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다목적】 작은 새가 새롭게 우는 마을 - 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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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2 【잡담/다목적】 작은 새가 새롭게 우는 마을 - 010 (5000)

종료
#0코토리◆EXiz53Z8JG(XVlk1Zg10W)2025-07-01 (화) 17: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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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새가 느긋하게 우는 마을의 안내문 -】

「【핵심】: 작은 새가 느긋하게 우는 마을은 [참치 인터넷 어장 규칙]을 준수합니다.
또한 2019년 7월 14일 기준으로 생긴 [정치/사회 이슈에 관한 규칙]을 준수합니다.」

「 1. 나메와 대리 AA를 허용하며,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토론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 2. 하지만 불판을 내려고 하거나 그럴 기미가 보일 시 (어장주의 주관적 판단), 하이드 & 밴 조치.」
「 3. 느긋함을 지향하고, 상대를 대하는 예의와 매너를 갖추는 선에서 자유를 지향합니다.」

「 4. 상어아가미에 물릴만한 주제는 주의하고, 상대방을 배척하는 친목질에 주의해주세요.」
「 5. 기분 나쁘게 하거나 받지않고, 상처를 입히거나 상처 받지않도록 즐겁게, 느긋하게 즐겨주세요!」
「 6. 타 잡담판의 일은 타 잡담판에서 일어난 곳에서 해결할 것.가지고 와도 받지 않습니다.」

「 7. [고어 및 혐오 소재]를 올리고자 할 때는 코토리나 혹은 참치들의 양해를 구해주세요.」
「 8. 마을은 다목적판이기에, 마을에서 창작하거나, 하지않거나는, 참치들의 자유입니다! 」
「 9. 거듭해서 참치 여러분들이 '마을에 머무를 때'는 느긋하고 편하고 즐겁게 즐겨주세요! 」

【- 알아두면 유용한 링크 -】

「 알아두면 유용한 링크는 >>1을 참고해주세요.」

【- 작은 새가 새롭게 우는 마을 링크 -】

「 이전 마을: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anchor/1597050925/304/307

「 001번째 마을: anctalk>2084>
「 002번째 마을: anctalk>2255>
「 003번째 마을: anctalk>2494>

「 004번째 마을: anctalk>2610>
「 005번째 마을: anctalk>2825>
「 006번째 마을: anctalk>3003>

「 007번째 마을: anctalk>3219>
「 008번째 마을: anctalk>3848>
「 009번째 마을: anctalk>4627>

「 010번째 마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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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2코토리◆EXiz53Z8JG(rwZPTIInYu)2025-07-16 (수) 13: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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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살아있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살아있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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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루센 켈러헨】 ・ 【나이: 만 31】 ・ 【종족: 인간→신(神)】 ・ 【이능 여부: 有】

【좋아하는 것: 친절, 도덕, 행복】 ・ 【싫어하는 것: 증오, 탐욕, 억압】 ・ 【운명의 날: 「환주」에 발을 들인 날】

【마도계통: 자아(自我)】 ・ 【마도비전: 기억과 영혼】 ・ 【마도계제: 입문→신(神)】

【기원: 평화】 ・ 【경지: 인간의 평균치】 ・ 【가치관: 의무, 권리, 책임】 ・ 【별칭: 신동, 빛을 가져다주는 자,
루루Lulu

【소속: 무소속】 ・ 【테마곡: 「생명의 수호자」 - https://youtu.be/_OeHh59Lr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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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背景)】

이 세상에는 본래 「인간」만이 존재했다. 인간만이 이 땅에서 지성을 세울 수 있고,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으며, 도덕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 인식은 단 한 명의 '인간'으로 인해서 깨지고 만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자들은 「올 것이 왔다」고 되뇔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는 「밀레니엄 시대」에서 태어난 「한 어린아이」로부터 시작되죠. ──좋습니다. 저와 함께 살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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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화창하지 않은 시기에 어미의 몸에서 나온 이 아이는, 첫 단추부터 어긋나 여러 수술을 거친 끝에, 가까스로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도 부모의 관심은 아이를 향했지만, 이 아이는 부담스러운 듯 그 나이에 걸맞은 울음소리를 내며 세상에 자신이 있음을 알렸다.

이 아이의 이름은 「루센」. 부모의 나라에서 「빛」이라 칭하던 말의 기원을 빌려와 지었으며,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를 빛내며 자라나기를 빌었다.

쪽빛과도 같던 유아기를 거쳐, 루센의 입에서 제대로 "엄마"와 "아빠"를 부르는 혀짧은 소리를 내고,
루센과 동시기에 태어난 또래들보다 더 어린 시기에 문장을 만들 무렵, 부모는 이 아이가 신동(神童)임을 깨달았다.

부모는 자신들이 가진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친척들에게 손을 벌리기엔 서로가 여력이 없었던 상황.
가진 것이 많지는 않더라도 부모되는 자신들이 노력하여 우리의 아이에게 좁쌀만한 도움이라도 쥐여줘야만 했다.

가난하진 않았지만, 대다수가 가진 재산이 자신들에겐 없었으니, 항상 많은 노력을 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듯, 루센은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비록 만점짜리는 아니었고, 금메달도 아니었지만, 부모와 루센에게는 그것이 무엇보다도 큰 선물이었다.

루센의 가족은 그 시점에서부터 빈곤으로부터 벗어났다. 맞벌이는 줄어들고, 가족이 함께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또한, 루센은 부지런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가족들이 천천히 움직여도 달리는 것을 딱히 멈추진 않았다.

그렇게 집안의 신동, 국가의 자랑, 루센은 세상의 풍파 하나 겪는 일 없이 그들의 품속에서 따뜻하게 자라났다.

루센의 나이 17살, 하루를 보내던 나날이 쌓이고 쌓여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루센에게는 한 가지의 취미가 생겨났다.
그 취미가 바로 「영상」이었다. 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좋았지만, 루센은 영상 속을 「체험」하는 것에 좀 더 가치를 두었던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하는 이 시대는 계속해서 변해갔고, 이 대격변 속에서 루센의 마음을 사로잡은 물건들이 보였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영상들, 이제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 어디든 '인터넷'에 연결시켜줄 수 있는 무선 통신 기술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VR(버추얼 리얼리티)기기들이었다. 그 당시에는 상당히 뒤떨어진 사제품에 가까운 물건들이었지만…….

제아무리 어떤 어른보다 뛰어났다고 해도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루센은 부모에게 졸라서 눈에 든 것을 모두 사들였다.
그렇게 모두 사들인 걸로 다양한 세상을 접했다. ──그래, 세상은 정말로 넓다. 어렸을 때도, 어른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세상의 넓음을 알게 되는 동시에 이 세상에 숨겨진 이면도, 괴담도, 악담도 같이 루센의 머릿속에 몰려왔다.
자신의 육체와 지능은 부모의 정성이 있었고, 학교의 후원이 있었으며,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결실이자 성취라고 할 수 있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천재’라고 평가받은 루센은, 자신이 모르는 세상 너머에서 「사람들의 흐느낌」을 들었다.
사람이 고작 두 손가락으로 잡을 수 있는 동전 하나에 목숨을 건다. 사회적 위치, 태생으로 차별받고 짓밟히는 사람들의 소리.

아니, 이유가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꺼려진다」고 느껴서 사람을 짓밟는 일까지 있었으니까.
영겁과도 같았던 그 소리들은, 한순간에 루센이 정신차리고, 모든 전자기기의 전원을 꺼버리면서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루센에게 그 소리들이 준 충격은 거대했다. 학교생활은 원만했고, 교우관계는 나쁘지 않았으며, 생활은 유복했으니까.
부모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의 기쁨과 행복을 받고 자라난 아이는 처음으로 듣는 악의와 무지, 증오에 찌그러졌다.

집안에 틀어박힌 게 두 달 정도였을까.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렀을 때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흘러있었다.

루센은 괜찮다고 말했다. 루센을 걱정하는, 위로하는, 다그치는 목소리들은, 지금은 이 세상을 「장식」하는 소음에 불과했다.
루센이 일상에 복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 없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태로운 자신을 감추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정신을 비우고 정처 없이 걸어갔을 때, 한 이상한 마을에 도착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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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이상하게 안개가 자욱했다. 앞이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깊게 깔린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어렴풋이 대상의 모습이 흐린 상태로 보이는 정말 희한한 기상현상이었다. 안개에 신기루 현상도 있었던가?

그렇게 계속 걸어가던 도중, 루센은 희한한 사람을 만났다. ──아니, 토끼의 귀를 단 인간들을 만났다.
토끼귀 장식을 쓴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볼법한 평범한 소녀처럼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루센과 그녀들의 만남은 기묘하게 이루어졌다. 형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이 안갯속에서,
옛날 옛적에 건축한 건물의 양식들과, 루센을 보고서 깜짝 놀라면서 희한하게 바라보는 토끼 소녀들까지.

루센은 동화같은 풍경에 잠시 넋을 놓았지만, 토끼 소녀들은 루센의 손을 끌고 안개를 헤쳐나갔다.

그렇게 손을 잡히고 안갯속을 헤쳐나가니, 안개 바깥에 보이는 희한한 풍경이 루센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 안개만 해도 희한했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이 마을 같은 곳은,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거기에 「세계수」같은 것까지 자리 잡고 있었기에, 경이로운 풍경이라고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토끼 소녀들은 왜 자신을 이곳에 인도한 걸까? 그런 생각(의문)이 드는 그 순간, 토끼 소녀들이 손을 놓는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도착했어! 안개의 숲에서 헤매고 있는 인간은 정말 오랜만에 보네."라고.
안개의 숲…? 아까 내가 걸어가고 있었던 곳이 숲이었던 건가? 아니, 숲이라고 볼만한 것은 없었는데…?

그런 생각과 함께 루센은 소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는 어디죠? 안개는 뭔가요?"라고.
그 뒤에 바로 "숲을 헤매고 있다는 건…?"이라고 물어보기까지. 루센의 질문 공세에 토끼 소녀들은 곤란해했다.

토끼 소녀들은 당황해하면서 서로에게 눈길을 주다가, 리더 같은 소녀가 나와서 질문에 대답했다.
그리고 리더로 보이는 토끼 소녀가 루센의 질문에 상세하게 이야기해준 것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구와 독립된 공간 '환주(幻舟)'. 뭐, 이 이름은 어디까지나 토끼 소녀들이 부르는 이름이라고 한다.
환주라는 이름 말고도 '여러 이름'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은 이쪽이 입에 맞아서 환주라고 부른다나.

"잠깐만요. 지구와 독립된 공간…이라고요?" "뭐, 그렇지?" "저는 아까까지 지구에 있었는데…?"
"으응── 혹시나 싶어서 '지구'와 연결해놓은 공간이 여럿 있었는데, 네가 그 공간 중 하나를 밟은 거구나?"

"그, 그건 이해했지만… 어째서 지구와 독립된 공간인 거죠?" "외적들이 지구에 와있기 때문이야."
"외적…?" "정확히 말하면 그 본체들은 아직 오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 녀석들도 머리가 있는 모양이야."

"그 말은?" "지구의 땅과 인간들을 건드려서 「더러움」을 심화시키고, 환상종을 몰아내고자 했거든."
"이 별이 인간들의 것이 된지는 오래였지만─ 원래는 한주먹거리였다구." "외적들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 거군요?"

"그래. 대체 뭘 건드렸는진 모르겠지만… 한주먹 거리들이 쌔진 건 그렇다 쳐도, 못 살아먹겠더라고."
"인간들이 강해진 건 그렇다 쳐도… 못 살겠다는 건…?" "우리들의 신비를 갉아먹는 더러움이 범람한 거지."

"뭐, 겉으로 일어난 것만 보자면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일어난 인간들의 핍박을 피해서 온 거지만─"
"진실은 외적의 간섭으로 강해진 인간들과, 더러움으로 범람하는 땅 때문에 환주를 두 번째 고향으로 삼은 거군요."

"뭐야, 잘 이해했잖아?" "그렇다면 이 환주라는 공간은…" "그래. 지구와는 독립적인 공간이야."
"독립적인 공간이면서도 '이동'하는 공간이라고 해야할까?" "이동하는 이유는… 역시 그 '외적'들 때문에?"

"고정된 공간이면 외적에게 언제 간섭당할지 모르잖아? 뭐, 처음부터 이동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구에 있는 환상종들은 그런 더러움조차 무시하는 환상종들밖에 없어. 격이 남다른 환상종들이지."

"아까 지구와 연결해놓은 공간이 여럿 있었다고 했었지? 그것들이 저들을 위해서 마련된 거야."
저런 환상종 중에서도 인간과 인접한 곳에서 사는 경우가 있기에, 인간계와 인접해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나.

안개는 자신들을 알고 있는 일부의 인간들을 제외하면, 이곳에 오지 못하게끔 만들어놓은 결계라고 한다.

그다음, 헤매고 있다는 부분은 종종 인간계, 그러니까 루센이 그동안 살고 있던 지구의 인간 세계에서,
자신의 환경에 싫증, 공포 따위를 느끼면, 환주의 보안장치는 인간계의 주민이 아닌 것으로 간주해 방문을 허락한다.

이 현상을 '환상걸음'이라고 말하는데, 환상걸음이란 현상 자체는 자주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환상걸음에 휘말렸어도, 어지간하면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라고 토끼 소녀가 루센에게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너는 환주와 연결된 공간을 밟고, 환상걸음까지 겪은 거니까… 어지간해선 못 돌아가겠네."
토끼 소녀의 설명 덕분에, 루센은 자신이 어째서 헤맸는지를 깨닫고, 충격이 몰려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루센이 침울해하는 것을 느낀 토끼 소녀들은 환주의 도시들을 안내하면서 그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였고──
그렇게 리더 토끼 소녀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이나바 루루'라고 말하며, 루센에게 호의적으로 다가간 것이다.

루센은 자신을 달래주려는 토끼 소녀들의 호의를 받아, 환주에 있는 '환상의 도시'들을 여행했다.
이것이 루센의 첫 번째 여행기이자─ 감히 요약하자면, 자신에게서 도피하는 여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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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잔잔한 물결과 풍경이 깔린 신비로운 마을같은 곳에서, 루센과 토끼 소녀들은 그 땅을 거닐었다.

머리 위에 하늘을 헤쳐가는 조류 아인들과 단순 석조물이었던 것이 갑자기 움직이면서 인사를 건네주었고,
토끼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동물귀와 꼬리를 가지고 행상하고 다니던 수인들이 일행에게 물건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 여정에서 얻은 것은 행복과 조화로움이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이후 인간들이 머무는 거주지에 도착하자, 어느샌가 루센의 마음을 좀먹었던 공허함과 찝찝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또한 머릿속에서 잊고 있었던 현실의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의 바보 같은 고민을 돌이켜보며, 스스로를 '바보같다'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때와 똑같은 감각이 다시 닥쳐왔다. 처음 전자기기를 손에 얻고 이 세상의 온갖 곳을 떠돌아다녔던,
사이버 스페이스(Cyberspace)를 오간 오만가지의 감각과, 루센 자신을 궁지에 몰리게 만들었던 그때의 충격까지 함께.

루센은 소녀 일행과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토끼 소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렇게 있어도 될까?' '여기도 사람이 있는 곳이야.' '빨리 나가지 않으면…' 많은 고민이 루센의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기억, 잠깐의 여행. 지금의 여정이 기억 속에서 반복될 고통을 겪을까봐 너무나도 두려워진 그 끝에,
토끼 소녀들과 환주를 여행하던 도중, 루센은 토끼 소녀들과의 동행을 멈추고,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토끼 소녀들은 점차 혼돈에 잠겨가는 루센의 감정을 바라보기라도 한듯이, 루센의 얼굴을 보고 물어보았다.
'무엇이 그렇게 너를 깊은 밑바닥에 잠기게 하는 거니?' '너를 그렇게 상처입히는 것들은 뭐야?' 이렇게 말이다.

루센은 토끼 소녀들의 질문을 듣고, 몇 분동안 침묵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루센의 어린 시절 이야기, 힘들었던 시기에 스스로 참는 법을 배운 어른의 이야기, 자신을 감싸주었던 친구들의 이야기.
이것과 상반되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 자신보다 더 어렵고 심각한 상태에 처해있는 이들, 세상에 무관심한 사람들 등등…

루센의 이야기에 토끼 소녀들은 아연실색하거나 체념했다는 듯한 한숨을 내뱉었다. 뭐어, 당연할 것이다.
환주로 이사한 이후에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음을 느끼는 소녀들의 한숨이었다. 물론, 루센은 그걸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루센은 그 반응에 위축됐다. 괜한 이야기를 했을까? 조용히 환주를 나갔으면 될 일이었는데….
루센의 잡다한 생각이 스스로를 늪에 잠기게 할 때── 루루가 어깨를 펴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고민들을 날려버리자."

토끼 소녀들이 약간 넋놓은 반응을 보이더라도 토끼 소녀들을 이끄는 루루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루루 자신이 루센을 환주의 도시들로 이끌고 온 것은, 우리들보다 비참해 보였던 인간들을 두고 볼 수 없어서였다.
그렇게 종종 환주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인간을 위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여행시켜주면서 고향으로 인도해주었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려는 인간도 있었고, 일종의 피난민이기에 환주에 정착시켜주는 것도 루루의 임무였다.
──루루는 그런 애매한 상태의 고민을 해결하고자, 루센을 이 환주의 통치자들 중 하나인 「환주원」의 일원을 만나게 해주려 했다.

"여기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만나게 해줄게." 그렇게 토끼 소녀들과 루루, 루센은 두 번째 여행을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루센의 두 번째 여행은, 자기 자신(루센)과 마주 보는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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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는 루센에게 이 여정을 시작하기 앞서, 먼저 자신(루센)의 머릿속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것을 추천하였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만나더라도, 제 고민을 말하지 못하면, 현자가 어떤 지혜를 줘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이유였다.

루센은 '사람의 머릿속을 읽어내는 것이 현자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금방 접어두었다.
어차피 이곳은 자신의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세계이기에, 그 어떤 말을 해도 무의미할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한 손에 펜 하나와 수첩을 들고, 환상걸음과 함께 챙겨왔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이번 여정에서 무엇을 놓쳤는지, 가장 지혜로운 사람에게 무엇을 질문할지, 그리고 자신이 외면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였다.

현대인의 힘은 그다지 보잘것없었다. 물론, 먼 옛날의 인간이 현대인과 비교해서 튼튼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도 창에 찔리고, 검에 베이면 상처를 입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현대인이 상대적으로 퇴화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루루의 제안과 함께 시작한 두 번째 여정은 나 자신과 직면하는 것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시련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몇날 며칠을 걸어 다녔을까? 루센은 일행과 환주를 돌아다니면서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루센 일행이 찍힌 사진, 환주만의 아름다운 자연적인 풍경들, 카메라와 시선을 맞추며 미소를 지어주는 아인들의 모습까지.

환주를 걸어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은, 루센 자신이 '인재'라고 불리면서 놓친 수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주었다.
"휴대폰 용량이 작게 느껴질 줄은 몰랐네요…." "수첩도 다 썼는걸?" "아… 정말이네요…?" "후훗, 기쁜걸∼"

그렇게 고개를 떨군 뒤, 용량이 부족해진 휴대폰과 빼곡한 수첩을 지갑과 가방에 넣고 걸어다닌 그 끝에,
루센은 이윽고 가장 지혜로운 사람의 거처에 도착했다. 뭐어, 대단한 사람이 기거하는 집치고는 평범해보였다.

그렇지만… 집의 소재가 오래된 나무의 기둥에서 창문과 문을 달아놓은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게 신기했었다.
루센은 동화에서 나올법한 집에 설레는 마음을 간직하고, 루센 자신보다 아주 약간 낮은 집의 문을 '툭툭' 두드렸다.

정중하게 문을 두드리자, 그 문을 삐걱이며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고, 양팔에 깃털이 수북하게 돋아나있었다.
그건 날개처럼도 보였고, 손은 인간이 가진 손보다 손가락이 하나 없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이었으리라.

옷은 입고있지만 양팔의 깃털이 몸 일부에도 돋아나있어서 이전에 만났던 수인들과 닮은 느낌이 있었다.
루센이 보기에는 '올빼미'를 닮은 느낌이 있었지만…, 저런 모습인데도 어색하지 않은 건 색다른 기분이었겠지.

아무튼 집에서 모습을 드러낸 가장 지혜로운 사람… 아니, '현자'는 일행을 훑어본 다음 집안으로 들였다.
루센은 그런 현자의 태도에 의문을 느꼈지만, 루루는 루센의 등을 상냥하게 토닥여주며 집안으로 이끌어주었다.

토끼 소녀들은 현자의 집에서 뿔뿔이 흩어진 뒤, 각자 다른 장소에 머무르며 제집인 것처럼 편히 쉬었다.
그렇게 쉬고 있는 토끼 소녀들을 제외하면, 루센과 루루, 그리고 현자는 의자와 책상에 앉아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현자는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이미 루센 일행이 무슨 목적으로 방문한 것인지 훤히 꿰뚫어본 것일까?
그런 상황에서 루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스 브레이킹을 겸해서 여기에 오기까지 걸린 여행담을 꺼낸 것이다.

현자는 루센의 이야기에 정중하게 귀를 기울이면서 경청하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루센을 바라보았다.

루센의 이야기가 곧 여정의 끝과 자신의 고민까지 이어지며, 현자는 탁자에 놓인 자신의 컵을 홀짝인 뒤,
루센과 눈을 맞추고 "조금 실례하마."라고 말하며, 깃털이 돋아난 팔을 뻗어 루센의 뺨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었다.

현자가 루센의 눈물을 닦아주자, 루루는 그제서야 루센이 조금씩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당사자인 루센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왜 갑자기 눈물이 흘렀던 걸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러고 나서, 입을 굳게 닫고 있었던 현자의 입이 조그맣게 열리고, 루센을 바라보면서 말을 건넸다.
"정말 상냥한 아이구나. 지금까지의 일들은 네 잘못이 아닌데도, 그들의 비극에 공감하고 눈물을 흘릴 줄이야."

「잘못」. 세상은 정말 넓고 스스로의 할 일조차 버거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 몇몇 사람들 중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책임에 많은 것들을 간과하고, 묵인하며, 남에게 주는 것조차 망설인다.

하루마다 노력하지 않고 누우면 잠자리가 불편하고, 자신에게 할 일이 없으면 죄악감이 느껴지는 것 등.
"그렇지만 네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그것과는 다른 것 같구나." 뭐어, 물론 비극에 공감한 것도 있겠지만…….

"뭐야 루센? 너, 할 일이 없어서 운거야…?" 루루의 말로 루센은 자신의 마른 손으로 얼굴을 급하게 감췄다.
만화처럼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었거늘, 이런 식으로 자신의 고민을 알아채면서 부끄러웠던 거겠지.

"울다가 웃다니∼ 원숭이야?" 루루는 슬퍼하고 나서 다시 웃고 부끄러워하는 루센을 놀려대기 바빴다.
그렇게 루센과 루루, 현자의 대면은 자연스럽게 다음 날까지 이어지면서, 루센을 갉아먹던 고민을 날려버렸다.

"고마웠습니다 현자님." "내가 할 말이구나. 그대처럼 재미있는 인간은 좀처럼 없거든. 안 그러니?"
현자는 루루를 보면서 웃었다. 루센이 루루를 보면서 갸웃하자, 루루는 멋쩍다는 듯이 루센과 마주보지않았다.

현자는 자신의 집에서 나오는 일행을 배웅해주며, 루센 일행에게 "다음에 보자."라고 말해주었다.
짧고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 만남 덕분에 루센은 자신과 마주하며 '나'라는 사람을 알 수 있었으니까.

"이제 어떻게 하고 싶어? 루센." 그렇게 루센의 두 번째 여정은, 슬픔과 웃음 속에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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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의 말과 함께 루센은 생각에 잠겼다. ──루센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아직 무언가를 더 찾고 싶었다.
제 부모님과 친구를 버리고 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여정처럼 아직 더 '배울 것'이 남아있음은 확실했다.

어제 동안 밤새도록 현자와 말을 나누면서, 루센은 지금껏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의지가 확고했다.
고작 한 번뿐인 대화에서, 루센에게 어떤 심정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욕구? 자신감? 그것도 아니라면 방향?

루루는 사람이 공중을 돌다 못해, 묘기까지 부리는 각도로 열정을 불태우는 루센을 보며 한참 동안 웃었다.
그녀의 생애에도 이렇게나 당돌한 꼬마를 본 적이 있었을까? 적어도 이 몇 천년 동안은 못 봤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루센이 자신의 투정에 어울려달라는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부추긴 것도 있으니까, 너의 여정을 끝까지 지켜봐 줄게."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환주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여정은, 루센 자신의 '자아'를 찾는 여정이었다.

스스로에게 되묻는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이번에는 목적지가 있지도 않았고, 방랑하는 것도 목표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물으리라. "사람에게 응당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난 어디로 가서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자부하는가?"

──이윽고 스스로에게 확정 짓는다. "나는 정녕 이런 모습들을 보고 가만히 있을 것인가?"라고.

현실의 일은 잊지 않았다. 그저, 현실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았다. 여기서 쌓아올린 일은,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이들에게 베풀 생각이니까.

하지만, 본의 아니게 환주에서 생난리를 친다고 인식된 루센은, 통치자들, 즉 환주원에 의해 소환되었다.

이번엔 집 따위가 아닌 환주의 통치기관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수많은 환상종들이 루센을 보고 황당해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날뛰고 있었다니…?' '루루 경이 사고를 친 건가?' '딱히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루센은 마음의 벽을 뛰어넘고 각성한 덕분인지, 자신의 주변에 이질적인 존재가 있어도 겁먹지 않았다.
환주의 모두가 모인 의회에서 한 인간의 자신 넘치는 자세와 당당함은 이들에게도 신비롭게 여겨졌던 것일까.

"자네는 누군가?" "저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살고 있는 루센 켈러헨입니다." "사람…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인간'만이 아닌가?" "아뇨. 인간만이 아닙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지?"

"이곳을 돌아다니며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도, 당신들도, 모두 살아있습니다. 예외없이, 모두가요!"
"그렇다면 무엇을 위하고 있는가?" "사람이 응당 받아야할 것을 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기에 공부하며, 지혜를 익히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찾아온 것도, 이를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환주원은 그 시간동안 인간 한 명이 '고작' 그런 이유로, 지저의 지옥불과 거미줄을 헤치고, 하늘의 천인들을 보란듯이 웃어넘기고,
골렘들의 나무를 깎아주고, 거주지 사이를 넘어다니며 스스로 환주의 중재자 노릇을 자처했다니──.

이 얼마나 웃음이 피어나는 이야기일까? 여기 있는 대부분의 의원들이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한 명의 젊은 인간이 복수심에 불타 쏘아 올린, 단 한 발의 총성이 세상을 피로 물들인 것을 말이다.

"당당하구나." 루센의 이야기에 환주원의 의원들은 루센에게 웃음을 건네주면서 격려해주었다.
"너라면… 이곳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게 환주원은 루센의 신변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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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후, 루센은 한숨을 쉬며 일행을 만나려 했으나, 의결이 끝나고 몇몇 환주원의 의원들이 루센을 찾아왔다.
루센은 갑자기 찾아온 그들에게 긴장했지만, 그들은 딱히 다른 문제를 덧붙이려고 하지 않았다.

환주원의 일부 의원들이 루센 일행을 찾아온 목적은 단 하나. 그것은 '지구로의 귀환'이었다.
루센 본인은 그것이 목표였기에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루루와 토끼 소녀들은 그 거대한 화두에 깜짝 놀랐다.

"인간계에서 '세계 대전'이라는 재앙들이 끝난 이후, 이곳 알카비스는 목적을 완수했다네."
"알…카비스요?" "우리는 '환주'라고 부르잖아? 저 사람들은 이곳을 '알카비스'라고 부르는 거야."

"목적을 완수한 이상, 알카비스에 남아있을 필요는 없지. 그렇기에 다시 지구로 귀환하고자 한다네."
"그렇지만… 그게 힘들어서 말씀하시는 거죠?" 루센은 일부 의원들의 말에 숨은 그 속뜻을 읽고 되물었다.

"그렇네. 우리는 지구로 귀환하고자 하지만, 알카니움의 과반수는 귀환에 반대하고 있지."
"…알카니움은 또 뭐죠?" "환주원이야." "이름이 많네요…" "으응, 뭐, 다들 편하게 부르는 거야."

"하지만 어째서…인가요? 분명 저 사람들도 지구가 고향일텐데…" "그건 내가 말할게."
"그들은 인간들에게 질려버린 거야. 지구로 돌아가면 좋든 싫든 인간과 부대끼고 살 수밖에 없거든."

"그런걸세. 그렇기에 그들은 인간과는 선을 긋고,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자고 말하고 있지."
자신들은 귀환 반대파에 맞서고 있지만, 환주의 환상종들이 자신들의 고향에 대해 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인간들의 세계대전이 끝난지 몇십년이나 지났는데, 언제까지 과거에 붙들려서야 되겠는가?"
이대로 시간을 이곳에서 썩히기만 한다면, 그 누구도 지구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지구에 대해서 떠올리지 못해도, 따로 살 수 있는 게 아닌…건가요?"
"그랬다면 지구로 돌아가자고 말했겠는가?" "…아니겠네요." "그래, 우리들의 '멸종'을 의미함세."

루센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고향'과 '터전'. 문뜩 자신이 살고 있었던 동네가 떠오른다.
지금도 고작 몇달에 불과하지만 상당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이대로 돌아가면 부모님은 날 알아볼까?

내가 다니던 학교는 멀쩡할까? 아니, 지금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아니야! 그 누구도 나를 잊지 않았어. 그때의 일을 기억해. 누가 날 잊는다 그래?! …정신차려!'

스스로에게 외친다. 지금껏 자신은 방황하고 있었다. 도피, 직면, 자아까지 도달하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이 고민은 자신뿐만이 아닌, 이 환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하고있는 것이다. '외면'은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루센의 호쾌한 수락과 함께 환주원의 의원들이 기뻐하는 반응을 보인다.
"…후우. 바빠지겠네." 그리고 그런 루센과 의원들의 반응을 지켜본 루루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의원들은 자신들의 명함과 부적을 루센에게 건넸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하지."
루센은 이제야 가야할 길이 명확해졌다고 느꼈다. 그리고, 지금이 현실로 돌아갈 시간임을 깨달았다.

"고마워 루루." "아니, 나야말로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어." "다시 돌아올 거야?" "응."
"그래. …끝까지 지켜볼게." "…고마워, 루루." 루센은 다시 한번 자신이 살아가던 세상에 발을 들였다.

──이렇게 루센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되는 여정의 막을 내리고, 지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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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루센이 환주에서 지내다가 지구, 인간계로 돌아올 때까지 흐른 시간이었다.
집에는 아무 말 없이 6개월이나 자리를 비운게 되었고, 학교를 포함한 모든 게 6개월까지 밀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생각했지만, 일이 이렇게 돼버린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루센은 집으로 향했고, 집에 오자마자 울면서 맞이해주는 부모님에게 안긴 채 씁쓸하게 웃었다.

그 이후에는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대체 뭘 했는지 물어보는 급우들이 있었고,
6개월이라는 출석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자주 교무실로 불려나가는 고된 일들을 겪었다.

하지만 이미 환주에서 갖가지의 고생을 겪고 성장한 루센에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 과정들에서 루센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기로 결정했다. 주변인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해볼게요." 루센은 걱정하는 부모님에게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러고 나서 루센은 「신동」이라고 불렸던 자신의 실력을 과감하게 드러내며 사용하기 시작했다.

루센은 「검정고시 자격제도(General Educational Development)」로 그 공백을 매꿨고,
대학교 진학 및 관련 시험까지 치루면서, 자신의 또래들보다 한참이나 더 앞서나갈 수 있었다.

"…좋아. 힘내자." 루센은 환주에 있었을 적에 가진 뜨거운 열망을 잊지 않았다.
물론 루센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도. 그렇기 때문에 루센은 「사회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루센이 입학한 「샛별대학교(Lucifer University)」의 학업 과정 수료는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인류의 최고 지성이 총집합한 학업이었기에 6년 정도가 걸렸으나, 루센은 굴복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샛별 대학교에 '정신 나간 어린 학생'이라는 소문이 생긴 건 덤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재빠르게 조기 졸업 학점을 채워, 루센은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이 대학교를 월반하는데 성공했다.

만 22살에 대학교를 월반한 결과, 6개월의 공백이 우습다는 듯 루센을 스카웃하려는 대기업과 국가기관들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물론 모두 거절했다. 루센이 원한 것은 '생계가 보장된 편안한 삶'같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루센은 루루가 조언해준 '다시 환주에 올 때는 손쉽게 찾을 수 있을거야.'를 떠올리며 그때의 길거리를 밟자,
지구의 풍경과는 다른 이질적인 풍경들이 시선에 스쳐지나가면서 환주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 안녕하세요. 환주원… 아니, 알카니움인가요?" "편하게 부르게. 전부 우리의 이름이니까."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환주에서 3년 이상을 떠난 신동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루센의 소식은 환주원에 의해 환주 전체에 이곳저곳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지구로의 귀환을 지지하는 이들이 루센을 환영하고, 루센과 약속한 의원들도 직접 그와 마주하였다.

루루와 토끼 소녀들은… "뭐, 뭐야 그 모습은?" "응? 오랜만에 '그분'과 만나고 왔거든."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군복같은 것을 입고 있어서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분이라니?" "우리의 상사 되시는 분이야." "그보다, 루센은 중요한 걸 하러 온 거잖아?"
"…루루는 다 알고 있네." "다시 돌아온다고 네가 말했잖아. 모를 리가 없지?" "눈물나게 고마운 걸."

──루센은 그때와 같이, 환주원의 중앙에 서서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본 목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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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3코토리◆EXiz53Z8JG(rwZPTIInYu)2025-07-16 (수) 13: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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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본래 같은 곳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 파국을 불러왔죠."
루센의 말에 환주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루센의 말은 이 부분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저는 이 상황을 바로잡고,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분명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겁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루센은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연설을 마쳤다.

모든 이가 루센의 연설에 찬성하진 않았지만, 절반은 루센의 연설에 공감하고 박수갈채하였다.
"좋은 말이구나. 제아무리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네 말을 계속 무시하기는 어려울 게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게 잘 돌아가지만은 않는구나." 의원은 루센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간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감시망이 갑작스럽게 강화된 탓에, 연락을 주고 받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루센은 환주를 아는 인간이 얼마나 되길래 이런 상황에 감시를 강화한 건지 되묻듯 물어보았다.
"그래, 인간과 환상종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느냐?" "루루에게 많이 배웠죠." "…그렇군."

"그러면 거기서 조금 더 자세하게 가르쳐주도록 하겠네." "…네. 저도 알아야만 할 테니까요."
루센은 의원의 말에 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그리고, 역사 강의는 루루에게 들었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흥미로웠다.

물론 이들이 느꼈던 감정이, 자신이 한때 가진 감정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들의 말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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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인간과 환상종은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어울려지냈으며 사이가 좋지는 않았었다.
그렇지만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점은 똑같았기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지냈다.

둘째. 인간은 원시적인 것에서 졸업하여 지성을 갖추고, 자신들만의 문명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는 신과 환상종으로부터 독립하고, 인간들만이 살아가는 영역을 구축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그때부터였다네. 우리 환상종이 지구에서 살아갈 영역이 점차 없어져갔던 것은 말일세."

셋째. 점점 쇠락해가는 약소한 환상종들은 각자의 아공간을 만들어서 지구에서 대피했다.
한편으로는 인간을 인정하고, 이들의 시스템을 가져와서 자신들에게 적용하는 환상종들도 존재하였다.

"이렇게 지구에 적응한 쪽과 도피를 택한 쪽으로 나뉘어 좋든 싫든 인간과 함께 살아갔지."
"우리들도 이 구조가 오래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네." 의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넷째. 인간뿐만이 아니라 그 환상종들까지 인간의 방식에 적응하면서 인간과 똑같아져갔다.
그렇게 일어나는 인간과 환상종들의 전쟁이 확장되어가며, 관계조차 없는 이들이 겁화에 휩쓸린 것이다.

그 정도가 심해지자, 결국 '최초의 계파'가 한 곳에 모여서 '방주'를 계획하게 되었다.

다섯째. '방주 계획'이 점차 확장되어 지구의 생명들을 이주시키는 대규모 계획으로 거듭날 때쯤,
인간과 환상종의 전쟁 위기가 점차 가시화되기 시작했고, 인간들은 이 전쟁을 '세계 대전'이라고 불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인간의 총성으로 세계 대전이 시작한 것은 틀림없으나,
그것은 '인간들끼리의 전쟁'을 의미하고, 환상종들과의 전쟁은 그 '1년 후'에 일어났다고 한다.

여섯째. 다행스럽게도 세계 대전에 휘말리기 전에 방주 계획은 가까스로 그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방주는 지금의 '환주'로 거듭났고 "그때 환주에 합류한 이들이 바로 우리라네."

또한 모든 환상종이 환주에 합류한 것은 아니었기에 지구에 남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모두 죽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상당한 수가 죽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라네."

이렇게 요약한 환상종들의 역사를 통해 어째서 이들이 환주에 모여있는지는 이해했다.
어떻게 환주는 그 목적을 완수했고, 왜 환상종들이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까지도.

"그렇다면 세계 대전 이후, 인류는 여러분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 건가요?"
루센의 말에 의원은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몇 분의 침묵 끝에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세계 대전 이후, 승자가 확고해진 상황에서 인간 외의 존재들은 감시를 받게 되었네."
"그것뿐인가요?" "보다 약소한 환상종들은 인간의 밑에서 일하는 노예로 전락하기도 했지."

새삼 충격적인 사실도 아니었다. 전자기기에 손대며 어린 시절에 접했던 그 충격적인 소식들.
그 소식들이 루센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안겨주며, 이곳 환주까지 오게 만든 계기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익숙해지진 않은 건지 몸이 약간씩 부들부들 떠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루센은 의원의 손을 잡아주며 '그러니까 온 거잖아.'라고 정신을 휘어잡으며, 자신과 의원을 격려해주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환주원 의원의 설명으로 한 가지 확실해진 사실은──
"높으신 분들이 모든 환상종을 인간, 아니 자신들의 발아래에 두려는 야망을 갖고 있다는 거군요."

"…곤란한 상황이네요." "「루미에르 재단」과 만나게." "네?" "우리는 어쩔 도리가 없네."
"그렇지만, 그들이라면 자네에게 답을 줄지도 모르지." "함정인가요?" "지금 이 자리에서 날 죽일텐가?"

"아뇨. 덕을 받았는걸요." "그럼 됐네." "…알겠습니다." "미안하네, 자네한테 떠넘겨서."
"괜찮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루센은 의원 아스레드의 배웅을 받으며, 인간계 「지구」로 귀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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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에르 재단(Lumière Foundation)」. 이들의 성격은 특출난 일부 시민들이 이끄는 비정부기구였다.
'…아스레드 씨는 왜 이곳과 만나라고 한 걸까…?' 자세하겐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 들지는 않았다.

국가 혹은 기업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봉사단체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루센은 해당 단체에 입사하여, 재단의 규칙과 자신이 해야할 일들에 대해 숙지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루센을 주시하던 집단들은 그의 행동을 의아하게 여겼지만, 이윽고 이에 대한 의심을 거두기로 했다.
"사회학과 출신이잖나? 누군가를 자진해서 도와줬으니, 저것도 그 일환이겠지."라며 감시하는 눈을 줄인 것이다.

"…계속해서 지켜보도록 해. 만에 하나라는 것도 있으니까." 물론 감시를 포기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현장에서 운송 업무를 도맡아 식량과 의료물품을 전달하고, 때로는 의료원이 되어 약품을 처방해주었다.
루센은 이런 일들을 맡으면서 꾸준히 배워나갔다. 돈이 필요하다면 누군가에게 빌리지 않고 해결해갔다.

남들이 보기엔 우스꽝스러웠다. 단순히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러 온 도련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성실했으니까.
활동 시기에는 성실하게 봉사에 임하고, 활동하지 않는 시기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부해간다.

"…인간이 아니군." "신동이라는 영역을 벗어났잖아." 일부 재단 사람들의 두려움도 사면서 활동을 계속해갔다.

이후 3년 정도가 지나 25살이 됐을 때, 이젠 재단의 간부가 루센을 마주해줄 정도로 대우가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루센과 따로 면담하자고 제안한 재단의 간부가 입을 열었다. "「환주」에서 왔나? 목적은 뭐지?"

루센은 긴가민가했다. 이 재단이 정말로 협력자인가? 스파이인가? 하지만 어쩐지 적대적인 느낌이었다.
우선 확실하게 말해야만 했다. "저는 「루센 켈러헨」이라고 합니다. 「아스레드 벨투라」 씨와 협력하는 인간입니…"

"…뭐, 일단은 믿어주마." 재단의 간부가 루센의 멱살을 잡던 것을 풀고, 조금은 분위기를 풀면서 말했다.
재단 간부가 멱살을 놓자 루센은 켁켁거리며 숨을 골랐고, 자신을 멱살잡은 그를 노려보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저도 당신한테 물어보죠." "뭐지?" "제가 당신을 「믿어야 하는」 증거라도 있습니까?" "…그렇군."
나의 말에 재단 간부는 "이거면 되겠나?" 성인 남성과 아스레드 벨투라 씨가 찍힌 「흑백 사진」을 건네주었다.

"…완전히 믿는 건 아닙니다." "나도 널 믿는 건 아니야." "…그걸로 됐군요." "그래, 그걸로 족하지."
루센은 마지못해 자신의 행방과 아스레드 씨와 맺은 약속을 꺼내며, 루미에르 재단에 입사한 목적을 설명했다.

루센의 이야기를 묵묵히 경청한 간부는 고급진 종이 한 장을 루센에게 건네주었다. "저기… 이건…?"
"네녀석이 알고 싶어하던 정보다. 「그늘 없는 손(Hand Without Shadow)」과 얘기는 마쳐놨어." "…감사합니다."

"…왜 멱살을 잡으신 건가요?" "마음에 안 들었거든." "고작 그런 이유…" "안 가도 상관없는 건가?"
"아뇨…. 실례하겠습니다." "다시 만날 일이 없길 바라지." "저도 당신처럼 난폭한 사람과 더 엮이긴 싫어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별말을. 이걸 건네줄 사람이 그저 너밖에 없었던 거다." 
"…잘 해나가길 바라지."
루센은 간부의 야만적이고 난폭하지만, 친절함이 없지는 않은 친절을 받은 그날에 재단을 몰래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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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에르 재단의 간부 「클레망틴 라벨(Clémentine Labelle)」씨가 건네준 접신처로 루센이 향하자,
"숲…이네?" 숲이 보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고른 건가…?' 라벨 씨의 용의주도함에 혀를 내둘렀다.

신기한 점이 있다면 접신처에 접근할수록 루센의 몸이 가벼워지고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체력을 단련하긴 했지만, 이렇게 극적으로 상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루센은 "…과연. 여긴가." 확신했다. 「접신처」는 바로 이곳이라고 말이다.
이상하리만치 푸른 숲속 사이에 늙은 나무 하나. 종이의 위치를 저 나무에 대조하자, 어떤 인물이 나타났다.

"당신은…" "네가 루센인가?" "아… 네!" "…그걸 어떻게 믿지?" "이 종이…로는 안 될까요?"
"그건… 라벨의 필적이군." "네. 맞아요." "라벨이 이곳으로 향하게 했다면… 뭐, 좋아. 날 따라오도록."

눈앞의 인물은 마치 영화에서 나올법한 비밀결사의 모습을 하고 루센을 본거지로 안내해 주었다.
"우와…." 후드를 눌러쓴 협력자에게 안내받으며 이들의 본거지에 도착한 루센은 이곳의 풍경에 감탄했다.

"재단과 비슷하네요." "그렇지. 그럴 수밖에 없거든." "환주 사람들…이 있는 건 의외였지만요."
"인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거든. 우리같은 사람들이 살기엔 이런 곳이 딱이기도 하고 말이야."

"…이런 이야길 할 때가 아니었네요." "그러면 본론부터 들려주지." "어쩐지… 좀 긴장되네요."
루센은 그늘 없는 손의 본거지에 도착해 자리에 앉고, 협력자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상관리국」을 주축으로 국가원수들이 모여 지구의 바깥, 즉, 태양계를 정복할 야망을 갖고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비교적 힘이 부족한 약소국을 나눠먹고자 하는 국가들이 세계 대전을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것만으로도 상황은 루센의 손을 떠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다음의 이야기는 이보다 더한 소식이었다.
"「천명(Celestial Mandate)」의 유일종 계획이 「선각교」 녀석들에 의해서 행동 방침으로 정해졌다는 모양이야."

"천명…?" "아브라함 종교 연합체야.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조직이지."
"유일종 계획, 선각교는 또 뭐죠?" "궁금한 게 많군." "…죄송합니다. 전부 처음 들어서요." "…어쩔 수 없지."

"유일종 계획은 '지구에서 인간만을 남기자'는 극단주의 사상이야. 선각교가 제창한 사상이기도 하고."
"그럼 선각교는…" "그래, 극단주의 파벌이야." "저, 행동 방침으로 정해졌다는 건…" "더 말할 필요가 있나?"

루센은 현장에 파견 나가며 들었던 소식들에 대해, 기억의 파편을 꺼내듯이 천천히 생각하고 회상한다.
"지금까지… 왜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지금껏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겐 못 느꼈던 것이리라.

종종 '돈의 순환'에는 반드시 소위 '거품'이라는 현상이 끼어들기 마련이고, 동시에 거품이 터지는 현상까지 '몇 가지 전조'를 남긴다.
이를 사고사례에 대입하면, '하인리히의 법칙'. 300번의 무상해 사고와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터진 후에 1개의 대형 사고가 터진다는 법칙.

모두 어디서 들어보지 않았는가? 이것을 현실에 적용시킨다면 생각보다 어마무시한 상황으로 연결된다.

"…멈추지 않는 죽음의 경기를 하고 있는 셈이네요."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화약고…라는 건가."
사면초가. 앞뒤로 막힌 가운데, 인간, 아니 인류는 무언가를 억지로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희생시킨다면, 그건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친구들의 죽음을 두고 볼 수 없다.
"제가 영웅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겠지." "이 상황을 해결하려는 다른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뜻을 함께 한다면, 아무리 미쳐돌아가는 세상이라도 빛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가 해주길 바라며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지금은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야 할 때니까.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터무니없는 녀석이군." "죄…송합니다."
"터무니없는 건 싫어하지 않아." "그 말씀은…?" "좋아, 도와주지. 한번 네 뜻을 펼쳐보라고. 애송이."

그렇게 루센은 그늘 없는 손의 협력을 얻고, 환주에 돌아가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이야기했다.
"…모든 걸 마칠 때예요." "아니, 이제부터가 시작일세." 그래, 모두가 단 하나의 목적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센의 스물다섯 번째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며, 새로운 햇살이 떠오르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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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가 던져졌다. 던져진 주사위가 「데굴…」하고 굴러가며,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젠장… 감시가 소홀해진 틈에 어딘가로 사라지다니." "네… 실책이네요. 감봉으로 끝난다면 좋겠습니다만…."

루센 켈러헨의 존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설립된 두 기관에 의해서 주시되고 있었다.
하나는 전쟁 승전국과 그 이후에 강대국으로 거듭난 국가들이 연합하여 만든 초상관리국(Supernaturals Administration Bureau)이다.

"패전국에 인간만 있었던 건 아니니까 말이야…." "이젠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볼 필요성이 생겼죠."
"특히 이나바 녀석들이 더 그랬지?" "네, 거대로봇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 아폴로 13호 때는 놀랐다고…."

또 하나는 천명(Celestial Mandate).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종교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게 되었고,
이 별을 뒤집어놓은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수많은 종교인들, 특히 아브라함계 종교인들은 연합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지금 선각자가 극단주의자라면서?" "네. 그렇습니다." "끝났군. 언제 무너질지 내기라도 할래?"
"…저희도 저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요?" "글쎄다. 적어도 우리들은 상황이 낫잖아. 안 그래?"

…하나, 지금의 두 집단은 강대국들의 간섭 도구, 내지는 환상종의 감시나 수용 기구로 변절한지 오래였다.
"수용 기구라… 말만 수용 기구지, 실제로는 인간들 아니야?" "…네." "인권 유린은 저쪽이 먼저 하고 있었구만."

양심 있는 개인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개인이 국가를 상대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다.
"루센 켈러헨… 영 수상쩍단 말이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정해야겠지."

초상관리국의 사람들이 거대한 모니터에 띄워진 루센 켈러헨을 바라보면서, 결의를 다지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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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센이 실종된 지 5년 후. 어느덧 서른 번째 해에 접었을 때, 그는 다시 초상 관리국의 감시망에 잡혔다.
요주의 인물이 감시망에 다시 잡히자, 관리국 사람들은 루센이 있는 위치를 자세하게 확인하고 결론을 내렸다.

"…왜 오지에 있지?" 루센이 무슨 의도로 오지에 있는 걸까? "소장님. 저길 보십시오. …많이 있습니다."
루센의 앞뒤로 모인 수많은 인파들. 그 인파들 사이에 보이는 환상종들.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배치된 기자들과 카메라까지.

"루센… 이렇게 나오기로 했나." "진압하시겠습니까?" "아니, 진압하지 않는다." "그 말씀…은?"
"지금은 미디어 시대야. 자극적인 영상들이 많이 있고, 사람들은 이걸 영화의 촬영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겠지."

"대응하면 불을 붙이는 꼴일거야." "네." "하지만… 우리가 이용하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겠어."

"…네?" "그래. 우리가 퍼트리는 거다." "그렇다면…" "여론을 조작한다. 그리고… 저 골칫덩이들을 처리한다."
"그건 공개적으로?" "공개적으로 가야지. 피 묻힐 준비해." "하아…. 새 옷이 더러워지겠네요…."

초상관리국의 사람들은 군홧발을 신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씁쓸하게 미소 짓고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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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의 영상. 각종 영상 플랫폼과 커뮤니티 사이트에 26개국의 언어들과 함께 루센과 아스레드 벨투라의 연설이 퍼져나갔다.
유튜브, 빌리빌리, 니코니코 동화 등등에 올라오는 영상들은 순식간에 인기 동영상이 되며 퍼져나갔다.

"야, 그거 봤어?" "그 연설 영상?" "개쩔지 않았냐?" "근데 그거 영화잖아?" "아, 들었어. 영화 촬영 유출이라더라."
루센의 생각대로는 흘러가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진심을 요깃거리로 여기고 있었다.

물론 음모론자들의 반응은 불타올랐지만, 이것도 루센이 원하는 반응과는 동떨어졌다. …무언가가, 무언가가 잘못됐다.

"어째서죠? 어째서 이렇게…?" "이걸로 끝난 게 아니야. 더 준비한 것들을 세간에 공개해버리자고."
"죄송…합니다. 잠깐 흔들렸네요. 네. 그렇게 해요." 루센은 일행들의 말에 마음을 다잡고,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결코 허투루 준비하지 않았다. 「
레일라인 네트워크Leyline Network」 해커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한 문서들.
또 다른 연설과 그 피해자들까지. 비밀리에 숨겨진 수용소들을 습격해 '실험체'로서 다뤄진 이들을 구출하고 달래주었다.

그래, 루센은 최대한 아군과 적군의 피를 흘리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준비한 것이었다.
──루센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일까? 시민들은 루센의 연설에 공감하면서 시위하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교육기관, 주민센터, 경찰서 등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들에 루센과 일행들의 대자보가 붙었다.
오프라인도 이러는데 온라인은 어떨까? 이미 인터넷의 말썽쟁이들과 사이버 렉카들이 사방팔방으로 소식을 나르고 있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라고 하는데, 지금은 '손가락이 천근을 나른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이었겠지.
이러한 행보들에 사람들의 반응은 "이야, 영화가 본격적이네. 나도 출연하려나?" "에이, 넌 못생겨서 안될 듯ㅋㅋ"…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일어나는 행동들이라고 해석하는 우둔함에 혀를 내둘렀다.
"뭐 마블(MCU)이라도 만드는 거야…?" "글쎄…? 어떤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어." "근데, 좀 기대되긴 하네. 언제 개봉할까?"

루센의 머리가 뜨끈하게 끓어올랐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맞춘 걸까?
"제법인걸…. 모조리 수포로 돌아갔어." "조금 충격이야. 이렇게까지 준비해도…. 우리가 시대를 못 읽은 걸까?"

동료들의 한탄. 루센 역시 한숨이 나왔다. 아니, 문제가 있었다면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다.
"어떻게 여론이 이렇게 일관적으로 흐른 걸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뜨겁다면, 반응이 이렇게까지 일관적일 수…."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지금까지 '우리에게 어울려준 이들'은…? 그리고 알게 모르게 놀아난 거라면?
"…너무 지나친 생각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없지." 루센은 요사이 쉬지 않고 활동한 탓이라고 스스로를 설득시켰다.

"이렇게 된 이상 피를 써야 합니다. 혁명에는 피가 흐르죠. 루센 씨! 우리는 피를 흘릴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니요. 그건 최후의 수단입니다. 피를 흘리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어요. 지금은 최대한 온건하게 시위를…."

「그래? ──그러면, 지금 여기서 때려잡아도 문제없다는 거지?」라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루센과 그 일행들이 있는 곳을 용암같이 끓어오르는 레이저 빔이 양단했다. 그리고, 루센에게 혁명을 논한 이는──

"…헬퍼트 씨?"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헬퍼트 씨가 입고 있었던 옷 가죽만이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을 뿐.
「자아☆ 반동분자들아! 울고불고해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고, 상큼한 목소리가 루센 일행을 덮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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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로봇이나 인간형 병기라고 불러야 할 것이 루센 일행에게 있었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지? "너는… 너 자신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거냐…?"

「응? 그야 인간이 아니잖아.」 상큼하고 발랄한 목소리. 인간이 아니라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그 말에.
"웃기지 마!!! 죽어도 되는 생명은 없어. 다 같은 사람이라고! 헬퍼트 씨는… 이렇게 죽어선 안되는 사람이었…!"

「─시끄럽네.그럼 죽든가?」하고 소녀는 헬퍼트 씨를 죽인 레이저 빔을 루센에게 망설임 없이 발사했다.
"…헤?" 꼼짝없이 레이저 빔과 가까워진 루센은 눈을 크게 떴고── 「체엣.이런 식으로 도와주기는 비겁하잖아.」

「루센. 괜찮아?」 "이 목소리는…?" 루루였다. 루루가 거대한 로봇을 타고, 루센을 레이저로부터 보호했다.
"으, 응. 괜찮아." 「잘도 저질렀네. 뒤가 무섭지 않아?」 「글쎄─☆ 같은 인간을 죽인 것도 아니구☆ ─안 그래?!」

상큼발랄한 목소리는 이내 분노로 뒤덮이면서, 루루가 타고 있는 거대한 로봇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준비해두길 잘했네. 저지를 생각이 가득했잖아. ─응?」 「인간도 아닌 녀석한테, 알려줄 의리 따위 있을 것 같아!?」

루루와 토끼 소녀들이 거대한 로봇을 타고 소녀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맞아. 좌절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모두 일어나세요! 지금은 도망쳐야 합니다! 루루와 소녀들이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이 상황을 헛되이 해선 안됩니다!"

"…정말이지 뒤가 없군." "행동할 '각오'는 이미 마쳐놨다는 거겠지." "잡담할 때가 아니에요…! 어서…"
그렇게 루센은 거대한 로봇들의 싸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다 더 안전한 곳으로 움직이게끔 이들을 이끌었다.

──그랬어야만 했었다. "미안해. 거기까지야." 「척」하는 느낌과 소리가 루센의 머리와 귓가에 전해졌다.
"젊은이가 잘 해줬어. ─응. 정말로 감탄했어. 이런 길에만 빠지지 않았어도… 우수한 인재가 됐을 텐데 말이지."

"당신은… 누굽니까…?" "어익후. 알고 싶나?" "…당신은 누굽니까…!" "알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그러니까 누구…!" 「탕!」하며 피가 흘렀다. 그리고─ 루센은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느끼면서 무릎을 꿇었다.

"다음은 머리야." "너는… 누구냐고…!" 그럼에도 루센은 자신을 위협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아무리 신동이라도 이런 상황에선 우둔해지기 마련이로군."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거냐?" "비밀주의거든."

루센과 초상관리국의 소장이 서로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면서 한치도 지지 않으려는 상황이었을 때,
"「계시의 날」이 도래했도다! 우리의 형제들이여, 자매들이여, 일어나라! ──우리 인간의 힘을 보여주자꾸나!"

"…설마?"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했는데, 잘도 움직이는군." "너희들은…!!!" "그래. 예상한 대로야."
"이 망할 자식들…! 왜 이러는 거야?!" "인간을 위해서지." "약속할 수 있나…!?" "글쎄. 약속은 못하겠는걸."

관리국 소장은 보다 더 깊게 루센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뒤 "우리는 거짓말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거든."
루센은 자신의 귓가에 소장이 속삭인 말에 분노가 치밀어올라, 어떻게든 소장에게 한방을 먹이고자 했지만──

「탕!」 다시 총성이 울리고, 루센은 힘없이 쓰러졌다. "젊은이를 죽이는 건… 언제나 마음이 아픈 일이야."
이 광경을 지켜본 루센 일행 중 한 명이 "…지옥에 떨어질 준비는 됐나?"라고 말하며, 소장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놀라운걸. 죽은 척을 하고 있었나?" "역시 인간 따윈 믿어선 안 됐어…!"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소장은 인간 따윈 믿어선 안 됐다고 말하는 환상종에게, '그건 환상종도 똑같다'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뒷짐을 졌다.

「─푹!」 천명의 선각교가 이끄는 배틀액스 부대에 의해 꿰뚫리면서,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소장은 궐련을 꺼내며 "후우…." 불을 붙였다. "씁쓸하군." 궐련의 연기와 함께, 뜨겁게 불타오르는 광장을 둘러보았다.

"이게 전쟁인가." 소장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이 세상을 지켜보는 악마처럼 바라보았다.
"이거 수습하려면 힘 좀 써야겠는걸." "「기적」이라도 벌어지지 않는 이상은 무리겠죠." "하핫. …기적이라."

──모든 것이 불타고, 모든 것이 죽음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루센은 보다 깊은 심연 속으로 추락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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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다. 축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갑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먼저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자만이었던 걸까." 머리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라면 뭐든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해결할 수 없었다.

"미안해. 모두… 내 잘못이었어." 그래, 이제는 편안하게 눈을 감자. 이대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누군가가 루센에게 물었다. "…응." 루센은 답했다. 『포기하기엔 아직 이를지도 모르네.』

"이르지 않아. 최선을 다했어." 『그렇다면 묻지.』 "뭘 물어볼 생각이야? 나는 이제 그만 쉬고 싶…?"
루센은 알 수 없는 목소리의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발로 세상을 지탱하고, 땅을 밟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입으로 다양한 말과 논리를 펼치면서 소리를 내뱉은 자는 누구인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말을 이어갔다.
‘주체란 누구이며, 이 세상에서 의지를 갖고 논하는 자는 누구인가?’ "…나 좀 놔둬. 이대로 사라지고 싶으니까…."

루센이 알 수 없는 목소리의 질문에 답하길 거부하자, 다음으로 상냥하고 나긋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내게 지능을 잃게 하고, 손과 발을 불구로 만든다 한들, 「나」는 사라지는가?’ 이것 역시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었다.

‘입으로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혀가 짧고, 소리를 작게 내는 「나」는 사라지는가?’ …그건, 그렇지 않다.
아무리 모든 것에 지쳐 떨어진 루센이라도, 그것만큼은 인정할 수 없었다. 루센은 자신의 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눈에서 주체를 찾을 수 없고, 의지를 증명하지 않는다면, 「나」는 사라지는가?’ 그래, 이건 ‘자아’의 이야기다.
「자아(自我/Ego)」. 인간이 이성, 본능, 충동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들을 제어할 수 있는 '첫 번째'로 가진 개념이다.

나는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존재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은 그 시점에서 죽은 것과 같으니까."
──나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들이 잠잠해졌다. 그렇지만, 입을 연 이상 끝까지 말해야겠지. 그게 예의라고 배웠으니까.

"이 세상에서 「나(我)」란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래, 모두가 유일무이한 존재야. 대체할 수 있는 생명은 없어."
힘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포기했을 때는 모든게 편했지. 하지만 여기서 포기한다면…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어…!

"짐승은 고통을 느끼지만, 금세 고통을 잊어버린다. 그럼에도 「나」는 기억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루센의 말이 「빛」에 닿았을 때, 루센의 손에 『무언가』가 쥐어진다. 『…가볼까.』 루센은 빛과 함께 「날개」를 펴올렸다.
루센은 위로 올라갔다. 보다 높이, 더 높이. 이 심연 속으로부터 벗어나, 혼돈에 휩싸인 세상을 구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한 번의 죽음으로 인간의 껍질을 벗고, 진정한 신으로 우화한 「빛을 가져다주는 자」는 그렇게 현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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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불순물들을 거의 없앴다." 「예이☆ 그 토끼 녀석은 못 잡았지만… 잘 됐네! 잘 됐어!」
"이제 어떻게 하지?" "듣자 하니 지구와 인접한 「알카비스」라는 곳이 있다더군. 거기까지 쓸어버리는 건?"

"그게 아니야. 뒷수습의 이야기다. 일을 이렇게 화려하게 벌인 이상, 그에 맞는 말을 생각해야만 해."
「어머나… 불쌍해라.」 "고생하는구려." "그딴 말 할 거면 좀 닥쳐. …하아. 이런 거였다면 동참하지도 않았지."

관리국의 소장은 주변에서 뭉게뭉게 피어나는 연기가 자아내는 구름들을 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이 모든 일이 정말로 이뤄질 줄이야." "꿈속의 일이라고 생각하셨죠?" "그래.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조금은 아쉬운 걸." "왜죠?" "내가 즐겨보는 「아이돌」이 있었거든." "「버츄얼 아이돌」…입니까?"
"그래. 환상종이었지." "…잘도 해내셨네요?" "임무는 임무니까." "공과 사가 확실하시군요." "뭐, 그래."

──그렇게 초상관리국 소장과 그의 비서, 거대로봇 소녀와 선각교 사람이 하늘을 올려다본 때였다.

"천사…인가?" 빛났다. 그리고,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날개가 우아하게 움직이면서 그를 하늘에 있게 해주었다.
"천사…라고? 하느님이 원죄를 짊어지고 나서 떠났을…텐데?" 「뭐야, 그러면 천사도 아닌 거잖아?」

"환상종이라. 아직도 남아있었나요? ─죽여야겠습니다." 「치사하다구! 뭐어─ 내가 먼저 쏴 죽일 거지만☆」
무엇보다 하늘에 있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했기에, 거대로봇 소녀가 빔 라이플을 조준한 뒤─ 발사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일어나라!』 루센의 한마디로 관리국과 선각교에 의해 쓰러진 모든 이들이 텅 빈 눈으로 일어난다.
"호오…?" "괴상한 요술을 부리는구려. 역시 죽여야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맡겨둬!」하고 빔 라이플이 발사됐다.

「─거짓말이지?」 통하지 않았다. 모든 걸 녹이고 없애버린 레이저는, 루센에게 흠집을 입히지 못했다.
‘내가 해내야만 해.’ 시간을 재는 괘종시계가 울리는 소리. 모든 것이 멈춰져 보였다. ─그렇기에 루센은 눈을 감았다.

세상만사에 누가 풍파를 겪지 않을까? 모두가 기쁨을 맞이하고, 슬픔을 맞이한 순간은 참으로 많았다.

결혼식장에서 결혼을 맞이하는 신부와 신랑. 박수를 치는 하객들. 음식점에서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주방장.
그리고 그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들. 경찰서에 케이크를 들고 방문한 시민들과 그들을 맞이해주는 경찰들.

공원의 흙먼지 속에서 더럽혀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뛰노는 아이들.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부모님들.
동물원에서 묘기를 부리는 동물들과 그에 맞춰 진행하는 조련사들. 온천에 몸을 담구며 쌓인 피로를 푸는 사람들.

텔레비전과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다른 이들과 골치를 겪으면서도 소통하면서 웃기도 하는 사람들까지.
──그리고 루센은 눈을 떴다. 단 1초. 그 1초 사이에 몇 천년의 행복과 삶의 순간이 루센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루센. 루센 켈러헨이다.』 자신의 이름을 들으라는 듯, 그 영혼에 새기라는 듯이 이 세상에 외쳤다.
『내가 원하는 것은 평화다.』 모든 이들이 슬퍼하지 않는, 있을 수 없지만 그렇기에 이상적인 세상을 바란다고 외쳤다.

『우리 모두 살아있다.』 루센의 한마디로 일어난 이들의 동공에, 점차 따뜻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래.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살아있다.』 그리고, 루센이 양팔을 쫙 뻗자 「빛」이 이 세상 구석구석에 뻗어나갔다.

『─이상.』 뻗어나간 빛들이 세상에 힘을 불어넣고,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의 광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렇게 루센 켈러헨은 사라졌다. 아니─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네." "…「기적」일까요?" "뭐… 확실히. 기적일지도."

초상 관리국과 천명의 선각교, 거대로봇 소녀가 그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쨍쨍한 햇살과 마주 보자──
"우와, 그거 건담이에요?!" 「으, 응?」 "언제 여기에 만들어졌대? 아, 사진 찍어도 될까요?" 「…이걸 어쩐담?」

"푸훕…. 뭐, 찍게 해줘." 「진심이야?」 "글쎄. 그럼 죽이게?" 「…인간이잖아.그런 짓은 안 해.」
"의외구려. 여기서 죽여버릴 줄 알았소이다." 「누굴 미친년으로 아나?」 "그래, 광신도보다는 한결 낫다고."

"치∼즈∼!" 「치, 치즈~☆」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대박이야 이거!"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가자."
──그렇게 지구에서 일어난 「최후의 심판」은 없던 일이 되었다. 모든 생명을 존귀하게 생각하는, 한 인간에 의해서.

"루센 켈러헨…. 정말 재밌는 젊은이야." 소장은 시가와 함께, 행복하다는 듯이 이 세상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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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4코토리◆EXiz53Z8JG(rwZPTIInYu)2025-07-16 (수) 13: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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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따라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것이 루센이 일으킨 이야기들입니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냐고요? 글쎄요…. 그건 여러분의 해석에 맡기도록 하죠. 이런 건 놔둬야 재밌답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습니다. 세계는 여전했고, 환주의 모든 환상종이 지구로 돌아가지도 않았죠."
"그렇다고 변화가 없진 않았지만요. 그 변화들이 어떤 것들인지는… 뭐, 여러분의 생각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루센의 근황이 궁금하신가요? 그렇군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뒷일이 궁금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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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이 있었다. 세상은 아직도 그대로다. 그렇지만… 루센은 그래도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엄마. 아빠. 다녀왔습니다." "…어서오렴." "정말 걱정했다. 아무리 장성해도, 걱정이 안되진 않더구나."

루센은 부모님과 재회했다. 오랜만인 가족의 품. 어떤 보상들보다도 가족의 품이 최고의 보상이었다.
"미안해요. …또 자리를 오래 비우게 될 것 같아요." "괜찮단다. 네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
해."

"…잘 다녀오려무나. 루센." "오래 사세요. 아버지. …아뇨. 그냥, 오래 사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요…?"
루센은 그 뒤에 무언가 말을 덧붙이려다가, 갑작스럽게 말을 바꾸고 어물쩍거렸다. 그러곤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가볼 때가 된 것 같아요." 그 말에, 루센과 부모님은 서로의 품에 있으며, 격려를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루센은 부모님과 해어지고, 자신을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하고 나서, 어느 공간에 도착했다.

「생명의 신좌를 받을 준비는 되었나?」 "…솔직히, 아직도 어색하긴 해요." 「…그래. 그건 나도 그렇다.」
「다시 한번 묻겠다. ─「빛을 가져다주는 자」여. 이 우주를 지탱하는 「생명의 신좌」를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네. 됐습니다.』 「좋다. 생명의 신이여, 앞으로는 ‘우리의 우주’를 지탱하는 데에 힘쓰도록 하거라.」
『아, 그전에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습니다.』 「…뭐지?」 『가끔씩이라도… 인간계에 내려가도 괜찮겠습니까?』

「…뭐.」 『역시… 안 될까요?』 「허락하지.」 『저, 정말인가요?』 「그렇게 융통성이 없는 걸로 보였나?」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다면… 네. 좀 많이." 「카르테시아도 품었거늘, 그대라고 못 품을 이유가 있겠느냐.」

"…감사합니다!" 「뭐, 할 일만 하면 간섭하진 않을 테니, 한번 잘 해보거라.」 "네, 잘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루센은 「생명신」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가끔씩 인간계에 내려갈 때마다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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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技術)】

1. 자아지성(自我知性): 루센이 지닌 힘의 근원. 모든 것은 생각으로부터 비롯한다.
상상력─ 인간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힘. 어린 시절에 신동이라 불렸던 그 시절부터 생각해왔다.

그래, 기적의 힘을 품고 신으로 거듭난 지금까지 루센은 계속해서 생각해온 것이다.
남들보다 더 빠르게, 신속하게, 정교하게. 더 많은 생각은 사고를 낳고, 사고는 곧 구현을 뜻했다.

다른 이들이 루센의 수학적 능력과 분석 능력에 감탄하나, 루센의 진짜 힘은 '생각'으로부터 기원한다.
──루센의 상상력에는 끝이 없다. 무한하게 나아가는 저 너머의 지평선처럼 말이다.

2. 자아의 물리화: 영혼이라는 개념부터 물리적인 힘으로 구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자아는 오직 소리로만 주장할 수 있는가? 자아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기적이다.

그렇지만, 인간과는 다른 이들도 그들만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이 자아의 범위를 스스로 증대할 수 있고, 제어할 수 있지 않는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루센의 생각은 현실이 된다.
활, 낫, 도끼, 검, 방패, 벽, 철퇴, 깃펜, 지팡이 등. 모든 물건이 그의 손에 쥐어질 수 있다.

제아무리 엉뚱한 물건이라도 그에게 필요한 물건이라면 손에 쥐어진다.
모든 물건에는 용도가 존재한다. 당연하지만, 그것을 쓰는 법은 사용자에게 달려있다.

3. 평화의 전등: 환주에서 어떤 행상인이 "주변을 밝힐 전등이 필요하지 않수?"라고 물었다.
평소에는 전등을 들고 다닐 일이 없었고, 스마트폰 하나로도 충분히 전등을 대체하고도 남았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란 게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루센은 행상인에게서 전등 하나를 구매했다.
루센은 그 대금으로 가지고 있던 물건 하나를 건네주었고, 행상인은 만족스러워하며 고마워했다.

지금 그 전등은 수명을 다한지 오래였지만, 그 기억만큼은 고이 남아 루센의 것이 되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전등은 밝은 면을 비추고, 어두운 면을 정화한다.
현실에서 구현화된 전등의 모습은 백색왜성과 같아서, 매우 작은 태양 하나가 떠있는 느낌이라고 한다.

전등이 비추는 장소는 푸근하고, 온화한 느낌이 새록새록 스며들어간다.
단 하나의 폭력도 허용하지 않는 이 공간은 '편하게 쉬어가는 쉼터'로서 그 본분을 다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지금 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4. 자아의 공명 파동: 아직 미숙했던 시절, 여정에서 부분적으로 마법에 대해 깨우치던 그 시절.
어떤 물건이나 기물에 루센 자신의 기운을 흘려넣어, ‘특정한 행동’이나 ‘현상’을 구현할 수 있었다.

물론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흘려넣은 기운만큼 소모하여 그 위력을 발휘한다.
루센이 주로 사용한 방법은 ‘치료’다. 물론, 그 이외의 사용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자신에게 가장 쓰기 좋은 방법이다. 루센은 그렇게 느꼈다.

붕대에 감아서, 티백을 넣어서, 머리를 맞대어서. 상처를 회복하고, 마음을 덜 무겁게 만들며.
무언가로부터 쫓기고 있었다면, 안정감을 되찾게 해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

기적이라고 칭할 필요는 없다. 회복할 의지가 있다면, 사람은 언제든 제자리로 복귀할 수 있으니까.

5. 생명 방정식: 영혼이란 기억의 연속성이고, 자아란 기억의 고리다.
이것을 「식(式)」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자아=기억=영혼? 기억=영혼+자아?

남들에게도 가르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야. 의외로 가능할지도?
다시 한번 작성한다. 수식이 잘못되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계산이 잘못되었을까?

그렇게 나는 종이 하나가 펜의 검은 색깔로 완전히 물들 때까지 적어 내려갔다.
종이 수십 장을 그저 적는 것으로 소모했을 때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 한 장에 하나의 식을 적었다.

남들이 보기엔 기하학적인 문양이지만, 루센에겐 글자로 읽히는듯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루센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혼잣말을 하였다. "…이걸로 자아는 이어질 수 있을 거야."

작성을 끝낸 루센은 껌벅거리는 눈꺼풀을 비빈 다음, 그대로 쓰러져서 숙면을 취했다.
루센이 그렇게 깨어났을 때쯤엔, 자신이 적은 하나의 식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새하얀 백지 한가운데에 적힌 방정식 하나가 존재감을 주장하듯, 더러운 흔적 없이 적혀있었다.

6. 반생명 방정식: 만약, 반대로 적으면 어떻게 되는거지? 아니, '부여'할 수 있으면 '박탈'할 수 있는 걸까?
호기심에 동해 그런 생각을 품었다. 그렇게 반사적으로 식을 적어가던 도중, 바로 쓰던 연필을 꺾어버렸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한거지?' '지성을 박탈해?' '끔찍한 소리야.' '이런 건 있어서 안돼.' '쓰지도 않을 거야.'
루센은 그날, 거의 다 적을 뻔한 식을 지워버렸다. 다시는 이것을 적지 않을 거라는 다짐과 함께.

물론, 생명의 신으로 거듭난 지금에 와서도 그 다짐은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신'이기에 그런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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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財産)】

1. 확성기: 목소리를 울려퍼지게 만들어주는 이 도구는 루센이 자원봉사 시절부터 애용하는 물건입니다.
생각보다 군중을 통솔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관련 음향 지식이 없어도 단순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루센도 이제 마이크와 스피커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루센에게 가장 익숙하고 손에 가장 잘 맞는 것은, 자신과 수많은 순간을 함께한 그 확성기 하나였습니다.

이것은 그저 단순한 확성기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루센의 수많은 외침이 담겨있습니다.

2. 트렌치 코트: 확성기와 마찬가지로, 길고 오래 쓰기 좋은 옷을 사서 오랫동안 입고 있는 의상입니다.
코트 안쪽에는 밝은색 다이아 무늬 셔츠가 있지만, 활동하는 곳이 자주 바뀌다 보니 많이 해진 상태기도 합니다.

"수선집에 가긴 해야 하는데, 총알 자국이 너무 많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3. Smith & Wesson Model 29(리볼버): 어지간하면 무기를 들고다니거나, 경호를 따로 대동하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루센의 일행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한 자루 만큼은 꼭 들고다니라고 리볼버 한 정을 주었습니다.

이 리볼버는 어느 정도 특별한 인연이 있기도 한데, 한창 전자기기의 경이로움에 매몰되어 있던 그 시절.
'더티 해리'라는 영화를 시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불의에 참지 못하는 용감한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는 '액션 영화'입니다.

당시의 루센은 용감하지 못한 자신을 켈러헨 형사를 바라보며 동경했습니다. 성씨가 같았던 것은 우연이었을까요?
지금 와서는 더티 해리에 나오는 '해리 켈러헨'의 뒤를 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리볼버에도 필요 이상의 탄환을 채울 필요는 없겠죠.

"지금도 용감하진 않아요. 마초적이지도 않고요." "흐음, 지금이라도 본받는 게 좋지 않을까?"
"…이제는 제 신념대로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더는 뒤를 쫓지 않아도, 켈러헨 형사님은 받아들여주시겠죠."

그렇게 루센은 리볼버를 바라봅니다. "…만약, 그때 이게 있었어도 나는 쓰지 않았을 거야."라고요.

4. 옥나무 나뭇가지: 환주, 그곳에서 루센은 루루의 도움을 받아 온갖 곳을 여행하고 환상적인 것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일반적인 세상의 이치로는 다룰 수 없는 힘을 목도하기도 했는데, 루센은 자신의 호기심과 루루의 권유로 간단한 마술을 배워봤죠.

루루는 루센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지금은 쓰기 힘들테니까, 힘을 담을 수 있는 '매개체'를 찾아보자."라고요.
환주 이곳저곳을 움직이면서 찾던 중, '가지각색의 광석'으로 이루어진 골렘이 루센과 루루에게 도움을 부탁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라며 루센과 루루는 도움을 들어주고, 골렘은 감사하다는 의미로 '옥색 나뭇가지'를 주었습니다.
루센은 골렘에게 받은 옥색 나뭇가지를 정성스럽게 지팡이로 다듬었고, 한동안 마술과 자신의 마력을 보조하는 기물로서 애용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쓸모가 없어진 지팡이지만, 딱히 버리지도 않았고 품에서 떨어트려 놓지도 않았습니다.
가끔씩 품 속에서 꺼내놓고 가만히 지팡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때의 즐거운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5. 지갑: 현금과 카드만 담아놓은 휴대용 도구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용돈과 휴대폰으로 찍은 추억의 사진들.
하늘을 거닐며 날아다니는 아인들의 사진, 하늘과 지상을 오가며 다양한 장소에서 장사를 하는 너구리 수인들의 행렬 사진.

등 뒤에 자란 나무를 짊어지고 다니는 골렘들의 사진, 대현자의 미소, 토끼 소녀, 이나바들이 건네준 대나무 잎.
제대로 된 의료 자원이 없는 탓에, 굶어가면서 급하게 물자를 들고 수송하지만,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 자신의 사진.

확성기를 들고 동료들과 함께 시위를 하는 사진과, "…이건 ‘없던 일’이 되어도 아직 남아있었구나."
거대한 광장이 거대로봇에 의해 불타는 모습, 루센과 그 일행들의 혼비백산한 모습까지. "…이젠 되풀이하진 않을 거야."

그 사진 이후에는 보답의 의미로 받았던 각종 편지지와 작은 그림들, 다양한 문자로 적혀진 신분증 등.
지갑에는 수많은 여행의 증거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 지갑은 계속 채워지겠지요.

6. 휴대폰: 인간 기술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휴대폰은 밀레니엄 세대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루센의 부모님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해주리라 선언한 만큼, 최신 폰보다는 열화 됐어도 휴대폰을 선물하였습니다.

이때 받은 폴더폰부터 스마트폰으로 갈아끼울 때까지, 루센의 휴대폰에는 온갖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어? 이거… 아직 안 망가졌구나." 설마하니 그때의 총격으로부터 무사했을 줄이야. 게다가 흠집만 남은 정도라니…?

루센은 "…괜히 벽돌이라고 한 게 아니었네."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갈까." 작게 웃으며 품에 넣습니다.
이것 역시도 지금은 쓸모를 다해서 사용하지 않는 구식 폰이지만, 루센을 만들어준 어린 시절의 추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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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

1. 루센의 부모님, 어머니 에밀리 라이트(Emliy Wright), 아버지 토마스 켈러헨(Thomas Callahan)
보통의 가난한 집안에서 병약하게 태어난 자신의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천재 소년을 키워낸 두 사람의 이름이다.

토마스와 에밀리는 자신들이 살던 고향을 떠나 이민 왔을 때, 각자의 목표 속에서 타향살이를 하던 중,
이들은 운명적인 만남 속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고, 한 명의 자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 그게 바로 '루센'이었다.

새로운
세상고향이 될 이곳에서 자식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루센 역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며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루센의 고등학교 입학 후, 6개월간의 실종 때문에 슬픔으로 점철된 시간을 겪었지만,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갔다.

이들의 생각이 맞았던 것일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6개월 정도가 흐른 이후에 루센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환주」라는 곳에서 보낸 시간을 부모님에게 설명하고, 루센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였다.

부모님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고향을 떠나 먼 땅에 살아가면서 결국 정착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자신들의 자식 역시 해낼 수 있으리라 믿어주었기에, 루센의 부모님은 자식의 꿈을 응원하면서 자립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부모님께 그 보답이라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살아있는 동안, 제가 만들어나갈 세상을 살아가주셨으면 해요."

2. 루센을 환주로 바래다준 「
달의 토끼소녀이나바」들, 그리고 소녀들의 리더 이나바 루루(因幡るる).
"달에 있었을 때부터 이나바라고 불렸던 거야?" "그렇지∼." "인간들이 이나바라고 부르는 건… 글쎄. 무슨 이유에서일까."

"짐작되는 거라도 있어?" "「아폴로 13호」 정도?" "응…?" "그때 말고는 우리의 이름을 알 길이 없었을 테니까."
"그렇구나…." "뭐,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까. 어차피 너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잖아?" "…어린애 취급이네." "맞잖아♪"

루센과 토끼 소녀들의 관계는 단순한 친구보다도 약간 끈끈한 느낌에 가깝다. 그렇기에 남매로 보인다고도 한다.
여기에 소녀들을 통솔하는 이나바 루루는, 환주에서 길을 헤매는 루센에게, 기꺼이 손을 뻗어서 이끌어준 토끼소녀기도 했다.

지금까지 여정을 함께하면서 친밀감이라도 쌓았던 걸까. 루루는 루센을 호칭할 때에 '루루'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내 이름이 너의 이름과 몇 글자가 비슷하더라구." "그래서 ‘루루’라는 거야…?" "어때?" "…뭐, 나쁘진 않은 것 같아."

"…내 마음은 어떻게 꿰뚫어 본 거야?" "달에 있었을 때 배운 거지." "비슷한 사람이 많았어?" "뭐, 그렇지∼."
루루는 활발하고 넉살이 좋아서 인망이 좋지만, 가끔씩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이것도 달에서 배운 것이었을까?

"루루… 매일매일이 고마웠어. 너희들에게도 신세 졌고 말이야. ─다음이 있다면, 평범하게 만나서 같이 놀자."

3. 「미네르바의 올빼미」, 환주에 당도한 루센의 고민을 어르고 달래준 현자, 녹투아(Noctua).
환주의 오래된 나무 중 하나를 거처로 삼아,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그 고민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다.

"현자님은…" "대현자 쪽이라네."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요…?" "척이면 척이란거지."
"지구에 있었을 때는 뭐라고 불리셨나요?" "글쎄. 미네르바님의 올빼미…일까?" "…시적이네요?"

"후훗… 그래 보이니?" "저는 그렇죠." "새로운 관점이구나." "모두가 똑같진 않으니까요."
세간에 따르면 오래된 여신 중 한 명을 섬겼으며, 인간들이 신화를 몰아내는 것에 환멸하여 방주 계획에 지원했다고 한다.

그녀는 세간의 이야기에 입장을 따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인간과 환상종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이의 고민을 들어주는 그녀의 온화한 모습은, 세간의 이야기와는 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루센과는 그때의 만남을 기점으로 종종 루센이 찾아올 때, 루센이 모르는 지식을 넌지시 알려주기도 했다고.
"…정말 고마워요. 녹투아."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지 말게." "…하하.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4. 「환주원」의 「지구 귀환파」 의원, 루센 켈러헨의 협력자, 아스레드 벨투라(Asred Veltura)
"그런데… 아스레드 씨, 어쩌다가 당신들이 지구로 돌아가지 않으면 멸종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건가요?"

루센은 모든 일이 해결된 이후, 아스레드 씨와 차를 마시면서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부모님에게 들었고, 알카비스에서 지구를 '잊어버리는' 이가 나올수록, '재로 흩어지는 것'을 봤기 때문이네."

"…그런가요." "이건 알카니움에서 ‘제일 높으신 분들’조차 어찌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럼에도 싸우는 건가요?" "안락사라도 당하라는 건가?" "어쩌면… 그게 제일 행복한 결말일 수도 있죠."

"웃기는 소리지.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네. 그저 겁먹어서 존재 의의를 잃어버리는게 행복하다면…"
"…죄송합니다. 생각이 조금 많아졌어요." "…아닐세. 자네는 우리를 도와줬지. 은인에게 할 말은 아니었어."

그렇게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언제든지 환주에 놀러 오라’고 아스레드는 루센에게 얘기했다.
"…잘 지내세요 아스레드 씨. 지금까지 고마웠습니다." "자네의 여정이 앞으로도 잘 풀릴 수 있도록, 기도하겠네."

5. 환주의 환상종(幻想種)들, 루센이 '자아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만나게 된 여러 아인종(亞人種) 등등.
환주에서 수없이 만나본 환상종들과 아인종들. 행상인을 하던 수인부터 옥나무와 함께 땅을 거닐고 있던 골렘.

등반할 때 도와준 조인(鳥人), 뜬금없이 맞붙자며 덤벼온 오니, 어설프게 혈통을 발현해 고생하던 혼혈.
모두가 도움이 필요했고, 때로는 루센이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우리들은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고맙네, 젊은이." "오늘도 살아갈 수 있겠어." "…구우우." "여리여리해보이는데, 힘이 좀 쌨지…?"
"어떻게 등반하는지 가르쳐주느라고 고생 좀 했지." "지금은 좀 나아졌어. …언제까지고 도피할 수는 없겠네."

그래, 서로가 서로를 돕고 돕는 세상. 불가능해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루센이 만들어나갈 세상이다.

6. 루미에르 재단 「창립자」 겸 「간부」, 루센의 협력자, 클레망틴 라벨(Clémentine Labelle)
"뭐냐, 재수 없는 애송이." "사실은… 오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나마 인사하려고 찾아왔어요."

"오랜 여행?" "네. 어쩌면 백년… 아니면 천년이나요." "거창한 말이군. 그래서, 왜 왔지?"
"모든 것이 잘 풀리진 않았지만, 당신 덕분에 모든 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게… 감사해서요."

"제법이더라. 놀아나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안쓰러웠을 정도로."
"…마지막인데 좀 좋게 헤어지면 안 되나요?" "거기에 꼼짝없이 당해서 죽는 광경은 더더욱 그랬고."

"…잠깐만요. ‘기억’하시나요?" "글쎄?" "저,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던데…"
"애초에 ‘평범’의 기준이란 건 뭐냐?" "…그렇…네요." "너에게 좋은 말 해줄 거리는 하나도 없지만…."

"마지막은 멋있었다. 꼬마야." "고…맙습니다?" "가봐." "저는… 당신을 좀처럼 모르겠어요."
"나도 너를 모르겠는데, 당연한 거 아니겠냐?" 루센은 그렇게 클레망틴에게 인사하며, 재단에서 떠났다.

"뭐, 이걸로 됐겠죠?" 「독설이 심하더구나.」 "솔직한 평가입니다." 「고맙구나.」 "별말씀을."
루센이 떠나고 나서 클레망틴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끝내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 것으로 하루를 마친다.

7. 「그늘 없는 손」의 「특수요원」, 루센의 협력자, 진 마르크하임(Zhen Markheim)
"전에는 차마 물어볼 틈이 없었네요….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진 마르크하임이다."

"…감사했습니다 진씨. 많은 것을 알려주시고 도와주셨는데, 이제서야 전하네요."
"어디로 떠나는 건가?" "네. 많이 멀리 떨어진 곳으로요." 루센은 하늘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는다.

"천명의 상황은 어떤가요?" "조용하지." "정말로 조용한가요?" "…그래. 나도 깜짝 놀랐어."
진은 루센의 말에 "원래 이렇게 조용한 녀석들이 아니었는데…"라고 덧붙이면서, 나름 만족해하는 얼굴을 지었다.

"혹시… 당신은 천명한테…" "아, 그건 아니야. 당했다고 한다면 '관리국 녀석들'한테 당했고."
"이렇게 되고 나서는 믿지 않지만… 원래는 크리스천이었거든." "아…. 죄송합니다." "…이젠 상관없어."

"…미안. 너를 오래 붙잡아둔 것 같네." "아닙니다. …뭘 모르고 실례를 저지른 건 저였으니까요."
"나도 슬슬 임무를 하러 가야 하거든." "…수고하세요." "너도 수고해." 그렇게 무심하게 떠나려던 때──

진은 "…오랜만에 터놓고 이야기해서 즐거웠어." 속삭이듯이 말하면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이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하는 걸 모르는 걸까…." 루센은 쓴웃음을 지은 뒤, 이 세상을 다시 걸어간다.

8. 「레일라인 네트워크」 소속 「해커(Hacker)」, 루센의 협력자, 리오 낙스(Rio Knox)
"안녕하세요. 이렇게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는 건 처음인 것 같네요."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

"저희를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게다가 먼저 전화를 주신 걸 안 받는 것도 좀 그렇죠."
「그래그래. 아무튼 잘 지냈어?」 "하하… 네. ─그랬었는데, 앞으로는 좀 많이 바빠질 것 같아요."

「그런가─. 이쪽은 한가해질 것 같아.」 "그런가요?" 「요즘 올라오는 게 있어야지.」
"하핫… 고생하시네요." 「안 그래도 전에 했던 어그로를 재탕하고 있다니까? 지겨워죽겠어∼.」

「…뭐. 너한테 전화를 건 이유는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건건 아니야.」
"뭔가요?" 「들어봤어? ‘망상세’라는 거.」 "「
망상세妄想税」요?" 「젠장, 그건 노래라고! 아, 아니… 어쩌면….」

"무슨 일입니까?" 「최근 핫한 괴담인데, 망상세라는 ‘망상’을 ‘이룰 수 있는 돈’이 있다나봐.」
"…그냥 괴담이잖아요?" 「뭐, 그렇지. 그런데 솔깃하잖냐. 진짜 있으면 당장 이루고 싶은 게 많이 있고.」

"나중에 SCP에 빠지지 않길 바랄게요." 「혹시 모르지…? 세상 뒷면에 SCP 재단이 있을지도?」
"그러면… 이만 실례할게요.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아, 뭐야. 아직 이야기할 게 많이 남았는데…?」

「잠깐, 끊지 마!! 10시간은 들려주려고──」 "1시간이라면 몰라도, 10시간은 요금 폭탄이에요."
루센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는다. 자, 모두와 인사를 마쳤다. 이제 「  」에게 자신의 답을 들려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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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0. 「천명」 선각교 출신, 선각자(Forerunner): 그것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건 확실했다.
지구상에 있는 종교는 인간을 위한 것이다. 같은 지구의 생명이니 활로 정도는 열어놓겠다만, 지구의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있다.

"지구의 모든 형제자매들이여, 들으라! 구원은 멀었고, 악마는 가까이에 있다. 결단코 그들과 섞여선 안 된다!"
선각교 출신의 선각자가 무엇을 원하든, 결과적으로는 인간에게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누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그 과정에서 흘릴 피는 숭고한 자들의 표식일지니! 영원토록 인류의 역사에 남으리라! ─영원하라, 인간이여!

【번외】1. 「초상관리국」 국장, 관리자(Administrator): 세계 대전들 이후로 지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저기 먼 극동의 섬나라에서 피어오른 ‘두 개의 섬광’과 평원의 꽃 위에서 ‘수북하게 쌓여있는 시체들’이 있었다.

세계 대전의 승리자들은 전리품을 관리해야만 했다. 패배자의 남은 것을 착취하고, 사과를 하게 만든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익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다. 거역할 권리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인류에겐 철저한 관리자가 필요하다. 플라톤이 제창한 철인주의까지 가서 인용하지 않아도 문제없다.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온갖 현상과, 인간과는 다른 종족들, 인간이면서도 이질적인 자들과 맞서왔으니까.

공존을 외치는 자가 있었지만, 얼마나 공허한가? 손을 한 번만 휘둘러도 인간이 갈라질 완력이 있다.
인간에게는 없는 기묘하고도 신비한 능력이 있다. 그런 자들과 우리 인간이 어떻게 공존을 할 수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들에겐 족쇄가 필요하다. 인간의 몸에 총이 내장되어 있으면, 그 총을 빼낸다.
제어할 수 없다면? 격리해야만 한다. "들어라! 우리 함께 뭉쳐서 저들을 몰아내자! 우리의 고향을, 터전을 지켜야만 한다!"

그것을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피를 흘리는 것을 두려워 마라!" 망설임 없이 피를 흘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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