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할 수단이라곤 무엇도 없는 계약은 분명 언제 어떻게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는 현실에 류화가 단언할 수 있는 건 하나다. 일방적으로 끊어져도 찾지 않을 것이란 사실. 그것이 휴일임에도 누구 하나 불러주는 이 만나러 갈 이 없는 류화의 인생이었으니.
"감사할 거 까지야~ 기브 앤 테이크인 걸~"
각자의 속내 품은 기묘한 동거의 향방은 과연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흐흥."
류화는 그저 덜컥 멈춘 해운의 머리를 마음껏 쓰다듬고 헤집을 뿐이다. 조금 후 거뒤지는 손 너머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류화의 얼굴에 나른하게 걸려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진짜일지 모를 그 얼굴이 입술 사이로 해운의 이름을 읊었다.
"연해운, 해운이라. 바다 같은 이름이네. 생긴 건 장미꽃을 닮았는데 말이지이."
하긴 산호들도 색은 예쁘니까, 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다른 인적사항은 별로 관심 없는 듯, 방금 전까지 해운의 머리칼을 만지던 손을 살짝 들고 가볍게 쥐었다 피며 빤히 보던 류화였으나...
"에. 청소 지금 하려구? 나 더 잘려고 했는데!"
냅다 일어난 해운이 지금.을 말하며 청소할 낌새를 보이자 대번에 질색했다. 싫어엇 하고 소파 위에서 몇 차례 파닥거렸으나 곧 제풀에 지쳤는지 슥 일어났다. 아니, 능력으로 몸을 부웅 띄웠다. 누가 허리춤에 팔을 감아 들어올린 양 처량맞은 자세였다.
"키힝... 내 오프..."
그 상태로 둥실둥실 움직여 침실로 들어간다. 덜컹, 바스락바스락, 아이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류화는 샤워가운 대신 짧은 반바지에 집업 후리스 차림에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정수리를 문지르며 나왔다. 검은 가죽으로 된 사무용 가방을 소파에 던져놓고, 언제 꺼냈는지 모를 캔맥주 뭉치를 손에 들고 그 옆에 앉은 류화는 거실의 티비 전원을 키며 말했다.
"꺼낼 건 다 꺼냈으니 이제 맘대로 해- 옷장 두번째 칸은 속옷이랑 뭐 그런 거 칸이니까 알아두고. 그 밖에 뭐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 봐- 어디 안 가니까, 오늘은."
치익, 칵! 말 마치기 무섭게 맥주캔을 열어 마시기 시작한 류화는, 큰 화면에서 나오는 게임방송을 보며 키득대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이 해운을 불렀다.
"아, 맞다. 연해운! 너 폰번호 좀 찍어주라. X톡 연결해서 계좌도 미리 찍어놓고, 현관 비번 보내줄 테니까 읽고 지워."
류화의 부름은 그것 뿐이었다. 그 뒤론 이런 저런 영상을 돌려보며 안주도 식사도 없이 깡술만 축이고, 그러다 취기가 오르면 소파에 엎드려 자고, 깨면 새 술을 가져다 마시고...
그 날, 해운이 청소를 하는 내내 볼 수 있었던 모습은 그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늦은 밤에서야 비척비척 걸어 잠자리에 엎어지는 것까지 봤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걸로 첫날 마무리! 와! 첫일상 수고했어 해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