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06 테스트용 (27)
작성자:친구는 106.101이 있어요
작성일:2026-09-14 (월) 03:03:10
갱신일:2026-09-14 (월) 03:03:10
#0친구는 106.101이 있어요(838069cc)2026-09-14 (월) 03:03:10
진짜로 테스트용
#5익명의 참치 씨(65177607)2026-09-14 (월) 07:20:14
5m 12s 동안 처리함
히메(Hime), HME는 드라코니스 연합의 초기 메크 공업이 남긴 작은 중전투 메크였다. 25톤이라는 체급에도 불구하고 장갑과 직사화기를 우선했으며, 보병과 차량이 이루는 전열 앞에서 적의 사격을 받아내고 방어진지를 무너뜨리는 브롤러로 설계되었다. 후대에는 군사적 가치보다 역사적 가치가 훨씬 높은 기체로 취급되었지만, 제3차 계승전쟁은 히메를 다시 전장으로 끌어냈다.
히메의 계보에는 서로 다른 두 출발점이 있다. 드라코니스가 배틀메크 기술을 확보한 것은 2461년이고, 성간연대의 성립은 2571년이었다. 히메의 기초가 된 실험기는 그 사이의 초기 개발 경쟁에서 등장했으며, HME-1이라는 제식 기체의 개발과 양산은 성간연대 성립 직후에 이루어졌다. 드라코니스 연표
항목 HME-1 HME-2K
명칭 히메 히메
중량 25톤 25톤
분류 경량 배틀메크 경량 배틀메크
주 임무 근접 교전, 보병 지원, 거점 돌파 거점 방어, 시가지 교전, 보병 지원
제식형 개발 시작 2572년 2921년
생산 시작 2575년 2924년
개발·생산사 시라사기 기계제작소 시라사기 산업기계 군수부
내부 구조 표준 구조 표준 구조
엔진 90급 원시형 핵융합 엔진 100급 표준 핵융합 엔진
보행 / 주행 32.4 / 54km/h 43.2 / 64.8km/h
이동력 3/5/0 4/6/0
장갑 원시형 장갑 7.5톤, 약 80점 표준 장갑 5.5톤, 88점
조종석 원시형, 5톤 표준형, 3톤
무장 대구경 레이저 1문, 중구경 레이저 1문 대구경 레이저 1문, 중구경 레이저 3문
냉각 단일 방열기 10기 단일 방열기 12기
점프젯 없음 없음
개발사인 시라사기 기계제작소는 원래 광산용 굴착기와 산업용 보행장비를 제작하던 지방 기업이었다. 벤저민의 중공업 지대에 자리 잡은 이 회사는 대규모 군수기업과 경쟁할 자본도, 대형 배틀메크를 생산할 설비도 갖추지 못했다. 대신 보행기계의 관절을 오래 버티게 만드는 기술과, 현장 정비사가 분해할 수 있는 단순한 구조에 강점이 있었다.
2467년, 시라사기는 지방 방위기관의 지원으로 소형 전투 보행기 연구에 착수했다. 군이 요구한 것은 보병을 따라 전진하면서 기관포와 야포의 사격을 견디고, 적의 장갑차나 방어진지를 직접 제거할 수 있는 기계였다. 회사는 자신들이 다룰 수 있는 크기의 골격에 장갑을 최대한 두르고, 대구경 레이저 한 문을 주포처럼 배치했다. 이 실험기들이 훗날 히메의 조상이 되었다.
당시 이 기체가 맡은 ‘헤비급 포지션’은 지방 방위대의 편제에서 차지한 위치였다. 대형 배틀메크를 확보하지 못한 부대에서 히메의 선행 실험기는 가장 튼튼하고 강력한 보행전력이었다. 보병과 경차량이 뒤따르고, 히메가 먼저 교차로나 공장 정문으로 진입했다. 오늘날의 중량급 메크처럼 전열의 중심을 맡았던 것이다.
그러나 초기 사업은 시험용 기체 몇 대를 만드는 데서 멈췄다. 엔진 조달이 불안정했고, 지방 예산으로는 시험 과정에서 드러난 결함을 해결하면서 생산시설까지 확충하기 어려웠다. 시라사기는 산업기계 사업으로 돌아갔지만 설계도와 시험기, 보행 제어에 관한 기록을 보존했다.
2572년, 지방 수비대의 장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소규모 조달 사업이 열리면서 오래된 설계가 다시 검토되었다. 시라사기는 선행 실험기의 골격과 장갑 배치를 바탕으로 생산용 도면을 새로 작성하고, 관절 밀폐와 전력 계통, 조종 장치의 신뢰성을 개선했다. 이렇게 탄생한 HME-1은 성간연대 초기에 생산된, 배틀메크 태동기의 설계 철학을 간직한 기체였다.
히메라는 이름은 작은 몸체를 둘러싼 풍성한 장갑에서 나왔다. 둥근 흉부 아래로 넓게 벌어진 허리 장갑이 예복의 치맛자락처럼 보였고, 머리의 좁은 관측창 위에는 관절식 통신 안테나가 장식처럼 솟아 있었다. 양산형은 그러한 외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작은 발과 짧고 굵은 다리까지 더해져, 히메는 후대의 날렵한 경량 메크와 확연히 다른 인상을 주었다.
HME-1의 전투 방식은 느리지만 분명했다. 오른팔의 대구경 레이저로 적 차량과 진지를 공격하고, 근거리에서는 왼팔의 중구경 레이저를 더했다. 탄약을 사용하지 않아 보급이 빈약한 수비대에서도 오래 운용할 수 있었고, 양손의 조작 기능을 유지해 장애물을 치우거나 가까이 붙은 적을 밀어낼 수도 있었다.
7.5톤의 장갑은 작은 기체를 상당히 두껍게 감쌌다. 다만 원시형 장갑의 중량 효율이 낮아, 겉모습만큼 압도적인 방어력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히메의 장갑은 경차량의 화력 아래에서 보병을 지원하는 데는 유용했지만, 본격적인 대메크 화력을 계속 받아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냉각 능력도 제한적이었다. 대구경 레이저를 중심으로 교전할 때는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나, 달리면서 두 레이저를 반복 발사하면 열이 쌓였다. 초기 조종사들은 사격할 때 걸음을 늦추고, 건물 모서리에서 차례로 무장을 발사하는 방식을 익혔다. 히메가 수행한 브롤러 임무는 적을 빠르게 추격하는 싸움보다, 보병과 함께 조금씩 전진하며 진지를 차지하는 싸움에 가까웠다.
양산 당시에도 히메는 기술적으로 보수적인 기종이었다. 그럼에도 시라사기의 공장에서 실제로 만들 수 있었고, 배치 지역에서는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다. 회사 기록상 2575년부터 2607년까지 생산된 HME-1은 184기였다. 대부분 지방 수비대와 산업시설 방위부대에 배치되었으며, 대규모 야전 편제에 들어간 수량은 적었다.
히메의 몰락은 특별한 결함이나 참패보다, 주변의 메크들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찾아왔다. 더 무거운 기체들은 히메보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더 강한 화력을 운용했다. 다른 경량 메크들은 속도나 점프 능력으로 살아남았지만, 히메는 그쪽으로 역할을 바꿀 여유도 없었다. 정찰에는 느렸고, 돌파에는 가벼웠으며, 장거리 화력지원에는 무장이 부족했다.
2630년대부터 히메는 훈련과 기지 경비로 밀려났다. 2680년 무렵에는 군사학교의 기계 실습용 장비, 기업의 기념물, 지방 군사박물관의 전시품이 주된 생존 형태가 되었다. 성간연대 말기의 장교가 히메를 접했다면, 전력 평가표보다 메크 공업사 교재에서 먼저 보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라사기도 메크 완성품 사업에서 철수했다. 회사는 이후 시라사기 산업기계로 개편되어 광산 장비와 군용 정비설비를 납품했다. 히메 생산시설은 다른 용도로 전환되었지만, 설계 자료와 검사 기준, 부품 치수표는 회사의 첫 군수사업을 기념하는 자료로 남았다. 박물관에 기증된 기체에는 정비 교범까지 함께 전달되었다. 이 꼼꼼한 보존이 수백 년 뒤 재생산의 토대가 되었다.
제3차 계승전쟁에서 히메를 되살린 것은 2921년의 지방 수비전력 재건 사업이었다. 수십 년간의 손실과 부품 부족으로 일부 방위부대는 명목상의 메크 정원만 유지하고 있었다. 시라사기 계열 정비소가 조사한 지역에서도, 수리가 가능한 현역 기체보다 전시용 히메의 골격이 더 온전한 사례가 발견되었다.
그렇다고 박물관의 기체에 전원을 넣어 바로 출격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근육섬유와 배선은 교체해야 했고, 관절의 부식과 골격 피로를 확인해야 했다. 전시 과정에서 엔진이나 무장이 제거된 기체도 많았다. 군이 얻은 것은 완성된 전투부대가 아니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골격과 그 골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자료였다.
시라사기 기술진은 원시형 장비를 그대로 복구하는 대신, 당시 조달 가능한 표준 부품을 넣기로 했다. 그 결과물이 HME-2K였다. 원시형 조종석과 장갑을 교체하면서 확보한 중량은 무장과 냉각 능력에 배분했고, 엔진을 바꿔 주행 속도도 높였다. 중구경 레이저는 세 문으로 늘어났으며, 표준 장갑은 25톤급이 허용하는 최대치에 가까운 방어력을 제공했다.
그 결과, 기술이 쇠퇴한 시대에 만들어진 HME-2K가 성간연대의 HME-1보다 거의 모든 실용적 성능에서 우수해지는 일이 벌어졌다. 히메의 원형 자체가 훨씬 오래된 기술 세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개선이었다.
HME-2K는 원거리에서 대구경 레이저를 사용하고, 가까워지면 중구경 레이저 세 문을 중심으로 싸웠다. 달리면서 어느 한쪽 무장군을 사용하는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으나, 모든 레이저를 동시에 반복 발사하면 빠르게 과열되었다. 순간 화력을 집중한 뒤 엄폐물 뒤로 물러나 열을 식히는 운용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시속 64.8km는 경량 메크가 교전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점프젯도 없어 적이 측면을 돌아오면 대응하기 어려웠다. 시가지나 공장 단지에서는 짧은 사격 구간을 지키며 제 역할을 했지만, 개활지에서 빠른 적 메크를 만나면 주도권을 빼앗겼다. 중형 이상의 적과 정면으로 화력을 교환하는 상황에서는 두꺼운 장갑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재생산을 결정한 이유 역시 히메가 뛰어난 신형 메크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시라사기에는 소형 골격을 가공할 설비와 그 설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기술자가 있었다. 더 유능한 기종을 만들려면 생산권과 도면, 새로운 공작기계, 별도의 부품 공급망이 필요했다. 반면 히메는 지역에서 조달한 표준 엔진과 레이저를 받아 완성할 수 있었다. 군은 이러한 공업 능력을 당장 전력으로 바꾸려 했다.
2924년부터 2990년까지 시라사기는 기존 HME-1 19기를 HME-2K로 재건하고, 126기를 새로 생산했다. 생산량은 엔진과 군용 근육섬유의 공급에 따라 크게 흔들렸다. 완성된 기체 대부분은 창고와 우주항, 산업시설을 지켰지만, 손실이 심한 지역에서는 정규부대의 결원을 메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원형 히메의 역사적 가치는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던 초기 조종석과 장갑이 철거되었고, 복구할 수 없는 기체는 다른 히메를 살리기 위한 부품이 되었다. 군사사 연구자들이 항의했지만, 전투 가능한 메크 한 대가 절실한 지방 사령부는 보존보다 재건을 우선했다. 후대의 박물관이 원형 부품을 찾기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가 이 시기의 개조 사업이었다.
2990년 생산 종료 이후 히메는 다시 천천히 퇴장했다. 시라사기는 다른 메크의 부품과 정비 장비를 생산하는 편이 수익성이 높아지자 완성품 조립을 중단했다. HME-2K는 제3차 계승전쟁 말기와 제4차 계승전쟁에도 일부 지방 수비대에 남았지만, 대체 기체를 확보한 부대에서는 우선적으로 퇴역시켰다. 클랜 침공 무렵에는 실전용보다 훈련용이나 예비 장비로 남은 수가 많았다.
시라사기 산업기계는 이후에도 정비설비와 산업용 보행장비를 만드는 기업으로 존속했다. 히메의 이름을 붙인 신형 전투 메크를 내놓자는 제안은 몇 차례 있었으나, 회사는 복원 사업에 필요한 부품 제작 정도만 맡았다. 오래된 기체를 이해하는 능력은 남아 있었지만, 현대의 메크 시장에 다시 들어갈 생산 기반은 없었다.
일클랜 시대의 군사박물관에서는 HME-1과 HME-2K를 서로 다른 역사적 사건의 증거로 취급한다. 원형 HME-1은 지방의 산업기계 제작소가 배틀메크라는 새로운 병기를 이해하고 자기 손으로 만들어낸 흔적이다. 전시대에서 내려와 다시 장갑을 두른 HME-2K에는 계승전쟁을 버틴 정비사와 조종사들의 역사가 남아 있다. 두 기체를 함께 보존한 박물관에서는, 히메가 처음 무기가 되었던 시대와 유물까지 무기로 돌려써야 했던 시대를 나란히 보여준다.
히메(Hime), HME는 드라코니스 연합의 초기 메크 공업이 남긴 작은 중전투 메크였다. 25톤이라는 체급에도 불구하고 장갑과 직사화기를 우선했으며, 보병과 차량이 이루는 전열 앞에서 적의 사격을 받아내고 방어진지를 무너뜨리는 브롤러로 설계되었다. 후대에는 군사적 가치보다 역사적 가치가 훨씬 높은 기체로 취급되었지만, 제3차 계승전쟁은 히메를 다시 전장으로 끌어냈다.
히메의 계보에는 서로 다른 두 출발점이 있다. 드라코니스가 배틀메크 기술을 확보한 것은 2461년이고, 성간연대의 성립은 2571년이었다. 히메의 기초가 된 실험기는 그 사이의 초기 개발 경쟁에서 등장했으며, HME-1이라는 제식 기체의 개발과 양산은 성간연대 성립 직후에 이루어졌다. 드라코니스 연표
항목 HME-1 HME-2K
명칭 히메 히메
중량 25톤 25톤
분류 경량 배틀메크 경량 배틀메크
주 임무 근접 교전, 보병 지원, 거점 돌파 거점 방어, 시가지 교전, 보병 지원
제식형 개발 시작 2572년 2921년
생산 시작 2575년 2924년
개발·생산사 시라사기 기계제작소 시라사기 산업기계 군수부
내부 구조 표준 구조 표준 구조
엔진 90급 원시형 핵융합 엔진 100급 표준 핵융합 엔진
보행 / 주행 32.4 / 54km/h 43.2 / 64.8km/h
이동력 3/5/0 4/6/0
장갑 원시형 장갑 7.5톤, 약 80점 표준 장갑 5.5톤, 88점
조종석 원시형, 5톤 표준형, 3톤
무장 대구경 레이저 1문, 중구경 레이저 1문 대구경 레이저 1문, 중구경 레이저 3문
냉각 단일 방열기 10기 단일 방열기 12기
점프젯 없음 없음
개발사인 시라사기 기계제작소는 원래 광산용 굴착기와 산업용 보행장비를 제작하던 지방 기업이었다. 벤저민의 중공업 지대에 자리 잡은 이 회사는 대규모 군수기업과 경쟁할 자본도, 대형 배틀메크를 생산할 설비도 갖추지 못했다. 대신 보행기계의 관절을 오래 버티게 만드는 기술과, 현장 정비사가 분해할 수 있는 단순한 구조에 강점이 있었다.
2467년, 시라사기는 지방 방위기관의 지원으로 소형 전투 보행기 연구에 착수했다. 군이 요구한 것은 보병을 따라 전진하면서 기관포와 야포의 사격을 견디고, 적의 장갑차나 방어진지를 직접 제거할 수 있는 기계였다. 회사는 자신들이 다룰 수 있는 크기의 골격에 장갑을 최대한 두르고, 대구경 레이저 한 문을 주포처럼 배치했다. 이 실험기들이 훗날 히메의 조상이 되었다.
당시 이 기체가 맡은 ‘헤비급 포지션’은 지방 방위대의 편제에서 차지한 위치였다. 대형 배틀메크를 확보하지 못한 부대에서 히메의 선행 실험기는 가장 튼튼하고 강력한 보행전력이었다. 보병과 경차량이 뒤따르고, 히메가 먼저 교차로나 공장 정문으로 진입했다. 오늘날의 중량급 메크처럼 전열의 중심을 맡았던 것이다.
그러나 초기 사업은 시험용 기체 몇 대를 만드는 데서 멈췄다. 엔진 조달이 불안정했고, 지방 예산으로는 시험 과정에서 드러난 결함을 해결하면서 생산시설까지 확충하기 어려웠다. 시라사기는 산업기계 사업으로 돌아갔지만 설계도와 시험기, 보행 제어에 관한 기록을 보존했다.
2572년, 지방 수비대의 장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소규모 조달 사업이 열리면서 오래된 설계가 다시 검토되었다. 시라사기는 선행 실험기의 골격과 장갑 배치를 바탕으로 생산용 도면을 새로 작성하고, 관절 밀폐와 전력 계통, 조종 장치의 신뢰성을 개선했다. 이렇게 탄생한 HME-1은 성간연대 초기에 생산된, 배틀메크 태동기의 설계 철학을 간직한 기체였다.
히메라는 이름은 작은 몸체를 둘러싼 풍성한 장갑에서 나왔다. 둥근 흉부 아래로 넓게 벌어진 허리 장갑이 예복의 치맛자락처럼 보였고, 머리의 좁은 관측창 위에는 관절식 통신 안테나가 장식처럼 솟아 있었다. 양산형은 그러한 외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작은 발과 짧고 굵은 다리까지 더해져, 히메는 후대의 날렵한 경량 메크와 확연히 다른 인상을 주었다.
HME-1의 전투 방식은 느리지만 분명했다. 오른팔의 대구경 레이저로 적 차량과 진지를 공격하고, 근거리에서는 왼팔의 중구경 레이저를 더했다. 탄약을 사용하지 않아 보급이 빈약한 수비대에서도 오래 운용할 수 있었고, 양손의 조작 기능을 유지해 장애물을 치우거나 가까이 붙은 적을 밀어낼 수도 있었다.
7.5톤의 장갑은 작은 기체를 상당히 두껍게 감쌌다. 다만 원시형 장갑의 중량 효율이 낮아, 겉모습만큼 압도적인 방어력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히메의 장갑은 경차량의 화력 아래에서 보병을 지원하는 데는 유용했지만, 본격적인 대메크 화력을 계속 받아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냉각 능력도 제한적이었다. 대구경 레이저를 중심으로 교전할 때는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나, 달리면서 두 레이저를 반복 발사하면 열이 쌓였다. 초기 조종사들은 사격할 때 걸음을 늦추고, 건물 모서리에서 차례로 무장을 발사하는 방식을 익혔다. 히메가 수행한 브롤러 임무는 적을 빠르게 추격하는 싸움보다, 보병과 함께 조금씩 전진하며 진지를 차지하는 싸움에 가까웠다.
양산 당시에도 히메는 기술적으로 보수적인 기종이었다. 그럼에도 시라사기의 공장에서 실제로 만들 수 있었고, 배치 지역에서는 충분한 위력을 발휘했다. 회사 기록상 2575년부터 2607년까지 생산된 HME-1은 184기였다. 대부분 지방 수비대와 산업시설 방위부대에 배치되었으며, 대규모 야전 편제에 들어간 수량은 적었다.
히메의 몰락은 특별한 결함이나 참패보다, 주변의 메크들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찾아왔다. 더 무거운 기체들은 히메보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더 강한 화력을 운용했다. 다른 경량 메크들은 속도나 점프 능력으로 살아남았지만, 히메는 그쪽으로 역할을 바꿀 여유도 없었다. 정찰에는 느렸고, 돌파에는 가벼웠으며, 장거리 화력지원에는 무장이 부족했다.
2630년대부터 히메는 훈련과 기지 경비로 밀려났다. 2680년 무렵에는 군사학교의 기계 실습용 장비, 기업의 기념물, 지방 군사박물관의 전시품이 주된 생존 형태가 되었다. 성간연대 말기의 장교가 히메를 접했다면, 전력 평가표보다 메크 공업사 교재에서 먼저 보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라사기도 메크 완성품 사업에서 철수했다. 회사는 이후 시라사기 산업기계로 개편되어 광산 장비와 군용 정비설비를 납품했다. 히메 생산시설은 다른 용도로 전환되었지만, 설계 자료와 검사 기준, 부품 치수표는 회사의 첫 군수사업을 기념하는 자료로 남았다. 박물관에 기증된 기체에는 정비 교범까지 함께 전달되었다. 이 꼼꼼한 보존이 수백 년 뒤 재생산의 토대가 되었다.
제3차 계승전쟁에서 히메를 되살린 것은 2921년의 지방 수비전력 재건 사업이었다. 수십 년간의 손실과 부품 부족으로 일부 방위부대는 명목상의 메크 정원만 유지하고 있었다. 시라사기 계열 정비소가 조사한 지역에서도, 수리가 가능한 현역 기체보다 전시용 히메의 골격이 더 온전한 사례가 발견되었다.
그렇다고 박물관의 기체에 전원을 넣어 바로 출격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근육섬유와 배선은 교체해야 했고, 관절의 부식과 골격 피로를 확인해야 했다. 전시 과정에서 엔진이나 무장이 제거된 기체도 많았다. 군이 얻은 것은 완성된 전투부대가 아니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골격과 그 골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자료였다.
시라사기 기술진은 원시형 장비를 그대로 복구하는 대신, 당시 조달 가능한 표준 부품을 넣기로 했다. 그 결과물이 HME-2K였다. 원시형 조종석과 장갑을 교체하면서 확보한 중량은 무장과 냉각 능력에 배분했고, 엔진을 바꿔 주행 속도도 높였다. 중구경 레이저는 세 문으로 늘어났으며, 표준 장갑은 25톤급이 허용하는 최대치에 가까운 방어력을 제공했다.
그 결과, 기술이 쇠퇴한 시대에 만들어진 HME-2K가 성간연대의 HME-1보다 거의 모든 실용적 성능에서 우수해지는 일이 벌어졌다. 히메의 원형 자체가 훨씬 오래된 기술 세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개선이었다.
HME-2K는 원거리에서 대구경 레이저를 사용하고, 가까워지면 중구경 레이저 세 문을 중심으로 싸웠다. 달리면서 어느 한쪽 무장군을 사용하는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으나, 모든 레이저를 동시에 반복 발사하면 빠르게 과열되었다. 순간 화력을 집중한 뒤 엄폐물 뒤로 물러나 열을 식히는 운용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시속 64.8km는 경량 메크가 교전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점프젯도 없어 적이 측면을 돌아오면 대응하기 어려웠다. 시가지나 공장 단지에서는 짧은 사격 구간을 지키며 제 역할을 했지만, 개활지에서 빠른 적 메크를 만나면 주도권을 빼앗겼다. 중형 이상의 적과 정면으로 화력을 교환하는 상황에서는 두꺼운 장갑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재생산을 결정한 이유 역시 히메가 뛰어난 신형 메크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시라사기에는 소형 골격을 가공할 설비와 그 설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기술자가 있었다. 더 유능한 기종을 만들려면 생산권과 도면, 새로운 공작기계, 별도의 부품 공급망이 필요했다. 반면 히메는 지역에서 조달한 표준 엔진과 레이저를 받아 완성할 수 있었다. 군은 이러한 공업 능력을 당장 전력으로 바꾸려 했다.
2924년부터 2990년까지 시라사기는 기존 HME-1 19기를 HME-2K로 재건하고, 126기를 새로 생산했다. 생산량은 엔진과 군용 근육섬유의 공급에 따라 크게 흔들렸다. 완성된 기체 대부분은 창고와 우주항, 산업시설을 지켰지만, 손실이 심한 지역에서는 정규부대의 결원을 메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원형 히메의 역사적 가치는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던 초기 조종석과 장갑이 철거되었고, 복구할 수 없는 기체는 다른 히메를 살리기 위한 부품이 되었다. 군사사 연구자들이 항의했지만, 전투 가능한 메크 한 대가 절실한 지방 사령부는 보존보다 재건을 우선했다. 후대의 박물관이 원형 부품을 찾기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가 이 시기의 개조 사업이었다.
2990년 생산 종료 이후 히메는 다시 천천히 퇴장했다. 시라사기는 다른 메크의 부품과 정비 장비를 생산하는 편이 수익성이 높아지자 완성품 조립을 중단했다. HME-2K는 제3차 계승전쟁 말기와 제4차 계승전쟁에도 일부 지방 수비대에 남았지만, 대체 기체를 확보한 부대에서는 우선적으로 퇴역시켰다. 클랜 침공 무렵에는 실전용보다 훈련용이나 예비 장비로 남은 수가 많았다.
시라사기 산업기계는 이후에도 정비설비와 산업용 보행장비를 만드는 기업으로 존속했다. 히메의 이름을 붙인 신형 전투 메크를 내놓자는 제안은 몇 차례 있었으나, 회사는 복원 사업에 필요한 부품 제작 정도만 맡았다. 오래된 기체를 이해하는 능력은 남아 있었지만, 현대의 메크 시장에 다시 들어갈 생산 기반은 없었다.
일클랜 시대의 군사박물관에서는 HME-1과 HME-2K를 서로 다른 역사적 사건의 증거로 취급한다. 원형 HME-1은 지방의 산업기계 제작소가 배틀메크라는 새로운 병기를 이해하고 자기 손으로 만들어낸 흔적이다. 전시대에서 내려와 다시 장갑을 두른 HME-2K에는 계승전쟁을 버틴 정비사와 조종사들의 역사가 남아 있다. 두 기체를 함께 보존한 박물관에서는, 히메가 처음 무기가 되었던 시대와 유물까지 무기로 돌려써야 했던 시대를 나란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