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 [채팅]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잡담방 -244- (1001)
종료
작성자:에주
작성일:2025-02-02 (일) 13:43:48
갱신일:2025-02-08 (토) 18:17:33
#0에주(og7LbTngjK)2025-02-02 (일) 13:43:48
메인위키: https://bit.ly/2UOMF0L
뉴비들을 위한 간략한 캐릭터 목록: https://bit.ly/3da6h5D
1:1 카톡방: >191>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а́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뉴비들을 위한 간략한 캐릭터 목록: https://bit.ly/3da6h5D
1:1 카톡방: >191>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а́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457Human in Orbit(M4CPssSG/6)2025-02-06 (목) 07:36:45
아냑, 16세.
이건 열 여섯 살 때의 어떤 우주인의 일화이다.
우주인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는가? 한때 그들의 조상이던 지구인들은 한창 자라나는 때에 온갖 곳에서 각종 풍파를 겪으며 성장했다. 그것이 학교가 되었든, 가정이 되었든, 또래 무리가 되었든 간에. 그들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학교에서 주는 시험이 되기도 했고, 그냥 어떤 공간 그 자체가 되기도 하였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새로운 시련을 맞이하러 가는 수많은 조상들의 선택은 일탈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피냄새가 나는 활자도 더러 있었다.
어느 날, 어린 날의 아냑은 그 점에 주목했다. 열여섯. 우주정거장에 아직 시설적인 미비함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척박하게 살아가던, 그들의 세상이라고는 우주정거장 뿐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은은한 절망과 우울이 깔린, 그런 인류의 시절.
일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지하지 못하고 남을 때리거나 심하게 공격해 연행당하는 정도로 인지되던 시절. 운석이 한 번이라도 잘못 스치면 우주정거장의 모두가 사라지는 곳에서, 하루하루 줄타기처럼 연명하듯 지내고 있는 그런 시절에, 하루빨리 인재를 찍어내듯 양산해야 하는 바로 그런 때에.
시작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아냑은 얌전하다는 소리를 듣는 우주정거장 차세대 인류 그룹 내 우등생이었다. 매번 상위 그룹에 꼽히고, 대인 관계도 원만한 데다가, 우주정거장 내 필수적으로 실시하는 인격 테스트에서 인내심이 굉장히 높이 나오는 등, 그는 모로 봐도 전혀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 아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랬었다.
아냑 스스로도 그 결과를 통지 받았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믿었고 그렇게 행동해 왔다. 그저, 그런 결과물과 상충되는 무언가가 아주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의 머릿속을 점점 조여왔을 뿐이다.
우주인의 비극 중 지금에 와서야 해결된 것이 바로 일탈이라는 개념의 무지다. 멀리서 봤을 땐 인생을 모나게 살고 싶은건가, 하는 책망만이 향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미 일생에 모가 났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사포질을 하려는 청소년기의 부르짖음임을 우주인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냑의 세대에서도 늘 일어나는,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원인 불명으로 넘어가거나 사이코패스적 특수한 자질로 따로 인원을 분류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열여섯살의 아냑은 어느 날 문득 괴상한 답답함과 함께 지독한 충동이 몰려왔다.
-
우주정거장의 교육 장소는 협소하지는 않다. 다만 그 공간은 언제나, 늘, 어쩌면 영원히 교육공간일 것이다. 소년인 우주인은 청소년일 때도 그 공간에서 수업을 들을 것이다. 교육을 받는 선생이 바뀔 지언정 보는 사람은 늘 똑같을 것이다. 바깥은 우주. 교육 장소와 그들이 사는 주거 구역은 같은 건물로 봐야 하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때, 한창 예민한 청소년의 속이 답답하지 않을 확률을 구하시오.
-
아냑은 그때 평소처럼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아냑의 나잇대부터는 슬슬 기묘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그의 제법 활달한 친구들은 활달하다 못해 포악한 정신머리를 가지게 되었고, 얌전한 친구들은 아냑의 생각에 교육자를 정말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아냑은 뭐가 됐건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아냑은 무언가 달랐다. 왜냐하면 아냑은 그날,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우주정거장의 해치를 열어서 누가 죽든 말든 상관 없이- 아니 오히려 반드시 그 꼬라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강렬한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은 저 선생을 죽이거나. 혹은 포악해진 친구들을 데리고 갑자기 싸움판을 열거나. 혹은...
한 번 다른 길로 샌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 트인 충동은 괴상한 생각을 끊임 없이, 무한히 뜨개질을 하는 거미가 머리에 내려앉은 듯이 끝없이 생성되었다. 어느새 아냑에게 수업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뭔가를 일으키고 싶었다. 하고 싶었다. 아니, 아냑은 영민하게 생각했다. 그는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아냑은 난생 처음으로 눈을 뜬 채 교육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수업 내용을 하나도 듣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아냑의 귓가에는 충동으로 상기된 심장소리와 그걸 내리누르려는 이성이 팽팽 돌며 싸우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러했다. 해치를 지금 당장 여는 건 어때? 아니, 그러다가 찢어발겨질 거야! 한 번도 안 그래 봤는데도? 그치만 온 몸이 산산조각으로 찢어지는 건 아파. 싫어! 우주에 둥둥 떠다니는 유기체가 되기도 싫고. 그럼 다른 애들이랑 싸우는 건? 그것도 싫어! 아플 것 같아!
아냑은 머리가 다른 쪽으로 웅웅 돌아가는 게 혼란스러웠다.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았다. 자신은 인내심이 높고 이런 충동도 익숙하게 조절할 줄 아는 학생, 이라고 매번 소개된 사람이다. 이 세대의 유망주 중 하나였다. 아냑은 이런 게 너무 익숙하지 않았다. 계속 견뎌야 하나? 이런 이상한 상태를?
아냑은 첫 번째 지혜를 구하러 자신을 교육하던 교육자에게 가보았다. 그리고 제 상태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했다. 아냑은 자신이 그런 무섭고 끔찍한 충동적 상상을 했다는 것이 잘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겁이 났으며,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저어, 교육자님. 오늘 수업 말인데요.”
“무슨 일인가요? 아냑 교육생?”
“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잘 못 들었는데...”
“오, 그럼 오늘 배부된 학습 데이터에 따로 체크를 해 줄까요?”
“그게 아니라, 저, 그.”
그 딴 생각 말인데요. 아냑은 몸을 배배 꼬다가 간신히 무언가를 말했다.
“...오늘 수업을 하기 싫은... 그런 생각이였어요.”
“음? 왜일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런 일이 흔한가요?”
아냑은 조언을 찾는 간절한 눈으로 눈 앞의 어른을 응시했다. 하지만 척박한 우주에서 살아온 어른, 그것도 지구와의 문화에서 크고 작은 미씽 링크가 존재하는 채로 살아온 어른에게 그 질문과 눈은 매력적인 이야기는 아니였다.
“흔하죠. 원래 다들 겪는답니다.”
“아, 그런가요.”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돼요. 아냑 교육생은 잘 견디는 편이죠? 그러니까 계속 견디면 된답니다.”
교육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냑에게 예시로 문제를 일으킨 여타 교육생들의 예시를 들어주었다. 고분고분하고 아직 말랑말랑한 머리를 가진 교육생들은 대개 이런 식의 예시를 들면 넘어갔다. 모든 매뉴얼이 그러했고, 교육자라는 어른도 그렇게 자랐다.
물론 아냑은 그 점에 집중하기보다 다른 데에 집중해 버린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냑은 두 번째 지혜를 찾아 나섰다. 교육자가 말하길 다른 사람들도 한번씩은 겪는다고들 했다. 예시 자료에 나온 행동 양상이 제 친구들의 것과 너무 똑같고 심지어 자신이 겪은 증상과도 일치했다. 그럼 이걸 좀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또래 사회에서 경험의 공유는 의외로 쉽고 자주 일어나는 문제였다. 아냑이 자신의 경험을 무섭고 두려운 것에서 한번쯤 공유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게 된 데에는 다름아닌 교육자의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 말라’는 듯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무른 태도가 작은 무리 속에서 무언가를 촉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그랬다니까.”
“너도?”
“너까지?”
“...나까지, 라고 하니까 기분 되게 이상하다.”
“하지만 넌 뭔가 안 그럴 것 같았단 말이야.”
“맞아. 그냥 뭐든 고분고분. 그럴 것 같았고.”
아냑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박수를 짝 쳤다.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지? 내가 고분고분하다는 점? 그리고 하나가 더 있는데.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잖아.”
“와아, 꼰대.”
“아니 내가 왜 꼰대야아아.”
“그럼 교육자를 어떻게 할 거야? 막, 이렇게 뚜드려 팰 거야?”
“아니!”
“나도 그러긴 싫어. 그러다가 수경 재배실에서 발견될 지도 몰라!”
“으악!”
아이들 특유의 이런저런 헛소문과 자극적인 괴담 이야기가 한차례 무리 속을 훅 스친다. 그것만으로도 아냑은 뭔가 있던 불만이 소소하게 사그라드는 걸 느꼈다. 아냑은 자신의 친구들을 보았다. 분명 사고를 치거나, 치고 싶어하는 눈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기묘하고 생경한 충동을 느낀 이상 직감할 수 있었다.
“되게 이상하지 않아? 우리끼리 있을 땐 괜찮은데.”
“...헉, 그럼 교육자가 뭘 뿌리는 거 아냐?”
“그럴지도 몰라.”
“나, 전에 다른 연구원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막 예전에 지구에서는-”
또 한차례, 이번에는 자기들이 얼마나 지구는 어떻고 얼마나 무서운 곳이었는지 토론이 우르르 쏟아진다. 아냑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아는 이야기를 톡톡 건네다가.
“...그럼 어른들이 나쁘다는 거 아냐?”
라는 희대의 발언을 해 버린다.
모든 아이들의 눈이 순간적으로 아냑에게 돌아간다. 아냑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동시에 어떤 확신 또한 느낀다. 이건, 아마도, 옳다. 연구자의 피를 물려받은 아이가 가지는 직감이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일어난 교육 거부 사건의 시작이다.
-
파동은 순식간에 번졌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교육자가 자신을 괴롭혔어요! 라는 말로 이런 저런 핑계를 댔으나, 모든 곳에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CCTV가 있는 우주정거장 안에서 그런 말은 썩 먹히지 않았다. 점차 아이들은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파괴적인 창조력을 가짜 멍을 만들기, 사고로 보이지 않을 사고 만들기, 꾀병이 무엇인지 배우고 활용하기 등으로 널리 퍼졌다. 몇몇 아이들은 꾀병을 어른들은 태연하게 쓰는 걸 봤다며 매우 화내기까지 했다!
아냑은 이런 일을 친구들끼리 하면서 생각보다 매우 재미있음을 느꼈다. 그동안 답답했던 게 풀린다고 해야 하나. 그 질리도록 간 교육공간에 가기 싫었음을 인정하고 이렇게 구는 게 괜찮아서 너무 좋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아냑은 아이들이 주르륵 늘어놓던, ‘지구에서 일어났던 사람 통제하기 괴담’ 이야기의 결말은 아직 몰랐다. 아냑은 빠르게 겁을 집어먹었다가 곧 진정했다. 이미 일어난 일들이 수두룩했다는 거다. 그럼 우리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아냑에게 이때 행운으로 작용한 것이 있다면, 이 시기 쯤 전반적으로 온갖 미디어 자료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조치됐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작고 소소한 반란은 그저 아이들의 ‘일탈’로 규정되었을 것이다. 그의 행동이 어떤 사례집에 남거나, 조금 더 후대에 연구를 위한 행동 사례집에 실리기나 했을 것이다.
아냑은 또래들, 동기들, 그 외 교육공간이 질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미디어 자료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와, 체육 시설이 있대.”
“그러게. 거기는 연구원들도 자주 안 가잖아.”
“난 가는 거 봤어!”
“우리는 왜 못 가?”
“그치만 이렇게 넓은... 축구 같은 건 우리는 못할 것 같은데.”
문장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온다. 아냑은 그러게, 하고 있는 한편으로도 자료를 찾던 도중 튀어나온 논문 하나에 유난히 눈길을 주었다.
‘운동과 심리학의 상관관계’.
“이건 뭘까.”
“심리학... 이잖아?”
“어려운 책이잖아. 우와, 논문인데.”
“아냑, 읽을 수 있어?”
“...못 읽으면... 그, 음...”
“설마 어른들한테 읽어달라고 하려고?!”
“그런 건 아니야. 그런 건 아니니까.”
그치만 어려운 내용 투성이인걸 어떻게 하지. 아냑은 엄청나게 재미있어 보이고 중요해 보이는 이 논문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데구르르 굴렀다. 지금은 사례를 찾는 게 먼저다. 물론 그러면서 또래 집단끼리 자체적으로 지구 문화 연구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으니까!
그날 아이들은 밤새도록 청춘 로맨스 코미디며 온갖 영화들을 정복했다.
-
아냑의 말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교육 거부에 나서고 자체적 연구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갈 때였다. 어른들은 다음 세대 아이들을 실패작 취급하며 전전긍긍해 하였다. 특히나 다음 세대 인류의 중역이 되리라 믿은 아냑이라는 아이가 이번 일을 벌인 원인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건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꽤 충격이 컸다.
보통 연구자들은 말이다.
사람의 성향을 어떤 식으로든 느낄 수 있고 다루는 데에 능한 사람들은, 각자의 결론을 내고 있었다.
함장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교육이라는 자체적인 기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 과학에 마저 흥미를 불어넣게 할 방법을 찾아보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걸 받은 연구원 중 이 일을 흥미롭게 보던 연구원 한 명은 그 지침을 가지고 어디론가 향했다.
-
아냑에게 세 번째 지혜는 어느 날 찾아왔다.
교육생의 의무를 저버린 멍청이들! 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지낸 지 두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제 공부는 재미없고 지루하다든가, 어른들도 똑같이 자기들이랑 자랐다면 더 멍청한 거 아니냐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본 B급 공포 영화는 어느 부분에서 공감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다들 웃으면서 봤고, 아냑을 뺀 모든 아이들이 곯아 떨어져 있었다.
그런 곳에, 그러니까 아이들의 아지트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누구세요?”
“너로군.”
“우왁. 안녕히 계세요.”
어른들이랑 그렇게 큰 대화는 하기 싫었다! 답답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인간들! 아냑은 속이 안좋다는 기분을 느끼며 황급히 아지트 안으로 숨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날 나타난 어른은 달랐다.
“궁금한 것이 있지 않나.”
“궁금한 거 없어요! 안 사요.”
“오호라. 안 산다는 표현은 어디서 배웠지?”
“...지구식 표현이에요.”
흘끗. 아냑은 저 재수 없어 보이는(으!) 어른이 이런 데에 관심을 가질 줄 몰랐는지 경계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를 흘렸다.
“그, 로맨스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데.”
“난 그런 게 취향은 아니다.”
“으.”
“재수 없다는 표정이군.”
“으!”
“하지만 더 이야기해 봐라. 너, 유망주였지 않나.”
“으!!!”
“...배웠을 텐데. 무언가 주장을 하려면, 설득을 해보라고.”
아냑이 둥글게 눈을 홉떴다.
“주장이요?”
“너희가 말하는 어른들은, 우리같은 연구자들은 너희가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행동하는지 모른다.”
“이... 런 것도 주장이 될 수 있어요?”
“종종 연구자들, 엔지니어들이 윗선이 등신같은 짓을 할 때마다 하는 것과 흡사하긴 하지.”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거 하면 안 돼요?”
“...그도 그렇군.”
“왜 우리는 이런 거 하면 멍청하대요?”
“흠. 그럼 너희는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지?”
“음...”
아냑은 별안간 툭 내뱉었다. 실없는 말이었다.
“우리가 왜 이런 짓을 벌이고 싶었는지 찾고 싶어서요.”
“찾고 싶다고? 너희도 너희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 거냐?”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아냑은 이제 바닥에 앉았다. 의문의 연구원도 바닥에 앉았다. 아냑은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연구원은 꽤 진지한 태도로 그걸 들어주고 있었다. 아냑은, 어른이 이렇게 반응해 주는 게 정말 좋지만, 한편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이러다가 친구들이 배신자라고 하는 거 아닐까? 라고.
하지만 아냑이 궁금해하던 논문 이야기를 꺼내가 그 생각이 홀랑 사라졌다.
“해석해 줄까.”
“어 진짜요?!”
-
아냑이 없어도 아이들은 제멋대로 잘 놀았다. 그럼 아냑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그러니까! 그렇다는 건!”
자기 혼자 어른들한테 매우 화가 나서 논문 몇 개를 쥐고서는.
“운동 공간이랑 휴게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걸!”
“그래. 누락을 시켰다 이말이다.”
“함장님 개새끼!!”
“난 욕 안 가르쳤는데.”
...이러고 있었다.
아냑은 그 때 만난 의문의 연구원과 함께 아동과 심리학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이 이러했다. 그런 충동은 자연스럽지 않다. 단, 이런저런 제약들이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제약은 현재 우주에서는 아주아주 당연한 것들 투성이였다!
“당연한 것이라고?”
“적어도 지금은요. 근데!”
“근데.”
“...그럼 아니게 해야죠!”
“그게 네가 원하는 건가?”
응! 똘망한 보라색 눈이 그날 명쾌하게 빛났다. 어른 연구원은 그것이 네가 바라는 것이고, 그게 네가 이제껏 아이들을 이끌고 방만하게 군 이유이냐고 다시 물었다. 아냑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조금 더 멋진 이유를 보태 답했다.
“그 애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재미있어 했으니까, 그런 시간도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경험적 증명이다.”
“윽, 연구원 냄새.”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들이 우리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고 했죠.”
“그렇다. 이제 적어도 나는 알게 됐군.”
“그럼 이걸 알리고, 음, 설득도 하고.”
“할 수 있겠나?”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민 아냑은 그날 하루 종일 문서를 붙들고 있었다.
-
그리하여, 교육생들이 교육을 받지 않은 지 두 달 하고도 보름이 막 넘어가는 날이 되었을 쯤.
그 보름의 기간 동안 아냑이 이런저런 공부를 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어른들에게 의지 피력을 할 때. 어떤 연구원이 답을 듣고 흡족한 듯이 웃은 뒤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연구 결과를 공유하면서 설득을 이어나가게 되었을 그 기간이 지난 후.
그 의문의 연구자가 교육자로 합류하면서, 함선의 커리큘럼이 대폭 갈아치워졌다.
-
“우리... 다시 교육실 가?”
“으...”
아냑도 만성적으로 반항해 온 습관 때문에 가는 길이 이제는 싫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다시 찾아온 어른 연구원이 말하기를, 이번에 기대해 봐도 좋다고 했으니.
“이번에 이상하면 다시 뛰쳐나가자.”
“그러자!”
모두 약속하고 그렇게 다시 찾아간 교육공간에서, 새로 맞는 교육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전원.”
“체육실로 집합!”
“오늘은 배구를 시작한다!”
-
아냑은 16살 때의 일기를 보고 나서야 그 의문의 연구자 겸 신규 교육자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미친 양반네, 날 아주 점찍고 보고 있었잖아...
이건 열 여섯 살 때의 어떤 우주인의 일화이다.
우주인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는가? 한때 그들의 조상이던 지구인들은 한창 자라나는 때에 온갖 곳에서 각종 풍파를 겪으며 성장했다. 그것이 학교가 되었든, 가정이 되었든, 또래 무리가 되었든 간에. 그들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학교에서 주는 시험이 되기도 했고, 그냥 어떤 공간 그 자체가 되기도 하였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새로운 시련을 맞이하러 가는 수많은 조상들의 선택은 일탈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피냄새가 나는 활자도 더러 있었다.
어느 날, 어린 날의 아냑은 그 점에 주목했다. 열여섯. 우주정거장에 아직 시설적인 미비함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척박하게 살아가던, 그들의 세상이라고는 우주정거장 뿐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은은한 절망과 우울이 깔린, 그런 인류의 시절.
일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지하지 못하고 남을 때리거나 심하게 공격해 연행당하는 정도로 인지되던 시절. 운석이 한 번이라도 잘못 스치면 우주정거장의 모두가 사라지는 곳에서, 하루하루 줄타기처럼 연명하듯 지내고 있는 그런 시절에, 하루빨리 인재를 찍어내듯 양산해야 하는 바로 그런 때에.
시작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아냑은 얌전하다는 소리를 듣는 우주정거장 차세대 인류 그룹 내 우등생이었다. 매번 상위 그룹에 꼽히고, 대인 관계도 원만한 데다가, 우주정거장 내 필수적으로 실시하는 인격 테스트에서 인내심이 굉장히 높이 나오는 등, 그는 모로 봐도 전혀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 아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랬었다.
아냑 스스로도 그 결과를 통지 받았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믿었고 그렇게 행동해 왔다. 그저, 그런 결과물과 상충되는 무언가가 아주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의 머릿속을 점점 조여왔을 뿐이다.
우주인의 비극 중 지금에 와서야 해결된 것이 바로 일탈이라는 개념의 무지다. 멀리서 봤을 땐 인생을 모나게 살고 싶은건가, 하는 책망만이 향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미 일생에 모가 났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사포질을 하려는 청소년기의 부르짖음임을 우주인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냑의 세대에서도 늘 일어나는,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원인 불명으로 넘어가거나 사이코패스적 특수한 자질로 따로 인원을 분류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열여섯살의 아냑은 어느 날 문득 괴상한 답답함과 함께 지독한 충동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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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정거장의 교육 장소는 협소하지는 않다. 다만 그 공간은 언제나, 늘, 어쩌면 영원히 교육공간일 것이다. 소년인 우주인은 청소년일 때도 그 공간에서 수업을 들을 것이다. 교육을 받는 선생이 바뀔 지언정 보는 사람은 늘 똑같을 것이다. 바깥은 우주. 교육 장소와 그들이 사는 주거 구역은 같은 건물로 봐야 하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때, 한창 예민한 청소년의 속이 답답하지 않을 확률을 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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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냑은 그때 평소처럼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아냑의 나잇대부터는 슬슬 기묘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그의 제법 활달한 친구들은 활달하다 못해 포악한 정신머리를 가지게 되었고, 얌전한 친구들은 아냑의 생각에 교육자를 정말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아냑은 뭐가 됐건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아냑은 무언가 달랐다. 왜냐하면 아냑은 그날,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우주정거장의 해치를 열어서 누가 죽든 말든 상관 없이- 아니 오히려 반드시 그 꼬라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강렬한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은 저 선생을 죽이거나. 혹은 포악해진 친구들을 데리고 갑자기 싸움판을 열거나. 혹은...
한 번 다른 길로 샌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 트인 충동은 괴상한 생각을 끊임 없이, 무한히 뜨개질을 하는 거미가 머리에 내려앉은 듯이 끝없이 생성되었다. 어느새 아냑에게 수업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뭔가를 일으키고 싶었다. 하고 싶었다. 아니, 아냑은 영민하게 생각했다. 그는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아냑은 난생 처음으로 눈을 뜬 채 교육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수업 내용을 하나도 듣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아냑의 귓가에는 충동으로 상기된 심장소리와 그걸 내리누르려는 이성이 팽팽 돌며 싸우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러했다. 해치를 지금 당장 여는 건 어때? 아니, 그러다가 찢어발겨질 거야! 한 번도 안 그래 봤는데도? 그치만 온 몸이 산산조각으로 찢어지는 건 아파. 싫어! 우주에 둥둥 떠다니는 유기체가 되기도 싫고. 그럼 다른 애들이랑 싸우는 건? 그것도 싫어! 아플 것 같아!
아냑은 머리가 다른 쪽으로 웅웅 돌아가는 게 혼란스러웠다.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았다. 자신은 인내심이 높고 이런 충동도 익숙하게 조절할 줄 아는 학생, 이라고 매번 소개된 사람이다. 이 세대의 유망주 중 하나였다. 아냑은 이런 게 너무 익숙하지 않았다. 계속 견뎌야 하나? 이런 이상한 상태를?
아냑은 첫 번째 지혜를 구하러 자신을 교육하던 교육자에게 가보았다. 그리고 제 상태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했다. 아냑은 자신이 그런 무섭고 끔찍한 충동적 상상을 했다는 것이 잘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겁이 났으며,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저어, 교육자님. 오늘 수업 말인데요.”
“무슨 일인가요? 아냑 교육생?”
“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잘 못 들었는데...”
“오, 그럼 오늘 배부된 학습 데이터에 따로 체크를 해 줄까요?”
“그게 아니라, 저, 그.”
그 딴 생각 말인데요. 아냑은 몸을 배배 꼬다가 간신히 무언가를 말했다.
“...오늘 수업을 하기 싫은... 그런 생각이였어요.”
“음? 왜일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런 일이 흔한가요?”
아냑은 조언을 찾는 간절한 눈으로 눈 앞의 어른을 응시했다. 하지만 척박한 우주에서 살아온 어른, 그것도 지구와의 문화에서 크고 작은 미씽 링크가 존재하는 채로 살아온 어른에게 그 질문과 눈은 매력적인 이야기는 아니였다.
“흔하죠. 원래 다들 겪는답니다.”
“아, 그런가요.”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돼요. 아냑 교육생은 잘 견디는 편이죠? 그러니까 계속 견디면 된답니다.”
교육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냑에게 예시로 문제를 일으킨 여타 교육생들의 예시를 들어주었다. 고분고분하고 아직 말랑말랑한 머리를 가진 교육생들은 대개 이런 식의 예시를 들면 넘어갔다. 모든 매뉴얼이 그러했고, 교육자라는 어른도 그렇게 자랐다.
물론 아냑은 그 점에 집중하기보다 다른 데에 집중해 버린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냑은 두 번째 지혜를 찾아 나섰다. 교육자가 말하길 다른 사람들도 한번씩은 겪는다고들 했다. 예시 자료에 나온 행동 양상이 제 친구들의 것과 너무 똑같고 심지어 자신이 겪은 증상과도 일치했다. 그럼 이걸 좀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또래 사회에서 경험의 공유는 의외로 쉽고 자주 일어나는 문제였다. 아냑이 자신의 경험을 무섭고 두려운 것에서 한번쯤 공유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게 된 데에는 다름아닌 교육자의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 말라’는 듯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무른 태도가 작은 무리 속에서 무언가를 촉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그랬다니까.”
“너도?”
“너까지?”
“...나까지, 라고 하니까 기분 되게 이상하다.”
“하지만 넌 뭔가 안 그럴 것 같았단 말이야.”
“맞아. 그냥 뭐든 고분고분. 그럴 것 같았고.”
아냑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박수를 짝 쳤다.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지? 내가 고분고분하다는 점? 그리고 하나가 더 있는데.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잖아.”
“와아, 꼰대.”
“아니 내가 왜 꼰대야아아.”
“그럼 교육자를 어떻게 할 거야? 막, 이렇게 뚜드려 팰 거야?”
“아니!”
“나도 그러긴 싫어. 그러다가 수경 재배실에서 발견될 지도 몰라!”
“으악!”
아이들 특유의 이런저런 헛소문과 자극적인 괴담 이야기가 한차례 무리 속을 훅 스친다. 그것만으로도 아냑은 뭔가 있던 불만이 소소하게 사그라드는 걸 느꼈다. 아냑은 자신의 친구들을 보았다. 분명 사고를 치거나, 치고 싶어하는 눈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기묘하고 생경한 충동을 느낀 이상 직감할 수 있었다.
“되게 이상하지 않아? 우리끼리 있을 땐 괜찮은데.”
“...헉, 그럼 교육자가 뭘 뿌리는 거 아냐?”
“그럴지도 몰라.”
“나, 전에 다른 연구원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막 예전에 지구에서는-”
또 한차례, 이번에는 자기들이 얼마나 지구는 어떻고 얼마나 무서운 곳이었는지 토론이 우르르 쏟아진다. 아냑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아는 이야기를 톡톡 건네다가.
“...그럼 어른들이 나쁘다는 거 아냐?”
라는 희대의 발언을 해 버린다.
모든 아이들의 눈이 순간적으로 아냑에게 돌아간다. 아냑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동시에 어떤 확신 또한 느낀다. 이건, 아마도, 옳다. 연구자의 피를 물려받은 아이가 가지는 직감이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일어난 교육 거부 사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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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동은 순식간에 번졌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교육자가 자신을 괴롭혔어요! 라는 말로 이런 저런 핑계를 댔으나, 모든 곳에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CCTV가 있는 우주정거장 안에서 그런 말은 썩 먹히지 않았다. 점차 아이들은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파괴적인 창조력을 가짜 멍을 만들기, 사고로 보이지 않을 사고 만들기, 꾀병이 무엇인지 배우고 활용하기 등으로 널리 퍼졌다. 몇몇 아이들은 꾀병을 어른들은 태연하게 쓰는 걸 봤다며 매우 화내기까지 했다!
아냑은 이런 일을 친구들끼리 하면서 생각보다 매우 재미있음을 느꼈다. 그동안 답답했던 게 풀린다고 해야 하나. 그 질리도록 간 교육공간에 가기 싫었음을 인정하고 이렇게 구는 게 괜찮아서 너무 좋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아냑은 아이들이 주르륵 늘어놓던, ‘지구에서 일어났던 사람 통제하기 괴담’ 이야기의 결말은 아직 몰랐다. 아냑은 빠르게 겁을 집어먹었다가 곧 진정했다. 이미 일어난 일들이 수두룩했다는 거다. 그럼 우리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아냑에게 이때 행운으로 작용한 것이 있다면, 이 시기 쯤 전반적으로 온갖 미디어 자료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조치됐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작고 소소한 반란은 그저 아이들의 ‘일탈’로 규정되었을 것이다. 그의 행동이 어떤 사례집에 남거나, 조금 더 후대에 연구를 위한 행동 사례집에 실리기나 했을 것이다.
아냑은 또래들, 동기들, 그 외 교육공간이 질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미디어 자료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와, 체육 시설이 있대.”
“그러게. 거기는 연구원들도 자주 안 가잖아.”
“난 가는 거 봤어!”
“우리는 왜 못 가?”
“그치만 이렇게 넓은... 축구 같은 건 우리는 못할 것 같은데.”
문장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온다. 아냑은 그러게, 하고 있는 한편으로도 자료를 찾던 도중 튀어나온 논문 하나에 유난히 눈길을 주었다.
‘운동과 심리학의 상관관계’.
“이건 뭘까.”
“심리학... 이잖아?”
“어려운 책이잖아. 우와, 논문인데.”
“아냑, 읽을 수 있어?”
“...못 읽으면... 그, 음...”
“설마 어른들한테 읽어달라고 하려고?!”
“그런 건 아니야. 그런 건 아니니까.”
그치만 어려운 내용 투성이인걸 어떻게 하지. 아냑은 엄청나게 재미있어 보이고 중요해 보이는 이 논문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데구르르 굴렀다. 지금은 사례를 찾는 게 먼저다. 물론 그러면서 또래 집단끼리 자체적으로 지구 문화 연구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으니까!
그날 아이들은 밤새도록 청춘 로맨스 코미디며 온갖 영화들을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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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냑의 말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교육 거부에 나서고 자체적 연구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갈 때였다. 어른들은 다음 세대 아이들을 실패작 취급하며 전전긍긍해 하였다. 특히나 다음 세대 인류의 중역이 되리라 믿은 아냑이라는 아이가 이번 일을 벌인 원인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건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꽤 충격이 컸다.
보통 연구자들은 말이다.
사람의 성향을 어떤 식으로든 느낄 수 있고 다루는 데에 능한 사람들은, 각자의 결론을 내고 있었다.
함장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교육이라는 자체적인 기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 과학에 마저 흥미를 불어넣게 할 방법을 찾아보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걸 받은 연구원 중 이 일을 흥미롭게 보던 연구원 한 명은 그 지침을 가지고 어디론가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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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냑에게 세 번째 지혜는 어느 날 찾아왔다.
교육생의 의무를 저버린 멍청이들! 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지낸 지 두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제 공부는 재미없고 지루하다든가, 어른들도 똑같이 자기들이랑 자랐다면 더 멍청한 거 아니냐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본 B급 공포 영화는 어느 부분에서 공감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다들 웃으면서 봤고, 아냑을 뺀 모든 아이들이 곯아 떨어져 있었다.
그런 곳에, 그러니까 아이들의 아지트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누구세요?”
“너로군.”
“우왁. 안녕히 계세요.”
어른들이랑 그렇게 큰 대화는 하기 싫었다! 답답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인간들! 아냑은 속이 안좋다는 기분을 느끼며 황급히 아지트 안으로 숨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날 나타난 어른은 달랐다.
“궁금한 것이 있지 않나.”
“궁금한 거 없어요! 안 사요.”
“오호라. 안 산다는 표현은 어디서 배웠지?”
“...지구식 표현이에요.”
흘끗. 아냑은 저 재수 없어 보이는(으!) 어른이 이런 데에 관심을 가질 줄 몰랐는지 경계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를 흘렸다.
“그, 로맨스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데.”
“난 그런 게 취향은 아니다.”
“으.”
“재수 없다는 표정이군.”
“으!”
“하지만 더 이야기해 봐라. 너, 유망주였지 않나.”
“으!!!”
“...배웠을 텐데. 무언가 주장을 하려면, 설득을 해보라고.”
아냑이 둥글게 눈을 홉떴다.
“주장이요?”
“너희가 말하는 어른들은, 우리같은 연구자들은 너희가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행동하는지 모른다.”
“이... 런 것도 주장이 될 수 있어요?”
“종종 연구자들, 엔지니어들이 윗선이 등신같은 짓을 할 때마다 하는 것과 흡사하긴 하지.”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거 하면 안 돼요?”
“...그도 그렇군.”
“왜 우리는 이런 거 하면 멍청하대요?”
“흠. 그럼 너희는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지?”
“음...”
아냑은 별안간 툭 내뱉었다. 실없는 말이었다.
“우리가 왜 이런 짓을 벌이고 싶었는지 찾고 싶어서요.”
“찾고 싶다고? 너희도 너희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 거냐?”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아냑은 이제 바닥에 앉았다. 의문의 연구원도 바닥에 앉았다. 아냑은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연구원은 꽤 진지한 태도로 그걸 들어주고 있었다. 아냑은, 어른이 이렇게 반응해 주는 게 정말 좋지만, 한편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이러다가 친구들이 배신자라고 하는 거 아닐까? 라고.
하지만 아냑이 궁금해하던 논문 이야기를 꺼내가 그 생각이 홀랑 사라졌다.
“해석해 줄까.”
“어 진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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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냑이 없어도 아이들은 제멋대로 잘 놀았다. 그럼 아냑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그러니까! 그렇다는 건!”
자기 혼자 어른들한테 매우 화가 나서 논문 몇 개를 쥐고서는.
“운동 공간이랑 휴게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걸!”
“그래. 누락을 시켰다 이말이다.”
“함장님 개새끼!!”
“난 욕 안 가르쳤는데.”
...이러고 있었다.
아냑은 그 때 만난 의문의 연구원과 함께 아동과 심리학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이 이러했다. 그런 충동은 자연스럽지 않다. 단, 이런저런 제약들이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제약은 현재 우주에서는 아주아주 당연한 것들 투성이였다!
“당연한 것이라고?”
“적어도 지금은요. 근데!”
“근데.”
“...그럼 아니게 해야죠!”
“그게 네가 원하는 건가?”
응! 똘망한 보라색 눈이 그날 명쾌하게 빛났다. 어른 연구원은 그것이 네가 바라는 것이고, 그게 네가 이제껏 아이들을 이끌고 방만하게 군 이유이냐고 다시 물었다. 아냑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조금 더 멋진 이유를 보태 답했다.
“그 애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재미있어 했으니까, 그런 시간도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경험적 증명이다.”
“윽, 연구원 냄새.”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들이 우리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고 했죠.”
“그렇다. 이제 적어도 나는 알게 됐군.”
“그럼 이걸 알리고, 음, 설득도 하고.”
“할 수 있겠나?”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민 아냑은 그날 하루 종일 문서를 붙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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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교육생들이 교육을 받지 않은 지 두 달 하고도 보름이 막 넘어가는 날이 되었을 쯤.
그 보름의 기간 동안 아냑이 이런저런 공부를 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어른들에게 의지 피력을 할 때. 어떤 연구원이 답을 듣고 흡족한 듯이 웃은 뒤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연구 결과를 공유하면서 설득을 이어나가게 되었을 그 기간이 지난 후.
그 의문의 연구자가 교육자로 합류하면서, 함선의 커리큘럼이 대폭 갈아치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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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시 교육실 가?”
“으...”
아냑도 만성적으로 반항해 온 습관 때문에 가는 길이 이제는 싫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다시 찾아온 어른 연구원이 말하기를, 이번에 기대해 봐도 좋다고 했으니.
“이번에 이상하면 다시 뛰쳐나가자.”
“그러자!”
모두 약속하고 그렇게 다시 찾아간 교육공간에서, 새로 맞는 교육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전원.”
“체육실로 집합!”
“오늘은 배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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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냑은 16살 때의 일기를 보고 나서야 그 의문의 연구자 겸 신규 교육자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미친 양반네, 날 아주 점찍고 보고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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