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5 [채팅]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잡담방 -317- (1001)
종료
작성자:에주
작성일:2025-09-21 (일) 16:34:36
갱신일:2025-10-02 (목) 13:19:00
#0에주(PjTqAkuEBW)2025-09-21 (일) 16:34:36
위키: https://opentalkwiki.mycafe24.com/wiki.php/%EB%8C%80%EB%AC%B8
1:1 카톡방: >4911>
번개모임방: >5108>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á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1:1 카톡방: >4911>
번개모임방: >5108>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á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684무도관(jo0JtZRXAq)2025-09-29 (월) 10:03:36
일본 무도관의 공기는, 내가 아는 그 어떤 라이브 하우스의 공기와도 달랐다.
땀과 먼지, 눅눅한 지하실 냄새 대신, 정교하게 계산된 드라이아이스와 값비싼 향수, 그리고 만 명의 열기가 뒤섞인 압도적인 공기. 나는 지정된 좌석에 앉아, 거대한 팔각형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이, 소노미야 이오리가 말했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무대’인가.
칸나는 내 옆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무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녀석은 오늘, 자신의 복수가 과연 정당했는지, 아니면 그저 어리석은 오해였는지 판결을 받으러 온 죄인 같았다. 나는? 나는 판결을 내리러 온 심판관일까. 아니, 그저 이 거대한 연극의 결말을 확인하러 온, 수많은 관객 중 한 명일 뿐이다. 가장 좋은 자리도 아닌, 2층 구석의 가장 먼 관객석에서.
객석의 조명이 일제히 꺼지고, 지축을 울리는 함성과 함께 무대 위로 다섯 개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RomoS. 내가 아는 것은 이오리와 쿠온, 단둘뿐.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우리가 아는 ‘밴드’와는 다른 종류의 생물이다. 완벽하게 훈련되고, 정교하게 조율된,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군대.
강렬한 조명이 무대를 비추자, 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너진 낙원의 생존자’였던가? 이베무지카의 피쿠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보니 컨셉 한번 잘 잡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찢어지고 해진 디테일이 들어간 제복풍의 의상은, 비극적이면서도 고고했다. 그 중심에 선 이오리는, 내가 알던 중학생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만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이 거대한 왕국의 여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첫 곡이 시작되었다.
사운드의 압력이, 공기를 통해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완벽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연주. 특히, 흑발의 기타리스트가 뿜어내는 소리는 그야말로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했다. 저 녀석이 히이라기 린카인가. 칸나가 중학교 시절 유일하게 패배감을 느꼈다던. 과연, 인정할 수밖에 없군. 저건 연주라기보다는 재현의 영역이다. 다만 그녀가 재현한 것이 누구의 기타인지는 너무나 알기 쉬웠기에. 칸나의 얼굴이 점점 썩어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무대 위를 냉정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서정적인 벌스에서 폭발적인 후렴으로 넘어가는 극적인 구성, 계산된 조명과 퍼포먼스. 관객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연극에, 완전히 몰입해서.
하지만 나는 볼 수 있었다. 그 완벽함 속에 숨겨진, 미세한 균열을.
이오리의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 완벽했다. 압도적인 성량, 정확한 음정. 하지만 그 소리에는, 무네노리 시절에 있었던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위태롭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던, 날것 그대로의 감정. 지금 그녀의 목소리는, 잘 벼려진 칼날처럼 아름다웠지만,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무기질의 칼이었다.
‘결국, 이것도 연기잖아.’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지하 라이브 하우스에서 ‘진짜’를 외쳐봤자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더니. 그래서 네가 선택한 게, 이 거대한 무대 위에서 펼치는 더 정교한 거짓말이었나. 시시하긴.
라이브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멘트 하나 없이, 오직 음악만으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그리고 마지막 곡을 앞두고, 이오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아주 오래된 노래를 하나 부를게.”
나직한 목소리가, 무도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무대에서 태어나,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던, 어리석고... 서툴렀던 노래야.”
순간,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전주가 흘러나왔다. 들어본 적 없는 멜로디. 하지만, 나는 그 코드를 알고 있었다.
무네노리 시절,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만들었던 미완성곡. 우리가 그 라이브에서 선보이려 했던, 바로 그 노래.
칸나가 옆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오리는 눈을 감고, 노래를 시작했다. RomoS의 완벽한 연주 위에, 그녀의 목소리가 얹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음정은 미세하게 어긋났으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것은 ‘RomoS의 이오리’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그저 ‘소노미야 이오리’라는 한 명의 인간이 과거의 망령을 향해 절규하고 있었다.
노래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이오리는 눈을 떴다. 그녀의 시선은, 이 넓은 무도관의 그 어느 곳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마치, 이 자리에 없는 단 두 사람을 찾고 있는 것처럼. 2층 구석, 가장 먼 관객석에 앉아있는 우리를.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조명이 그 눈물을 비추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거대한 무대도, 만 명의 관객도, 완벽한 연주도, 전부 다 배경에 불과했다.
이것은, 소노미야 이오리가 오직 두 사람을 위해 준비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비효율적이며, 가장 처절한 독백 무대였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무대에 서기 위해서,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할 때도 있어.’
이오리가 폐쇄된 라이브 하우스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
그녀는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이 독백을 하기 위해, 이 말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어 이 무대까지 올라온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관객일 수가 없었다.
이 연극은, 처음부터 나 역시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관객석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노래가 끝나고,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무대 위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오리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정말이지, 최악의 여자다.
무대 뒤편의 어둠은, 언제나 공연 직전이 가장 깊고 차가웠다.
커튼 너머에서, 만 명의 기대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내 온몸을 핥았다. 그 소리는 환호가 아니라, 나를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 이오리... 괜찮아요...?”
쿠온이 내 손을 붙잡아왔다. 언제나처럼, 떨리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 아이의 손이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말해야만 했다.
“...문제없어.”
나는 쿠온의 손을 뿌리치고, 다른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기타리스트인 린카는,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없이 자신의 기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세계에는 오직 완벽한 연주만이 존재할 뿐. 아즈사는 거울을 보며 웃는 표정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 무대는 최고의 자신을 선보일 쇼케이스다. 드러머인 레오는, 빨리 뛰쳐나가고 싶다는 듯 야수처럼 몸을 풀고 있었다.
누구도, 나의 진짜 속을 모른다.
이 무대가, 이 완벽한 밴드 RomoS가, 사실은 나의 겁 많고 비참한 과거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성이라는 것을. 오늘 이 무대가, 나의 복수이자 속죄이며, 동시에 단 두 사람을 향한 처절한 독백이라는 것을.
스태프의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나는 가면을 썼다. RomoS의 리더, 소노미야 이오리라는 이름의, 흔들림 없는 여왕의 가면.
“가자.”
한 걸음. 무대 위로 발을 내딛는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내게로 쏟아졌다. 만 명의 함성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나는 이 왕국의 주인이자, 동시에 가장 비참한 죄수였다.
첫 곡이 시작되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계산된 동선, 연습한 그대로의 퍼포먼스. 목소리는 훈련된 대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뿜어냈다. RomoS의 노래는 완벽했다. 우리는 ‘생존자’라는 역할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연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영혼은, 무대 위에 없었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나의 시선은 저 멀리, 어둡고 광대한 2층 객석을 헤매고 있었다.
찾고 있었다. 타는 듯한 오렌지색 머리카락. 시니컬한 미소를 짓고 있을, 익숙한 실루엣. 그 녀석들이, 와 있을까. 내가 보낸 티켓을 들고, 지금 이 무대를 보고 있을까.
나의 이 거대한 거짓말을, 비웃고 있을까.
몇 곡이 지나고, 몇 번의 계절이 흐른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라이브는 순조롭게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관객들은 우리의 완벽한 연기에 열광했다. 하지만 그 열광이 커질수록, 나의 내면은 더욱 공허해졌다. 이 소리는, 그 녀석들에게 닿고 있는 걸까.
마침내, 정해진 마지막 곡이 끝났다. 앵콜을 외치는 함성이 무도관을 가득 메웠다.
나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가,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다른 멤버들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것은, 우리의 각본에 없는 단 한 번의 애드리브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케부쿠로의 낡은 카페, 칸나의 경멸에 찬 눈빛. 폐쇄된 라이브 하우스, 미유의 원망이 담긴 절규.
그리고, 비에 젖었던 그날의 밤.
“...마지막으로, 아주 오래된 노래를 하나 부를게.”
나직한 목소리가, 무도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술렁이는 공기가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무대에서 태어나,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던, 어리석고... 서툴렀던 노래야.”
나는 쿠온에게 눈짓했다. 쿠온은 덜덜 떨면서도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떨리는 손으로 베이스의 첫 음을 짚었다.
전주가 흘러나왔다. 무네노리의 미완성곡.
RomoS의 완벽한 연주 위로, 나는 노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음정은 미세하게 어긋났으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가면이 부서지고 있었다.
노래가 아닌 절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비겁한 변명. 미안하다는, 끝내 전하지 못했던 한마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와 함께했던 시간만이 나의 유일한 ‘진짜’였다는 고백.
이 마음은, 분명히 닿을리 없다. 비겁한 도망자가 뱉는 말에 진정성이 느껴질리가 없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모든 진심을, 엉망진창인 멜로디에 담아 쏟아냈다.
노래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나는 눈을 떴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2층의 가장 먼 관객석으로 향했다.
보일 리가 없다. 너무 멀어서, 너무 어두워서.
하지만, 보이는 것 같았다. 그곳에 앉아, 이 무대를 보고 있을 너희들의 모습이.
내 뺨 위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조명이 그 눈물을 비추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아, 나는. 나는 그저, 다시 한번 너희와 함께 노래하고 싶었던 것뿐이었구나.
노래가 끝나고, 객석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나의 눈물을 ‘혼신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하며 열광했다. 나의 유일한 진실마저, 가장 완벽한 연기로 포장되어 팔려나가고 있었다.
무대 뒤로 돌아오자, 멤버들이 흥분한 얼굴로 나를 에워쌌다.
“이오리! 마지막 곡, 대체 뭐야! 완전 최고였어!”
아즈사의 칭찬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나의 변명은 끝났다.
과연 나의 진심은, 그 녀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아니면, 이것 역시 그저 시시한 연극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뿐일까.
나는 드넓은 무도관의 한구석, 불 꺼진 대기실에 혼자 앉아, 그 대답 없는 질문에 잠겨들고 있었다.
무대 뒤편의 어둠 속에서, 저는 언제나 이오리의 등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커튼 너머에서, 만 명의 기대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제 발밑을 적시는 것 같았습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날뛰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언제나처럼, 저는 무서웠습니다.
“...이, 이오리... 괜찮아요...?”
제 목소리는 양처럼 떨리고 있었습니다. 제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오리는 괜찮아야만 하니까요. 그녀가 흔들리면, 저 역시...
“...문제없어.”
이오리의 목소리는 얼음 같았습니다. 그녀는 제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다른 멤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완벽한 리더. 완벽한 여왕. 저는 그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작은 불안을 느꼈습니다.
스태프의 출발 신호가 떨어졌습니다.
“가자.”
이오리의 한마디에, 우리는 무대 위로 걸어 나갔습니다.
빛. 소리. 열기.
세상의 모든 것이 제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제 베이스 기타의 넥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소노기 쿠온. 너는 그저, 이오리가 정해준 대로 연주하면 돼. 언제나처럼, 그녀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연주가 시작되고, 저는 점차 안정감을 찾아갔습니다. 이오리의 목소리, 린카 씨의 기타, 아즈사 씨와 레오의 리듬. 이 완벽한 소리의 성벽 안에 있으면, 저는 안전했습니다.
라이브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마지막 곡을 앞두고, 이오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주 오래된 노래를 하나 부를게요.”
순간, 제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이오리가 주는 신호는, RomoS가 아닌 무네노리에서 모두와 함께 맞추었던 그 때의 것이라.
말을 하지 않더라도 무엇을 원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무대에서 태어나,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던, 어리석고... 서툴렀던 노래예요.”
이오리가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눈동자는, ‘괜찮아, 쿠온. 나를 믿어.’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떨리는 손으로, 베이스의 첫 음을 짚었습니다. 그 멜로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우리의 미완성곡.
그 순간, 제 눈앞에 그날의 풍경이 섬광처럼 되살아났습니다.
비에 젖은 채, 이오리의 집 현관문을 두드리던 제 손.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풍겨오던 비릿한 피 냄새. 저를 막아서던 이오리 오빠의 절박한 얼굴. 거실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 그리고... 부서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오리의 모습. 그 옆에서, 망가진 소리로 흐느끼던 그녀의 어머니.
“흡...”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습니다.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제가 잊고 싶어 몸부림쳤던, 그 지옥의 풍경. 이오리는 지금, 혼자만의 힘으로 그 지옥의 문을 다시 열어젖히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오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그것은 RomoS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음정은 미세하게 어긋났으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위태로운, 소노미야 이오리라는 한 소녀의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리고 연주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이오리의 흔들리는 목소리를, 제 베이스라인으로 어떻게든 받쳐주고 싶었습니다. 제발, 무너지지 말아요, 이오리. 당신이 무너지면, 나도...
노래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저는 무심코 이오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오리, 저는 이렇게 열심히 했어요. 정말로 무서웠는데. 잊고싶었는데도.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저를 향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저 멀리, 어둡고 광대한 2층 객석의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타오르는 석양과 같은 오렌지색, 그리고 흩날리는 벚꽃같은 분홍색.
아아.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 거대한 무대도, 이 처절한 고백도, 우리가 함께 겪었던 그 지옥의 재현마저도.
결국, 저를 위한 것이 아니었군요.
그 지옥을 함께 목격한 것은 저인데.
당신이 도망칠 때, 그 손을 잡고 함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도 저인데.
그런데 어째서 당신의 눈은, 가장 먼 곳에 있는 그 사람들을 향하고 있는 건가요.
심장이, 차갑게 식어 내리는 기분.
저는 공범자였습니다. 그녀의 아픔을 지켜주고, 그녀의 비밀을 함께 짊어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는 그저 그녀의 독백을 위한 반주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객석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그 함성 속에서, 텅 빈 눈으로 이오리의 등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무대 뒤로 돌아오자, 멤버들이 흥분한 얼굴로 이오리를 에워쌌습니다.
“이오리! 마지막 곡, 대체 뭐야! 완전 최고였어!”
아즈사 씨의 칭찬에, 이오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런 이오리에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의 지친 옆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괜찮아요, 이오리. 그렇게 말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흘린 눈물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아팠습니다.
결국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였습니다.
무도관을 빠져나오자, 도쿄의 밤공기가 폐부로 밀려들었다. 안에서 터져 나오던 만 명의 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귀에는 오직 자동차 소음과 인파의 웅성거림만이 남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쿠단시타역으로 향하는 인파에 휩쓸려 걸었다.
사람들은 모두 흥분한 얼굴로 방금 끝난 라이브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마지막 곡, 완전 미쳤지 않았어? 이오리, 우는 거 봤어?”
“진짜 혼신의 퍼포먼스였어. 역시 RomoS는 다르다니까.”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그 모든 목소리들을 외면했다.
혼신의 퍼포먼스? 웃기지도 않았다. 저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방금 전 무대 위에서 벌어진 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변명이었는지.
한참을 말없이 걷던 우리 둘은, 역으로 향하는 큰길을 벗어나 근처 공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미유였다.
“...대단하네, 저 녀석.”
그 한마디에, 내내 억눌러왔던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뭐가. 뭐가 대단하다는 거야.”
나는 신경질적으로 미유를 쏘아붙였다.
“동정이라도 하는 거야? 이제 와서, 너도 저런 식으로 울고불고 노래 한 곡 부르면, 그래 그랬구나 하면서 그때로 돌아갈 수있을거라고 믿어? 과거에 했던 짓이 전부 용서받기라도 할 것같고?”
내 목소리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날카로웠다.
“밴드를 버리고 도망친 건 사실이잖아. 우리를 지옥에 내버려 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이제 와서, 저렇게 수만 명 앞에서 불쌍한 척 연기하는 건, 그냥 자기 혼자 편해지려는 최악의 자기만족일 뿐이야!”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머릿속이 뜨거웠다. 이오리의 눈물, 그녀의 위태롭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의 복수는, 정당하고 명확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자꾸만 이 이야기에 불필요한 각주를 달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말이 없는 미유를 노려보았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이제 와서, 저 녀석한테 미련이라도 남은 거야?”
내 비난 섞인 질문에, 미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나처럼 화를 내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미련? 아니.”
미유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냥... 좀 재미있어졌을 뿐이야.”
“...뭐?”
“나는 여태까지, 우리 이야기가 최악의 각본으로 끝난 삼류 드라마라고 생각했어. 주인공 중 하나가 멋대로 도망쳐서, 어이없이 막을 내린. 그래서 나는 관객이 되기로 했지.”
미유는 벤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아니었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방금 그 무대는, 엔딩이 아니었어. 2막의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예고편이었지."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야말로 어쩔 건데, 칸나.”
미유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 눈은, 내가 알던 냉소적이고 지루해하던 관객의 눈이 아니었다.
“네가 주인공으로 삼았던 그 ‘복수극', 이제 어떡할 거야? 이오리라는 다른 주인공이, 저렇게 멋대로 다른 시나리오를 써버렸는데. 계속 혼자서, 1막의 마지막 대사만 되풀이하고 있을 거야?”
“......”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미유의 말이, 정확하게 내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장렬했던 사죄극. 하물며 무도관 라이브라는 업적마저 자신의 팽동에 대한 후회와 한탄으로 가득채워 흘려보냈다. 비겁하게도 복수하려는 사람을 앞에 둔채로.
‘진실을 들을 자격이 있다면, 무도관까지 올라와.’
나는 이를 악물었다. 짜증이 났다. 멋대로 내 세계를 무너뜨리고 떠났던 주제에, 이제 와서 다시 내 세계를 뒤흔드는 소노미야 이오리가.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심지어 ‘재미있어졌다’고 말하는 시마무라 미유가.
모든 것이, 내 통제 밖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갈래.”
“...그래.”
우리는 다시, 아무 말 없이 역을 향해 걸었다.
가슴 속에서는 여전히 분노가 들끓고 있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명확한 방향을 가진 불꽃이 아니었다. 갈 곳을 잃고, 그저 나의 내면만을 태우는, 혼란스러운 열기만이 가슴을 태웠다.
무도관 라이브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세상은 RomoS의 성공적인 공연에 대해 떠들어댔지만, 우리들의 시간은 그날 밤, 쿠단시타의 공원에 멈춰 있었다. 칸나는 그날 이후, 말이 거의 없어졌다. 연습 중에도, 아르바이트 중에도, 그녀는 오직 기타만을 쳐다보았다. 그 소리는 이전보다 더욱 날카로워졌지만, 동시에 길을 잃은 아이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복수라는 명확했던 목적지가, 이오리가 던진 진심이라는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날도, 나와 칸나는 StATION에서 손님 없는 플로어를 묵묵히 닦고 있었다. 유이는 학교에 무슨 일이 있다며 오늘은 오지 않았다. 우리 둘 사이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때, 라이브 하우스의 육중한 철문이, 망설이는 듯 아주 조금 열렸다.
문틈으로, 겁먹은 작은 동물의 눈 같은 것이 우리를 살폈다. 이내, 문이 완전히 열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노기 쿠온.
그녀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움찔하며 어깨를 떨었다. 당장이라도 도망칠 것 같은 얼굴. 그런 그녀가, 어째서 여기에.
먼저 반응한 것은 칸나였다. 그녀는 들고 있던 행주를 바닥에 내던지듯 내려놓고, 쿠온을 향해 걸어갔다. 그 걸음에는, 명백한 적의가 담겨 있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칸나의 차가운 목소리에, 쿠온의 몸이 굳어졌다.
“저, 저는... 그, 그게...”
쿠온은 떨리는 손으로 가방끈을 꽉 쥔 채,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무도관에서의... 마지막 곡... 들으셨죠...? 그건, 이오리의... 진심이에요. 다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하!"
칸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쿠온을 비웃었다.
“이제 와서?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다시 시작? 멋대로 떠났다가, 멋대로 돌아오고. 모든 게 너희들 마음대로잖아! 우리는, 우리는 그때 얼마나...”
칸나의 목소리가, 끝내 흔들리고 있었다.
쿠온은 그 분노를 온몸으로 받으며,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오리는...”
그때, 지금까지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과연.”
내 나직한 한마디에, 칸나와 쿠온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로 향했다. 나는 바 의자에 기댄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극적인 과거를 클라이맥스에 터뜨려서, 관객의 동정심을 유발한다... 꽤 잘 만든 드라마네. 소노미야 이오리, 연출에도 재능이 있었나 봐?”
그 순간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쿠온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는 더 이상 공포나 미안함이 없었다. 오직,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듯한, 시뻘건 분노만이 담겨 있었다.
“...드라마?”
그것은 내가 알던 소노기 쿠온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
“당신들이... 당신들이 이오리의 뭘 알아요!”
쿠온은 우리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겁먹은 작은 동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날, 우리가 마지막 라이브를 하기로 했던 그날! 이오리가 왜 무대에 나오지 못했는지, 당신들은 상상이나 해봤어요?”
그녀의 절규가, 텅 빈 라이브 하우스를 울렸다.
“그 애는... 무대에 서고 싶어 했어요! 부러진 팔을 끌고서라도, 기어서라도 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하지만 갈 수 없었다고요!”
“...무슨 소리야.”
칸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당신들은 이오리의 완벽한 모습밖에 모르겠죠! 하지만 그 애가, 그 가면 뒤에서 어떤 지옥을 견뎌왔는지, 당신들은 몰라! 알려고 하지도 않았잖아!”
쿠온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었다.
“이오리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날, 아버님이 안 계셨던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라이브에 가려는 이오리를, 그 사람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피범벅이 된 오빠를, 바닥에 쓰러져서도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려던 그 애의 모습을, 당신들이 봤냐고요!”
“......”
“그 애는... 당신들을 지키려고 한 거예요! 자신의 그 지옥 같은 집안 사정에, 소중한 밴드 멤버인 당신들이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혼자서 전부 짊어지고, 가장 나쁜 사람이 되는 길을 택한 거라고요!”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칸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쿠온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분노는 간 곳 없고, 오직 순수한 충격과 혼란만이 남아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토록 ‘재미있는 연극’이라고 비웃었던 이야기의 진실이, 이렇게나 끔찍하고 무거운 것이었다니.
쿠온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쏟아낸 뒤, 탈진한 사람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눈에서, 다시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이오리 몰래,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는 후회.
“...죄, 죄송합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우리에게서 도망치듯 라이브 하우스를 뛰쳐나갔다.
정적이 흘렀다.
나와 칸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칸나의 복수는, 이제 완전히 길을 잃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아있는 것은, 너무나도 서툴고, 어리석고, 뒤늦게 전해진 진실의 무게뿐이었다.
쿠온이 도망치듯 뛰쳐나가고, 육중한 철문이 ‘쿵’ 하고 닫히는 소리가 텅 빈 라이브 하우스를 울렸다.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어버린 것 같았다.
나와 칸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조금 전까지 내가 앉아 있던 바 의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잘 만든 드라마’라니. 내가 뱉었던 그 경솔하고 잔인한 단어가, 부메랑이 되어 날아와 내 뒤통수를 후려친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저 이야기가, 과연 전부 진실일까.
“...웃기지 마.”
옆에서, 칸나가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쿠온이 서 있던 자리를,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누가 믿는다고.”
“......”
“그래서? 가정사가 불행해서, 아파서, 그래서 1년 넘게 우리 연락을 전부 무시했다고?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 남길 힘도 없었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칸나는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오렌지색 눈동자는, 슬픔이나 충격이 아닌, 시뻘건 불신과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너도 들었잖아! 저 녀석들, 무도관 이전에도 우리 노래를 연주하고 다녔어! 내가 직접 봤다고! 그때 내가 멱살을 잡고 물었을 때, 그 녀석은 뭐라고 했지?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벌레 보는 눈으로 날 쳐다보기만 했다고!”
칸나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녀는 억눌러왔던 모든 것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이제 와서 불쌍한 척 과거 팔이를 하면! 우리가 ‘아,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하면서 눈물이라도 흘려줄 줄 알았나!”
그녀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근처의 드럼 심벌즈를 손으로 내리쳤다. ‘챙-!’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그녀의 절규처럼 울려 퍼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오리가 불쌍한가? 그래, 쿠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가 느꼈던 감정이 거짓이 되는 건가?
“...타이밍이 너무 좋잖아.”
내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칸나가 나를 돌아보았다.
“서킷 페스에서 우리한테 지고, 무도관에서 쇼를 벌인 다음, 마지막엔 저 소심한 쿠온을 보내서 동정심을 유발한다... 만약 이게 전부 계산된 거라면, 소노미야 이오리는 진짜 무서운 녀석인데.”
“계산이고 뭐고!”
칸나가 소리쳤다.
“나는 더 이상 저 녀석들 이야기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 진실? 그딴 게 뭔데! 우리 눈앞에 있던 사실은, 그 녀석들이 우리를 버렸고, 우리의 음악을 훔쳤고, 우리를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거야! 그거면 충분하잖아!”
칸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의 떨림인 동시에, 어쩌면 쿠온의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의 떨림이었다. 만약 저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자신의 복수는 갈 곳을 잃고, 자신은 상처 입은 친구를 비난한 최악의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녀는 더 필사적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연극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지독했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결말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칸나는 기타 케이스를 거칠게 둘러메었다.
“...미안. 먼저갈게. 오너한테는 좀 부탁할게. 더 있다간 미쳐버릴 것 같아.”
“...그래.”
우리는 다시,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섰다. 라이브 하우스의 문을 닫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텅 빈 무대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인공도, 악역도.
그저, 각자의 지옥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오해하고, 그럼에도 서로를 갈망하는 어리석은 인간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았다.
관객으로 남기에는, 모든것들이 그저 아팠다.
StATION의 육중한 철문을 등 뒤로 닫는 순간, 비로소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나는 도망쳤다. 무작정. 차가운 밤공기가 폐를 에는 것 같았다. 히가시 이케부쿠로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젖은 시야 속에서 마구 뒤섞여 번졌다.
어, 어떡하지. 말해버렸어. 전부.
이오리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자신의 가장 깊고 어두운 상처를. 내가, 전부.
다리가 멋대로 움직여, 나를 역으로 이끌었다. 전철에 올라탄 뒤에도, 심장은 진정되지 않았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드라마?’
미유 씨의 그 한마디가, 내 머릿속의 무언가를 끊어버렸다.
그것은 드라마가 아니다. 희극도, 비극도 아닌, 그냥 지옥이었다. 피와, 눈물과, 비명으로 얼룩진 현실. 그 현실을 ‘재미있다’는 듯한 눈으로 관망하는 것을,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이오리의 아픔이, 그녀의 진심이, 그렇게 값싼 이야기로 소비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해버렸다.
이오리를 위해서.
...아니, 정말로 그랬을까?
어쩌면 나는, 그저 나 자신이 더는 견딜 수 없어서. 그 끔찍한 비밀의 무게를, 나 혼자 짊어지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칸나 씨와 미유 씨에게 그 무게를 떠넘겨 버린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이제 와서는, 아무것도.
익숙한 역에 내려, 이오리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이오리는 분명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함께 저녁을 먹고, 내일 있을 RomoS의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으니까. 나는 무슨 얼굴로, 이제 와서 그녀를 봐야 하는 걸까.
아파트의 자동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한심했다. 눈가는 붉어져 있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이대로 이오리를 만나면, 분명 무언가 눈치챌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딩동-’
현관문 앞에 서서, 나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어, 소노기 쿠온. 너는 그저, 평소처럼 칸나 씨의 아르바이트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조금 늦게 돌아온 것뿐이야.
“...누구세요.”
인터폰 너머로, 조금 지친 듯한 이오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예요, 이오리. 쿠온...”
“아, 쿠온이구나. 문 열려있어. 들어와.”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오리는 거실 소파에 앉아, 태블릿으로 악보를 보고 있었다.
“...느, 늦어서 죄송해요. 서, 서점에 잠시 들를 데가 있어서...”
“그래.”
이오리는 악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저녁은...”
“아직. 너 기다렸어. 배달 시킬건데 먹고싶은거 있어?”
“아, 아뇨...”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았다.
너무나도 평온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걸까.
나는 이오리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무도관 라이브 이후, 그녀는 어딘가 더 위태로워 보였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에는, 언제나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아직 모른다.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비밀의 벽을,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내가, 내 손으로 무너뜨려 버렸다는 사실을.
칸나 씨와 미유 씨가, 이제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나는 새로운 비밀을 갖게 되었다.
이전의 비밀이 이오리와 ‘함께’ 짊어진 것이었다면, 이 새로운 비밀은 오직 나 혼자만이 알고 있는, 이오리를 향한 배신이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이오리가, 여전히 악보를 본 채로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심장이, 다시 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공범자인 동시에, 그녀를 속이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이것이 과연, 이오리를 위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는 파멸로 이끄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었을까.
나는 대답 없는 질문을 가슴에 품은 채, 그저 떨리는 손을 무릎 위에서 꽉 쥘 뿐이었다.
이오리, 미안해요.
하지만 저는, 당신이 더 이상 혼자서 울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요.
땀과 먼지, 눅눅한 지하실 냄새 대신, 정교하게 계산된 드라이아이스와 값비싼 향수, 그리고 만 명의 열기가 뒤섞인 압도적인 공기. 나는 지정된 좌석에 앉아, 거대한 팔각형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이, 소노미야 이오리가 말했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무대’인가.
칸나는 내 옆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무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녀석은 오늘, 자신의 복수가 과연 정당했는지, 아니면 그저 어리석은 오해였는지 판결을 받으러 온 죄인 같았다. 나는? 나는 판결을 내리러 온 심판관일까. 아니, 그저 이 거대한 연극의 결말을 확인하러 온, 수많은 관객 중 한 명일 뿐이다. 가장 좋은 자리도 아닌, 2층 구석의 가장 먼 관객석에서.
객석의 조명이 일제히 꺼지고, 지축을 울리는 함성과 함께 무대 위로 다섯 개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RomoS. 내가 아는 것은 이오리와 쿠온, 단둘뿐.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우리가 아는 ‘밴드’와는 다른 종류의 생물이다. 완벽하게 훈련되고, 정교하게 조율된,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군대.
강렬한 조명이 무대를 비추자, 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너진 낙원의 생존자’였던가? 이베무지카의 피쿠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보니 컨셉 한번 잘 잡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찢어지고 해진 디테일이 들어간 제복풍의 의상은, 비극적이면서도 고고했다. 그 중심에 선 이오리는, 내가 알던 중학생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만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이 거대한 왕국의 여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첫 곡이 시작되었다.
사운드의 압력이, 공기를 통해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완벽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연주. 특히, 흑발의 기타리스트가 뿜어내는 소리는 그야말로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했다. 저 녀석이 히이라기 린카인가. 칸나가 중학교 시절 유일하게 패배감을 느꼈다던. 과연, 인정할 수밖에 없군. 저건 연주라기보다는 재현의 영역이다. 다만 그녀가 재현한 것이 누구의 기타인지는 너무나 알기 쉬웠기에. 칸나의 얼굴이 점점 썩어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무대 위를 냉정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서정적인 벌스에서 폭발적인 후렴으로 넘어가는 극적인 구성, 계산된 조명과 퍼포먼스. 관객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연극에, 완전히 몰입해서.
하지만 나는 볼 수 있었다. 그 완벽함 속에 숨겨진, 미세한 균열을.
이오리의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 완벽했다. 압도적인 성량, 정확한 음정. 하지만 그 소리에는, 무네노리 시절에 있었던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위태롭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던, 날것 그대로의 감정. 지금 그녀의 목소리는, 잘 벼려진 칼날처럼 아름다웠지만,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무기질의 칼이었다.
‘결국, 이것도 연기잖아.’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지하 라이브 하우스에서 ‘진짜’를 외쳐봤자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더니. 그래서 네가 선택한 게, 이 거대한 무대 위에서 펼치는 더 정교한 거짓말이었나. 시시하긴.
라이브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멘트 하나 없이, 오직 음악만으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그리고 마지막 곡을 앞두고, 이오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아주 오래된 노래를 하나 부를게.”
나직한 목소리가, 무도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무대에서 태어나,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던, 어리석고... 서툴렀던 노래야.”
순간,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전주가 흘러나왔다. 들어본 적 없는 멜로디. 하지만, 나는 그 코드를 알고 있었다.
무네노리 시절,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만들었던 미완성곡. 우리가 그 라이브에서 선보이려 했던, 바로 그 노래.
칸나가 옆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오리는 눈을 감고, 노래를 시작했다. RomoS의 완벽한 연주 위에, 그녀의 목소리가 얹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음정은 미세하게 어긋났으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것은 ‘RomoS의 이오리’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그저 ‘소노미야 이오리’라는 한 명의 인간이 과거의 망령을 향해 절규하고 있었다.
노래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이오리는 눈을 떴다. 그녀의 시선은, 이 넓은 무도관의 그 어느 곳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마치, 이 자리에 없는 단 두 사람을 찾고 있는 것처럼. 2층 구석, 가장 먼 관객석에 앉아있는 우리를.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조명이 그 눈물을 비추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거대한 무대도, 만 명의 관객도, 완벽한 연주도, 전부 다 배경에 불과했다.
이것은, 소노미야 이오리가 오직 두 사람을 위해 준비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비효율적이며, 가장 처절한 독백 무대였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무대에 서기 위해서,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할 때도 있어.’
이오리가 폐쇄된 라이브 하우스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
그녀는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이 독백을 하기 위해, 이 말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어 이 무대까지 올라온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관객일 수가 없었다.
이 연극은, 처음부터 나 역시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관객석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노래가 끝나고,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무대 위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오리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정말이지, 최악의 여자다.
무대 뒤편의 어둠은, 언제나 공연 직전이 가장 깊고 차가웠다.
커튼 너머에서, 만 명의 기대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내 온몸을 핥았다. 그 소리는 환호가 아니라, 나를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 이오리... 괜찮아요...?”
쿠온이 내 손을 붙잡아왔다. 언제나처럼, 떨리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 아이의 손이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말해야만 했다.
“...문제없어.”
나는 쿠온의 손을 뿌리치고, 다른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기타리스트인 린카는,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없이 자신의 기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세계에는 오직 완벽한 연주만이 존재할 뿐. 아즈사는 거울을 보며 웃는 표정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 무대는 최고의 자신을 선보일 쇼케이스다. 드러머인 레오는, 빨리 뛰쳐나가고 싶다는 듯 야수처럼 몸을 풀고 있었다.
누구도, 나의 진짜 속을 모른다.
이 무대가, 이 완벽한 밴드 RomoS가, 사실은 나의 겁 많고 비참한 과거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성이라는 것을. 오늘 이 무대가, 나의 복수이자 속죄이며, 동시에 단 두 사람을 향한 처절한 독백이라는 것을.
스태프의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나는 가면을 썼다. RomoS의 리더, 소노미야 이오리라는 이름의, 흔들림 없는 여왕의 가면.
“가자.”
한 걸음. 무대 위로 발을 내딛는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내게로 쏟아졌다. 만 명의 함성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나는 이 왕국의 주인이자, 동시에 가장 비참한 죄수였다.
첫 곡이 시작되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계산된 동선, 연습한 그대로의 퍼포먼스. 목소리는 훈련된 대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뿜어냈다. RomoS의 노래는 완벽했다. 우리는 ‘생존자’라는 역할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연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영혼은, 무대 위에 없었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나의 시선은 저 멀리, 어둡고 광대한 2층 객석을 헤매고 있었다.
찾고 있었다. 타는 듯한 오렌지색 머리카락. 시니컬한 미소를 짓고 있을, 익숙한 실루엣. 그 녀석들이, 와 있을까. 내가 보낸 티켓을 들고, 지금 이 무대를 보고 있을까.
나의 이 거대한 거짓말을, 비웃고 있을까.
몇 곡이 지나고, 몇 번의 계절이 흐른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라이브는 순조롭게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관객들은 우리의 완벽한 연기에 열광했다. 하지만 그 열광이 커질수록, 나의 내면은 더욱 공허해졌다. 이 소리는, 그 녀석들에게 닿고 있는 걸까.
마침내, 정해진 마지막 곡이 끝났다. 앵콜을 외치는 함성이 무도관을 가득 메웠다.
나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가,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다른 멤버들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것은, 우리의 각본에 없는 단 한 번의 애드리브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케부쿠로의 낡은 카페, 칸나의 경멸에 찬 눈빛. 폐쇄된 라이브 하우스, 미유의 원망이 담긴 절규.
그리고, 비에 젖었던 그날의 밤.
“...마지막으로, 아주 오래된 노래를 하나 부를게.”
나직한 목소리가, 무도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술렁이는 공기가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무대에서 태어나,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던, 어리석고... 서툴렀던 노래야.”
나는 쿠온에게 눈짓했다. 쿠온은 덜덜 떨면서도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떨리는 손으로 베이스의 첫 음을 짚었다.
전주가 흘러나왔다. 무네노리의 미완성곡.
RomoS의 완벽한 연주 위로, 나는 노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음정은 미세하게 어긋났으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가면이 부서지고 있었다.
노래가 아닌 절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비겁한 변명. 미안하다는, 끝내 전하지 못했던 한마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와 함께했던 시간만이 나의 유일한 ‘진짜’였다는 고백.
이 마음은, 분명히 닿을리 없다. 비겁한 도망자가 뱉는 말에 진정성이 느껴질리가 없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모든 진심을, 엉망진창인 멜로디에 담아 쏟아냈다.
노래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나는 눈을 떴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2층의 가장 먼 관객석으로 향했다.
보일 리가 없다. 너무 멀어서, 너무 어두워서.
하지만, 보이는 것 같았다. 그곳에 앉아, 이 무대를 보고 있을 너희들의 모습이.
내 뺨 위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조명이 그 눈물을 비추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아, 나는. 나는 그저, 다시 한번 너희와 함께 노래하고 싶었던 것뿐이었구나.
노래가 끝나고, 객석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나의 눈물을 ‘혼신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하며 열광했다. 나의 유일한 진실마저, 가장 완벽한 연기로 포장되어 팔려나가고 있었다.
무대 뒤로 돌아오자, 멤버들이 흥분한 얼굴로 나를 에워쌌다.
“이오리! 마지막 곡, 대체 뭐야! 완전 최고였어!”
아즈사의 칭찬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나의 변명은 끝났다.
과연 나의 진심은, 그 녀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아니면, 이것 역시 그저 시시한 연극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뿐일까.
나는 드넓은 무도관의 한구석, 불 꺼진 대기실에 혼자 앉아, 그 대답 없는 질문에 잠겨들고 있었다.
무대 뒤편의 어둠 속에서, 저는 언제나 이오리의 등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커튼 너머에서, 만 명의 기대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제 발밑을 적시는 것 같았습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날뛰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언제나처럼, 저는 무서웠습니다.
“...이, 이오리... 괜찮아요...?”
제 목소리는 양처럼 떨리고 있었습니다. 제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오리는 괜찮아야만 하니까요. 그녀가 흔들리면, 저 역시...
“...문제없어.”
이오리의 목소리는 얼음 같았습니다. 그녀는 제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다른 멤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완벽한 리더. 완벽한 여왕. 저는 그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작은 불안을 느꼈습니다.
스태프의 출발 신호가 떨어졌습니다.
“가자.”
이오리의 한마디에, 우리는 무대 위로 걸어 나갔습니다.
빛. 소리. 열기.
세상의 모든 것이 제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제 베이스 기타의 넥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소노기 쿠온. 너는 그저, 이오리가 정해준 대로 연주하면 돼. 언제나처럼, 그녀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연주가 시작되고, 저는 점차 안정감을 찾아갔습니다. 이오리의 목소리, 린카 씨의 기타, 아즈사 씨와 레오의 리듬. 이 완벽한 소리의 성벽 안에 있으면, 저는 안전했습니다.
라이브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마지막 곡을 앞두고, 이오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주 오래된 노래를 하나 부를게요.”
순간, 제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이오리가 주는 신호는, RomoS가 아닌 무네노리에서 모두와 함께 맞추었던 그 때의 것이라.
말을 하지 않더라도 무엇을 원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무대에서 태어나,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던, 어리석고... 서툴렀던 노래예요.”
이오리가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눈동자는, ‘괜찮아, 쿠온. 나를 믿어.’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떨리는 손으로, 베이스의 첫 음을 짚었습니다. 그 멜로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우리의 미완성곡.
그 순간, 제 눈앞에 그날의 풍경이 섬광처럼 되살아났습니다.
비에 젖은 채, 이오리의 집 현관문을 두드리던 제 손.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풍겨오던 비릿한 피 냄새. 저를 막아서던 이오리 오빠의 절박한 얼굴. 거실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 그리고... 부서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오리의 모습. 그 옆에서, 망가진 소리로 흐느끼던 그녀의 어머니.
“흡...”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습니다.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제가 잊고 싶어 몸부림쳤던, 그 지옥의 풍경. 이오리는 지금, 혼자만의 힘으로 그 지옥의 문을 다시 열어젖히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오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그것은 RomoS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음정은 미세하게 어긋났으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위태로운, 소노미야 이오리라는 한 소녀의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리고 연주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이오리의 흔들리는 목소리를, 제 베이스라인으로 어떻게든 받쳐주고 싶었습니다. 제발, 무너지지 말아요, 이오리. 당신이 무너지면, 나도...
노래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저는 무심코 이오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오리, 저는 이렇게 열심히 했어요. 정말로 무서웠는데. 잊고싶었는데도.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저를 향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저 멀리, 어둡고 광대한 2층 객석의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타오르는 석양과 같은 오렌지색, 그리고 흩날리는 벚꽃같은 분홍색.
아아.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 거대한 무대도, 이 처절한 고백도, 우리가 함께 겪었던 그 지옥의 재현마저도.
결국, 저를 위한 것이 아니었군요.
그 지옥을 함께 목격한 것은 저인데.
당신이 도망칠 때, 그 손을 잡고 함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도 저인데.
그런데 어째서 당신의 눈은, 가장 먼 곳에 있는 그 사람들을 향하고 있는 건가요.
심장이, 차갑게 식어 내리는 기분.
저는 공범자였습니다. 그녀의 아픔을 지켜주고, 그녀의 비밀을 함께 짊어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는 그저 그녀의 독백을 위한 반주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객석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그 함성 속에서, 텅 빈 눈으로 이오리의 등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무대 뒤로 돌아오자, 멤버들이 흥분한 얼굴로 이오리를 에워쌌습니다.
“이오리! 마지막 곡, 대체 뭐야! 완전 최고였어!”
아즈사 씨의 칭찬에, 이오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런 이오리에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의 지친 옆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괜찮아요, 이오리. 그렇게 말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흘린 눈물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아팠습니다.
결국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였습니다.
무도관을 빠져나오자, 도쿄의 밤공기가 폐부로 밀려들었다. 안에서 터져 나오던 만 명의 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귀에는 오직 자동차 소음과 인파의 웅성거림만이 남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쿠단시타역으로 향하는 인파에 휩쓸려 걸었다.
사람들은 모두 흥분한 얼굴로 방금 끝난 라이브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마지막 곡, 완전 미쳤지 않았어? 이오리, 우는 거 봤어?”
“진짜 혼신의 퍼포먼스였어. 역시 RomoS는 다르다니까.”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그 모든 목소리들을 외면했다.
혼신의 퍼포먼스? 웃기지도 않았다. 저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방금 전 무대 위에서 벌어진 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변명이었는지.
한참을 말없이 걷던 우리 둘은, 역으로 향하는 큰길을 벗어나 근처 공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미유였다.
“...대단하네, 저 녀석.”
그 한마디에, 내내 억눌러왔던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뭐가. 뭐가 대단하다는 거야.”
나는 신경질적으로 미유를 쏘아붙였다.
“동정이라도 하는 거야? 이제 와서, 너도 저런 식으로 울고불고 노래 한 곡 부르면, 그래 그랬구나 하면서 그때로 돌아갈 수있을거라고 믿어? 과거에 했던 짓이 전부 용서받기라도 할 것같고?”
내 목소리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날카로웠다.
“밴드를 버리고 도망친 건 사실이잖아. 우리를 지옥에 내버려 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이제 와서, 저렇게 수만 명 앞에서 불쌍한 척 연기하는 건, 그냥 자기 혼자 편해지려는 최악의 자기만족일 뿐이야!”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머릿속이 뜨거웠다. 이오리의 눈물, 그녀의 위태롭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의 복수는, 정당하고 명확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자꾸만 이 이야기에 불필요한 각주를 달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말이 없는 미유를 노려보았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이제 와서, 저 녀석한테 미련이라도 남은 거야?”
내 비난 섞인 질문에, 미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나처럼 화를 내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미련? 아니.”
미유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냥... 좀 재미있어졌을 뿐이야.”
“...뭐?”
“나는 여태까지, 우리 이야기가 최악의 각본으로 끝난 삼류 드라마라고 생각했어. 주인공 중 하나가 멋대로 도망쳐서, 어이없이 막을 내린. 그래서 나는 관객이 되기로 했지.”
미유는 벤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아니었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방금 그 무대는, 엔딩이 아니었어. 2막의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예고편이었지."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야말로 어쩔 건데, 칸나.”
미유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 눈은, 내가 알던 냉소적이고 지루해하던 관객의 눈이 아니었다.
“네가 주인공으로 삼았던 그 ‘복수극', 이제 어떡할 거야? 이오리라는 다른 주인공이, 저렇게 멋대로 다른 시나리오를 써버렸는데. 계속 혼자서, 1막의 마지막 대사만 되풀이하고 있을 거야?”
“......”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미유의 말이, 정확하게 내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장렬했던 사죄극. 하물며 무도관 라이브라는 업적마저 자신의 팽동에 대한 후회와 한탄으로 가득채워 흘려보냈다. 비겁하게도 복수하려는 사람을 앞에 둔채로.
‘진실을 들을 자격이 있다면, 무도관까지 올라와.’
나는 이를 악물었다. 짜증이 났다. 멋대로 내 세계를 무너뜨리고 떠났던 주제에, 이제 와서 다시 내 세계를 뒤흔드는 소노미야 이오리가.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심지어 ‘재미있어졌다’고 말하는 시마무라 미유가.
모든 것이, 내 통제 밖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갈래.”
“...그래.”
우리는 다시, 아무 말 없이 역을 향해 걸었다.
가슴 속에서는 여전히 분노가 들끓고 있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명확한 방향을 가진 불꽃이 아니었다. 갈 곳을 잃고, 그저 나의 내면만을 태우는, 혼란스러운 열기만이 가슴을 태웠다.
무도관 라이브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세상은 RomoS의 성공적인 공연에 대해 떠들어댔지만, 우리들의 시간은 그날 밤, 쿠단시타의 공원에 멈춰 있었다. 칸나는 그날 이후, 말이 거의 없어졌다. 연습 중에도, 아르바이트 중에도, 그녀는 오직 기타만을 쳐다보았다. 그 소리는 이전보다 더욱 날카로워졌지만, 동시에 길을 잃은 아이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복수라는 명확했던 목적지가, 이오리가 던진 진심이라는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날도, 나와 칸나는 StATION에서 손님 없는 플로어를 묵묵히 닦고 있었다. 유이는 학교에 무슨 일이 있다며 오늘은 오지 않았다. 우리 둘 사이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때, 라이브 하우스의 육중한 철문이, 망설이는 듯 아주 조금 열렸다.
문틈으로, 겁먹은 작은 동물의 눈 같은 것이 우리를 살폈다. 이내, 문이 완전히 열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노기 쿠온.
그녀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움찔하며 어깨를 떨었다. 당장이라도 도망칠 것 같은 얼굴. 그런 그녀가, 어째서 여기에.
먼저 반응한 것은 칸나였다. 그녀는 들고 있던 행주를 바닥에 내던지듯 내려놓고, 쿠온을 향해 걸어갔다. 그 걸음에는, 명백한 적의가 담겨 있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칸나의 차가운 목소리에, 쿠온의 몸이 굳어졌다.
“저, 저는... 그, 그게...”
쿠온은 떨리는 손으로 가방끈을 꽉 쥔 채,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무도관에서의... 마지막 곡... 들으셨죠...? 그건, 이오리의... 진심이에요. 다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하!"
칸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쿠온을 비웃었다.
“이제 와서?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다시 시작? 멋대로 떠났다가, 멋대로 돌아오고. 모든 게 너희들 마음대로잖아! 우리는, 우리는 그때 얼마나...”
칸나의 목소리가, 끝내 흔들리고 있었다.
쿠온은 그 분노를 온몸으로 받으며,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오리는...”
그때, 지금까지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과연.”
내 나직한 한마디에, 칸나와 쿠온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로 향했다. 나는 바 의자에 기댄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극적인 과거를 클라이맥스에 터뜨려서, 관객의 동정심을 유발한다... 꽤 잘 만든 드라마네. 소노미야 이오리, 연출에도 재능이 있었나 봐?”
그 순간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쿠온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는 더 이상 공포나 미안함이 없었다. 오직,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듯한, 시뻘건 분노만이 담겨 있었다.
“...드라마?”
그것은 내가 알던 소노기 쿠온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
“당신들이... 당신들이 이오리의 뭘 알아요!”
쿠온은 우리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겁먹은 작은 동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날, 우리가 마지막 라이브를 하기로 했던 그날! 이오리가 왜 무대에 나오지 못했는지, 당신들은 상상이나 해봤어요?”
그녀의 절규가, 텅 빈 라이브 하우스를 울렸다.
“그 애는... 무대에 서고 싶어 했어요! 부러진 팔을 끌고서라도, 기어서라도 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하지만 갈 수 없었다고요!”
“...무슨 소리야.”
칸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당신들은 이오리의 완벽한 모습밖에 모르겠죠! 하지만 그 애가, 그 가면 뒤에서 어떤 지옥을 견뎌왔는지, 당신들은 몰라! 알려고 하지도 않았잖아!”
쿠온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었다.
“이오리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날, 아버님이 안 계셨던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라이브에 가려는 이오리를, 그 사람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피범벅이 된 오빠를, 바닥에 쓰러져서도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려던 그 애의 모습을, 당신들이 봤냐고요!”
“......”
“그 애는... 당신들을 지키려고 한 거예요! 자신의 그 지옥 같은 집안 사정에, 소중한 밴드 멤버인 당신들이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혼자서 전부 짊어지고, 가장 나쁜 사람이 되는 길을 택한 거라고요!”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칸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쿠온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분노는 간 곳 없고, 오직 순수한 충격과 혼란만이 남아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토록 ‘재미있는 연극’이라고 비웃었던 이야기의 진실이, 이렇게나 끔찍하고 무거운 것이었다니.
쿠온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쏟아낸 뒤, 탈진한 사람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눈에서, 다시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이오리 몰래,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는 후회.
“...죄, 죄송합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우리에게서 도망치듯 라이브 하우스를 뛰쳐나갔다.
정적이 흘렀다.
나와 칸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칸나의 복수는, 이제 완전히 길을 잃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아있는 것은, 너무나도 서툴고, 어리석고, 뒤늦게 전해진 진실의 무게뿐이었다.
쿠온이 도망치듯 뛰쳐나가고, 육중한 철문이 ‘쿵’ 하고 닫히는 소리가 텅 빈 라이브 하우스를 울렸다.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어버린 것 같았다.
나와 칸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조금 전까지 내가 앉아 있던 바 의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잘 만든 드라마’라니. 내가 뱉었던 그 경솔하고 잔인한 단어가, 부메랑이 되어 날아와 내 뒤통수를 후려친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저 이야기가, 과연 전부 진실일까.
“...웃기지 마.”
옆에서, 칸나가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쿠온이 서 있던 자리를,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누가 믿는다고.”
“......”
“그래서? 가정사가 불행해서, 아파서, 그래서 1년 넘게 우리 연락을 전부 무시했다고?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 남길 힘도 없었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칸나는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오렌지색 눈동자는, 슬픔이나 충격이 아닌, 시뻘건 불신과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너도 들었잖아! 저 녀석들, 무도관 이전에도 우리 노래를 연주하고 다녔어! 내가 직접 봤다고! 그때 내가 멱살을 잡고 물었을 때, 그 녀석은 뭐라고 했지?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벌레 보는 눈으로 날 쳐다보기만 했다고!”
칸나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녀는 억눌러왔던 모든 것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이제 와서 불쌍한 척 과거 팔이를 하면! 우리가 ‘아,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하면서 눈물이라도 흘려줄 줄 알았나!”
그녀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근처의 드럼 심벌즈를 손으로 내리쳤다. ‘챙-!’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그녀의 절규처럼 울려 퍼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오리가 불쌍한가? 그래, 쿠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가 느꼈던 감정이 거짓이 되는 건가?
“...타이밍이 너무 좋잖아.”
내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칸나가 나를 돌아보았다.
“서킷 페스에서 우리한테 지고, 무도관에서 쇼를 벌인 다음, 마지막엔 저 소심한 쿠온을 보내서 동정심을 유발한다... 만약 이게 전부 계산된 거라면, 소노미야 이오리는 진짜 무서운 녀석인데.”
“계산이고 뭐고!”
칸나가 소리쳤다.
“나는 더 이상 저 녀석들 이야기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 진실? 그딴 게 뭔데! 우리 눈앞에 있던 사실은, 그 녀석들이 우리를 버렸고, 우리의 음악을 훔쳤고, 우리를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거야! 그거면 충분하잖아!”
칸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의 떨림인 동시에, 어쩌면 쿠온의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의 떨림이었다. 만약 저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자신의 복수는 갈 곳을 잃고, 자신은 상처 입은 친구를 비난한 최악의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녀는 더 필사적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연극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지독했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결말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칸나는 기타 케이스를 거칠게 둘러메었다.
“...미안. 먼저갈게. 오너한테는 좀 부탁할게. 더 있다간 미쳐버릴 것 같아.”
“...그래.”
우리는 다시,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섰다. 라이브 하우스의 문을 닫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텅 빈 무대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인공도, 악역도.
그저, 각자의 지옥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오해하고, 그럼에도 서로를 갈망하는 어리석은 인간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았다.
관객으로 남기에는, 모든것들이 그저 아팠다.
StATION의 육중한 철문을 등 뒤로 닫는 순간, 비로소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나는 도망쳤다. 무작정. 차가운 밤공기가 폐를 에는 것 같았다. 히가시 이케부쿠로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젖은 시야 속에서 마구 뒤섞여 번졌다.
어, 어떡하지. 말해버렸어. 전부.
이오리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자신의 가장 깊고 어두운 상처를. 내가, 전부.
다리가 멋대로 움직여, 나를 역으로 이끌었다. 전철에 올라탄 뒤에도, 심장은 진정되지 않았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드라마?’
미유 씨의 그 한마디가, 내 머릿속의 무언가를 끊어버렸다.
그것은 드라마가 아니다. 희극도, 비극도 아닌, 그냥 지옥이었다. 피와, 눈물과, 비명으로 얼룩진 현실. 그 현실을 ‘재미있다’는 듯한 눈으로 관망하는 것을,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이오리의 아픔이, 그녀의 진심이, 그렇게 값싼 이야기로 소비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해버렸다.
이오리를 위해서.
...아니, 정말로 그랬을까?
어쩌면 나는, 그저 나 자신이 더는 견딜 수 없어서. 그 끔찍한 비밀의 무게를, 나 혼자 짊어지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칸나 씨와 미유 씨에게 그 무게를 떠넘겨 버린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이제 와서는, 아무것도.
익숙한 역에 내려, 이오리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이오리는 분명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함께 저녁을 먹고, 내일 있을 RomoS의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으니까. 나는 무슨 얼굴로, 이제 와서 그녀를 봐야 하는 걸까.
아파트의 자동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한심했다. 눈가는 붉어져 있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이대로 이오리를 만나면, 분명 무언가 눈치챌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딩동-’
현관문 앞에 서서, 나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어, 소노기 쿠온. 너는 그저, 평소처럼 칸나 씨의 아르바이트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조금 늦게 돌아온 것뿐이야.
“...누구세요.”
인터폰 너머로, 조금 지친 듯한 이오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예요, 이오리. 쿠온...”
“아, 쿠온이구나. 문 열려있어. 들어와.”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오리는 거실 소파에 앉아, 태블릿으로 악보를 보고 있었다.
“...느, 늦어서 죄송해요. 서, 서점에 잠시 들를 데가 있어서...”
“그래.”
이오리는 악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저녁은...”
“아직. 너 기다렸어. 배달 시킬건데 먹고싶은거 있어?”
“아, 아뇨...”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았다.
너무나도 평온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걸까.
나는 이오리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무도관 라이브 이후, 그녀는 어딘가 더 위태로워 보였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에는, 언제나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아직 모른다.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비밀의 벽을,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내가, 내 손으로 무너뜨려 버렸다는 사실을.
칸나 씨와 미유 씨가, 이제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나는 새로운 비밀을 갖게 되었다.
이전의 비밀이 이오리와 ‘함께’ 짊어진 것이었다면, 이 새로운 비밀은 오직 나 혼자만이 알고 있는, 이오리를 향한 배신이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이오리가, 여전히 악보를 본 채로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심장이, 다시 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공범자인 동시에, 그녀를 속이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이것이 과연, 이오리를 위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는 파멸로 이끄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었을까.
나는 대답 없는 질문을 가슴에 품은 채, 그저 떨리는 손을 무릎 위에서 꽉 쥘 뿐이었다.
이오리, 미안해요.
하지만 저는, 당신이 더 이상 혼자서 울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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