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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ㄹ
2025년 1월 24일 (금) 오후 03:59:33 - 2025년 1월 24일 (금) 오후 03:59:33
2025년 1월 24일 (금) 오후 03: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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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5일 (목) 오전 03:38:10
길은 짧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어이가 없었다.
돌아가기까지 가야 할 길은 못해도 오키로미터 이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이리도 쉽게 열릴 수 있단 말인가.
공간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뒤바뀔 수 있나 ?
...아무리 그러한 이적異積을 수도자가 행했다고 해도 ?
"강남은 좋군요."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가장 마지막에 그녀는 걸어나왔다.
걸어나온 뒤 깜빡했다는 듯 그녀는 몸을 돌린 채 균열 안에 무언가를 던져넣었고, 그렇게 갈라진 공간을 손으로 잡고 압축하듯 힘을 줬다.
그러면, 갈라진 공간 그 자체가 다시 제 상태로 이어진 듯 붙었다.
.........말이 되지 않는다.
"공간을 멋대로 열고 닫고, 도약해도. 그 와중에 공간에 칼을 쑤셔박고 움직이는 그대로 베어내려 하는 검귀들이 없다니. 정말이지, 축복받은 땅이 아닐까요 ? "
"...헛소리하지 마라. 혈마血魔의 피를 이은 너에게는 숲 바깥이든 안이든 별 의미없을텐데."
"흠, 농을 받아주시지 않다니 오늘 따라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네요 ? "
장사는 그 모습을 보며 거슬린다는 듯 말했으나, 그녀는 그저 화사하게 웃을 뿐이다.
혈마의 맥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그에 대해 부정하는 말은 없고.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신교의 본단이라는 말에, 사저는 침묵하며 내 등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정리하자면.
"...왜, 천마신교의 본단이 한국에 있습니까 ? "
"흐응 ? "
"천마신교의 본단이라고 하면 십만대산十萬大山...신강 저 편에나 있다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 그런데, 왜...? "
"신강이라..."
세계를 이 꼴로 만들었다는 마교의 중심 세력이 서울숲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이야말로..그렇게 마교에 머무르고 있는 마도수사라는 뜻이었다.
개중에서도, 혈마의 피를 이었다는 말을 생각하면.
"그리운 이름이네요. 제가 태어나기 한 오백여년은 전에 본교가 버린 땅같기는 하지만요.
뭐 사실 그곳이 진짜 본단도 아닙니다만...후배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답니다."
...내가 아는 무협지 속 마교에서 혈교니 혈마니 하는 곳의 위상을 생각할 때.
그녀가 한 말은 분명 거짓일 가능성이 적었다.
그러니 이어지는 말도 거짓말일 가능성이 적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신교神敎란 즉 신神이 거하는 곳을 뜻하며. 일백여년 전 마지막 천마께서는 이곳에서 태동하셨으니.
하夏의 제관을 쓰신 분을 위해 상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마도칠종魔道七宗은 자연스레 모두 이 땅에 집결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내게 거짓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럴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무력만이라면 결단기 수사에 근접하거나, 준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기에 알았다.
그런 내가 어떠한 영기의 기척조차, 존재를 의식으로 인지조차 하지 못할 수준이라면...그녀야 말로, 생전의 멸목령에 가까운 혹은 그 이상의 존재이리라는 판단.
그런 이라면,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다.
'그녀라면...'
그런 말로 사실과 거짓을 가릴 정도의 의미조차 없을 것이 틀림없을 테니까.
그녀가 순간적으로 발했던 공간을 편집하는 법술의 격류만으로도 그걸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신을 넘어, 도리어 존재치 않는 체감에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럼 이만 꺼져라 천잔공마天殘空魔. 안전한 귀환을 위해 내 것에게서 대가로 받아간 것이 컸을텐데."
내려다보던 장사가 고까운 듯 뇌까렸고.
천잔공마로 불린, 검은 색 머리와 검은 색 눈을 가진 여인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그럴수야 없지요. 아무리 그녀에게서 용정龍晶을 받았다고 하지만...공은 공이고, 사는 사."
그리고 그녀가 나를 돌아다본 채로 그 웃음을 내게 전했다.
별 생각이 없었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ㅡ 그우우웅...
그걸 느낀 순간, 어느새인가 손이 칼을 쥔 채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고 있었고, 도중에 손이 저절로 멈춰있었다.
마치 더 이상 뽑아선 안 된다는 것처럼 그리 진동했고, 그와 별개로 사저의 몸이 한층 더 떨린 듯 했다.
여인은 그런 걸 개의치 않았다.
그저 몸에 걸친 검은 용포를 사락거리며 걸어올 뿐이다.
"강제로 이런 기재를 제 치맛자락에 숨겨놓고 아껴먹겠다 하실지 모르는데, 어찌 멀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가까이 온 채, 내 턱을 손으로 잡았다.
잡고, 내려진다.
어느샌가 180cm에 달할 정도로 커진 나보다 체구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저 오연히.
숨결이 오갈 정도의 거리에서, 눈을 마주보고 있었고.
"물론, 이 아이가 스스로 가지 않겠다고 택한다면 모르겠지만..."
"용, 정이라는 건..."
"어머나."
그 때 등에 업힌 사저가 떨면서 말을 꺼내면.
난 내가 왜 칼을 뽑았는지 알 것 같아졌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그야 원정元精이지요.
대체 시대가 어느 때인데 어떤 미친 선수仙獸가 하계에 혈통을 뿌렸나 했더니, 몸 안에 용정의 파편을 품고 있는 이가 바로 거주지 코앞에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그런 걸 본 이상..."
내가 봐온 여느 마인같은 쓰레기였다.
"취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 들밭에 보석이 굴러다니고 있는데."
"원정을...수, 명을 맡는 선천지기를...가져가...? "
"예에, 고작 백년어치 정도 밖에 가져가지 않고서 당신들을 구해줬다구요 ?
당신들을 노리면서 틈을 보고 있던 명혈귀도 하나 죽였고."
정정해서, 개중에서 제일의 쓰레기였다.
도리어 안심이 될 정도로, 내가 아는 선협의 수도자같아서 경직되어 있던 몸이 풀릴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각의 울림과, 영문에 쌓인 [깨달음]이 몸을 자연히 움직이게 했다.
그녀와 엮일 시 [죽음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본능]과, [그녀의 손에 의해 떳떳하게 살지 못할 수 있다는 직감]. 그 두가지 상념이 천기에 의해 떨어진 운運처럼 느껴진다. 그것을 느꼈을 때, 그러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러고도 팔이 멈춘 건 이성이 알기 때문이었겠지.
벗어나는 것은 둘째치고, 뽑으면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죽을 정도의 격차가 있다.
그걸 너무 명정히 이해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버린 그것이..."
"사람 가죽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던 쪽 말인가요 ?
자기모순이나 자기파괴욕이라도 가지고 있는건가 해서 흥미로우니 들고 있었는데, 오기 전에 버리는 걸 깜빡했던지라."
등에 업힌 사저는 멍하니 멈춘 채 멈춰있었다.
수명을 잃었다는 건 아마도 뇌미자에게 벌어진 듯한 일. 그러니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받아들이며 이해하는 듯 보였고.
나는 형탈을 그저 심심풀이로 죽였다는 듯한 그 말에.
비명을 내지르는 영문과...이미 정해뒀던 마음이 더해진 채.
간결하게 마음을 정했다.
"가면 뭘 합니까 ? "
"역시, 이런 것도 안 알려주신 건가요 귀마 ? "
"...나에게 그런 걸 알릴 의무는 없을텐데. 애초에, 난 네 조부의 밑이 아니다. 배분으로 치면 두 배분은 밑에 있을 것이 사사건건..."
"함께 종문宗門을 이루는 칠대마도천七大魔道天이면서 말이 심하시네요. 아무리 저나 당신이나 멸망한 문파의 문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지만서도.
그리고 후배님에 대한 답...가면 뭘하냐고 묻는다면..."
"강해질 수 있습니까 ? "
가는 것이 맞았다.
"강해질 수 있냐, 라."
그 한 마디에 그녀의 눈이 호선을 그린다.
안 그래도 가까웠던 눈이 점차 가까워져 왔다.
"재미있는 말이네요. 천하제일天下第一, 천하최강天下最强이야말로 도道의 정점이라 믿는 교인에게 묻기에는 차고 넘칠 정도로."
그 눈의 안에서 일렁이는, 무언가, 너무나도 거대하고 정적인 [깨달음]이라는 것을 보면서 떠올렸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상념을, 그녀는 그녀 자신의 깨달음으로 삼아 영문 안에 쌓아뒀노라고.
그렇게 쌓고 또 쌓고 또 쌓을 만큼, 그녀는 강하며 ㅡ 도리어, 그녀만이 강한 게 아니라는 걸.
"물론이지요. 도리어 반대입니다."
이런 존재가 있기 때문에, 가서 죽음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서 가지 않는 게 아니라.
이런 존재가 당장 강 너머에 있는데도 모른 채 시간을 흘려보내다, 그런 것을 모른 채 압살당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가야 한다.
죽음을 피하겠노라고 생각하며, 눈 앞에서 죽음에 가까운 함정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 여기기에 다른 이를 들이미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고작해야 하루도 되지 않았다.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겠지요. 소협이 만일 이곳에 오겠노라고 말한다면."
단 하루만에, 스스로 품은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 뜻을 꺾지 않기 위해 죽음으로 발걸음을 내딛기로 했고, 그것을 손에 쥐고자 움직이기로 한 것 아니었나.
영각靈覺은 그 선택이 옳지 않다는 듯 경고했으나, 그럼에도 확신한다.
그것을, 그녀가 증명했다.
"알려드리지요. 왜 그런지를."
그녀가 그렇게 가까이 선 채 귓가에 흘려넣은 말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ㅡ ㅡㅡㅡㅡㅡ.
내 자아가, 의식의 떨림이, 한 순간에 이어진 몸뚱아리가.
방금 전에 들은 그 모든 것이 진실임을 긍정했을 때.
...나는 그 선택을 긍정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제외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든 말이 진실이라면. 그러면, 가시겠나요 ? "
그렇기에 이어진 마교로 가겠냐는 말에 긍정이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도망치라 말했었던 사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침묵하며 내려갔다.
상아는 마치 내 얼굴이 보고 싶지 않다는 듯 말도 없이 어느샌가 사라져버렸다.
장사는 그 상황에 그저 한숨을 내쉬면서 꺼지라는 듯 손을 내저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선 그녀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그런 나를 보고 있었다.
" ㅡ 예, 그럴 것 같았지요."
그 반응에 표정이 일그러질 것 같았으나, 머릿속을 오가는 건 거듭되는 생각 뿐이다.
그 생각을 놓지 못했다.
가겠다고 결정했던 것은 변함이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오가는 말만이 거듭될 뿐이었다.
"소협은 할아버님을 닮은 듯 했으니까."
그녀가 남은 시간은 3일이라고 말했다던가, 기한이 되면 특별히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말한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흘려넘겼다.
그저 들은 말만이 머릿속을 채운 채 멈추지 않았다.
멍하니 선 채 그것을 떠올리다, 침묵하고 고개를 숙일 때까지도.
말에 대한 생각과.
그 말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한 이 선택이, 이후의 내 삶이란 걸 뒤바꿀 것이라는 상념이 계속되고 있었다.
벽의 너머에서 흑견귀가 내 몸을 이끌고 벽 안으로 데려갈 때까지.
그 이후까지도.
계속해서...
그 말을 떠올렸다.
*
ㅡ 우리는 지금 천마신공天魔神功을 파해破解하기 위해 그것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익힌 이들끼리 서로 잡아먹고, 또 하나의 신마神魔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그 끝을 보기 위해 내달리면서.
ㅡ 일장一章 • 필생즉사必生卽死 - 完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어이가 없었다.
돌아가기까지 가야 할 길은 못해도 오키로미터 이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이리도 쉽게 열릴 수 있단 말인가.
공간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뒤바뀔 수 있나 ?
...아무리 그러한 이적異積을 수도자가 행했다고 해도 ?
"강남은 좋군요."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가장 마지막에 그녀는 걸어나왔다.
걸어나온 뒤 깜빡했다는 듯 그녀는 몸을 돌린 채 균열 안에 무언가를 던져넣었고, 그렇게 갈라진 공간을 손으로 잡고 압축하듯 힘을 줬다.
그러면, 갈라진 공간 그 자체가 다시 제 상태로 이어진 듯 붙었다.
.........말이 되지 않는다.
"공간을 멋대로 열고 닫고, 도약해도. 그 와중에 공간에 칼을 쑤셔박고 움직이는 그대로 베어내려 하는 검귀들이 없다니. 정말이지, 축복받은 땅이 아닐까요 ? "
"...헛소리하지 마라. 혈마血魔의 피를 이은 너에게는 숲 바깥이든 안이든 별 의미없을텐데."
"흠, 농을 받아주시지 않다니 오늘 따라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네요 ? "
장사는 그 모습을 보며 거슬린다는 듯 말했으나, 그녀는 그저 화사하게 웃을 뿐이다.
혈마의 맥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그에 대해 부정하는 말은 없고.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신교의 본단이라는 말에, 사저는 침묵하며 내 등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정리하자면.
"...왜, 천마신교의 본단이 한국에 있습니까 ? "
"흐응 ? "
"천마신교의 본단이라고 하면 십만대산十萬大山...신강 저 편에나 있다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 그런데, 왜...? "
"신강이라..."
세계를 이 꼴로 만들었다는 마교의 중심 세력이 서울숲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이야말로..그렇게 마교에 머무르고 있는 마도수사라는 뜻이었다.
개중에서도, 혈마의 피를 이었다는 말을 생각하면.
"그리운 이름이네요. 제가 태어나기 한 오백여년은 전에 본교가 버린 땅같기는 하지만요.
뭐 사실 그곳이 진짜 본단도 아닙니다만...후배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답니다."
...내가 아는 무협지 속 마교에서 혈교니 혈마니 하는 곳의 위상을 생각할 때.
그녀가 한 말은 분명 거짓일 가능성이 적었다.
그러니 이어지는 말도 거짓말일 가능성이 적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신교神敎란 즉 신神이 거하는 곳을 뜻하며. 일백여년 전 마지막 천마께서는 이곳에서 태동하셨으니.
하夏의 제관을 쓰신 분을 위해 상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마도칠종魔道七宗은 자연스레 모두 이 땅에 집결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내게 거짓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럴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무력만이라면 결단기 수사에 근접하거나, 준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기에 알았다.
그런 내가 어떠한 영기의 기척조차, 존재를 의식으로 인지조차 하지 못할 수준이라면...그녀야 말로, 생전의 멸목령에 가까운 혹은 그 이상의 존재이리라는 판단.
그런 이라면,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다.
'그녀라면...'
그런 말로 사실과 거짓을 가릴 정도의 의미조차 없을 것이 틀림없을 테니까.
그녀가 순간적으로 발했던 공간을 편집하는 법술의 격류만으로도 그걸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신을 넘어, 도리어 존재치 않는 체감에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럼 이만 꺼져라 천잔공마天殘空魔. 안전한 귀환을 위해 내 것에게서 대가로 받아간 것이 컸을텐데."
내려다보던 장사가 고까운 듯 뇌까렸고.
천잔공마로 불린, 검은 색 머리와 검은 색 눈을 가진 여인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그럴수야 없지요. 아무리 그녀에게서 용정龍晶을 받았다고 하지만...공은 공이고, 사는 사."
그리고 그녀가 나를 돌아다본 채로 그 웃음을 내게 전했다.
별 생각이 없었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ㅡ 그우우웅...
그걸 느낀 순간, 어느새인가 손이 칼을 쥔 채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고 있었고, 도중에 손이 저절로 멈춰있었다.
마치 더 이상 뽑아선 안 된다는 것처럼 그리 진동했고, 그와 별개로 사저의 몸이 한층 더 떨린 듯 했다.
여인은 그런 걸 개의치 않았다.
그저 몸에 걸친 검은 용포를 사락거리며 걸어올 뿐이다.
"강제로 이런 기재를 제 치맛자락에 숨겨놓고 아껴먹겠다 하실지 모르는데, 어찌 멀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가까이 온 채, 내 턱을 손으로 잡았다.
잡고, 내려진다.
어느샌가 180cm에 달할 정도로 커진 나보다 체구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저 오연히.
숨결이 오갈 정도의 거리에서, 눈을 마주보고 있었고.
"물론, 이 아이가 스스로 가지 않겠다고 택한다면 모르겠지만..."
"용, 정이라는 건..."
"어머나."
그 때 등에 업힌 사저가 떨면서 말을 꺼내면.
난 내가 왜 칼을 뽑았는지 알 것 같아졌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그야 원정元精이지요.
대체 시대가 어느 때인데 어떤 미친 선수仙獸가 하계에 혈통을 뿌렸나 했더니, 몸 안에 용정의 파편을 품고 있는 이가 바로 거주지 코앞에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그런 걸 본 이상..."
내가 봐온 여느 마인같은 쓰레기였다.
"취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 들밭에 보석이 굴러다니고 있는데."
"원정을...수, 명을 맡는 선천지기를...가져가...? "
"예에, 고작 백년어치 정도 밖에 가져가지 않고서 당신들을 구해줬다구요 ?
당신들을 노리면서 틈을 보고 있던 명혈귀도 하나 죽였고."
정정해서, 개중에서 제일의 쓰레기였다.
도리어 안심이 될 정도로, 내가 아는 선협의 수도자같아서 경직되어 있던 몸이 풀릴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각의 울림과, 영문에 쌓인 [깨달음]이 몸을 자연히 움직이게 했다.
그녀와 엮일 시 [죽음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본능]과, [그녀의 손에 의해 떳떳하게 살지 못할 수 있다는 직감]. 그 두가지 상념이 천기에 의해 떨어진 운運처럼 느껴진다. 그것을 느꼈을 때, 그러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러고도 팔이 멈춘 건 이성이 알기 때문이었겠지.
벗어나는 것은 둘째치고, 뽑으면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죽을 정도의 격차가 있다.
그걸 너무 명정히 이해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버린 그것이..."
"사람 가죽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던 쪽 말인가요 ?
자기모순이나 자기파괴욕이라도 가지고 있는건가 해서 흥미로우니 들고 있었는데, 오기 전에 버리는 걸 깜빡했던지라."
등에 업힌 사저는 멍하니 멈춘 채 멈춰있었다.
수명을 잃었다는 건 아마도 뇌미자에게 벌어진 듯한 일. 그러니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받아들이며 이해하는 듯 보였고.
나는 형탈을 그저 심심풀이로 죽였다는 듯한 그 말에.
비명을 내지르는 영문과...이미 정해뒀던 마음이 더해진 채.
간결하게 마음을 정했다.
"가면 뭘 합니까 ? "
"역시, 이런 것도 안 알려주신 건가요 귀마 ? "
"...나에게 그런 걸 알릴 의무는 없을텐데. 애초에, 난 네 조부의 밑이 아니다. 배분으로 치면 두 배분은 밑에 있을 것이 사사건건..."
"함께 종문宗門을 이루는 칠대마도천七大魔道天이면서 말이 심하시네요. 아무리 저나 당신이나 멸망한 문파의 문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지만서도.
그리고 후배님에 대한 답...가면 뭘하냐고 묻는다면..."
"강해질 수 있습니까 ? "
가는 것이 맞았다.
"강해질 수 있냐, 라."
그 한 마디에 그녀의 눈이 호선을 그린다.
안 그래도 가까웠던 눈이 점차 가까워져 왔다.
"재미있는 말이네요. 천하제일天下第一, 천하최강天下最强이야말로 도道의 정점이라 믿는 교인에게 묻기에는 차고 넘칠 정도로."
그 눈의 안에서 일렁이는, 무언가, 너무나도 거대하고 정적인 [깨달음]이라는 것을 보면서 떠올렸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상념을, 그녀는 그녀 자신의 깨달음으로 삼아 영문 안에 쌓아뒀노라고.
그렇게 쌓고 또 쌓고 또 쌓을 만큼, 그녀는 강하며 ㅡ 도리어, 그녀만이 강한 게 아니라는 걸.
"물론이지요. 도리어 반대입니다."
이런 존재가 있기 때문에, 가서 죽음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서 가지 않는 게 아니라.
이런 존재가 당장 강 너머에 있는데도 모른 채 시간을 흘려보내다, 그런 것을 모른 채 압살당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가야 한다.
죽음을 피하겠노라고 생각하며, 눈 앞에서 죽음에 가까운 함정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 여기기에 다른 이를 들이미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고작해야 하루도 되지 않았다.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겠지요. 소협이 만일 이곳에 오겠노라고 말한다면."
단 하루만에, 스스로 품은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 뜻을 꺾지 않기 위해 죽음으로 발걸음을 내딛기로 했고, 그것을 손에 쥐고자 움직이기로 한 것 아니었나.
영각靈覺은 그 선택이 옳지 않다는 듯 경고했으나, 그럼에도 확신한다.
그것을, 그녀가 증명했다.
"알려드리지요. 왜 그런지를."
그녀가 그렇게 가까이 선 채 귓가에 흘려넣은 말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ㅡ ㅡㅡㅡㅡㅡ.
내 자아가, 의식의 떨림이, 한 순간에 이어진 몸뚱아리가.
방금 전에 들은 그 모든 것이 진실임을 긍정했을 때.
...나는 그 선택을 긍정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제외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든 말이 진실이라면. 그러면, 가시겠나요 ? "
그렇기에 이어진 마교로 가겠냐는 말에 긍정이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도망치라 말했었던 사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침묵하며 내려갔다.
상아는 마치 내 얼굴이 보고 싶지 않다는 듯 말도 없이 어느샌가 사라져버렸다.
장사는 그 상황에 그저 한숨을 내쉬면서 꺼지라는 듯 손을 내저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선 그녀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그런 나를 보고 있었다.
" ㅡ 예, 그럴 것 같았지요."
그 반응에 표정이 일그러질 것 같았으나, 머릿속을 오가는 건 거듭되는 생각 뿐이다.
그 생각을 놓지 못했다.
가겠다고 결정했던 것은 변함이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오가는 말만이 거듭될 뿐이었다.
"소협은 할아버님을 닮은 듯 했으니까."
그녀가 남은 시간은 3일이라고 말했다던가, 기한이 되면 특별히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말한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흘려넘겼다.
그저 들은 말만이 머릿속을 채운 채 멈추지 않았다.
멍하니 선 채 그것을 떠올리다, 침묵하고 고개를 숙일 때까지도.
말에 대한 생각과.
그 말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한 이 선택이, 이후의 내 삶이란 걸 뒤바꿀 것이라는 상념이 계속되고 있었다.
벽의 너머에서 흑견귀가 내 몸을 이끌고 벽 안으로 데려갈 때까지.
그 이후까지도.
계속해서...
그 말을 떠올렸다.
*
ㅡ 우리는 지금 천마신공天魔神功을 파해破解하기 위해 그것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익힌 이들끼리 서로 잡아먹고, 또 하나의 신마神魔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그 끝을 보기 위해 내달리면서.
ㅡ 일장一章 • 필생즉사必生卽死 -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