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 커피 테스트 (48)
커피헤드◆wx7bZF1Aue
2025년 1월 30일 (목) 오후 01:28:31 - 2025년 6월 17일 (화) 오후 10:52:50
2025년 6월 4일 (수) 오후 11:02:35
여느 세계가 그렇듯, 버려진 세계에서도 바다는 수많은 생명의 근원이자 안식처이다.
매일 수천 조에 달하는 생명이 바다 밖으로 나오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다만 바다가 영원한 고통을 품은 갈색 액체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이 다를 뿐.
우리의 가장 뛰어난(그리고 무모한) 몇몇 개척자들은 얕은 바다를 간척하려 시도한 적이 있으나, 바다 아래의 토양이 품은 독기와 영고커피가
치명적인 독성을 띄는 방향으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밝혀지자 기획안은 폐기되었다.
재구성교 학파의 가장 뛰어난 사도 몇몇이 우려했던 바와 같이, 커피들은 저 심연 속에서 무한히 변화하고 뒤틀린다는 점이 시사되었으며,
이에 따라 버려진 세계의 무광층에 위치한 커피들에는 심연의 영고커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성좌는 언제나 스스로의 언言을 조심해야 한다. 한낱 필멸자의 말에도 힘이 깃들건만.
존재 자체만으로 법칙을 흩뿌리는 성좌의 말에 갈망과 감정이 실린 경우에는 어떻겠는가?
열망의 수평선에서의 기나긴 사건 이후 급부상한, 기존 인형 학파들의 규모에 준하는 표식sigil 연구가들도 이를 반증한다.

영고가 시키에게 보낸 닿지 않을 수많은 편지, 그리고 스스로가 보내지 않고 띄워보낸 편지는 굳게 봉인된 채 버려진 세계 어딘가를 떠돌았다.
이윽고 그들은 바다의 육중한 비늘 아래, 무광층에까지 닿았고--

-크툰인형, '시키가 되지 못한 것'들의 기원과 서신corrospondence, 표식sigil간 기원적 유사성 연구 중.


[껍데기] 단계에서
시간을 보낸 그것은 점점 숙주의 행동을 잘 흉내낼 수 있게 되는데
기존에 어색함이라고 부를 수 있던 행동들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 단계에 다다르면 현존하는 방법으로는 판별이 불가능해진다.
이 단계를 [의태]라고 지정한다.



이 단계부터 시키가 되지 못한 자, 아니 몬스터 X는
사냥 활동을 시작한다. 사냥은 무차별적이지만 굉장히 지능적이고,
숙주의 능력이 반영된 형태로 원본 이상으로 발전되어 있다.

무작위로 숙주를 고르던 초기 상태와는 다르게
사냥감을 고르는 기준은 명확한데 [유기체] [여자] [젊은 나이] [인간] 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상태에서 사냥당한 피해자들은
몬스터 X의 불확실한 기준에 근거하여 신체 일부분이 적출되어 끼워맞춰진다.

그렇게 변형된 몬스터 X의 모습은 완벽히 인간 여성과 일치하며 구분이 불가능하다.
이 단계를 [조각맞추기]라고 지정한다.



다만 이 상태에서 또 시간이 경과할 경우
숙주와 끼워맞춘 인간을 흉내내며 의태하던 몬스터 X의 행동은 급격하게 폭력적으로 변한다.
마치 자기의 모습이 불만족 스럽다는 듯이
끼워맞춘 신체를 때어내고, 주변에 있는 생물을 습격해서 끼워맞추는걸 반복한다.

갑작스러운 폭력성과 끼워맞춰진 조각들의 능력으로 인한 위험성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내는 단계이다.

그리고 제일 끔찍한 사실은
이 단계에서 때어낸 조각들이 초기 상태의 몬스터 X로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단계를 [파종]이라고 지정한다.

몬스터 X가 [파종]단계에서 갑작스럽게
의태를 포기하고 무차별적으로 사냥을 반복하는 이유는
가장 큰 의문이었다.

하지만 오랜 연구끝에
한가지 가설을 세우게 됐는데,

몬스터 X는 본인의 외모를
어떠한 목표와 유사하게 재현하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중요한 무언가를 재현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 문제가 됐다는 가설이었다.

예를 들면 '능력'이라던가...

중요한 공백을 깨달은 몬스터 X는
그것을 채워넣기 위해서
점점 더 강하고, 유능한 사냥감을 사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관측된 이 단계에서
오래 생존한 몬스터 X는
점점더 강하고, 점점더 지능적으로 변하고
점점 더 누군가와 닮아간다.

끝이 없다는듯한 탐욕으로
사냥을 반복하는 모습이
결코 목표처럼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것 같아
이 단계를 [되지 못한 자]라고 지정하고,

몬스터 X의 정식 명칭을
[되지 못한 자]라고 지정한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수석 연구원 X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