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잡담방 -363-

#14698 [채팅]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잡담방 -363- (282)

#0에주(a322f3f8)2026-09-19 (토) 13:42:17
위키: https://opentalkwiki.mycafe24.com/wiki.php/%EB%8C%80%EB%AC%B8
1:1 카톡방: >8525>
번개모임방: >5108>
웹박수: https://talk-clap.vercel.app/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á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152신생활 - L4CUNA(fc1a3ce2)2026-09-26 (토) 00:50:35
도쿄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회색 하늘이 보였고, 처마를 벗어난 사람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우산을 펼쳤다. 검은 우산과 투명한 비닐우산이 순식간에 거리를 채웠다. 저마다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은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횡단보도 앞에 모여들었다가, 초록불이 켜지면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흘러갔다.
나는 그 광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캐리어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우산이 없었다.

“……하필.”

조금 억울했다. 가출이라는 건 아무래도 맑은 날에 하는 편이 그림이 좋다. 적어도 내가 상상했던 건 이렇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리면 햇빛이 눈부시고, 처음 보는 도시를 올려다보며 이제부터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고 나서 힘차게 첫발을 내딛는 것.

실제로는 역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편의점 위치부터 찾고 있었다.
그래도 도쿄.
그 사실 하나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진짜 왔네.”

작게 말해보고 나니 웃음이 났다. 조금 더 크게 말하고 싶었지만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그만뒀다.
캐리어 안에는 급하게 쑤셔 넣은 옷과 속옷, 세면도구, 충전기가 있었다. 교복도 들어 있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학교를 그만뒀으면서 그걸 왜 챙겼는지는 나도 몰랐다. 아침에 옷장을 열고 눈에 보이는 걸 집어넣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지갑에는 돈이 있었다.

내 돈도 있었고, 내 돈이 아닌 것도 있었다.
아빠 지갑에서 꺼냈고 엄마 지갑에서도 조금 가져왔다. 훔친 거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갚을 생각이었다. 언제, 어떻게 갚을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생각했다면 아마 집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돌아가지 않는 거였다.

역 안의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하나 샀다. 계산대에 찍힌 가격을 보고 처음으로 앞으로 돈을 얼마나 아껴야 하는지 생각했고, 그 생각은 십 초쯤 뒤에 그만뒀다.
얼마 동안 도쿄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계산이 될 리 없지.
우산을 펼치고 밖으로 나가자 빗소리가 갑자기 가까워졌다.

초여름을 앞둔 비는 차갑지 않았다. 회색 하늘 아래로 축축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젖은 아스팔트와 자동차 배기가스가 섞인 냄새가 올라왔다. 건물의 전광판은 낮인데도 밝았고, 비에 젖은 유리창마다 붉고 푸른 불빛이 길게 늘어졌다.
우리 동네에서 비가 오는 날은 조용했다. 사람들이 일찍 집에 들어가고 가게 앞에 내놓은 물건들도 하나씩 사라져서, 저녁이 되면 빗물이 처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도쿄는 이상하게도 비가 오는데 더 시끄러웠다.
차가 물을 밀어내는 소리와 신호등의 전자음,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뒤섞였고, 누군가는 전화로 싸우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우산 아래에서 웃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칠 때마다 옷자락에서 비 냄새가 났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목소리 가운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몰랐다.

카라스마 하루카가 어느 고등학교에 들어갔다가 얼마 만에 그만뒀는지, 교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다쳤는지, 그 전에 누가 바닥에 넘어져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도, 내가 왜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신호가 바뀌는 걸 기다리면서 우산을 조금 높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곳에 있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도 모르면, 적어도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숙소를 잡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 시간쯤 뒤였다.
창가 자리가 비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들어간 카페에서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커피는 예상보다 훨씬 썼고, 시럽을 두 개나 넣었는데도 별로 맛있어지지 않았다.
숙박 앱을 켰다가 나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비싸.”

화면을 끄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켰다.
조금 더 내려보면 싼 곳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싼 곳은 싼 이유가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있다니 도쿄는 굉장하구나.

인터넷카페나 만화카페도 찾아봤다. 검색 결과만 보면 도쿄에서는 어디서든 잘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하나씩 눌러보면 나이, 시간, 보호자 같은 단어들이 자꾸 나타났다.
열다섯 살이라는 게 오늘따라 몹시 불쾌했다.

그때 휴대폰 상단에 엄마 이름이 나타났다. 메시지. 내용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읽지 않고 알림을 밀어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막무가스럽기는. 화면을 바라보는 동안 전화는 한참 이어지다가 끊겼고, 이번에는 아빠 이름이 떴다.
더이상 보고있기 힘들어서 그냥 휴대폰을 뒤집어버리고 소리를 꺼버렸다.
받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잘 있다고 하면 돌아오라고 할 테고,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면 이유를 물을 것이다. 이유를 말하면 결국 어제와 같은 이야기로 돌아간다.
네가 억울한 건 알지만.
상대가 다쳤으니까.
일단 사과부터 하고.
그 뒤에 이야기하면 되잖니.
나는 커피를 마셨다. 아까보다 더 썼다.

“……맛없어.”

그 말만큼은 누구에게 해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저녁은 편의점에서 해결했다.
삼각김밥 두 개와 컵라면을 고른 뒤 한참 고민하다가 푸딩도 하나 샀다.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출 첫날인데 푸딩 하나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기념일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웃음이 났다.
편의점 처마 아래에서 컵라면을 먹다가 입천장을 데었다.

“아뜨……!”

입을 벌리고 식히면서도 면을 놓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맛있었다.
집에서 먹던 밥보다 맛있다고 생각했다가 곧바로 마음이 불편해졌다. 엄마가 해준 밥이 맛없었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다시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나는 젓가락을 든 채 화면을 바라봤다.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집을 나오고 몇번이나 연락이 왔으니까.
그래도 가족에게 대답도 하지 않는건 올바르지 않은건 아닐까.

나 잘 있어.
걱정하지 마.
찾지 마.
미안해.

마지막 말이 떠오르자 손가락을 거뒀다.
결국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화면이 검게 꺼졌다.

“밥 먹을 때 전화받지 말라고 했었지.”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변명하고 푸딩 뚜껑을 열었다.
처음 먹는 푸딩은 조금 과하게 달았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해졌다.
몇 군데를 더 알아봤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돈을 더 쓰면 어떻게든 방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돈을 쓰기 시작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만화카페도 시간 제한에 걸렸고, 미성년자라는 말은 낮에 볼 때보다 밤에 볼 때 훨씬 무서운 단어였다.

나는 결국 어느 자동판매기 옆에 캐리어를 세워두고 쪼그려 앉았다.
운동화는 오래전에 젖었고 양말도 축축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처음처럼 신기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다시 켜보니 배터리는 23퍼센트였다.
충전기는 캐리어 안에 있었다.
콘센트는 없었다.

“충전기만 있으면 뭐 해.”

집을 나올 때는 그럴듯한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옷을 몇 벌 가져가야 하는지는 고민하면서 오늘 어디서 잘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졸음이 오자 집이 생각났다.
내 방의 침대와 베개, 충전기가 꽂혀 있는 책상, 냉장고에 있던 보리차까지 쓸데없이 생생했다.

지금 돌아가도 된다.
역으로 가서 표를 사고, 기차를 타고, 집까지 가서 초인종을 누르면 된다. 엄마는 아마 울 것이고 아빠는 화를 낼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한참 뒤에 다시 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가 그렇게 중요해?
네가 한 번만 사과하면 끝나는 일이야.
나는 무릎에 턱을 얹었다.
그때의 방 안 냄새까지 기억나는 것 같았다.

“싫어.”

내 목소리는 빗소리에 거의 묻혔다.
내가 조금만 다르게 움직였다면 그 애가 다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팔꿈치가 눈에 맞았을 때 나도 무서웠고, 피를 본 순간에는 내가 정말 큰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전에 맞고 있던 애가 있었다.
바닥에 넘어져 있던 애가 있었다.
내가 사과하고 끝내버리면 그건 어떻게 되는 건데.
왜 누가 잘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데.
왜 당한 사람이 가해자의 눈치를 봐야하는건데.
나는 젖은 운동화 끝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중얼거렸다.

“난 싫어.”

그 순간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씨발!”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여자 목소리치고는 제법 낮았지만 들려온 거리는 가까웠다.
그리고... 엄청나게 컸다. 빗속에서도 다 들릴 정도로.
잠시 뒤에는 다시 빗소리만 남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방향에서 훨씬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뭐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밤중에 골목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보통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궁금했다.
저렇게 소리를 질러놓고 대체 뭐가 됐다는 건지.
나는 캐리어를 끌고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걸었다.

골목을 하나 돌아가자 여자가 보였다.
가로등 아래에서 우산을 기울인 채 서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멀쩡해서 조금 실망했다. 그 정도로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질렀으니까 적어도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줄 알았다.
머리카락 끝은 젖어서 뺨에 붙어 있었고, 한 손에는 편의점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여자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흐트러진 우산을 바로 들었다.

“……그래 됐어.”

아까보다 훨씬 작은 목소리였다.
그대로 돌아서려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말했다.

“안 됐는데요.”

여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천천히 돌아본 얼굴에는 정말로 ‘뭐지, 이건’이라고 적혀 있는 것 같았다.

“……뭐?”

막상 눈이 마주치자 조금 무서웠다. 그래도 이미 말을 꺼냈으니 도망가기는 싫었다.

“안 된 것 같은데요.”
“뭐가.”
“그냥……전부요. 방금 그렇게 소리 질러놓고 됐다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시선이 젖은 운동화에서 캐리어로 올라오더니 마지막에는 얼굴에 멈췄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너 몇 살이야?”
“열다섯이요.”
“열다섯?”
“네.”

여자의 미간이 좁아졌다.

“집에 가.”

기분이 나빠졌다.

“싫어요.”
“뭐?”
“안 가요.”
“지금 몇 신데 열다섯 살짜리가 캐리어 끌고 여기 있어.”
“여행 중인데요.”
“혼자?”
“네.”
“숙소는?”

나는 잠깐 망설였다.

“……찾는 중이요.”
“없다는 소리잖아.”
“아직은요.”

여자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미치겠네.”
“괜찮아요. 돈 있어요.”
“돈 있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잖아.”
“찾다 보면 나오겠죠.”
“몇 시간째 찾았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의 표정이 더 나빠졌다.

“부모님은?”
“있어요.”
“연락은 했어?”
“안 해요.”
“왜?”

이번에는 나도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는 내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았으면서 아까부터 계속 캐묻고 있었다.

“그건 당신이랑 상관없잖아요.”

말하고 나서 조금 세게 말했나 싶었지만 취소하지 않았다.
여자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상관없지.”

그러고는 비닐봉지를 고쳐 들었다.

“그럼 나도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간다.”
“잠깐만요.”
“왜.”
“아까 왜 소리 질렀어요?”

여자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방금 상관없다며.”
“그거랑 이건 다르죠.”
“뭐가 다른데.”
“제 얘기랑 당신 얘기잖아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여자는 헛웃음을 흘렸다.

“굉장한 논리네.”
“그렇죠?”
“칭찬 아니야.”

그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캐리어를 끌고 따라갔다.
여자는 몇 걸음 가지 않아 알아차렸다.

“따라오지 마.”
“같은 방향인데요.”
“어디 가는데?”
“저쪽이요.”

나는 여자가 걷는 쪽을 가리켰다.

“지금 정했지?”
“아닌데요.”
“정했네.”
“원래 이쪽이었어요.”

여자가 오른쪽 골목으로 꺾었다.
나도 꺾었다.
이번에는 아예 멈춰 서서 돌아봤다.

“너 처음 보는 어른을 이렇게 따라다니면 안 된다는 교육 못 받았어?”
“받았죠.”
“그런데 왜 따라와.”
“당신도 처음 보는 미성년자한테 계속 말 걸었잖아요.”
“…….”
“비슷하지 않아요?”
“전혀.”
“그런가.”

정말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했더니 여자가 이마를 문질렀다.

“아, 머리 아파.”

다시 걷기 시작한 여자를 보다가 나는 문득 물었다.

“배 안 고파요?”
“먹었어.”
“그럼 노래방 갈래요?”

이번에는 정말로 걸음을 멈췄다.
여자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비 오잖아요.”
“그래서?”
“노래방에는 비 안 오니까.”

내가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이유였다.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혼자 가.”
“이 시간에는 미성년자 혼자 안 되는 데가 많던데요.”
“그걸 알면서 왜 이 시간까지 돌아다녀?”
“오늘 알았어요.”
“집에 가.”
“싫어요.”
“왜 그렇게 집에 가기 싫은데.”

대답이 목에 걸렸다.
아까까지 잘 떠들던 입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배터리는 14퍼센트였다. 아무 의미도 없이 화면을 확인한 뒤 다시 껐다.

“그건 말하기 싫어요.”

여자가 나를 바라봤다.

“그러면서 남한테는 왜 소리 지른 이유를 물어봐?”
“…….”

이번에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진짜 편리하게 사네.”
“저도 알아요.”

그 순간 여자가 처음으로 웃었다.
아주 조금이었다. 피식, 하고 새어나온 정도였지만 아까부터 계속 찌푸려져 있던 얼굴이 풀렸다.
그러고는 잠시 하늘을 보듯 우산 안쪽을 올려다봤다.

“한 시간.”
“네?”
“노래방. 한 시간만.”

나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진짜요?”
“충전하고 숙소 찾아. 그다음에는 헤어지는 거야.”
“좋아요.”
“부모님한테도 연락하고.”
“그건 싫어요.”

여자가 바로 돌아섰다.

“안 가.”
“할게요! 연락할게요!”

거짓말이었다.

───

노래방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들이자 빗소리가 멀어졌다. 대신 눅눅한 카펫 냄새와 방향제, 튀김 냄새가 뒤섞여 올라왔다.
카운터 직원은 여자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두 분이세요?”
“네.”
“회원이신가요?”

여자가 휴대폰을 꺼냈다. 직원이 화면을 확인하다가 말했다.

“쿠라마 미오 님, 한 시간 맞으시죠?”

나는 옆에 서 있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미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잘 어울리는 이름인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사람 얼굴에 이름이 어울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만뒀다.
대신 속으로 한 번 불러봤다.
쿠라마 미오.

“왜 쳐다봐.”

그 사람이 말했다.

“이름 처음 알아서요.”
“너도 안 알려줬잖아.”
“안 물어봤잖아요.”

미오가 잠깐 나를 바라봤다.

“그럼 이름이 뭔데.”
“카라스마 하루카요.”
“카라스마.”

자기 입으로 내 성을 한번 굴려본 미오는 더 묻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서로 왜 집에 가지 않는지, 왜 소리를 질렀는지부터 물어놓고 이제야 이름을 알았다.
순서가 조금 이상했다.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애니 캐릭터 같은 이름이네.”

정정한다. 이 사람 진짜 싫어.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콘센트를 찾았다.
충전기를 꽂고 화면에 번개 표시가 나타나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심이 됐다.

“살았다…….”
“너 진짜 그것 때문에 따라온 거 아니지?”
“반쯤은요.”
“나머지 반은?”
“소리 지른 이유.”
“나갈래?”
“노래할게요.”

리모컨을 집었다.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듣는 노래를 같이 듣고, 유행하는 곡은 대충 알고 있는 정도였다. 노래방도 친구들과 몇 번 와봤지만 잘 부른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익숙한 노래를 하나 골랐다.
인트로가 나오자 괜히 긴장됐다.

“이거 알아요?”
“아니.”
“시라토리 코하루가 부른 노래잖아요? 드라마 타이업도 했는데?”
“알아야해?”
“그건 아니지만...”
“부르지는 못하거든. 너 혼자 불러.”
“저도 못하는데.”
“그럼 인스트만 듣다 나가는거지.”
“혼자 부를게요.”

첫 소절을 불렀다.
스피커를 통해 돌아오는 내 목소리는 평소에 듣던 것과 달라서 처음에는 조금 웃겼다. 그 바람에 박자를 놓쳤고, 두 번째 소절에서는 따라잡으려고 서두르다가 오히려 빨라졌다.
미오가 피식 웃었다.

“웃었죠?”
“계속해.”
“웃었잖아요.”
“노래 끊긴다.”

괜히 오기가 생겼다.
다시 화면을 봤다.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높은 음에서는 목에 힘부터 들어갔다. 그런데 몇 소절쯤 지나자 이상하게 재미있어졌다.
좋아한다던가
싫어한다던가.
가지 말라던가.
보고 싶다던가.

평소에는 부끄러워서 하지도 못할 말들이라도 누가 써놓은 말이니까 나는 그냥 따라 부르면 됐다. 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점점 크게 불렀다.
높은 부분에서는 거의 악을 썼고, 숨이 모자라 한 음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끝까지 불렀다.
노래가 끝났을 때는 숨이 찼다.
화면에 84점이 떴다.

“짜네.”

나는 미오에게 동의를 구하려고 돌아봤다.
그런데 미오는 웃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왜요?”
“너 노래 배운 적 있어?”
“없는데요.”
“합창부 같은 건?”
“안 했어요.”
“보컬 학원은?”
“그런 데를 왜 가요?”

미오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왜요. 잘했어요?”
“아니.”
“뭐예요.”
“박자 계속 앞으로 가고, 호흡도 엉망이고, 높은 데서는 목으로 밀고.”
“그만해요.”
“음정도—”
“그만하라고요!”

미오가 웃었다.
나는 마이크를 소파에 내려놨다.

“안 해.”
“한 곡 더 해봐.”
“싫어요. 못한다면서요.”
“못하니까 궁금한 거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다른 거 골라봐.”
“그럼 미오 씨도 해요.”

입 밖으로 내고 나서야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는 걸 깨달았다.
미오도 눈치챈 것 같았지만 별말하지 않았다.

“난 안 해.”
“노래 못한다면서 진짜였어요?”
“응.”
“그럼 뭐 잘하는데요?”

그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미오는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때 손가락 끝이 눈에 들어왔다.
손끝이 조금 딱딱해 보였다.
나는 별생각 없이 바라보다가 곧 리모컨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몰랐다.
두 번째 노래를 골랐다.


결국은 쉬지도 않고 네 곡을 불렀다.
미오는 한 곡도 부르지 않았으면서 자꾸 옆에서 참견했다.

“거기서 숨 쉬어.”
“노래 중인데 말 걸지 마요.”
“그렇게 쉬면 다음 소절 못 가.”
“쉬고 있잖아요.”
“그건 죽기 싫어서 쉬는 거고.”

나는 노래를 멈추고 미오를 쳐다봤다.

“숨에 종류가 있어요?”
“노래할 때는.”
“거짓말 같은데.”
“마음대로 생각해.”

나중에는 짜증이 나서 쿠션을 하나 던졌다. 미오는 몸을 기울여 피하더니 나를 보며 웃었다.

“성질 있네.”
“누구 때문에 그래요.”
“폭력적이고.”

그 말에 손이 멈췄다.
별것 아닌 농담이었다.
미오는 이미 다음 곡 목록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잠깐 웃을 수 없었다.
교실 바닥에 떨어진 안경과 피 묻은 손이 생각났다.

“……잠깐 화장실 갔다 올게요.”

방을 나왔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얼굴에도 물을 조금 묻혔다. 거울 속 얼굴은 노래 몇 곡 불렀다고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잠시 거울을 바라보다가 혀를 내밀었다.

“바보.”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나도 몰랐다.
돌아오는 길에 음료수 하나를 뽑았다.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음악이 들렸다.
아까 내가 처음 불렀던 노래였다.
그런데 목소리가 없었다.
반주만 흐르고 있었다.
나는 문을 바로 열지 않고 틈으로 안을 봤다.
미오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리모컨은 테이블 위에 있었고 마이크도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의 가사만 화면 아래에서 천천히 흘러갔다.
왜 저러지.
조금 더 보고 있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몰래 보는 것 같아서 그냥 문을 열었다.

“뭐 해요?”

미오가 리모컨을 집어 노래를 껐다.

“아무것도.”
“제 거 다시 틀었잖아요.”
“잘못 눌렀어.”

나는 캔을 땄다.
칙, 하고 탄산 빠지는 소리가 났다.

“거짓말.”

미오가 나를 봤다.

“뭐?”
“잘못 누른 사람처럼 안 보였는데.”
“너 사람 얼굴 보고 그런 것도 알아?”
“조금요.”
“건방지네.”

나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많이 들어봤어요.”

그건 진짜였다.
미오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 됐다. 가자.”
“벌써요?”
“한 시간만이라고 했잖아.”

아쉬웠다.
왜 아쉬운지는 잘 몰랐다.
그래도 충전은 60퍼센트를 넘겼고, 처음 보는 사람과 한 시간이나 놀았다.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자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아까보다 가늘어져 가로등 주변에서만 빗방울이 보였다.
우산을 펼치고 몇 걸음 걸었을 때 나는 결국 다시 물었다.

“미오 씨.”
“왜.”
“아까 왜 소리 질렀어요?”

미오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

“또 그 얘기냐.”
“궁금하니까요.”
“별거 아니야.”
“거짓말.”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미오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네가 뭔데 자꾸 거짓말이래.”

목소리가 낮았다.
나는 조금 움찔했다.

“오늘 처음 봤잖아.”
“네.”
“그럼 모르는 척해. 그게 서로 편해.”

미오는 다시 걸으려 했다.
나는 우산 손잡이를 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됐다고 했잖아요.”

미오가 돌아봤다.

“뭐?”
“아까. 소리 지르고 나서 됐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안 된 것 같아서요.”

빗소리가 우리 사이에 들어왔다.
미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너도 말하기 싫은 건 안 말했잖아.”

그 말을 듣자 아까 골목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왜 집에 가기 싫은데.
그건 말하기 싫어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빴다.

“……그건 맞지만.”
“그럼 됐네.”
“그렇다고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미오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봤다.

“진짜 제멋대로네.”
“네.”

이번에는 그냥 인정했다.

“그래도 말하기 싫으면 지금은 안 물어볼게요.”

그 말에 미오가 조금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나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잠깐 침묵이 흐른 뒤 미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그만할까 생각했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뭘요?”
“이것저것.”
“이것저것이 뭔데요?”
“안 물어본다며.”
“지금 미오 씨가 먼저 말했잖아요.”

미오가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하여간.”

나는 잠시 기다렸다.
이번에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러자 미오가 빗물이 흐르는 도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래 붙잡고 있던 게 하나 있는데, 이제 놔도 되나 싶어서.”
“싫어졌어요?”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왜 놔요?”
“좋아한다고 평생 붙들고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그 말을 이해하려고 했다.
잘되지 않았다.
좋아하는데 왜 그만두는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데요?”
“뭐?”
“그거 아직 하고 싶은 거 아니에요?”

미오가 나를 바라봤다.
그 눈이 조금 무서웠다.

“뭘 안다고.”
“몰라요.”
“그럼 함부로 말하지 마.”
“네.”

내가 바로 대답하자 미오가 오히려 말을 잃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다음에 알려주세요.”
“뭐?”
“뭔지 알게 되면 그때 말할게요.”

미오는 몇 초 동안 나를 쳐다봤다.

“다음이 왜 있는데?”

그건 간단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 추가 화면을 띄웠다.

“계기는 만들면 되죠.”

미오가 화면과 나를 번갈아 봤다.

“너 원래 처음 본 사람한테 다 이래?”
“아뇨.”
“그럼 왜 나한테 이래.”

나는 조금 생각했다.
딱히 그럴듯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미오 씨가 신경쓰이니까.”
“헌팅이냐?”
“그게 뭐에요?”
“......아니 됐어”
“안됐잖아요”
“그거 아니야.”

미오는 한참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가 결국 내 휴대폰을 가져갔다.
번호를 입력하고 돌려줬다.
화면에는 내가 미리 적어둔 이름이 있었다.
미오 씨

“씨는 왜 붙였어.”
“어른이니까요.”
“연락처에도?”
“네.”
“마음대로 해.”

나는 저장 버튼을 눌렀다.
도쿄에 온 뒤 처음으로 생긴 연락처였다.

“숙소 꼭 찾아.”
“네.”
“부모님한테 연락하고.”
“그건…….”

미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해볼게요.”
“안 한다는 뜻이잖아.”
“생각은 진짜 할 거예요.”
“카라스마.”
“네.”
“오늘은 생각만 하지 말고 해.”

대답하지 않았다.
미오도 더 캐묻지 않았다.
조금 전 내가 자기에게 했던 것처럼.
그게 묘하게 고마웠다.
미오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쯤 멀어졌을 때 갑자기 궁금해져서 불렀다.

“미오 씨!”
“또 뭐!”
“저 진짜 노래 못해요?”

미오는 우산 아래에서 나를 돌아봤다.

“개못해!”
“그럼 왜 네 곡이나 시켰어요!”

이번에는 대답이 조금 늦었다.

“목소리는 괜찮으니까.”
“…….”

그 말을 끝으로 미오는 돌아서서 걸어갔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잘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목소리만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혼자 중얼거리며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캐리어 바퀴가 젖은 보도블록을 구르며 달각거렸다.
다시 혼자가 됐지만 역에서 처음 나왔을 때와는 조금 달랐다. 휴대폰에는 아까까지 없었던 이름이 하나 들어 있었고,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에 부른 노래가 계속 맴돌았다.

미오의 손끝도 문득 생각났다.
왜 그렇게 딱딱했는지 물어볼 걸 그랬나 싶다가 그만뒀다.
오늘은 너무 많이 물었다.
다음에 물으면 된다.
다음.

도쿄에 도착했을 때는 오늘 밤 어디에서 잘지도 몰랐는데, 그 말 하나만큼은 이상하게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다.
빨간불이었다.
이번에는 얌전히 기다렸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나는 화면에 뜬 이름을 오래 바라봤다.
전원을 끄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받지도 않았다.
전화는 한참 울리다가 끊겼다.

조금 뒤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지만 열어보지 않았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그 사이에 섞여 걸었다.

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아직 여름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이른 밤.
나는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왔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으니까.

그날의 나는 음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미오 씨가 무엇을 그만두려고 했는지도, 그 사람의 손끝이 왜 그렇게 굳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노래를 부를 때 왜 그런 눈으로 바라봤는지도 알지 못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답하기 싫다고 하면 다음에 물어보면 되고, 다음에도 싫다고 하면 그다음이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했다.
그때는 아직 몰랐다.

사람에게는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도.
계속 묻는 일이 때로는 그 사람을 붙잡아주는 일이 되고, 때로는 도망갈 곳을 없애버리는 일이 된다는 것도.
그런 건 나중에 알게 된다.

그날 밤 내가 알았던 건 고작 하나였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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