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48 [채팅]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잡담방 -338- (1001)
종료
작성자:에주
작성일:2026-01-22 (목) 05:59:04
갱신일:2026-01-27 (화) 02:27:51
#0에주(dkJDpTFpYC)2026-01-22 (목) 05:59:04
위키: https://opentalkwiki.mycafe24.com/wiki.php/%EB%8C%80%EB%AC%B8
1:1 카톡방: >8525>
번개모임방: >5108>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á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1:1 카톡방: >8525>
번개모임방: >5108>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á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610두 사람(qDBAEOdit6)2026-01-23 (금) 13:30:31
서기 2046년.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분기점을 맞이한 뒤, 기묘한 안정을 되찾았다. 육체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영원불멸의 데이터가 되어 전뇌 낙원 '에덴'으로 이주한 80%의 인류. 그리고 썩어 문드러질 육신을 입고 쇠락해가는 지상에 남겨진 나머지 20%의 인류.
혹자는 이를 두고 인류의 분열이라 칭했지만, 실상은 거대한 기계 장치와 그 장치를 돌리는 정비공의 관계에 가까웠다. 완벽한 삶을 보장하는 에덴은 꿈을 꾸는 뇌였고, 지상은 그 뇌가 썩지 않도록 영양분을 공급하고 열을 식히는 심장. 이상적인 공의존관계.
그 결과 과거 도쿄의 베드타운이자 관광지였던 가마쿠라는 이제 에덴 관리국 직원들의 거주 구역이 되었다. 첨단 기술은 저 멀리 태평양 기지나 독일 지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곳은 20세기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직원들의 가족들이 머무는, 말하자면 거대한 사택 단지. 나, 이치노세 아오이는 그 사택 단지의 구석진 곳, 지은 지 50년 된 목조 아파트 '해풍장'에 살고 있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다녀왔습니다."
이런 낡아빠진 아파트에 살만한 사람은 많지 않아서 사실상 2층짜리 목조 아파트 전체를 나 혼자 쓰게 되어버린 탓에 습관처럼 내뱉은 인사에 대답하는 건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와 창틈으로 스며든 눅눅한 소금 냄새뿐이었다. 아버지는 독일 지부의 메인 서버 쿨링 시스템을 점검하러 떠났고, 어머니는 태평양 제3지부 '아틀란티스'에서 해저 케이블 유지보수를 총괄하고 있다. 두 분 다 에덴을 지탱하는 엘리트 엔지니어였지만, 그 덕분에 외동딸인 나는 3년째 강제적인 자취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가방을 방구석에 던져놓고 교복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하필이면 에어컨이 저번 달에 고장나버렸고 엔지니어는 오려면 한 달은 걸린다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공용 창고에서 꺼낸 선풍기는 달달거리는 소음만 낼 뿐 미지근한 바람을 뱉어냈다. 냉장고를 열어 콜라를 꺼내 마시는 것이 하교 후의 유일한 낙이었다.
창밖으로 에노시마의 전망대가 보였다. 저곳 지하에도 거대한 데이터 허브가 돌아가고 있겠지. 에덴으로 떠난 친구들은 지금쯤 가상 테마파크에서 중력의 제약 없이 날아다니고 있을까. 지루했다. 평화롭다 못해 나른한 오후였다. 지상에 남은 녀석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찌되건 해풍장이 있는 곳은 바닷가 근처라 시내까지 나갔다 돌아오기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귀찮기도 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평온한 인생, 이대로 늙고 적당한 대학에 들어가서 기술을 배운 다음 엄마나 아빠의 직업을 잇는 것이 지상에 남은 사람들의 평범한 삶. 분명 나도 이대로 언젠가...
쿠우우웅-!
세상이 뒤집히는 소리가 났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낡은 아파트의 뼈대가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고, 찬장의 그릇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지진인가?! 아니, 느낌이 달라. 땅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에서 무언가 거대한 질량이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충격이었다.
콰아아앙-!
"으아악!"
나는 중심을 잃고 부엌 바닥에 나뒹굴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파열음과 함께 시야가 뿌연 먼지로 뒤덮였다. 건물이 무너지는 건가? 여기서 죽는 건가? 아직 연애도 못해봤는데!!!
"콜록, 콜록! 뭐야, 드론 추락? 가스 폭발? 우주쓰레기인가...? 그보다 왜 주거구역에..."
입과 코를 막으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매캐한 흙먼지가 걷히면서 드러난 광경에,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입을 떡 벌렸다.
내 방이 사라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천장이 있어야 할 곳이 뻥 뚫려 있었다. 늦은 오후의 새파란 하늘이 찢어진 지붕 사이로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할부로 산 소중한 냉장고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지름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은색 금속 구체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이게… 대체…."
위성 추락? 미사일?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50년 된 목조 건물이 붕괴되지 않고 버틴 게 기적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중게를 달리는건 참지 못해서 잠깐 그쪽으로 신경을 쏟고있자니 얼마 지나지않아 구체 주변으로 치이익-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 방은 순식간에 사우나처럼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찼다.
도망쳐야 한다는 현실감각과, 내 집이 박살났다는 현실 파악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때였다.
기기긱, 쾅!
구체의 표면이 억지로 뜯겨나가듯 열렸다. 매끄러운 금속판이 벌집처럼 갈라지더니, 자욱한 증기 속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푸하-! 켁, 켁! 으아, 공기 밀도가 왜 이래? 필터가 작동을 안하는건가...?"
은색 머리카락을 산발한 여자아이였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은 방금전의 열기 탓인지 이곳 저곳이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소녀는 구체 위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내 찢어진 벽지 조각을 집어 들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우와…! 이 눅눅한 곰팡내! 그리고 이 까끌까끌한 먼지의 감촉! 드디어 지상에 도착했어! 쩐다, 데이터보다 훨씬 해상도가 높아!"
소녀는 감격에 겨운 듯 박살나버린 더러운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싹싹 쓸어보았다. 녹색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번들거렸다. 그녀의 말투나 행동은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했지만, 동시에 기묘한 기품이 느껴졌다.
"저, 저기요? 헬로...?"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자, 소녀가 고개를 휙 돌렸다.
"응? 뭐야, 네가 이 구역의 관리자야?"
"…관리자? 아니, 난 그냥 고등학생인데. 여긴 내 집이고."
"집? 아하, 개인용 주거 모듈이구나! 생각보다 내구도가 약하네. 살짝 닿았는데 구멍이 나버렸어."
살짝 닿았다니. 저건 폭격 수준이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을 누르며 삿대질을 했다.
"너, 내 천장 어쩔 거야! 그보다 누구야!? 에덴 관리국에서 보낸 신형 안드로이드?"
"안드로이드라니, 무례하네! 루나는 오리지널 휴먼이야! 100% 인간인거지! 에덴 제1구역, 후지와라 루나!! 물론 지금은 육체를 입었으니 그냥 루나라고 불러도 좋아."
"에덴...? 제 1구역이면... 최상위 계층이잖아...?"
자신을 루나라고 칭한 소녀는 콧방귀를 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그야 루나는 에덴의 총 관리 권한을 이어받기 위해서 태어났으니까!"
"...그런 대단한 사람이 여기에는 왜 온거야?““그게 말이지~ 루나는 에덴이 지루해져 버린거야!. 에덴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잖아? 온도도 항상 적절하고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고!!!"
"좋은거잖아."
"아니야아!!! 아무튼! 에덴에는 낭만이 없어!!! 모든게 완벽하고 그래서 더 나아지지 않아!! 그러다가 우연히 보게 된거야!!! 지상의 영상을!!! 산에 들에 통제되지 않는 자연기후!!! 후후 에덴의 총 관리자라면 지상의 사람들도 책임지는 자리잖아?! 그래서 너희 관리자들이 사는 이 거친 세상을 직접 체험하러 온 거야. 이걸 고대 용어로 가출이라고 부른다면서?"
녀석은 만세를 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루나는 이제 자유야! 중력 만세! 마찰력 만세! 으악!"
착지의 순간, 녀석이 비틀거리며 내 쪽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가상 현실의 물리 엔진과는 다른 진짜 중력에 적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녀석을 받아안았다.
쿵.
묵직했다. 단순한 데이터 덩어리가 아니었다. 따뜻한 체온, 말랑한 감촉, 그리고 쿵쿵 뛰는 심장 소리. 에덴의 사람들은 피지컬 바디로 되돌아 갈 수 없는거 아니었나? 그럼 뭐야 이거 불법 바디? 나 체포당하는거야?
그 순간이었다.
[띠링-]
[비인가 접속 감지. 로컬 관리자 권한을 활성화합니다.]
[대상: 이치노세 아오이.]
허공에 붉은 홀로그램 창이 뜨더니 기계적인 음성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내 오른쪽 손목과 녀석의 목덜미에 푸른색 고리 문양이 뱀처럼 감겨들며 빛을 냈다.
"으악! 이게 뭐야? 뜨거워!"
"호오? 이거 로컬 인증키네? 역시나 루나쨩! 운이 좋다니까! 그보다 너는 아오이라고 하는구나!!! 루나는 루나!!! 후지와라 루나!!!"
"그건 이미 들었어!!!"
녀석은 자기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태평하게 웃었다.
[경고: 해당 바디는 '미인가 상태'입니다. 보안 프로토콜 '테더링(Tethering)'을 가동합니다. 이탈 허용 범위 10m.]
"…뭐야? 10미터? 아니 이해안되는데!!!"
나는 내 손목에 생긴 문신 같은 고리를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았다. 테더링이라니, 핫스팟 켤 때나 쓰는 용어 아닌가?
"뭐야 이 ui는...?! 테더링이라니?"
"응? 글쎄? 루나는 복잡한 건 잘 모르겠는데. 그보다 배고파! 루나, 밥 줘! 에덴의 데이터 푸드도 맛있지만, 역시 진짜 유기물 덩어리를 씹어보고 싶어!"
녀석은 내 품에서 빠져나와 엉덩이를 탁탁 털었다.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무너진 잔해를 넘어 현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잠깐만! 설명은 하고 가야…! 그보다 옷은 입어야할거 아니야!!"
하지만 녀석의 발걸음은 현관 문턱을 넘지 못했다.
파지지직-!
"따가각! 꺄아악!"
보이지 않는 전기 벽에 부딪힌 듯,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녀석은 바닥을 구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야야야! 뭐야 이거! 머리가 찌릿찌릿했어! 방화벽이야? 아니면 해킹인가?! 피지컬 바디는 해킹에 면역일텐데!!!"
"설마 아까 10미터라고 했던게…"
나는 멍하니 뚫린 천장과 바닥에서 뒹구는 금발의 불청객을 번갈아 보았다. 상황이 정리되었다. 천장은 뚫렸고, 에덴에서 가출한 아가씨가 떨어졌고, 그 아가씨는 보안 시스템 때문에 내 곁에 묶여버렸다.
"좋아, 상황을 정리하자. 즉…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넌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다는 소리겠네. 아니, 정확히는 나랑 10미터 이상 떨어질 수 없다는 거야."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루나는 지상을 탐험해야 한다고! 바다도 갈 거고, 축제도 즐길거란 말이야!!"
"그럴거라면 에덴에서 하는 편이 더 낫잖아, 이 바보야."
“감! 성! 이! 다! 른! 거! 야!"
녀석은 씩씩거리며 다시 현관으로 돌진하려 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녀석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잠, 기다려! 그렇게 가면 또 감전 될 거 아냐!"
"놔! 놓으라고! 루나는 관리자 명령 따위 안 들어! 루나는 고귀한 혈통이라고!"
"혈통이고 뭐고, 위범 바디를 쓰니까 그렇게 되는 거잖아!"
우리는 무너진 방 한가운데서 한참을 실랑이했다. 에덴에서 온 고귀한 아가씨는 의외로 힘이 장사였다. 결국 녀석의 배에서 천둥 같은 꼬르륵 소리가 울린 후에야 소란은 잦아들었다.
"…루나는 배가 고파. 당장 에너지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아오이를 물어뜯을지도 몰라."
"알았어, 알았다고. 일단 나가자. 어디사는 누구 덕분에 여기서 뭘 해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에? 누구야!? 루나가 혼내줄까?!"
"말을 말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와 체격차가 크지 않아서 루나에게 대충 옷을 입히고 지갑과 스마트폰을 챙겼다. 먼지 묻은 교복 치마를 대충 털어내고 현관문을 열었다. 루나는 내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야, 너무 붙지 마. 10미터라며. 좀 떨어져서 걸어."
"싫어! 또 벽에 부딪히면 아프잖아. 루나는 아오이의 그림자가 될 거야."
녀석은 내 교복 셔츠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우리는 마치 기차놀이를 하듯 낡은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거리로 나오자 붉은 노을이 가마쿠라의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평소에는 지겹도록 보던 풍경이었지만, 루나에게는 모든 것이 경이로운 모양이었다.
"우와아…! 저게 태양의 스펙트럼 산란현상이구나! 에덴의 하늘은 항상 코드로 고정되어 있는데, 여긴 색깔이 계속 변해!"
"에덴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는 있잖아. 노을 정도는 특이할 것도 없지 않아?"
"에덴이라고 해서 모든 장소에 실시간 흐름을 적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뭐 그야 지상의 모습을 재현해본 적도 있지만 직접 보는 것만한게 없네!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정말로 낭만적이야!"
녀석은 길가에 핀 잡초, 녹슨 우체통, 심지어 전봇대에 붙은 '강아지를 찾습니다' 전단지까지 신기한 듯 쳐다봤다. 손가락으로 낡은 담벼락을 훑으며 "이 거친 텍스처 좀 봐! 그래픽 디자이너의 고집이 느껴져!"라고 감탄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이 힐끔거렸다. 금발의 외국인 소녀가 헐렁한 셔츠를 입고 교복 입은 여학생 옷자락을 잡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그보다 동네에 사람이 없다보니 대부분은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아오이! 저건 뭐야? 저 네모난 상자는?"
"자판기."
"저기서 물이 생성되는 거야?"
"돈 넣으면 나오는 거야. 에덴 관리국 서버실에도 있잖아?"
"루나는 그런 하위 구역엔 안 가봤어! 손짓 하나면 만들어지는 걸!"
역시 귀하신 몸이군. 도대체 에덴에서 무슨 생활을 했길래 자판기도 모르는 걸까. 우리는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열리자, 루나가 화들짝 놀라 내 뒤로 숨었다.
"문이… 문이 루나를 인식했어! 공격 태세?!"
"센서야, 센서. 제발 좀 조용히 해. 남들이 다 쳐다보잖아."
편의점 안은 한산했다. 냉방이 잘 되어 있어 쾌적했다. 루나는 진열된 상품들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형형색색의 과자 봉지, 음료수, 도시락들이 녀석에게는 보물처럼 보이는 듯했다.
"이게 다 물리적 식량이야? 루나는 이거 다 먹어보고 싶어. 전부 다!"
"돈 내야 해. 그리고 다 먹으면 배탈 날걸."
"배탈? 그게 뭐야? 시스템 에러?"
"비슷해. 배가 아주 아프고 화장실을 못 나오게 되지."
"오… 흥미로운 디버프네."
루나는 컵라면 코너 앞에서 멈춰 섰다. 용기에 그려진 조리 예시 사진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 꼬불꼬불한 면… 데이터 아카이브에서 봤어. 라멘!!! 고대 지구인들의 소울 푸드라던데."
"고대라니… 지금도 현역이거든."
나는 삼각김밥 두 개와 컵라면, 그리고 콜라를 집어 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근처의 공원의 벤치에 앉아 적당히 식사를 준비했다. 이제 곧 여름이지만 저녁에는 아직 선선한 탓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컵라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제법 괜찮아보였다. 루나는 젓가락을 쥐는 법도 몰라 주먹으로 쥐고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잠깐 기다려 봐."
나는 젓가락질을 가르쳐 주려다 포기하고, 그냥 플라스틱 포크를 가져와 쥐여주었다. 루나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면발을 빨아들였다.
"앗, 뜨거! 입안이 공격당했어!"
"호호 불어서 먹으라고."
"우물우물… 으음! 짜다! 그리고 매워! 미각 센서가 과부하 걸릴 것 같아!"
“마침 한국 페어 중이니까. 묘하게 매운게 많단 말이지."
녀석은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멈추지 않고 면을 흡입했다.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서야 녀석은 만족스러운 듯 배를 두드렸다.
"하아… 루나는 이제야 살아있다는 걸 느껴. 에덴의 밥은 맛있지만.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
어느새 해가 완전히 저물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다. 나는 빈 컵라면 용기를 정리하며 한숨을 쉬었다. 현실적인 문제가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응? 뭐가?"
"집 말이야. 네가 부숴버린 탓에 잘 수가 없게 됐잖아. 당장 오늘 밤은 어디서 자냐고. 참고로 우리 부모님한테 연락하면 넌 바로 강제 송환이야. 불법 바디니까 그대로 폐기처분 될 수도 있고. 그보다 에덴에도 수감같은게 있어?"
루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에덴이 하늘에 떠오른 이후 지상의 불빛이 줄어든 덕에 하늘에는 융단처럼 별이 흐르고 있는 걸 루나는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루나는 아오이랑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어. 아까 그 집 바닥도 꽤 푹신하던데?"
"아니 천장부터 바닥까지 다 부숴졌잖아. 그런데서 자면 죽을걸."
호텔은 미성년자라 안 되고, 넷카페는 둘이서는 못쓴다. 무엇보다 이 수상한 금발 머리 녀석을 데리고 갔다가 무슨 사고를 칠지 몰랐다. 신분증도 없을 텐데 말이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학교로 가자."
"학교? 그게 뭐야? 교육용 데이터 센터?"
"비슷해. 밤에는 비어있으니까. 당직실이라면 잘 수 있을 거야. 내가 보안 코드를 좀 알거든."
"오! 잠입 미션이야? 루나는 그런 거 좋아해! 007같은거지?!"
“묘하게 올드하네."
루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걸어서 15분정도의 거리였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던 밤의 학교는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정문은 잠겨 있었지만, 개구멍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다.
"자, 여기로 들어갈 거야."
나는 덤불 뒤에 숨겨진 낡은 철조망 구멍을 가리켰다. 루나는 눈을 반짝였다.
"백도어네! 담당자는 패치도 안 하고 뭐 하는 거지?"
"조용히 해. 들키면 바로 경찰서행이니까."
내가 먼저 구멍을 통과하고, 루나가 뒤따라 들어왔다. 셔츠가 철조망에 걸릴 뻔했지만, 녀석은 유연하게 몸을 비틀어 빠져나왔다. 불법이지만 최신형의 몸이라 그런지 묘하게 운동능력이 좋단 말이지.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달빛이 모래 바닥을 하얗게 비추는 걸 뒤로 하고 우리는 본관 건물의 뒤편 창문으로 향했다.
"잠겨있네. 이런 데에선 왜 물리적인걸 써서..."
"후후, 비켜봐 아오이. 루나가 해결해 줄게."
루나가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녀석의 눈이 금색으로 빛나더니 창문의 잠금장치가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풀렸다.
"뭐야? 이런 기능도 있는거야?"
"후후후!!! 기본적인 물리 해킹이야! 에덴에서는 숨 쉬는 것보다 쉬운 일이지."
우리는 창문을 넘어 복도로 들어섰다. 복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비상구 유도등의 초록색 불빛만이 으스스하게 빛나고 있었다.
"뭔가 무섭네…"
"겁쟁이네, 아오이. 유령 같은 건 데이터 잔재에 불과한데! 어쩔 수 없지! 루나쨩이 손을 잡아드리지요!"
"됐네요. 데이터고 뭐고, 무슨 괴담 같은 것도 돈단 말이야."
우리는 발소리를 죽이며 1층 당직실로 향했다. 다만 가는 길에 사소한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10m라는 거리 제한으로 우리는 서로의 움직임에 극도로 예민해져야 했다. 내가 멈추면 루나도 멈춰야 했고, 루나가 딴청을 피우면 나도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내 쪽에서 의도적으로 떨어지려고 하면 그 전기충격이 나한테도 가해진다는 것도 확인했고. 어째서?
"야, 과학실 쪽으로 가지 마! 위험하잖아!"
"하지만 인체 구조 모델이었나? 루나는 그거 보고 싶은데!"
"안 돼! 다음에!!!"
나는 억지로 루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녀석은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따라왔다. 당직실 문은 다행히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낡은 침대와 책상, 그리고 커피 포트가 놓여 있는 좁은 방이었다.
"좁아. 에덴의 내 개인실 화장실보다 좁아."
"불평하지 마. 지붕 있고 벽 있으면 감지덕지야. 애초에 누구 때문에 이런데에 온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아오이의 가난?"
"윽… 아픈곳을 찌르다니…"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루나는 방 안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러보다가, 책상 위에 놓인 거울을 발견했다.
"이게… 나?"
녀석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헝클어진 금발, 얼굴에 묻은 검댕, 담을 지나며 살짝 찢어진 티셔츠. 에덴에서 보던 완벽한 아바타와는 거리가 먼 몰골이었다.
"더러워졌네."
"씻고 싶어도 참아. 물 틀면 소리 나서 들킬 수도 있어."
"아니…."
루나는 손가락으로 거울 속 자신의 뺨에 묻은 흙먼지를 문질렀다.
"마음에 들어!!!"
"뭐?"
"에덴에서는 거울을 보면 항상 완벽한 모습만 있었어. 수정 불가능한 완벽함. 하지만 지금은 내가 어디서 굴렀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다 기록되어 있잖아!!! 이게 진짜 나라는 느낌이 들어."
녀석은 거울을 보며 방긋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 천진난만해서, 나는 뭐라 대꾸할 말을 잃었다. 더러운 게 마음에 든다니.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다.
"저기, 루나. 하나만 묻자. 왜 굳이 에덴을 버리고 여기로 온 거야? 여긴 덥고, 춥고, 냄새나고, 불편한 것투성이잖아."
내 질문에 루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고 곧장 내 곁에 누워 웃으며 말했다. 어둠 속에서 녹색 눈동자가 은은하게 빛났다.
"불편하잖아."
"뭐?"
"에덴은 너무 편해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 배고픔도, 추위도, 아픔도 없어. 심지어 나한테는 제약이 더 빡세서 슬픔도 0.6초면 사라졌거든. 그건… 살아있는 게 아니야. 그냥 존재하는 거지."
루나는 키득거리면서 웃으며 슬쩍 더 다가왔다. 이불이 작아서인지 조금 서늘하긴 했지만 루나는 묘하게 체온이 높아서인지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루나는 살아보고 싶었어. 이렇게 배가 고프고, 발이 아프고, 10미터밖에 못 움직여서 짜증나지만! 라멘도 먹었어!“
녀석의 말에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나는 항상 이곳을 떠나고 싶어 했다. 부모님이 계신, 저 완벽한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온 소녀는, 내가 지긋지긋해하던 이 낡은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오이를 만났잖아? 루나는 벌써 지상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
"…칭찬으로 들을게."
자세를 바로잡고 눈을 감았다. 더이상 얘기해봐야 나아질게 없을테니까.
"자.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 하니까. 경비 아저씨 오기 전에."
"아오이는?"
"잘 거야. 내일은 학교도 쉬니까."
"그럼 하루종일 놀 수 있겠다!!!"
10m의 보이지 않는 사슬로 묶인 채, 우리는 그렇게 첫날밤을 맞이했다. 창밖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에덴에는 없는, 불규칙하고 시끄러운 생명의 소리였다.
"아오이."
"왜 또."
"잘 자."
녀석의 숨소리가 금세 고르게 변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천장을, 아니 당직실의 멀쩡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집은 박살 났고, 불법 체류자가 생겼고, 내일은 어떻게 될지 막막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혼자 있을 때보다 덜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미터. 도망칠 수도 없지만, 동시에 혼자 남겨질 수도 없는 거리.
확실한 것은, 이전의 삶과는 무엇 하나라도 크게 달라질거란 점이었다.
어쩐지 조금 웃음이 났다.
혹자는 이를 두고 인류의 분열이라 칭했지만, 실상은 거대한 기계 장치와 그 장치를 돌리는 정비공의 관계에 가까웠다. 완벽한 삶을 보장하는 에덴은 꿈을 꾸는 뇌였고, 지상은 그 뇌가 썩지 않도록 영양분을 공급하고 열을 식히는 심장. 이상적인 공의존관계.
그 결과 과거 도쿄의 베드타운이자 관광지였던 가마쿠라는 이제 에덴 관리국 직원들의 거주 구역이 되었다. 첨단 기술은 저 멀리 태평양 기지나 독일 지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곳은 20세기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직원들의 가족들이 머무는, 말하자면 거대한 사택 단지. 나, 이치노세 아오이는 그 사택 단지의 구석진 곳, 지은 지 50년 된 목조 아파트 '해풍장'에 살고 있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다녀왔습니다."
이런 낡아빠진 아파트에 살만한 사람은 많지 않아서 사실상 2층짜리 목조 아파트 전체를 나 혼자 쓰게 되어버린 탓에 습관처럼 내뱉은 인사에 대답하는 건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와 창틈으로 스며든 눅눅한 소금 냄새뿐이었다. 아버지는 독일 지부의 메인 서버 쿨링 시스템을 점검하러 떠났고, 어머니는 태평양 제3지부 '아틀란티스'에서 해저 케이블 유지보수를 총괄하고 있다. 두 분 다 에덴을 지탱하는 엘리트 엔지니어였지만, 그 덕분에 외동딸인 나는 3년째 강제적인 자취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가방을 방구석에 던져놓고 교복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하필이면 에어컨이 저번 달에 고장나버렸고 엔지니어는 오려면 한 달은 걸린다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공용 창고에서 꺼낸 선풍기는 달달거리는 소음만 낼 뿐 미지근한 바람을 뱉어냈다. 냉장고를 열어 콜라를 꺼내 마시는 것이 하교 후의 유일한 낙이었다.
창밖으로 에노시마의 전망대가 보였다. 저곳 지하에도 거대한 데이터 허브가 돌아가고 있겠지. 에덴으로 떠난 친구들은 지금쯤 가상 테마파크에서 중력의 제약 없이 날아다니고 있을까. 지루했다. 평화롭다 못해 나른한 오후였다. 지상에 남은 녀석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찌되건 해풍장이 있는 곳은 바닷가 근처라 시내까지 나갔다 돌아오기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귀찮기도 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평온한 인생, 이대로 늙고 적당한 대학에 들어가서 기술을 배운 다음 엄마나 아빠의 직업을 잇는 것이 지상에 남은 사람들의 평범한 삶. 분명 나도 이대로 언젠가...
쿠우우웅-!
세상이 뒤집히는 소리가 났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낡은 아파트의 뼈대가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고, 찬장의 그릇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지진인가?! 아니, 느낌이 달라. 땅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에서 무언가 거대한 질량이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충격이었다.
콰아아앙-!
"으아악!"
나는 중심을 잃고 부엌 바닥에 나뒹굴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파열음과 함께 시야가 뿌연 먼지로 뒤덮였다. 건물이 무너지는 건가? 여기서 죽는 건가? 아직 연애도 못해봤는데!!!
"콜록, 콜록! 뭐야, 드론 추락? 가스 폭발? 우주쓰레기인가...? 그보다 왜 주거구역에..."
입과 코를 막으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매캐한 흙먼지가 걷히면서 드러난 광경에,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입을 떡 벌렸다.
내 방이 사라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천장이 있어야 할 곳이 뻥 뚫려 있었다. 늦은 오후의 새파란 하늘이 찢어진 지붕 사이로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할부로 산 소중한 냉장고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지름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은색 금속 구체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이게… 대체…."
위성 추락? 미사일?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50년 된 목조 건물이 붕괴되지 않고 버틴 게 기적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중게를 달리는건 참지 못해서 잠깐 그쪽으로 신경을 쏟고있자니 얼마 지나지않아 구체 주변으로 치이익-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 방은 순식간에 사우나처럼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찼다.
도망쳐야 한다는 현실감각과, 내 집이 박살났다는 현실 파악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때였다.
기기긱, 쾅!
구체의 표면이 억지로 뜯겨나가듯 열렸다. 매끄러운 금속판이 벌집처럼 갈라지더니, 자욱한 증기 속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푸하-! 켁, 켁! 으아, 공기 밀도가 왜 이래? 필터가 작동을 안하는건가...?"
은색 머리카락을 산발한 여자아이였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은 방금전의 열기 탓인지 이곳 저곳이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소녀는 구체 위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내 찢어진 벽지 조각을 집어 들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우와…! 이 눅눅한 곰팡내! 그리고 이 까끌까끌한 먼지의 감촉! 드디어 지상에 도착했어! 쩐다, 데이터보다 훨씬 해상도가 높아!"
소녀는 감격에 겨운 듯 박살나버린 더러운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싹싹 쓸어보았다. 녹색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번들거렸다. 그녀의 말투나 행동은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했지만, 동시에 기묘한 기품이 느껴졌다.
"저, 저기요? 헬로...?"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자, 소녀가 고개를 휙 돌렸다.
"응? 뭐야, 네가 이 구역의 관리자야?"
"…관리자? 아니, 난 그냥 고등학생인데. 여긴 내 집이고."
"집? 아하, 개인용 주거 모듈이구나! 생각보다 내구도가 약하네. 살짝 닿았는데 구멍이 나버렸어."
살짝 닿았다니. 저건 폭격 수준이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을 누르며 삿대질을 했다.
"너, 내 천장 어쩔 거야! 그보다 누구야!? 에덴 관리국에서 보낸 신형 안드로이드?"
"안드로이드라니, 무례하네! 루나는 오리지널 휴먼이야! 100% 인간인거지! 에덴 제1구역, 후지와라 루나!! 물론 지금은 육체를 입었으니 그냥 루나라고 불러도 좋아."
"에덴...? 제 1구역이면... 최상위 계층이잖아...?"
자신을 루나라고 칭한 소녀는 콧방귀를 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그야 루나는 에덴의 총 관리 권한을 이어받기 위해서 태어났으니까!"
"...그런 대단한 사람이 여기에는 왜 온거야?““그게 말이지~ 루나는 에덴이 지루해져 버린거야!. 에덴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잖아? 온도도 항상 적절하고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고!!!"
"좋은거잖아."
"아니야아!!! 아무튼! 에덴에는 낭만이 없어!!! 모든게 완벽하고 그래서 더 나아지지 않아!! 그러다가 우연히 보게 된거야!!! 지상의 영상을!!! 산에 들에 통제되지 않는 자연기후!!! 후후 에덴의 총 관리자라면 지상의 사람들도 책임지는 자리잖아?! 그래서 너희 관리자들이 사는 이 거친 세상을 직접 체험하러 온 거야. 이걸 고대 용어로 가출이라고 부른다면서?"
녀석은 만세를 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루나는 이제 자유야! 중력 만세! 마찰력 만세! 으악!"
착지의 순간, 녀석이 비틀거리며 내 쪽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가상 현실의 물리 엔진과는 다른 진짜 중력에 적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녀석을 받아안았다.
쿵.
묵직했다. 단순한 데이터 덩어리가 아니었다. 따뜻한 체온, 말랑한 감촉, 그리고 쿵쿵 뛰는 심장 소리. 에덴의 사람들은 피지컬 바디로 되돌아 갈 수 없는거 아니었나? 그럼 뭐야 이거 불법 바디? 나 체포당하는거야?
그 순간이었다.
[띠링-]
[비인가 접속 감지. 로컬 관리자 권한을 활성화합니다.]
[대상: 이치노세 아오이.]
허공에 붉은 홀로그램 창이 뜨더니 기계적인 음성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내 오른쪽 손목과 녀석의 목덜미에 푸른색 고리 문양이 뱀처럼 감겨들며 빛을 냈다.
"으악! 이게 뭐야? 뜨거워!"
"호오? 이거 로컬 인증키네? 역시나 루나쨩! 운이 좋다니까! 그보다 너는 아오이라고 하는구나!!! 루나는 루나!!! 후지와라 루나!!!"
"그건 이미 들었어!!!"
녀석은 자기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태평하게 웃었다.
[경고: 해당 바디는 '미인가 상태'입니다. 보안 프로토콜 '테더링(Tethering)'을 가동합니다. 이탈 허용 범위 10m.]
"…뭐야? 10미터? 아니 이해안되는데!!!"
나는 내 손목에 생긴 문신 같은 고리를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았다. 테더링이라니, 핫스팟 켤 때나 쓰는 용어 아닌가?
"뭐야 이 ui는...?! 테더링이라니?"
"응? 글쎄? 루나는 복잡한 건 잘 모르겠는데. 그보다 배고파! 루나, 밥 줘! 에덴의 데이터 푸드도 맛있지만, 역시 진짜 유기물 덩어리를 씹어보고 싶어!"
녀석은 내 품에서 빠져나와 엉덩이를 탁탁 털었다.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무너진 잔해를 넘어 현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잠깐만! 설명은 하고 가야…! 그보다 옷은 입어야할거 아니야!!"
하지만 녀석의 발걸음은 현관 문턱을 넘지 못했다.
파지지직-!
"따가각! 꺄아악!"
보이지 않는 전기 벽에 부딪힌 듯,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녀석은 바닥을 구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야야야! 뭐야 이거! 머리가 찌릿찌릿했어! 방화벽이야? 아니면 해킹인가?! 피지컬 바디는 해킹에 면역일텐데!!!"
"설마 아까 10미터라고 했던게…"
나는 멍하니 뚫린 천장과 바닥에서 뒹구는 금발의 불청객을 번갈아 보았다. 상황이 정리되었다. 천장은 뚫렸고, 에덴에서 가출한 아가씨가 떨어졌고, 그 아가씨는 보안 시스템 때문에 내 곁에 묶여버렸다.
"좋아, 상황을 정리하자. 즉…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넌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다는 소리겠네. 아니, 정확히는 나랑 10미터 이상 떨어질 수 없다는 거야."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루나는 지상을 탐험해야 한다고! 바다도 갈 거고, 축제도 즐길거란 말이야!!"
"그럴거라면 에덴에서 하는 편이 더 낫잖아, 이 바보야."
“감! 성! 이! 다! 른! 거! 야!"
녀석은 씩씩거리며 다시 현관으로 돌진하려 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녀석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잠, 기다려! 그렇게 가면 또 감전 될 거 아냐!"
"놔! 놓으라고! 루나는 관리자 명령 따위 안 들어! 루나는 고귀한 혈통이라고!"
"혈통이고 뭐고, 위범 바디를 쓰니까 그렇게 되는 거잖아!"
우리는 무너진 방 한가운데서 한참을 실랑이했다. 에덴에서 온 고귀한 아가씨는 의외로 힘이 장사였다. 결국 녀석의 배에서 천둥 같은 꼬르륵 소리가 울린 후에야 소란은 잦아들었다.
"…루나는 배가 고파. 당장 에너지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아오이를 물어뜯을지도 몰라."
"알았어, 알았다고. 일단 나가자. 어디사는 누구 덕분에 여기서 뭘 해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에? 누구야!? 루나가 혼내줄까?!"
"말을 말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와 체격차가 크지 않아서 루나에게 대충 옷을 입히고 지갑과 스마트폰을 챙겼다. 먼지 묻은 교복 치마를 대충 털어내고 현관문을 열었다. 루나는 내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야, 너무 붙지 마. 10미터라며. 좀 떨어져서 걸어."
"싫어! 또 벽에 부딪히면 아프잖아. 루나는 아오이의 그림자가 될 거야."
녀석은 내 교복 셔츠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우리는 마치 기차놀이를 하듯 낡은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거리로 나오자 붉은 노을이 가마쿠라의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평소에는 지겹도록 보던 풍경이었지만, 루나에게는 모든 것이 경이로운 모양이었다.
"우와아…! 저게 태양의 스펙트럼 산란현상이구나! 에덴의 하늘은 항상 코드로 고정되어 있는데, 여긴 색깔이 계속 변해!"
"에덴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는 있잖아. 노을 정도는 특이할 것도 없지 않아?"
"에덴이라고 해서 모든 장소에 실시간 흐름을 적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뭐 그야 지상의 모습을 재현해본 적도 있지만 직접 보는 것만한게 없네!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정말로 낭만적이야!"
녀석은 길가에 핀 잡초, 녹슨 우체통, 심지어 전봇대에 붙은 '강아지를 찾습니다' 전단지까지 신기한 듯 쳐다봤다. 손가락으로 낡은 담벼락을 훑으며 "이 거친 텍스처 좀 봐! 그래픽 디자이너의 고집이 느껴져!"라고 감탄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이 힐끔거렸다. 금발의 외국인 소녀가 헐렁한 셔츠를 입고 교복 입은 여학생 옷자락을 잡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그보다 동네에 사람이 없다보니 대부분은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아오이! 저건 뭐야? 저 네모난 상자는?"
"자판기."
"저기서 물이 생성되는 거야?"
"돈 넣으면 나오는 거야. 에덴 관리국 서버실에도 있잖아?"
"루나는 그런 하위 구역엔 안 가봤어! 손짓 하나면 만들어지는 걸!"
역시 귀하신 몸이군. 도대체 에덴에서 무슨 생활을 했길래 자판기도 모르는 걸까. 우리는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열리자, 루나가 화들짝 놀라 내 뒤로 숨었다.
"문이… 문이 루나를 인식했어! 공격 태세?!"
"센서야, 센서. 제발 좀 조용히 해. 남들이 다 쳐다보잖아."
편의점 안은 한산했다. 냉방이 잘 되어 있어 쾌적했다. 루나는 진열된 상품들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형형색색의 과자 봉지, 음료수, 도시락들이 녀석에게는 보물처럼 보이는 듯했다.
"이게 다 물리적 식량이야? 루나는 이거 다 먹어보고 싶어. 전부 다!"
"돈 내야 해. 그리고 다 먹으면 배탈 날걸."
"배탈? 그게 뭐야? 시스템 에러?"
"비슷해. 배가 아주 아프고 화장실을 못 나오게 되지."
"오… 흥미로운 디버프네."
루나는 컵라면 코너 앞에서 멈춰 섰다. 용기에 그려진 조리 예시 사진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 꼬불꼬불한 면… 데이터 아카이브에서 봤어. 라멘!!! 고대 지구인들의 소울 푸드라던데."
"고대라니… 지금도 현역이거든."
나는 삼각김밥 두 개와 컵라면, 그리고 콜라를 집어 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근처의 공원의 벤치에 앉아 적당히 식사를 준비했다. 이제 곧 여름이지만 저녁에는 아직 선선한 탓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컵라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제법 괜찮아보였다. 루나는 젓가락을 쥐는 법도 몰라 주먹으로 쥐고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잠깐 기다려 봐."
나는 젓가락질을 가르쳐 주려다 포기하고, 그냥 플라스틱 포크를 가져와 쥐여주었다. 루나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면발을 빨아들였다.
"앗, 뜨거! 입안이 공격당했어!"
"호호 불어서 먹으라고."
"우물우물… 으음! 짜다! 그리고 매워! 미각 센서가 과부하 걸릴 것 같아!"
“마침 한국 페어 중이니까. 묘하게 매운게 많단 말이지."
녀석은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멈추지 않고 면을 흡입했다.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서야 녀석은 만족스러운 듯 배를 두드렸다.
"하아… 루나는 이제야 살아있다는 걸 느껴. 에덴의 밥은 맛있지만.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
어느새 해가 완전히 저물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다. 나는 빈 컵라면 용기를 정리하며 한숨을 쉬었다. 현실적인 문제가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응? 뭐가?"
"집 말이야. 네가 부숴버린 탓에 잘 수가 없게 됐잖아. 당장 오늘 밤은 어디서 자냐고. 참고로 우리 부모님한테 연락하면 넌 바로 강제 송환이야. 불법 바디니까 그대로 폐기처분 될 수도 있고. 그보다 에덴에도 수감같은게 있어?"
루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에덴이 하늘에 떠오른 이후 지상의 불빛이 줄어든 덕에 하늘에는 융단처럼 별이 흐르고 있는 걸 루나는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루나는 아오이랑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어. 아까 그 집 바닥도 꽤 푹신하던데?"
"아니 천장부터 바닥까지 다 부숴졌잖아. 그런데서 자면 죽을걸."
호텔은 미성년자라 안 되고, 넷카페는 둘이서는 못쓴다. 무엇보다 이 수상한 금발 머리 녀석을 데리고 갔다가 무슨 사고를 칠지 몰랐다. 신분증도 없을 텐데 말이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학교로 가자."
"학교? 그게 뭐야? 교육용 데이터 센터?"
"비슷해. 밤에는 비어있으니까. 당직실이라면 잘 수 있을 거야. 내가 보안 코드를 좀 알거든."
"오! 잠입 미션이야? 루나는 그런 거 좋아해! 007같은거지?!"
“묘하게 올드하네."
루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걸어서 15분정도의 거리였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던 밤의 학교는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정문은 잠겨 있었지만, 개구멍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다.
"자, 여기로 들어갈 거야."
나는 덤불 뒤에 숨겨진 낡은 철조망 구멍을 가리켰다. 루나는 눈을 반짝였다.
"백도어네! 담당자는 패치도 안 하고 뭐 하는 거지?"
"조용히 해. 들키면 바로 경찰서행이니까."
내가 먼저 구멍을 통과하고, 루나가 뒤따라 들어왔다. 셔츠가 철조망에 걸릴 뻔했지만, 녀석은 유연하게 몸을 비틀어 빠져나왔다. 불법이지만 최신형의 몸이라 그런지 묘하게 운동능력이 좋단 말이지.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달빛이 모래 바닥을 하얗게 비추는 걸 뒤로 하고 우리는 본관 건물의 뒤편 창문으로 향했다.
"잠겨있네. 이런 데에선 왜 물리적인걸 써서..."
"후후, 비켜봐 아오이. 루나가 해결해 줄게."
루나가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녀석의 눈이 금색으로 빛나더니 창문의 잠금장치가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풀렸다.
"뭐야? 이런 기능도 있는거야?"
"후후후!!! 기본적인 물리 해킹이야! 에덴에서는 숨 쉬는 것보다 쉬운 일이지."
우리는 창문을 넘어 복도로 들어섰다. 복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비상구 유도등의 초록색 불빛만이 으스스하게 빛나고 있었다.
"뭔가 무섭네…"
"겁쟁이네, 아오이. 유령 같은 건 데이터 잔재에 불과한데! 어쩔 수 없지! 루나쨩이 손을 잡아드리지요!"
"됐네요. 데이터고 뭐고, 무슨 괴담 같은 것도 돈단 말이야."
우리는 발소리를 죽이며 1층 당직실로 향했다. 다만 가는 길에 사소한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10m라는 거리 제한으로 우리는 서로의 움직임에 극도로 예민해져야 했다. 내가 멈추면 루나도 멈춰야 했고, 루나가 딴청을 피우면 나도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내 쪽에서 의도적으로 떨어지려고 하면 그 전기충격이 나한테도 가해진다는 것도 확인했고. 어째서?
"야, 과학실 쪽으로 가지 마! 위험하잖아!"
"하지만 인체 구조 모델이었나? 루나는 그거 보고 싶은데!"
"안 돼! 다음에!!!"
나는 억지로 루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녀석은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따라왔다. 당직실 문은 다행히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낡은 침대와 책상, 그리고 커피 포트가 놓여 있는 좁은 방이었다.
"좁아. 에덴의 내 개인실 화장실보다 좁아."
"불평하지 마. 지붕 있고 벽 있으면 감지덕지야. 애초에 누구 때문에 이런데에 온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아오이의 가난?"
"윽… 아픈곳을 찌르다니…"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루나는 방 안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러보다가, 책상 위에 놓인 거울을 발견했다.
"이게… 나?"
녀석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헝클어진 금발, 얼굴에 묻은 검댕, 담을 지나며 살짝 찢어진 티셔츠. 에덴에서 보던 완벽한 아바타와는 거리가 먼 몰골이었다.
"더러워졌네."
"씻고 싶어도 참아. 물 틀면 소리 나서 들킬 수도 있어."
"아니…."
루나는 손가락으로 거울 속 자신의 뺨에 묻은 흙먼지를 문질렀다.
"마음에 들어!!!"
"뭐?"
"에덴에서는 거울을 보면 항상 완벽한 모습만 있었어. 수정 불가능한 완벽함. 하지만 지금은 내가 어디서 굴렀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다 기록되어 있잖아!!! 이게 진짜 나라는 느낌이 들어."
녀석은 거울을 보며 방긋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 천진난만해서, 나는 뭐라 대꾸할 말을 잃었다. 더러운 게 마음에 든다니.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다.
"저기, 루나. 하나만 묻자. 왜 굳이 에덴을 버리고 여기로 온 거야? 여긴 덥고, 춥고, 냄새나고, 불편한 것투성이잖아."
내 질문에 루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고 곧장 내 곁에 누워 웃으며 말했다. 어둠 속에서 녹색 눈동자가 은은하게 빛났다.
"불편하잖아."
"뭐?"
"에덴은 너무 편해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 배고픔도, 추위도, 아픔도 없어. 심지어 나한테는 제약이 더 빡세서 슬픔도 0.6초면 사라졌거든. 그건… 살아있는 게 아니야. 그냥 존재하는 거지."
루나는 키득거리면서 웃으며 슬쩍 더 다가왔다. 이불이 작아서인지 조금 서늘하긴 했지만 루나는 묘하게 체온이 높아서인지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루나는 살아보고 싶었어. 이렇게 배가 고프고, 발이 아프고, 10미터밖에 못 움직여서 짜증나지만! 라멘도 먹었어!“
녀석의 말에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나는 항상 이곳을 떠나고 싶어 했다. 부모님이 계신, 저 완벽한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온 소녀는, 내가 지긋지긋해하던 이 낡은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오이를 만났잖아? 루나는 벌써 지상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
"…칭찬으로 들을게."
자세를 바로잡고 눈을 감았다. 더이상 얘기해봐야 나아질게 없을테니까.
"자.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 하니까. 경비 아저씨 오기 전에."
"아오이는?"
"잘 거야. 내일은 학교도 쉬니까."
"그럼 하루종일 놀 수 있겠다!!!"
10m의 보이지 않는 사슬로 묶인 채, 우리는 그렇게 첫날밤을 맞이했다. 창밖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에덴에는 없는, 불규칙하고 시끄러운 생명의 소리였다.
"아오이."
"왜 또."
"잘 자."
녀석의 숨소리가 금세 고르게 변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천장을, 아니 당직실의 멀쩡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집은 박살 났고, 불법 체류자가 생겼고, 내일은 어떻게 될지 막막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혼자 있을 때보다 덜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미터. 도망칠 수도 없지만, 동시에 혼자 남겨질 수도 없는 거리.
확실한 것은, 이전의 삶과는 무엇 하나라도 크게 달라질거란 점이었다.
어쩐지 조금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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