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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익명의 참치 씨(6294821e)2026-09-20 (일) 14: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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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냐(Tanya), TNY는 워드 오브 블레이크가 지하드 초기에 실전 배치한 70톤급 중량 옴니메크다. 성간연대 로열 부대의 은폐 저격기였던 덱타료프를 바탕으로 개발되었으며, 증량한 20톤에 장갑과 보조 화력, C3i를 사용하는 집단 사격 능력을 담았다. 왼팔의 긴 가우스 라이플과 오른팔에 수납된 접이식 칼은 타냐를 식별하는 가장 확실한 특징이었다.

덱타료프의 전투 기록을 알고 있던 컴가드 장교들에게 타냐는 특히 불길한 존재였다. 성간연대의 저격기는 엄폐한 위치에서 중요한 표적을 골라 공격했다. 그 설계를 물려받은 타냐는 전방 관측수와 여러 사수가 표적 정보를 공유하면서, 상대가 대응하기 전에 한 기체에 사격을 집중할 수 있었다. 지하드 초기의 침공군은 이러한 차이를 전장에서 확인해야 했다.

항목 TNY 타냐 프라임

소속 워드 오브 블레이크
중량·분류 70톤 중량 옴니메크
주 임무 장거리 정밀 사격, 지휘기 제거, 방어선 화력지원
개발 주체 테라 병기국 제7특수설계반
생산 시설 테라의 툴라 재건공창
선행 연구 3059년부터 덱타료프 자료 복원
타냐 개발·초도 생산 3067년
본격 양산 3068년
내부 구조 엔도강
엔진 280급 경량 핵융합 엔진
보행·주행 속도 43.2 / 64.8km/h
이동력 4/6/0
장갑 표준 장갑 13톤, 208점
조종석 소형 조종석
고정 무장 왼팔 가우스 라이플 1문, 오른팔 접이식 칼
고정 특수 장비 C3i, 카멜레온 편광막, 좌측 동체 CASE
기본 냉각 이중 방열기 11기
교체 가능한 포드 중량 13.5톤
프라임 포드 ER PPC 1문, ER 중구경 레이저 2문, 가디언 ECM
프라임 탄약 가우스 탄약 3톤, 24발


타냐의 개발은 3058년 테라 점령 이후 확보한 성간연대 기술 자료에서 시작되었다. 워드 오브 블레이크가 컴스타의 보관시설을 조사하면서 찾아낸 자료 가운데에는 툴라 정밀병기가 제작했던 덱타료프의 생산 도면과 로열 부대용 정비 문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과거 툴라의 공장 자체는 성간연대 내전에서 파괴되었지만, 컴스타가 회수한 자료에는 골격의 가공 치수부터 가우스 라이플의 전력 공급 계통까지 남아 있었다.

자료를 검토한 기술진이 주목한 것은 덱타료프의 은폐 장치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사격해도 조준선이 흐트러지지 않는 동체 구조, 가우스 라이플 충전 과정의 전력 변동을 제어하는 장치, 조종사가 주변 지형을 관찰하면서 사격 준비를 진행할 수 있는 조종석 배치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요소들은 새로운 무장과 전자장비를 적용하더라도 그대로 활용할 가치가 있었다.

3059년부터 이어진 초기 작업은 덱타료프의 복원과 부품 시험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워드 오브 블레이크의 요구는 점차 커졌다. 새로운 저격기는 사격 위치가 드러난 뒤에도 버틸 수 있어야 했고, 가우스 라이플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장거리 교전을 계속해야 했다. 여기에 C3i와 옴니포드, 특수부대용 조종 장치까지 추가되면서 50톤 골격으로는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워졌다.

3067년, 이러한 연구를 하나의 완성된 전투 메크로 묶는 타냐 사업이 승인되었다. 개발진은 중량을 70톤으로 늘리고, 기존 동체 중심의 무장 배치를 크게 수정했다. 가우스 라이플을 왼팔로 옮긴 것은 엄폐물 옆으로 몸체 전체를 내밀지 않고도 사격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왼팔은 손과 하박의 조작 기능을 희생한 전용 포가가 되었으며, 어깨에는 무거운 포신을 지탱하는 구동계가 들어갔다.

오른팔의 접이식 칼은 실용성과 개발기관의 취향이 함께 반영된 장비였다. 기술진은 접근한 경량 메크를 떼어내거나, 포신을 붙잡으려는 적을 저지할 수단을 원했다. 군 지도부는 특수부대용 신형 메크에 근접 무장이 있다는 사실을 선호했다. 결국 상당한 중량과 내부 공간을 차지하는 칼이 고정 장비로 채택되었다. 저격기의 화력만을 생각하면 비싼 선택이었지만, 이후 셀레스티얼 계열과 이어지는 외형적 특징이 되었다.

타냐는 데번 코틀랜드가 진행하던 신형 옴니메크 연구에 시험 자료를 제공했다. 소형 조종석과 고정식 C3i, 좌우가 다른 팔 구성, 전자장비와 교체식 무장을 함께 운용하는 정비 절차가 주요 시험 대상이었다. 셀레스티얼 계열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3069년이었으므로, 타냐는 그에 앞서 일부 기술을 전장에서 검증한 선행 기종에 해당했다. 셀레스티얼 계열의 개발 배경

툴라 재건공창은 이러한 시험기를 소량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 직영 시설이었다. 옛 툴라 정밀병기의 이름과 기술 자료를 이어받았지만, 인력과 설비는 테라의 여러 군수업체에서 모아왔다. 초도 기체는 수작업 조정에 크게 의존했고, 같은 생산분끼리도 장갑 덮개와 정비용 연결부가 조금씩 달랐다. 3067년 말에는 시험기까지 포함한 첫 12기가 군에 인도되었고, 지하드가 시작되면서 이들은 평가 일정을 마치기도 전에 출격했다.

타냐의 외형에는 덱타료프의 낮고 안정적인 자세와, 셀레스티얼의 길고 각진 실루엣이 함께 남았다. 작은 머리는 높은 어깨 사이에 들어갔고, 좁은 관측부 아래에는 길게 내려온 얼굴 장갑이 붙었다. 흉부와 정강이는 편광막을 정비하기 쉽도록 넓고 매끈한 장갑판으로 덮였다. 왼팔은 길고 두꺼운 포신 때문에 유난히 무거워 보였으며, 오른팔은 칼을 수납한 상태에서도 팔꿈치 아래가 길었다. 초기 생산분의 회백색 도장은 편광막을 끈 상태에서 뼈처럼 옅은 인상을 주었다.

타냐의 가장 중요한 설계 결정은 덱타료프의 은폐 체계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은 것이었다. 널 시그니처 시스템은 C3i와 함께 장착할 수 없었으므로 채택되지 않았다. 카멜레온 편광막은 남았지만, 이 장치 역시 작동 중에는 기체를 C3 망에서 분리시켰다. 따라서 타냐는 은폐와 네트워크 사격을 상황에 따라 전환하도록 설계되었다. 널 시그니처 시스템의 장착 제한, 카멜레온 편광막의 운용 특성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는 편광막을 사용해 사격 위치를 잡았다. 적이 예정된 교전 구역으로 진입하면 편광막을 끄고 C3i에 접속한 뒤, 전방 아군이 제공하는 정보를 이용해 집중 사격했다. 사격 임무가 끝나거나 반격이 거세지면 다시 편광막을 켜고 예비 진지로 이동했다. 이 전환에는 조종사와 부대 전체의 숙련이 필요했다. 너무 일찍 은폐를 해제하면 적의 포격을 불렀고, 너무 늦게 해제하면 중요한 사격 기회를 놓쳤다.

C3i는 최대 여섯 대가 표적 정보를 공유하며, 단일 지휘 노드의 상실로 전체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 체계였다. 타냐 부대는 전방에 빠른 관측 기체를 배치하고, 후방의 저격기들이 같은 표적을 공격하도록 편성되었다. 다만 정보 공유가 무기의 최대 사거리를 늘리거나 지형 너머로 가우스탄을 날릴 수 있게 하지는 않았다. 각 사수는 여전히 자신의 사선을 확보해야 했다. C3i의 구성과 기능

타냐의 조종사들은 이 점을 철저하게 훈련받았다. 한 진지에서 모든 방향을 보려고 하기보다, 서로 다른 사격 구역을 맡은 기체들이 적의 이동에 따라 공격을 인계했다. 표적이 첫 번째 타냐의 사선을 벗어나면 두 번째 기체가 공격했고, 세 번째 기체는 퇴로를 감시했다. 공격받는 쪽에서는 사격한 적을 찾아 접근할 때마다 새로운 방향에서 가우스탄이 날아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프라임의 주된 사격 조합은 가우스 라이플과 ER PPC였다. 두 무장은 서로 비슷한 거리에서 사용할 수 있었으며, 한쪽이 장갑을 손상시키면 다른 쪽이 같은 표적을 계속 압박했다. 오른팔의 ER 중구경 레이저 두 문은 가까이 접근한 적을 상대하거나 손상된 기체를 마무리하는 데 사용되었다. 가우스탄 24발은 매복전 몇 차례를 치르기에 충분했지만, 장기간 고립된 부대에서는 여전히 사격 절제가 필요했다.

냉각 능력은 이러한 운용 방식에 맞춰져 있었다. 편광막을 켜고 정지한 상태에서 가우스 라이플과 ER PPC를 발사하면 발생 열량은 22점으로, 이중 방열기 11기의 처리량과 일치했다. 편광막을 끈 네트워크 교전에서는 기동하면서 두 주무장을 사용해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달리면서 모든 사격 무장을 사용하면 28점의 열이 발생했다. 조종사가 가까운 적에게까지 계속 최대 화력을 퍼부으면, 다음 장거리 사격을 포기하고 기체를 식혀야 했다.

13톤의 장갑은 타냐가 사격 위치를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208점의 방어력은 70톤급의 최대치에 가까웠고, 경량 핵융합 엔진은 중량을 절약하면서도 측면 동체 하나의 파괴가 곧바로 기체 상실로 이어지는 위험을 줄였다. 그렇지만 시속 64.8km의 주행 속도와 점프젯의 부재는 분명한 약점이었다. 적이 측면을 돌아와 퇴로를 차단하면 타냐가 스스로 거리를 다시 벌리기는 어려웠다.

오른팔의 칼도 그 약점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70톤 기체에 필요한 수납 장치를 포함하면 4톤을 차지했지만, 타격력은 전문 근접전 메크의 대형 도끼에 미치지 못했다. 타냐의 조종사들은 칼을 휘두르기 위해 적에게 접근하기보다, 접근한 적을 막아내면서 동료가 사격할 시간을 확보했다. 칼이 전개되었다는 것은 대개 저격 계획이 어긋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옴니포드는 세 가지 구성이 널리 사용되었다. 가우스 라이플과 접이식 칼, C3i, 편광막, 기본 방열기는 고정 장비였으며, 아래 구성은 모두 같은 13.5톤의 교체 공간을 사용했다.

구성 교체 포드의 무장·장비 주요 용도

프라임 ER PPC 1문, ER 중구경 레이저 2문, 가디언 ECM, 가우스탄 3톤 가장 긴 교전 거리에서 실시하는 정밀 사격
A형 ER 대구경 레이저 2문, 가디언 ECM, 가우스탄 2톤 장거리와 중거리 사이에서 화력을 집중하는 교전
B형 LRM-15 1문, ER 중구경 레이저 1문, 가디언 ECM, 가우스탄 2톤, LRM탄 2톤 방어선 지원과 손상된 표적에 대한 후속 공격


A형은 프라임보다 교전 거리가 다소 짧아졌지만, 가우스 라이플과 대구경 레이저 두 문을 함께 사용했을 때의 화력이 강했다. 문제는 열이었다. 편광막까지 켜고 주무장을 모두 발사하는 방식은 오래 유지할 수 없었으므로, 은폐 상태에서는 레이저 한 문씩 번갈아 사용하고 네트워크 공격 단계에서 화력을 집중했다. 전방 관측수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숙련 부대가 선호한 구성이었다.

B형은 가우스탄으로 장갑을 파괴한 표적에 미사일을 추가로 쏟아부었다. 프라임보다 정밀 타격의 비중은 줄었지만, 여러 적이 한꺼번에 진입하는 방어전에서 유용했다. 무장 발열이 낮아 편광막을 유지하기도 쉬웠다. 탄약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는 단점 때문에 전쟁 후반에는 보급 여건에 따라 평가가 크게 갈렸다.

타냐의 첫 대규모 실전은 테라 항성계로 진입한 용병연합을 상대로 벌어졌다. 3067년 울프 용기병대와 연합 용병사령부는 화성을 공격했지만, 항성계 방어 전력에 막혀 대부분의 수송선을 잃었다. 지표까지 도달한 부대에는 제타 대대와 디즈멀 디스인헤리티드의 병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3067년 화성 전투

화성에 시험 배치되어 있던 타냐들은 이들의 집결 지점을 공격했다. 수송선에서 빠져나온 메크들이 대형을 갖추는 동안, 타냐는 먼저 관측 장비가 풍부한 기체와 지휘관이 탄 메크를 골랐다. 뒤이어 수송선으로 돌아가는 길목과 손상된 기체를 견인할 수 있는 통로를 사격했다. 울프 용기병대의 조종사들은 곧 은폐 저격기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지만, 이미 궤도 지원과 보급을 상실한 상태에서 준비된 사격 진지를 하나씩 제거해야 했다.

이 전투에서 타냐가 얻은 평가는 매우 높았다. 강습 메크를 한 발로 쓰러뜨리지는 못했지만, 돌파를 시작하는 기체에 여러 사수의 가우스탄과 PPC를 집중해 공격의 속도를 끊었다. 돌파조가 엄폐하면 다른 타냐가 움직였고, 후속 병력이 전진하면 새로 확보한 사선에서 공격했다. 지상에 도달한 용병들은 계속 싸웠으나, 손상된 동료를 구하려는 시도마저 추가 손실로 이어졌다.

3068년 컴스타의 테라 탈환 작전인 CASE WHITE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궤도전에서 분산된 컴가드 병력 일부는 지상에 도달해 도시를 확보하고 저항을 이어갔다. 작전 전체의 실패에는 함대 손실과 내부 공작, 핵공격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CASE WHITE와 테라 지상전

그 지상전에서 타냐는 컴가드의 재집결을 방해하는 데 집중되었다. 도심 밖으로 나가는 정찰대, 다른 착륙 지점과 접촉하려는 지휘부, 수리시설로 이동하는 손상 기체가 반복해서 공격받았다. 컴가드 역시 C3i를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워드 오브 블레이크는 관측수를 쉽게 노출하지 않았다. 기존 방어부대가 전방에서 교전하는 동안, 타냐는 충분히 먼 거리에서 잠깐씩 사격하고 다시 은폐했다.

컴가드가 특히 경계한 것은 사격의 순서였다. 타냐들은 가장 가까운 적에게 반사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지휘권을 인계받거나 동료의 사격을 정리하는 기체를 집요하게 노렸다. 덱타료프가 로열 부대의 정밀 타격 기체로 명성을 얻었던 방식이, 수백 년 뒤 성간연대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컴스타에 되돌아온 셈이었다.

초기 전과는 타냐를 시험 생산으로 끝내려던 계획을 바꾸었다. 3068년부터 툴라 재건공창에는 추가 인력과 설비가 배정되었고, 타냐는 테라와 핵심 산업시설을 지키는 저격부대에 우선 지급되었다. 셀레스티얼 계열이 등장한 뒤에도 생산은 계속되었다. 이미 운용 경험이 쌓여 있었고, 준비된 진지에서 방어전을 치르는 능력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반면 전쟁이 길어지면서 한계도 드러났다. 연합군은 타냐와 정면으로 사격을 교환하기에 앞서 전방 관측수를 몰아내고, 전자전 기체로 연결을 방해하며, 포격으로 사격 위치를 바꾸도록 강요했다. 타냐는 편광막으로 다시 숨을 수 있었지만, 그동안 C3i를 이용한 집중 사격 능력을 잃었다. 사수가 혼자 남았을 때에는 느리고 비싼 70톤 저격기로 싸워야 했다.

툴라 공창의 유지 능력도 감소했다. 장갑판 자체는 교체할 수 있었지만, 그 위에 설치된 편광막의 손상은 훨씬 까다로웠다. 전쟁 후반에는 외형이 멀쩡해도 은폐 장치를 사용할 수 없는 기체가 늘어났다. 이런 타냐들은 일반 화력지원 임무로 보내졌으며, 낮은 기동성을 장갑과 부대 지원으로 보완해야 했다. 장기간 복무한 기체일수록 개발 당시의 정교한 교전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기 어려워졌다.

3078년 테라 최종 방어전에서 타냐는 다시 많은 피해를 냈다. 숙련된 부대는 공업지대와 교량, 도로가 모이는 지점을 이용해 공격군을 붙잡았다. 그러나 여러 방향에서 전진하는 적을 상대로 예비 진지와 철수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 탄약이 떨어진 타냐가 ER PPC만으로 교전하거나, 고장 난 편광막을 그대로 둔 채 건물 사이에서 싸운 사례가 흔해졌다. 오른팔의 칼이 가장 자주 사용된 시기도 이 마지막 방어전이었다.

툴라 재건공창은 같은 해 가동을 멈췄다. 전후 조사에서는 타냐의 총생산량을 시험기와 재조립 기체를 포함해 약 240기로 추산했다. 남은 생산 자료는 스피어 공화국이 회수했으며, 일부 기술자는 전범 조사와 신원 심사를 거쳐 공화국의 군수시설 복구에 참여했다. 공창 자체가 타냐 생산시설로 다시 문을 여는 일은 없었다.

전후의 타냐는 전리품과 연구 대상, 그리고 운용하기 어려운 실전 장비로 남았다. 노획 기체 일부는 공화국에서 평가에 사용되었고, 다른 기체들은 연합군에 참가했던 부대의 손에 들어갔다. 일반 조종사도 조종할 수 있었지만, 소형 조종석과 전용 장비의 정비 부담 때문에 모든 부대가 반긴 것은 아니었다. 특히 C3i를 공유할 동료가 없는 부대에서는 타냐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기 어려웠다.

암흑기에 들어서자 살아남은 기체 대부분은 편광막을 포기하거나, 고정 무장을 제외한 포드를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장비로 채웠다. 장갑과 엔진이 건전한 기체는 여전히 유능한 가우스 저격기였으므로 쉽게 폐기되지 않았다. 다만 전쟁 초기에 침공군을 괴롭혔던 타냐의 성능을 재현하려면 기체 한 대의 복원만으로는 부족했다. 관측수와 동료 사수, 전자전 지원, 준비된 사격 위치까지 함께 갖추어야 했다.

일클랜 시대에 완전한 상태로 남은 타냐는 드물었다. 보존 기관들은 왼팔의 가우스 라이플과 오른팔의 칼을 통해 셀레스티얼 계열의 발전 과정을 설명했고, 군사학교에서는 초기 지하드의 방어전을 연구할 때 타냐 부대의 사격 기록을 검토했다. 덱타료프에서 이어진 정밀 사격 기술과 워드 오브 블레이크의 조직적인 표적 선정이 결합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그리고 그 능력이 보급과 부대 편성의 붕괴 속에서 어떻게 약해졌는지를 함께 보여주는 기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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