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8> [채팅]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잡담방 -272- (1001)
에주
2025년 5월 13일 (화) 오후 05:46:20 - 2025년 5월 15일 (목) 오후 03:53:12
2025년 5월 13일 (화) 오후 05: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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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위키: https://bit.ly/2UOMF0L
뉴비들을 위한 간략한 캐릭터 목록: https://bit.ly/3da6h5D
사설위키(대피소): http://opentalkwiki.ivyro.net/wiki.php/%EB%8C%80%EB%AC%B8
1:1 카톡방: >3259>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á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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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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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2025년 5월 14일 (수) 오후 10:03:42
[한편, 샬레이안에서는⋯⋯.]
이 세상에 리베리우스보다 키가 큰 사람이 존재할까?
정답은 '있다'이다.
"이게 누구야. 잘나신 영웅님이시잖아?"
일례로 자신의 현관 문간에 기대어 선 이 여성을 들 수 있겠다. 평균적으로 아우라족보다 신장이 더 큰 루가딘족 중에서도 유난히 키가 큰 편인 반삭의 여인은 리베리우스보다 손가락 하나만큼이 더 크다. 긴장한 티가 역력한 리베리우스를 내려다보는 비스듬한 시선은 장난스러우면서도 온정적이다.
문간에 기댄 여인이 팔짱을 끼며 리베리우스를 위아래로 훑는다.
"죽었다 깨어나도 생전 연락을 하-나도 안 하는 것이 무슨 일로 왔을까 했더니⋯⋯."
"하하⋯⋯."
"꼬락서니를 보니⋯⋯ 간병해달라고 왔구나? 그치?"
"아니에요, 이제 다 나았어요."
"다 나았어?"
"아뇨 안 나았어요."
"다 나았다고? 응? 그렇게 말했어?"
"안 나았어요. 살려주세요. 미안해요."
여인이 상체를 쑥 내밀면 리베리우스가 그만큼 등을 뒤로 쭉 뺀다. 두 사람 간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가슴 앞에 두 손을 소심하게 펼쳐 세우는 리베리우스. 눈빛이 형형해지자 당장에라도 호되게 혼날까봐 무서워하는 기색이다. 요컨대, 기가 눌렸다.
"아직 한참 요양하고 있어야 하는데 고집 부려 독립한 채 무리하고 있는 게 맞습니다⋯⋯."
역전의 용사이자 세기의 투사한테 잔뜩 퍼렇게 질려 눈을 한껏 피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이 루가딘은 말 몇 마디로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본인의 업적을 아는지 모르는지⋯ 먹잇감을 앞에 둔 사냥꾼처럼 리베리우스를 압도하던 그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짧은 웃음과 함께 리베리우스의 하얀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리베리우스의 허리가 저절로 굽어졌다.
"그래 요 맹랑한 것아! 몸상태도 안 멀쩡한데 집구석에도 안 붙어있고 나돌아다니는 거 보면 내 속이 터지겠어 안 터지겠어!"
"터집니다. 터져요. 그럼요. 맞아요."
"그런데, 어?! 큰 거 바라는 것도 아니고 편지 한 통 남겨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난 네가 지난주에 퇴원한 걸 루루한테 듣고 알았어!"
"미안합니다 미안흐으아아악"
리베리우스의 볼이 위로 쭉 잡아당겨진다.
"잘못했어 안 했어!"
"자모해허여! 자모해허여!"
사과의 말을 받아내고서야 뺨을 놓아주었다. 두 손으로 뺨을 붙잡은 리베리우스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제노스한테 배가 뚫렸을 때보다 지금 뺨이 꼬집힌 게 백만 배는 더 아프다!
"⋯ 이이이런 못되먹은 애가 이제 와서 인사만 하고 가려고 온 건 아닐테고."
리베리우스가 침음을 냈다.
"도움이 필요한 거니? 아니면 고민 상담?"
"⋯⋯ 그으⋯ ⋯⋯ 고민 상담이요."
여인의 한쪽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싸웠어?"
"⋯⋯."
얌전한 꼬리가 세 차례 흔들릴 시간동안 여인은 리베리우스의 다음 발언을 기다려주었다.
"⋯⋯ 모르겠어요."
"어떤 상황인지 알겠네. 들어와, 식탁에서 얘기하자."
"네."
여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음을 따라 리베리우스도 건물 안으로 향한다. 하얀 색조의 외벽과는 달리 짙은 목재 위주의 가구로 꾸며진 가정집 내부는 한낮의 비스듬한 햇빛을 받아 따스한 생활 내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사용하고 있던 듯한 부엌에서 주전자와 찻잔 세트를 꺼내며 묻는다.
"누구랑 있던 일이니? 동료들이랑?"
"아⋯⋯. 제가 얼마 전에 아이 두 명을 거뒀거든요."
"⋯⋯."
리베리우스가 얼굴에 수건을 맞았다.
"말을 하라고! 이 놈아! 말을! 말을 좀 하고 해!!"
"그래서 지금 말하고 있잖아요⋯!"
"일 다 친 다음에 말하지 말고! 나한테! 미리! 하기 전에! 사전에!"
"아으아아아악 아파요 진짜 아파요"
"중요한 결정을 하고 싶으면 나한테 미리 말을 한 다음에 하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이번에는 양쪽 뺨이다. 등짝은 이미 대여섯대를 맞았고 양쪽 뺨은 리베리우스의 평소 정수리 높이보다 더 높이 올라갈 기세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치만 어쩔 수 없었다고요! 사건은 몰아치지 바쁘기도 심각하게 바쁘지 두 사람 상태가 시시각각 안 좋아지는 게 보이는데 일일이 허락 구할 정신이 어디 있었겠어요?!"
"에르킨 다무 파호드."
"네."
"유언은 그게 끝이고?"
"잘못했습니다."
"진작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두 사람에겐 이런 대화 흐름이 퍽 익숙한듯 보였다. 여인이 리베리우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잘 알아둬, 네 가족은 너만의 가족이 아니야. 네 가족은 나의 가족이고 네 아이는 나의 아이기도 해. 내가 적어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았겠니?"
"⋯ 이번에 데려오지 못 한 점은 미안해요. 진작에 인사를 시켰어야 하는데."
"이런 점은 어쩜 네 아빠랑 똑닮았을까."
주름진 손이 뺨을 훑는다.
"어느날 갑자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마를 데려와서는 이제부터 돌봐야 한다고 말했었지."
"⋯⋯ 아버지께서요."
"난데없이 사람 놀라게 하는 게 아빠랑 쏙 빼닮았어. 아주 그냥. 누가 유다무 자식 아니랄까봐!"
사별한 남편의 기억을 되새기느라 먼 곳을 훑던 눈이 곱게 휘었다. 리베리우스의 등을 다시 한 번 크게 때림으로써 그를 놓아준다. 괴롭히는 건 이쯤하면 되었다.
"엄마한테 네 아기들 데려오는 거 잊지 말고!"
"네. ⋯⋯ 미안해요."
"미안해야 할 거 알면 됐어~. 그래서⋯ 뭐가 묻고 싶어? 육아하는 법? 나한테 물으면 안될걸~ 솔직히 육아는 너네 아빠가 다 했잖니. 난 자신이 없다, 야."
너스레를 떨며 손을 휘휘 내젓는 여인의 앞에 리베리우스가 의자를 빼어 앉는다. 시선은 아래를 향한 상태다.
"육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게. 제가 랑이씨가⋯ 그러니까⋯ 제가 거둔 첫째가⋯ 첫째라기보단 동생이⋯"
"아무튼 이름이 랑이란 소리지."
"네, 랑이씨가, 랑이씨랑 함께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랑 대화를 했었는데요.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으로 봐선 제가 크게 말실수를 한 것 같아요."
식탁 위에 올려둔 깍지낀 손가락이 불안해하며 꼼질거린다.
"그런데 제가 무얼 잘못한 건지 전혀 모르겠어서요⋯⋯."
"으흠."
비스듬히 앉아 식탁에 턱을 괸 여인은 찻잔에 곡식차를 한가득 따르며 말을 받았다.
"뭐라고 말했었는데?"
"⋯⋯ 어떤 분이⋯ 자기랑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제가 절대 죽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랑이씨를 포함해서 세계가 위험에 처한다면 저는 세계를 선택하고 싶기 때문에 그 제안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었고⋯⋯."
"너는 뭔 그런 말을 하고 다닌다니."
"⋯⋯ 랑이씨께서는 그 말을 듣고 많이 불안해하시는 것 같았어요⋯? 같이 있던 다른 분도 제가 잘못 말을 한 거라고 하시고⋯⋯."
잔을 꺾어 곡식차를 한 잔 다 목구멍 뒤로 넘긴다.
"에리야. 너 4살 때 무슨 일 있었는지 기억하니?"
"4살이요? ⋯⋯ 어렴풋하게만⋯? 제가 입양됐던 나이 아니에요?"
"엉. 너 우리집 오고 나서 한 달 뒤에 가출했던 거 기억나?"
찻잔을 든 채로 휘휘 흔드는 검지손가락 끝에 맞춰 퀴퀴묵은 과거를 꺼내어본다. 많은 부분이 먼지에 뒤덮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아버지랑 함께 어머니 품에 안겨서 집으로 돌아가던 건 기억나요."
"그래? 하하!"
그 대답을 듣고 하염없이 웃기다며 크게 웃어제낀다. 탁 소리가 나도록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하기를.
"너 그 날에 우리가 보호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집 나간 거였어."
"네⋯⋯?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진~짜 네가 쉽지 않은 아이였다는 거 알겠지?"
"으음."
"그 날 밤에 유다무가 술 먹고 울었었거든."
네 살 배기 어린 아이를 재우고 나온 어느 야심한 시각. 부인이 야근으로 집에 없는 기회를 틈타 에르킨의 아버지는 아껴두었던 술 한 병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지친 마음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길 바라서였다.
"집에 가보니까 얼굴이 벌개져서는 꺼이꺼이 울고 있는데 어쩜 그렇게 꼴불견이던지! 날 붙잡고는 미안하다고 그렇게 그렇게 사과를 해대는데⋯⋯."
"그 때도 아버지는 변함이 없으셨군요⋯⋯."
"이제는 너도 다 자랐으니 얘기하는 거지만⋯ 사실 우리는 아이를 기르지 않기로 얘기를 하고 결혼했던 거였거든."
이건 리베리우스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너네 아빠랑 나랑 크기 차이가 심하게 나는 것도 있지만⋯ 나는 공부가 좋거든. 연구도 좋고, 이걸로 돈 버는 것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아이 때문에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어."
"그러⋯ 셨군요."
"유다무도 그걸 이해해줬었고. 이해해주는 사람이니까 결혼했었고. 그런데 갑자기 결혼할 때 했던 약속을 깨고 아이를 맡을 사람이 마땅찮다는 이유로 집에 갑자기 데려온 거야!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겠니?"
"많이 놀라셨겠네요."
"데려온 아이가 얌전했으면 또 몰라. 허구헌날 집안 살림살이는 다 부숴놓지 조금만 눈 떼면 달려나가서 사람을 물고 있지 정말이지 바람 잘 날이 없었고⋯⋯ 다 지나갔으니까 하는 얘기지만 나는 사람이 아니라 맹견을 키우는줄 알았어. 진짜로."
"⋯⋯ 제가 많이 미안합니다."
"됐어. 사과받으려고 한 얘기 아니고 사과할 일도 아니야."
그러나 리베리우스의 아버지로서는 아내한테 사과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공격성이 지나치게 높아 보육원에 갈 수 없고 자신이 거두겠다고 선뜻 나서는 보호자도 없는 상황에서 유다무는 거의 떠맡겨지다시피 아이를 인계받은 입장이었다. 아이가 아우라족이고 유다무의 전공 분야가 아우라 젤라족의 문화 연구라는 이유 하나로.
하여 그는 한 달 간 심하게 시달린 끝에 지나친 스트레스로 술을 마셨던 것이다. 자신만 고생하면 또 모를까 아내 또한 휘말려 피를 보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아끼고 보살펴도 모자란 인생의 동반자한테 지나치게 큰 짐을 지웠다는 죄책감에 그는 몸둘 바를 몰라했다.
"그렇게 꽤 한참동안 나를 붙잡고 속앓이를 했는데⋯⋯."
"⋯⋯."
"⋯⋯ 그걸 네가 방 안에서 듣고 있었단 걸 우리 둘 다 몰랐지 뭐니."
눈 동그랗게 뜨고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숨죽인 울음을 모두 듣고 있었던 어린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억 나니?"
"⋯⋯ 아뇨, 전혀요⋯⋯."
"난 다 기억해. 잊을 수가 없더라고. 밤을 꼬박 세워 널 찾았더니 하는 말이⋯ 잊혀지지가 않더라⋯⋯."
에르키는 도시의 경비대장에게 붙잡혀 보호자한테 돌아왔다. 도시 밖으로 나가려는 아이를 경비대가 막아세웠고 육탄전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어스름한 새벽 하늘 속에서, 어째서 도시 밖으로 나가려 랬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말이 이러했다.
"사람이 서로 안 맞으면 굳이 같이 살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하더라고?"
"⋯⋯ 오."
"자기가 유다무였다면 짧은 시간 함께 한 자기보단 몇 년을 같이 지낸 뎀루나를 당연히 선택할텐데 그럼 귀찮게 시간 질질 끄는 것보단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서로 편하지 않겠냐고 하더라."
"⋯⋯."
"이야, 다시 생각해봐도 어릴 때 에리가 말을 유창하게 잘 하긴 했어? 천재라니까 천재."
낄낄 웃으며 차를 한 잔 다시 깔끔히 비웠다. 반면 리베리우스의 찻잔은 거의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에리야. 보통 사람들은 한 번 가진 걸 너처럼 잘 떠내보내지 못 해."
"⋯⋯."
"그래서, 대신에, 불안함을 느끼지. 내가 가진 게 떠나가지면 어떡하지? 내 가족이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내 연인이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내 친구가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그런가요."
"네가 아니라 다른 아이가 그 때 유다무가 하는 말을 들었으면 그 아이는 자길 버리지 말아달라고 생각했을 거야. 장담해."
리베리우스는 답답함을 느꼈다. 자기는 랑을 버리지 않을 것이었다, 결단코! 세계와 랑이 중 하나만을 고를 수 있다면 지독한 슬픔에 잠길 것을 알면서도 랑이를 살릴 것이란 생각까지 할 정도다. 리베리우스로서는 이는 정말 놀라운 양보다. 세계와 동료 중에서 세계를 택한 전적이 있는만큼 더더욱. 그러니 억울하고 서글플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양보해야 한다고 하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연하고 모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베리우스의 세상 속에서 인간이 이해 가능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 말을 꺼냈던 게 잘못이겠네요. 관련 주제 자체가 랑이씨한테 불안을 안겨줄 수 있겠어요."
"맞아. 그래서 우리가 너한테 아주 큰 잘못을 했었다는 거고⋯⋯."
"⋯⋯ 이제는 제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이해했어요. 다음부터는 주의해야겠어요."
"하여간 쓸데없는 부분까지 유다무를 닮아가지고."
뎀루나의 한숨에 베어나오는 건 웃음이었다. 아무리 휘청거리고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의 눈에 리베리우스는 사랑스러운 자식이었다.
"괜찮을 거야, 그 때 그렇게 튀었던 너도 지금 이렇게 우리랑 함께 잘 자랐잖니.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말하고, 앞으로 훨씬 더 잘 해주면, 그 아이도 분명히 알아줄 거야."
"⋯⋯ 그랬으면 좋겠어요."
"애 키우는 게 쉽지 않지?"
뎀루나가 낄낄 웃는다.
"그러게 내가 진작에 말 좀 제 때 하라고 했잖니. 알면 말렸지."
"⋯⋯ 말, 릴까봐 말씀 못 드렸어요⋯⋯."
"아무튼 지 무덤 지가 파는 짓은 제일 잘 하지."
이 세상에 리베리우스보다 키가 큰 사람이 존재할까?
정답은 '있다'이다.
"이게 누구야. 잘나신 영웅님이시잖아?"
일례로 자신의 현관 문간에 기대어 선 이 여성을 들 수 있겠다. 평균적으로 아우라족보다 신장이 더 큰 루가딘족 중에서도 유난히 키가 큰 편인 반삭의 여인은 리베리우스보다 손가락 하나만큼이 더 크다. 긴장한 티가 역력한 리베리우스를 내려다보는 비스듬한 시선은 장난스러우면서도 온정적이다.
문간에 기댄 여인이 팔짱을 끼며 리베리우스를 위아래로 훑는다.
"죽었다 깨어나도 생전 연락을 하-나도 안 하는 것이 무슨 일로 왔을까 했더니⋯⋯."
"하하⋯⋯."
"꼬락서니를 보니⋯⋯ 간병해달라고 왔구나? 그치?"
"아니에요, 이제 다 나았어요."
"다 나았어?"
"아뇨 안 나았어요."
"다 나았다고? 응? 그렇게 말했어?"
"안 나았어요. 살려주세요. 미안해요."
여인이 상체를 쑥 내밀면 리베리우스가 그만큼 등을 뒤로 쭉 뺀다. 두 사람 간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가슴 앞에 두 손을 소심하게 펼쳐 세우는 리베리우스. 눈빛이 형형해지자 당장에라도 호되게 혼날까봐 무서워하는 기색이다. 요컨대, 기가 눌렸다.
"아직 한참 요양하고 있어야 하는데 고집 부려 독립한 채 무리하고 있는 게 맞습니다⋯⋯."
역전의 용사이자 세기의 투사한테 잔뜩 퍼렇게 질려 눈을 한껏 피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이 루가딘은 말 몇 마디로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본인의 업적을 아는지 모르는지⋯ 먹잇감을 앞에 둔 사냥꾼처럼 리베리우스를 압도하던 그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짧은 웃음과 함께 리베리우스의 하얀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리베리우스의 허리가 저절로 굽어졌다.
"그래 요 맹랑한 것아! 몸상태도 안 멀쩡한데 집구석에도 안 붙어있고 나돌아다니는 거 보면 내 속이 터지겠어 안 터지겠어!"
"터집니다. 터져요. 그럼요. 맞아요."
"그런데, 어?! 큰 거 바라는 것도 아니고 편지 한 통 남겨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난 네가 지난주에 퇴원한 걸 루루한테 듣고 알았어!"
"미안합니다 미안흐으아아악"
리베리우스의 볼이 위로 쭉 잡아당겨진다.
"잘못했어 안 했어!"
"자모해허여! 자모해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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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으⋯ ⋯⋯ 고민 상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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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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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양쪽 뺨이다. 등짝은 이미 대여섯대를 맞았고 양쪽 뺨은 리베리우스의 평소 정수리 높이보다 더 높이 올라갈 기세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치만 어쩔 수 없었다고요! 사건은 몰아치지 바쁘기도 심각하게 바쁘지 두 사람 상태가 시시각각 안 좋아지는 게 보이는데 일일이 허락 구할 정신이 어디 있었겠어요?!"
"에르킨 다무 파호드."
"네."
"유언은 그게 끝이고?"
"잘못했습니다."
"진작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두 사람에겐 이런 대화 흐름이 퍽 익숙한듯 보였다. 여인이 리베리우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잘 알아둬, 네 가족은 너만의 가족이 아니야. 네 가족은 나의 가족이고 네 아이는 나의 아이기도 해. 내가 적어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았겠니?"
"⋯ 이번에 데려오지 못 한 점은 미안해요. 진작에 인사를 시켰어야 하는데."
"이런 점은 어쩜 네 아빠랑 똑닮았을까."
주름진 손이 뺨을 훑는다.
"어느날 갑자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마를 데려와서는 이제부터 돌봐야 한다고 말했었지."
"⋯⋯ 아버지께서요."
"난데없이 사람 놀라게 하는 게 아빠랑 쏙 빼닮았어. 아주 그냥. 누가 유다무 자식 아니랄까봐!"
사별한 남편의 기억을 되새기느라 먼 곳을 훑던 눈이 곱게 휘었다. 리베리우스의 등을 다시 한 번 크게 때림으로써 그를 놓아준다. 괴롭히는 건 이쯤하면 되었다.
"엄마한테 네 아기들 데려오는 거 잊지 말고!"
"네. ⋯⋯ 미안해요."
"미안해야 할 거 알면 됐어~. 그래서⋯ 뭐가 묻고 싶어? 육아하는 법? 나한테 물으면 안될걸~ 솔직히 육아는 너네 아빠가 다 했잖니. 난 자신이 없다, 야."
너스레를 떨며 손을 휘휘 내젓는 여인의 앞에 리베리우스가 의자를 빼어 앉는다. 시선은 아래를 향한 상태다.
"육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게. 제가 랑이씨가⋯ 그러니까⋯ 제가 거둔 첫째가⋯ 첫째라기보단 동생이⋯"
"아무튼 이름이 랑이란 소리지."
"네, 랑이씨가, 랑이씨랑 함께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랑 대화를 했었는데요.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으로 봐선 제가 크게 말실수를 한 것 같아요."
식탁 위에 올려둔 깍지낀 손가락이 불안해하며 꼼질거린다.
"그런데 제가 무얼 잘못한 건지 전혀 모르겠어서요⋯⋯."
"으흠."
비스듬히 앉아 식탁에 턱을 괸 여인은 찻잔에 곡식차를 한가득 따르며 말을 받았다.
"뭐라고 말했었는데?"
"⋯⋯ 어떤 분이⋯ 자기랑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제가 절대 죽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랑이씨를 포함해서 세계가 위험에 처한다면 저는 세계를 선택하고 싶기 때문에 그 제안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었고⋯⋯."
"너는 뭔 그런 말을 하고 다닌다니."
"⋯⋯ 랑이씨께서는 그 말을 듣고 많이 불안해하시는 것 같았어요⋯? 같이 있던 다른 분도 제가 잘못 말을 한 거라고 하시고⋯⋯."
잔을 꺾어 곡식차를 한 잔 다 목구멍 뒤로 넘긴다.
"에리야. 너 4살 때 무슨 일 있었는지 기억하니?"
"4살이요? ⋯⋯ 어렴풋하게만⋯? 제가 입양됐던 나이 아니에요?"
"엉. 너 우리집 오고 나서 한 달 뒤에 가출했던 거 기억나?"
찻잔을 든 채로 휘휘 흔드는 검지손가락 끝에 맞춰 퀴퀴묵은 과거를 꺼내어본다. 많은 부분이 먼지에 뒤덮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아버지랑 함께 어머니 품에 안겨서 집으로 돌아가던 건 기억나요."
"그래? 하하!"
그 대답을 듣고 하염없이 웃기다며 크게 웃어제낀다. 탁 소리가 나도록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하기를.
"너 그 날에 우리가 보호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집 나간 거였어."
"네⋯⋯?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진~짜 네가 쉽지 않은 아이였다는 거 알겠지?"
"으음."
"그 날 밤에 유다무가 술 먹고 울었었거든."
네 살 배기 어린 아이를 재우고 나온 어느 야심한 시각. 부인이 야근으로 집에 없는 기회를 틈타 에르킨의 아버지는 아껴두었던 술 한 병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지친 마음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길 바라서였다.
"집에 가보니까 얼굴이 벌개져서는 꺼이꺼이 울고 있는데 어쩜 그렇게 꼴불견이던지! 날 붙잡고는 미안하다고 그렇게 그렇게 사과를 해대는데⋯⋯."
"그 때도 아버지는 변함이 없으셨군요⋯⋯."
"이제는 너도 다 자랐으니 얘기하는 거지만⋯ 사실 우리는 아이를 기르지 않기로 얘기를 하고 결혼했던 거였거든."
이건 리베리우스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너네 아빠랑 나랑 크기 차이가 심하게 나는 것도 있지만⋯ 나는 공부가 좋거든. 연구도 좋고, 이걸로 돈 버는 것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아이 때문에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어."
"그러⋯ 셨군요."
"유다무도 그걸 이해해줬었고. 이해해주는 사람이니까 결혼했었고. 그런데 갑자기 결혼할 때 했던 약속을 깨고 아이를 맡을 사람이 마땅찮다는 이유로 집에 갑자기 데려온 거야!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겠니?"
"많이 놀라셨겠네요."
"데려온 아이가 얌전했으면 또 몰라. 허구헌날 집안 살림살이는 다 부숴놓지 조금만 눈 떼면 달려나가서 사람을 물고 있지 정말이지 바람 잘 날이 없었고⋯⋯ 다 지나갔으니까 하는 얘기지만 나는 사람이 아니라 맹견을 키우는줄 알았어. 진짜로."
"⋯⋯ 제가 많이 미안합니다."
"됐어. 사과받으려고 한 얘기 아니고 사과할 일도 아니야."
그러나 리베리우스의 아버지로서는 아내한테 사과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공격성이 지나치게 높아 보육원에 갈 수 없고 자신이 거두겠다고 선뜻 나서는 보호자도 없는 상황에서 유다무는 거의 떠맡겨지다시피 아이를 인계받은 입장이었다. 아이가 아우라족이고 유다무의 전공 분야가 아우라 젤라족의 문화 연구라는 이유 하나로.
하여 그는 한 달 간 심하게 시달린 끝에 지나친 스트레스로 술을 마셨던 것이다. 자신만 고생하면 또 모를까 아내 또한 휘말려 피를 보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아끼고 보살펴도 모자란 인생의 동반자한테 지나치게 큰 짐을 지웠다는 죄책감에 그는 몸둘 바를 몰라했다.
"그렇게 꽤 한참동안 나를 붙잡고 속앓이를 했는데⋯⋯."
"⋯⋯."
"⋯⋯ 그걸 네가 방 안에서 듣고 있었단 걸 우리 둘 다 몰랐지 뭐니."
눈 동그랗게 뜨고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숨죽인 울음을 모두 듣고 있었던 어린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억 나니?"
"⋯⋯ 아뇨, 전혀요⋯⋯."
"난 다 기억해. 잊을 수가 없더라고. 밤을 꼬박 세워 널 찾았더니 하는 말이⋯ 잊혀지지가 않더라⋯⋯."
에르키는 도시의 경비대장에게 붙잡혀 보호자한테 돌아왔다. 도시 밖으로 나가려는 아이를 경비대가 막아세웠고 육탄전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어스름한 새벽 하늘 속에서, 어째서 도시 밖으로 나가려 랬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말이 이러했다.
"사람이 서로 안 맞으면 굳이 같이 살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하더라고?"
"⋯⋯ 오."
"자기가 유다무였다면 짧은 시간 함께 한 자기보단 몇 년을 같이 지낸 뎀루나를 당연히 선택할텐데 그럼 귀찮게 시간 질질 끄는 것보단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서로 편하지 않겠냐고 하더라."
"⋯⋯."
"이야, 다시 생각해봐도 어릴 때 에리가 말을 유창하게 잘 하긴 했어? 천재라니까 천재."
낄낄 웃으며 차를 한 잔 다시 깔끔히 비웠다. 반면 리베리우스의 찻잔은 거의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에리야. 보통 사람들은 한 번 가진 걸 너처럼 잘 떠내보내지 못 해."
"⋯⋯."
"그래서, 대신에, 불안함을 느끼지. 내가 가진 게 떠나가지면 어떡하지? 내 가족이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내 연인이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내 친구가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그런가요."
"네가 아니라 다른 아이가 그 때 유다무가 하는 말을 들었으면 그 아이는 자길 버리지 말아달라고 생각했을 거야. 장담해."
리베리우스는 답답함을 느꼈다. 자기는 랑을 버리지 않을 것이었다, 결단코! 세계와 랑이 중 하나만을 고를 수 있다면 지독한 슬픔에 잠길 것을 알면서도 랑이를 살릴 것이란 생각까지 할 정도다. 리베리우스로서는 이는 정말 놀라운 양보다. 세계와 동료 중에서 세계를 택한 전적이 있는만큼 더더욱. 그러니 억울하고 서글플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양보해야 한다고 하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연하고 모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베리우스의 세상 속에서 인간이 이해 가능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 말을 꺼냈던 게 잘못이겠네요. 관련 주제 자체가 랑이씨한테 불안을 안겨줄 수 있겠어요."
"맞아. 그래서 우리가 너한테 아주 큰 잘못을 했었다는 거고⋯⋯."
"⋯⋯ 이제는 제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이해했어요. 다음부터는 주의해야겠어요."
"하여간 쓸데없는 부분까지 유다무를 닮아가지고."
뎀루나의 한숨에 베어나오는 건 웃음이었다. 아무리 휘청거리고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의 눈에 리베리우스는 사랑스러운 자식이었다.
"괜찮을 거야, 그 때 그렇게 튀었던 너도 지금 이렇게 우리랑 함께 잘 자랐잖니.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말하고, 앞으로 훨씬 더 잘 해주면, 그 아이도 분명히 알아줄 거야."
"⋯⋯ 그랬으면 좋겠어요."
"애 키우는 게 쉽지 않지?"
뎀루나가 낄낄 웃는다.
"그러게 내가 진작에 말 좀 제 때 하라고 했잖니. 알면 말렸지."
"⋯⋯ 말, 릴까봐 말씀 못 드렸어요⋯⋯."
"아무튼 지 무덤 지가 파는 짓은 제일 잘 하지."
이 주제글은 죽었어! 더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