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잡담방 -333-

#8863 [채팅]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잡담방 -333- (1001)

종료
#0에주(EVCoFaTpVG)2025-12-16 (화) 08:07:53
위키: https://opentalkwiki.mycafe24.com/wiki.php/%EB%8C%80%EB%AC%B8
1:1 카톡방: >8525>
번개모임방: >5108>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á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896밑바닥에서 사랑을 담아(KUNf5ptxzS)2025-12-25 (목) 13:59:34
빌딩 숲을 휘감은 조명은 시신경이 아플 정도로 번쩍거렸고, 사람들이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온 탓에 웅성거리는 소음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조금 전까지 라이브 하우스 지하에 처박혀 굉음을 뿜어댄 탓인지, 형형색색으로 물든 세상은 온통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와, 칸나 쨩! 저거 봐! 나무가 파란색이야!"

유이가 내 팔을 붕붕 흔들며 소리쳤다.

"어... 그러네. 예쁘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조금 삑사리가 났다. 젠장. 주머니 속에 든 벨벳 상자가 무슨 뜨거운 감자처럼 손바닥을 지지고 있었다. 이거, 언제 주지? 지금인가? 아니, 사람이 너무 많은데.

"칸나 쨩?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니. 그, 사람이 많구나 싶어서."
"확실히 올해는 어쩐지 사람이 더 많은 느낌이네... 그래도 조금 돌아서 가자고 한건 칸나쨩이니까! 좀 더 나한테 감사해야한다고 생각해!"
"...응, 그러네. 항상 고마워.유이."

유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어깨에 뺨을 비벼왔다. 푹신한 더플코트 너머로 닿는 체온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유이는 내 손을 잡고 있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빈틈없이 깍지를 껴왔다.

"놓치면 안 되니까 꽉 잡고 있어야겠다. 헤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려다보는 유이의 눈은 스노우글로브처럼 투명했다. 유이는 가끔 이렇게 무방비하게 훅 들어온다. 내가 자기 없으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아니, 유이에 한해서는 그럴리 없나.
우리는 인파를 피해 조금 한적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시끄러운 캐럴 소리가 멀어지자,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다. 하늘에서 눈송이가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 이다!"
"운이 좋았는걸. 내일까지 오면 좋겠는데.“"아, 계속 오면 전차가 멈춰서 학교에 못가니까 그러지!“"모처럼 크리스마스니까. 다 같이 있고 싶잖아? 오늘 뒷풀이도 제대로 못 끝냈고."

유이가 신나서 폴짝거렸다. 그 뒷모습을 보는데, 문득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유이."
"응?"

나는 멈춰 섰다. 분명히 기온은 영하까지 떨어졌지만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하지만, 불러세운 이상 돌이킬 수도 없는 법. 나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상자를 꺼냈다. 작게 포장된 벨벳상자. 오토하선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구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의 내가 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가장 비싸고 구하기 힘든 선물이다.

"자."
"어? 이게 뭐야?"
"아니 그냥, 크리스마스잖아."

건네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은색 음표 목걸이가 반짝이자, 유이의 입이 딱 벌어졌다.

"목걸이?! 진짜? 이거 나 주는 거야?"
"그,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전에 너도 내 생일 때 초커 줬었잖아? 그 답례라고 생각해줘.“"헤헤... 그런 것 치고는 칸나쨩 그건 별로 안차고 다니지 않았어?“"아니 그, 밖에서 차고 다니기엔 난이도가 좀..."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딴청을 피웠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응? 뭔데?"

유이가 상자를 소중하게 쥐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저 눈. 저 순도 100%의 기대에 찬 눈빛. 아, 진짜 미치겠네.

"그러니까... 아니 그..."
"응? 뭐야?"
"...역시 나중에 얘기해줄게."
"에에..."

말이 자꾸 꼬였다. 머릿속에선 멋진 대사가 많았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옹알이 수준이었다.

"아니 다른 건 아니야. 그냥 그, 뭐라고 할까... 앞으로도 같이 있고 싶다고 할까 뭐 그런거.“"뭐야 그거였어?“

사귀자고 좀 해, 멍청아. 속으로 내 뺨을 때리고 있을 때였다.

"......어머나, 우연이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들었다. 너무 긴장해서 인기척도 못 느끼고 있었다. 자판기 옆 어두운 구석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검은색 롱 코트를 입은 붉은 머리의 여자와, 그 옆에 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보라색 저지의 여자.

"...이오리? 아니 너희들 오늘 무슨 파티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그, 오늘 동선은 확실히 파악 했을텐데.
이오리는 나를 보더니 눈썹을 살짝 까딱했다.

"못 볼 걸 본 것 같은 얼굴은 그만해주지? 너희보다 한참 앞 순번이었으니까. 그거야 이미 끝났어. 쿠온이 일루미네이션을 보고 싶다고 해서."
"아, 그... 아, 안녕, 하세요...헤헤..."

건조한 말투. 이오리의 시선이 내 벌건 얼굴이랑 유이 손에 들린 상자를 스윽 훑었다. 상황 파악이 끝난 듯, 그녀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스쳤다.

"정말이지 너희들은 이런 날에도 사이 좋아 보이네. 얼마 전만 해도 못하겠다고 씻지도 않고 질질 짜던걸 겨우겨우 돌려보낸 것 같은데."
"역시 그거 이오리쨩이었구나! 어쩐지 뭔가 후련해진 것 같았는데!"

유이는 이오리의 손을 잡고서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어댔다. 부끄럽기야 했지만 뭐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넘어가도록 할까. 무엇보다 그때의 일이라면 더한 녀석이 있었지.

"아... 저, 저기... 이오리 씨... 그, 그걸 얘기해 버리면..."
"쿠온도 엄청났었지. 알바중에 갑자기 찾아와서는 펑펑 울면서 도망가는 탓에 뒤처리도 엄청 힘들었거든?"
"이오리쨩도 피차 고생이네~"
"후후, 오토노세양 만큼은 아닐걸? 칸나는 상당히 귀찮은 타입이잖아?"

쿠온이 파들파들 떨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너네들.“

쿠온은 나를 힐끔 보더니, 겁에 질린 햄스터처럼 이오리의 등 뒤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머리 속이 하얘지기는 했지만 이오리 덕분인지 조금 정리가 된 것 같기는 했다. 불행중 다행인걸까.

”에? 그야 칸나쨩 얼마 전에도 정기고사 그냥 넘기려다가 선생님한테 불려갔었잖아?“

갑자기 터져 나온 유이의 목소리. 유이는 방금 전의 감동적인 분위기는 까맣게 잊은 듯, 해사하게 웃으며 내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정말이지 칸나 너도 중학교때랑 달라진게 없다니까.“
”카, 칸나씨는 그때도 성적만은 좋았으니까요... 벼락치기 였지만... 헤헤...“
”아니 평소에도 공부하거든? 그러는 유이랑 쿠온이야말로 성적은 나보다 낮지 않았어?“
”후후... 나는 장기적으로는 프로게이머를 노릴거니까 괜찮아!!!“
”괜찮지 않아. 애초에 게임도 잘 안하잖아?”
”도둑잡기의 프로정도라면!!!”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바보같은 말들을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도 방금 전 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왜인지 웃음이 나와버렸다.”아 맞다!!! 쨔잔!!! 후후후... 자랑하고 싶었거든!!!”

유이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짐짓 과장된 동작으로 내 팔짱을 더 꽉 꼈다. 그러고는 패딩 안쪽에 소중히 넣어두었던 목걸이를 꺼내 보란 듯이 찰랑거렸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은색 음표가 반짝, 하고 빛났다.

"짜잔! 이오리쨩, 쿠온쨩 이거봐!!!"
"......어머, 예쁜 목걸이인걸."
"방금 칸나 쨩이 준 거! 크리스마스 선물이래! 무려 서프라이즈!"

유이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목걸이를 이오리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방금까지의 평온감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지만 유이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목걸이를 꺼내들고는 보물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자랑스럽게 두 사람에게 보여주고 있었다.그걸 눈치 빠른 이오리 녀석이 모를 리가 없었다는게, 내 최대의 실책이리라.

"예전이랑은 취향이 제법 많이 바뀌었네 칸나. 너라면 좀 더 고딕한 디자인이 취향일 것 같았는데."

유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눈을 접어 웃었다.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둘만의 세계에 푹 빠진 표정. 이오리나 쿠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니,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이다 이건.

이오리는 그 목걸이와, 유이의 상기된 얼굴, 그리고 뻘줌하게 서 있는 나를 번갈아 보더니 짧게 픽 웃었다.

"칸나치고는 제법 센스 있는 걸 골랐네."
"그렇지? 역시 이오리쨩은 보는 눈이 있다니까! 아, 쿠온쨩도!!"
"그, 그런가요...?"

유이가 쿠온에게까지 얼굴을 들이밀자, 쿠온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죄, 죄송해요... 저, 저기... 이, 이오리 씨... 가, 가요... 제발요..."

쿠온은 유이의 저 과도한 '반짝거림'을 생리적으로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눈도 못 마주치고 이오리의 코트 자락만 생명줄처럼 잡아당겼다.

"쿠온, 진정해. 잡아당기지 마, 옷 늘어나."

이오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엮여봤자 쿠온의 멘탈만 갈려 나갈 게 뻔했다.

"미안해. 타이밍 안 좋을 때 지나가서. 우린 이만 가볼게. 쿠온이 한계인 것 같아서 말이야."
"아... 그래. 조심히 가."
"그래. 다음 대반때 보자. 오토노세, 너도 고생 좀 해."

이오리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아니 내 팔에 매달린 유이를 스윽 훑었다. 그 눈빛에는 '너도 참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라는 동지애 섞인 연민이 담겨 있었다.
그건 무슨 의미냐고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오리는 홱 몸을 돌렸다. 쿠온은 유이를 공포 영화의 귀신 보듯이 힐끔 쳐다보더니, 이오리 등에 딱 붙어서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이오리 씨... 유이씨는... 그, 에너지가... 에너지가 너무 넘쳐요..."
"시끄러워. 푸딩 먹고 싶다며? 빨리 걷기나 해."

두 사람이 골목 끝으로 사라지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폭풍 같은 녀석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 눈 내리는 소리만 남았다. 하지만 아까 그 마법 같던, 고백 직전의 긴장감은 이미 산산조각이 난 뒤였다.

"후우!!! 두사람은 오늘도 완전 러브러브하네!"

유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게 외쳤다.
그녀는 내 팔을 잡고 있던 손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단단히, 내 온기를 확인하듯 꽉 쥐었다.

"칸나 쨩."

유이가 나를 올려다봤다. 방금 전까지 이오리에게 목걸이를 자랑하던 수선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차분하고 깊은 눈동자의 유이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였어?"

해맑게 웃는 유이의 얼굴.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유이는 알고 있었던 거다. 이오리와 쿠온이 끼어드는 게 싫어서, 그 특유의 '눈치 없는 척'으로 밀어내 버린 거다. 오로지 나를 독점하기 위해서.
그 집착이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나중에 말해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유이의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주었다. 유이가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손길을 받았다.

"이미 그 나중이잖아? 자, 아까 하려던 말 계속해 줘."

유이가 속삭였다. 손에는 여전히 내가 준 상자가 들려 있었다. 목걸이는 이미 그녀의 목에 걸려, 하얀 피부 위에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같이 있고 싶다고 했잖아. 그리고?"

유이의 눈은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대답을 내놓으라고. 너는 내 거라고 확실하게 말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금 전의 그 긴장감, 그 용기, 그 타이밍... 모든 게 이오리의 등장과 함께 증발해 버렸다. 한번 끊겨버린 감정선은 억지로 잇는다고 이어지는 게 아니었다. 지금 무리해서 말을 꺼내봤자, 아까 생각했던 그 진심이 전해질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에 휩쓸린 가벼운 말처럼 들릴까 봐 겁이 났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니야."
"응?"
"그냥... 앞으로도 계속 옆에 있겠다고. 그 말 하려고 했어."

결국 나는 도망쳤다.
가장 중요한 말은 혀끝에서 맴돌다가 목구멍 뒤로 꿀꺽, 넘어가 버렸다. 비겁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유이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혹은 모르는 척해주는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뭐야~ 싱겁게. 당연한 거 아니야?"

유이는 내 품으로 파고들며 웅얼거렸다.

"칸나 쨩은 평생 내 옆에 있어야지. 어디 가면 안 돼. 이오리 쨩한테도 가면 안 되고, 쿠온 쨩한테도 가면 안 돼! 나도 칸나쨩이랑 평생 같이 있을거니까!"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유이를 마주 안았다. 더플코트 너머로 심장 박동이 전해져 왔다.
고백은 실패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묶여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귄다'는 단어보다, 지금 이 공기 자체가 우리를 더 단단하게 정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밤, 나는 유이의 체온에 기대어 차갑게 식은 손을 녹였다.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유이가 내 곁에 있는 한, 그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올 테니까.
하지만, 그거면 되는걸까?
이번에도 도망치고, 또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이오리에게서 도망쳤을 때처럼 또 도망쳐서 몇 년이고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그저 좋은 친구로... 있어주겠지. 유이라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오토노세 유이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나의 행동이 나의 생각보다 빨랐다는 것이다.손을 잡고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 먼저 가려고 하던 유이를 내 쪽으로 끌어 당겨서 조금 강하게 안았다. 방금까지는 조금 차분해졌었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평생이 아니어도 좋아."
"칸나쨩?“
"네가 같이 있고싶다고 말해준다면, 나는 평생이 아니어도 괜찮아."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떠나더라도 유이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막연한 생각. 나는 언제까지나 유이의 옆에 서서, 행복을 맛보기만 하면 된다고.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쩌면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이후에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머리 속이 새하얘져서. 엄청, 엄청나게 무서워져서. 그래서, 방금 전에, 내 곁에 평생 있어준다고 말해줘서 정말로 기뻤어!"

"칸나쨩..."
"이렇게 갑자기 말해봐야 널 곤란하게만 할뿐이라는 건 알아!! 동성끼리이기도 하고, 기분 나쁠지도 몰라! 나는 앞으로도 음악이 가장 중요할거고 언제까지고 유이 널 괴롭게 할지도 몰라."

마음을 전한다는 건 분명 엄청나게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넘쳐나는 수만 개의 러브송 가사들을 보면, 다들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사랑을 노래하고 있으니까. 그 속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반짝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임 없이 상대의 눈을 보며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골라내니까. 그러니 나도 그들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기타 앰프의 노이즈 뒤에 숨는 것에 더 익숙한 겁쟁이일 뿐. 말로 내뱉으면 휘발되어 버릴 것 같은 감정들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아, 여섯 줄의 현을 긁어대는 파열음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이자 도망이었다. '좋아해'라는 세 글자보다는 차라리 복잡한 코드를 잡는 게 쉬웠고, '가지 마'라는 말보다는 앰프 볼륨을 최대로 높여 귀를 막는 게 편했으니까.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상처받지 않을 줄 알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고, 약속하지 않으면 배신당할 일도 없다고. 꿈을 버리고 도망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그리고 떠나간 밴드 멤버들의 빈자리를 보며 뼈저리게 배웠던 세상의 이치였다.

그런데 눈앞의 이 아이는, 유리의 깨진 단면처럼 위태롭고 투명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어서 그 껍질을 깨고 나오라고, 나와서 나를 붙잡아 달라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그 처절한 순수함 앞에서는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아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언제나 그녀의 곁으로 향하게 된다.

떨린다. 지금 내 손에는 나를 지켜주던 기타도, 피크도 없다. 오랫동안 잡고 있어서 이제는 같은 온도가 된 서로의 손뿐이다. 이 얇은 피부 아래 맥박이 뛰고 있다는 사실이, 이 아이가 지금 내 온기를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인정한다. 난, 아마 평생이 가더라도 멋진 고백 따위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낭만적인 이벤트는 더더욱 불가능하겠지. 이것은 그저, 혼자서는 설 수 없는 불안전한 인간이 자신의 결핍을 타인에게 내보이며, '나를 채워달라'고 매달리는 구질구질한 생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서로의 목을 조르는 줄 알면서도 껴안을 수밖에 없는 공범이 되어달라는 제안.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나는 말해야만 한다. 나의 이 비틀린 밑바닥까지 함께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너밖에 없으니까. 너와 함께라면 어디까지고 떨어질 수 있으니까.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러뜨릴 듯이 뛴다. 멋진 미사여구 따위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살고 싶어서, 너와 함께 살아가고 싶어서 토해내는 날것의 언어만이 혀끝에 맴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칸나 쨩의 손은 언제나 조금 거칠다. 기타 줄에 단단히 박힌 굳은살의 감촉. 나는 그 까슬까슬한 느낌이 좋았다.
그 손이 나를 잡고 있을 때면, 내가 이 세상에 확실히 붙어 있다는 안도감이 드니까.

신주쿠의 소란을 뒤로하고 걸어오는 동안, 나는 줄곧 칸나 쨩의 옆얼굴을 훔쳐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칸나 쨩은 잔뜩 긴장해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오른 건 추위 때문일까, 아니면 터질 듯한 심장 소리 때문일까. 귀여워라. 저렇게 서투르고, 겁 많고, 그러면서도 나를 놓지 못해서 안달 난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목에 걸린 은색 목걸이가 차가운 금속성 온도로 내 쇄골을 눌렀다. '선물'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마치 '이름표'처럼 느껴졌다. 오토마치 칸나의 소유물이라는 표식. 아아, 정말이지 완벽한 크리스마스였다.

그래서 재촉하지 않았다. 나는 칸나 쨩이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자신의 입으로 직접 확인시켜 주기를 원했다. 내가 손가락을 다치면 칸나 쨩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밴드를 감아준다.
내가 위태롭게 굴면 칸나 쨩은 무너질 듯이 나를 지탱하려 든다.
나는 그 순간이 좋다. 칸나 쨩에게 내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는 그 순간이. 그러니까 말해줘, 칸나 쨩.
네가 나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내가 너를 구원하고 있다는 걸.

우리가 서로를 옭아매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 없는 사이라는 걸 그저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어떤 말이라도 좋다. 칸나가 나를 속박하기를 바란다면. 방 안에 가둔 채 사육하기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나약한 여자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칸나 쨩의 뺨을 감싸고, 그대로 거리를 0으로 만들었다.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칸나쨩의 입술이 닿았다. 뜨겁다. 그리고 거칠다. 칸나 쨩은 숨을 멈춘 채 굳어버렸다.
나는 그 무방비한 틈을 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듯 파고들었다.잠시 후, 입술을 떼자 칸나쨩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멍하니 벌어진 입술이 번들거렸다. 정말이지, 평소에는 엄청 멋있으면서 이럴때는 쑥맥이다. 그러니 내가 놓아줄 수 없지만! 칸나쨩의 멍해진 얼굴을 확인하고서 짓궂게 웃었다.

"그런 건, 말하기 전에 행동으로 하는 거야."
"어... 그, 그러니까..."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져서 뻐끔거리는 칸나 쨩. 아,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이 사람이 내 리더라니. 내 연인이라니. 나는 만족감에 전율하며 다시 칸나 쨩의 목을 끌어안았다.

"칸나쨩. 나는 지금 엄청 화나있습니다.“
”...왜 인지 물어봐도 돼?“
”칸나쨩이 나를 의심한 것 같으니까!입니다! 이건 정말로 큰 문제에요. 연인의 앞날이 걱정될 정도입니다.“
”...미안해, 못미더운 사람이라.“
”헤헤... 알면 됐어! 우리 둘 다 나쁜 사람이니까, 앞으로 선물은 못 받겠지만...“
”괜찮아, 산타보다는 내가 널 잘 알걸?“

나는 칸나 쨩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나에게 전해져 왔다. 이제 이 심장은 나를 위해서만 뛴다.

"책임져야 해, 칸나 쨩. 내 첫 키스였으니까.“

칸나 쨩이 허탈한 듯, 그러면서도 안도한 듯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입술을 겹쳤다. 부서질 듯 옥죄어오는 그 팔의 힘이 좋았다. 이 구속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자유.
눈 내리는 신주쿠의 뒷골목. 우리는 서로의 체온에 녹아들어, 떼어낼 수 없는 한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칸나쨩. 이런 여자라서 미안해.
#897아카주(KUNf5ptxzS)2025-12-25 (목) 14:01:37
뭔가 쓰다보니 너무 길어진것 같은 느낌...
그래도 크리스마스 가기 전에는 끝냈다에용
#898에주(JqXwvaAL5m)2025-12-25 (목) 14:02:11
1일부터 뽀뽀라니 진도 너무 빠른거 아니냐고 wwwwwwwwww
#899아카주(KUNf5ptxzS)2025-12-25 (목) 14:04:14
어휴 요즘 애들은 남사스럽게 사람들 다 보는데서 큰소리로 고백을 하질않나 뽀뽀를 하질않나!!!
#900소나주(4H9IXCPLPW)2025-12-25 (목) 14:06:58
우와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고백하려다가 역으로 고백받기...그냥 고백도 아니고 키스를 받았네요 우와우!!
#901아카주(KUNf5ptxzS)2025-12-25 (목) 14:10:25
사실 제목을 뭘할까를 끝까지 고민했어용

개허접 오렌지와 개고수 찹쌀떡이라고 하면 좀 그렇잖아용
#902한나주(rfS8dP1fRK)2025-12-25 (목) 14:13:29
어머어머어머
#903후일담(KUNf5ptxzS)2025-12-25 (목) 14:22:12
에에...!!!! 저렇게까지 하는거야...?!
혹시나 해서 따라와봤는데 상상이상임다...
아니 뭐 유이는 그럴만 하잖아? 그녀석 괜히 칸나 앞에서는 더 약한척 하기도 했고. 고단수라니까.
사냥에 성공해버린검다.
내, 내일은 팥밥을 지어야 하는걸까...?!
굳이 따지면 칸나쨩이 사기피해를 당한거니 경찰을 불러야 하는거 아님까?
아니 뭐... 상관없을걸?
[회상]
칸나쨩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것 같아.
아니 뭐 그야 보면 알지? 티나니까.
이건 정말로 중요한 사태라고 생각해.
딱히? 칸나도 연애정돈 하겠지.
그게 내가 아닐지도 모르는게 싫은거야!!! 미유쨩 도와줘!!!
[회상종료]
개허접들끼리 잘사귀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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