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육성/아카데미] 별밤 아카데미 - 10

#9080 [All/육성/아카데미] 별밤 아카데미 - 10 (1001)

종료
#802웨일스(h3FORB5hOK)2026-01-01 (목) 14:15:46
“웨일스, 어디있어-!”

멀리서 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고, 단풍잎 같이 조그마한 양 손을 끌어올려 제 입술을 꾹 눌러덮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도 자제하지 못하는 큰 울음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였다.

“웨일스-!”

에인즈워스의 정원은 식물마술의 명가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부지를 자랑한다. 숲을 정원삼았다는 말이 돌기도 하고, 저택에 정원이 딸린 것이 아닌 정원에 저택이 딸려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 곳.
그렇다보니 체구가 작은 웨일스가 작정하고 들어가 숨어버리면 가족 중 그 누구도 평범한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으, 으으, 으우우…”

아카데미에 가서 마술을 배우고 올게! 라며 집을 떠난 형이 일년 만에 돌아왔다.
돌아온 형은 키가 훌쩍 커져있었다. 조금 남아있던 젖살이 빠져 얼굴이 각져있었고, 손발도 큼지막해졌고, 목소리도 굵어졌고, 목에 아기주먹 만한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징그러워졌고, 그리고, 그리고…

‘우리 형 아니야아아아아!’

…어쨌든, 이거저거 많이 변한 형을 보고 대성통곡한 뒤 정원으로 뛰쳐나온게 약 20분 전.
다람쥐처럼 빨빨빨 돌아다니며 정원을 들쑤시다 겨우 발견한 큰 나무의 밑동에 몸을 쏘옥 숨기면서 이 기묘한 숨바꼭질이 시작된 것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겉옷의 소매를 쭈욱 잡아당겨 눈물을 마구 문질렀기 때문에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저만큼이나 많이 바뀌었는데! 뿌듯한 얼굴로 형의 머리를 마구마구 헤집는 아버지나, 한참 커버린 형을 자신의 품 가득 끌어안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배신감이 느껴져 나무 밑동에 기대앉아 울음만 가득 삼켰다.
형에게 칭찬받고 싶어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우유도 잔뜩 마시고, 어머니가 쿠키를 만들 때 반죽을 치대는 것도 열심히 도와드렸고, 아버지께 받은 작은 포도나무 묘목도 엄청 잘 길러서 칭찬받았던 것도, '내년에는 우리의 작은 씨앗에게 텃밭을 만들어줘볼까'라고 말했던 것도, 전부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형의 옆에 착 달라붙어 조잘조잘 이야기하면 형은 부드럽게 웃으며 만들어둔 밀크티를 쥐어줬다. 연유로 단맛을 내고 시나몬가루를 톡톡 뿌린 형의 따끈한 밀크티는 웨일스가 제일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래서 엄청, 엄청 기대했는데, 그런데!
서러움으로 가라앉은 눈매가 뾰족하게 세워졌다. 감정이 슬픔과 원망에서 불만으로 넘어가는게 한 순간이었다.
왜 저렇게 변장하고 온거지? 아니, 애초에 저 사람이 진짜 형이 맞을까? 가짜인건 아닐까? 형은 대체 어디있자? 그런 생각을 수십번 하다, 이내 퍼뜩 고개를 들었다.

“허업.”

혹시 진짜 형이 어디 납치당한건 아닐까? 웨일스가 눈을 크게 뜨며 가을하늘빛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게 아니면 형이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형을 구하러 가야해! 라며, 갑작스럽게 타오르는 사명감에 웨일스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렇게 자그마한 발을 씩씩하게 내딛으려다, 이내 갑작스레 찌르르 울리는 통증에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쪼그려 앉은지 꽤 오래된 상태였기에 다리가 저려왔던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듯 눈을 꼭 감았다. 분명히 아프겠지만 보드라운 흙바닥이고 주변에 큰 돌맹이는 없으니까 다치지는 않을거야,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으?”

그런데. 그랬, 는데…? 어, 어라? 어째서인지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느껴지는 것은 부드럽고, 단단하고, 그리고… 따뜻하고, 그립고… 달달한 연유 냄새 같은…?

“후아… 놀랐잖아.”

웨일스와 슬그머니 실눈을 뜨자, 나부끼는 까만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어깨에 닿일 듯 기른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묶고, 포도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배시시 웃는 얼굴이 웨일스와 놀랍도록 똑같았다.
웨일스는 눈물젖은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다친 곳은 없지?”
“으, 으으응…”
“다행이다. 이제 그만 형이랑 집에 돌아가자.”

어? 형… 인가? 자신을 소중한 유리공예품인 것 마냥 조심스럽게 안아들고 집으로 향하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웨일스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런 웨일스의 표정을 마주보던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웨일스의 작은 머리통을 턱으로 꾹꾹 누르며 마구 비벼주자 꺄르르 하는 귀여운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조금 컸다고 형을 못알아보면 어떡해. 난 우리 작은 씨앗이 내 나이가 됐을 때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더라도 바로 알아볼 수 있는데.”
“어, 어어?”
“자, 만져봐. 웨일스가 침대에서 떨어지는거 받다가 생긴 땜빵이 아직도 남아있…”
“나, 나 안 그랬어어!”

그러자 또 다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를 보며 웨일스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고…─







“아.”

거기서 눈이 떠졌다.
웨일스가 잠시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다, 상체를 일으켜 뒷통수를 긁적였다. 꿈 속의 형과 같은 길이인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쿡쿡 찔렀다.
관리가 귀찮아 확 자르고 싶은 것도 참고 길렀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형은 자르기 귀찮아서 그냥 길렀던 것이 아닌가 싶다. 형제가 이상한 방향으로 꼭 닮았다며 짧게 웃었다.

'난 우리 작은 씨앗이 내 나이가 됐을 때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더라도 바로 알아볼 수 있는데.'

지금의 웨일스는 꿈에 나왔던 형과 같은 나이다.
무심코 거울을 바라보았다. 당시의 형보다 조금 작은 체구와 아직도 앳된 티가 나는 이목구비가 불만스러워 뺨이 살짝 부풀었다.
거울을 잠시 째려보다, 이내 조그맣게 물었다.

“형이 지금 날 보면 바로 알아봐줄까.”

알아봐주겠지. 자신이 못할 일은 입에 담지 않는 사람이니까.
항상 품에서 달큰한 연유냄새가 났지만, 사실 그는 단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순전히 어린동생을 위해 그런 냄새가 품에 배였던 것이었다. 그런 사람이니, 못알아볼 리가 없었다. 절대로.
신년 첫 꿈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나왔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바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뻥 뚫린듯한 느낌이 들었건만, 마치 그 구멍을 채우기 위해서라는 듯이. 혹은 앞으로 이어질 새로운 나날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나타났다는 듯이.
온화하게 웃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에 걸쳐놓은 두터운 숄을 걸쳤다. 창가로 느긋히 걸어가 창문을 여니 깨끗한 바람이 뺨을 때렸다.
서늘한 바람을 잔뜩 들이켰다. 목구멍 안쪽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며 살짝 몽롱했던 정신이 깨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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