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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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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0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작성자 여관◆zAR16hM8he작성일 2026-05-08 (금) 01:04:15갱신일 2026-05-13 (수) 19:12:03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비껴간 창가의 날개》

— 창밖의 세계들을 지나, 오늘의 숨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

1막 — 창문여행

죠니 말투 보정 개정본

푸리나는 방 한가운데에서 커튼 고리를 들고 있었다.

그 고리는 본래 커튼을 묶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푸리나가 들고 있으면 물건들은 자기 본래의 일을 금세 잊어버렸다. 포대 자루는 막이 되고, 뒤집힌 상자는 객석이 되고, 낡은 망토는 왕의 망토가 되고, 깨진 잔은 누군가의 운명을 비추는 성배가 되었다. 그러므로 하융은 그 커튼 고리를 보며 생각했다. 오늘 저 고리는 아마 창문을 묶는 물건이 아니라, 창문들을 무대 위에 세우는 지휘봉이 될 것이다.

방은 여전히 네모가 아니었다.

창이 너무 많았다. 제1의 창, 제2의 창, 제3의 창. 하융은 이미 번호를 붙여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번호는 질서가 아니었다. 공포가 줄을 선 것뿐이었다. 제1의 창에서는 수레가 살았고, 제2의 창에서는 수레가 죽었다. 제3의 창에서는 수레가 애초에 없었다. 제4의 창은 열리기 전에 닫혔고, 닫힌 창 너머에서 죽은 사람이 하융을 보았다.

방은 방이 아니었다. 창이 너무 많아 방은 창의 부속품이 되었다. 하융은 그 가운데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놓여 있었다. 놓인 사람은 사람이 아니오. 물건이오. 물건은 숨을 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숨을 세었다.

하나.

둘.

셋.

아직 숨이 있었다.

푸리나는 그 숨을 기다려주었다.

그녀는 바로 떠들지 않았다. 커튼 고리를 들고, 방 안의 창들을 한 번 보았다. 더 나은 세계, 더 나쁜 세계, 이미 끝난 세계, 실현되지 않았으나 너무 생생한 세계. 그리고 하융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말했다.

“하융.”

“듣고 있소.”

“이 창문들, 너무 잘난 척하고 있어.”

하융은 잠시 그녀를 보았다.

“……잘난 척 말이오?”

“응. 봐봐. 나는 비극이다, 나는 최선이다, 나는 실패다, 나는 네가 놓친 세계다, 하고 전부 엄청난 얼굴을 하고 있잖아. 저렇게 무게 잡는 소품은 무대 위에 오래 두면 안 돼. 배우를 잡아먹거든.”

하융은 대답하지 못했다.

푸리나는 창 하나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종이 조각 하나를 꺼내 창틀에 붙였다. 글씨는 크고 삐뚤었다.

일단 너무 믿지 말 것.

레이튼이 찻주전자를 들고 들어오다가 그 문장을 보았다.

“전하, 철학적으로는 상당히 도발적인 안내문이군요.”

푸리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좋지? 무서운 창문한테 필요한 건 향이랑 촛불이 아니라 저런 안내문이야. 신성한 척을 좀 덜 하게 만들어야 해.”

죠니는 문가에 기대어 접시를 들고 있었다. 그는 창틀의 종이를 읽고, 잠깐 창 너머를 보았다. 어딘가에서 말발굽 소리가 났고, 어딘가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비명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죠니는 그쪽을 조금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쁘지 않네. 사람도 너무 믿으면 골치 아픈데, 창문이라고 다를 건 없지. 게다가 저쪽은 얼굴도 없잖아. 따지고 싶어도 누구한테 따져야 할지 모르겠어.”

푸리나가 웃었다.

“죠니답게 실용적인 비판이야.”

“실용적이어야지. 창문이 말까지 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교수한테 넘기면 되고.”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 경우라면 먼저 창문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지부터 살펴야겠군요.”

“봐. 벌써 귀찮아졌잖아.”

그레이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기록판을 품에 안고 있었고, 눈에는 아직 잠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방 안의 창들을 보자마자 그 잠은 사라졌다. 그녀는 푸리나가 붙인 종이를 보고, 아주 작게 말했다.

“그러면…… 하나 더 붙여도 될까요?”

푸리나가 활짝 웃었다.

“물론이지. 그레이의 작은 글씨는 큰 글씨보다 오래 남으니까.”

그레이는 조금 민망한 듯 고개를 숙이고, 종이 하나에 차분히 적었다.

이 창은 현실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이 창은 오늘 무엇을 해볼 수 있는지 살피기 위한 것입니다.

하융은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글씨는 작고 단정했다. 화려하지 않았다. 사람을 휘어잡는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문장은 문턱 같았다. 방 안으로 돌아오는 문턱. 창밖이 아무리 많아도, 여기 발을 둘 수 있게 해주는 낮은 선.

“그레이 경의 글씨는, 가끔 부적 같소.”

그레이가 눈을 깜박였다.

“부적……입니까?”

“귀신을 쫓는 것만이 부적은 아니지 않소. 어떤 글씨는 사람이 사람으로 남게 하오.”

그레이는 조금 당황한 듯 기록판을 안았다.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헷갈리지 않게 적은 것뿐입니다.”

“그러니 부적인 것이오.”

푸리나는 곧장 끼어들었다.

“좋아. 오늘의 첫 번째 소품은 부적이네.”

“전하, 그건 소품이라기보다는…….”

“괜찮아, 그레이. 무대 위에서는 다 소품이야. 단, 소품이라고 가볍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야. 소품은 배우를 살리기도 하거든. 넘어질 사람 앞에 놓인 의자 하나처럼.”

그레이는 그 말에 잠시 멈췄다.

그리고 작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네.”

하융은 푸리나를 보았다.

그녀는 창을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창이 하융을 삼키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 권위를 깎고 있었다. 너무 무거운 이름을 가진 것들은 사람을 무릎 꿇게 한다. 푸리나는 그 이름 위에 삐뚤삐뚤한 종이를 붙였다. 무서운 세계 위에, “일단 너무 믿지 말 것”이라고.

그 무례함은 구원과 닮아 있었다.

죠니가 접시를 살짝 들어 보였다.

“그래서, 이건 어디 두면 되는 건데? 먹을 걸 들고 오래 서 있으면, 내가 뭘 도와주러 온 건지 점점 헷갈리거든.”

푸리나가 그제야 죠니를 보았다.

“그건?”

“먹을 것. 겉보기에는 별거 아니지만, 이런 밤에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아주 중요하지. 관객석 옆.”

“관객석이 어딘데?”

푸리나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적당한 상자를 가리켰다.

“저기.”

죠니는 상자 위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자기가 방금 만든 관객석을 한 번 살피고, 창문들과의 거리를 재듯 고개를 기울였다.

“나쁘지 않은 자리네. 접시 놓기 편하고, 창문이랑도 적당히 멀어. 너무 가까우면 저쪽 세계가 내 빵까지 훔쳐갈 것 같거든.”

“창문은 빵 안 먹어.”

“확신하지 마. 저렇게 많은 세계가 있는데, 빵 먹는 창문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지.”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좋아. 그 창문은 나중에 희극으로 쓰자.”

죠니는 한숨처럼 웃었다.

“내가 괜한 말을 했네.”

잠시 뒤 죠니가 물었다.

“그럼 관객은 먹으면서 봐도 되는 거야? 안 된다고 하면 꽤 곤란한데. 지금 이 접시를 다시 가져가긴 싫거든.”

푸리나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훌륭한 관객은 먹으면서도 볼 수 있어. 손이 바쁘다고 눈까지 쉬는 건 아니잖아?”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네. 손이 바쁜 건 참을 수 있는데, 입까지 쉬게 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그리고 더 훌륭한 관객은 먹으면서 박수도 칠 수 있어.”

“그건 손이 세 개쯤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발로 쳐.”

“발박수는 좀 별론데. 내가 전장에서 별걸 다 봤지만, 발박수를 치는 관객은 아직 못 믿겠어.”

“무대의 역사는 편견과 싸워왔어, 죠니.”

“그런 식으로까지 싸울 필요는 없어. 편견도 가끔은 살려둘 가치가 있어.”

하융은 웃었다.

이번에는 웃음이 조금 덜 어렵게 나왔다. 방 안의 창들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그러나 푸리나와 죠니가 발박수의 역사에 대해 말하는 순간, 그 창들은 더 이상 신탁처럼 굴 수 없었다. 그것들은 잠시 무대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소품처럼 보였다.

레이튼은 찻잔을 나누며 말했다.

“그럼 첫 번째 창부터 볼까요. 다만 오늘은 정답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좋은 질문과 작은 시도를 찾는 시간으로 두면 어떻겠습니까?”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좋아. 레이튼다운 말이야. 다만 너무 교실 같으면 하융이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나는 이렇게 말할래.”

그녀는 커튼 고리로 첫 번째 창을 가리켰다.

“창문여행 첫 번째 목적지. 저쪽에서 뭐 하나 훔쳐와서, 이쪽에서 작게 해보기.”

레이튼은 잠시 생각했다.

“훔친다는 표현은 계속 문제적입니다만.”

“그럼 밀반입.”

“더 나빠졌습니다.”

“그러면 빌리기.”

“그 정도면 괜찮겠군요.”

“좋아. 가능성에서 소품 빌리기.”

죠니가 접시에서 빵을 하나 집어 들었다.

“빌리는 건 좋아. 다만 빌린 뒤에 갚으라고 찾아오는 가능성은 좀 사양이야. 그런 건 대개 이자가 붙거든.”

하융은 첫 번째 창을 보았다.

창 안에는 시장이 있었다.

킬리키아의 어느 항구 도시인 듯했다. 현실의 그 도시는 며칠 전까지 피난민과 보급마차로 가득 차 있었다. 집은 닫혀 있었고, 상인들은 물건보다 소식을 더 두려워했다. 그러나 창 안의 도시는 달랐다. 작은 깃발들이 걸려 있었다. 빵집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아이들은 구운 견과를 손에 쥐고 뛰었다. 어느 악사가 낡은 현악기를 켜고 있었고, 군인들은 경계하고 있었지만 웃고 있었다. 전쟁이 사라진 세계는 아니었다. 다만 전쟁이 조금 멀리 있는 세계였다.

숨을 쉴 틈이 있는 세계.

하융은 그 창을 오래 보았다.

“저쪽은…… 조금 더 가볍구려.”

푸리나는 창 안을 보았다.

“시장?”

“그렇소.”

“축제네.”

“축제라 부르기에는 작소.”

푸리나는 과장되게 눈을 크게 떴다.

“작은 축제는 축제가 아니야? 무대가 작다고 배우가 덜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니잖아. 작은 무대에는 작은 무대의 박수가 있고, 작은 축제에는 작은 축제의 빵 냄새가 있어.”

하융은 대답하지 못했다.

작은 축제.

가능세계는 거창한 이름을 좋아했다. 최선의 세계, 실패한 세계, 구원된 세계, 멸망한 세계. 그러나 푸리나는 그것을 작은 축제라고 불렀다. 작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가능성을 덜 잔인하게 만들었다. 작으면, 따라 할 수 있었다.

“현실의 그 도시는 아직 그럴 여유가 없소.”

“응. 그러니까 그대로는 못 해.”

푸리나는 이번에도 너무 빨리 인정했다. 그 빠른 인정이 하융을 조금 멈추게 했다. 그녀는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알고도 무대 위에 올릴 크기를 다시 재는 사람이었다.

“저쪽 세계가 아무리 잘났어도, 오늘 우리의 무대에 허락 없이 올라오게 둘 수는 없잖아? 완벽한 축제는 못 가져와. 하지만 빵 한 조각, 잼 한 숟갈, 아이가 웃을 핑계 하나 정도는 가져올 수 있어.”

죠니가 빵을 반으로 찢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완벽한 축제는 준비하다가 다들 지쳐. 빵 한 조각은 바로 먹을 수 있고.”

푸리나가 그를 가리켰다.

“봐. 관객 대표도 동의했어.”

“관객 대표가 아니라 배고픈 사람 대표에 가깝지만, 대충 맞는 말이야.”

“그것이 가능하겠소?”

하융이 묻자, 푸리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가능하게 만들 거야. 안 되면 더 작게 줄이면 돼. 축제가 안 되면 점심. 점심이 안 되면 빵 나눠 먹기. 빵도 없으면…….”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이름만이라도 먼저 붙여두자. 이름 붙은 빈 접시는, 언젠가 채워야 하니까.”

하융은 그 말을 들으며 창 안의 시장을 다시 보았다.

어느 창에서는 꽃나무가 있었다. 전쟁이 조금 늦게 온 세계의 꽃나무. 어느 아이가 그 아래에서 빵을 먹었다. 하융은 그 꽃이 부러웠다. 전쟁보다 먼저 피어난 꽃. 창밖의 꽃은 저쪽 세계의 바람을 맞고 흔들렸다.

푸리나는 그것을 보더니 말했다.

“꽃도 있네.”

“그렇소.”

“그럼 이쪽에도 심자.”

“전쟁 중에 말이오?”

“전쟁보다 먼저 피면 되는 거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이번에는 조금 더 낮게 덧붙였다.

“꽃이 전쟁을 이기지는 못해도, 전쟁이 오기 전에 누군가 고개를 들게 만들 수는 있으니까. 그런 장면 하나쯤은 필요해. 사람이 계속 땅만 보고 걸으면, 길도 감옥처럼 느껴지거든.”

죠니는 창 안의 꽃나무를 보았다.

“나쁘지 않네. 꽃은 방패가 되진 못해도, 사람이 자기가 아직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게 만들 때가 있으니까.”

그는 잠깐 말을 멈추고, 빵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물론 꽃만 보고 있다가 화살 맞으면 곤란하니까, 심을 거면 성벽 안쪽에 심어. 현실적인 조언이야.”

푸리나가 웃었다.

“현실적인 조언 접수.”

하융은 말없이 그들을 보았다.

푸리나의 밝음은 가벼움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전쟁을 몰라서 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을 알기 때문에, 전쟁이 모든 장면의 제목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죠니도 그랬다. 그는 꽃을 보고 감탄하지 않았다. 꽃에 대해 길게 말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것이 사람을 사람으로 남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다음 순간 성벽 안쪽에 심으라고 했다. 그 균형이 하융에게는 이상하게 편했다.

하융은 낮게 말했다.

“창외의 꽃을 이쪽 흙에 심을 수는 없소.”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건 알아.”

“허나 이쪽 흙에 이쪽 꽃을 심을 수는 있겠구려.”

푸리나는 웃었다.

“그거야. 가능성은 남의 무대를 베끼라는 게 아니라, 우리 무대에 뭐 하나 더 올려볼까 묻는 거잖아.”

레이튼이 조용히 말했다.

“가능성이 현실을 심판한 것이 아니라, 현실이 가능성으로부터 질문 하나를 빌린 셈이군요.”

죠니가 빵을 씹으며 말했다.

“질문 이름이 꽃 심을래? 인 거지? 어렵게 말하면 꽃도 부담스러워할 것 같은데.”

레이튼은 웃었다.

“오늘은 그렇게 해도 좋겠습니다.”

그레이는 기록판에 적었다.

시장 축제 가능성.
현실 적용: 빵과 잼 나눔. 작은 꽃 심기. 피난민 아이들도 참여 가능.
축제라는 이름이 부담되면 점심 행사로 낮출 것.

하융은 그 문장을 보았다.

점심 행사.

가능세계의 축제가 그레이의 손을 거치자 점심 행사가 되었다. 웅장함은 사라졌지만, 실현 가능성이 생겼다. 하융은 그게 좋았다. 어떤 아름다움은 너무 높이 있으면 사람을 죽인다. 낮아져야 밟을 수 있다. 낮아져야 앉을 수 있다. 낮아져야 빵 위에 발라 먹을 수 있다.

첫 번째 창이 조금 작아졌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방을 밀어내던 빛이 줄었다. 창은 이제 벽을 잡아먹지 않았다. 그 창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하나의 작은 기록으로, 하나의 점심 행사 제안으로 남았다.

하융은 숨을 내쉬었다.

하나.

둘.

셋.

숨은 조금 쉬워졌다.

푸리나는 두 번째 창 앞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조금 조심스러웠다. 첫 번째 창의 빛과 달리, 두 번째 창에서는 먼지가 났다. 길의 먼지, 발의 먼지, 떠나온 집의 먼지. 피난민의 창이었다.

그곳에는 길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았던 혼란스러운 길과는 달랐다. 수레가 한쪽으로 밀리지 않았고, 아이들이 가운데에 몰려 짓밟히지 않았으며, 노인들이 쉴 수 있는 지점마다 작은 표식이 세워져 있었다. 물통이 일정 간격으로 놓여 있었고, 길을 잃은 사람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천 조각이 나뭇가지에 묶여 있었다. 그 세계의 피난은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덜 무너지고 있었다.

하융의 눈이 가라앉았다.

“저것은…….”

그레이가 한 걸음 다가왔다.

“피난 동선입니까?”

“그렇소. 저쪽에서는 수레를 오른쪽 길로 보내지 않았소. 왼쪽의 완만한 길을 썼소. 물통은 세 번째 굽이마다 있고, 노인들은 돌다리 앞에서 쉬었구려. 아이들은…… 가운데가 아니라 수레 사이에 나누어 세웠소.”

그레이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 번째 굽이. 돌다리 앞. 아이들을 수레 사이로 분산.”

하융은 창을 보며 말했다.

“다만 저쪽 세계는 적이 하루 늦게 왔소.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되오.”

레이튼이 물었다.

“그렇다면 이 창이 남기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하융은 잠시 침묵했다.

창 안의 피난민들이 걸었다. 피난이란 떠나는 일이지만, 동시에 남는 일이다. 집을 떠나도 이름은 남고, 길을 떠나도 두려움은 남는다. 하융은 선택되지 않은 세계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이쪽 현실의 사람들은 아직 같은 방식으로 걷지 않았다. 저 세계가 더 낫다고 말하는 순간, 이쪽의 피난민들은 실패한 사람이 된다. 그것은 옳지 않았다.

“저쪽이 정답인 것은 아니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허나 저쪽은 질문을 남기오. 우리는 왜 오른쪽 길만 보았는가. 왜 물통 간격을 더 좁히지 않았는가. 왜 아이들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었는가.”

레이튼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 질문이라면, 이쪽 세계에서도 물을 수 있겠군요.”

그레이는 기록판을 품에 안고 조금 낮게 말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오른쪽 길이 빠르긴 하지만, 수레가 몰리면 병목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왼쪽 길은 느리지만…… 노인과 아이에게는 오히려 나을 수도 있고요.”

푸리나는 창 안의 길을 보았다. 이번에는 바로 농담하지 않았다. 그녀는 피난길을 한참 보다가 말했다.

“그럼 내일 아침에 가보자.”

하융이 그녀를 보았다.

“직접 말이오?”

“응. 직접.”

푸리나는 커튼 고리를 어깨에 걸치듯 들었다.

“피난길은 종이에만 있으면 안 돼. 길은 발로 밟아봐야 길이야. 그리고 내가 무대 바닥을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배우가 어디서 넘어지는지 어떻게 알아?”

“전하가 돌다리와 물통 간격을 확인하러 가겠다는 말이오?”

“왜? 왕은 돌다리에 발 올리면 안 된다는 법 있어?”

죠니가 접시를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법 있으면 없애. 돌다리가 왕을 가리는 건 좀 건방지잖아.”

푸리나는 즉시 웃었다.

“좋아. 돌다리 반역죄.”

“그 정도로 키우지는 말고. 돌은 죄를 물어도 대답을 안 해. 괜히 재판만 길어져.”

하융은 잠시 푸리나와 죠니를 보았다.

왕이 직접 피난길의 돌다리와 물통 간격을 보러 간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푸리나는 원래 그런 왕이었다. 그녀는 대극장의 주인처럼 말하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포대 자루를 들고 무대 뒤로 들어갔다. 그녀에게 무대는 객석에서 지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닥을 밟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배우가 넘어질 돌을 치우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도 가겠소.”

죠니가 말했다.

“나도 갈게. 돌다리 상태 안 좋으면 말이 싫어하거든. 사람은 불평을 설명하지만, 말은 그냥 안 가. 어느 쪽이 더 무서운지는 상황마다 다르고.”

그레이가 작게 말했다.

“말이 안 가면 사람도 못 갑니다.”

죠니가 손가락으로 그레이를 가리켰다.

“봐. 그레이도 동의했어. 말은 행정을 이긴다니까.”

그레이가 조금 당황했다.

“동의했다기보다는…… 사실관계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말이 행정을 이긴다는 표현은 조금…….”

“현장에서 자주 그래.”

그레이는 반박하려다가,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럴 때도 있습니다.”

푸리나는 웃었다.

“좋아. 내일 아침 피난길 답사. 이거 완전히 여행이네. 창문여행이 현실여행으로 바뀌었어.”

하융은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창 안을 다시 보았다.

피난민의 길이 더 이상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질문이 되었고, 점검표가 되었고, 내일 아침의 답사가 되었다. 답사라는 말은 전쟁보다 작고, 피난보다 차분했다. 어쩌면 사람은 그런 작은 단어들로 살아남는지도 몰랐다.

두 번째 창도 조금 작아졌다.

하융은 방이 다시 네모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완전히 네모는 아니었다. 아마 그의 방은 영원히 완전한 네모가 되지 못할 것이다. 창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산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방에 놓인 물건이 아니었다. 그는 창을 설명했고, 누군가는 그 설명을 질문으로, 누군가는 장부로, 누군가는 피난길 답사와 말 상태로 바꾸었다.

사람은 혼자 보면 박제가 된다.

함께 보면 증언이 된다.

하융은 그 문장을 마음속에 적었다.

푸리나는 세 번째 창 앞에 서려다가, 하융의 얼굴을 보고 멈췄다.

“하융.”

“듣고 있소.”

“잠깐 쉴까?”

하융은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조금 어깨를 으쓱했다.

“창문여행이라며. 여행에는 쉬는 곳이 있어야지. 안 그러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행군이야. 그리고 나는 지금 행군보다 막간이 좋아.”

죠니가 접시를 들어 올렸다.

“막간 담당은 나네. 내가 들고 온 게 드디어 극적 의미를 얻었어. 그냥 야식인 줄 알았는데.”

레이튼이 차를 따랐다.

“훌륭한 배치입니다.”

그레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세 번째 창은…… 차를 마신 뒤에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푸리나는 아주 장엄하게 커튼 고리를 들었다.

“좋아. 제1막, 창문여행. 첫 번째 정차. 차와 빵. 관객 여러분께서는 손에 든 현실을 놓치지 마시고, 가능성은 잠시 창가에 세워두시기 바랍니다.”

죠니가 말했다.

“제목이 길어. 차 마시기 전에 다 식겠다.”

“그럼 줄여봐.”

죠니는 잠깐 고민했다.

“먹고 보자.”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채택! 역시 좋은 관객은 핵심을 볼 수 있어. 먹으면서도.”

죠니는 접시를 하융 쪽으로 밀었다.

“먹고 보자. 배고픈 상태로 세계를 비교하면, 대부분의 세계가 다 마음에 안 들거든. 그건 철학이 아니라 혈당 문제일 때도 있어.”

하융은 웃었다.

그 웃음은 이번에는 더 쉽게 나왔다.

창밖에는 무수한 세계가 있었다. 여전히 있었다. 그중 어떤 세계는 오늘보다 아름다웠고, 어떤 세계는 오늘보다 참혹했다. 어느 세계에서는 하융이 더 나은 사람이었고, 어느 세계에서는 이미 끝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방 안에는 차가 있었다.

빵이 있었다.

푸리나가 삐뚤게 붙인 안내문이 있었다.

레이튼의 질문이 있었다.

그레이의 작은 글씨가 있었다.

죠니의 “먹고 보자”가 있었다.

하융은 식은 차 대신 새로 따른 차를 받았다. 잔은 따뜻했다. 이번에는 미지근하지 않았다. 손끝에 온도가 닿았다. 확실한 온도였다. 창밖의 어느 세계도 대신 느낄 수 없는, 이쪽 방 안의 온도.

“좋소.”

푸리나가 물었다.

“뭐가?”

“먹고 보자는 말이.”

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철학은 거기서 시작해도 돼. 적어도 내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은 그래. 아무것도 안 먹은 사람이 세계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대체로 너무 비장해지거든.”

레이튼이 미소 지었다.

“그 주장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논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죠니는 빵을 찢어 하융에게 건넸다.

“논증은 네가 해. 난 먹을게. 역할 분담이라는 게 있잖아.”

그레이가 아주 작게 웃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보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커튼 고리를 내려놓았다.

“좋아. 이 정도면 1막은 성공이네. 창문 두 개를 봤고, 점심 행사 하나랑 피난길 답사 하나를 얻었고, 아무도 창밖으로 끌려가지 않았어. 아주 훌륭한 성과야.”

하융은 빵을 받았다.

날개가 있다면, 아마 이런 순간에도 돋을 수 있을 것이다.

창밖으로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 안의 차를 받으러 손을 뻗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