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위에 두꺼운 목도리를 둘렀다. 울 샴푸로 세탁해야 할 소재고, 이리저리 나와있는 털이 무카이에게 영 좋지만은 않은 촉감을 주지만, 이런 날에는 꼭 필요하다. 코와 입을 가리고서 차례를 기다리던 중,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지켜보며 미간을 살짝 구긴다. 저런 상황에 짜증을 내거나 차갑게 대할 법도 한데, 창구에서는 꽤나 살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람을 정성으로 대하는 매표원인가 보다, 싶다. 자신이라면, 물론 자신이라도 친절히 대하겠지만, 친절과 다정은 다르며, 저 매표원은 후자가 가능한 것에 분명하다고 조용하게, 속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
- 다음 분~?
그녀는 저 또한 저렇게 살뜰해 대해 주겠지. 어쩐지 모를 기대를 하며 걸음을 내걷는 어린 무카이는, 머지않아 쓰러지는 텀블러와 흘러나오는 커피의 바다에 놀라 눈을 둥글게 떠 보인다.
"아."
저기, 신경쓰지 말라고 해도.... 줄곧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꺼내보지만, 도움을 주고 싶은 맘만 앞설 뿐 우왕좌왕하는 게, 여러 상황의 경험이 부족한 십대 다운 모습이다. 이런 때의 무카이도, 있었다.
".....요코하마."
순식간에 물티슈가 지나간 것을 어리둥절하게 지켜보던 십대는, 개미 소리로 그렇게 말하고서 차가워진 손을 다시 주머니 속으로 쏙 집어넣는다. 어쩌면 목도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제 뒤 쪽을 슬쩍 보는데,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여자를 향해 돌아서서는, 잘 뻗은 검지와 엄지로 목도리의 끄트머리를 잡아 내리고서, 코와 입을 보이게 한 뒤 분명히 말하는 것이다.
"천천히 수습하셔도 괜찮은데요...."
텀블러가 쏟아졌던 키보드를 가리킨다.
"그거, 꼼꼼히 닦지 않으면 고장나지 않을까 해서....."
하아- 흰 입김이 흩어진다.
>>309
허술하지만, 사람은 살가운. 무카이는 모네가 얼룩진 담요를 덮고 이리저리 청소를 하는 동안 모네에 대한 자신만의 판단을 마치고 살풋 입꼬리를 올렸다. 이런 타입의 사람은, 싫지 않다. 뒤에서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하고, 앞에서는 인간성 없으리만치 깔끔한(어떤 의미에서든) 사람보다는 훨씬 낫다. 대할 때, 안심된다. 인간이라는 기분이 든달까.
"자주, 인가요."
거기서는 손을 둥글게 말아 쥐고 입가로 가져가며 풋, 하고 웃어버린다.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이 여자는 어쩐지 이런 일로 화를 내지 않을 것 같다. 아까보다 조금 친근해진 눈길로 모네를 찬찬히 보다가, 재차 말하는 것이다.
"요코하마로 가는 표를 부탁해요. 시간은, 가장 빠른 때로....."
그리고 다시 목도리의 끄트머리를 잡고 슬쩍 올려 코와 입을 덮는다. 주머니 안에서는 어린 무카이의 손이, 반으로 접힌 지폐와 동전을 찾아 쥔다.
>>323
매표원의, 거울 같은 얼굴은 마냥 맑다. 자신감 넘치게 설명하는 말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투신사고의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조금 떨린다. 투신사고라서, 가 아니라, 사고가 있어서, 그러니까, 제 갈 길에 문제가 있어서, 였다.
"환승이요....."
매표원과는 정반대로 자신감이 영 없는 투다. 사실, 어린 무카이는 홀로 도시 밖으로 나가본 일이 그다지 없다.
- 드라이브야, 드라이브!!
라며, 어머니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랑스러운 여인 몇이 가족 드라이브 하듯, 데려가는 것을 제외하면, 환승까지 경험할 일은 더더욱 적다. (그 때는 또, 그녀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라서 더 어린 무카이는 타자의 기분을 풀어주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곤 했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그래서 여기 서있는 것은, 자신감 없는, 취약한 상태의 무카이. 힘의 흐름을 소름끼칠 정도로 빠르게 파악하며, 남에게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보통 불안과 숨막힘을 동반하는데, 이상하게도 잘 닦인 거울 같은 매표원의 앞이라, 그것에는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그래도 환승하지 않고 기다리면 되니까, 다행이라며, 속으로 안심하고 제법 반듯하게 웃음 어린 인사를 한다. 순수한 안심감도 엿보였으리라. 역에서 추위를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 망부석 마냥 움직이지 않고서 열을 보존하고 있으면, 생각했던 쇼난이 아닌, 다른 철도 노선의 탑승 안내가 나온다. 거기까지는,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평소에도 시외로 가는 철도를 자주 타고 다니거나, 비슷한 일을 겪지 않았으니 아주 몰랐다, 고 하는 편이 맞겠다. 매표소에 있던 여인이, 따듯해 보이는 털크록스를 신고 나오는 것까지 보고서는, 밀크티가 먹고 싶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쩐지 이미지에 어울리는 걸 먹네, 싶고, 쇼난이 오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면...... 혹시.....
"......아. 그럼 그 방송이...."
내밀어진 밀크티에 얼떨떨하던 무카이는 그제야 상황을 받아들인다. 미안해 하는 여인과 달리, 남학생은 덤덤하게, 빨갛게 된 손으로 밀크티를 받아들어서, 미안할 것도 없을 듯하다.
향긋한 홍차와 우유를 섞어, 데워 놓은 음료의 캔은 가만히 만지고 있으면 사람의 체온 같다.
"감사합니다...."
큰 키를 꾸벅 접어 인사를 하는 모양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받은 밀크티를, 곧바로 마시지 않고 핫팩처럼 매만지다가, 다시 입가를 가린 거추장스러운 목도리를 잡아 내리면, 여느 때보다 취약한 무카이가 거기에 있다.
"...라인, 물어봐도 괜찮나요."
그제사 한번 눈을 마주치고, 자신이 저지른 일의 결과를 회피하듯 아무것도 없는 곳에 시선을 내려앉힌다.
"..어쩐지 알고 지내고 싶어져서."
뺨과 귀가 붉은 건 추워서인지, 어째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