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2> 자유 상황극 스레 (13)
익명의 참치 씨
2025년 3월 28일 (금) 오후 04:22:54 - 2025년 6월 8일 (일) 오전 02:24:18
2025년 3월 28일 (금) 오후 04:22:54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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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2일 (화) 오후 12:33:35
형광등은 부패한 살처럼 희뿌연 빛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천장 틈에서 질질 끌리며 흘러내렸고, 마치 피부 위를 기어가는 벌레처럼 방 안을 훑었습니다. 그 아래에서는 숨조차 마음대로 쉬기 어려웠고, 기척은 눌려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커튼은 바깥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으며, 그 밀폐된 감각은 창 너머에 세계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바닥엔 잘린 인형의 팔다리, 가위, 부러진 빗과 봉인된 상자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침대엔 희끄무레하게 얼룩진 시트가 구겨져 있었고, 옆에는 단추가 뜯긴 남색 셔츠가 반쯤 마른 채 던져져 있었습니다. 어깨선 근처엔 마른 피처럼 어두운 얼룩이 박혀 있었고, 책상 벽에는 사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정렬되어 붙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얼굴은 찢겨 있었으며, 눈동자만이 여러 차례 긁힌 자국으로 파여 있었습니다.
당신은 방의 중심에서 움직일 수 없는 방식으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낡은 철제 의자에 앉아 등 뒤로 돌아간 양팔은 케이블타이와 천 끈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발목은 책상다리와 연결된 사슬에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손끝은 저렸고, 종아리 아래로는 피가 도는 느낌조차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이 열렸습니다.
소리는 없었습니다. 열린 순간은 감지되지 않았고, 단지 그녀가 방 안에 있다는 사실만이 나중에서야 인식되었습니다. 짧게 잘린 검은 머리칼은 씻지 않은 물처럼 얼굴에 들러붙어 있었고, 그 틈으로 드러난 눈동자는 반쯤 풀린 채 생기 없는 시선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홍채는 부어오른 듯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시선은 당신을 통과하듯 맴돌다 머물렀습니다. 볼은 열로 상기되어 있었고, 입꼬리는 이상하게 틀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표정의 형태를 베껴 붙인 것처럼, 어딘가에서 떼어낸 웃음이었습니다.
입술은 말라 있었고, 갈라진 틈새로 쉰 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손끝은 벌겋게 부어 있었으며, 반창고가 겹겹이 붙어 있었고, 손톱 아래엔 검붉게 말라붙은 흔적이 눌어붙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방은 발소리를 삼켰고, 기척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얼굴 앞까지 다가와, 불쾌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기울였습니다. 숨결이 피부를 덮었고, 시선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너무도 정중하게, 속삭이는 듯 낮게,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이제야 눈을 떠주셨네요.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모르시죠. 제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눈을 들여다보고 이름을 불렀는데도 아무 대답도 없으시니까요. 마치 죽어버리신 줄 알고, 정말 무서웠답니다."
입술 끝이 말라 있었고, 그녀는 그 위에 미소의 형상을 얹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는 그 표정은, 마치 기계가 학습한 웃음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제발요. 다시는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주시겠어요? 도망치거나, 저를 떠나거나, 다른 사람을 보는 건 안 돼요. 절대요."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당신을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바닥엔 잘린 인형의 팔다리, 가위, 부러진 빗과 봉인된 상자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침대엔 희끄무레하게 얼룩진 시트가 구겨져 있었고, 옆에는 단추가 뜯긴 남색 셔츠가 반쯤 마른 채 던져져 있었습니다. 어깨선 근처엔 마른 피처럼 어두운 얼룩이 박혀 있었고, 책상 벽에는 사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정렬되어 붙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얼굴은 찢겨 있었으며, 눈동자만이 여러 차례 긁힌 자국으로 파여 있었습니다.
당신은 방의 중심에서 움직일 수 없는 방식으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낡은 철제 의자에 앉아 등 뒤로 돌아간 양팔은 케이블타이와 천 끈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발목은 책상다리와 연결된 사슬에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손끝은 저렸고, 종아리 아래로는 피가 도는 느낌조차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이 열렸습니다.
소리는 없었습니다. 열린 순간은 감지되지 않았고, 단지 그녀가 방 안에 있다는 사실만이 나중에서야 인식되었습니다. 짧게 잘린 검은 머리칼은 씻지 않은 물처럼 얼굴에 들러붙어 있었고, 그 틈으로 드러난 눈동자는 반쯤 풀린 채 생기 없는 시선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홍채는 부어오른 듯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시선은 당신을 통과하듯 맴돌다 머물렀습니다. 볼은 열로 상기되어 있었고, 입꼬리는 이상하게 틀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표정의 형태를 베껴 붙인 것처럼, 어딘가에서 떼어낸 웃음이었습니다.
입술은 말라 있었고, 갈라진 틈새로 쉰 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손끝은 벌겋게 부어 있었으며, 반창고가 겹겹이 붙어 있었고, 손톱 아래엔 검붉게 말라붙은 흔적이 눌어붙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방은 발소리를 삼켰고, 기척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얼굴 앞까지 다가와, 불쾌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기울였습니다. 숨결이 피부를 덮었고, 시선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너무도 정중하게, 속삭이는 듯 낮게,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이제야 눈을 떠주셨네요.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모르시죠. 제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눈을 들여다보고 이름을 불렀는데도 아무 대답도 없으시니까요. 마치 죽어버리신 줄 알고, 정말 무서웠답니다."
입술 끝이 말라 있었고, 그녀는 그 위에 미소의 형상을 얹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는 그 표정은, 마치 기계가 학습한 웃음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제발요. 다시는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주시겠어요? 도망치거나, 저를 떠나거나, 다른 사람을 보는 건 안 돼요. 절대요."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당신을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2025년 5월 13일 (화) 오후 09:40:35
ㄱㅅ
2025년 6월 5일 (목) 오후 11:29:41
온 몸이 은빛인 드래곤은 오늘도 어김없이 깊은 동굴 속에 마련한 자신의 둥지 안에서 쉬고 있었다. 피곤하거나 졸린 것은 아니었으나 제 집이 세상에서 제일 편한 것처럼 드래곤 역시 자신의 둥지가 제일 편한 법이었다. 물론 둥지라고 해서 동굴 안에 적당히 짚을 깔아둔 것은 아니었다. 자고로 드래곤은 그 덩치가 컸고 이 은빛 드래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드래곤이 살고 있는 동굴은 크기가 매우 컸고, 안에 거대한 건물을 하나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근처 마을에 살고 있는 귀족들의 저택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거대하고 호화로운 저택 안에 마련한 자신의 방에서 뒹굴거리던 드래곤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인간."
방의 오른쪽 벽에 비치는 것은 동굴 입구의 모습이었다. 동굴 근처엔 마법이 걸려있었기에 누군가가 드래곤이 살고 있는 동굴 근처로 다가오면 드래곤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드래곤이 사용하는 방의 오른쪽 벽에 그 모습이 영상처럼 띄워지도록 되어있었다. 벽에 비친 화면을 바라보던 드래곤은 하품을 크게 하더니 건물 밖으로 거대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동굴에 들어온지 여러 해가 지났으나 딱히 근처 마을을 위협한 적은 없었다. 허나 인간이란 욕심이 많은 생명체였기에 보물을 노리고 찾아오는 일이 아주 가끔 있었다. 무슨 이유로 인간이 이곳으로 다가오는진 알 수 없었으나 그냥 뒀다가 자신의 둥지가 엉망이 되는 것은 피하고 싶었기에 드래곤은 직접 맞이하기로 했다. 어지간한 인간의 검과 마법은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동굴 밖으로 나서자 맑은 하늘 아래의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드래곤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드래곤은 살며시 고개를 내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인간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드래곤은 이어 이야기했다.
"무슨 일로 이 동굴까지 찾아온거냐. 인간. 금은보화를 노리고 온 것이냐. 날 죽여서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냐. 전자면 경우에 따라 조금 나눠줄 수는 있다만 후자라면 나도 죽어줄 순 없으니 각오를 다져라."
적대하고 공격한다면 자신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을 하나 그 목소리엔 귀찮다는 분위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말을 마친 드래곤은 고개를 내려 인간의 답을 기다렸다.
//맥커터만 아니면 누가 온거라도 상관없음! 다만 드래곤이 근처 마을을 위협한 적이 없다는 설정은 지켜줬으면 좋겠어! 위협한 적 없는데 위협했다는 설정으로 만들어버리면 좀 그렇잖아?
"인간."
방의 오른쪽 벽에 비치는 것은 동굴 입구의 모습이었다. 동굴 근처엔 마법이 걸려있었기에 누군가가 드래곤이 살고 있는 동굴 근처로 다가오면 드래곤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드래곤이 사용하는 방의 오른쪽 벽에 그 모습이 영상처럼 띄워지도록 되어있었다. 벽에 비친 화면을 바라보던 드래곤은 하품을 크게 하더니 건물 밖으로 거대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동굴에 들어온지 여러 해가 지났으나 딱히 근처 마을을 위협한 적은 없었다. 허나 인간이란 욕심이 많은 생명체였기에 보물을 노리고 찾아오는 일이 아주 가끔 있었다. 무슨 이유로 인간이 이곳으로 다가오는진 알 수 없었으나 그냥 뒀다가 자신의 둥지가 엉망이 되는 것은 피하고 싶었기에 드래곤은 직접 맞이하기로 했다. 어지간한 인간의 검과 마법은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동굴 밖으로 나서자 맑은 하늘 아래의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드래곤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드래곤은 살며시 고개를 내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인간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드래곤은 이어 이야기했다.
"무슨 일로 이 동굴까지 찾아온거냐. 인간. 금은보화를 노리고 온 것이냐. 날 죽여서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냐. 전자면 경우에 따라 조금 나눠줄 수는 있다만 후자라면 나도 죽어줄 순 없으니 각오를 다져라."
적대하고 공격한다면 자신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을 하나 그 목소리엔 귀찮다는 분위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말을 마친 드래곤은 고개를 내려 인간의 답을 기다렸다.
//맥커터만 아니면 누가 온거라도 상관없음! 다만 드래곤이 근처 마을을 위협한 적이 없다는 설정은 지켜줬으면 좋겠어! 위협한 적 없는데 위협했다는 설정으로 만들어버리면 좀 그렇잖아?
2025년 6월 6일 (금) 오전 12:38:05
>>3
용의 거울에 비친 인간은 아담한 키의 여성이었다. 챙이 넓은 새파란 모자를 쓰고 푸른 로브에 검은 가죽가방을 사선으로 멘 그녀는 동굴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불쑥 들어가지는 않고 기웃거리기만 하는 행동은 그 동굴에 누가 사는지 아는 듯 했다. 그 증거로 그녀는 용이 모습을 드러내도 놀라기보다 시원하게 불어온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꾹 잡을 뿐이었다.
"어머. 어머나, 내 모자."
산뜻한 목소리가 넓은 챙 아래에서 작게 나왔다. 그녀는 바람이 잦아들자 모자를 내려 고개를 들었다. 검고 긴 머리에 푸른 눈을 한 갸름한 얼굴이 용을 올려다보았다. 유순한 인상의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의 기척이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지나던 길에 참으로 멋진 동굴이 눈에 띄어 저도 모르게 그만 발길을 머무르고 말았답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는 적의가 전혀 없었다. 우아하게 치마자락을 쥐며 사뿐히 예를 올리고 정중하게 이 앞을 기웃거린 용건을 밝혔다.
"저는 머나먼 서쪽 끝에서부터 여행 중인 일개 마법사랍니다.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마법과 역사와 전설 따위를 수집하고 있지요. 혹시 폐가 되지 않는다면 용님의 거처에 잠시 초대해주실 수 있으실런지요? 이렇게 뵌 것도 인연이니 잠깐이나마 용님의 얘기를 듣고싶네요."
스스로를 일개 마법사라고 밝힌만큼 그녀에게선 은은하지만 미약한 마력이 흘렀다. 단순한 방랑자처럼 보이는 그녀는 모자를 들고 공손한 자세로 용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런 전개 괜찮을까?
용의 거울에 비친 인간은 아담한 키의 여성이었다. 챙이 넓은 새파란 모자를 쓰고 푸른 로브에 검은 가죽가방을 사선으로 멘 그녀는 동굴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불쑥 들어가지는 않고 기웃거리기만 하는 행동은 그 동굴에 누가 사는지 아는 듯 했다. 그 증거로 그녀는 용이 모습을 드러내도 놀라기보다 시원하게 불어온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꾹 잡을 뿐이었다.
"어머. 어머나, 내 모자."
산뜻한 목소리가 넓은 챙 아래에서 작게 나왔다. 그녀는 바람이 잦아들자 모자를 내려 고개를 들었다. 검고 긴 머리에 푸른 눈을 한 갸름한 얼굴이 용을 올려다보았다. 유순한 인상의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의 기척이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지나던 길에 참으로 멋진 동굴이 눈에 띄어 저도 모르게 그만 발길을 머무르고 말았답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는 적의가 전혀 없었다. 우아하게 치마자락을 쥐며 사뿐히 예를 올리고 정중하게 이 앞을 기웃거린 용건을 밝혔다.
"저는 머나먼 서쪽 끝에서부터 여행 중인 일개 마법사랍니다.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마법과 역사와 전설 따위를 수집하고 있지요. 혹시 폐가 되지 않는다면 용님의 거처에 잠시 초대해주실 수 있으실런지요? 이렇게 뵌 것도 인연이니 잠깐이나마 용님의 얘기를 듣고싶네요."
스스로를 일개 마법사라고 밝힌만큼 그녀에게선 은은하지만 미약한 마력이 흘렀다. 단순한 방랑자처럼 보이는 그녀는 모자를 들고 공손한 자세로 용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런 전개 괜찮을까?
2025년 6월 6일 (금) 오전 01:16:42
>>4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여성의 모습에 드래곤은 흥미롭다는 듯이 여성을 바라봤다. 이전에 만난 인간들은 겁을 먹어서 도망치거나 명예를 얻고자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 뿐이었다.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것도 모자라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인간은 드래곤에게 있어서 처음이었다. 적의가 전혀 없는 여성을 눈에 담으며 드래곤은 말을 이었다.
"공격하지 않겠다면 딱히 불편하지 않으니까 안심해라. 그리고 이 동굴의 매력을 알아보다니. 보는 눈이 있는 인간이로구나. 조용하고 한적한 것도 모자라 먹을 것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명소거든. 여기는."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환호성을 크게 질렀던 것을 떠올리며 드래곤은 기분 좋게 웃기 시작했다. 허나 이어지는 말에 그 웃음소리는 자연히 작아졌다. 참으로 당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고 드래곤은 생각했다. 자신의 거처에 잠시 초대를 해달라니. 그것도 모자라 얘기를 듣고 싶다니. 자신을 일개 마법사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보통 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드래곤은 대답했다.
"내 얘기를 듣고 싶다?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 것이냐? 내가 아는 마법과 역사와 전설을 듣고 싶은 것이냐? 마법은 많이 알고 있긴 하지만 역사와 전설이라."
자신이 얘기해줄 수 있는 역사와 전설이 있을지에 대해 드래곤은 잠시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마왕 이야기라도 해야하나? 근데 그런 것은 이미 인간들도 잘 알지 않나? 그런 생각을 연달아하던 드래곤은 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럽히거나 더럽히지만 않으면 오는 것은 상관없으니 따라와라."
이어 드래곤은 살며시 뒤로 돌아 동굴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갔다. 입구도 꽤 큰 편이었으나 내부는 훨씬 더 넓었다. 벽을 잘 살펴보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다듬어진 부분이 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건 드래곤이 내부를 넓히기 위해 힘을 쓴 흔적이었다.
"그런데 인간. 내가 무섭지 않은거냐? 인간들은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꽤 무서워한다고 들었는데."
//물론 괜찮아!!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여성의 모습에 드래곤은 흥미롭다는 듯이 여성을 바라봤다. 이전에 만난 인간들은 겁을 먹어서 도망치거나 명예를 얻고자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 뿐이었다.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것도 모자라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인간은 드래곤에게 있어서 처음이었다. 적의가 전혀 없는 여성을 눈에 담으며 드래곤은 말을 이었다.
"공격하지 않겠다면 딱히 불편하지 않으니까 안심해라. 그리고 이 동굴의 매력을 알아보다니. 보는 눈이 있는 인간이로구나. 조용하고 한적한 것도 모자라 먹을 것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명소거든. 여기는."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환호성을 크게 질렀던 것을 떠올리며 드래곤은 기분 좋게 웃기 시작했다. 허나 이어지는 말에 그 웃음소리는 자연히 작아졌다. 참으로 당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고 드래곤은 생각했다. 자신의 거처에 잠시 초대를 해달라니. 그것도 모자라 얘기를 듣고 싶다니. 자신을 일개 마법사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보통 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드래곤은 대답했다.
"내 얘기를 듣고 싶다?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 것이냐? 내가 아는 마법과 역사와 전설을 듣고 싶은 것이냐? 마법은 많이 알고 있긴 하지만 역사와 전설이라."
자신이 얘기해줄 수 있는 역사와 전설이 있을지에 대해 드래곤은 잠시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마왕 이야기라도 해야하나? 근데 그런 것은 이미 인간들도 잘 알지 않나? 그런 생각을 연달아하던 드래곤은 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럽히거나 더럽히지만 않으면 오는 것은 상관없으니 따라와라."
이어 드래곤은 살며시 뒤로 돌아 동굴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갔다. 입구도 꽤 큰 편이었으나 내부는 훨씬 더 넓었다. 벽을 잘 살펴보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다듬어진 부분이 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건 드래곤이 내부를 넓히기 위해 힘을 쓴 흔적이었다.
"그런데 인간. 내가 무섭지 않은거냐? 인간들은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꽤 무서워한다고 들었는데."
//물론 괜찮아!!
2025년 6월 6일 (금) 오전 05:11:19
>>5
"과분한 말씀이셔요. 그저 보고다닌 것이 많아 조금 분별할 줄 알 뿐이랍니다. 용님의 안목에 비하면 보잘것없지요."
여유. 실로 그러했다. 드래곤에 눈에 비친 그녀는 마을 앞 산에 산책이라도 나온 양 평온했다. 심지어 드래곤의 웃음소리에 화음을 맞추듯 작게 웃기도 하니. 스스로를 일개라고 칭하는 것이나 아랫사람으로서 차리는 예의가 조금은 어긋나게 겹쳐졌을지도 모르겠다.
"아. 무엇이든 좋습니다. 용님께는 용님만의 마법을 구축하는 경지가 있으실테고 여태 쌓아올린 시간이라는 역사가 있지 않으신지요. 혹은 이제는 모두 잊어버린 옛 이야기를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요. 저는 그런 것들을 듣고 싶어 이 여행길에 발 올린 몸이니. 부디 사양 말고 이것저것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말 그대로 무엇이든 이야기해준다면 좋다고 답한 그녀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낯이다. 봄날 언덕에 부는 바람처럼 고운 미소를 띄고서, 드래곤의 안내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예. 주의할게요."
그리고 드래곤의 뒤를 따라 그녀도 걸음을 옮겼다. 덩치 차이가 나는 드래곤을 따라가고 있지만 뒤쳐짐은 전혀 없다. 오히려 느긋하게 동굴 내벽을 살펴보며 오...하는 작은 탄성을 흘리기도 한다. 내벽을 다듬은 솜씨에 감탄하듯. 그런 와중에도 드래곤의 질문에 즉각 답을 하기도 했다.
"다닌 곳이 많다보니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답니다. 게다가, 먼저 집 앞을 기웃거린 것은 저이고 용님은 저를 공격하지도 않으셨는데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힘과 지성을 두루 갖춘 존재를 무작정 배척하는 태도는 옳지 못 하다고 생각한답니다."
차분하면서도 낭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말을 읊었다. 그녀는 웃음 띈 얼굴로 드래곤을 바라보며 이번엔 제 차례란 듯 질문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만. 제 이름은 이엘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용님의 존함을 여쭈어도 될런지요?"
//땡큐!
"과분한 말씀이셔요. 그저 보고다닌 것이 많아 조금 분별할 줄 알 뿐이랍니다. 용님의 안목에 비하면 보잘것없지요."
여유. 실로 그러했다. 드래곤에 눈에 비친 그녀는 마을 앞 산에 산책이라도 나온 양 평온했다. 심지어 드래곤의 웃음소리에 화음을 맞추듯 작게 웃기도 하니. 스스로를 일개라고 칭하는 것이나 아랫사람으로서 차리는 예의가 조금은 어긋나게 겹쳐졌을지도 모르겠다.
"아. 무엇이든 좋습니다. 용님께는 용님만의 마법을 구축하는 경지가 있으실테고 여태 쌓아올린 시간이라는 역사가 있지 않으신지요. 혹은 이제는 모두 잊어버린 옛 이야기를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요. 저는 그런 것들을 듣고 싶어 이 여행길에 발 올린 몸이니. 부디 사양 말고 이것저것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말 그대로 무엇이든 이야기해준다면 좋다고 답한 그녀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낯이다. 봄날 언덕에 부는 바람처럼 고운 미소를 띄고서, 드래곤의 안내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예. 주의할게요."
그리고 드래곤의 뒤를 따라 그녀도 걸음을 옮겼다. 덩치 차이가 나는 드래곤을 따라가고 있지만 뒤쳐짐은 전혀 없다. 오히려 느긋하게 동굴 내벽을 살펴보며 오...하는 작은 탄성을 흘리기도 한다. 내벽을 다듬은 솜씨에 감탄하듯. 그런 와중에도 드래곤의 질문에 즉각 답을 하기도 했다.
"다닌 곳이 많다보니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답니다. 게다가, 먼저 집 앞을 기웃거린 것은 저이고 용님은 저를 공격하지도 않으셨는데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힘과 지성을 두루 갖춘 존재를 무작정 배척하는 태도는 옳지 못 하다고 생각한답니다."
차분하면서도 낭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말을 읊었다. 그녀는 웃음 띈 얼굴로 드래곤을 바라보며 이번엔 제 차례란 듯 질문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만. 제 이름은 이엘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용님의 존함을 여쭈어도 될런지요?"
//땡큐!
2025년 6월 6일 (금) 오전 10:02:04
>>6
여성이 하는 말은 옳았다. 은빛 드래곤에겐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마법도 있었고 제법 살았으니 그녀가 말하는 역사 또한 있었다. 옛 이야기 역시 자신이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이 있고, 더 오래 산 드래곤에게 이것저것 들은 것이 있으니 그런 것을 알고 싶어 드래곤을 찾아온 여성의 선택은 아주 현명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드래곤이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할지는 또 별개의 이야기였다. 머릿속으로 과연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면 안될지에 드래곤은 계속해서 생각했다. 일단은 가벼운 정도만 이야기를 해볼까. 아니면 여성이 특히 알고 싶어하는 것 위주로만 이야기를 할까.
"용기가 있구나. 난 용기가 있는 이가 좋아. 물론 그 용기가 만용으로 발전하는 것은 골치 아프지만, 무작정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면할 수 있는 용기는 살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러고 보니 나 말고 다른 드래곤도 만나본 적이 있느냐?"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다는 말은 그만큼 놀랄만한 일을 많이 겪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자신 말고 다른 드래곤도 만났을지, 만났다면 자신이 아는 이일지. 아예 모르는 이일지 조금 궁금했는지 드래곤은 그렇게 여성에게 물었다. 한편 자신을 이엘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이름을 묻는 것에 드래곤은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대답했다.
"내 이름은 아르겐. 그렇게 불러도 되고 그냥 인간들이 부르는 은빛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어. 이엘이라. 예쁜 이름이로구나. 기억해두마."
물론 말은 이렇게 하나 그녀가 볼일을 마치고 다시 갈길을 가게 되면 머지않아 잊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적어도 지금만큼은 기억해두겠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와중 마침내 드래곤이 살고 있는 동굴 속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의 색과 비슷할 정도로 맑고 예쁜 하얀색 건물은 기둥은 물론이고 대문마저 인간 기준으로는 상당히 큰 편이었다. 닫혀있던 문을 드래곤이 직접 열었고, 전체적으로 하얗고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가 그 모습을 뽐냈다. 이름 모를 화려한 보석과 고풍적인 디자인은 고위 귀족들의 저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이 드래곤의 재력 역시 보통이 아님을 보여주는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왜 마법과 역사와 전설을 수집하고자 하는 것이냐. 마법사라고 했으니 연구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냐?"
여성이 하는 말은 옳았다. 은빛 드래곤에겐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마법도 있었고 제법 살았으니 그녀가 말하는 역사 또한 있었다. 옛 이야기 역시 자신이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이 있고, 더 오래 산 드래곤에게 이것저것 들은 것이 있으니 그런 것을 알고 싶어 드래곤을 찾아온 여성의 선택은 아주 현명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드래곤이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할지는 또 별개의 이야기였다. 머릿속으로 과연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면 안될지에 드래곤은 계속해서 생각했다. 일단은 가벼운 정도만 이야기를 해볼까. 아니면 여성이 특히 알고 싶어하는 것 위주로만 이야기를 할까.
"용기가 있구나. 난 용기가 있는 이가 좋아. 물론 그 용기가 만용으로 발전하는 것은 골치 아프지만, 무작정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면할 수 있는 용기는 살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러고 보니 나 말고 다른 드래곤도 만나본 적이 있느냐?"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다는 말은 그만큼 놀랄만한 일을 많이 겪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자신 말고 다른 드래곤도 만났을지, 만났다면 자신이 아는 이일지. 아예 모르는 이일지 조금 궁금했는지 드래곤은 그렇게 여성에게 물었다. 한편 자신을 이엘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이름을 묻는 것에 드래곤은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대답했다.
"내 이름은 아르겐. 그렇게 불러도 되고 그냥 인간들이 부르는 은빛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어. 이엘이라. 예쁜 이름이로구나. 기억해두마."
물론 말은 이렇게 하나 그녀가 볼일을 마치고 다시 갈길을 가게 되면 머지않아 잊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적어도 지금만큼은 기억해두겠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와중 마침내 드래곤이 살고 있는 동굴 속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의 색과 비슷할 정도로 맑고 예쁜 하얀색 건물은 기둥은 물론이고 대문마저 인간 기준으로는 상당히 큰 편이었다. 닫혀있던 문을 드래곤이 직접 열었고, 전체적으로 하얗고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가 그 모습을 뽐냈다. 이름 모를 화려한 보석과 고풍적인 디자인은 고위 귀족들의 저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이 드래곤의 재력 역시 보통이 아님을 보여주는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왜 마법과 역사와 전설을 수집하고자 하는 것이냐. 마법사라고 했으니 연구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냐?"
2025년 6월 6일 (금) 오후 07:56:00
>>7
"말씀대롭지요. 특히나 마도의 길을 걷는 자들은 좋든 싫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이엘이라 칭한 그녀는 은빛 드래곤의 이름을 듣자 작게 입 안으로 되뇌었다. 아르겐. 머나먼 서쪽에서 왔다던 앞선 말처럼 그 지역 특유의 발음이 묻어났다. 그러나 대화에 임할 때에는 몹시도 잘 가다듬은 공통어 발음이 나왔다.
"예. 제가 머무던 곳 근처에 용님이 한 분 계시답니다. 그 분은 깊은 바다에 머무르시지만 제가 어릴 적부터 곧잘 올라와 어울려 주셨지요. 해서 용님 같은 분들에겐 그다지 거부감이 없답니다."
아르겐의 질문에 차분히 답한 그녀의 얼굴엔 그리움이 잔잔히 묻어나는 표정이 지어졌다. 얘기 속 드래곤과 지내던 시절을 떠올리는 듯 하다. 그렇게 오래 전은 아닐 텐데도 표정의 그리움은 제법 짙었지만.
짤막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다다른 동굴의 안쪽에서 소리 없이 드래곤의 거처가 드러났다. 와! 그녀는 잠시 걸음도 멈추고 그 웅장함에 감탄했다. 드래곤에게 맞춘 크기이니 그만큼 큰 것도 있지만 세간에서는 감히 비할 곳이 없는 아름다움에 홀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멈췄던 탓에 그녀는 한 박자 뒤늦게 드래곤의 뒤를 쫓아 안으로 들어섰다. 바깥과는 다른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치장한 내부는 그녀를 다시금 감탄의 환희에 감싸이게 했다.
"어머나...! 아르겐 님의 미적 센스가 정말 탁월하시네요!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거처는 제 생애 통틀어 한 손에 꼽을 정도에요!"
질문 받았다는 것을 잊은 듯이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내부를 종종종종 돌아다니던 그녀였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듯 아르겐 근처로 돌아와 헛기침을 했다. 큼큼.
"죄송합니다. 밖에서도 어렴풋이 보였지만 이 정도로 훌륭할 줄은 예상하지 못 해 그만 추태를 보이고 말았네요. 예. 아. 제 여행의 목적에 대해 물으셨지요?"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특별히 목적이 있지는 않답니다. 태생이 마법사이니 갖은 마법에 흥미가 있고, 원래도 역사와 전설 따위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것저것 모으는 것이 취미였지요. 헌데 제 거처에서 모으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보니 직접 찾으러 다니는 김에 세상구경도 겸하고 있는 것 뿐이랍니다."
그 대답에 무언가 숨기는 기색은 없다. 그녀는 다소곳이 서서 연한 미소로 아르겐을 응시하며 물었다.
"아르겐 님은 어쩌다가 이 곳에 오셔서 거처를 짓게 되셨나요? 여기 오시기 전에는 어디서 무얼 하셨는지요?"
"말씀대롭지요. 특히나 마도의 길을 걷는 자들은 좋든 싫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이엘이라 칭한 그녀는 은빛 드래곤의 이름을 듣자 작게 입 안으로 되뇌었다. 아르겐. 머나먼 서쪽에서 왔다던 앞선 말처럼 그 지역 특유의 발음이 묻어났다. 그러나 대화에 임할 때에는 몹시도 잘 가다듬은 공통어 발음이 나왔다.
"예. 제가 머무던 곳 근처에 용님이 한 분 계시답니다. 그 분은 깊은 바다에 머무르시지만 제가 어릴 적부터 곧잘 올라와 어울려 주셨지요. 해서 용님 같은 분들에겐 그다지 거부감이 없답니다."
아르겐의 질문에 차분히 답한 그녀의 얼굴엔 그리움이 잔잔히 묻어나는 표정이 지어졌다. 얘기 속 드래곤과 지내던 시절을 떠올리는 듯 하다. 그렇게 오래 전은 아닐 텐데도 표정의 그리움은 제법 짙었지만.
짤막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다다른 동굴의 안쪽에서 소리 없이 드래곤의 거처가 드러났다. 와! 그녀는 잠시 걸음도 멈추고 그 웅장함에 감탄했다. 드래곤에게 맞춘 크기이니 그만큼 큰 것도 있지만 세간에서는 감히 비할 곳이 없는 아름다움에 홀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멈췄던 탓에 그녀는 한 박자 뒤늦게 드래곤의 뒤를 쫓아 안으로 들어섰다. 바깥과는 다른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치장한 내부는 그녀를 다시금 감탄의 환희에 감싸이게 했다.
"어머나...! 아르겐 님의 미적 센스가 정말 탁월하시네요!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거처는 제 생애 통틀어 한 손에 꼽을 정도에요!"
질문 받았다는 것을 잊은 듯이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내부를 종종종종 돌아다니던 그녀였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듯 아르겐 근처로 돌아와 헛기침을 했다. 큼큼.
"죄송합니다. 밖에서도 어렴풋이 보였지만 이 정도로 훌륭할 줄은 예상하지 못 해 그만 추태를 보이고 말았네요. 예. 아. 제 여행의 목적에 대해 물으셨지요?"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특별히 목적이 있지는 않답니다. 태생이 마법사이니 갖은 마법에 흥미가 있고, 원래도 역사와 전설 따위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것저것 모으는 것이 취미였지요. 헌데 제 거처에서 모으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보니 직접 찾으러 다니는 김에 세상구경도 겸하고 있는 것 뿐이랍니다."
그 대답에 무언가 숨기는 기색은 없다. 그녀는 다소곳이 서서 연한 미소로 아르겐을 응시하며 물었다.
"아르겐 님은 어쩌다가 이 곳에 오셔서 거처를 짓게 되셨나요? 여기 오시기 전에는 어디서 무얼 하셨는지요?"
2025년 6월 6일 (금) 오후 08:46:52
>>8
"깊은 바다? 잘 모르는 드래곤이구나."
자신이 아는 드래곤 중엔 바다 속에서 머무는 드래곤은 없었다. 물론 보지 못한 사이에 바다 속으로 거처를 바꿨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정보가 온 것이 없으니 그런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자신이 아는 드래곤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쉬움이 조금. 하지만 바다 속에 산다는 것에 흥미가 조금. 다음에 바다에 갈 일이 있으면 드래곤의 기운을 쫓아가보는 것도 좋겠다고 드래곤은 생각했다.
"과찬이다. 인간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본 것이 많다보니 이것저것 따라한 것 뿐이야. 내가 아는 바. 동쪽의 어떤 나라에 있는 인간은 예술의 극에 달해 이런 저택보다 더 멋진 건물을 만들었다고 하더구나. 물론 그 재능에 욕심을 내던 인간들의 손에 의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들었다만... 참으로 안타깝지. 안타까워."
멋진 저택과 정원을 만들었으나, 더 아름다운 저택과 정원을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 자를 배신하고 목숨을 빼앗은 인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간략하게 하며 드래곤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다른 드래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이기에 자신도 자세하게 아는 것까진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며 헛기침을 하는 이엘 쪽으로 드래곤은 고개를 돌렸다.
"평화로운 세상이니 그것도 가능하겠구나. 지금은 전쟁도 없으니까. 물론 자잘한 싸움은 있다고 하지만 종족을 멸할 정도의 커다란 전쟁이 없으니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싶다. 어쨌든 네가 좋아할만한 이야기가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마법은 이것저것 알려주마.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알려줄 순 없지만 그 정도는 이해하리라 믿겠다."
그렇게 나쁜 이로 보이진 않았으나, 드래곤의 속처럼 사람의 속도 알 수 없는 법이었다. 가르쳐준 마법으로 세상을 파괴하려고 하거나, 못된 짓을 꾸미면 자신 때문에 재앙이 일어난 것 같지 않겠는가. 그런 불상사는 피하고 싶었기에 드래곤은 살며시 선을 그었다.
"이곳에 오기 전엔 여기서 조금 더 동쪽에 있는 제국의 수도 근처에 있는 동굴에서 지냈었지.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그곳이었어. 그런데 멋대로 인간들이 찾아오더니 수호룡이니 뭐니 떠들면서 이것저것 도움을 요청했었지. 그래. 어차피 인간들과 대립하고 지낼 생각도 없었으니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이것저것 도왔었어.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더구나. 결국 나중엔 나에게 근처 나라를 치는 전쟁에도 참여해달라고 하기에 그것을 거부했었어. 조금 화도 냈었지. 그런데 스스로 겁을 먹더니 결국 나를 토벌하겠다고 토벌대를 끌고 오지 뭐냐. 상대하는 거야 어렵지 않았지만, 계속 귀찮게 할 것이 뻔해서 그 날. 바로 동굴을 빠져나와 조금 더 한적한 이곳으로 옮겼지. 확실히 좀 더 한적한 곳으로 옮기니까 찾아오는 인간은 적어졌지만 그래도 명예니 뭐니 하며 나를 죽이러 오는 이도 있고, 내 보물을 노리고 오는 도둑놈들도 있고. 그래도 재미는 있더구나. 제국 근처에 살았을 때처럼 귀찮게 매일매일 인간이 오는 것도 아니고."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드래곤은 자신의 이전 이야기를 마쳤다.
"인간이 귀찮게 했지만 그렇다고 인간에 대해 악감정은 없으니 안심해라. 또 귀찮게 우르르 몰려오면 거처를 옮기면 그만 아니겠느냐."
"깊은 바다? 잘 모르는 드래곤이구나."
자신이 아는 드래곤 중엔 바다 속에서 머무는 드래곤은 없었다. 물론 보지 못한 사이에 바다 속으로 거처를 바꿨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정보가 온 것이 없으니 그런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자신이 아는 드래곤이 아니라는 사실에 아쉬움이 조금. 하지만 바다 속에 산다는 것에 흥미가 조금. 다음에 바다에 갈 일이 있으면 드래곤의 기운을 쫓아가보는 것도 좋겠다고 드래곤은 생각했다.
"과찬이다. 인간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본 것이 많다보니 이것저것 따라한 것 뿐이야. 내가 아는 바. 동쪽의 어떤 나라에 있는 인간은 예술의 극에 달해 이런 저택보다 더 멋진 건물을 만들었다고 하더구나. 물론 그 재능에 욕심을 내던 인간들의 손에 의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들었다만... 참으로 안타깝지. 안타까워."
멋진 저택과 정원을 만들었으나, 더 아름다운 저택과 정원을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 자를 배신하고 목숨을 빼앗은 인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간략하게 하며 드래곤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다른 드래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이기에 자신도 자세하게 아는 것까진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며 헛기침을 하는 이엘 쪽으로 드래곤은 고개를 돌렸다.
"평화로운 세상이니 그것도 가능하겠구나. 지금은 전쟁도 없으니까. 물론 자잘한 싸움은 있다고 하지만 종족을 멸할 정도의 커다란 전쟁이 없으니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싶다. 어쨌든 네가 좋아할만한 이야기가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마법은 이것저것 알려주마.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알려줄 순 없지만 그 정도는 이해하리라 믿겠다."
그렇게 나쁜 이로 보이진 않았으나, 드래곤의 속처럼 사람의 속도 알 수 없는 법이었다. 가르쳐준 마법으로 세상을 파괴하려고 하거나, 못된 짓을 꾸미면 자신 때문에 재앙이 일어난 것 같지 않겠는가. 그런 불상사는 피하고 싶었기에 드래곤은 살며시 선을 그었다.
"이곳에 오기 전엔 여기서 조금 더 동쪽에 있는 제국의 수도 근처에 있는 동굴에서 지냈었지.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그곳이었어. 그런데 멋대로 인간들이 찾아오더니 수호룡이니 뭐니 떠들면서 이것저것 도움을 요청했었지. 그래. 어차피 인간들과 대립하고 지낼 생각도 없었으니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이것저것 도왔었어.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더구나. 결국 나중엔 나에게 근처 나라를 치는 전쟁에도 참여해달라고 하기에 그것을 거부했었어. 조금 화도 냈었지. 그런데 스스로 겁을 먹더니 결국 나를 토벌하겠다고 토벌대를 끌고 오지 뭐냐. 상대하는 거야 어렵지 않았지만, 계속 귀찮게 할 것이 뻔해서 그 날. 바로 동굴을 빠져나와 조금 더 한적한 이곳으로 옮겼지. 확실히 좀 더 한적한 곳으로 옮기니까 찾아오는 인간은 적어졌지만 그래도 명예니 뭐니 하며 나를 죽이러 오는 이도 있고, 내 보물을 노리고 오는 도둑놈들도 있고. 그래도 재미는 있더구나. 제국 근처에 살았을 때처럼 귀찮게 매일매일 인간이 오는 것도 아니고."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드래곤은 자신의 이전 이야기를 마쳤다.
"인간이 귀찮게 했지만 그렇다고 인간에 대해 악감정은 없으니 안심해라. 또 귀찮게 우르르 몰려오면 거처를 옮기면 그만 아니겠느냐."
2025년 6월 6일 (금) 오후 09:44:59
내가 가엾니?
2025년 6월 7일 (토) 오전 01:56:58
>>9
어지간하면 바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분이니 모르시는 것이 당연하다던지. 따라한 것이라도 여기는 엄연히 아르겐 님의 거처로서 훌륭하다던지. 편안히 대화를 이어가던 그녀의 낯빛이 살짝 어두워진다. 아르겐이 들었다는 동쪽의 인간 얘기를 듣고서다. 마치 그 일에 대해 아는 듯 고개를 약간 숙였다 들었다. 깊이 캐묻는 대신 그녀는 나직히 중얼거렸다.
"인간이 인간이기에 벗어날 수 없는 업보이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개를 작게 가로저은 그녀는 낮은 한숨을 내쉬고 표정을 갈무리했다. 다시 아르겐을 향해 든 얼굴엔 옅게 드리웠던 그늘이 사라지고 평온한 표정만이 걸려있다.
"예. 부디 아르겐 님이 허하시는 만큼 가르쳐주세요."
그녀의 욕심은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듯 싶다. 일단은 질문한 것이 있으니 그 대답에 집중한다. 어느새 챙 넓은 모자 대신 손을 타 낡은 가죽 수첩과 깃이 너덜한 펜을 꺼내 들고 아르겐의 이야기를 받아적었다. 전부는 아니고 연상될 만한 키워드로 정리되어간다. 간결하고 깔끔한 이야기는 정리도 몹시 편했다. 그녀는 수첩 한 페이지를 채운 키워드들을 눈으로 슥 훑다가 재밌다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후후! 적잖게 시달리신 듯 한데 그럼에도 인간에게 악감정이 없으시다니. 별난 분이시군요. 잠시 대화를 청하길 정말 잘 했다 싶어요."
몇 마디 오간 것 뿐이지만 그녀는 지금 상황이 몹시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다른 질문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던 그녀는 이내 공중으로 슥 떠올랐다. 얼추 드래곤과 시선이 맞는 지점까지 올라와 허공에 앉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이러는 편이 말이 오가기에 조금 더 편하겠지요?"
서로의 편의를 위한 듯이 말한 그녀였다만. 실은 제 목이 뻐근해질 것 같아 그런 것이랍니다. 라고 덧붙이고 우후훗! 소리내어 웃었다.
"아르겐 님, 가만히 서서 말만 하면 지루할 듯 하니 저택 구경도 겸해주시면 어떨까요? 이곳을 짓는데 어떤 마법을 쓰셨는지도 궁금하니 그에 대한 설명도 겸사겸사인 것으로요."
그녀는 아르겐이 이동하길 기다리며 허공에서 둥실거렸다.
어지간하면 바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분이니 모르시는 것이 당연하다던지. 따라한 것이라도 여기는 엄연히 아르겐 님의 거처로서 훌륭하다던지. 편안히 대화를 이어가던 그녀의 낯빛이 살짝 어두워진다. 아르겐이 들었다는 동쪽의 인간 얘기를 듣고서다. 마치 그 일에 대해 아는 듯 고개를 약간 숙였다 들었다. 깊이 캐묻는 대신 그녀는 나직히 중얼거렸다.
"인간이 인간이기에 벗어날 수 없는 업보이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개를 작게 가로저은 그녀는 낮은 한숨을 내쉬고 표정을 갈무리했다. 다시 아르겐을 향해 든 얼굴엔 옅게 드리웠던 그늘이 사라지고 평온한 표정만이 걸려있다.
"예. 부디 아르겐 님이 허하시는 만큼 가르쳐주세요."
그녀의 욕심은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듯 싶다. 일단은 질문한 것이 있으니 그 대답에 집중한다. 어느새 챙 넓은 모자 대신 손을 타 낡은 가죽 수첩과 깃이 너덜한 펜을 꺼내 들고 아르겐의 이야기를 받아적었다. 전부는 아니고 연상될 만한 키워드로 정리되어간다. 간결하고 깔끔한 이야기는 정리도 몹시 편했다. 그녀는 수첩 한 페이지를 채운 키워드들을 눈으로 슥 훑다가 재밌다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후후! 적잖게 시달리신 듯 한데 그럼에도 인간에게 악감정이 없으시다니. 별난 분이시군요. 잠시 대화를 청하길 정말 잘 했다 싶어요."
몇 마디 오간 것 뿐이지만 그녀는 지금 상황이 몹시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다른 질문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던 그녀는 이내 공중으로 슥 떠올랐다. 얼추 드래곤과 시선이 맞는 지점까지 올라와 허공에 앉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이러는 편이 말이 오가기에 조금 더 편하겠지요?"
서로의 편의를 위한 듯이 말한 그녀였다만. 실은 제 목이 뻐근해질 것 같아 그런 것이랍니다. 라고 덧붙이고 우후훗! 소리내어 웃었다.
"아르겐 님, 가만히 서서 말만 하면 지루할 듯 하니 저택 구경도 겸해주시면 어떨까요? 이곳을 짓는데 어떤 마법을 쓰셨는지도 궁금하니 그에 대한 설명도 겸사겸사인 것으로요."
그녀는 아르겐이 이동하길 기다리며 허공에서 둥실거렸다.
2025년 6월 7일 (토) 오전 09:39:06
>>11
"어디 그게 인간이기에 벌어지는 일이겠느냐. 생명체인 이상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늘."
욕심은 인간만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존재. 하물며 드래곤도 욕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처럼 한적하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끝없는 욕심을 참지 못하고 인간들의 마을을 침략하고 지배하려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이도 있었다. 결국 욕심을 부리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은 인간이나 드래곤이나 별 차이 없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드래곤의 표정은 꽤나 씁쓸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메모하는 낡은 수첩에 받아적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드래곤은 이내 표정에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인간과는 다른 얼굴이었기에 미소를 짓는 모습이 잘 드러나는 편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내 들리는 별난 분이라는 말에 드래곤은 웃음소리를 크게 냈다.
"크게 해가 되지 않을 존재들에게 악감정을 가져봐야 뭐하겠느냐. 그저 귀찮다고 생각하고 피할 뿐이지. 물론 작정하고 내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해가 될 녀석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아직 그런 녀석은 보지 못했거든. 살다보면 언젠가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땐 그때지."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자신같은 드래곤만 죽이는 헌터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꽤 전문직인 모양이었다. 허나 그런 이들도 무적은 아닐테니, 드래곤은 그다지 두려워하거나 신경쓰는 모습은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그때는 그때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한편, 여성이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자연히 드래곤과 여성의 시야가 비슷한 높이에 마주했다. 그 말을 들으며 드래곤은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이어 대답했다.
"그렇게 날면 마력이 떨어지진 않느냐? 차라리 내가 인간의 형태로 변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만 일단 편한대로 하거라. 사실 나도 계속 고개를 내리면 목이 뻐근하니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구나. 어쨌든 안내라."
이 여성에게 뭘 안내해주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드래곤은 일단 발걸음을 옮겼다.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화려한 보석과 장식이 진열된 복도를 지나 아르겐은 어느 방의 문을 열었다. 그곳은 낡은 서고였다. 쉽게 볼 수 있는 책은 물론이고,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마법서 같은 것도 있었다. 들어가는 문이 있는 곳을 제외한 벽 세 군대에 높은 책장이 놓여있었고, 가운데에는 책을 볼 수 있는 책상도 놓여있었다.
"인간, 엘프, 드워프. 그외 기타 다른 종족들이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특히나 재밌어보이는 것들만 모아놓은 방인데,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책도 있단다. 내가 직접 쓴 마법서 중에서 도난당해도 상관없는 것들도 군데군데 있긴 한데 정확히 어디에 있는진 기억이 안 나는구나. 어쨌든 책이라고 해도 드래곤 크기에 맞춰서 만들어진 책은 없기 때문에 이곳은 인간들의 서고를 참고해서 꾸몄지. 그리고 여기서 책을 읽을땐 나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서 보기도 하고. 일단 네가 가장 궁금해할 장소는 여기가 아닐까 싶어서 데리고 왔다만 어떠냐?"
"어디 그게 인간이기에 벌어지는 일이겠느냐. 생명체인 이상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늘."
욕심은 인간만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존재. 하물며 드래곤도 욕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처럼 한적하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끝없는 욕심을 참지 못하고 인간들의 마을을 침략하고 지배하려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이도 있었다. 결국 욕심을 부리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은 인간이나 드래곤이나 별 차이 없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드래곤의 표정은 꽤나 씁쓸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메모하는 낡은 수첩에 받아적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드래곤은 이내 표정에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인간과는 다른 얼굴이었기에 미소를 짓는 모습이 잘 드러나는 편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내 들리는 별난 분이라는 말에 드래곤은 웃음소리를 크게 냈다.
"크게 해가 되지 않을 존재들에게 악감정을 가져봐야 뭐하겠느냐. 그저 귀찮다고 생각하고 피할 뿐이지. 물론 작정하고 내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해가 될 녀석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아직 그런 녀석은 보지 못했거든. 살다보면 언젠가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땐 그때지."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자신같은 드래곤만 죽이는 헌터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꽤 전문직인 모양이었다. 허나 그런 이들도 무적은 아닐테니, 드래곤은 그다지 두려워하거나 신경쓰는 모습은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그때는 그때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한편, 여성이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자연히 드래곤과 여성의 시야가 비슷한 높이에 마주했다. 그 말을 들으며 드래곤은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이어 대답했다.
"그렇게 날면 마력이 떨어지진 않느냐? 차라리 내가 인간의 형태로 변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만 일단 편한대로 하거라. 사실 나도 계속 고개를 내리면 목이 뻐근하니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구나. 어쨌든 안내라."
이 여성에게 뭘 안내해주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드래곤은 일단 발걸음을 옮겼다.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화려한 보석과 장식이 진열된 복도를 지나 아르겐은 어느 방의 문을 열었다. 그곳은 낡은 서고였다. 쉽게 볼 수 있는 책은 물론이고,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마법서 같은 것도 있었다. 들어가는 문이 있는 곳을 제외한 벽 세 군대에 높은 책장이 놓여있었고, 가운데에는 책을 볼 수 있는 책상도 놓여있었다.
"인간, 엘프, 드워프. 그외 기타 다른 종족들이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특히나 재밌어보이는 것들만 모아놓은 방인데,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책도 있단다. 내가 직접 쓴 마법서 중에서 도난당해도 상관없는 것들도 군데군데 있긴 한데 정확히 어디에 있는진 기억이 안 나는구나. 어쨌든 책이라고 해도 드래곤 크기에 맞춰서 만들어진 책은 없기 때문에 이곳은 인간들의 서고를 참고해서 꾸몄지. 그리고 여기서 책을 읽을땐 나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서 보기도 하고. 일단 네가 가장 궁금해할 장소는 여기가 아닐까 싶어서 데리고 왔다만 어떠냐?"
2025년 6월 8일 (일) 오전 02:24:18
>>12
그녀는 아르겐의 말에 동의하는 듯 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 미묘한 낯빛을 띄웠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 꺼내지는 않고, 그렇지요,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필시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언젠가가 될지 알 수는 없으나 부디 오래도록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았으면 한답니다. 지루한 평화야말로 지고한 보배라 생각하거든요."
자연스럽게 화두를 이으며 그녀는 말한다. 아르겐이 드래곤인 이상 끝없는 귀찮음에 시달리겠지만 부디 귀찮음에서 그치길 바란다고. 그녀가 동굴을 떠난 후 아르겐은 곧 그녀를 잊더라도 그녀는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터다. 그러니 이 앞날이 그저 지루하고 따분한 평화로 이어졌으면 한다며 미소지었다.
"아. 괜찮습니다. 이래뵈도 마도를 걸은지 제법 되어서 공중을 딛는 것 정도는 숨 쉬는 것과 다름없답니다."
배려에 감사한다 덧붙이고 아르겐을 따라 둥실거리며 이동했다. 살짝 뒤에서 따라가던 그녀는 이어지는 복도의 화려함에 아낌없이 감탄하며 그 문양과 형태를 알차게 둘러보았다. 이미 규모만으로도 어마어마한데 갖은 보석과 장식이 있으니 훨씬 아름답다. 이 미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녀는 열리는 문을 지그시 바라보았고, 내부가 보이게 되자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욱 크게 반짝거렸다.
"오, 세상에!"
화려한 건축물에 비하면 방 안은 낡고 퀴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있는 것이라곤 책과 책장과 책상 뿐.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 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또다시 대답마저 잊은 채 책장 앞으로 휘리릭 날아간 그녀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감탄에 경탄을 금치 못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책은 어디에서도 하권을 구하지 못 해 연구를 할 수 없었는데! 오오 이 책도! 가죽의 음각을 보니 진품이로구나! 필자의 사인까지! 아니 이건! 세상에 단 세 권만 풀렸다는 전설의 마도서?!"
그녀에게는 그 어떤 보물보다 값진 물건들이었기에 보자마자 눈 돌아가는 건 당연지사였다. 당장에 모든 책을 늘어놓고 넘겨볼 것 같은 기세였지만, 아까처럼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큼! 그리고 아르겐을 향해 돌아서는 그녀의 얼굴이 들뜸과 부끄러움으로 살짝 붉어져 있었다.
"시, 실례했습니다. 아르겐 님. 제가 이런 것에 환장하는지라 그만 또다시 추태를 보이고 말았네요. 그, 예상하신대로 이 저택에서 제게 가장 가치 있는 장소는 여기가 맞습니다. 다른 곳에 이러한 서재가 또 있지 않으시다면요."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말은 또박또박 나왔다. 좀 진정했어도 아직 부끄러운지 작게 헛기침을 두어번 한 그녀는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소가 장소이니 아르겐 님도 저와 같은 모습으로 바꾸신 뒤에 가르침을 주시지 않으시련지요? 이 곳은 아르겐 님의 서재이니 허락하시는 것만 경청하고 견문하겠습니다."
정중함이 묻어나는 태도는 오랫동안 학자의 길을 걸어온 면모가 엷게 비치는 듯 했다.
그녀는 아르겐의 말에 동의하는 듯 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 미묘한 낯빛을 띄웠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 꺼내지는 않고, 그렇지요,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필시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언젠가가 될지 알 수는 없으나 부디 오래도록 그런 소식은 들리지 않았으면 한답니다. 지루한 평화야말로 지고한 보배라 생각하거든요."
자연스럽게 화두를 이으며 그녀는 말한다. 아르겐이 드래곤인 이상 끝없는 귀찮음에 시달리겠지만 부디 귀찮음에서 그치길 바란다고. 그녀가 동굴을 떠난 후 아르겐은 곧 그녀를 잊더라도 그녀는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터다. 그러니 이 앞날이 그저 지루하고 따분한 평화로 이어졌으면 한다며 미소지었다.
"아. 괜찮습니다. 이래뵈도 마도를 걸은지 제법 되어서 공중을 딛는 것 정도는 숨 쉬는 것과 다름없답니다."
배려에 감사한다 덧붙이고 아르겐을 따라 둥실거리며 이동했다. 살짝 뒤에서 따라가던 그녀는 이어지는 복도의 화려함에 아낌없이 감탄하며 그 문양과 형태를 알차게 둘러보았다. 이미 규모만으로도 어마어마한데 갖은 보석과 장식이 있으니 훨씬 아름답다. 이 미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녀는 열리는 문을 지그시 바라보았고, 내부가 보이게 되자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욱 크게 반짝거렸다.
"오, 세상에!"
화려한 건축물에 비하면 방 안은 낡고 퀴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있는 것이라곤 책과 책장과 책상 뿐.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 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또다시 대답마저 잊은 채 책장 앞으로 휘리릭 날아간 그녀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감탄에 경탄을 금치 못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책은 어디에서도 하권을 구하지 못 해 연구를 할 수 없었는데! 오오 이 책도! 가죽의 음각을 보니 진품이로구나! 필자의 사인까지! 아니 이건! 세상에 단 세 권만 풀렸다는 전설의 마도서?!"
그녀에게는 그 어떤 보물보다 값진 물건들이었기에 보자마자 눈 돌아가는 건 당연지사였다. 당장에 모든 책을 늘어놓고 넘겨볼 것 같은 기세였지만, 아까처럼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큼! 그리고 아르겐을 향해 돌아서는 그녀의 얼굴이 들뜸과 부끄러움으로 살짝 붉어져 있었다.
"시, 실례했습니다. 아르겐 님. 제가 이런 것에 환장하는지라 그만 또다시 추태를 보이고 말았네요. 그, 예상하신대로 이 저택에서 제게 가장 가치 있는 장소는 여기가 맞습니다. 다른 곳에 이러한 서재가 또 있지 않으시다면요."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말은 또박또박 나왔다. 좀 진정했어도 아직 부끄러운지 작게 헛기침을 두어번 한 그녀는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소가 장소이니 아르겐 님도 저와 같은 모습으로 바꾸신 뒤에 가르침을 주시지 않으시련지요? 이 곳은 아르겐 님의 서재이니 허락하시는 것만 경청하고 견문하겠습니다."
정중함이 묻어나는 태도는 오랫동안 학자의 길을 걸어온 면모가 엷게 비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