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5 [채팅]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잡담방 -317- (1001)
종료
작성자:에주
작성일:2025-09-21 (일) 16:34:36
갱신일:2025-10-02 (목) 13:19:00
#0에주(PjTqAkuEBW)2025-09-21 (일) 16:34:36
위키: https://opentalkwiki.mycafe24.com/wiki.php/%EB%8C%80%EB%AC%B8
1:1 카톡방: >4911>
번개모임방: >5108>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á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1:1 카톡방: >4911>
번개모임방: >5108>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á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523관객석으로부터(F0euWF7s/S)2025-09-28 (일) 07:20:00
요즘, 모든 것이 그저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지하 연습실의 눅눅한 공기,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굉음, 심벌즈를 때리는 손목의 충격까지도. 한때는 나름 신선했던 이 모든 감각들이, 이제는 그저 닳고 닳은 레코드판처럼 똑같은 자리만을 맴돌고 있었다.
“거기, 브레이크! 한 박자만 더 끌어줘!”
칸나가 기타를 멈추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나는 기계적으로 알았다고 대답하며 하이햇을 밟았다. 저 녀석의 저런 모습도, 이제는 너무 익숙하다. 복수라는 비극을 짊어진 주인공. 언제나 위태롭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자신을 몰아붙이는 캐릭터.
“칸나 쨩, 너무 무리하지 마! 방금 엄청 멋있었는걸!”
그 옆에는 어김없이 유이가 서 있었다. 주인공의 상처를 보듬는 순수한 히로인 역할. 저 완벽한 연기력에는 가끔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모든 것이 그녀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겠지.
그리고 나는, 드럼 의자라는 최고의 VIP석에 앉아 이 모든 것을 관람하는 유일한 관객.
그래, 이 공연은 분명 재미있다. 재미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요즘 들어서는, 이 흥미진진한 연극의 다음 대사마저 예측 가능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번 더!”
칸나의 외침과 함께, 다시 곡이 시작되었다. 나는 머릿속을 비우고, 몸에 익은 비트를 정확하게 쏟아냈다. 하나, 둘, 셋, 넷. 오차 없는 메트로놈처럼. 재미, 흥미, 쾌락.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을 잠시 잊고, 그저 연주라는 행위에만 몰두했다.
‘콰앙-!’
그때, 칸나가 연주를 멈추고 기타 넥으로 내 심벌즈를 거칠게 내리쳤다. 귀를 찢는 파열음.
“뭐야.”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칸나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땀으로 젖은 오렌지색 머리카락 아래로, 타는 듯한 눈동자가 이쪽을 향해 있었다.
“너, 요즘 드럼에 영혼이 없어.”
정적.
연습실의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얼마전에 내가 했던 말을 돌려줄 생각인건가? 머리끝까지 오르는 짜증을 숨기지 않고 칸나의 말에 대꾸했다.
“...무슨 소리야. 박자 하나 안 틀렸잖아.”
“그래, 안 틀렸어. 완벽해. 너무 완벽해서, 꼭 기계가 치는 것 같다고.”
그 말에, 나는 처음으로 당황했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은 정확성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정한 비트. 그것이 나의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단점이라고?
“하아, 웃기네. 내 영혼은 지금 휴가 중이라서 말이야. 돌아오면 전해줄게.”
나는 일부러 가볍게 받아치며 스틱을 빙글 돌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고작해야 배우 따위가, 감히 관객의 감상을 멋대로 평가하다니.
유이가 어색한 공기를 깨려는 듯 끼어들었다.
“자자, 둘 다 진정해! 미유도 요즘 피곤한가 보지! 오늘은 이만 정리할까?”
나는 대답 대신 드럼 의자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연주할 기분이 아니었다.
나의 권태를, 하필이면 저 여자에게 들켜버렸다.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다.
그날 밤,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 의미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새로 나온 밴드의 뮤직비디오, 유명 연주자의 드럼 솔로 영상, 평론가들의 리뷰. 그 어떤 것도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모든 것이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의 재탕, 혹은 기술만 번지르르한 빈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나의 병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세상이 지루하다.
쾌락주의자인 나에게, 이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젠장.”
나는 스마트폰을 침대 옆으로 던져버리고, 벌떡 일어섰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다. 나는 별생각 없이, 방구석에 처박아두었던 낡은 박스를 끌어냈다. 중학교 시절의 물건들이 담긴, 일종의 타임캡슐. 몇 년 만에 열어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상자 안에는 촌스러운 디자인의 잡지, 빛바랜 사진, 이제는 맞지 않는 밴드 티셔츠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 바닥에 던졌다. 모든 게 다 시시했다.
그때, 손끝에 딱딱한 플라스틱 케이스가 닿았다.
꺼내 보니, 투명한 CD-R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매직으로 쓰여 있었다.
‘Munenori Demo 01 最前線’
무네노리.
나와 칸나, 그리고 지금은 없는 세 사람. 우리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곡들이 담긴 데모 CD.
아아, 이런 것도 남아 있었나.
나는 케이스를 열어 CD를 꺼내 들었다. 빛에 비추자, 표면에 새겨진 무지갯빛이 먼지 쌓인 과거의 기억을 비웃는 것처럼 반짝였다.
이걸 들으면, 얼마나 웃길까. 어설프고, 촌스럽고, 기술적으로 엉망진창인 연주. 모든 것이 진짜라고 믿었던, 과거의 치기 어린 나 자신을 비웃어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그래, 이거라면 좀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먼지 쌓인 CD 플레이어를 향해 걸어갔다.
이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의 지루함이 조금은 가시기를 바라면서.
그것이, 또 다른 지옥의 문을 여는 버튼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오래된 CD 플레이어의 트레이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나는 조소 어린 미소를 지운 채,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에서 ‘지지직’ 하는 화이트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그래, 시작부터 이 모양이지.
곧이어, 녹음 상태가 최악인 사운드가 터져 나왔다. 어설프게 오버드라이브가 걸린 칸나의 기타, 피치가 미묘하게 불안정한 이오리의 목소리, 그리고... 젊은 날의 과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쓸데없이 현란하고 시끄럽기만 한 나의 드럼.
“...푸흡.”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예상대로였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이걸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과거의 우리들이 벌이는 유치한 학예회를 감상했다. 이 곡의 다음 전개는 이렇고, 저 부분에서는 칸나가 삑사리를 냈었지. 모든 게 기억나는군. 정말이지, 시시하기 짝이 없는...
...어라?
곡이 후렴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이상했다. 분명 기술적으로는 엉망인데, 소리에 이상할 정도의 에너지가 있었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무모하고, 겁 없고,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바보들의 열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잊고 있던 기억의 상자를 강제로 열어젖혔다.
‘야, 시마무라! 거, 쓸데없는 기교만 넣지마!!! 좀 더 심플하게 하라고!’
‘네 기타 솔로만큼은 아닐걸, 칸나? 듣는 사람이 멀미할 지경이야.'
'다... 다들 싸움은... 안하기로 어제 약속했잖아요오...'
'아하하... 다들 쿠온이 무서워하니까 너무 크게 소리지르지 말고.'
좁은 합주실 안, 연습이 끝난 뒤였다. 우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김이 빠진 콜라를 마시며, 언제나처럼 시시콜콜한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키보드를 맡은 엘레나는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쳐다보다가, “둘 다 시끄러워.” 한마디를 던지고는 묵묵히 건반을 닦았다. 쿠온은 그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웃고 있었다. 그 순간의 공기, 눅눅한 먼지 냄새, 서로의 비웃음 속에 섞여 있던 미묘한 동질감. 그 모든 것이, 지독할 정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두 번째 트랙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발라드곡.
칸나의 서툰 아르페지오 위로, 이오리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 가사, 좀 더 애절한 느낌이 살았으면 좋겠어.’
이오리가 연습실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연애도 못해본 이오리는 표현 못하겠지만!’
내가 놀리듯 말하자, 이오리가 발끈해서 나를 노려봤다. 그때, 구석에 있던 칸나가 툭, 하고 한마디를 던졌다.
‘...이 부분, 브릿지 뮤트로 연주하면 더 조용해지니까, 목소리가 더 잘 들릴 거야. 지금까지 감정표현엔 문제가 없으니까 그거면 되지않을까?’
그 한마디에, 이오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칸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 녀석의 귀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CD가 멈췄다. 마지막 트랙이 끝나고, 방 안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웃고 있지 않았다. 비웃기는커녕, 입꼬리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아팠다. 쿵, 하고 무거운 것이 내려앉은 듯한 불쾌한 감각.
나는 그 감정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애써 외면하고, 내 사전에선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던 단어.
후회.
나는 관객이었다. 관객은 이야기에 몰입하되, 상처받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신조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스크린 속으로 손을 뻗어, 만질 수도 없는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 하고 있었다.
이건 시스템 에러다. 명백한 오류였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플레이어의 전원을 꺼버렸다.
다음 날, StATION의 공기는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바 카운터의 유리잔을 닦으며, 어젯밤의 일을 잊으려 애썼다. 그냥, 잠깐의 변덕이었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을 찾지 못해, 과거라는 쓰레기통을 뒤적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칸나는 홀에서 묵묵히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최근 우리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그 정적이 오히려 편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잠시 손님이 모두 나간 틈을 타, 나는 무대 구석에 있는 하우스 드럼 킷으로 향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비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고다. 스틱을 잡고, 가볍게 스네어를 몇 번 두드렸다. 탐탐을 굴리고, 심벌즈를 울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어떤 리듬을 연주하고 있었다.
복잡한 하이햇 워크, 변칙적인 베이스 드럼 패턴. 무네노리 시절, 우리가 가장 공들여 만들었던 곡의 인트로 비트였다.
‘툭.’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칸나가, 손에 들고 있던 마른행주를 떨어뜨린 채,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야, 그 비트.”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아.”
나는 그제야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냥, 손풀기야.”
서투른 변명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칸나는 속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직하게 말했다.
“그거, 마지막 라이브 이후로 한 번도 안 쳤잖아, 너.”
정확했다.
나는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이 비트를 연주한 적이 없다. 잊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의식적으로,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나의 관객이라는 가면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렸다.
칸나의 눈동자 속에는, 나와 똑같은, 과거라는 이름의 망령이 비치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라이브 하우스의 공허한 공간 속에서, 봉인해두었던 과거의 노이즈가, 지독할 정도로 선명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칸나의 말은, 며칠 동안 저주처럼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비트, 마지막 라이브 이후로 한 번도 안 쳤잖아, 너.’
그 녀석은 언제나 그랬다. 무심한 척하면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유이와 만나게 된 이후로는 무언가 숨기는 것 조차 없어져 버려서 내가 애써 땅속 깊이 묻어버린 기억까지도 멋대로 끌어내저린다.
해산 이후, 나는 드럼 의자에 앉는 것이 고역이었다. 살아가기 위해서 세션을 서기는 했지만 스틱을 잡으면, 어김없이 무네노리 시절의 리듬이, 손끝의 감각이, 잊고 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 나를 비웃었다. 유이가 칸나를 꼬드기는 걸 도와달라고 했을때도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었는데.
관객은 이야기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철칙. 하지만 분명히 묻어두었을 과거는, 멋대로 무대 밖으로 뛰쳐나와 내 멱살을 잡고 있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관객석이, 실은 가장 위험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느껴지던 권태감은 더이상 형체를 유지하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는, 훨씬 더 질 나쁜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혼란. 그리고, 내가 가장 경멸하는 단어. 미련.
결국,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섰다. 정처 없이 전철을 타고, 몇 번을 갈아탔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나의 이야기가, 최악의 형태로 막을 내렸던 장소. 이제는 지도에서도 사라진, 작은 라이브 하우스가 있던 곳으로.
골목은 예상대로 스산했다. 불 꺼진 가게들 사이로,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입구의 셔터는 굳게 닫혀 있었고, 빛바랜 밴드 포스터들이 유령처럼 나붙어 있었다. 그중에는, 앳된 얼굴의 우리들이 웃고 있는 포스터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건물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녹슨 비상문은, 허술하게도 잠겨 있지 않았다.
끼익, 하고 불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에서는 곰팡이와 먼지가 뒤섞인, 시간을 잊은 냄새가 흘러나왔다. 나는 홀린 듯 안으로 들어섰다. 텅 빈 홀. 의자도, 테이블도 전부 치워져 휑했다. 나의 발소리가, 공간 전체에 유령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먼지 쌓인 바닥 위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이곳에서, 우리는 첫 라이브를 했다. 관객은 고작 스무 명 남짓. 하지만 그때는, 온 세상을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뜨거운 조명, 귀를 찢는 기타 소리, 내 심장 박동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던 베이스 드럼. 모든 것이 ‘진짜’였다.
그때였다.
무대 가장 안쪽,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누구야.”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어둠 속에서, 익숙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관객은 객석에 있어야지, 무대 위까지 올라오면 어떡해.”
그림자가, 무대 중앙의 희미한 비상등 불빛 아래로 걸어 나왔다.
소노미야 이오리.
그녀가 왜 여기에 있는지, 묻고 싶지 않았다. 이 상황 자체가, 질 나쁜 연극의 한 장면 같았다.
“추억 여행이라도 왔어? 성공한 아티스트이신 이오리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다니.”
나는 비꼬는 투로 말했다. 나의 유일한 방어 수단이었다.
“너야말로. 요즘 보고 있는 연극은 재미없나 보지? 직접 무대까지 행차하신 걸 보면.”
이오리는 똑같은 방식으로 받아쳤다. 저 녀석은 예전부터 그랬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제나 정확하게 꿰뚫어 봤다.
“너랑 할 말 없어.”
나는 돌아서려 했다. 이 이상 엮여봤자, 내 감정만 더러워질 뿐이다.
“왜? 재미없어? 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진짜’ 이야기잖아.”
“...닥쳐.”
“아니면, 무서워진 건가? 관객으로 있는 게, 얼마나 비겁한 도망인지 이제야 깨달아서?”
“너한테 그런 말 들을 이유 없어! 진짜 무대에서 도망친 건, 너잖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어둠 속에서, 이오리의 눈이 가늘어지는 것이 보였다.
“도망...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 편하겠지. 하지만 말이야, 미유. 너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모든 게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였다고?”
그 말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 신조가, 내 세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관객으로 남는 것이, 정말로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아니, 애초에.
“...어째서였어?”
나도 모르게, 가장 묻고 싶지 않았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전부 연극이었다고 말하려는 거라면 집어치워. 그건 진짜였어. 내가 유일하게 진짜라고 믿었던 무대였다고. 그런데 왜, 네가 전부 망쳐버린 거냐고!”
내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텅 빈 라이브 하우스를 울렸다.
이오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무대 끝에 걸터앉아, 먼지 쌓인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그녀가 피식, 하고 웃었다. 그 웃음에는 경멸과, 슬픔과, 알 수 없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웃기지 마. 시마무라 미유. 이런 망해버린 라이브 하우스에서 ‘진짜’를 외쳐봤자, 아무한테도 닿지 않아.”
이오리는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는,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워져 있었다.
“때로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무대에 서기 위해서,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할 때도 있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이오리는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내 무대로 돌아갈래. 너는, 네 관객석으로 돌아가든 마음대로 해.”
그녀는 나를 스쳐 지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참 동안, 먼지 쌓인 무대 위에 혼자 서 있었다.
이오리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할 때도 있어.’
그것은 변명처럼 들리면서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진실의 파편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이 연극의 가장 중요한 진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멋대로 결말을 내버린, 가장 어리석은 관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눈물이 흘렀다.
이오리는 메아리도 남기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참 동안, 먼지 쌓인 무대 위에 혼자 서 있었다. 발밑이 꺼지는 듯한 감각. 내가 서 있던 관객석이, 사실은 텅 빈 무대 위였다는 것을 깨달은 어릿광대의 심정. 이오리가 남기고 간 말들은 머릿속에서 멋대로 재생되며,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비웃고 있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무대에 서기 위해서,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할 때도 있어.’
그것이 변명인지, 혹은 내가 모르는 진실의 파편인지. 이제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이 이야기가 재미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듯 무대에서 내려와, 라이브 하우스의 출구로 향했다. 삐걱거리는 비상문을 밀고 밖으로 나서자, 차가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걸까. 가로등 불빛이 빗줄기 속에서 몽롱하게 번져, 도시 전체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쏟아지는 비를 피할 생각도 잊은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릿속을 식혀줄 시원한 소나기가 아니었다. 옷 속까지 스며드는, 끈질기고 서늘한 비였다.
그때, 시야 한구석에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골목의 낡은 자판기 불빛 아래, 검은 우산을 든 채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타는 듯한 오렌지색 머리카락.
“...칸나.”
나도 모르게 이름이 튀어나왔다.
칸나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StATION의 아르바이트 시간이 한참 지났을 텐데.
“너, 여긴 어쩐 일이야.”
나는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물었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StATION에 안 오길래.”
칸나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왠지, 여기 있을 것 같아서.”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이 녀석은 언제나 그랬다. 말수는 적어도, 언제나 모든 것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칸나는 내 쪽으로 다가와,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 안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우산 위로 투둑, 투둑, 하고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좁은 우산 아래, 우리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거.”
침묵을 깬 것은 칸나였다. 그녀는 교복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두 장의, 빳빳한 티켓이었다. 눈에 익은 로고가 박혀 있었다.
‘RomoS LIVE at BUDOKAN 最終戦'
“...뭐야, 이게.”
“소노미야가 주고 갔어. 얼마 전에 불러내더라. 너한테도 전해주라고.”
나는 티켓을 든 채, 멍하니 칸나를 쳐다보았다. 이오리가, 칸나에게. 언제? 어째서?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저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몰라.”
칸나의 대답은 짧았다. 하지만 그 표정은, 나만큼이나 복잡해 보였다.
“그저, 그게 무엇이 되든 무대 위에서 전부 보여주겠다는 것처럼 들렸어.”
무대 위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무대. 이오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다시 울렸다.
나는 손에 든 티켓을 내려다보았다. 일본의 모든 밴드가 꿈꾸는 무도관. 이오리는 거짓말쟁이가 되어서라도, 저 무대에 서고 싶었던 걸까. 그곳에, 내가 모르는 진실이 정말로 있는 걸까.
나의 관객석은, 이미 무너져 내렸다.
이오리는 나를 다시 무대 위로, 그것도 자신이 서 있는 가장 화려한 무대로 초대하고 있었다.
이것은 초대인가, 아니면 기만인가.
“...나는 갈거야. 그 녀석이 그렇게까지 말했어. 내 마음을 돌려놓을 수단이라도 준비했을거야."
칸나가 나를 보며 물었다. 빗소리에 섞인, 조용한 목소리.
“어떡할래?"
"갈 거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도시의 불빛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손에 든 티켓의 모서리가, 차가운 빗물에 젖어 축축해졌다.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하 연습실의 눅눅한 공기,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굉음, 심벌즈를 때리는 손목의 충격까지도. 한때는 나름 신선했던 이 모든 감각들이, 이제는 그저 닳고 닳은 레코드판처럼 똑같은 자리만을 맴돌고 있었다.
“거기, 브레이크! 한 박자만 더 끌어줘!”
칸나가 기타를 멈추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나는 기계적으로 알았다고 대답하며 하이햇을 밟았다. 저 녀석의 저런 모습도, 이제는 너무 익숙하다. 복수라는 비극을 짊어진 주인공. 언제나 위태롭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자신을 몰아붙이는 캐릭터.
“칸나 쨩, 너무 무리하지 마! 방금 엄청 멋있었는걸!”
그 옆에는 어김없이 유이가 서 있었다. 주인공의 상처를 보듬는 순수한 히로인 역할. 저 완벽한 연기력에는 가끔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모든 것이 그녀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겠지.
그리고 나는, 드럼 의자라는 최고의 VIP석에 앉아 이 모든 것을 관람하는 유일한 관객.
그래, 이 공연은 분명 재미있다. 재미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요즘 들어서는, 이 흥미진진한 연극의 다음 대사마저 예측 가능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번 더!”
칸나의 외침과 함께, 다시 곡이 시작되었다. 나는 머릿속을 비우고, 몸에 익은 비트를 정확하게 쏟아냈다. 하나, 둘, 셋, 넷. 오차 없는 메트로놈처럼. 재미, 흥미, 쾌락.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을 잠시 잊고, 그저 연주라는 행위에만 몰두했다.
‘콰앙-!’
그때, 칸나가 연주를 멈추고 기타 넥으로 내 심벌즈를 거칠게 내리쳤다. 귀를 찢는 파열음.
“뭐야.”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칸나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땀으로 젖은 오렌지색 머리카락 아래로, 타는 듯한 눈동자가 이쪽을 향해 있었다.
“너, 요즘 드럼에 영혼이 없어.”
정적.
연습실의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얼마전에 내가 했던 말을 돌려줄 생각인건가? 머리끝까지 오르는 짜증을 숨기지 않고 칸나의 말에 대꾸했다.
“...무슨 소리야. 박자 하나 안 틀렸잖아.”
“그래, 안 틀렸어. 완벽해. 너무 완벽해서, 꼭 기계가 치는 것 같다고.”
그 말에, 나는 처음으로 당황했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은 정확성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정한 비트. 그것이 나의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단점이라고?
“하아, 웃기네. 내 영혼은 지금 휴가 중이라서 말이야. 돌아오면 전해줄게.”
나는 일부러 가볍게 받아치며 스틱을 빙글 돌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고작해야 배우 따위가, 감히 관객의 감상을 멋대로 평가하다니.
유이가 어색한 공기를 깨려는 듯 끼어들었다.
“자자, 둘 다 진정해! 미유도 요즘 피곤한가 보지! 오늘은 이만 정리할까?”
나는 대답 대신 드럼 의자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연주할 기분이 아니었다.
나의 권태를, 하필이면 저 여자에게 들켜버렸다.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다.
그날 밤,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 의미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새로 나온 밴드의 뮤직비디오, 유명 연주자의 드럼 솔로 영상, 평론가들의 리뷰. 그 어떤 것도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모든 것이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의 재탕, 혹은 기술만 번지르르한 빈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나의 병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세상이 지루하다.
쾌락주의자인 나에게, 이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젠장.”
나는 스마트폰을 침대 옆으로 던져버리고, 벌떡 일어섰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다. 나는 별생각 없이, 방구석에 처박아두었던 낡은 박스를 끌어냈다. 중학교 시절의 물건들이 담긴, 일종의 타임캡슐. 몇 년 만에 열어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상자 안에는 촌스러운 디자인의 잡지, 빛바랜 사진, 이제는 맞지 않는 밴드 티셔츠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 바닥에 던졌다. 모든 게 다 시시했다.
그때, 손끝에 딱딱한 플라스틱 케이스가 닿았다.
꺼내 보니, 투명한 CD-R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매직으로 쓰여 있었다.
‘Munenori Demo 01 最前線’
무네노리.
나와 칸나, 그리고 지금은 없는 세 사람. 우리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곡들이 담긴 데모 CD.
아아, 이런 것도 남아 있었나.
나는 케이스를 열어 CD를 꺼내 들었다. 빛에 비추자, 표면에 새겨진 무지갯빛이 먼지 쌓인 과거의 기억을 비웃는 것처럼 반짝였다.
이걸 들으면, 얼마나 웃길까. 어설프고, 촌스럽고, 기술적으로 엉망진창인 연주. 모든 것이 진짜라고 믿었던, 과거의 치기 어린 나 자신을 비웃어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그래, 이거라면 좀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먼지 쌓인 CD 플레이어를 향해 걸어갔다.
이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의 지루함이 조금은 가시기를 바라면서.
그것이, 또 다른 지옥의 문을 여는 버튼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오래된 CD 플레이어의 트레이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나는 조소 어린 미소를 지운 채,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에서 ‘지지직’ 하는 화이트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그래, 시작부터 이 모양이지.
곧이어, 녹음 상태가 최악인 사운드가 터져 나왔다. 어설프게 오버드라이브가 걸린 칸나의 기타, 피치가 미묘하게 불안정한 이오리의 목소리, 그리고... 젊은 날의 과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쓸데없이 현란하고 시끄럽기만 한 나의 드럼.
“...푸흡.”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예상대로였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이걸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과거의 우리들이 벌이는 유치한 학예회를 감상했다. 이 곡의 다음 전개는 이렇고, 저 부분에서는 칸나가 삑사리를 냈었지. 모든 게 기억나는군. 정말이지, 시시하기 짝이 없는...
...어라?
곡이 후렴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이상했다. 분명 기술적으로는 엉망인데, 소리에 이상할 정도의 에너지가 있었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무모하고, 겁 없고,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바보들의 열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잊고 있던 기억의 상자를 강제로 열어젖혔다.
‘야, 시마무라! 거, 쓸데없는 기교만 넣지마!!! 좀 더 심플하게 하라고!’
‘네 기타 솔로만큼은 아닐걸, 칸나? 듣는 사람이 멀미할 지경이야.'
'다... 다들 싸움은... 안하기로 어제 약속했잖아요오...'
'아하하... 다들 쿠온이 무서워하니까 너무 크게 소리지르지 말고.'
좁은 합주실 안, 연습이 끝난 뒤였다. 우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김이 빠진 콜라를 마시며, 언제나처럼 시시콜콜한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키보드를 맡은 엘레나는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쳐다보다가, “둘 다 시끄러워.” 한마디를 던지고는 묵묵히 건반을 닦았다. 쿠온은 그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웃고 있었다. 그 순간의 공기, 눅눅한 먼지 냄새, 서로의 비웃음 속에 섞여 있던 미묘한 동질감. 그 모든 것이, 지독할 정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두 번째 트랙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발라드곡.
칸나의 서툰 아르페지오 위로, 이오리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 가사, 좀 더 애절한 느낌이 살았으면 좋겠어.’
이오리가 연습실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연애도 못해본 이오리는 표현 못하겠지만!’
내가 놀리듯 말하자, 이오리가 발끈해서 나를 노려봤다. 그때, 구석에 있던 칸나가 툭, 하고 한마디를 던졌다.
‘...이 부분, 브릿지 뮤트로 연주하면 더 조용해지니까, 목소리가 더 잘 들릴 거야. 지금까지 감정표현엔 문제가 없으니까 그거면 되지않을까?’
그 한마디에, 이오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칸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 녀석의 귀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CD가 멈췄다. 마지막 트랙이 끝나고, 방 안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웃고 있지 않았다. 비웃기는커녕, 입꼬리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아팠다. 쿵, 하고 무거운 것이 내려앉은 듯한 불쾌한 감각.
나는 그 감정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애써 외면하고, 내 사전에선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던 단어.
후회.
나는 관객이었다. 관객은 이야기에 몰입하되, 상처받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신조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스크린 속으로 손을 뻗어, 만질 수도 없는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 하고 있었다.
이건 시스템 에러다. 명백한 오류였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플레이어의 전원을 꺼버렸다.
다음 날, StATION의 공기는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바 카운터의 유리잔을 닦으며, 어젯밤의 일을 잊으려 애썼다. 그냥, 잠깐의 변덕이었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을 찾지 못해, 과거라는 쓰레기통을 뒤적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칸나는 홀에서 묵묵히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최근 우리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그 정적이 오히려 편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잠시 손님이 모두 나간 틈을 타, 나는 무대 구석에 있는 하우스 드럼 킷으로 향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비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고다. 스틱을 잡고, 가볍게 스네어를 몇 번 두드렸다. 탐탐을 굴리고, 심벌즈를 울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어떤 리듬을 연주하고 있었다.
복잡한 하이햇 워크, 변칙적인 베이스 드럼 패턴. 무네노리 시절, 우리가 가장 공들여 만들었던 곡의 인트로 비트였다.
‘툭.’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칸나가, 손에 들고 있던 마른행주를 떨어뜨린 채,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야, 그 비트.”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아.”
나는 그제야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냥, 손풀기야.”
서투른 변명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칸나는 속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직하게 말했다.
“그거, 마지막 라이브 이후로 한 번도 안 쳤잖아, 너.”
정확했다.
나는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이 비트를 연주한 적이 없다. 잊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의식적으로,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나의 관객이라는 가면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렸다.
칸나의 눈동자 속에는, 나와 똑같은, 과거라는 이름의 망령이 비치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라이브 하우스의 공허한 공간 속에서, 봉인해두었던 과거의 노이즈가, 지독할 정도로 선명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칸나의 말은, 며칠 동안 저주처럼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비트, 마지막 라이브 이후로 한 번도 안 쳤잖아, 너.’
그 녀석은 언제나 그랬다. 무심한 척하면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유이와 만나게 된 이후로는 무언가 숨기는 것 조차 없어져 버려서 내가 애써 땅속 깊이 묻어버린 기억까지도 멋대로 끌어내저린다.
해산 이후, 나는 드럼 의자에 앉는 것이 고역이었다. 살아가기 위해서 세션을 서기는 했지만 스틱을 잡으면, 어김없이 무네노리 시절의 리듬이, 손끝의 감각이, 잊고 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 나를 비웃었다. 유이가 칸나를 꼬드기는 걸 도와달라고 했을때도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었는데.
관객은 이야기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철칙. 하지만 분명히 묻어두었을 과거는, 멋대로 무대 밖으로 뛰쳐나와 내 멱살을 잡고 있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관객석이, 실은 가장 위험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느껴지던 권태감은 더이상 형체를 유지하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는, 훨씬 더 질 나쁜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혼란. 그리고, 내가 가장 경멸하는 단어. 미련.
결국,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섰다. 정처 없이 전철을 타고, 몇 번을 갈아탔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나의 이야기가, 최악의 형태로 막을 내렸던 장소. 이제는 지도에서도 사라진, 작은 라이브 하우스가 있던 곳으로.
골목은 예상대로 스산했다. 불 꺼진 가게들 사이로,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입구의 셔터는 굳게 닫혀 있었고, 빛바랜 밴드 포스터들이 유령처럼 나붙어 있었다. 그중에는, 앳된 얼굴의 우리들이 웃고 있는 포스터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건물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녹슨 비상문은, 허술하게도 잠겨 있지 않았다.
끼익, 하고 불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에서는 곰팡이와 먼지가 뒤섞인, 시간을 잊은 냄새가 흘러나왔다. 나는 홀린 듯 안으로 들어섰다. 텅 빈 홀. 의자도, 테이블도 전부 치워져 휑했다. 나의 발소리가, 공간 전체에 유령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먼지 쌓인 바닥 위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이곳에서, 우리는 첫 라이브를 했다. 관객은 고작 스무 명 남짓. 하지만 그때는, 온 세상을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뜨거운 조명, 귀를 찢는 기타 소리, 내 심장 박동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던 베이스 드럼. 모든 것이 ‘진짜’였다.
그때였다.
무대 가장 안쪽,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누구야.”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어둠 속에서, 익숙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관객은 객석에 있어야지, 무대 위까지 올라오면 어떡해.”
그림자가, 무대 중앙의 희미한 비상등 불빛 아래로 걸어 나왔다.
소노미야 이오리.
그녀가 왜 여기에 있는지, 묻고 싶지 않았다. 이 상황 자체가, 질 나쁜 연극의 한 장면 같았다.
“추억 여행이라도 왔어? 성공한 아티스트이신 이오리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다니.”
나는 비꼬는 투로 말했다. 나의 유일한 방어 수단이었다.
“너야말로. 요즘 보고 있는 연극은 재미없나 보지? 직접 무대까지 행차하신 걸 보면.”
이오리는 똑같은 방식으로 받아쳤다. 저 녀석은 예전부터 그랬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제나 정확하게 꿰뚫어 봤다.
“너랑 할 말 없어.”
나는 돌아서려 했다. 이 이상 엮여봤자, 내 감정만 더러워질 뿐이다.
“왜? 재미없어? 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진짜’ 이야기잖아.”
“...닥쳐.”
“아니면, 무서워진 건가? 관객으로 있는 게, 얼마나 비겁한 도망인지 이제야 깨달아서?”
“너한테 그런 말 들을 이유 없어! 진짜 무대에서 도망친 건, 너잖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어둠 속에서, 이오리의 눈이 가늘어지는 것이 보였다.
“도망...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 편하겠지. 하지만 말이야, 미유. 너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모든 게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였다고?”
그 말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 신조가, 내 세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관객으로 남는 것이, 정말로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아니, 애초에.
“...어째서였어?”
나도 모르게, 가장 묻고 싶지 않았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전부 연극이었다고 말하려는 거라면 집어치워. 그건 진짜였어. 내가 유일하게 진짜라고 믿었던 무대였다고. 그런데 왜, 네가 전부 망쳐버린 거냐고!”
내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텅 빈 라이브 하우스를 울렸다.
이오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무대 끝에 걸터앉아, 먼지 쌓인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그녀가 피식, 하고 웃었다. 그 웃음에는 경멸과, 슬픔과, 알 수 없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웃기지 마. 시마무라 미유. 이런 망해버린 라이브 하우스에서 ‘진짜’를 외쳐봤자, 아무한테도 닿지 않아.”
이오리는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는,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워져 있었다.
“때로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무대에 서기 위해서,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할 때도 있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이오리는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내 무대로 돌아갈래. 너는, 네 관객석으로 돌아가든 마음대로 해.”
그녀는 나를 스쳐 지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참 동안, 먼지 쌓인 무대 위에 혼자 서 있었다.
이오리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할 때도 있어.’
그것은 변명처럼 들리면서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진실의 파편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이 연극의 가장 중요한 진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멋대로 결말을 내버린, 가장 어리석은 관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눈물이 흘렀다.
이오리는 메아리도 남기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참 동안, 먼지 쌓인 무대 위에 혼자 서 있었다. 발밑이 꺼지는 듯한 감각. 내가 서 있던 관객석이, 사실은 텅 빈 무대 위였다는 것을 깨달은 어릿광대의 심정. 이오리가 남기고 간 말들은 머릿속에서 멋대로 재생되며,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비웃고 있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무대에 서기 위해서,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할 때도 있어.’
그것이 변명인지, 혹은 내가 모르는 진실의 파편인지. 이제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이 이야기가 재미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듯 무대에서 내려와, 라이브 하우스의 출구로 향했다. 삐걱거리는 비상문을 밀고 밖으로 나서자, 차가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걸까. 가로등 불빛이 빗줄기 속에서 몽롱하게 번져, 도시 전체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쏟아지는 비를 피할 생각도 잊은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릿속을 식혀줄 시원한 소나기가 아니었다. 옷 속까지 스며드는, 끈질기고 서늘한 비였다.
그때, 시야 한구석에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골목의 낡은 자판기 불빛 아래, 검은 우산을 든 채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타는 듯한 오렌지색 머리카락.
“...칸나.”
나도 모르게 이름이 튀어나왔다.
칸나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StATION의 아르바이트 시간이 한참 지났을 텐데.
“너, 여긴 어쩐 일이야.”
나는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물었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StATION에 안 오길래.”
칸나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왠지, 여기 있을 것 같아서.”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이 녀석은 언제나 그랬다. 말수는 적어도, 언제나 모든 것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칸나는 내 쪽으로 다가와,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 안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우산 위로 투둑, 투둑, 하고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좁은 우산 아래, 우리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거.”
침묵을 깬 것은 칸나였다. 그녀는 교복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두 장의, 빳빳한 티켓이었다. 눈에 익은 로고가 박혀 있었다.
‘RomoS LIVE at BUDOKAN 最終戦'
“...뭐야, 이게.”
“소노미야가 주고 갔어. 얼마 전에 불러내더라. 너한테도 전해주라고.”
나는 티켓을 든 채, 멍하니 칸나를 쳐다보았다. 이오리가, 칸나에게. 언제? 어째서?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저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몰라.”
칸나의 대답은 짧았다. 하지만 그 표정은, 나만큼이나 복잡해 보였다.
“그저, 그게 무엇이 되든 무대 위에서 전부 보여주겠다는 것처럼 들렸어.”
무대 위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무대. 이오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다시 울렸다.
나는 손에 든 티켓을 내려다보았다. 일본의 모든 밴드가 꿈꾸는 무도관. 이오리는 거짓말쟁이가 되어서라도, 저 무대에 서고 싶었던 걸까. 그곳에, 내가 모르는 진실이 정말로 있는 걸까.
나의 관객석은, 이미 무너져 내렸다.
이오리는 나를 다시 무대 위로, 그것도 자신이 서 있는 가장 화려한 무대로 초대하고 있었다.
이것은 초대인가, 아니면 기만인가.
“...나는 갈거야. 그 녀석이 그렇게까지 말했어. 내 마음을 돌려놓을 수단이라도 준비했을거야."
칸나가 나를 보며 물었다. 빗소리에 섞인, 조용한 목소리.
“어떡할래?"
"갈 거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도시의 불빛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손에 든 티켓의 모서리가, 차가운 빗물에 젖어 축축해졌다.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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