어 팀도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학술적인 연구를 한다고 해도, 일단 먹는 음식 종류를 더 늘려야 하지 않겠냐고.”
“오! 나비 발견자!”
“...아 젠장 또 시작이네!”
아냑은 이것마저 이젠 일상적이였다. 엔지니어 팀이 돌아와서 내부 연구자들한테 하루를 묻는다든가, 연구자들이 오늘은 이런저런 실험을 했었는데 혹시 이 시간대에 선체에 이상한 점이 있지 않았는지 묻는 것들 말이다. 다 같은 함선에 사는 사람들이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거기에 아냑 본인의 일이 끼워지니 매번 죽을 맛이긴 했다만.
“며칠째에요!”
“하하!”
“아오!”
참고로 이것까지가 레퍼토리다. 정말 과학자들은 재미가 없다... 엔지니어도 포함해서.
다 같이 모여 배식받은 식판을 식탁에 내려놓고 와글와글 이야기를 꺼낸다. 오늘은 어땠냐, 어제보단 어떻더라, 하는 일들. 개중에는 외부에서 흔치 않게 찾아오는 무역 함선이 이런 물자를 가지고 왔다더라 하는 소식을 한 발 빨리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고, 공돌이들이 새로 업그레이드한 물건이 오늘 세미나실에서 시연할 예정인데 보러 갈 사람 있냐는 사람도 있었다.
나비 주제는 아냑이 토할 것 같으니 그만 물어보라고 성질을 몇 번 낸 탓인지 그다지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아냑이 입안에 남은 음식물을 삼켰다.
“저 엔지니어실에 빌리 부품이 있는데요.”
“뭐가 또 고장났어?”
“아니, 별 건 아니고. 방 화장실에 물이 새서.”
“아, 연락 받긴 했어.”
엔지니어 몇이 이미 아냑의 신고를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 따고 들어가긴 했는데, 물이 실제로 화장실 문 앞에서 실실 새고 있었고.”
“꼭 구멍 난 기름통 같이 말이야.”
“그렇죠?”
“그런데 문 열어보니까 화장실 안 바닥이 말라 있던데?”
엥.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 전원이 그런 소리를 냈다. 추리극에서 본격적으로 수상한 부분이 시작될 때 꼭 나오는 소리 같았다고 아냑은 생각했다. 그렇다고 아냑이 그런 바람 빠진 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 새다 만 건가?”
“일단 안전 검침은 다 해 봤는데, 별달리 새는 부분이 없었다. 화장실 안은 말이지.”
“이거 꼭 화장실 밖에서 샜다는 소리 같잖아요.”
“너 혹시...”
“아니야.”
아냑은 테이블 위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헛소리를 바락바락 반박하면서 손을 붕붕 휘저었다. 와삭와삭, 싱싱하지 못하고 그저 영양소만 제대로 있는 야채가 매우 불만스럽게 아냑의 입속에서 신속하게 씹어 넘겨진다.
“너 염소 같아.”
“시끄러워. 아무튼 화장실 안 문제가 아니란 거죠?”
“확인해 봤을 때는 그렇지.”
“보통 이럴 땐 바닥 쪽 문제 아니던가?”
“역으로 천장일 때도 있고.”
이 모든 이야기가, 그들이 사는 곳이 우주정거장이라는 거대하고 목숨보다 소중한 시설이 아니었다면 정말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냥 단지 선조들이 살았다던 층층이 쌓인 아파트 같은 시설이었다면 그냥 윗집 밑집과 이야기를 나눴겠지. 그렇지 않아서 문제였다. 그들은 인류의 방주에 생명이 묶인 사람들이고 이 빌어먹을 방주는 더럽게 예민한 거대한 기계였다.
“...엔지니어링 비상 인력 충원을 해야 하나?”
그리고 이 말은 과학자들이 업무 중단을 하고 공구 들고 전원 점프수트 입고 따라오라는 소리와 같다. 아냑은 오늘따라 일이 참 많다고 느끼며 식판 안을 전부 비웠다. 식판을 수저로 긁어내는 소리가 한동안 말소리 없이 조용히 식당 안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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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결과적으로, 아냑을 비롯한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의 걱정과는 달리, 비상 점검과 검침 결과, 물이 샐 구석도 없었고 압력에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몇 시간 동안 시달린 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확인받아 한동안 진이 빠진 채 흐느적거렸다. 그 중에는 아냑도 있었다.
“그럼 그냥 네가 머리카락 말리다가 물이 고인 거 아냐?”
한 엔지니어가 말했다. 아냑의 긴 머리를 옛날부터 지적하던 사람이었다. 언젠가 아냑이 엔지니어로 일할 때도 하루에 세 번은 그 머리를 좀 자르라고 했던.
“그 기다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고인 건데 네가 그냥 물이 샜다고 착각한 거지.”
“아니, 이쯤 길렀으면 그렇게 뚝뚝 흘러서 떨어진 거랑 말 그대로 물이 샌 거랑 구분을 못 할 리가 있겠냐고.”
아냑이 둥글게 말아 묶은 제 머리를 매만졌다. 몇몇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어디 기계에 안 껴?”
“어, 이번이 스물다섯 번째 듣는 말이네. 안 껴. 이렇게 말아서 묶으면.”
“얼마나 길렀더라.”
“몰라.”
“안 자릅니까?”
“귀찮아요...”
아냑의 보랏빛 눈이 어둠 속에서 탁한 패리윙클 색으로 둥둥 떠다녔다. 빛이 유달리 없는 휴식 장소란. 아냑이 역으로 물었다.
“그러는 여러분들은 어둠의 자식들입니까. 나 불 켠다.”
“으아악!”
아냑은 저 깜찍한 엄살을 들어줄 정도의 자비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불을 켰다. 똑같이 하얗고, 나무 흉내 낸 캐비넷과 고철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캐비넷이 늘어서 있는 휴게실 겸 장비 정리실이였고, 그냥 그 뿐이였다.
“눈부셔!”
“플래시로 여기저기 비추고 다니니까 그냥 한동안 어둠 속에 있으면 눈이라도 덜 피곤할까 해서 있던 거야.”
“나.”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아냑도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과학자였다.
“그냥 지금 다들 대충 피곤하니까 자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냐?”
“...아마 맞을걸.”
“아니거든요. 엔지니어팀은 이따가 세미나실 가서 신형 기계 발표도 보고 그럴 거거든요.”
그런 사람 치고 느물거리고 있었다. 휴게 시설에 있는 거의 모두가 퍼진 상태이긴 했지만. 엔지니어팀을 이끌다시피 하는 팀장은 그 꼬라지를 보고서는 결국 세미나실에서 진행될 신형 기기인지 장비인지 하여튼 무언가의 발표회를 조금 미뤄달라고 연락하고 있었다. 아냑은 미적거리면서 다른 과학자 한 명과 함께 생수를 보급하고 있었다.
점프수트 색 굼벵이들이 한동안 휴게 시설 안에서 꿈지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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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들이 권유를 많이 해왔지만, 아냑은 거절했다. 무엇을? 그래, 그 세미나실에서 한다는 그 행사를. 아냑은 다른 과학자들에게 사용 후기를 알려달라고 부탁하면서 자기 방 안에서 일어난 이상한 물 침범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게 정말 자기가 머리를 감다가 물이 고인 건지, 밤늦게 요리를 하다가 물을 흘린 자리이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정말 점검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에서 액체가 새어나온 건지 확인이 불가능하지 않던가. 아냑은 보안경을 연구실 안에 도로 돌려놓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마음 같아선 곧장 잠들고 싶었다. 푹 쉬고 싶기도 했고.
엔지니어들이 네 방은 다시 정리하고 그 참에 물도 도로 닦아놨다는 말을 듣고, 그냥 쉴 겸 추리나 해볼까, 자기 방 안에서 사소한 이유나 더 찾아볼까, 하면서 휴가를 마저 즐길 셈이였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정말 기계나 만지러 도로 나갈 셈이었다.
그랬는데.
아냑은 다시 화장실 방향에서 새어나온 물이 있는 걸 보고 눈가를 가렸다.
이유도 없이 생긴 이변이 이걸로 두 번째다...
아냑은 고인 물에 한 조각의 작고 여린, 밥풀인지 꽃잎인지 모를 허연 무언가가 둥둥 떠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문은 유난히 느리게 열렸다.
아니, 어쩌면 아냑이 느끼기에 느렸을 수도 있다. 평소 속도와 같았는데, 단지 아냑의 인지 속도가 평소보다 조금 더 빨라진 나머지, 문이 열리는 게 조금 느리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런 일은 보통 사람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나 발동된다고 알음알음 괴담처럼 회자되다 말던 것이였는데.
아냑이 뒤늦게 눈을 굴려 물이 고인 자리에 있는 작고 납작하고 둥근 것을 발견했을 때, 이미 문은 열려 있었다.
그 앞에는 거대하고 찬란한 수국 꽃밭과 그 위에서 저들끼리 군무를 하는 나는 금붕어와 푸른 새와 나비 같은 것들이...
무수한 별들의 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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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냑은 깨어났을 때 자신이 방 바닥에 있음을 알아챘다.
물이 샌 흔적은 온데 간데 없었다.
아냑은 자신이 아는 온갖 단어의 욕설을 타자리고 격렬하게 적어 내렸다가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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