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0> 발굴현장 (15)
유다희◆SWRDX8OuWW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16:35 -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27:18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16:35
잡담판 정주행하며 묻힌 설정을 발굴하는 어장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27:18
『삼류』
삼류三流는 무학에 입문한 이들을 뜻한다.
시정잡배를 떠올린다고 해도 좋고,
병장기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이를 떠올려도 좋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그들은 무학에 입문했다는 것이다.
시정잡배라고 해도 그들은 사람을 패는 방식에 대해 생각을 하고,
병장기를 마구잡이로 휘두를지라도 어떻게 해야 더 잘 벨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전투를 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가능한 단계에 입문하는 건,
단지 그런 사실 만으로도 인간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삼류는 저열할지언정, 하류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류 • 1』
그리고 그에 나아가서 이류二流는 무학을 수련한 이들을 뜻한다.
무학을 수련修鍊한다는 것은, 입문한 것과도 다르다.
그것은 사람을 팰 때 어떻게 해야 더 잘 패는가를 아는 것이고,
사람을 벨 때 어떻게 해야 더 잘 칼을 뽑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단순히 궁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답을 짐작하는 단계.
누군가에게 배웠다고 할 지언정 스스로의 길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상태.
그것을 이류라고 부른다.
『이류 • 2』
때문에 이류에 도달한 자들의 실력은
일반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고수라고 볼 수 있다.
삼류와는 3대1로 싸우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을 지언정,
이류들은 1 대 1에서 삼류와 하류를 능가하는 기본기를 보인다.
눈은 상대의 병장기가 휘둘러지는 투로를 향하고,
손은 싸움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채 기본기를 보이고,
발은 제대로 된 보법을 밟으며 싸움에 적합한 움직임을 갖추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공에 갓 입문했거나 느끼지도 못 하는 삼류와 다르게.
이류들은 내공에 입문하거나 갈고 닦은 이들이 대다수이기에,
기량으로 칠 때 삼류 이하는 확실하게 넘어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순히 내공을 운공하는 것 만으로도 몸에 활력이 돌고,
병장기에 더 힘이 실리며, 재생이 빨라지고, 더욱 더 강인해지니까.
기예조차도 앞서는데 내부의 공부功夫마저 쌓이니 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류 • 1』
그리고 그렇게 이류까지가 일반인들의 시선에 보이는 고수라면,
무에 입문한 이들 중 일할(10%)도 아닌 사푼(4%)만이 도달할 수 있다고 알려진,
고수들의 고수라고 치부되는 일류一流는 말 그대로 궤를 달리한다.
의기상인意氣傷刃을 이룩한, 진정한 고수高手의 경지.
주먹으로 바위를 부수고, 철을 베어내며, 하룻밤만에 지치지도 않고 천리를 가고,
풀잎만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인기척도 없이 움직이며,
오감에 속하지 않는 기감으로 십리도 넘는 거리를 살필 수 있다.
어찌 보면 단 하나만을 이룩할 수 있어도 일류의 고수로 보이지만 다르다.
일류에 도달한다면 이러한 행위들은 기본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내부의 공부가 심오하게 쌓이고, 외부의 공부가 그에 맞춰 따라온다면.
일류라는 경지가 어째서 그렇게나 적은지를 알 수 있으며,
더더욱 그들이 고수인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류 • 2』
아마라경락같은 비적이 없는 이상 범재라면
일류라고 불리는 영역에 도달하는 것 만으로도 수십년을 소비한다.
아니, 그렇게나 세월을 소비해도 도달하지 못 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단순한 기본기를 넘어서서 내부의 공부가 심화되어야 하며,
외공을 수련하여 육체를 정련한 무인이라 할지언정 내부의 공부가 부족하다면,
일류에 비할 수 없이 그저 육신의 강인함만을 품은 채 저물게 될 뿐이다.
상승上承이라고 불리는 내공의 세계에 입문하지 못 한다면,
진정으로 이 경지에 도전하지조차 못 하고 쓰러지는 이들이 대다수인것이다.
허나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내공과 외공의 벽을 넘어선 이들은, 더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의기상인意氣傷刃, 의지로서 칼날에 맺히는 기.
내공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 유형화하여 빚어내는 기예.
그것을 이룩하는 순간 내공은 작용할 수 있는 한계선이 한꺼풀 진일보한다.
아니 그것을 이룩하기 위해서 인간의 내공은 그 한계선이 한꺼풀 진일보해야만 한다.
육신을 타고 흐르는 무형의 기를 심기혈정心氣血精,
기를 응축하듯이 상승내공으로 빚어내 유형의 것으로 만들거나,
아니라면 외문의 기예를 통해 기를 증폭시킨 경력으로 빚어내거나.
무형의 것을 마음과 기가 함께 흐른다는 일념을 통해서
유형으로 화한다는 기가 막힐 정도로 어려운 비적이 의기상인에는 필요하니까.
『일류 • 3』
그리고 그런 기예에 입문하는 데 성공할정도의 기본기가 쌓인다면,
일류 고수가 휘두르는 무예는 말 그대로 흉기凶技의 영역에 다다른다.
이류 고수가 삼류 고수와 싸울 때 겨룬다, 라는 영역이 가능했다면,
일류 고수와 이류 고수의 싸움에는 겨룬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상대의 검과 겨우 한 번 맞부딪혔을 뿐인데 검이 자연스레 타고 올라
겨우 한 치 차이로 이류 고수의 동맥을 베어내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며,
단순한 경력만으로 상대의 안을 진탕으로 만드는 내가중수법內家中手法도,
가장 치명적인 상황에 검이 닿는 권역을 늘리는 검기상인劍氣傷人도,
운공만으로 인체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내가 혹은 외가의 공부도,
그 모든 것들이 일류고수의 경지를 돋보이게 하며,
격하의 어떤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원숙한 경험을 뽐낸다.
현실에서는 검과 검이 오가며 전혀 보이지 않는,
백합百合의 싸움이라는 것이 성립하는 것도 이 영역이다.
진정으로 달인과 달인의 싸움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 나타나며,
이류 고수는 열에 가깝게 몰려와야 일류와의 싸움이 성립되고,
삼류와 일류의 싸움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단 백명 가까이 모은 삼류가
그 중 태반이 넘게 죽어나갈 때도 굳이 도망치지 않을 이유가 필요하다.
정精 · 기氣 · 신神이 차올랐다고 표현되는 일류 고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절정 • 1』
그리고 그런 고수들의 고수가 바로 일류一流라면,
무림의 무인에게는 정점이라고 여겨지는 경지가 있다.
수재라고 한들 넘보기 어려운 경지.
천재라고 한들 오시하기 어려운 그런 경지.
절정絶貞.
정精 기氣 신神의 조화를 이룩한 자들.
스스로가 쌓아올린 무학武學으로, 자기 자신을 인간의 끝자락에 밀어넣은 이.
세계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의 무학의 최정점을 논한다고 한다면,
절정고수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정종正宗으로 이름높은 협의 기치를 맹세한 구주제파求主制派도,
마도魔道의 우두머리로 칭해지는 십만 마인이 모여있는 마교魔敎도,
실제로 그들이 최정예 무력 집단으로서 운용하는 것은 절정고수니까.
『절정 • 2』
절정의 조건으로서 논해지는 정 기 신의 조화는,
들리기로는 육체의 조화로움을 뜻하는 것 같지만 다르다.
정기신이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가 사유해온 것에 걸맞는 최적해最適解.
쌓아올린 무학을 현실로서 체화할 수 있는 절정의 육신과 기예.
무학에 담긴 심상을 피워올려 내공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외문과 내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공부속에서 만들어지는 철인의 성정.
그리고 그 조화가 휘두르며 위력을 내보이는 절정의 무학.
세월이 쌓아올리는 심오함과 이치를 논하는 정종正宗에서도
수십년의 적공을 쌓아올린 장로만이 그 위치에서 속세를 경계하고,
마물로 전락해가는 것들은 단순한 교도로 취급하는 마도魔道에서도
절정의 고수들이 교의 비원을 성취할 병사로 취급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 하나 하나가 바로 인간의 끝자락에 선 이들이기 때문이다.
풀 위도 아니고 몸이 가라앉는 강 위마저 경공으로 건너버리는 경신법.
칼 한 자루로 벙커의 외갑같은 갑철마저 잘라버리는 완숙해진 의기상인.
완벽하게 전신을 뒤덮으며 급소에 맞지만 않는다면 총알마저 감하는 호신기.
하룻밤만에 수백km를 가볍게 오가며 전투를 시행할 수 있는 활력과
일곱밤을 잠 한 번 자지 않고도 제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는 기력.
반경 100m 내외에서는 풀잎이 떨어지는 것마저 느끼는 기감.
내가공부와 외문공부가 완숙해지고 일갑자(60년)의 내공을 쌓았음은,
진정으로 무림의 고수들에게 초인적인 행위를 행할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
『절정 • 3』
그리고 그에 더해서, 무림의 고수가
절정에 도달하며 보이는 기예 또한 일선을 넘어선다.
일류의 영역에서 돌을 부수고 철을 가르는 절기絶技를 뽐냈다면,
절정의 고수가 보이는 기예는 그 영역을 진일보하며 나타나기 때문이다.
절정고수의 검기는 단순히 칼의 끝자락에서 길이를 늘리고 줄이며
상대에게 대처하기 어려운 환幻과 수의 차이를 내보이는 것과 다르다.
그 위력이 갑옷의 철을 가르면서 나아가서 상대의 심장을 취하는 것과도 다르고.
상대의 피륙을 넘어서 내부로 경력을 침투시키는 내가중수법과도 다르다.
절정고수의 영역에 도달하며 얻어내는 기에 대한 섬세한 조절력이 빚어내는
검염劍炎과 검사劍絲는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행위를 취할 수 있으니까.
한 시진도 넘게 검기와 같은 위력으로 병장기를 휘두를 수 있게해주는,
그리고 어떤 때는 여러겹을 겹쳐서 그 위력을 배화시켜주는 검기를 압축시킨 검사劍絲.
검기를 거칠고 무자비하게 요동치며 경력을 뒤섞는 것으로 여러 방향으로 난반사,
정종과 마도를 가리지 않고 절정고수가 내보이는 재생력을 무력화시키는 검염劍炎.
그리고 그렇게 기를 통제하는 데 고난이도라 볼 수 있는 두 수법마저도
무리없이 자신의 무학에 녹여내고 상대의 수급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기예.
정말 말 그대로, 절정고수의 수법은 - 세계의 법칙을 넘어서지 않는 한.
그 안에서 그려낼 수 있는 모든 무학을 포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설령 그것이 문제일지라도.
『절정 • 4』
절정의 무인은 그 육신으로
세계의 법칙이 허락하는 한도 내의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
그만한 경력이 있다면야 건물조차 무너트리며 파괴할 수 있고.
육신이 버티기만 한다면 그 육신을 음속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무생물에게서 기를 흡수하는 일조차도 난이도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가능하고
어쩌면, 기연의 기연의 기연을 만나서.
죽음의 별이라 불리는 검강劍罡조차도, 이룩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작 그것뿐이다.
아무리 절정의 무인이 고절한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불로불사에 닿을 수 없다.
아무리 절정의 무인이 절학을 갈고 닦아도 시간 자체를 멈추는 상대에게 대항할 수 없고
아무리 뛰어난 기예와 기량을 갖추었다고 해도, 전제부터 무너트리는 인과에 맞설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갈구한다.
세상의 법칙보다도 위로 움직이는 것들을.
세상의 만물이 움직이는 원리와 그들이 움직이는 원리의 근원을.
세상만사를 타통할 이와 기의 작용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그리고 벽에 닿은 수많은 이들중에서 일부만이, 깨달을 수 있겠지.
만물의 근원속에서 돌아가는 성광星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의념意念은 그렇게 깨어난다.
무인의 4푼 중에서도 4푼만이 도달할 수 있던 절정고수의 영역에서.
그보다도 더 적은 비율로, 그 벽을 두드리며 연공해온 이들을 넘어서서.
인간의 인지 너머에서, 별무리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 • • • • 그들이 쌓아올린 인간이라는 한계를 깨부수며.
『초절정 • 1』
Manas, 의념意念이란 이른바 사량思量, 생각을 헤아리는 것이다.
마음과 의식 사이에서 작용하는 의지.
무궁한 세월을 무학에 몰입하는 것으로 얻어지는 '관측의 궤도'.
세상 만물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이해하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이라는 굴레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무엇이 세상을 유지하는가 ?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 ?
그런 질문들에 무인武人이 낼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감각을 논하는 전5식, 그리고 그로서 빚어지는 제6식이 그런 역할을 한다.
가장 좁게는 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부터,
가장 넓게는 그 세상까지 밀려와 닿은 별무리로 나아가기까지.
누군가의 인지가 없다면 세상의 존재와 비존재는 긍정되지 못 하며,
오로지 인지만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무인들은 스스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무인의 관점에서 세상이라는 것을 유지하는
굴레의 기본소에는 끊어지지 않는 연결이 있다.
개념을 잇는 연결이다.
개념과 세상을 잇는 연결이고,
태허의 작용으로서 아지랑이처럼 나타내지는 것이다.
질서로이 세워진 개념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
무인들은 그것을 세상의 의념意念이라고 불렀고,
신神들과 악마惡魔은 그것을 성광星光이라고 불렀다.
『초절정 • 2』
성광은 '개념'이 담긴 '빛'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칙속에서 무인이 아니 인간이 움직일 적에,
각각의 성광은 전륜傳輪하며 돌아가고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사람이 행동을 하며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을 초래한다.
말하자면 세상이란 서광으로 만들어져 성광으로 채색된 곳.
우리의 움직임이란 다만 빛들을 휘감으며 만들어지는 확률론적인 것.
그럼에도 우리가 아주 낮은 확률에 배반당하지 않고
우리의 의사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제 7식, 말나식(Manas)이 존재하며 우리를 보조하기 때문이다.
의식의 너머, 의지가 세상을 항해한다.
단순히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살아가는 것의 모든 것의 의지가 세상을 항해하며 우리의 세상을 이뤄낸다.
때문에 의지를 '발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서광 위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의지가 발해지는 것이 바로.
세상을 보는 관측론의 변화와 의식의 몰아속에서 만들어지는 '의념'인 것이고.
이 연장선상속에서, 초절정고수란 의념을 성취한 자들을 뜻한다.
『초절정 • 3』
의념을 성취한 것으로 무인은 변모한다.
단순히 의념을 성취하기 위해서 수없이도 많은 벽에 부딪혀
뛰어넘지 못 하고 죽거나 실패한 채 좌절하는 이들이 넘쳐나가겠지만.
그럼에도 의념을 깨닫는 것만으로 무인의 세계는 완전히 뒤바뀐다.
세계와 자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완벽한 관측은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이른바 소우주, 대우주니 하는 것들 사이의 연결을 인지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니까.
설령 세상이라는 굴레속에서 무언가가 그 원인을 모른 채 변모한다 할 지라도
이전과 같이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이 죽어나가는 게 아니라
'변화를 알고' '결과를 이해하고' '저항하는' 결과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이때부터 사상思想의 영역에 도달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것이다.
무인의 사유思惟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이때이고,
의념을 성취하는 것으로 무학속에서 자기 자신이 도야하는 것도 이때니까.
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의 경지라고도 불리는 그 기예는
무학이 의념을 성취하여 초식과 같은 제한이 필요치 않을 때 벌어지는 법이다.
그것을 성취한다면 무인의 육신은 말 그대로 심즉동心卽動,
마음가는대로 움직이는 영역에 도달하여 더 이상의 제한이 필요치 않게 되니.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며 나아가는 검강劍罡도,
총알을 막는 것을 넘어서서 완전히 반사시켜버리는 반탄경反彈經도,
내공만 허락한다면 심해에 가라앉아버리는 압력마저도 막아서는 호신강기護身罡氣도,
음속을 뛰어넘으며 벼락같이 움직여버리는 경신법輕身法조차도,
아니 하다 못 해 단순한 이치에 불과했던 태극과 육합과 음양마저도.
무학武學속에서 살아숨쉬기 시작하고 말아버린다.
의념을 성취하는 것 만으로 초절정의 무인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정 기 신의 조화를 깨뜨리며 알에서 깨고 나오는 새처럼.
삼류三流는 무학에 입문한 이들을 뜻한다.
시정잡배를 떠올린다고 해도 좋고,
병장기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이를 떠올려도 좋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그들은 무학에 입문했다는 것이다.
시정잡배라고 해도 그들은 사람을 패는 방식에 대해 생각을 하고,
병장기를 마구잡이로 휘두를지라도 어떻게 해야 더 잘 벨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전투를 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가능한 단계에 입문하는 건,
단지 그런 사실 만으로도 인간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삼류는 저열할지언정, 하류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류 • 1』
그리고 그에 나아가서 이류二流는 무학을 수련한 이들을 뜻한다.
무학을 수련修鍊한다는 것은, 입문한 것과도 다르다.
그것은 사람을 팰 때 어떻게 해야 더 잘 패는가를 아는 것이고,
사람을 벨 때 어떻게 해야 더 잘 칼을 뽑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단순히 궁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답을 짐작하는 단계.
누군가에게 배웠다고 할 지언정 스스로의 길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상태.
그것을 이류라고 부른다.
『이류 • 2』
때문에 이류에 도달한 자들의 실력은
일반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고수라고 볼 수 있다.
삼류와는 3대1로 싸우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을 지언정,
이류들은 1 대 1에서 삼류와 하류를 능가하는 기본기를 보인다.
눈은 상대의 병장기가 휘둘러지는 투로를 향하고,
손은 싸움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채 기본기를 보이고,
발은 제대로 된 보법을 밟으며 싸움에 적합한 움직임을 갖추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공에 갓 입문했거나 느끼지도 못 하는 삼류와 다르게.
이류들은 내공에 입문하거나 갈고 닦은 이들이 대다수이기에,
기량으로 칠 때 삼류 이하는 확실하게 넘어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순히 내공을 운공하는 것 만으로도 몸에 활력이 돌고,
병장기에 더 힘이 실리며, 재생이 빨라지고, 더욱 더 강인해지니까.
기예조차도 앞서는데 내부의 공부功夫마저 쌓이니 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류 • 1』
그리고 그렇게 이류까지가 일반인들의 시선에 보이는 고수라면,
무에 입문한 이들 중 일할(10%)도 아닌 사푼(4%)만이 도달할 수 있다고 알려진,
고수들의 고수라고 치부되는 일류一流는 말 그대로 궤를 달리한다.
의기상인意氣傷刃을 이룩한, 진정한 고수高手의 경지.
주먹으로 바위를 부수고, 철을 베어내며, 하룻밤만에 지치지도 않고 천리를 가고,
풀잎만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인기척도 없이 움직이며,
오감에 속하지 않는 기감으로 십리도 넘는 거리를 살필 수 있다.
어찌 보면 단 하나만을 이룩할 수 있어도 일류의 고수로 보이지만 다르다.
일류에 도달한다면 이러한 행위들은 기본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내부의 공부가 심오하게 쌓이고, 외부의 공부가 그에 맞춰 따라온다면.
일류라는 경지가 어째서 그렇게나 적은지를 알 수 있으며,
더더욱 그들이 고수인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류 • 2』
아마라경락같은 비적이 없는 이상 범재라면
일류라고 불리는 영역에 도달하는 것 만으로도 수십년을 소비한다.
아니, 그렇게나 세월을 소비해도 도달하지 못 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단순한 기본기를 넘어서서 내부의 공부가 심화되어야 하며,
외공을 수련하여 육체를 정련한 무인이라 할지언정 내부의 공부가 부족하다면,
일류에 비할 수 없이 그저 육신의 강인함만을 품은 채 저물게 될 뿐이다.
상승上承이라고 불리는 내공의 세계에 입문하지 못 한다면,
진정으로 이 경지에 도전하지조차 못 하고 쓰러지는 이들이 대다수인것이다.
허나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내공과 외공의 벽을 넘어선 이들은, 더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의기상인意氣傷刃, 의지로서 칼날에 맺히는 기.
내공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 유형화하여 빚어내는 기예.
그것을 이룩하는 순간 내공은 작용할 수 있는 한계선이 한꺼풀 진일보한다.
아니 그것을 이룩하기 위해서 인간의 내공은 그 한계선이 한꺼풀 진일보해야만 한다.
육신을 타고 흐르는 무형의 기를 심기혈정心氣血精,
기를 응축하듯이 상승내공으로 빚어내 유형의 것으로 만들거나,
아니라면 외문의 기예를 통해 기를 증폭시킨 경력으로 빚어내거나.
무형의 것을 마음과 기가 함께 흐른다는 일념을 통해서
유형으로 화한다는 기가 막힐 정도로 어려운 비적이 의기상인에는 필요하니까.
『일류 • 3』
그리고 그런 기예에 입문하는 데 성공할정도의 기본기가 쌓인다면,
일류 고수가 휘두르는 무예는 말 그대로 흉기凶技의 영역에 다다른다.
이류 고수가 삼류 고수와 싸울 때 겨룬다, 라는 영역이 가능했다면,
일류 고수와 이류 고수의 싸움에는 겨룬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상대의 검과 겨우 한 번 맞부딪혔을 뿐인데 검이 자연스레 타고 올라
겨우 한 치 차이로 이류 고수의 동맥을 베어내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며,
단순한 경력만으로 상대의 안을 진탕으로 만드는 내가중수법內家中手法도,
가장 치명적인 상황에 검이 닿는 권역을 늘리는 검기상인劍氣傷人도,
운공만으로 인체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내가 혹은 외가의 공부도,
그 모든 것들이 일류고수의 경지를 돋보이게 하며,
격하의 어떤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원숙한 경험을 뽐낸다.
현실에서는 검과 검이 오가며 전혀 보이지 않는,
백합百合의 싸움이라는 것이 성립하는 것도 이 영역이다.
진정으로 달인과 달인의 싸움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 나타나며,
이류 고수는 열에 가깝게 몰려와야 일류와의 싸움이 성립되고,
삼류와 일류의 싸움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단 백명 가까이 모은 삼류가
그 중 태반이 넘게 죽어나갈 때도 굳이 도망치지 않을 이유가 필요하다.
정精 · 기氣 · 신神이 차올랐다고 표현되는 일류 고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절정 • 1』
그리고 그런 고수들의 고수가 바로 일류一流라면,
무림의 무인에게는 정점이라고 여겨지는 경지가 있다.
수재라고 한들 넘보기 어려운 경지.
천재라고 한들 오시하기 어려운 그런 경지.
절정絶貞.
정精 기氣 신神의 조화를 이룩한 자들.
스스로가 쌓아올린 무학武學으로, 자기 자신을 인간의 끝자락에 밀어넣은 이.
세계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의 무학의 최정점을 논한다고 한다면,
절정고수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정종正宗으로 이름높은 협의 기치를 맹세한 구주제파求主制派도,
마도魔道의 우두머리로 칭해지는 십만 마인이 모여있는 마교魔敎도,
실제로 그들이 최정예 무력 집단으로서 운용하는 것은 절정고수니까.
『절정 • 2』
절정의 조건으로서 논해지는 정 기 신의 조화는,
들리기로는 육체의 조화로움을 뜻하는 것 같지만 다르다.
정기신이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가 사유해온 것에 걸맞는 최적해最適解.
쌓아올린 무학을 현실로서 체화할 수 있는 절정의 육신과 기예.
무학에 담긴 심상을 피워올려 내공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외문과 내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공부속에서 만들어지는 철인의 성정.
그리고 그 조화가 휘두르며 위력을 내보이는 절정의 무학.
세월이 쌓아올리는 심오함과 이치를 논하는 정종正宗에서도
수십년의 적공을 쌓아올린 장로만이 그 위치에서 속세를 경계하고,
마물로 전락해가는 것들은 단순한 교도로 취급하는 마도魔道에서도
절정의 고수들이 교의 비원을 성취할 병사로 취급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 하나 하나가 바로 인간의 끝자락에 선 이들이기 때문이다.
풀 위도 아니고 몸이 가라앉는 강 위마저 경공으로 건너버리는 경신법.
칼 한 자루로 벙커의 외갑같은 갑철마저 잘라버리는 완숙해진 의기상인.
완벽하게 전신을 뒤덮으며 급소에 맞지만 않는다면 총알마저 감하는 호신기.
하룻밤만에 수백km를 가볍게 오가며 전투를 시행할 수 있는 활력과
일곱밤을 잠 한 번 자지 않고도 제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는 기력.
반경 100m 내외에서는 풀잎이 떨어지는 것마저 느끼는 기감.
내가공부와 외문공부가 완숙해지고 일갑자(60년)의 내공을 쌓았음은,
진정으로 무림의 고수들에게 초인적인 행위를 행할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
『절정 • 3』
그리고 그에 더해서, 무림의 고수가
절정에 도달하며 보이는 기예 또한 일선을 넘어선다.
일류의 영역에서 돌을 부수고 철을 가르는 절기絶技를 뽐냈다면,
절정의 고수가 보이는 기예는 그 영역을 진일보하며 나타나기 때문이다.
절정고수의 검기는 단순히 칼의 끝자락에서 길이를 늘리고 줄이며
상대에게 대처하기 어려운 환幻과 수의 차이를 내보이는 것과 다르다.
그 위력이 갑옷의 철을 가르면서 나아가서 상대의 심장을 취하는 것과도 다르고.
상대의 피륙을 넘어서 내부로 경력을 침투시키는 내가중수법과도 다르다.
절정고수의 영역에 도달하며 얻어내는 기에 대한 섬세한 조절력이 빚어내는
검염劍炎과 검사劍絲는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행위를 취할 수 있으니까.
한 시진도 넘게 검기와 같은 위력으로 병장기를 휘두를 수 있게해주는,
그리고 어떤 때는 여러겹을 겹쳐서 그 위력을 배화시켜주는 검기를 압축시킨 검사劍絲.
검기를 거칠고 무자비하게 요동치며 경력을 뒤섞는 것으로 여러 방향으로 난반사,
정종과 마도를 가리지 않고 절정고수가 내보이는 재생력을 무력화시키는 검염劍炎.
그리고 그렇게 기를 통제하는 데 고난이도라 볼 수 있는 두 수법마저도
무리없이 자신의 무학에 녹여내고 상대의 수급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기예.
정말 말 그대로, 절정고수의 수법은 - 세계의 법칙을 넘어서지 않는 한.
그 안에서 그려낼 수 있는 모든 무학을 포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설령 그것이 문제일지라도.
『절정 • 4』
절정의 무인은 그 육신으로
세계의 법칙이 허락하는 한도 내의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
그만한 경력이 있다면야 건물조차 무너트리며 파괴할 수 있고.
육신이 버티기만 한다면 그 육신을 음속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무생물에게서 기를 흡수하는 일조차도 난이도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가능하고
어쩌면, 기연의 기연의 기연을 만나서.
죽음의 별이라 불리는 검강劍罡조차도, 이룩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작 그것뿐이다.
아무리 절정의 무인이 고절한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불로불사에 닿을 수 없다.
아무리 절정의 무인이 절학을 갈고 닦아도 시간 자체를 멈추는 상대에게 대항할 수 없고
아무리 뛰어난 기예와 기량을 갖추었다고 해도, 전제부터 무너트리는 인과에 맞설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갈구한다.
세상의 법칙보다도 위로 움직이는 것들을.
세상의 만물이 움직이는 원리와 그들이 움직이는 원리의 근원을.
세상만사를 타통할 이와 기의 작용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그리고 벽에 닿은 수많은 이들중에서 일부만이, 깨달을 수 있겠지.
만물의 근원속에서 돌아가는 성광星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의념意念은 그렇게 깨어난다.
무인의 4푼 중에서도 4푼만이 도달할 수 있던 절정고수의 영역에서.
그보다도 더 적은 비율로, 그 벽을 두드리며 연공해온 이들을 넘어서서.
인간의 인지 너머에서, 별무리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 • • • • 그들이 쌓아올린 인간이라는 한계를 깨부수며.
『초절정 • 1』
Manas, 의념意念이란 이른바 사량思量, 생각을 헤아리는 것이다.
마음과 의식 사이에서 작용하는 의지.
무궁한 세월을 무학에 몰입하는 것으로 얻어지는 '관측의 궤도'.
세상 만물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이해하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이라는 굴레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무엇이 세상을 유지하는가 ?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 ?
그런 질문들에 무인武人이 낼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감각을 논하는 전5식, 그리고 그로서 빚어지는 제6식이 그런 역할을 한다.
가장 좁게는 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부터,
가장 넓게는 그 세상까지 밀려와 닿은 별무리로 나아가기까지.
누군가의 인지가 없다면 세상의 존재와 비존재는 긍정되지 못 하며,
오로지 인지만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무인들은 스스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무인의 관점에서 세상이라는 것을 유지하는
굴레의 기본소에는 끊어지지 않는 연결이 있다.
개념을 잇는 연결이다.
개념과 세상을 잇는 연결이고,
태허의 작용으로서 아지랑이처럼 나타내지는 것이다.
질서로이 세워진 개념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
무인들은 그것을 세상의 의념意念이라고 불렀고,
신神들과 악마惡魔은 그것을 성광星光이라고 불렀다.
『초절정 • 2』
성광은 '개념'이 담긴 '빛'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칙속에서 무인이 아니 인간이 움직일 적에,
각각의 성광은 전륜傳輪하며 돌아가고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사람이 행동을 하며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을 초래한다.
말하자면 세상이란 서광으로 만들어져 성광으로 채색된 곳.
우리의 움직임이란 다만 빛들을 휘감으며 만들어지는 확률론적인 것.
그럼에도 우리가 아주 낮은 확률에 배반당하지 않고
우리의 의사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제 7식, 말나식(Manas)이 존재하며 우리를 보조하기 때문이다.
의식의 너머, 의지가 세상을 항해한다.
단순히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살아가는 것의 모든 것의 의지가 세상을 항해하며 우리의 세상을 이뤄낸다.
때문에 의지를 '발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서광 위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의지가 발해지는 것이 바로.
세상을 보는 관측론의 변화와 의식의 몰아속에서 만들어지는 '의념'인 것이고.
이 연장선상속에서, 초절정고수란 의념을 성취한 자들을 뜻한다.
『초절정 • 3』
의념을 성취한 것으로 무인은 변모한다.
단순히 의념을 성취하기 위해서 수없이도 많은 벽에 부딪혀
뛰어넘지 못 하고 죽거나 실패한 채 좌절하는 이들이 넘쳐나가겠지만.
그럼에도 의념을 깨닫는 것만으로 무인의 세계는 완전히 뒤바뀐다.
세계와 자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완벽한 관측은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이른바 소우주, 대우주니 하는 것들 사이의 연결을 인지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니까.
설령 세상이라는 굴레속에서 무언가가 그 원인을 모른 채 변모한다 할 지라도
이전과 같이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이 죽어나가는 게 아니라
'변화를 알고' '결과를 이해하고' '저항하는' 결과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이때부터 사상思想의 영역에 도달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것이다.
무인의 사유思惟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이때이고,
의념을 성취하는 것으로 무학속에서 자기 자신이 도야하는 것도 이때니까.
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의 경지라고도 불리는 그 기예는
무학이 의념을 성취하여 초식과 같은 제한이 필요치 않을 때 벌어지는 법이다.
그것을 성취한다면 무인의 육신은 말 그대로 심즉동心卽動,
마음가는대로 움직이는 영역에 도달하여 더 이상의 제한이 필요치 않게 되니.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며 나아가는 검강劍罡도,
총알을 막는 것을 넘어서서 완전히 반사시켜버리는 반탄경反彈經도,
내공만 허락한다면 심해에 가라앉아버리는 압력마저도 막아서는 호신강기護身罡氣도,
음속을 뛰어넘으며 벼락같이 움직여버리는 경신법輕身法조차도,
아니 하다 못 해 단순한 이치에 불과했던 태극과 육합과 음양마저도.
무학武學속에서 살아숨쉬기 시작하고 말아버린다.
의념을 성취하는 것 만으로 초절정의 무인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정 기 신의 조화를 깨뜨리며 알에서 깨고 나오는 새처럼.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28:02
「별유천지別有天地」 : 상천上天을 뜻한다.
작은 굴레의 인연사들이 이룬 인과율이 굴러가는 곳이며,
작은 굴레의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고정하는 닻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신과 악마와 같은 초월자들이 외계에서 내려와 내계에 접하는 곳이라고도 볼 수 있으리라.
작은 굴레의 인연사들이 이룬 인과율이 굴러가는 곳이며,
작은 굴레의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고정하는 닻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신과 악마와 같은 초월자들이 외계에서 내려와 내계에 접하는 곳이라고도 볼 수 있으리라.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28:22
『마기魔氣 - 1 - 』
기즉태허氣卽太虛.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는 태허로 이루어져있다.
오행진기, 삼재진기, 음양진기, 가리는 것 없이 모든 기氣라고 불리는 힘이.
그리고 그것의 연장선상으로,
그 기세가 하늘을 가린다고 일컬어지는 대마인들의 기 또한
개념을 투영하고 있는 태허의 집합으로서 이루어져있음은 자명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오로지 하나만이 존재할 뿐.
오행五行을 투영하여 화수목금토를 나타내는 기.
삼재三才를 투영하여 천지인의 만물을 조화하는 기.
음양陰陽을 투영하여 빛과 어둠을 분간하는 기.
이들과는 다르게, 마인들의 기는 무한無限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
마소魔素를 투영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바로 - 마기魔氣의 차이점인 것이다.
『마기魔氣 - 2 - 』
태허(太虛, Monad or Ether)는 개념을 투과하는 극소極小의 막이다.
그렇기에 마소를 투영하고 있는 태허는,
태허이면서 그와 동시에 마소의 성질을 품는다.
영원히 분열하며 스스로를 증폭시키는 혼돈의 성질.
때문에 완전한 태허의 영역에 도달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원형을 보일 수 없는 것이 태허의 집합되는 기의 숙명임에도 불구하고.
마소와 태허를 동시에 원형으로 두는 마기는
기에서 비롯되는 힘중에서는 가장 패도적인 힘이다.
마소를 투영하고 있기에 필연적으로 오염을 초래한다는 문제점을 내포하긴 하지만.
『마기魔氣 - 3 - 』
하지만 다행히도 마기는 자연에 존재할지언정
자연에서 자연적으로 다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희대의 대요괴니, 마물이니 하는 것이 나타날 때나
흉업凶業이 이루어짐을 선포하며 사방에 흩뿌려지는 것이 마기이고.
그 행동에 영향을 받아 넓은 범위로 증폭되는 것이 또한 마기이기에.
그런 강림이 쉽사리 이루어지는 건 상고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니
다량의 마기가 현세하는 일도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순행에 따라 흐르는 기들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으로 순행에 역행하여 마기로 화하는 기들이 존재하지만.
대기의 천만분지 일도 차지하지 못 하는 것이 자연의 마기임으로,
그러한 공력들은 대기와 행성에 치명적인 오염을 선사하지 못 하고
저절로 정화되어 흩어져서 선인들과 도인들의 걱정을 사지는 않았다.
자연의 마기'는'.
『마공魔功 - 1 - 』
"역행逆行으로 흐르는 진기는 마기魔氣로 화하고,
정도正道로 쌓아지는 길은 마도魔道의 왜곡에 무너진다."
마교의 시작과 함께 내려왔다는 언구.
마공이란 저 말만으로도 설명되는 절학임으로.
이 말을 제외한다면, 설명에 다른 어떠한 말도 필요없다.
허나 그럼에도 풀어서 설명해본다면 마공은
'마기를 다루는 기예'라고 말할 수 있을터이다.
더 상세하게 표현하자면..."어떻게 마기를 쌓는가 ? "가 바로
마공의 가장 주된 차이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공魔功 - 2 - 』
마기의 가장 근본된 축조 방식은 역행이다.
그리고 그 축조에서, 역행의 갈래는 총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역행의 결과를 취하는 것.
자연의 대기속에서도 남아있는 마기를 흡기하는 것이다.
자연의 청순한 진기 사이에서도 마기로서 잔존한다는 것은,
여타 마기와는 거리를 멀리하는 정순한 태허로 이루어져 있음이기에.
이러한 마기의 연공으로 이루어진 마공은 적은 양으로도 강한 위력을 낼 수 있다.
소량으로, 매일 매일 조금씩 이뤄지게 될 마기의 축조가
정도의 정종신공의 축조 속도보다도 느릴지 모르다는 걸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기는 하지만서도.
허나 이런 유형의 마공도 상고적의 시대에는 주로 쓰이던 방법이었다.
그 시절에는 널린 게 마물이었고 요괴였으며 용이었으니.
세속에 넘쳐흐르는 게 마기였던터라 마인도 주구장창 쏟아나왔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마주법魔呪法부터 암흑대천마공暗黑對天魔功같은,
이미 실전되어버린 절기까지 상고 시대의 마공에는
이런 유형을 사용하지 않는 부류가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마공魔功 - 3 - 』
그리고 둘째는 역행의 원인을 이룩하는 것.
체내의 진기를 역행으로 돌리는 것으로 기를 마기로 화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체외에서 이뤄지는 마기의 형성을 본따 만들어졌다.
허공에서 홀로 유유히 흐르며 그 형태를 달리하던 마기의 모습과 같이
스스로의 체내를 허공과 같이 여기며, 진기의 흐름을 거꾸로 하는 것으로
역행기공逆行氣功을 이룩하여 마기를 체내에서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가장 빠르고 손쉽게 마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고,
겨우 격렬한 운공을 할 시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작은 리스크로
처음 창안됐을 당시에는 동일한 경지의 무인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줬기에
이러한 형식은 마교의 본단에서부터 하부에까지 널리 퍼져 흐르게 되었다.
역행기공답게 혈도를 잘못 건드리면 그 부위가 터진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정종기공이라 해도 보통 혈도를 잘못 건드리면 황천으로 떠난다는 건 같았으니
전 우주의 마문들에게 이러한 유형은 마문의 발전기에 필연적으로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져나가, 후대 마공의 기틀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역행기공의 부작용을 가로막는 방법 또한 성취되었으니까.
역행기공逆行氣功에서부터 아마라경락阿魔羅經絡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현대 마공의 기본적인 구동 원리를 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마공魔功 - 4 - 』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역행의 궤를 달리 하는 것.
역행으로 흐른 진기 자체에 집중한 앞선 둘과 다르게,
정도를 마도가 부순다는 구업에 집중한 결과물이다.
정종절학은 정도正道를 따라 흐르며,
이는 패도覇道에 빠지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무학임을 드러내는 바.
때문에 역행의 궤를 달리함이란, 정종절학의 정도를 무너트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정도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
간단하다.
정종절학의 순리를 역행으로 밟아나가는 것으로.
마도魔道는 순리의 역을 쥐어 시작과 함께 정도와 같은 과정을 이끌어내고,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그릇된 결과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것을 거시적으로 말한다면 순리 자체를 뒤튼다, 라고 할 수 있다.
정종절학이 자랑하는 숭고하고 고아한 의념을 잡아뒤틀고
마도의 기치 아래로 잡아끌어 물들이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을까 ?
먼 옛적에 구천현녀검법九天玄女劍法이라고 불리던 정종절학의 신공을 들고
마도에 투신하여 구천현마검법九天玄魔劍法이라는 왜곡을 이루어내었던,
끝끝내 구천현녀九天玄女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던 구천현마九天玄魔가 있었듯이,
신공절학이 절묘하면 절묘할수록, 그 기치가 바르면 바를수록 신공절학은 마도로 떨어질 위험을 내포하는 법이다.
그 기치의 바름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한 것은 아니니까.
『마공魔功 - 5 - 』
이렇게 세개의 마공 분류가 끝났다.
허나 이렇게 세분류가 나뉜다고 해서
각 마공 분류가 모두 이것뿐인것도,
오로지 마공이 한가지 분류만 따르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이상의 마공에 대한 발전을 이루고,
특히나 천마위天魔位를 갖춘 마교가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마공절학의 형성에 3가지 분류의 혼용이 들어가곤 하니까.
암흑대천마공이 ■■■■에 의해 대마존천강력大魔尊天降力으로 변모하였듯이
본디 마교의 마공들을 묶는 단 한가지 율법은 강자존强者存 !
상고적의 마도절기든, 이후에 만들어지는 마도절기든
오로지 강한 절기와 그 주인만이 살아남는 마교에서는
각 세계에서 각기 다른 절기와 혼용이 나올 가능성이 무궁한 법이다.
자 그러면 이러한 나뉜 분류들에 대한 설명이 끝났으니
그 마도의 위력이 어떠한지를 - 지금부터 말해보겠다.
호교무공護敎武功, 섭혼대구식攝魂代九式과 함께.
『섭혼대구식攝魂代九式 - 1 - 』
섭혼대구식.
정도正道의 재앙.
무적자라 일컬어진 절대천마의 역작.
세상 모든 마공에 호환되는 마경魔境.
천마신교의 신술에조차 새겨지는 법언.
마교라고 하는 집단이 단순한 광인과 마물의 집합이 아니라
세상을 위협할 수 있는 마인으로서 존재하게 한 힘.
그 안에는 세상을 속이는 환술이 있다.
그 안에는 전신을 움직이는 기에 힘을 싣는 경력이 있다.
그 안에는 또한 이치를 뒤트는 의념이 있다.
그 안에는 심혈을 뒤트는 혈정이 있으며
세상 모든 삿된 이치를 뒤틀어내는 기예가, 그 안에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섭혼대구식은 마魔의 총화다.
천마신공이 천마신교를 지탱한다고 생각하는가 ?
틀리다.
천마무는 전생하여 현세한 천마의 존재를 드러낼뿐이며
마인을 마인으로서 존재시켜주는 건 오로지 섭혼대구식뿐이다.
적어도 '마기가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혼돈'을 외부로 배출해주는 건 -
마교에 있어서 섭혼대구식이나 그보다 못 한 상형들뿐이니 !
『섭혼대구식攝魂代九式 - 2 - 』
언급하였듯이, 섭혼대구식은 마교의 모든 것을 총망라한 기예다.
그리고 마교는 위로는 천마를 섬기고 아래로는 마도를 갈고 닦는 집단이다.
그리고 또한, 마도는 마기를, 마소의 투영체를 다루는 집단이다.
마력의 폐해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적이 있을 것이다.
예상했는가 ? 아니 예상하지 못 했더라도 좋다.
섭혼대구식 혹은 그보다도 약한 총경이 없더라면,
마인은 절대의 경지에 도달하거나 마물로 전락해버리거나
둘 중 하나의 결말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건 확실하니.
마법과는 그 이치가 다르기에 그 결말은 필연적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그저 내부에서 외부로, 법진에 맞게끔
최소한의, 효율적인 움직임을 요구하는 마법과
체내에서 격렬한 전투에 맞게 호흡 한번에 수십, 수백번 인체를 도는 무공.
대주천大周天 한번에 체내에 혼돈을 쌓는 것이 마도의 고수이며.
일생토록 투쟁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숙명에 시달리는 것이 바로 그들이니.
아무리 그들이 육신을 갈고 닦아 마법사의 빈약한 것과는 다르다 해도
말년까지도 그 번뜩이던 영성과 지성을 갖추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기즉태허氣卽太虛.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는 태허로 이루어져있다.
오행진기, 삼재진기, 음양진기, 가리는 것 없이 모든 기氣라고 불리는 힘이.
그리고 그것의 연장선상으로,
그 기세가 하늘을 가린다고 일컬어지는 대마인들의 기 또한
개념을 투영하고 있는 태허의 집합으로서 이루어져있음은 자명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오로지 하나만이 존재할 뿐.
오행五行을 투영하여 화수목금토를 나타내는 기.
삼재三才를 투영하여 천지인의 만물을 조화하는 기.
음양陰陽을 투영하여 빛과 어둠을 분간하는 기.
이들과는 다르게, 마인들의 기는 무한無限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
마소魔素를 투영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바로 - 마기魔氣의 차이점인 것이다.
『마기魔氣 - 2 - 』
태허(太虛, Monad or Ether)는 개념을 투과하는 극소極小의 막이다.
그렇기에 마소를 투영하고 있는 태허는,
태허이면서 그와 동시에 마소의 성질을 품는다.
영원히 분열하며 스스로를 증폭시키는 혼돈의 성질.
때문에 완전한 태허의 영역에 도달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원형을 보일 수 없는 것이 태허의 집합되는 기의 숙명임에도 불구하고.
마소와 태허를 동시에 원형으로 두는 마기는
기에서 비롯되는 힘중에서는 가장 패도적인 힘이다.
마소를 투영하고 있기에 필연적으로 오염을 초래한다는 문제점을 내포하긴 하지만.
『마기魔氣 - 3 - 』
하지만 다행히도 마기는 자연에 존재할지언정
자연에서 자연적으로 다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희대의 대요괴니, 마물이니 하는 것이 나타날 때나
흉업凶業이 이루어짐을 선포하며 사방에 흩뿌려지는 것이 마기이고.
그 행동에 영향을 받아 넓은 범위로 증폭되는 것이 또한 마기이기에.
그런 강림이 쉽사리 이루어지는 건 상고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니
다량의 마기가 현세하는 일도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순행에 따라 흐르는 기들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으로 순행에 역행하여 마기로 화하는 기들이 존재하지만.
대기의 천만분지 일도 차지하지 못 하는 것이 자연의 마기임으로,
그러한 공력들은 대기와 행성에 치명적인 오염을 선사하지 못 하고
저절로 정화되어 흩어져서 선인들과 도인들의 걱정을 사지는 않았다.
자연의 마기'는'.
『마공魔功 - 1 - 』
"역행逆行으로 흐르는 진기는 마기魔氣로 화하고,
정도正道로 쌓아지는 길은 마도魔道의 왜곡에 무너진다."
마교의 시작과 함께 내려왔다는 언구.
마공이란 저 말만으로도 설명되는 절학임으로.
이 말을 제외한다면, 설명에 다른 어떠한 말도 필요없다.
허나 그럼에도 풀어서 설명해본다면 마공은
'마기를 다루는 기예'라고 말할 수 있을터이다.
더 상세하게 표현하자면..."어떻게 마기를 쌓는가 ? "가 바로
마공의 가장 주된 차이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공魔功 - 2 - 』
마기의 가장 근본된 축조 방식은 역행이다.
그리고 그 축조에서, 역행의 갈래는 총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역행의 결과를 취하는 것.
자연의 대기속에서도 남아있는 마기를 흡기하는 것이다.
자연의 청순한 진기 사이에서도 마기로서 잔존한다는 것은,
여타 마기와는 거리를 멀리하는 정순한 태허로 이루어져 있음이기에.
이러한 마기의 연공으로 이루어진 마공은 적은 양으로도 강한 위력을 낼 수 있다.
소량으로, 매일 매일 조금씩 이뤄지게 될 마기의 축조가
정도의 정종신공의 축조 속도보다도 느릴지 모르다는 걸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기는 하지만서도.
허나 이런 유형의 마공도 상고적의 시대에는 주로 쓰이던 방법이었다.
그 시절에는 널린 게 마물이었고 요괴였으며 용이었으니.
세속에 넘쳐흐르는 게 마기였던터라 마인도 주구장창 쏟아나왔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마주법魔呪法부터 암흑대천마공暗黑對天魔功같은,
이미 실전되어버린 절기까지 상고 시대의 마공에는
이런 유형을 사용하지 않는 부류가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마공魔功 - 3 - 』
그리고 둘째는 역행의 원인을 이룩하는 것.
체내의 진기를 역행으로 돌리는 것으로 기를 마기로 화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체외에서 이뤄지는 마기의 형성을 본따 만들어졌다.
허공에서 홀로 유유히 흐르며 그 형태를 달리하던 마기의 모습과 같이
스스로의 체내를 허공과 같이 여기며, 진기의 흐름을 거꾸로 하는 것으로
역행기공逆行氣功을 이룩하여 마기를 체내에서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가장 빠르고 손쉽게 마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고,
겨우 격렬한 운공을 할 시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작은 리스크로
처음 창안됐을 당시에는 동일한 경지의 무인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줬기에
이러한 형식은 마교의 본단에서부터 하부에까지 널리 퍼져 흐르게 되었다.
역행기공답게 혈도를 잘못 건드리면 그 부위가 터진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정종기공이라 해도 보통 혈도를 잘못 건드리면 황천으로 떠난다는 건 같았으니
전 우주의 마문들에게 이러한 유형은 마문의 발전기에 필연적으로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져나가, 후대 마공의 기틀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역행기공의 부작용을 가로막는 방법 또한 성취되었으니까.
역행기공逆行氣功에서부터 아마라경락阿魔羅經絡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현대 마공의 기본적인 구동 원리를 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마공魔功 - 4 - 』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역행의 궤를 달리 하는 것.
역행으로 흐른 진기 자체에 집중한 앞선 둘과 다르게,
정도를 마도가 부순다는 구업에 집중한 결과물이다.
정종절학은 정도正道를 따라 흐르며,
이는 패도覇道에 빠지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무학임을 드러내는 바.
때문에 역행의 궤를 달리함이란, 정종절학의 정도를 무너트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정도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
간단하다.
정종절학의 순리를 역행으로 밟아나가는 것으로.
마도魔道는 순리의 역을 쥐어 시작과 함께 정도와 같은 과정을 이끌어내고,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그릇된 결과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것을 거시적으로 말한다면 순리 자체를 뒤튼다, 라고 할 수 있다.
정종절학이 자랑하는 숭고하고 고아한 의념을 잡아뒤틀고
마도의 기치 아래로 잡아끌어 물들이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을까 ?
먼 옛적에 구천현녀검법九天玄女劍法이라고 불리던 정종절학의 신공을 들고
마도에 투신하여 구천현마검법九天玄魔劍法이라는 왜곡을 이루어내었던,
끝끝내 구천현녀九天玄女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던 구천현마九天玄魔가 있었듯이,
신공절학이 절묘하면 절묘할수록, 그 기치가 바르면 바를수록 신공절학은 마도로 떨어질 위험을 내포하는 법이다.
그 기치의 바름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한 것은 아니니까.
『마공魔功 - 5 - 』
이렇게 세개의 마공 분류가 끝났다.
허나 이렇게 세분류가 나뉜다고 해서
각 마공 분류가 모두 이것뿐인것도,
오로지 마공이 한가지 분류만 따르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이상의 마공에 대한 발전을 이루고,
특히나 천마위天魔位를 갖춘 마교가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마공절학의 형성에 3가지 분류의 혼용이 들어가곤 하니까.
암흑대천마공이 ■■■■에 의해 대마존천강력大魔尊天降力으로 변모하였듯이
본디 마교의 마공들을 묶는 단 한가지 율법은 강자존强者存 !
상고적의 마도절기든, 이후에 만들어지는 마도절기든
오로지 강한 절기와 그 주인만이 살아남는 마교에서는
각 세계에서 각기 다른 절기와 혼용이 나올 가능성이 무궁한 법이다.
자 그러면 이러한 나뉜 분류들에 대한 설명이 끝났으니
그 마도의 위력이 어떠한지를 - 지금부터 말해보겠다.
호교무공護敎武功, 섭혼대구식攝魂代九式과 함께.
『섭혼대구식攝魂代九式 - 1 - 』
섭혼대구식.
정도正道의 재앙.
무적자라 일컬어진 절대천마의 역작.
세상 모든 마공에 호환되는 마경魔境.
천마신교의 신술에조차 새겨지는 법언.
마교라고 하는 집단이 단순한 광인과 마물의 집합이 아니라
세상을 위협할 수 있는 마인으로서 존재하게 한 힘.
그 안에는 세상을 속이는 환술이 있다.
그 안에는 전신을 움직이는 기에 힘을 싣는 경력이 있다.
그 안에는 또한 이치를 뒤트는 의념이 있다.
그 안에는 심혈을 뒤트는 혈정이 있으며
세상 모든 삿된 이치를 뒤틀어내는 기예가, 그 안에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섭혼대구식은 마魔의 총화다.
천마신공이 천마신교를 지탱한다고 생각하는가 ?
틀리다.
천마무는 전생하여 현세한 천마의 존재를 드러낼뿐이며
마인을 마인으로서 존재시켜주는 건 오로지 섭혼대구식뿐이다.
적어도 '마기가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혼돈'을 외부로 배출해주는 건 -
마교에 있어서 섭혼대구식이나 그보다 못 한 상형들뿐이니 !
『섭혼대구식攝魂代九式 - 2 - 』
언급하였듯이, 섭혼대구식은 마교의 모든 것을 총망라한 기예다.
그리고 마교는 위로는 천마를 섬기고 아래로는 마도를 갈고 닦는 집단이다.
그리고 또한, 마도는 마기를, 마소의 투영체를 다루는 집단이다.
마력의 폐해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적이 있을 것이다.
예상했는가 ? 아니 예상하지 못 했더라도 좋다.
섭혼대구식 혹은 그보다도 약한 총경이 없더라면,
마인은 절대의 경지에 도달하거나 마물로 전락해버리거나
둘 중 하나의 결말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건 확실하니.
마법과는 그 이치가 다르기에 그 결말은 필연적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그저 내부에서 외부로, 법진에 맞게끔
최소한의, 효율적인 움직임을 요구하는 마법과
체내에서 격렬한 전투에 맞게 호흡 한번에 수십, 수백번 인체를 도는 무공.
대주천大周天 한번에 체내에 혼돈을 쌓는 것이 마도의 고수이며.
일생토록 투쟁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숙명에 시달리는 것이 바로 그들이니.
아무리 그들이 육신을 갈고 닦아 마법사의 빈약한 것과는 다르다 해도
말년까지도 그 번뜩이던 영성과 지성을 갖추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28:34
섭혼대구식攝魂代九式
1식 - 환롱幻弄
마교의 섭리, 역천을 화한 초식.
섭리로서 섭리를 뒤트는 초석이 되어 사용된다.
가장 기본적인 1식으로부터 2식부터 8식이 분화되어 나왔으니
의념을 강제로 개문하는 환롱은 섭혼대수식의 기초이자 정수라 볼 수 있다.
2식 - 행백行魄
인체의 행기와 척도를 살피는 방법.
환롱을 통해 육체의 상태를 살펴 비트는 것으로 이어진다.
인체에 관여하는 독과 암기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연계된다.
3식 - 제백制魄
인체의 기혈과 기맥을 다루는 기예.
환롱을 통해 체내의 기를 다루는 것으로 이어진다.
마기의 혼돈 정제와 경력의 위력 배화로 연계된다.
4식 - 엽백燁魄
인체의 움직임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기예.
환롱을 통해 그 경력을 배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마공의 이치에 대한 보조와 제반병기술로 연계된다.
5식 - 관혼觀魂
영혼과 귀문을 관찰하는 기예.
환롱을 통해 본디 잡을 수 없는 영혼을 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혼에 영향을 미치는 수법들과 귀둔으로 연계된다.
6식 - 침혼沈魂
접한 이의 영혼을 잠재우고 격하는 기예.
환롱을 통해 잠들리가 없는 영혼을 짓누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관혼과 연계하여 상대의 이성이나 성정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연계된다.
7식 - 취혼取魂
자신과 타자의 영혼의 행적에 관여하는 기예.
환롱을 통해 영혼의 행적과 형상에 간섭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관혼과 연계하여 금제와 강시술등의 방법으로 연계된다.
8식 - 절혼연백絶魂連魄
영혼과 육체에 대한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기예.
환롱을 통해 영과 육에 대한 모든 것을 통괄할 수 있다.
섭혼대구식에서 유일하게 미완성된 식.
주로 술식을 보조하는 방법으로 연계된다.
9식 - 축성築聖
신성을 쌓는 기예...라고 알려져있다.
천마신교 안에 들어있는 신술의 교파에 내려오고 있다.
1식과 연계하며, 2식과 8식을 사용한다고 알려져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천마신교 내에서도 폐쇄적으로 신술이 사용되기 때문에.
하지만 섭혼대구식의 8식까지를 신술에 접목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듯 하다.
1식 - 환롱幻弄
마교의 섭리, 역천을 화한 초식.
섭리로서 섭리를 뒤트는 초석이 되어 사용된다.
가장 기본적인 1식으로부터 2식부터 8식이 분화되어 나왔으니
의념을 강제로 개문하는 환롱은 섭혼대수식의 기초이자 정수라 볼 수 있다.
2식 - 행백行魄
인체의 행기와 척도를 살피는 방법.
환롱을 통해 육체의 상태를 살펴 비트는 것으로 이어진다.
인체에 관여하는 독과 암기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연계된다.
3식 - 제백制魄
인체의 기혈과 기맥을 다루는 기예.
환롱을 통해 체내의 기를 다루는 것으로 이어진다.
마기의 혼돈 정제와 경력의 위력 배화로 연계된다.
4식 - 엽백燁魄
인체의 움직임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기예.
환롱을 통해 그 경력을 배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마공의 이치에 대한 보조와 제반병기술로 연계된다.
5식 - 관혼觀魂
영혼과 귀문을 관찰하는 기예.
환롱을 통해 본디 잡을 수 없는 영혼을 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혼에 영향을 미치는 수법들과 귀둔으로 연계된다.
6식 - 침혼沈魂
접한 이의 영혼을 잠재우고 격하는 기예.
환롱을 통해 잠들리가 없는 영혼을 짓누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관혼과 연계하여 상대의 이성이나 성정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연계된다.
7식 - 취혼取魂
자신과 타자의 영혼의 행적에 관여하는 기예.
환롱을 통해 영혼의 행적과 형상에 간섭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관혼과 연계하여 금제와 강시술등의 방법으로 연계된다.
8식 - 절혼연백絶魂連魄
영혼과 육체에 대한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기예.
환롱을 통해 영과 육에 대한 모든 것을 통괄할 수 있다.
섭혼대구식에서 유일하게 미완성된 식.
주로 술식을 보조하는 방법으로 연계된다.
9식 - 축성築聖
신성을 쌓는 기예...라고 알려져있다.
천마신교 안에 들어있는 신술의 교파에 내려오고 있다.
1식과 연계하며, 2식과 8식을 사용한다고 알려져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천마신교 내에서도 폐쇄적으로 신술이 사용되기 때문에.
하지만 섭혼대구식의 8식까지를 신술에 접목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듯 하다.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28:58
다희님은 오히려 마교에 맞서는 쪽이 취향일걸.
백팔천지성百八天地星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마도 문파들이
세계를 짓밟고 부숴버리며 천하를 유린하고 삶과 죽음을 능멸하자
죽음보다 더한 최후가 기다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일어난 협객의 무리가 있으니까.
정종正宗 혹은 구주제파求州制派라는 이름이야.
오로지 구주求州를 목표로서 일어나
속세와 연관되는 것을 피하고 마인을 상대하는 무인.
등선의 길과 입적의 길도 꺾어버리고 다시 하늘에서 내려온 구도자들 !
뭐 마인이 너무 강해서 신선이 다시 인계로 내려오는 일까지 일어나긴 했지만.
본래 산과 숲속에서 속세와의 연을 끊은 채
하늘의 본성을 따라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게 구도자의 미덕이지만
하늘마저도 마인들의 흉업에 일그러지는 걸 보고
통탄하며 스스로 펼치던 구도의 길을 접고 살계를 열었다는 설정.
백팔천지성百八天地星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마도 문파들이
세계를 짓밟고 부숴버리며 천하를 유린하고 삶과 죽음을 능멸하자
죽음보다 더한 최후가 기다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일어난 협객의 무리가 있으니까.
정종正宗 혹은 구주제파求州制派라는 이름이야.
오로지 구주求州를 목표로서 일어나
속세와 연관되는 것을 피하고 마인을 상대하는 무인.
등선의 길과 입적의 길도 꺾어버리고 다시 하늘에서 내려온 구도자들 !
뭐 마인이 너무 강해서 신선이 다시 인계로 내려오는 일까지 일어나긴 했지만.
본래 산과 숲속에서 속세와의 연을 끊은 채
하늘의 본성을 따라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게 구도자의 미덕이지만
하늘마저도 마인들의 흉업에 일그러지는 걸 보고
통탄하며 스스로 펼치던 구도의 길을 접고 살계를 열었다는 설정.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29:31
우리는 별의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의 위에서 영원한 항해를 한다.
성간풍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고, 사건의 지평선을 헤쳐 지나간다.
이 영원의 끝에서 우리 고향에 닿는 순간이 오길 바라며.
그것은 그리움이라고 하기도 너무 오래된 향수병.
유전자 단위에 새겨진, 한때 지구에 발 붙이고 살아가던 생명체로서의 귀소본능.
그 땅에 살던 세대는 이미 다 죽어 우주의 먼지가 된지 수천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고향을 향하여 간다.
본적조차 없는 푸른 별을 찾기 위해 몇천년을, 몇만년을 헤메었을까.
마음 가는 대로 떠돌아다니는 고래에 의지해 떠돌아다니는 이 여정에 의미는 있을까.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고향에 대한 '영문 모를 그리움'으로 여정을 계속한다.
성간풍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고, 사건의 지평선을 헤쳐 지나간다.
이 영원의 끝에서 우리 고향에 닿는 순간이 오길 바라며.
그것은 그리움이라고 하기도 너무 오래된 향수병.
유전자 단위에 새겨진, 한때 지구에 발 붙이고 살아가던 생명체로서의 귀소본능.
그 땅에 살던 세대는 이미 다 죽어 우주의 먼지가 된지 수천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고향을 향하여 간다.
본적조차 없는 푸른 별을 찾기 위해 몇천년을, 몇만년을 헤메었을까.
마음 가는 대로 떠돌아다니는 고래에 의지해 떠돌아다니는 이 여정에 의미는 있을까.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고향에 대한 '영문 모를 그리움'으로 여정을 계속한다.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29:53
여신께서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만연한 것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인간의 왕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인간들의 패악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며
그들에게서 나온 죄가 다른 모든 생명에게로 번져가고 있으니 이는 곧 창궐할 역병이라
내가 그들로 하여금 다시 나의 법을 지켜 올바른 길로 돌이킬 것을 여러 번 명하였으나 그들은 듣지 아니하였고
더더욱 악한 길로 빠져들어 그들의 죄악을 다른 생명들에게 퍼트리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으니
내가 땅 위의 모든 것을 멸망시킬 재앙을 내려 이 역병을 그 뿌리째로 멸하리라
인간의 왕이 여신의 어전으로 나아가 여쭙기를,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비록 악인이 창궐하고 있으나, 분명 주의 법도대로 행하여 주의 공의를 지키는 의인들도 있지 아니하나이까
이르시되, 죄악은 곧 역병이니, 그들이 곧 역병에 걸려 죄를 지을 것을 내가 아노라
그들의 발걸음이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거늘, 어찌 그를 두고 볼 수가 있겠는가
인간의 왕이 다시 아뢰기를, 그들은 아직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았으니
아직 그 발걸음을 돌이켜 주의 길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이와 같이 정의를 위한 심판으로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는 것은 부당하오니
주께서는 다시 생각하여 부디 악인만을 벌하소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크나큰 참화를 땅에 일으켜 천지만물을 멸절하리니 땅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내릴 심판은 오로지 정의를 위한 심판일 것인즉 의인에게는 구원이 있으리라
너는 위그드라실의 뿌리로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그 길이는 이천 규빗, 너비는 삼백 규빗, 높이는 이백 규빗으로 할 것이며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세 규빗에 하나만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총 열아홉 층으로 할지니라
너는 네 가솔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고 내가 악에 범해지지 않은 모든 의로운 생물을 네게로 이끌지니
너는 그들을 방주에 들여 그들로 하여금 참화에서 벗어나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이에 인간의 왕은 그와 같이 하여 신께서 그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인간의 왕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인간들의 패악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며
그들에게서 나온 죄가 다른 모든 생명에게로 번져가고 있으니 이는 곧 창궐할 역병이라
내가 그들로 하여금 다시 나의 법을 지켜 올바른 길로 돌이킬 것을 여러 번 명하였으나 그들은 듣지 아니하였고
더더욱 악한 길로 빠져들어 그들의 죄악을 다른 생명들에게 퍼트리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으니
내가 땅 위의 모든 것을 멸망시킬 재앙을 내려 이 역병을 그 뿌리째로 멸하리라
인간의 왕이 여신의 어전으로 나아가 여쭙기를,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비록 악인이 창궐하고 있으나, 분명 주의 법도대로 행하여 주의 공의를 지키는 의인들도 있지 아니하나이까
이르시되, 죄악은 곧 역병이니, 그들이 곧 역병에 걸려 죄를 지을 것을 내가 아노라
그들의 발걸음이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거늘, 어찌 그를 두고 볼 수가 있겠는가
인간의 왕이 다시 아뢰기를, 그들은 아직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았으니
아직 그 발걸음을 돌이켜 주의 길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이와 같이 정의를 위한 심판으로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는 것은 부당하오니
주께서는 다시 생각하여 부디 악인만을 벌하소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크나큰 참화를 땅에 일으켜 천지만물을 멸절하리니 땅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내릴 심판은 오로지 정의를 위한 심판일 것인즉 의인에게는 구원이 있으리라
너는 위그드라실의 뿌리로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그 길이는 이천 규빗, 너비는 삼백 규빗, 높이는 이백 규빗으로 할 것이며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세 규빗에 하나만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총 열아홉 층으로 할지니라
너는 네 가솔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고 내가 악에 범해지지 않은 모든 의로운 생물을 네게로 이끌지니
너는 그들을 방주에 들여 그들로 하여금 참화에서 벗어나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이에 인간의 왕은 그와 같이 하여 신께서 그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30:11
우리는 광야에서 울부짖는 프로메테우스를 보았다.
영원의 시간을 독수리에게 쪼아먹히머 고통받았던 그 형형한 눈은 짐승과 같았고,
세월에 짓눌리고 아픔에 시달려 일그러진 그 형상은 악마와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한다, 그가 한때는 신이었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우리는 죽은 신을 위한 장례식을 치렀다.
우리는 그를 기렸다, 신이 아니게 되어버린 그를 기렸다.
신으로서 죽어버린 그를 위해, 우리는 진혼가를 불렀다.
(여기까지는 진지하게 끄적이고)
그리고 인간을 사랑했던 최후의 신조차 악마가 되어버렸다는 걸 깨달은 발견자들은
자기 자신들이 새로운 신이 되어 인간을 위하겠다며 천마신교를 창설하는데
(장난삼아 무협 드리프트)
영원의 시간을 독수리에게 쪼아먹히머 고통받았던 그 형형한 눈은 짐승과 같았고,
세월에 짓눌리고 아픔에 시달려 일그러진 그 형상은 악마와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한다, 그가 한때는 신이었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우리는 죽은 신을 위한 장례식을 치렀다.
우리는 그를 기렸다, 신이 아니게 되어버린 그를 기렸다.
신으로서 죽어버린 그를 위해, 우리는 진혼가를 불렀다.
(여기까지는 진지하게 끄적이고)
그리고 인간을 사랑했던 최후의 신조차 악마가 되어버렸다는 걸 깨달은 발견자들은
자기 자신들이 새로운 신이 되어 인간을 위하겠다며 천마신교를 창설하는데
(장난삼아 무협 드리프트)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30:18
남아있는 신들은 인간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악의적인 신들 뿐
그렇다면 내가, 우리가 인간들을 위한 새로운 신이 되겠다!
라는 생각에서 탄생한 것이 초대 천마
프로메테우스에서 왜 갑자기 천마신교가 나왔는가
그건 저도 몰?루
멈출 수 없다...천마의 전생을...
구원을 바라는 사람의 지성이 하늘에 닿는 한
마성은 언제나 하늘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내리리라
천마는 신이 되었으나 불완전했고, 그렇기에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그는 악마로 몰렸음에도 악마로 떨어지진 않았다.
그는 언제나 새로이 태어나기를 반복했으니, 불완전한 신은 그렇기에 영원불멸한 신이 되었다.
그런가 그런가. 그럼 천마를 받고, 그 위에 황제를 더 하겠다.(?)
인간을 사랑했던 최후의 신조차 악마로 전락했음을 깨달은 세 명의 탐색자. 동방박사.
이 중 하나는 스스로가 신이 되어 인간을 위하겠다며 천마신교를 창설하였고,
이 중 하나는 신의 시대에 막을 내리고, 인간의 시대를 천명하겠다며 중화 제국을 건설하였으며,
이 중 하나는 이 가혹한 세상의 괴로움 속에서 깨달음을 궁구한 끝에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 무공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데스노트 뮤지컬)
그리하여 중화의 하늘 아래, 세 개의 흐름이 만들어 졌으니.
황제의 백성들이 모여 관을 이루었고, 천마의 신도들이 모여 마교를 이루었으며, 각자의 제자들이 모여 정종을 일구었다.
이것이 황가와 소림, 마교의 시초였다(?)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시작하는 중국 무림의 기원(?)
황가와 소림, 마교는 전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영원의 전쟁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이 시대, 각 세력에서 깨달은 자들이 출현하였으니….
(뇌절한 것도 끌어올리기)
그렇다면 내가, 우리가 인간들을 위한 새로운 신이 되겠다!
라는 생각에서 탄생한 것이 초대 천마
프로메테우스에서 왜 갑자기 천마신교가 나왔는가
그건 저도 몰?루
멈출 수 없다...천마의 전생을...
구원을 바라는 사람의 지성이 하늘에 닿는 한
마성은 언제나 하늘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내리리라
천마는 신이 되었으나 불완전했고, 그렇기에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그는 악마로 몰렸음에도 악마로 떨어지진 않았다.
그는 언제나 새로이 태어나기를 반복했으니, 불완전한 신은 그렇기에 영원불멸한 신이 되었다.
그런가 그런가. 그럼 천마를 받고, 그 위에 황제를 더 하겠다.(?)
인간을 사랑했던 최후의 신조차 악마로 전락했음을 깨달은 세 명의 탐색자. 동방박사.
이 중 하나는 스스로가 신이 되어 인간을 위하겠다며 천마신교를 창설하였고,
이 중 하나는 신의 시대에 막을 내리고, 인간의 시대를 천명하겠다며 중화 제국을 건설하였으며,
이 중 하나는 이 가혹한 세상의 괴로움 속에서 깨달음을 궁구한 끝에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 무공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데스노트 뮤지컬)
그리하여 중화의 하늘 아래, 세 개의 흐름이 만들어 졌으니.
황제의 백성들이 모여 관을 이루었고, 천마의 신도들이 모여 마교를 이루었으며, 각자의 제자들이 모여 정종을 일구었다.
이것이 황가와 소림, 마교의 시초였다(?)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시작하는 중국 무림의 기원(?)
황가와 소림, 마교는 전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영원의 전쟁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이 시대, 각 세력에서 깨달은 자들이 출현하였으니….
(뇌절한 것도 끌어올리기)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30:32
오호단문도에 대해 쓰고 있는 중
팽가의 도법인가- 근데 오호단문도가 원래는 팽가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응응 아니였어 - 원래는 소림 소림
정확히는 현실에서는 소림쪽 병법이었달지 그렇고.
중국에서는 천룡팔부같은 무협에서 모용씨나 녹림쪽이 썼다는 느낌.
아하. 그런데 어쩌다가 팽가 도법이 됐대요? 딱히 기원 같은 건 모르나?
한국으로 오면서 팽가라는 원래 없는 세가를 만들면서 패도적이고 실전적인 기세에 맞는 도법을 주느라 그렇게 됐을걸 ?
팽가라는 게 원래 없는 거였구나!
아마 여러개 골라넣으면서 패도적이고 실전적인 오호단문도가 쓰인 느낌
그런가 그런가. 어디에서 스타트를 끊었는가, 같은 이야기는 아무도 모르나보네요.
팽조라는 신선 ? 전욱의 후손인 쪽은 있었는데
하북팽가같은 하북에서 무가를 이루고 크게 성장한 가문은 없었다는 느낌이네
없어 없어 메이드 인 코리아 ! (?)
아무래도 만들어지고 쓰이면서 누가 골라서 넣은거일테니까...
하북팽가말고 다른 팽가는 다른 곳에서도 쓰였겠지만
아마 하북에 팽가가 있다는 건 메이드 인 코리아가 맞을거야 (곰곰)
국산 세가. 즉 애용해야만. (?)
팽가의 도법인가- 근데 오호단문도가 원래는 팽가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응응 아니였어 - 원래는 소림 소림
정확히는 현실에서는 소림쪽 병법이었달지 그렇고.
중국에서는 천룡팔부같은 무협에서 모용씨나 녹림쪽이 썼다는 느낌.
아하. 그런데 어쩌다가 팽가 도법이 됐대요? 딱히 기원 같은 건 모르나?
한국으로 오면서 팽가라는 원래 없는 세가를 만들면서 패도적이고 실전적인 기세에 맞는 도법을 주느라 그렇게 됐을걸 ?
팽가라는 게 원래 없는 거였구나!
아마 여러개 골라넣으면서 패도적이고 실전적인 오호단문도가 쓰인 느낌
그런가 그런가. 어디에서 스타트를 끊었는가, 같은 이야기는 아무도 모르나보네요.
팽조라는 신선 ? 전욱의 후손인 쪽은 있었는데
하북팽가같은 하북에서 무가를 이루고 크게 성장한 가문은 없었다는 느낌이네
없어 없어 메이드 인 코리아 ! (?)
아무래도 만들어지고 쓰이면서 누가 골라서 넣은거일테니까...
하북팽가말고 다른 팽가는 다른 곳에서도 쓰였겠지만
아마 하북에 팽가가 있다는 건 메이드 인 코리아가 맞을거야 (곰곰)
국산 세가. 즉 애용해야만. (?)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32:12
일초식一招式 오호출도五虎出到
도에 범의 웅장함을 깃들인다.
도기가 칼날을 스치는 소리는 마치 호랑이의 울음소리와 같고,
칼을 쥐는 것만으로 상대의 기파를 압도하는 웅장함이 허공을 스친다.
도기刀氣라고도 부를 수 있을, 도의 절삭력과 힘을 늘리는 기본식.
팽소영은 복마군심절로 허공의 마기를 운용해,
도가 낼 수 있는 힘을 엄청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칠초식七招式 무중유돌霧衆流突
무구한 안개속에서 범의 소리가 몰아친다.
각기 다른 속도와 각기 다른 박자가 범의 움직임처럼 칼날을 타고 흐르며
한 마리의 범이 내리치는 칼날을 막는다고 해도 네마리의 범이 남았으니,
말 그대로 안개속을 헤매는 것처럼 상대는 그 호흡을 꿰뚫어보기 어렵다.
쌍도雙刀로 오호단문도를 펼치는 팽소영의 무중유돌은
그 복잡함이 한 자루 도로 펼치는 팽가의 오호단문도보다도 난해할 정도.
십팔초식十八招式 전박자여剪朴自如
먹이의 호흡이 흐트러지는 틈을 파고들어 앞발이 나아간다.
한 가지 박자에서 다른 박자로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워질 때에서야,
오호단문도의 칼날은 상대의 박자를 파훼하며 표표히 흐르리.
팽가의 표현으로 하자면 상승의 경지에 이르름을 분간하는 초식.
대단히 변화무쌍하게 운용되며 상대의 간합을 쪼개는 용도로 사용된다.
삼십구초식三十九招式 복상승호覆狀昇號
먹잇감의 목을 조르며 올라타는 범의 기세를 보인다.
상대의 박자를 얽어맸을 때 무중유돌에서 복상승호의 초식으로 변형하며
그대로 간합을 주도하는 기세를 얻은 채 상대를 압박한다.
단번에 상대를 수세로 몰리게 하는 칼날은
한 번의 휘두름에 셋 이상의 범이 적을 향해 울부짖는 것처럼 포효하며
상대가 공세로 전환하고자 하는 시도를 끊어낼 정도로 맹렬한 느낌.
팽소영이 다루는 경력은 복상승호에 들어서는 순간
상대의 병기를 곧장 부러트리고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보인다.
오십팔초식五十八招式
육십사초식六十四招式 오호단문五虎斷門
각기 다른 방위, 다른 박자, 다른 경력을 실고 범이 일수에 몰아친다.
상대의 방위를 허락치 않는 맹렬하기 짝이 없는 도기의 연쇄.
하나 하나가 급소를 물어채고, 근육을 끊고, 뼈를 부수는 패도적인 경력.
팽가 오호단문도의 오의로서 상대를 죽이는 필살의 초식이 바로 오호단문이다.
현재 초식 쓰는 중인데 하나로 뭘 더 넣을지 고민 중
(고민)
도기를 넣었고, 연격을 넣었고, 상대의 초식을 간파하는 걸 넣었고,
연격을 강렬하게 하는 걸 넣었고, 오의도 넣었고, 뭘 더 넣어야 하지 ? (고민)
소림 색채를 살짝 가미한 이름은 어때요?
근데 여기서는 팽가 가전도법으로 넣은거라서 (?)
방어와 틈 밀기에 좀 더 치중한 초식을 넣을까...
천하공부출소림이라고도 하고,
오호단문도 자체가 원래는 소림 거였다고 했으니까.
설정상으로는 안 그렇다고는 해도,
소림 색채를 살짝 가미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아니면 허초 속에 살초를 담은 초식이라든가?
살기가 극도로 절제切除된, 왜 오호단문도의 초식인지 모를 것 같은 정적인 초식.
그러나 극도의 살의가 담긴 극한의 살초.
마치 호랑이가 소리 없이 사냥감에 접근해 그 목을 물어 부러뜨리는 것처럼,
그 초식은 매우 고요하고, 소리 없이, 의미 없는 것처럼 이루어진다.
호오호오 범의 아가리가 소리없이 짐승의 목을 물어채는, 일소풍생一消風生
이 초식을 배우는 자들은 항상 이렇게 반문한다.
오호단문도에 왜 이렇게 의미없는 초식이 존재하는가?
그들이 생각하기에, 오호단문도는 매우 패도적인 도법이다.
그리고 이 초식은 그 본의를 깨닫기 전엔 위력도 매우 약하다 :
이 초식에는 살의를 담되, 살기를 담지 말아야 하는데.
팽가 가전무공의 도해가 적혀있는 책에서조차 이를 설명하지 않고,
다만 살기를 완전히 무화無化시켜야 한다고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팽가의 후예들은 대부분 호쾌하고 사나운 성격이기 때문에,
이런 '재미 없어보이고 호쾌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다 의미도 없는' 초식을 배우려 시간을 낭비하려 들지 않는다.
때문에 절정에 도달한 팽가의 도객조차도 이 초식의 진의를 깨닫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초에 배울 생각조차 안 하니까.
단순한 무화...
오호단문과 표류무상이 뒤섞이는 것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나중에 써먹어야지)(메모메모)
뭐, 절정에 도달한 자의 통찰력이라면 이 초식을 익히는 순간 본의를 깨달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절정에 도달하기 전에 쓸모 없는 초식이라고 생각해서 던져버린 초식을,
굳이 다시 곱씹으면서 본의를 깨달으려 노력하는 별종은 거의 없다.
라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어떤가요? 괜찮았으려나?
뭔가 오호단문도 답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하지만 그 진의를 깨달으면 너무나도 오호단문도 다운 초식,
을 생각하고 싶었거든요.
호우호우
좋아보였어 !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오호단문도뿐만이 아니라 만든 이에게 연계해서
팽가의 다른 가전도법과도 연계되는 느낌이라던가 떠올렸다 (끄적끄적)
오호단문도...
범 다섯마리가 내달릴 때 본디 공격하는 것은
다섯마리 모두가 아니라 두세마리가 번갈아가며 때린다는 점에서 착안된 도법...
혼원벽력도나 표류무상도...흠...팽가는 도법이 참 많네 !
그러고 보니 혼원벽력도도 팽가의 대표적인 무공 중 하나였죠. 표류무상도는 처음 듣는다.
비뢰도에 나오는 거였을걸 -
다섯 마리 호랑이가 내달리며 생문을 끊는 오호단문도에서
정처없이 허공을 누비며 상대의 멱을 끊는 표류무상도의 시대로 넘어갔다던가 (곰곰)
아 아니다 다른 쪽이었나 ? 기억이 안 나는...이건 패스 - !
혼원벽력도를 생각해봐야지
벽력이란 천치만물의 간극으로부터 발생하는 부조화의 힘.
혼원 속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충돌로 인한 반발력.
그렇기 때문에 그 힘은 천지만물의 질서를 찢어발기고 불태울만큼 위력적이다.
절정의 도객이 구사하는 필사의 혼원벽력도는 시간마저 찢어발길지도 모른다.
같은 소리가 갑자기 생각났다.
혼원벽력 혼원벽력
무림서부에서도 나왔었지 -
혼원벽력도는, 혼원벽력심법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몸을 하나의 혼원으로 만든다.
몸 안에서 수만 갈래 진기의 격류가 끝없이 뒤섞이고, 충돌하고, 반발하여.
미증유의 힘을 끝없이 생산하도록 만드는 비인非人의 무공.
그것이 혼원벽력도이며, 혼원벽력심법이다.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그러한 현상을 견디기란 매우 어렵다.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혼원벽력심법은 우선 팽가의 무인의 내, 외부를 단련한다.
내부의 진기가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손상되지 않는 강인하고, 굴강한 육신으로 만든다.
적에게서 몸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무인 자신의 진기에게서 몸을 지키기 위해.
기본적으로 몸에서 자꾸 진기의 충돌을 일으켜서 몸 내부를 단련하고
몸이 그 진기의 충돌에 손상되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입문할 수 있는 정신나간 무공
이라는 발상
엄청나게 강해보이는 설명 !
이런 건 어떠려나. 괜찮을까요? 아니면 너무 전제 조건이 혹독하려나? 굳이 '혼원'벽력도라고 하는 이유를 고민해봤는데.
입문이 어려워보여 (?) 뭔가 초절정의 무인들이 사용할 후반 설명같은 느낌. 후반부에 써먹어야지 (메모메모)
그렇다면 혼원벽력도의 후반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제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라는 게 되려나요?
그럴지도 -
현재 쓰고 있는 재수생 아포칼립스가 끝나고
소설로 3테라바이트의 세계도 연재하고 나면 무협 소설을 쓸 생각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 전에도 혼원벽력도를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은데 그건 형을 흉내내는 것 뿐이고
진짜 혼원벽력도는 몸이 완성되고 나서야 사용할 수 있고, 절정 이전에 사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
같은 게 되려나?
절정의 영역, 인간의 최상승에 선 자들만이 입문할 수 있는 도법 혼원벽력도.
혼원混元이란 즉 선천先天이다.
타고난 것, 나기 전에 정해진 것, 가장 시작에 서는 것.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형상, 태극도 도야하지 않는 일체의 모습.
때문에 혼원의 기를 다룬다는 것은,
외부의 기보다도 스스로의 기를 증진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난다면 그건 혼원벽력심법이 아닌 혼원심법이다.
세상에 넘쳐나는 선천진기를 운용하는 심법과 다를 바가 없고,
그 마음 공부를 만들어낸 이들이 얼마나 혼원을 탐구했는지에 따라 달리될 뿐인,
발전이 오로지 조사에게만 달려있는 심법이 탄생할 뿐이라는 것이다.
허나 팽가의 혼원벽력심법은 달랐다.
그들이 혼원을 만든 것은 오로지 그 혼원이 깨부숴지는 순간을 위해서니까.
일류의 영역에 도달하기 전까지 팽가의 직계들은
어떠한 다른 심법도 익히지 않는다.
오로지 선천공이다.
오로지 외문만을 수련하고 마음을 맑게 하는 법을 배우며,
스스로의 몸 안에 과도한 수련도, 과도한 운기도 쌓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수련을 통해 자연스레 일류의 영역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스스로의 단전에 쌓인 선천기를 운공하기 시작한다.
어떠한 축기도 남겨두지 않고, 하나의 무리로서 회전하도록.
그리고 그렇게 회전하는 혼원기는
세월이 지나고, 수천번의 해와 별이 지고 뜨고,
무인의 땀이 피가 되어 흐르는 그 순간이 지나도 쉽사리 하나가 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혼원을 만든다는 것부터가 '회생廻生'의 영역에 속하는 바.
아무리 선천을 갈고 닦는다 해도 무리다.
어찌 이미 분간된 것을 분간되지 않게 만든단 말인가 ?
일류의 영역에 속한 고수들이 몇명이고 포기하고 오호단문도에 달려가는 것은,
팽가의 절정고수들이 오호단문도에 더욱 더 치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허나 그럼에도 혼원기가 하나가 되는 순간은 온다.
해가 달이 되고, 달이 해가 되고.
불이 그치고, 물이 마르는 순간에.
무인의 우직한 노력이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때에
혼원은 이글거리는 진기의 번갯불을 실고 옮기고 회전하다가
이내 그 스스로가 벼락과 같은 일체一體가 되고.
그때에서야 무인은 스스로가 무엇을 단련하고 있는지를,
어째서 혼원벽력심법이 혼원이며 벽력인 진기를 다루는 심법인지를 알게 된다.
벼락이 치는 것이다.
스스로의 안에서.
만들어진 혼원이 다시 한 번 분간되며,
스스로의 정과 기와 신이 일체가 되는 것을 느끼고,
한 걸음 앞에 인간의 너머, 시조 팽조가 걸어갔다는 등선의 길이 있음을 알며.
그리고 그 앞에서 가로막듯이, 혼원을 깨부수며 벽력이 내리치는 것을 본다.
세상 만물, 천지가 교태하며 일심이 법칙을 넘어서는 순간을.
―――그것이 바로 혼원벽력混元壁靂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로,
절정의 영역에 도달하는 혼원벽력도混元壁靂刀다.
마음의 천지天地를 개벽開闢하는 일심의 번개.
절정의 끝무리에 서는 자들만이 입문할 수 있는,
최상승의 도법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것이, 팽가의 무인들중 오로지 소수의 직계만이,
절정에 달하지 않는 이들은 혼원벽력도를 따라할 수 조차 없는 이유다.
라는 느낌 ! 어때 ?
엄청 좋다고 생각해요!
뭔가 혼원벽력도에 입문하는 순간이
그 팽가 무인의 내면에서 천지가 개벽하는 순간이라는 느낌?
입문 조건이 절정이라는 머리 이상한 무공인 이유,
도 아주 잘 납득되는 것 같고 (쓰담쓰담)
일도 일도가 생사를 생각치 않는 것처럼 광오한 도기를 휘두르지만
그에 뒤따르는 벼락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건 생사를 생각치 않는 것이 아니라
생사를 고려하지 않아도 상대가 넘어설 수 없음을 아는 자신감이라는 걸.
라는 패도의 도법 !
그야말로 이상적인 패도의 도법 (끄덕끄덕)
역시 국산 세가 (?) 성능 확실하네요 (?)
그리고 마츄리는 역시 무협을 좋아하고,
무협적인 발상을 잘 한다는 느낌.
본디 혼원이 만들어지는 순간은 여러번 찾아오지만
자연의 규칙에 따라 단전 속의 혼원조차도 태극, 삼재, 사상으로 나뉘며
그 연결을 계속 하지 못 하고 다시 한 번 쪼개진다.
때문에 팽가의 무인이 절정에 이르는 방법은
그 연결을 스스로의 의지로 찢어발기는 것.
그로서 스스로의 무학에 체적화되는 육체는 만들어지고,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기틀조차도 스스로 준비하게 된다.
극한의 순간에 도달했을 때,
무의식의 한 수로서 혼원벽력도를 내지르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체화되지 않고 흩어져 다시 선천이 되니
하늘사다리를 스스로의 손으로 찢어발긴 자만이
혼원벽력도에 입문할 수 있으리라. 라거나?
어쩌면 오호단문도의 일소풍생一消風生이
혼원벽력심법의 입문을 위해 준비된 준비식이었을지도 몰라 (?)
어떤 맥락에서? (갸웃)
살기를 죽이고 살의만을 담는다.
다섯마리의 범이 도신의 위에서 움직이는 순간에조차
하나된 기류를 긁어모으는 일심一心은, 그를 위해서 준비된 것이다.
라는 느낌으로 ?
살기를 죽이고 살의만을 담는다.
이는 기보다 우선하는 뜻을 세우기 위한 깨달음을 위한 무공.
천지만물混元을 의意만으로 박살내야만 입문할 수 있는 무공을 위한 기틀.
혼원벽력도를 다듬는 중
흠...아니지 혼원벽력도는 차라리...
도법이되 초식이 없는 도법으로 할까...
절정에 도달해야 입문할 수 있는 무공, 혼원벽력도.
아니, 혼원벽력신공.이면 굳이 도법일 이유가 없나 (고민)
혼원벽력도란 그 혼원벽력신공에 도달해서야 만들어지는 마음의 칼
굳이 도의 형상인 이유는 뭘까요. 그냥 팽가라서 도법만 써서 그런가?
마음의 칼이 도의 형상을 취하는 것은
마음의 번개는 오로지 일도一度로만 내리치니까.
단 한 방향만으로 나아가는 번개에 양날은 필요치 않았던거야.
설득력 있네요! (끄덕끄덕)
양날이면 자기한테도 쳐서 자기한테도 맞는다는 선조들의 지혜 (?)
(깨달음) (절정에 도달한다(?))
히에엑 ! 이 몸은 아직 삼류인데 !
태음월야신공이 대성에 이르렀다 (적당)
태음이 들어가는 멋진 무공 이름 (고민)
선천을 멸각하고 후천을 열어라.
옛 하늘을 멸하고 새로운 하늘이 되는 것,
그것이아말로 등선으로의 길登仙之路이니...
태음귀진신공 (아님)
무공이란, 본래 사람이 사람에 맞서 싸우기 위해.
그리고 사람이 동물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무공의 본질은 투쟁이다.
사람에 대한 투쟁.
맹수에 대한 투쟁.
자연에 대한 투쟁.
그리고.
하늘에 대한 투쟁.
이 몸이 생각한 천마신공같은 말을...
그리고 또한, 무공은 궁극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에, 맹수에, 자연에, 하늘에 맞서 싸워 이기려 드는 것은.
생존권을, 그리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장받기 위함이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무공이 ■■을 지향하는 이유.
모든 무공이 궁극적으로 절대성絕對性에 맞서기 위하기 위한 그 무엇의 형태를 띠는 이유.
무공의 궁극에 도달할 때, 무인은 선택한다.
절대성에 맞서기 위한 또 다른 절대성神을 빚어낼지.
절대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무질서의 칼날易天을 벼려낼지.
보다 불완전하지만 더 큰 것自然으로 절대성을 압도할지.
세상 대 인간으로 싸우기 위한 그 선택을, 우리는 ■■이라 부른다.
S : 오호단문도의 비전초식 같은 경우는 두근거리는 부분이 있네.
다만 알기 어렵다 한들 정말 사양될 것인가. 는 모르겠다.
경지가 높아지면 벽에 조우하기 마련이고, 벽에 조우하게 되면 공부를 돌이켜보기 마련이니.
의미없어 보이는 초식이라도 언젠가 발굴될 테고, 한 번 발굴되면 좀 더 명확히 정보가 풀리지 않으려나?
사실 '누가 가르쳐주면 오히려 그 진의가 훼손되는' 타입이라고 묘사하고 싶었는데.
말하다 보니 흐름상 그걸 언급할 타이밍이 안 나와서 못 했어요 (두둥)
S: 뭐, 이런건 이유를 만들기 나름이니까.
왕귀형 초식. 입문 시점과 완숙 시점의 낙차와 시차가 큰 초식이 사양되었으나.
사실은 매우 완성도가 높았다. 같은 발상. 좋다고 생각해.
굳이 팽가 무공 도해본쪽에도 묘사 안 되어있는 것도 그래서고,
그걸 깨달은 소수의 인원이 말해주지 않는 것도 그래서고?
대충 그렇게 생각했었네요.
S: 벽력에 대한 정의. 이건 중요한 파트 같네.
마츄리의 설명에서는 생략된 부분인데, 기저에 깔려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그 후반부의 경우는 마츄리의 디자인과 다소 차이가 있어보인다.
마츄리 쪽이 좀 더 안정적인 느낌.
마츄리는 혼원을 선천력. 순정으로 정제된 기운. 태극 이전의 다소 불안정한 속성을 지닌 하나 라는 이미지라면.
다희가 처음 언급한 혼원은 말 그대로 탁류. 온갖 기운의 이합집산이 뒤섞여서 상호작용중인 화약고 라는 느낌.
(끄덕끄덕) 저도 그런 차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말하는 혼원은 천지만물이 하나가 되어 뒤섞인 극한의 무질서, 라는 느낌이니까.
그러니까 이쪽은 서양의 케이아스 개념에 좀 더 가깝다는 느낌이려나?
마츄리는 좀 더 본연의 혼연의 개념에 가깝다는 느낌이고.
S: 뭐, 동일한 혼원인데 묘사 내지는 연출의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혼원이란 태초 이전의 혼돈이며, 모든 것이 뒤섞여있던 이합집산의 무질서.
그 안에서는 서로 조화되지도, 융화되지도 않는 힘들이 뒤섞이고 마찰한다.
이렇게 끝없이 발생하는 무질서한 반발력이야말로 벽력, 혼원벽력도의 힘.
이라는 게 제 버전의 혼원벽력도.
마츄리의 혼원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매개기 좀 다르다는 느낌?
마츄리는 혼원의 상태를 아무 심법도 익히지 않은 선천공의 상태라고 정의헀고.
아니, 좀 깊게 들어가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먀츄 !
혼원은 말하자면 혼돈의 상태가 맞아 !
다만 혼돈으로 묘사하기에는 사람이 빚는 혼원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
그런가 그런가!
그 부분이 처음 묘사한
가장 첫 조사가 정의한 혼원에 따라
심법의 심오함이 결정된다, 의 얘기인 것 !
첫 조사가 혼원을 어떻게 결정하는지에 따라 심법의 경로가 달라지는 것과
혼원이 어떻게 만들어지더라도 혼원이 갈라지는 순간을 빚어내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까 -
좀 더 유사 물리학적으로 접근해서
혼원은 빅뱅 이전의 상태를 말하고
개벽은 빅뱅 그 자체를 말하는데
여기에서 '제가 생각하는 혼원'은
불안정하고 언제든지 개벽할 수 있는 무언가.
빅뱅 에너지가 끝없이 흘러넘치는 하나의 점.
사람의 몸에 삼라만상이 깃든 특이점=혼원 속에서
맞지 않는 기가 서로 이합집산하며 각종 반발과 마찰을 일으키고
그 이합집산 속에서 발생하는 부조화의 번개, 빅뱅 에너지=벽력
그것을 버틸 수 있는 강인하고 굴강한 육신으로,
그 힘을 빡으로 초래하여 쥔 도에 깃들게 하는 대충 그런
무한영구기관 같은 느낌
그래서 이쪽의 혼원은 완벽하지 않고 불안정하며
끝없이 개벽하려고 하고 있는데, 혼원체는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그 개벽을 위한 힘을 몸 외부로 꺼내 휘두르는 것이 혼원벽력도고.
대충 그런 느낌낌
마츄마츄
마도의 마기로 빚는 혼원과 정도의 진기로 빚는 혼원은 다르다는 느낌으로 해서
첫 조사의 연구와 정의마다 달라진다고 생각하는거야
뭐 결국 혼원은 누구의 생각이 어떻게 정의했느냐로 결정된다로 설정한 것 -
(끄덕끄덕)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이건 태음신녀의 혼원벽력신공도해이고
마츄리가 만든 건 천마의 혼원벽력신공도해겠죠?
그렇겠지 - 아마 ? 두 !
입문하다 몸이 터져 죽어버릴 수도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태음신녀도해본
뭔지 잘 몰?루겠으면 절정이나 되고 와라 애송이라고 적혀있는 천마도해본
S: 혼원을 안정된 원초의 하나로 정제하여,
벽력으로 이를 부숨으로서 만변하는 세계를 창생한다.
그리 아스라진 세계를 다시금 정제하고, 벽력으로 이를 부수는 순환을 일굼이
스피카미 혼원벽력신공의 도해다.
사실 다희님의 혼원도해랑 스피카미의 혼원도해를 합친 게
절정 너머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봤다 이 몸은.
벼락 하나를 일궈내고 다시 한 번 순환하여
수십, 수백, 수천의 벼락을 일궈 마음 그 자체를 벼락을 바꿔
혼원벽력도의 다음 영역으로 나아간다, 라는 느낌으로.
도전하기에는 난이도 높아 !
아니면 절정 이상의 경지로 넘어갈 때,
또 다시 정체성이 변하는 무공, 이라거나,
근본심상을 벼락에서 개벽으로 바꾸는 거죠.
마음이 법칙을 집어삼키고 현현할 때 초인의 영역에 도달한다.
혼원벽력도의 진화체...하늘과 땅을 이으며 내리치는 벽력의 칼날...
그리고 그 이후에 있는 절대자의 영역...흠...역시 길구나
혼원개벽검.
아니, 검이래. 혼원개벽도. 혼원개벽신공.
초절정에 오르기 위해 벽력을 버리고
개벽의 심상을 그 도에 담아냄으로서 초절정에 도달한 자가 있다면
그 무공을 저런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도에 범의 웅장함을 깃들인다.
도기가 칼날을 스치는 소리는 마치 호랑이의 울음소리와 같고,
칼을 쥐는 것만으로 상대의 기파를 압도하는 웅장함이 허공을 스친다.
도기刀氣라고도 부를 수 있을, 도의 절삭력과 힘을 늘리는 기본식.
팽소영은 복마군심절로 허공의 마기를 운용해,
도가 낼 수 있는 힘을 엄청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칠초식七招式 무중유돌霧衆流突
무구한 안개속에서 범의 소리가 몰아친다.
각기 다른 속도와 각기 다른 박자가 범의 움직임처럼 칼날을 타고 흐르며
한 마리의 범이 내리치는 칼날을 막는다고 해도 네마리의 범이 남았으니,
말 그대로 안개속을 헤매는 것처럼 상대는 그 호흡을 꿰뚫어보기 어렵다.
쌍도雙刀로 오호단문도를 펼치는 팽소영의 무중유돌은
그 복잡함이 한 자루 도로 펼치는 팽가의 오호단문도보다도 난해할 정도.
십팔초식十八招式 전박자여剪朴自如
먹이의 호흡이 흐트러지는 틈을 파고들어 앞발이 나아간다.
한 가지 박자에서 다른 박자로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워질 때에서야,
오호단문도의 칼날은 상대의 박자를 파훼하며 표표히 흐르리.
팽가의 표현으로 하자면 상승의 경지에 이르름을 분간하는 초식.
대단히 변화무쌍하게 운용되며 상대의 간합을 쪼개는 용도로 사용된다.
삼십구초식三十九招式 복상승호覆狀昇號
먹잇감의 목을 조르며 올라타는 범의 기세를 보인다.
상대의 박자를 얽어맸을 때 무중유돌에서 복상승호의 초식으로 변형하며
그대로 간합을 주도하는 기세를 얻은 채 상대를 압박한다.
단번에 상대를 수세로 몰리게 하는 칼날은
한 번의 휘두름에 셋 이상의 범이 적을 향해 울부짖는 것처럼 포효하며
상대가 공세로 전환하고자 하는 시도를 끊어낼 정도로 맹렬한 느낌.
팽소영이 다루는 경력은 복상승호에 들어서는 순간
상대의 병기를 곧장 부러트리고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보인다.
오십팔초식五十八招式
육십사초식六十四招式 오호단문五虎斷門
각기 다른 방위, 다른 박자, 다른 경력을 실고 범이 일수에 몰아친다.
상대의 방위를 허락치 않는 맹렬하기 짝이 없는 도기의 연쇄.
하나 하나가 급소를 물어채고, 근육을 끊고, 뼈를 부수는 패도적인 경력.
팽가 오호단문도의 오의로서 상대를 죽이는 필살의 초식이 바로 오호단문이다.
현재 초식 쓰는 중인데 하나로 뭘 더 넣을지 고민 중
(고민)
도기를 넣었고, 연격을 넣었고, 상대의 초식을 간파하는 걸 넣었고,
연격을 강렬하게 하는 걸 넣었고, 오의도 넣었고, 뭘 더 넣어야 하지 ? (고민)
소림 색채를 살짝 가미한 이름은 어때요?
근데 여기서는 팽가 가전도법으로 넣은거라서 (?)
방어와 틈 밀기에 좀 더 치중한 초식을 넣을까...
천하공부출소림이라고도 하고,
오호단문도 자체가 원래는 소림 거였다고 했으니까.
설정상으로는 안 그렇다고는 해도,
소림 색채를 살짝 가미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아니면 허초 속에 살초를 담은 초식이라든가?
살기가 극도로 절제切除된, 왜 오호단문도의 초식인지 모를 것 같은 정적인 초식.
그러나 극도의 살의가 담긴 극한의 살초.
마치 호랑이가 소리 없이 사냥감에 접근해 그 목을 물어 부러뜨리는 것처럼,
그 초식은 매우 고요하고, 소리 없이, 의미 없는 것처럼 이루어진다.
호오호오 범의 아가리가 소리없이 짐승의 목을 물어채는, 일소풍생一消風生
이 초식을 배우는 자들은 항상 이렇게 반문한다.
오호단문도에 왜 이렇게 의미없는 초식이 존재하는가?
그들이 생각하기에, 오호단문도는 매우 패도적인 도법이다.
그리고 이 초식은 그 본의를 깨닫기 전엔 위력도 매우 약하다 :
이 초식에는 살의를 담되, 살기를 담지 말아야 하는데.
팽가 가전무공의 도해가 적혀있는 책에서조차 이를 설명하지 않고,
다만 살기를 완전히 무화無化시켜야 한다고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팽가의 후예들은 대부분 호쾌하고 사나운 성격이기 때문에,
이런 '재미 없어보이고 호쾌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다 의미도 없는' 초식을 배우려 시간을 낭비하려 들지 않는다.
때문에 절정에 도달한 팽가의 도객조차도 이 초식의 진의를 깨닫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초에 배울 생각조차 안 하니까.
단순한 무화...
오호단문과 표류무상이 뒤섞이는 것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나중에 써먹어야지)(메모메모)
뭐, 절정에 도달한 자의 통찰력이라면 이 초식을 익히는 순간 본의를 깨달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절정에 도달하기 전에 쓸모 없는 초식이라고 생각해서 던져버린 초식을,
굳이 다시 곱씹으면서 본의를 깨달으려 노력하는 별종은 거의 없다.
라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어떤가요? 괜찮았으려나?
뭔가 오호단문도 답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하지만 그 진의를 깨달으면 너무나도 오호단문도 다운 초식,
을 생각하고 싶었거든요.
호우호우
좋아보였어 !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오호단문도뿐만이 아니라 만든 이에게 연계해서
팽가의 다른 가전도법과도 연계되는 느낌이라던가 떠올렸다 (끄적끄적)
오호단문도...
범 다섯마리가 내달릴 때 본디 공격하는 것은
다섯마리 모두가 아니라 두세마리가 번갈아가며 때린다는 점에서 착안된 도법...
혼원벽력도나 표류무상도...흠...팽가는 도법이 참 많네 !
그러고 보니 혼원벽력도도 팽가의 대표적인 무공 중 하나였죠. 표류무상도는 처음 듣는다.
비뢰도에 나오는 거였을걸 -
다섯 마리 호랑이가 내달리며 생문을 끊는 오호단문도에서
정처없이 허공을 누비며 상대의 멱을 끊는 표류무상도의 시대로 넘어갔다던가 (곰곰)
아 아니다 다른 쪽이었나 ? 기억이 안 나는...이건 패스 - !
혼원벽력도를 생각해봐야지
벽력이란 천치만물의 간극으로부터 발생하는 부조화의 힘.
혼원 속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충돌로 인한 반발력.
그렇기 때문에 그 힘은 천지만물의 질서를 찢어발기고 불태울만큼 위력적이다.
절정의 도객이 구사하는 필사의 혼원벽력도는 시간마저 찢어발길지도 모른다.
같은 소리가 갑자기 생각났다.
혼원벽력 혼원벽력
무림서부에서도 나왔었지 -
혼원벽력도는, 혼원벽력심법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몸을 하나의 혼원으로 만든다.
몸 안에서 수만 갈래 진기의 격류가 끝없이 뒤섞이고, 충돌하고, 반발하여.
미증유의 힘을 끝없이 생산하도록 만드는 비인非人의 무공.
그것이 혼원벽력도이며, 혼원벽력심법이다.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그러한 현상을 견디기란 매우 어렵다.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혼원벽력심법은 우선 팽가의 무인의 내, 외부를 단련한다.
내부의 진기가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손상되지 않는 강인하고, 굴강한 육신으로 만든다.
적에게서 몸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무인 자신의 진기에게서 몸을 지키기 위해.
기본적으로 몸에서 자꾸 진기의 충돌을 일으켜서 몸 내부를 단련하고
몸이 그 진기의 충돌에 손상되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입문할 수 있는 정신나간 무공
이라는 발상
엄청나게 강해보이는 설명 !
이런 건 어떠려나. 괜찮을까요? 아니면 너무 전제 조건이 혹독하려나? 굳이 '혼원'벽력도라고 하는 이유를 고민해봤는데.
입문이 어려워보여 (?) 뭔가 초절정의 무인들이 사용할 후반 설명같은 느낌. 후반부에 써먹어야지 (메모메모)
그렇다면 혼원벽력도의 후반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제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라는 게 되려나요?
그럴지도 -
현재 쓰고 있는 재수생 아포칼립스가 끝나고
소설로 3테라바이트의 세계도 연재하고 나면 무협 소설을 쓸 생각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 전에도 혼원벽력도를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은데 그건 형을 흉내내는 것 뿐이고
진짜 혼원벽력도는 몸이 완성되고 나서야 사용할 수 있고, 절정 이전에 사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
같은 게 되려나?
절정의 영역, 인간의 최상승에 선 자들만이 입문할 수 있는 도법 혼원벽력도.
혼원混元이란 즉 선천先天이다.
타고난 것, 나기 전에 정해진 것, 가장 시작에 서는 것.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형상, 태극도 도야하지 않는 일체의 모습.
때문에 혼원의 기를 다룬다는 것은,
외부의 기보다도 스스로의 기를 증진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난다면 그건 혼원벽력심법이 아닌 혼원심법이다.
세상에 넘쳐나는 선천진기를 운용하는 심법과 다를 바가 없고,
그 마음 공부를 만들어낸 이들이 얼마나 혼원을 탐구했는지에 따라 달리될 뿐인,
발전이 오로지 조사에게만 달려있는 심법이 탄생할 뿐이라는 것이다.
허나 팽가의 혼원벽력심법은 달랐다.
그들이 혼원을 만든 것은 오로지 그 혼원이 깨부숴지는 순간을 위해서니까.
일류의 영역에 도달하기 전까지 팽가의 직계들은
어떠한 다른 심법도 익히지 않는다.
오로지 선천공이다.
오로지 외문만을 수련하고 마음을 맑게 하는 법을 배우며,
스스로의 몸 안에 과도한 수련도, 과도한 운기도 쌓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수련을 통해 자연스레 일류의 영역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스스로의 단전에 쌓인 선천기를 운공하기 시작한다.
어떠한 축기도 남겨두지 않고, 하나의 무리로서 회전하도록.
그리고 그렇게 회전하는 혼원기는
세월이 지나고, 수천번의 해와 별이 지고 뜨고,
무인의 땀이 피가 되어 흐르는 그 순간이 지나도 쉽사리 하나가 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혼원을 만든다는 것부터가 '회생廻生'의 영역에 속하는 바.
아무리 선천을 갈고 닦는다 해도 무리다.
어찌 이미 분간된 것을 분간되지 않게 만든단 말인가 ?
일류의 영역에 속한 고수들이 몇명이고 포기하고 오호단문도에 달려가는 것은,
팽가의 절정고수들이 오호단문도에 더욱 더 치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허나 그럼에도 혼원기가 하나가 되는 순간은 온다.
해가 달이 되고, 달이 해가 되고.
불이 그치고, 물이 마르는 순간에.
무인의 우직한 노력이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때에
혼원은 이글거리는 진기의 번갯불을 실고 옮기고 회전하다가
이내 그 스스로가 벼락과 같은 일체一體가 되고.
그때에서야 무인은 스스로가 무엇을 단련하고 있는지를,
어째서 혼원벽력심법이 혼원이며 벽력인 진기를 다루는 심법인지를 알게 된다.
벼락이 치는 것이다.
스스로의 안에서.
만들어진 혼원이 다시 한 번 분간되며,
스스로의 정과 기와 신이 일체가 되는 것을 느끼고,
한 걸음 앞에 인간의 너머, 시조 팽조가 걸어갔다는 등선의 길이 있음을 알며.
그리고 그 앞에서 가로막듯이, 혼원을 깨부수며 벽력이 내리치는 것을 본다.
세상 만물, 천지가 교태하며 일심이 법칙을 넘어서는 순간을.
―――그것이 바로 혼원벽력混元壁靂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로,
절정의 영역에 도달하는 혼원벽력도混元壁靂刀다.
마음의 천지天地를 개벽開闢하는 일심의 번개.
절정의 끝무리에 서는 자들만이 입문할 수 있는,
최상승의 도법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것이, 팽가의 무인들중 오로지 소수의 직계만이,
절정에 달하지 않는 이들은 혼원벽력도를 따라할 수 조차 없는 이유다.
라는 느낌 ! 어때 ?
엄청 좋다고 생각해요!
뭔가 혼원벽력도에 입문하는 순간이
그 팽가 무인의 내면에서 천지가 개벽하는 순간이라는 느낌?
입문 조건이 절정이라는 머리 이상한 무공인 이유,
도 아주 잘 납득되는 것 같고 (쓰담쓰담)
일도 일도가 생사를 생각치 않는 것처럼 광오한 도기를 휘두르지만
그에 뒤따르는 벼락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건 생사를 생각치 않는 것이 아니라
생사를 고려하지 않아도 상대가 넘어설 수 없음을 아는 자신감이라는 걸.
라는 패도의 도법 !
그야말로 이상적인 패도의 도법 (끄덕끄덕)
역시 국산 세가 (?) 성능 확실하네요 (?)
그리고 마츄리는 역시 무협을 좋아하고,
무협적인 발상을 잘 한다는 느낌.
본디 혼원이 만들어지는 순간은 여러번 찾아오지만
자연의 규칙에 따라 단전 속의 혼원조차도 태극, 삼재, 사상으로 나뉘며
그 연결을 계속 하지 못 하고 다시 한 번 쪼개진다.
때문에 팽가의 무인이 절정에 이르는 방법은
그 연결을 스스로의 의지로 찢어발기는 것.
그로서 스스로의 무학에 체적화되는 육체는 만들어지고,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기틀조차도 스스로 준비하게 된다.
극한의 순간에 도달했을 때,
무의식의 한 수로서 혼원벽력도를 내지르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체화되지 않고 흩어져 다시 선천이 되니
하늘사다리를 스스로의 손으로 찢어발긴 자만이
혼원벽력도에 입문할 수 있으리라. 라거나?
어쩌면 오호단문도의 일소풍생一消風生이
혼원벽력심법의 입문을 위해 준비된 준비식이었을지도 몰라 (?)
어떤 맥락에서? (갸웃)
살기를 죽이고 살의만을 담는다.
다섯마리의 범이 도신의 위에서 움직이는 순간에조차
하나된 기류를 긁어모으는 일심一心은, 그를 위해서 준비된 것이다.
라는 느낌으로 ?
살기를 죽이고 살의만을 담는다.
이는 기보다 우선하는 뜻을 세우기 위한 깨달음을 위한 무공.
천지만물混元을 의意만으로 박살내야만 입문할 수 있는 무공을 위한 기틀.
혼원벽력도를 다듬는 중
흠...아니지 혼원벽력도는 차라리...
도법이되 초식이 없는 도법으로 할까...
절정에 도달해야 입문할 수 있는 무공, 혼원벽력도.
아니, 혼원벽력신공.이면 굳이 도법일 이유가 없나 (고민)
혼원벽력도란 그 혼원벽력신공에 도달해서야 만들어지는 마음의 칼
굳이 도의 형상인 이유는 뭘까요. 그냥 팽가라서 도법만 써서 그런가?
마음의 칼이 도의 형상을 취하는 것은
마음의 번개는 오로지 일도一度로만 내리치니까.
단 한 방향만으로 나아가는 번개에 양날은 필요치 않았던거야.
설득력 있네요! (끄덕끄덕)
양날이면 자기한테도 쳐서 자기한테도 맞는다는 선조들의 지혜 (?)
(깨달음) (절정에 도달한다(?))
히에엑 ! 이 몸은 아직 삼류인데 !
태음월야신공이 대성에 이르렀다 (적당)
태음이 들어가는 멋진 무공 이름 (고민)
선천을 멸각하고 후천을 열어라.
옛 하늘을 멸하고 새로운 하늘이 되는 것,
그것이아말로 등선으로의 길登仙之路이니...
태음귀진신공 (아님)
무공이란, 본래 사람이 사람에 맞서 싸우기 위해.
그리고 사람이 동물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무공의 본질은 투쟁이다.
사람에 대한 투쟁.
맹수에 대한 투쟁.
자연에 대한 투쟁.
그리고.
하늘에 대한 투쟁.
이 몸이 생각한 천마신공같은 말을...
그리고 또한, 무공은 궁극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에, 맹수에, 자연에, 하늘에 맞서 싸워 이기려 드는 것은.
생존권을, 그리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장받기 위함이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무공이 ■■을 지향하는 이유.
모든 무공이 궁극적으로 절대성絕對性에 맞서기 위하기 위한 그 무엇의 형태를 띠는 이유.
무공의 궁극에 도달할 때, 무인은 선택한다.
절대성에 맞서기 위한 또 다른 절대성神을 빚어낼지.
절대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무질서의 칼날易天을 벼려낼지.
보다 불완전하지만 더 큰 것自然으로 절대성을 압도할지.
세상 대 인간으로 싸우기 위한 그 선택을, 우리는 ■■이라 부른다.
S : 오호단문도의 비전초식 같은 경우는 두근거리는 부분이 있네.
다만 알기 어렵다 한들 정말 사양될 것인가. 는 모르겠다.
경지가 높아지면 벽에 조우하기 마련이고, 벽에 조우하게 되면 공부를 돌이켜보기 마련이니.
의미없어 보이는 초식이라도 언젠가 발굴될 테고, 한 번 발굴되면 좀 더 명확히 정보가 풀리지 않으려나?
사실 '누가 가르쳐주면 오히려 그 진의가 훼손되는' 타입이라고 묘사하고 싶었는데.
말하다 보니 흐름상 그걸 언급할 타이밍이 안 나와서 못 했어요 (두둥)
S: 뭐, 이런건 이유를 만들기 나름이니까.
왕귀형 초식. 입문 시점과 완숙 시점의 낙차와 시차가 큰 초식이 사양되었으나.
사실은 매우 완성도가 높았다. 같은 발상. 좋다고 생각해.
굳이 팽가 무공 도해본쪽에도 묘사 안 되어있는 것도 그래서고,
그걸 깨달은 소수의 인원이 말해주지 않는 것도 그래서고?
대충 그렇게 생각했었네요.
S: 벽력에 대한 정의. 이건 중요한 파트 같네.
마츄리의 설명에서는 생략된 부분인데, 기저에 깔려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그 후반부의 경우는 마츄리의 디자인과 다소 차이가 있어보인다.
마츄리 쪽이 좀 더 안정적인 느낌.
마츄리는 혼원을 선천력. 순정으로 정제된 기운. 태극 이전의 다소 불안정한 속성을 지닌 하나 라는 이미지라면.
다희가 처음 언급한 혼원은 말 그대로 탁류. 온갖 기운의 이합집산이 뒤섞여서 상호작용중인 화약고 라는 느낌.
(끄덕끄덕) 저도 그런 차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말하는 혼원은 천지만물이 하나가 되어 뒤섞인 극한의 무질서, 라는 느낌이니까.
그러니까 이쪽은 서양의 케이아스 개념에 좀 더 가깝다는 느낌이려나?
마츄리는 좀 더 본연의 혼연의 개념에 가깝다는 느낌이고.
S: 뭐, 동일한 혼원인데 묘사 내지는 연출의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혼원이란 태초 이전의 혼돈이며, 모든 것이 뒤섞여있던 이합집산의 무질서.
그 안에서는 서로 조화되지도, 융화되지도 않는 힘들이 뒤섞이고 마찰한다.
이렇게 끝없이 발생하는 무질서한 반발력이야말로 벽력, 혼원벽력도의 힘.
이라는 게 제 버전의 혼원벽력도.
마츄리의 혼원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매개기 좀 다르다는 느낌?
마츄리는 혼원의 상태를 아무 심법도 익히지 않은 선천공의 상태라고 정의헀고.
아니, 좀 깊게 들어가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먀츄 !
혼원은 말하자면 혼돈의 상태가 맞아 !
다만 혼돈으로 묘사하기에는 사람이 빚는 혼원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
그런가 그런가!
그 부분이 처음 묘사한
가장 첫 조사가 정의한 혼원에 따라
심법의 심오함이 결정된다, 의 얘기인 것 !
첫 조사가 혼원을 어떻게 결정하는지에 따라 심법의 경로가 달라지는 것과
혼원이 어떻게 만들어지더라도 혼원이 갈라지는 순간을 빚어내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까 -
좀 더 유사 물리학적으로 접근해서
혼원은 빅뱅 이전의 상태를 말하고
개벽은 빅뱅 그 자체를 말하는데
여기에서 '제가 생각하는 혼원'은
불안정하고 언제든지 개벽할 수 있는 무언가.
빅뱅 에너지가 끝없이 흘러넘치는 하나의 점.
사람의 몸에 삼라만상이 깃든 특이점=혼원 속에서
맞지 않는 기가 서로 이합집산하며 각종 반발과 마찰을 일으키고
그 이합집산 속에서 발생하는 부조화의 번개, 빅뱅 에너지=벽력
그것을 버틸 수 있는 강인하고 굴강한 육신으로,
그 힘을 빡으로 초래하여 쥔 도에 깃들게 하는 대충 그런
무한영구기관 같은 느낌
그래서 이쪽의 혼원은 완벽하지 않고 불안정하며
끝없이 개벽하려고 하고 있는데, 혼원체는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그 개벽을 위한 힘을 몸 외부로 꺼내 휘두르는 것이 혼원벽력도고.
대충 그런 느낌낌
마츄마츄
마도의 마기로 빚는 혼원과 정도의 진기로 빚는 혼원은 다르다는 느낌으로 해서
첫 조사의 연구와 정의마다 달라진다고 생각하는거야
뭐 결국 혼원은 누구의 생각이 어떻게 정의했느냐로 결정된다로 설정한 것 -
(끄덕끄덕)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이건 태음신녀의 혼원벽력신공도해이고
마츄리가 만든 건 천마의 혼원벽력신공도해겠죠?
그렇겠지 - 아마 ? 두 !
입문하다 몸이 터져 죽어버릴 수도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태음신녀도해본
뭔지 잘 몰?루겠으면 절정이나 되고 와라 애송이라고 적혀있는 천마도해본
S: 혼원을 안정된 원초의 하나로 정제하여,
벽력으로 이를 부숨으로서 만변하는 세계를 창생한다.
그리 아스라진 세계를 다시금 정제하고, 벽력으로 이를 부수는 순환을 일굼이
스피카미 혼원벽력신공의 도해다.
사실 다희님의 혼원도해랑 스피카미의 혼원도해를 합친 게
절정 너머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봤다 이 몸은.
벼락 하나를 일궈내고 다시 한 번 순환하여
수십, 수백, 수천의 벼락을 일궈 마음 그 자체를 벼락을 바꿔
혼원벽력도의 다음 영역으로 나아간다, 라는 느낌으로.
도전하기에는 난이도 높아 !
아니면 절정 이상의 경지로 넘어갈 때,
또 다시 정체성이 변하는 무공, 이라거나,
근본심상을 벼락에서 개벽으로 바꾸는 거죠.
마음이 법칙을 집어삼키고 현현할 때 초인의 영역에 도달한다.
혼원벽력도의 진화체...하늘과 땅을 이으며 내리치는 벽력의 칼날...
그리고 그 이후에 있는 절대자의 영역...흠...역시 길구나
혼원개벽검.
아니, 검이래. 혼원개벽도. 혼원개벽신공.
초절정에 오르기 위해 벽력을 버리고
개벽의 심상을 그 도에 담아냄으로서 초절정에 도달한 자가 있다면
그 무공을 저런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32:32
암흑속에서, 별이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 ? "
그와 동시에, 시선이 별의 바깥으로, 더 바깥으로 멀어지며
수억개의 별을 파괴하며 은하가 붕괴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왔군.]
그렇게 시야가 확장된다.
좁은 것만을 담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시야임에도
그 범위가 계속해서 넓어지고 별이, 은하가, 은하군이, 성단이, 장성이 무너지며
내가 지금 서 있는 우주가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비록 볼 수 없음에도 보이고 있다.
보이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담기고 있다.
그게 의미하는 건 수없이 많은 게 보이지만 알 수 있는 건 하나일뿐이라는 것.
지금 내 눈 앞에 서있는 것의 정체.
[그래 사투르누스. 종말이 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나 ? ]
시간군주가 맞섰다는 자가,
이 세상의 마魔를 만들어냈다는 혼돈의 종주가,
수십개의 우주를 그 몸에 두른 채 내 앞에 나타났다.
"어 ? "
그와 동시에, 시선이 별의 바깥으로, 더 바깥으로 멀어지며
수억개의 별을 파괴하며 은하가 붕괴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왔군.]
그렇게 시야가 확장된다.
좁은 것만을 담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시야임에도
그 범위가 계속해서 넓어지고 별이, 은하가, 은하군이, 성단이, 장성이 무너지며
내가 지금 서 있는 우주가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비록 볼 수 없음에도 보이고 있다.
보이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담기고 있다.
그게 의미하는 건 수없이 많은 게 보이지만 알 수 있는 건 하나일뿐이라는 것.
지금 내 눈 앞에 서있는 것의 정체.
[그래 사투르누스. 종말이 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나 ? ]
시간군주가 맞섰다는 자가,
이 세상의 마魔를 만들어냈다는 혼돈의 종주가,
수십개의 우주를 그 몸에 두른 채 내 앞에 나타났다.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34:49
연재에 쓸 건 안 나고 쓸 데 없는 이야기만 생각나는 요즘 (곰곰)(다희님의 품에 기대고 있기)
쓸데없는 이야기-? (갸웃)
쓸데없는 무협&판타지 설정 -
그건 쓸데없다고 하는 게 아니라 재미있다고 하는 거예요. (쓰담)
뭐 연재에 쓰기에는 연관없는 설정이라서 -
인간이 보유할 수 있는 힘(마력이나 기)의 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네.
용이나 거인같은 대형종이 보유할 수 있는 힘의 양과
인간같은 소형종이 보유할 수 있는 힘의 양에는 역시 차이가 있겠지,
하는 식으로.
3차원 공간이 의미없는 차원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힘이라면 모르지 않을까.
힘의 실체가 현실의 시공간에 귀속되어 있다면,
당연히 인간이 보유할 수 있는 양이 더 적겠지만.
현실을 초월한 어떤 차원에 존재하는 힘이라면,
다를 수도 있다는 감상?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마음과 몸을 어느 정도 엮어볼까 -
하고 생각해보는 중.
내공이라는 건 뭐랄까 심법으로 쌓이는 거니까.
심법心法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 한 거네.
그런가 그런가-
마츄리가 기억할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엄청 예전에 현실과는 별개의 차원,
시공간과는 아예 다른 개념의 차원,
영혼이 실재하고 있는 차원,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차원 -
딱히 기라는 게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힘, 이라고 생각했다기보다는.
그냥 기라는 게 현실에 실재할 경우에는 육신의 크기에 구애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법칙에서 벗어나려면 기라는 게 어떤 법칙 하에 있어야 할까.
같은 생각을 좀 했다는 것!
뭔가 그걸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접근해버려서 이런 대답이 나왔다는 느낌?
해결해야 할 문제인건가 - ? (갸우뚱)
이 몸은 뭐랄까 이런 것도 재밌지 않으려나 생각했당
특정 종에게 반드시 그어지는 한계가 있다면,
그 체계 자체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는 편이라서-
육체의 크기에 따라 마력을 수용할 수 있는 용적이 달라진다.
저도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일리도 있고. (쓰담쓰담)
다만 아까는 살짝 거기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제가 접근한 방법이 리틀 미스테이크였다는 거고!
허공의 기를 내공으로 축조.
단전을 하나의 축으로 삼아서 정련.
그리고 그렇게 정련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는,
내공이라는 것이 인체에 머물수 있는 총량은 2갑자라는 사실.
때문에 대다수의 절정고수는 스스로의 내공을 수발과 사용을 위해
1갑자 내외의 양만을 유지하며 무학의 길에 임한다...
하지만 그 너머는 어떨까, 같은 걸 생각하는 중.
그렇다면 마츄리. 심법이 심법心法인 이유는 뭘까요?
그으러게 - 심법이 심법인 이유는 뭘까...
이 몸은 일단 심법인 이유를 생각은 해뒀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영단靈丹이라든가?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뇌, 심장, 그런 육체의 어떤 특정 장기일까?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의 몸 속에 그것이 있다는 증거를 잡아내지 못하는걸까?
어떠한 존재는 반드시 질량, 에너지 등의 "그것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죠.
그게 없다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없다고 봐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영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해도 무방하겠죠.
그러나 영혼의 존재가 유령 등의 존재로 인해 실재를 공언받은 세상이라면?
그렇다면 영혼이 우리의 물질적인 육체에 깃들어있지 않다는 가정은 어떨까.
아니, 어쩌면 깃들어있다고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죠.
육신과 영혼은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소통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자신의 영혼의 정언명령을 통해 움직일 수 있는 거니까요.
우리가 우리의 의식으로 우리의 육신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 영혼이 실재한다는 증거.
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영혼이라는 것은 대체 어디에 있는걸까요?
우리는 3차원의 공간축과 1차원의 시간축이 이루는 4차원의 시공간에 존재한다고들 하죠.
그런데, 과연 "차원"이라는 것에, 시간축과 공간축이라는 것만이 존재할까요?
그와 별개의 축이 존재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의 육신이 시간축과 공간축에만 귀속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별개의 축'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송...과체...(안 된다)
영혼이라는 것은 시공간이 아닌 그 "다른 어떠한 축"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라는 이야기였었고
영혼 영혼
후음후음
대충 거기에서 한 발 나아가서
영혼이 존재하는 곳은 운명축, 같은 거라거나.
그런 걸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영혼의 이끌림' 같은 것도
영혼의 크기나 영혼 사이의 거리 같은 걸로 발생한다든가.
그런데 그 이끌림이라는 것도 대부분 상대를 인식한 상태에서면 발생한다든가.
그런 생각도 있고
영혼과 마음은 같은 것에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을지도.
저번에 말해줬었지 -
(끄덕끄덕) 1년쯤 전인지, 그보다 더 전인지.
시기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리고 그 영혼의 크기, 라는 게 운명의 크기 혹은 그 업의 크기라거나?
아무튼 대충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걸 참고해보라는 이야기는 사실 아니고.
그냥 대충 영혼이 저렇게 육체와는 별개의 위상, 층위, 차원에 존재하거나 하면,
육체에 보관할 수 없는 걸 영혼에 보관한다든가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금?
정精 기氣 신神
그릇이라는 것을 이루는 세개의 기준.
소형종의 그릇은 그에 맞는 초월의 힘만을 담을 수 있다.
그릇에 맞지 않는 것을 담는다 한들 흘러넘칠뿐.
수미터에서 수십미터에 이르는 중형종,
수키로미터에 가까운 크기를 차지할지 모르는 대형종에 비한다면,
소형종 각 개체가 내포할 수 있는 힘은 진정으로 적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소형종이 중형종에 비해 적은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초인超人.
검주劍主, 마종魔宗, 능법能法의 위계가,
그들이 쌓아올린 인간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니까.
본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초월의 힘의 한계는 2갑자.
백년이라는 인간종의 최대 수명에 걸맞게,
백이십년에 가까운 적공으로 쌓아올린 힘이 그들의 한계였다.
아무리 빠르게 힘을 쌓는다고 한들 언젠가는 한계에 마주친다.
아무리 스스로의 내면에 대해 탐구한다고 해도,
마력도, 기도, 신성력도, 어느 순간 그릇의 총량에 도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상세계의 힘'으로 화할 수 있는 총량이니까.
'이상세계'에 속하는 '초월의 힘'은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
인간의 내면에서 현상세계의 모습으로 형상을 바꿀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힘은 인간의 안에서 유한함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오는 의문은 하나.
영웅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초인은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의 육신보다 수십배는 더 큰 적들을 상대하여 승리하였는가.
수십배의 길이 차이가, 수백배의 용적 차이를 냄으로서,
그 안에 들어있는 초월의 힘은 못 해도 수백배의 차이가 날 터인데.
싸움에서 낼 수 있는 물리력 또한 초월의 힘에 의존되는 바.
아무리 기술을 갈고 닦는다고 해도 우열을 따라잡는 것만으로 고작이다.
압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압도하는 이는 있다.
그 모순에 대한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문에 초인에게서 나오는 대답은 하나다.
마음心.
그들은 그들이 보유한 초월의 힘을 마음에 저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음!
까지를 적당히 생각해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육체가 담지 못하고 흘러넘친 힘의 일부는 영혼으로 흘러들어간다.
인간의 영혼은 그 일부의 힘마저 담지 못하고 전부 흘려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 '흘러넘침'이 계속되면 영혼은 연단되고, 정련된다.
무인은 실존하지 않는 기경팔맥氣經八脈을
마음속에 내공을 투영함으로서 신체에 새기고 그릇을 넓힌다.
마법사는 마력 회로의 갈래를 스스로의 비이성에 넓힘으로서
무의식을 정복해내는 마력의 길을 만들어낸다.
사제는...흠...패스.
대충 연단되고 정련되며 강인해진 영혼은
초월의 힘을 담을 수 있도록 변모하게 돼고
그때부터는 느리지만 확실히 영혼에 힘이 담긴다
영혼으로 향하는 힘의 흐름과 영혼 속에 실재하는 힘을
어떠한 계기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초인의 영역에 올라설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몸 - 마음 - 영혼으로.
뭔가 좀 개별적으로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음이 바뀌면 연동되며 영혼도 바뀌려나 -
마음과 영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몸이 현상계에 존재하는 그릇이라면 영혼은 이상계에 존재하는 그릇.
마음은 그 둘 사이를 이으며 '존재'를 만들어내는 끈이며
마음에 힘을 실을 수 있다는 것은 곧 이상계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음이다.
흠...의념...됐다. 이 정도면 될지도. (슥슥)
아, 문득 그거 떠올랐다.
문득 - ?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해보던 능력, 같은 거.
능력 - (블루아카의 가챠에 성공하고 끄기)
만다라, 라는 거였는데.
만다라인가 - (무공으로 만들던 걸 떠올리는 중)
만다라라는 게 깨달음을 담은 그림이자,
깨달음을 보조하는 도구적인 경향도 담은 그림이라는 부분에서 착안해서 떠올렸던 건데.
내가 도달하고 싶은, 혹은 이미 도달한 어떤 종착지의 풍경으로 세상을 덧칠하는 이능,
같은 걸 생각했었네요.
쉽게 말해서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진 형태로서의 고유결계 같은 거?
남이랑 싸우기 위한 힘, 이라기보다는,
개인이 신역에 도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힘,
이라는 구상도 있었고.
그리하여 우리 모두 저 하늘에 닿아 별이 되리라.
바람이 이루어진 형태의 고유결계인가...과연...
만다라를 돌리며 신역에 도달한다...
자신이 바램이 이루어진 결과를 끌어옵니다. 자신의 세계를 이루어냅니다.
자신의 바램을, 자신의 법을 펼칩니다.
펼쳐진 법칙은 하나의 완성된 세계입니다. 하나의 완성된 법계입니다.
자신이 이룬, 완성한, 그 모든 본질을 담고 있는 것. 그것이 만다라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능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그러한 것. 세계의 섭리일지니.
이라는 텍스트로만 되어있네요. 불친절해!
하지만 그런 편이 이후에 이야기할 건덕지가 나오니 (?)
저때 구상이 정확히 어땠는가, 는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요.
단면이라도 떠올려본다면 어떤 느낌이었던걸까 - ?
그 사람이 낸 모든 결과들과,
그 사람이 도달하고 싶은 종착지를, 세계를 그려낸다.
대충 모든 존재에게 뿌린 전능의 씨앗, 같은 워딩도 떠오르고.
대충 모든 사람이 전능해지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지 않을까?
라는 쪽의 논리를 기반으로 돌려보려고 했던 걸로 기억하고.
나의 마음은 칼날.
흉하게 일그러진 이 세계를 겨누는 칼날.
그 칼날을 세우고, 높이 들어, 세상을 베는 것이 나의 갈망.
그러한즉 내가 갈망하니. 바라니. 바라옵나니.
모든 것을 베고 베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적에, 그 없음마저 베어 모든 것이 존재하게 하여주소서.
만다라मण्डल-구천멸각舊天滅却 신천개벽新天開闢
같은 걸 생각해뒀던 기억이 있다.
전능자가 2명이 되면 전능이 파괴되니
전능자가 홀로 될 때까지 싸워라같은 걸 외치는 나쁜츄리
저는 서로가 서로에게 강요하는 게 불가해진다,
서로의 합의에 의해서만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라는 쪽으로 생각했다는 느낌.
전능 전능
사악츄리의 몸에서 힘이 빠진다...(추욱)
사람이 불행한 건 사람의 욕망은 다원적이라서.
사람의 욕망을 동시에 충족하는 게 불가능해서.
그러나 전능자는 전능하니까 그게 가능하다.
그러나 전능자가 존재하는 세계도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
전능자 혼자의 갈망만으로 돌아가는 디스토피아.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전능자가 되면 되는 거 아닌가.
서로가 서로에게 강요할 수 없고, 합의해야만 행할 수 있는 세계.
욕망충족과 강요받지 않을 자유의 관점에서 바라본 낙원, 같은 거죠.
과정이라 불리는 그 속에 녹아있는 무한한 점들과,
그 점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종착지까지의 모든 것이 의지를 가지게 되어,
다음으로, 계속 다음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초월적인 섭리로 화하는?
대충 그런 느낌.
마츄리가 의념이라고 생각해둔 설정이랑 비슷한 느낌이야 (?)
아하. 이쪽은 그냥 끝이라 정의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나의 선한 의지로 묶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신을 만들었다, 라는 계열이라서 좀 다르지만요.
서술하는 느낌이 비슷한걸까.
헉 그러면 달라 (철회)(돈까스 덮밥을 냠냠)
쓸데없는 이야기-? (갸웃)
쓸데없는 무협&판타지 설정 -
그건 쓸데없다고 하는 게 아니라 재미있다고 하는 거예요. (쓰담)
뭐 연재에 쓰기에는 연관없는 설정이라서 -
인간이 보유할 수 있는 힘(마력이나 기)의 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네.
용이나 거인같은 대형종이 보유할 수 있는 힘의 양과
인간같은 소형종이 보유할 수 있는 힘의 양에는 역시 차이가 있겠지,
하는 식으로.
3차원 공간이 의미없는 차원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힘이라면 모르지 않을까.
힘의 실체가 현실의 시공간에 귀속되어 있다면,
당연히 인간이 보유할 수 있는 양이 더 적겠지만.
현실을 초월한 어떤 차원에 존재하는 힘이라면,
다를 수도 있다는 감상?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마음과 몸을 어느 정도 엮어볼까 -
하고 생각해보는 중.
내공이라는 건 뭐랄까 심법으로 쌓이는 거니까.
심법心法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 한 거네.
그런가 그런가-
마츄리가 기억할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엄청 예전에 현실과는 별개의 차원,
시공간과는 아예 다른 개념의 차원,
영혼이 실재하고 있는 차원,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차원 -
딱히 기라는 게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힘, 이라고 생각했다기보다는.
그냥 기라는 게 현실에 실재할 경우에는 육신의 크기에 구애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법칙에서 벗어나려면 기라는 게 어떤 법칙 하에 있어야 할까.
같은 생각을 좀 했다는 것!
뭔가 그걸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접근해버려서 이런 대답이 나왔다는 느낌?
해결해야 할 문제인건가 - ? (갸우뚱)
이 몸은 뭐랄까 이런 것도 재밌지 않으려나 생각했당
특정 종에게 반드시 그어지는 한계가 있다면,
그 체계 자체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는 편이라서-
육체의 크기에 따라 마력을 수용할 수 있는 용적이 달라진다.
저도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일리도 있고. (쓰담쓰담)
다만 아까는 살짝 거기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제가 접근한 방법이 리틀 미스테이크였다는 거고!
허공의 기를 내공으로 축조.
단전을 하나의 축으로 삼아서 정련.
그리고 그렇게 정련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는,
내공이라는 것이 인체에 머물수 있는 총량은 2갑자라는 사실.
때문에 대다수의 절정고수는 스스로의 내공을 수발과 사용을 위해
1갑자 내외의 양만을 유지하며 무학의 길에 임한다...
하지만 그 너머는 어떨까, 같은 걸 생각하는 중.
그렇다면 마츄리. 심법이 심법心法인 이유는 뭘까요?
그으러게 - 심법이 심법인 이유는 뭘까...
이 몸은 일단 심법인 이유를 생각은 해뒀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영단靈丹이라든가?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뇌, 심장, 그런 육체의 어떤 특정 장기일까?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의 몸 속에 그것이 있다는 증거를 잡아내지 못하는걸까?
어떠한 존재는 반드시 질량, 에너지 등의 "그것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죠.
그게 없다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없다고 봐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영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해도 무방하겠죠.
그러나 영혼의 존재가 유령 등의 존재로 인해 실재를 공언받은 세상이라면?
그렇다면 영혼이 우리의 물질적인 육체에 깃들어있지 않다는 가정은 어떨까.
아니, 어쩌면 깃들어있다고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죠.
육신과 영혼은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소통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자신의 영혼의 정언명령을 통해 움직일 수 있는 거니까요.
우리가 우리의 의식으로 우리의 육신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 영혼이 실재한다는 증거.
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영혼이라는 것은 대체 어디에 있는걸까요?
우리는 3차원의 공간축과 1차원의 시간축이 이루는 4차원의 시공간에 존재한다고들 하죠.
그런데, 과연 "차원"이라는 것에, 시간축과 공간축이라는 것만이 존재할까요?
그와 별개의 축이 존재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의 육신이 시간축과 공간축에만 귀속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별개의 축'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송...과체...(안 된다)
영혼이라는 것은 시공간이 아닌 그 "다른 어떠한 축"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라는 이야기였었고
영혼 영혼
후음후음
대충 거기에서 한 발 나아가서
영혼이 존재하는 곳은 운명축, 같은 거라거나.
그런 걸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영혼의 이끌림' 같은 것도
영혼의 크기나 영혼 사이의 거리 같은 걸로 발생한다든가.
그런데 그 이끌림이라는 것도 대부분 상대를 인식한 상태에서면 발생한다든가.
그런 생각도 있고
영혼과 마음은 같은 것에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을지도.
저번에 말해줬었지 -
(끄덕끄덕) 1년쯤 전인지, 그보다 더 전인지.
시기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리고 그 영혼의 크기, 라는 게 운명의 크기 혹은 그 업의 크기라거나?
아무튼 대충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걸 참고해보라는 이야기는 사실 아니고.
그냥 대충 영혼이 저렇게 육체와는 별개의 위상, 층위, 차원에 존재하거나 하면,
육체에 보관할 수 없는 걸 영혼에 보관한다든가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금?
정精 기氣 신神
그릇이라는 것을 이루는 세개의 기준.
소형종의 그릇은 그에 맞는 초월의 힘만을 담을 수 있다.
그릇에 맞지 않는 것을 담는다 한들 흘러넘칠뿐.
수미터에서 수십미터에 이르는 중형종,
수키로미터에 가까운 크기를 차지할지 모르는 대형종에 비한다면,
소형종 각 개체가 내포할 수 있는 힘은 진정으로 적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소형종이 중형종에 비해 적은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초인超人.
검주劍主, 마종魔宗, 능법能法의 위계가,
그들이 쌓아올린 인간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니까.
본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초월의 힘의 한계는 2갑자.
백년이라는 인간종의 최대 수명에 걸맞게,
백이십년에 가까운 적공으로 쌓아올린 힘이 그들의 한계였다.
아무리 빠르게 힘을 쌓는다고 한들 언젠가는 한계에 마주친다.
아무리 스스로의 내면에 대해 탐구한다고 해도,
마력도, 기도, 신성력도, 어느 순간 그릇의 총량에 도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상세계의 힘'으로 화할 수 있는 총량이니까.
'이상세계'에 속하는 '초월의 힘'은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
인간의 내면에서 현상세계의 모습으로 형상을 바꿀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힘은 인간의 안에서 유한함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오는 의문은 하나.
영웅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초인은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의 육신보다 수십배는 더 큰 적들을 상대하여 승리하였는가.
수십배의 길이 차이가, 수백배의 용적 차이를 냄으로서,
그 안에 들어있는 초월의 힘은 못 해도 수백배의 차이가 날 터인데.
싸움에서 낼 수 있는 물리력 또한 초월의 힘에 의존되는 바.
아무리 기술을 갈고 닦는다고 해도 우열을 따라잡는 것만으로 고작이다.
압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압도하는 이는 있다.
그 모순에 대한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문에 초인에게서 나오는 대답은 하나다.
마음心.
그들은 그들이 보유한 초월의 힘을 마음에 저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음!
까지를 적당히 생각해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육체가 담지 못하고 흘러넘친 힘의 일부는 영혼으로 흘러들어간다.
인간의 영혼은 그 일부의 힘마저 담지 못하고 전부 흘려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 '흘러넘침'이 계속되면 영혼은 연단되고, 정련된다.
무인은 실존하지 않는 기경팔맥氣經八脈을
마음속에 내공을 투영함으로서 신체에 새기고 그릇을 넓힌다.
마법사는 마력 회로의 갈래를 스스로의 비이성에 넓힘으로서
무의식을 정복해내는 마력의 길을 만들어낸다.
사제는...흠...패스.
대충 연단되고 정련되며 강인해진 영혼은
초월의 힘을 담을 수 있도록 변모하게 돼고
그때부터는 느리지만 확실히 영혼에 힘이 담긴다
영혼으로 향하는 힘의 흐름과 영혼 속에 실재하는 힘을
어떠한 계기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초인의 영역에 올라설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몸 - 마음 - 영혼으로.
뭔가 좀 개별적으로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음이 바뀌면 연동되며 영혼도 바뀌려나 -
마음과 영혼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몸이 현상계에 존재하는 그릇이라면 영혼은 이상계에 존재하는 그릇.
마음은 그 둘 사이를 이으며 '존재'를 만들어내는 끈이며
마음에 힘을 실을 수 있다는 것은 곧 이상계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음이다.
흠...의념...됐다. 이 정도면 될지도. (슥슥)
아, 문득 그거 떠올랐다.
문득 - ?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해보던 능력, 같은 거.
능력 - (블루아카의 가챠에 성공하고 끄기)
만다라, 라는 거였는데.
만다라인가 - (무공으로 만들던 걸 떠올리는 중)
만다라라는 게 깨달음을 담은 그림이자,
깨달음을 보조하는 도구적인 경향도 담은 그림이라는 부분에서 착안해서 떠올렸던 건데.
내가 도달하고 싶은, 혹은 이미 도달한 어떤 종착지의 풍경으로 세상을 덧칠하는 이능,
같은 걸 생각했었네요.
쉽게 말해서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진 형태로서의 고유결계 같은 거?
남이랑 싸우기 위한 힘, 이라기보다는,
개인이 신역에 도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힘,
이라는 구상도 있었고.
그리하여 우리 모두 저 하늘에 닿아 별이 되리라.
바람이 이루어진 형태의 고유결계인가...과연...
만다라를 돌리며 신역에 도달한다...
자신이 바램이 이루어진 결과를 끌어옵니다. 자신의 세계를 이루어냅니다.
자신의 바램을, 자신의 법을 펼칩니다.
펼쳐진 법칙은 하나의 완성된 세계입니다. 하나의 완성된 법계입니다.
자신이 이룬, 완성한, 그 모든 본질을 담고 있는 것. 그것이 만다라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능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그러한 것. 세계의 섭리일지니.
이라는 텍스트로만 되어있네요. 불친절해!
하지만 그런 편이 이후에 이야기할 건덕지가 나오니 (?)
저때 구상이 정확히 어땠는가, 는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요.
단면이라도 떠올려본다면 어떤 느낌이었던걸까 - ?
그 사람이 낸 모든 결과들과,
그 사람이 도달하고 싶은 종착지를, 세계를 그려낸다.
대충 모든 존재에게 뿌린 전능의 씨앗, 같은 워딩도 떠오르고.
대충 모든 사람이 전능해지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지 않을까?
라는 쪽의 논리를 기반으로 돌려보려고 했던 걸로 기억하고.
나의 마음은 칼날.
흉하게 일그러진 이 세계를 겨누는 칼날.
그 칼날을 세우고, 높이 들어, 세상을 베는 것이 나의 갈망.
그러한즉 내가 갈망하니. 바라니. 바라옵나니.
모든 것을 베고 베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적에, 그 없음마저 베어 모든 것이 존재하게 하여주소서.
만다라मण्डल-구천멸각舊天滅却 신천개벽新天開闢
같은 걸 생각해뒀던 기억이 있다.
전능자가 2명이 되면 전능이 파괴되니
전능자가 홀로 될 때까지 싸워라같은 걸 외치는 나쁜츄리
저는 서로가 서로에게 강요하는 게 불가해진다,
서로의 합의에 의해서만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라는 쪽으로 생각했다는 느낌.
전능 전능
사악츄리의 몸에서 힘이 빠진다...(추욱)
사람이 불행한 건 사람의 욕망은 다원적이라서.
사람의 욕망을 동시에 충족하는 게 불가능해서.
그러나 전능자는 전능하니까 그게 가능하다.
그러나 전능자가 존재하는 세계도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
전능자 혼자의 갈망만으로 돌아가는 디스토피아.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전능자가 되면 되는 거 아닌가.
서로가 서로에게 강요할 수 없고, 합의해야만 행할 수 있는 세계.
욕망충족과 강요받지 않을 자유의 관점에서 바라본 낙원, 같은 거죠.
과정이라 불리는 그 속에 녹아있는 무한한 점들과,
그 점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종착지까지의 모든 것이 의지를 가지게 되어,
다음으로, 계속 다음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초월적인 섭리로 화하는?
대충 그런 느낌.
마츄리가 의념이라고 생각해둔 설정이랑 비슷한 느낌이야 (?)
아하. 이쪽은 그냥 끝이라 정의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나의 선한 의지로 묶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신을 만들었다, 라는 계열이라서 좀 다르지만요.
서술하는 느낌이 비슷한걸까.
헉 그러면 달라 (철회)(돈까스 덮밥을 냠냠)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36:27
일심이문.
의념천주란 마음을 떠받치는 기둥이고
동시에 일심이문의 형상을 드러내는 궤적이다.
역륜이나 정륜이냐는 다만 진여문을 걷는지, 생멸문을 걷는지의 차이일뿐.
같은 느낌으로 무협 소설을 짜다가 쓰는 나도 이걸 어떻게 표현할지를 몰라서 포기했다 !
할려면 우주와 굴레와 자아와 내면을 다 각자 따로 그려둬야 해
어렵잖아 !
오늘은 좀 마음 편하게 자료 정리나 계속 할까 말까
자료 정리인가.
어떤 느낌의 자료를 정리하는거야?
무학, 마법, 신술, 초능
이라는 느낌으로 사분할하고, 철학이나 법칙같은 것들을 엮으면서
어떻게 발전 도중의 교차점과 차이점을 명료하게 정리해내는 중 ?
쉽지 않겠네.
뭐 어느 정도 인위적으로 교차점을 만들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어렵지도 않아 -
쓰는 힘이라던가, 어떤 선을 넘어서는 방법이라던가 -
라고 말하기에는 무학부터 일심이문, 대승불교, 유아론과 실재론, 기타 등등으로
엄청나게 파고들어야 했기는 하지만...
호무호무. 뭐, 설계자가 본인이니까.
용어를 정의할 때, 어느정도 체계를 잡아가며 만들게 되니까.
무학에서 멈추고,
마법과 신술과 초능도 이렇지는 않겠지 -
하고 있는 중이려나. 뭐 어느 정도는 생각을 재정립하는 거에 가깝기는 한데.
엄청 본격적이네.
마법은 카발라나, 세피로트로 시작해서,
요정학이나, 각종 신화와 전설, 기타등등을 탐미할거 같다.
마법도 저번에 얘기했던 느낌에서 세밀하게 들어가면 그렇게 되겠고.
계속 탐구해야지 -
의념천주란 마음을 떠받치는 기둥이고
동시에 일심이문의 형상을 드러내는 궤적이다.
역륜이나 정륜이냐는 다만 진여문을 걷는지, 생멸문을 걷는지의 차이일뿐.
같은 느낌으로 무협 소설을 짜다가 쓰는 나도 이걸 어떻게 표현할지를 몰라서 포기했다 !
할려면 우주와 굴레와 자아와 내면을 다 각자 따로 그려둬야 해
어렵잖아 !
오늘은 좀 마음 편하게 자료 정리나 계속 할까 말까
자료 정리인가.
어떤 느낌의 자료를 정리하는거야?
무학, 마법, 신술, 초능
이라는 느낌으로 사분할하고, 철학이나 법칙같은 것들을 엮으면서
어떻게 발전 도중의 교차점과 차이점을 명료하게 정리해내는 중 ?
쉽지 않겠네.
뭐 어느 정도 인위적으로 교차점을 만들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어렵지도 않아 -
쓰는 힘이라던가, 어떤 선을 넘어서는 방법이라던가 -
라고 말하기에는 무학부터 일심이문, 대승불교, 유아론과 실재론, 기타 등등으로
엄청나게 파고들어야 했기는 하지만...
호무호무. 뭐, 설계자가 본인이니까.
용어를 정의할 때, 어느정도 체계를 잡아가며 만들게 되니까.
무학에서 멈추고,
마법과 신술과 초능도 이렇지는 않겠지 -
하고 있는 중이려나. 뭐 어느 정도는 생각을 재정립하는 거에 가깝기는 한데.
엄청 본격적이네.
마법은 카발라나, 세피로트로 시작해서,
요정학이나, 각종 신화와 전설, 기타등등을 탐미할거 같다.
마법도 저번에 얘기했던 느낌에서 세밀하게 들어가면 그렇게 되겠고.
계속 탐구해야지 -
2025년 3월 19일 (수) 오후 05:36:43
보통 중세 판타지에서 이동은 어떻게 하려나.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아침식사를 하고.
8시까지 야영지 정리하고 채비를 마친 다음 출발.
낮 12시에 점심을 먹고, 낮 1시까지 쉬었다가.
오후 5시에 정지, 야영 준비를 하고.
오후 6시에 저녁을 먹은 다음에는 아침까지 계속 쉰다.
가 일반적인 루틴이려나?
그렇게 상세한 시간감각이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해.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름철 행동이라면 동틀 무렵에 일어나서,
육포와 건량을 넣어 끓은 스프 비스무리를 딱딱한 밀빵과 함께 먹어치우고,
불씨를 거두고, 야영지... 라고 해도 거창하지는 않으려나.
텐트(천막) 계통보다는 땅을 파서 만든 야전 비트 비슷할 거 같지.
너무 상세하게 시간을 딱딱 재서 이동하진 않겠지만.
아침이 밝아오면 일어나서 밥 먹고 채비하느라 2시간 정도 쓰고,
계속 이동하다가 점심 식사하면서 1시간 정도 쉬고,
날이 저물기 전에 멈춰서 야영 준비하고 식사한 다음에 계속 휴식,
이라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해서?
대충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 계산하면 "하루 거리" 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음음. 얼추 그런 느낌 아닐까.
만약 저런 느낌대로라면 대충 8시간 정도 이동하는 거고.
그 중 8분의 1 정도는 휴식을 취할거다, 라고 가정하면
대충 하루에 7시간 이동할거니까 대충 28km 정도가 하루 거리라는 계산.
아니면 점심을 따로 안먹을지도 몰라. 틈틈히 쉬는 시간마다 육포라거나
장시간 물고 있을 만한걸 문 채로 주욱 걸어갈지도.
훔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대충 28~30 km 정도가 하루 거리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점심 먹는다고 1시간 머물다가 퍼질지도 모르고.
그럴 바에는 1시간 걷고, 10분 쉬는 사이클을 유지하면서.
쉬는 타이밍에 뭐라도 질겅질겅 씹을지도 몰라.
진지하게 중세로 가면 24시간 구분조차 없을 것 같지만... 뭐어.
"하루 거리"라는 개념은 대륙에 있으면 존재할테니.
문화권에 따라서 규모에 따라서 요리도구를 챙겨가느냐 보존식만 챙겨가느냐도 다를거고...
그러게요. 하루 거리의 제대로 된 단위는 어느정도려나.
서울에서 수원까지 거리가 34km, 이라고 되어있는데.
저 정도면 그럼 '하루보다 좀 더 가야 하는 거리'인가.
훔훔. 하루 거리, 라는 게 생각보다 머네요.
야생동물의 여부, 집단의 규모, 길의 포장 정도... 흐냐아. 20~40km라는 정-말 애매한 수치로 표현할 수밖에 없으려나?
마을과 도시 사이의 거리를 사흘 거리 정도로 잡으려고 했는데.
사흘 거리라는 게 대충 84에서 90 km 정도라고 생각하면.
서울에서 인천까지의 거리의 두 배 좀 안 되는 정도라는 거니까.
너무 멀지도.
이틀보다 좀 더 가야하는 거리, 정도로 잡을까나.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할지도.
빡세게 이틀 이동하면 갈 수는 있는데.
반드시 가야하는 이유가 없으면 굳이 힘내서 가기엔 귀찮고, 힘들고.
그런 느낌으로.
그러고 보니 길을 아는가, 의 문제도 있겠네요.
마냥 북쪽으로 가면 나온다, 동쪽으로 가면 나온다, 로만 알고 있으면 안 될거고.
그리고 제대로 된 길이 나있는가 나있지 않은가의 문제도 있겠고.
거기까진 귀찮으니까 길은 제대로 나있고 표지판도 제대로 배치되어 있다고 생각해두자.
뭐, KM 만 가지고는 사실 알기 어렵지요.
도로 사정이 얼마나 괜찮으냐. 당나귀라도 하나 데리고 있느냐 없느냐.
산행이 끼어있느냐 없느냐. 짐이 얼마나 있고 없느냐. 당사자가 얼마나 급하냐 급하지 않냐.
그때 그때 다를테니.
뭐어, 그것도 그렇죠오.
다만 일반화하려면 딱히 급한 사정이 없을 때
도보로 적당히 이동해서 얼마나 걸리는가,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으니까.
덤으로 한번 가본 길이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지.
피로감이라거나, 체력 배분이라거나.
그것도 그럴지도오. 표현 하나 생각하는데 고려할 게 너무 많다아.
뭐, 이런건 고민을 해본 것 만으로도, 나중에 그럴듯한 워드를 넣기 편해지니까.
이를테면 여행길에 문제가 생긴 이유를 좀 더 디테일하게 들 수 있겠지.
도로가 진흙범벅이었다. 숲이 빼곡했다. 초행길이라 체력배분을 잘못했다.
마차가 지나갈 수 없는 길이었다. 이런 저런 변명거리를 만들기 좋을거 같고.
사실 공후백자남 의 작위는 중국식 작위로 변형해서 부른 결과물이라, 그 의미나 의도.
구도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었던거 같아.
작위는 높고 낮음, 권력의 강함 약함을 대변하기보다.
맡은 역할 내지 귀족으로서의 기능을 말해주는 측면도 있다던가?
권력의 고저는 작위 이상으로 캐바캐라던가.
귀족귀족 (고민)
세계관의 비밀, 같은 것만 계속 생각해두다 보니
정작 귀족이랑 왕 같은 것에 대해서는 고민을 안 해봤었네.
어느 정도는 생각해둬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나.
뭐, 인간세계 설정은 원하는 구도를 짜두고, 이유를 나중에 덧붙이면 되는거니까.
대충 이미지만 잡아두면 좋지 않을까?
인간사란 기기묘묘, 신기방기 하므로.
같은 환경, 같은 세계에 기반해도, 전혀 다른 권력구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충 대륙을 다섯 구획으로 나눠서 생각할까.
동쪽. 무림.
-왕 없음. 가문들과 문파들의 지배를 받았었음.
-지금은 대부분의 가문들이 쫄딱 망했음.
서쪽.
-왕 없음. 섭정 있음.
중앙.
남쪽, 아르카디아.
-이 풍요로운 대륙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땅.
북쪽, 영구동토.
-이 대륙의 유일하게 축복받지 못한 땅.
서쪽의 땅에는 왕가가 없고 섭정 가문이 존재한다.
섭정 가문은 '언젠가 돌아오실 왕을 위해 왕좌를 비워두는 자들'.
일단은 그런 프로파간다 아래에서 왕국을 통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왕 있는 걸로 하고.
대충 북쪽에서 몬스터가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온다고 할까.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아침식사를 하고.
8시까지 야영지 정리하고 채비를 마친 다음 출발.
낮 12시에 점심을 먹고, 낮 1시까지 쉬었다가.
오후 5시에 정지, 야영 준비를 하고.
오후 6시에 저녁을 먹은 다음에는 아침까지 계속 쉰다.
가 일반적인 루틴이려나?
그렇게 상세한 시간감각이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해.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름철 행동이라면 동틀 무렵에 일어나서,
육포와 건량을 넣어 끓은 스프 비스무리를 딱딱한 밀빵과 함께 먹어치우고,
불씨를 거두고, 야영지... 라고 해도 거창하지는 않으려나.
텐트(천막) 계통보다는 땅을 파서 만든 야전 비트 비슷할 거 같지.
너무 상세하게 시간을 딱딱 재서 이동하진 않겠지만.
아침이 밝아오면 일어나서 밥 먹고 채비하느라 2시간 정도 쓰고,
계속 이동하다가 점심 식사하면서 1시간 정도 쉬고,
날이 저물기 전에 멈춰서 야영 준비하고 식사한 다음에 계속 휴식,
이라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해서?
대충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 계산하면 "하루 거리" 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음음. 얼추 그런 느낌 아닐까.
만약 저런 느낌대로라면 대충 8시간 정도 이동하는 거고.
그 중 8분의 1 정도는 휴식을 취할거다, 라고 가정하면
대충 하루에 7시간 이동할거니까 대충 28km 정도가 하루 거리라는 계산.
아니면 점심을 따로 안먹을지도 몰라. 틈틈히 쉬는 시간마다 육포라거나
장시간 물고 있을 만한걸 문 채로 주욱 걸어갈지도.
훔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대충 28~30 km 정도가 하루 거리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점심 먹는다고 1시간 머물다가 퍼질지도 모르고.
그럴 바에는 1시간 걷고, 10분 쉬는 사이클을 유지하면서.
쉬는 타이밍에 뭐라도 질겅질겅 씹을지도 몰라.
진지하게 중세로 가면 24시간 구분조차 없을 것 같지만... 뭐어.
"하루 거리"라는 개념은 대륙에 있으면 존재할테니.
문화권에 따라서 규모에 따라서 요리도구를 챙겨가느냐 보존식만 챙겨가느냐도 다를거고...
그러게요. 하루 거리의 제대로 된 단위는 어느정도려나.
서울에서 수원까지 거리가 34km, 이라고 되어있는데.
저 정도면 그럼 '하루보다 좀 더 가야 하는 거리'인가.
훔훔. 하루 거리, 라는 게 생각보다 머네요.
야생동물의 여부, 집단의 규모, 길의 포장 정도... 흐냐아. 20~40km라는 정-말 애매한 수치로 표현할 수밖에 없으려나?
마을과 도시 사이의 거리를 사흘 거리 정도로 잡으려고 했는데.
사흘 거리라는 게 대충 84에서 90 km 정도라고 생각하면.
서울에서 인천까지의 거리의 두 배 좀 안 되는 정도라는 거니까.
너무 멀지도.
이틀보다 좀 더 가야하는 거리, 정도로 잡을까나.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할지도.
빡세게 이틀 이동하면 갈 수는 있는데.
반드시 가야하는 이유가 없으면 굳이 힘내서 가기엔 귀찮고, 힘들고.
그런 느낌으로.
그러고 보니 길을 아는가, 의 문제도 있겠네요.
마냥 북쪽으로 가면 나온다, 동쪽으로 가면 나온다, 로만 알고 있으면 안 될거고.
그리고 제대로 된 길이 나있는가 나있지 않은가의 문제도 있겠고.
거기까진 귀찮으니까 길은 제대로 나있고 표지판도 제대로 배치되어 있다고 생각해두자.
뭐, KM 만 가지고는 사실 알기 어렵지요.
도로 사정이 얼마나 괜찮으냐. 당나귀라도 하나 데리고 있느냐 없느냐.
산행이 끼어있느냐 없느냐. 짐이 얼마나 있고 없느냐. 당사자가 얼마나 급하냐 급하지 않냐.
그때 그때 다를테니.
뭐어, 그것도 그렇죠오.
다만 일반화하려면 딱히 급한 사정이 없을 때
도보로 적당히 이동해서 얼마나 걸리는가,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으니까.
덤으로 한번 가본 길이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지.
피로감이라거나, 체력 배분이라거나.
그것도 그럴지도오. 표현 하나 생각하는데 고려할 게 너무 많다아.
뭐, 이런건 고민을 해본 것 만으로도, 나중에 그럴듯한 워드를 넣기 편해지니까.
이를테면 여행길에 문제가 생긴 이유를 좀 더 디테일하게 들 수 있겠지.
도로가 진흙범벅이었다. 숲이 빼곡했다. 초행길이라 체력배분을 잘못했다.
마차가 지나갈 수 없는 길이었다. 이런 저런 변명거리를 만들기 좋을거 같고.
사실 공후백자남 의 작위는 중국식 작위로 변형해서 부른 결과물이라, 그 의미나 의도.
구도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었던거 같아.
작위는 높고 낮음, 권력의 강함 약함을 대변하기보다.
맡은 역할 내지 귀족으로서의 기능을 말해주는 측면도 있다던가?
권력의 고저는 작위 이상으로 캐바캐라던가.
귀족귀족 (고민)
세계관의 비밀, 같은 것만 계속 생각해두다 보니
정작 귀족이랑 왕 같은 것에 대해서는 고민을 안 해봤었네.
어느 정도는 생각해둬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나.
뭐, 인간세계 설정은 원하는 구도를 짜두고, 이유를 나중에 덧붙이면 되는거니까.
대충 이미지만 잡아두면 좋지 않을까?
인간사란 기기묘묘, 신기방기 하므로.
같은 환경, 같은 세계에 기반해도, 전혀 다른 권력구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충 대륙을 다섯 구획으로 나눠서 생각할까.
동쪽. 무림.
-왕 없음. 가문들과 문파들의 지배를 받았었음.
-지금은 대부분의 가문들이 쫄딱 망했음.
서쪽.
-왕 없음. 섭정 있음.
중앙.
남쪽, 아르카디아.
-이 풍요로운 대륙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땅.
북쪽, 영구동토.
-이 대륙의 유일하게 축복받지 못한 땅.
서쪽의 땅에는 왕가가 없고 섭정 가문이 존재한다.
섭정 가문은 '언젠가 돌아오실 왕을 위해 왕좌를 비워두는 자들'.
일단은 그런 프로파간다 아래에서 왕국을 통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왕 있는 걸로 하고.
대충 북쪽에서 몬스터가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온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