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5 [채팅]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잡담방 -317- (1001)
종료
작성자:에주
작성일:2025-09-21 (일) 16:34:36
갱신일:2025-10-02 (목) 13:19:00
#0에주(PjTqAkuEBW)2025-09-21 (일) 16:34:36
위키: https://opentalkwiki.mycafe24.com/wiki.php/%EB%8C%80%EB%AC%B8
1:1 카톡방: >4911>
번개모임방: >5108>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á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1:1 카톡방: >4911>
번개모임방: >5108>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á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742셔터 아일랜드(H9Gez83FTi)2025-09-30 (화) 01:25:43
9월의 햇살은, 어딘가 체념한 듯한 색을 띠고 있었다.
여름 내내 기세등등하게 내리쬐던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이제는 그저 창문 너머에서 교실 바닥 위로 길고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의 나뭇잎들은 아직 푸르렀지만, 그 가장자리부터 아주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가 번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네오카 여학원의 2학기는, 그렇게 느리고 나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수업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어젯밤 쿠온이 쏟아냈던 말들이, 망가진 레코드처럼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당신들이... 당신들이 이오리의 뭘 알아요!’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피범벅이 된 오빠를...’
‘당신들을 지키려고 한 거예요!’
거짓말.
그래, 전부 거짓말이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이유가, 내 분노가, 나의 복수가, 전부 다... 길 잃은 아이의 어리석은 투정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다. 상처 입은 친구의 등에 칼을 꽂으려 했던, 최악의 악당이 되어버린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톱으로 손바닥을 세게 짓눌렀다. 아픔이, 나를 현실에 붙잡아두는 유일한 감각이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도시락도 챙기지 않은 채, 옥상으로 향했다. 여름의 폭염 동안 잠시 멀리했던, 이제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그곳으로.
철문을 열자, 높고 맑아진 가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해방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옥상 역시, 어제와 똑같은 회색빛으로 보일 뿐이었다. 나는 급수탑 그늘에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칸나 쨩! 역시 여기 있었구나!”
등 뒤에서,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하지만 오늘따라 유독 이질적으로 들리는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이는 평소처럼, 자신의 도시락과 음료수 두 개를 들고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금 저 얼굴을 보면,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어라? 칸나 쨩, 오늘 도시락은?”
“...생각 없어.”
“에에,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다 쓰러지면 어떡해! 자, 계란말이라도 먹을래?”
유이는 내 옆에 쪼그려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고 내 입가로 젓가락을 가져왔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수없이 반복된, 익숙한 풍경. 하지만 오늘은, 그 상냥함이 독처럼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저어 그것을 피했다.
“...됐다고 했잖아.”
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튀어나갔다. 유이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무슨 일 있었어? 어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역시, 이 녀석은.
언제나 그렇듯, 나의 가장 작은 변화마저도 귀신같이 알아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복수가, 사실은 거대한 오해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내가 몇 년 동안 증오해 온 상대가, 사실은 나를 지키려 했던 피해자였다는 말을?
유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자신의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한참 뒤, 유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언제나의 칸나쨩처럼 자신감 넘치는 연주도 좋지만, 최근의 연주도 아찔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해!”
그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유이는 나를 보지 않은 채,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쩌면 무섭다고 할지도 몰라. 너무 날카롭고, 아파서. 하지만 나는, 칸나쨩의 진심이 그대로 느껴져서 어쩐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해야할까... 으으응!!!! 말로는 잘 안되는데!!!”
그녀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그 눈동자는, 맑고 투명한 하늘색. 그녀는 내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앉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마치, 우리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려는 것처럼.
“아무튼 칸나 쨩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칸나 쨩은 그저, 지금 느끼는 그대로를 연주해 줘. 칸나쨩이 간다면, 나도 같이 갈테니까!!!"
그녀의 말이, 안개처럼 내 머릿속을 감쌌다.
그래, 맞아. 유이는, 언제나 그랬다. 나의 소리를, 나의 진짜 모습을, 세상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해해주었다. 지금 이 끔찍한 혼란마저도, 그녀는 ‘진짜 Rock bottoM’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나의 아픔을, 그대로 긍정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의지하고 싶어졌다. 이 모든 혼란을, 그녀의 노래에 맡긴채로 어디까지고 떨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한다면, 분명히 편해질텐데.
그런데, 어째서일까.
위로받아야 할 이 순간에, 아주 희미하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
그녀의 상냥한 말이, 너무나도 완벽해서. 마치, 내가 이렇게 반응할 것을 처음부터 전부 알고 있었다는 듯한, 기묘한 위화감.
아니.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거겠지. 어제의 일 때문에.
유이는 그저, 나를 위로해주고 있을 뿐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는 머릿속의 어지러운 생각을 애써 지워버렸다. 그리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이걸로 됐어. 유이가 있어. 나의 이 엉망진창인 감정마저, 최고의 음악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사람이.
그런데 어째서일까.
안심해야 할 이 순간에, 나는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에 갇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유이가 내 삶의 이유가 되어준다면.
쿠온이 남기고 간 진실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요 며칠동안은 어디에 있어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도시의 소음, 스치는 사람들. 마치 꼭 나만이 다른 공간에 있는 것 처럼 현실감없는 침묵이 어쩐지 날 두렵게 만든다.
거실에는 오토하와 미온이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미유에게서 이미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나를 보고 무언가 말을 하려다, 내 얼굴을 보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지금의 나는, 그 어떤 위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그녀들도 알아챈 것이다.
나는 세 사람의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 내 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고, 잠갔다. 하지만 혼자가 되어도,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신들이... 이오리의 뭘 알아요!’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당신들을 지키려고 한 거예요!’
나는 귀를 막았다. 하지만 소리는, 내 안에서부터 울려 나오고 있었다.
복수. 나의 모든 것이었던 그 단어가, 이제는 나를 조롱하는 가장 끔찍한 단어가 되어 있었다. 나는 피해자를 향해, 몇 년 동안이나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차가운 물로 세수라도 하기 위해, 비틀거리며 방에 딸린 작은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어지러운 내 머릿속을 잠시나마 식혀주는 것 같았다. 물을 몇 번 튕겨내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에, 낯선 얼굴이 있었다.
물기에 젖은 오렌지색 머리카락, 핏기 없이 새하얀 피부, 텅 비어버린 눈동자.
오토마치 칸나.
...이게, 나인가.
나는 가만히,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때, 거울 속의 내가, 나를 향해 비웃기 시작했다.
‘꼴 좋네.’
환청인가. 아니, 저것은 나의 목소리다.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지는 가장 잔인한 조소.
‘결국, 다 똑같아. 소노미야 이오리를 증오하던 너나, 그녀를 이해하고 고뇌하는 지금의 너나.’
“...닥쳐.”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결국 너는, 비극의 주인공 역할을 즐기고 있을 뿐이잖아. 복수라는 멋진 핑계로 동정받고, 이제는 용서라는 이름으로 고뇌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취해있는 거라고.’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거울 속의 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속삭였다.
‘너는 그저, 불쌍해 보이는 자신을 좋아하는 거잖아.'
그 한마디가, 내 마지막 이성의 끈을 끊어버렸다.
그래. 맞다. 어쩌면, 나는.
이오리를 증오했던 것도, 쿠온에게 화를 낸 것도, 그저 그 모든 것이.
그저, 내가 세상의 중심에서 가장 극적인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역겨운 자기만족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해...!”
나는 비명을 지르며, 거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창-!
유리가 박살 나는 파열음과 함께, 끔찍한 고통이 오른손 전체로 퍼져나갔다. 거울은 거미줄처럼 흉측하게 갈라졌고, 그 파편들 속에서 나의 얼굴이 수백 개로 조각나 나를 비웃고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주먹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와 하얀 세면대 위로 뚝, 뚝, 떨어졌다. 아픔보다,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는 절망감이 더 컸다.
“칸나!”
“칸나 쨩, 무슨 소리임까!”
그때, 방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긴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 오토하와 미온이었다. 큰 소리에 놀라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칸나, 문 열어! 괜찮아?”
“칸나 짱, 대답 좀 하는검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수건으로 피가 흐르는 오른손을 감쌌다. 하지만 피는 멈추지 않고, 하얀 수건을 점점 붉게 물들였다.
곧이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미온이 비상키로 문을 연 모양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은, 화장실 안의 광경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오토하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깨진 거울과, 내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는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미온은 아주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냉정을 되찾고 내게로 달려왔다.
“오토하씨! 구급상자, 빨리!”
미온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오토하가 비틀거리며 거실로 달려갔다. 미온은 익숙한 손길로, 피로 젖은 수건을 풀고 내 상처를 살폈다.
“...바보 같은 짓을.”
그녀의 목소리는 딱딱했지만, 그 손길은 아주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거울 파편 속에 조각난 채 비치는 나의 얼굴을, 멍하니 내려다볼 뿐이었다.
나의 소리는, 부서졌다.
그리고 이제, 나 자신마저도.
내 손으로, 완전히 부서뜨려 버렸다.
다음 날 연습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지옥으로 향하는 것처럼 무거웠다.
방음벽 너머의 세계로부터 완벽하게 우리를 보호해 주는 성역.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곳은 나의 나약함을 심판하는 가장 잔인한 무대처럼 느껴졌다.
스튜디오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걱정스러운 얼굴의 오토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미온, 그리고... 나를 발견하고는 조금 놀란 듯한, 미유.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유이.
“칸나 쨩! 좋은 아침!”
유이는 내게 다가오다, 내 오른손의 붕대를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칸나 쨩! 그 손... 괜찮아? 어쩌다 그런 거야!”
유이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순수한 걱정과 당혹감이 담겨 있었다.
“...조금. 넘어졌어.”
나는 다른 녀석들게 했던 것과 똑같은 거짓말을 했다. 유이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그저, 평소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게 내 곁을 지킬 뿐이었다.
연습이 시작되었다.
나는 내 자리인 앰프 앞에 섰다. 최고급 장비들. 언제든 최고의 사운드를 낼 수 있도록 완벽하게 세팅된 공간.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이런 완벽한 환경에서, 나는 대체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자, 자아! 그럼, 시작해볼까?”
유이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만들던 신곡! 엄청 멋있었잖아! 다시 한번 해보자!”
나는 기타를 둘러메었다. 붕대를 감은 오른손 때문에, 피크를 쥐는 동작이 어색했다. 손끝에, 둔하고 기분 나쁜 통증이 울렸다.
“...시작할게.”
나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연주를 시작했다.
며칠 전, 내가 분노와 혼란 속에서 쏟아냈던 그 차갑고 공격적인 리프.
하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소리는 났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알던 소리가 아니었다. 힘이 없고, 초점도 없이, 그저 흩어지기만 하는 죽은 소리. 이 완벽한 스튜디오의 공기를 채우기에는, 너무나도 비참하고 초라한 소음. 육체적인 통증과, 정신적인 공허함. 그 두 가지가 뒤섞여, 나의 소리를 안에서부터 좀먹고 있었다.
“칸나 쨩?”
유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연주를 중단시켰다.
“무리하는 거 아니야? 힘들면 오늘은 그냥 쉬어도 괜찮아!!!”
“...아니. 할 수 있어.”
나는 고집을 부렸다. 여기서 무너지면,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혹시...”
유이가, 무언가 알아내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던거야? 지난번의 그 리프는, 엄청난 기세가 느껴졌는데... 지금은, 꼭 길을 잃은 것 같아.”
‘길을 잃은 것 같아.’
그녀의 순수한 감상이, 내 심장을 찔렀다.
그래. 나는 길을 잃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대답 대신, 다시 한번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엉망진창인, 비명조차 되지 못하는 소음.
그때, 유이가 나직하게 말했다.
"...전혀 빛나지 않아."
그것은 혼잣말에 가까운,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그녀 자신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눈앞의 현상을 보고 느낀 순수한 감상.
하지만 그 순수함이, 내 마지막 남은 이성을 끊어버렸다.
아.
나는, 아파해야만 하는건가.
내가 고통스러워야만, 너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거구나.
너는 내 상처를 사랑했던거구나.
나는 손에서 피크를 떨어뜨렸다.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 소리가, 이 완벽한 스튜디오의 침묵 속에서 유독 크게 울렸다.
“...그만둘게. Rock bottoM.”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멤버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억지에 어울리게 해서 다들 미안했어.”
나는 중얼거렸다.
이 곡뿐만이 아니다. 나의 복수도, 나의 분노도, 어쩌면 이 완벽한 스튜디오에 모여있는 Rock bottoM이라는 밴드 자체가.
모든 것이, 나의 어리석은 오해 위에 세워진 신기루였다.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기타를 케이스에 쑤셔 넣었다. 붕대를 감은 손이 아파왔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의 성역이었던, 이 아지트의 출구로.
“칸나 쨩! 어디 가!”
유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등 뒤에 들려왔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는, 이 완벽한 공간에서 소리를 낼 자격이 없다.
미안해, 미안해. 네가 기껏 그렇게 이끌어주었는데.
역시, 난 못하겠어.
나의 모든 것이었던 소리로부터, 멤버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으로부터, 그리고 나 자신이라는 가장 끔찍한 거짓말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위해서.
도시의 소음을 쫓아 달렸다.
여름 내내 기세등등하게 내리쬐던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이제는 그저 창문 너머에서 교실 바닥 위로 길고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의 나뭇잎들은 아직 푸르렀지만, 그 가장자리부터 아주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가 번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네오카 여학원의 2학기는, 그렇게 느리고 나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수업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어젯밤 쿠온이 쏟아냈던 말들이, 망가진 레코드처럼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당신들이... 당신들이 이오리의 뭘 알아요!’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피범벅이 된 오빠를...’
‘당신들을 지키려고 한 거예요!’
거짓말.
그래, 전부 거짓말이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이유가, 내 분노가, 나의 복수가, 전부 다... 길 잃은 아이의 어리석은 투정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다. 상처 입은 친구의 등에 칼을 꽂으려 했던, 최악의 악당이 되어버린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톱으로 손바닥을 세게 짓눌렀다. 아픔이, 나를 현실에 붙잡아두는 유일한 감각이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도시락도 챙기지 않은 채, 옥상으로 향했다. 여름의 폭염 동안 잠시 멀리했던, 이제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그곳으로.
철문을 열자, 높고 맑아진 가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해방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옥상 역시, 어제와 똑같은 회색빛으로 보일 뿐이었다. 나는 급수탑 그늘에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칸나 쨩! 역시 여기 있었구나!”
등 뒤에서,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하지만 오늘따라 유독 이질적으로 들리는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이는 평소처럼, 자신의 도시락과 음료수 두 개를 들고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금 저 얼굴을 보면,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어라? 칸나 쨩, 오늘 도시락은?”
“...생각 없어.”
“에에,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다 쓰러지면 어떡해! 자, 계란말이라도 먹을래?”
유이는 내 옆에 쪼그려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고 내 입가로 젓가락을 가져왔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수없이 반복된, 익숙한 풍경. 하지만 오늘은, 그 상냥함이 독처럼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저어 그것을 피했다.
“...됐다고 했잖아.”
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튀어나갔다. 유이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무슨 일 있었어? 어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역시, 이 녀석은.
언제나 그렇듯, 나의 가장 작은 변화마저도 귀신같이 알아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복수가, 사실은 거대한 오해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내가 몇 년 동안 증오해 온 상대가, 사실은 나를 지키려 했던 피해자였다는 말을?
유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자신의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한참 뒤, 유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언제나의 칸나쨩처럼 자신감 넘치는 연주도 좋지만, 최근의 연주도 아찔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해!”
그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유이는 나를 보지 않은 채,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쩌면 무섭다고 할지도 몰라. 너무 날카롭고, 아파서. 하지만 나는, 칸나쨩의 진심이 그대로 느껴져서 어쩐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해야할까... 으으응!!!! 말로는 잘 안되는데!!!”
그녀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그 눈동자는, 맑고 투명한 하늘색. 그녀는 내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앉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마치, 우리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려는 것처럼.
“아무튼 칸나 쨩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칸나 쨩은 그저, 지금 느끼는 그대로를 연주해 줘. 칸나쨩이 간다면, 나도 같이 갈테니까!!!"
그녀의 말이, 안개처럼 내 머릿속을 감쌌다.
그래, 맞아. 유이는, 언제나 그랬다. 나의 소리를, 나의 진짜 모습을, 세상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해해주었다. 지금 이 끔찍한 혼란마저도, 그녀는 ‘진짜 Rock bottoM’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나의 아픔을, 그대로 긍정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의지하고 싶어졌다. 이 모든 혼란을, 그녀의 노래에 맡긴채로 어디까지고 떨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한다면, 분명히 편해질텐데.
그런데, 어째서일까.
위로받아야 할 이 순간에, 아주 희미하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
그녀의 상냥한 말이, 너무나도 완벽해서. 마치, 내가 이렇게 반응할 것을 처음부터 전부 알고 있었다는 듯한, 기묘한 위화감.
아니.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거겠지. 어제의 일 때문에.
유이는 그저, 나를 위로해주고 있을 뿐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는 머릿속의 어지러운 생각을 애써 지워버렸다. 그리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이걸로 됐어. 유이가 있어. 나의 이 엉망진창인 감정마저, 최고의 음악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사람이.
그런데 어째서일까.
안심해야 할 이 순간에, 나는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에 갇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유이가 내 삶의 이유가 되어준다면.
쿠온이 남기고 간 진실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요 며칠동안은 어디에 있어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도시의 소음, 스치는 사람들. 마치 꼭 나만이 다른 공간에 있는 것 처럼 현실감없는 침묵이 어쩐지 날 두렵게 만든다.
거실에는 오토하와 미온이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미유에게서 이미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나를 보고 무언가 말을 하려다, 내 얼굴을 보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지금의 나는, 그 어떤 위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그녀들도 알아챈 것이다.
나는 세 사람의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 내 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고, 잠갔다. 하지만 혼자가 되어도,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신들이... 이오리의 뭘 알아요!’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당신들을 지키려고 한 거예요!’
나는 귀를 막았다. 하지만 소리는, 내 안에서부터 울려 나오고 있었다.
복수. 나의 모든 것이었던 그 단어가, 이제는 나를 조롱하는 가장 끔찍한 단어가 되어 있었다. 나는 피해자를 향해, 몇 년 동안이나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차가운 물로 세수라도 하기 위해, 비틀거리며 방에 딸린 작은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어지러운 내 머릿속을 잠시나마 식혀주는 것 같았다. 물을 몇 번 튕겨내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에, 낯선 얼굴이 있었다.
물기에 젖은 오렌지색 머리카락, 핏기 없이 새하얀 피부, 텅 비어버린 눈동자.
오토마치 칸나.
...이게, 나인가.
나는 가만히,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때, 거울 속의 내가, 나를 향해 비웃기 시작했다.
‘꼴 좋네.’
환청인가. 아니, 저것은 나의 목소리다.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지는 가장 잔인한 조소.
‘결국, 다 똑같아. 소노미야 이오리를 증오하던 너나, 그녀를 이해하고 고뇌하는 지금의 너나.’
“...닥쳐.”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결국 너는, 비극의 주인공 역할을 즐기고 있을 뿐이잖아. 복수라는 멋진 핑계로 동정받고, 이제는 용서라는 이름으로 고뇌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취해있는 거라고.’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거울 속의 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속삭였다.
‘너는 그저, 불쌍해 보이는 자신을 좋아하는 거잖아.'
그 한마디가, 내 마지막 이성의 끈을 끊어버렸다.
그래. 맞다. 어쩌면, 나는.
이오리를 증오했던 것도, 쿠온에게 화를 낸 것도, 그저 그 모든 것이.
그저, 내가 세상의 중심에서 가장 극적인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역겨운 자기만족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해...!”
나는 비명을 지르며, 거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창-!
유리가 박살 나는 파열음과 함께, 끔찍한 고통이 오른손 전체로 퍼져나갔다. 거울은 거미줄처럼 흉측하게 갈라졌고, 그 파편들 속에서 나의 얼굴이 수백 개로 조각나 나를 비웃고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주먹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와 하얀 세면대 위로 뚝, 뚝, 떨어졌다. 아픔보다,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는 절망감이 더 컸다.
“칸나!”
“칸나 쨩, 무슨 소리임까!”
그때, 방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긴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 오토하와 미온이었다. 큰 소리에 놀라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칸나, 문 열어! 괜찮아?”
“칸나 짱, 대답 좀 하는검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수건으로 피가 흐르는 오른손을 감쌌다. 하지만 피는 멈추지 않고, 하얀 수건을 점점 붉게 물들였다.
곧이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미온이 비상키로 문을 연 모양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은, 화장실 안의 광경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오토하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깨진 거울과, 내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는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미온은 아주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냉정을 되찾고 내게로 달려왔다.
“오토하씨! 구급상자, 빨리!”
미온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오토하가 비틀거리며 거실로 달려갔다. 미온은 익숙한 손길로, 피로 젖은 수건을 풀고 내 상처를 살폈다.
“...바보 같은 짓을.”
그녀의 목소리는 딱딱했지만, 그 손길은 아주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거울 파편 속에 조각난 채 비치는 나의 얼굴을, 멍하니 내려다볼 뿐이었다.
나의 소리는, 부서졌다.
그리고 이제, 나 자신마저도.
내 손으로, 완전히 부서뜨려 버렸다.
다음 날 연습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지옥으로 향하는 것처럼 무거웠다.
방음벽 너머의 세계로부터 완벽하게 우리를 보호해 주는 성역.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곳은 나의 나약함을 심판하는 가장 잔인한 무대처럼 느껴졌다.
스튜디오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걱정스러운 얼굴의 오토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미온, 그리고... 나를 발견하고는 조금 놀란 듯한, 미유.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유이.
“칸나 쨩! 좋은 아침!”
유이는 내게 다가오다, 내 오른손의 붕대를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칸나 쨩! 그 손... 괜찮아? 어쩌다 그런 거야!”
유이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순수한 걱정과 당혹감이 담겨 있었다.
“...조금. 넘어졌어.”
나는 다른 녀석들게 했던 것과 똑같은 거짓말을 했다. 유이는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그저, 평소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게 내 곁을 지킬 뿐이었다.
연습이 시작되었다.
나는 내 자리인 앰프 앞에 섰다. 최고급 장비들. 언제든 최고의 사운드를 낼 수 있도록 완벽하게 세팅된 공간.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이런 완벽한 환경에서, 나는 대체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자, 자아! 그럼, 시작해볼까?”
유이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만들던 신곡! 엄청 멋있었잖아! 다시 한번 해보자!”
나는 기타를 둘러메었다. 붕대를 감은 오른손 때문에, 피크를 쥐는 동작이 어색했다. 손끝에, 둔하고 기분 나쁜 통증이 울렸다.
“...시작할게.”
나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연주를 시작했다.
며칠 전, 내가 분노와 혼란 속에서 쏟아냈던 그 차갑고 공격적인 리프.
하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소리는 났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알던 소리가 아니었다. 힘이 없고, 초점도 없이, 그저 흩어지기만 하는 죽은 소리. 이 완벽한 스튜디오의 공기를 채우기에는, 너무나도 비참하고 초라한 소음. 육체적인 통증과, 정신적인 공허함. 그 두 가지가 뒤섞여, 나의 소리를 안에서부터 좀먹고 있었다.
“칸나 쨩?”
유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연주를 중단시켰다.
“무리하는 거 아니야? 힘들면 오늘은 그냥 쉬어도 괜찮아!!!”
“...아니. 할 수 있어.”
나는 고집을 부렸다. 여기서 무너지면,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혹시...”
유이가, 무언가 알아내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던거야? 지난번의 그 리프는, 엄청난 기세가 느껴졌는데... 지금은, 꼭 길을 잃은 것 같아.”
‘길을 잃은 것 같아.’
그녀의 순수한 감상이, 내 심장을 찔렀다.
그래. 나는 길을 잃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대답 대신, 다시 한번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엉망진창인, 비명조차 되지 못하는 소음.
그때, 유이가 나직하게 말했다.
"...전혀 빛나지 않아."
그것은 혼잣말에 가까운,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그녀 자신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눈앞의 현상을 보고 느낀 순수한 감상.
하지만 그 순수함이, 내 마지막 남은 이성을 끊어버렸다.
아.
나는, 아파해야만 하는건가.
내가 고통스러워야만, 너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거구나.
너는 내 상처를 사랑했던거구나.
나는 손에서 피크를 떨어뜨렸다.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 소리가, 이 완벽한 스튜디오의 침묵 속에서 유독 크게 울렸다.
“...그만둘게. Rock bottoM.”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멤버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억지에 어울리게 해서 다들 미안했어.”
나는 중얼거렸다.
이 곡뿐만이 아니다. 나의 복수도, 나의 분노도, 어쩌면 이 완벽한 스튜디오에 모여있는 Rock bottoM이라는 밴드 자체가.
모든 것이, 나의 어리석은 오해 위에 세워진 신기루였다.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기타를 케이스에 쑤셔 넣었다. 붕대를 감은 손이 아파왔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의 성역이었던, 이 아지트의 출구로.
“칸나 쨩! 어디 가!”
유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등 뒤에 들려왔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는, 이 완벽한 공간에서 소리를 낼 자격이 없다.
미안해, 미안해. 네가 기껏 그렇게 이끌어주었는데.
역시, 난 못하겠어.
나의 모든 것이었던 소리로부터, 멤버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으로부터, 그리고 나 자신이라는 가장 끔찍한 거짓말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위해서.
도시의 소음을 쫓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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