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3 자유 상황극 스레 -1 (27)
작성자:익명의 참치 씨
작성일:2025-07-05 (토) 06:29:11
갱신일:2026-07-16 (목) 06:03:41
#0익명의 참치 씨(dMY4g1hRaa)2025-07-05 (토) 06:29:11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1익명의 참치 씨(gt5bB835uu)2025-07-12 (토) 13:11:59
유난히 별이 밝은 밤이다.
더운 여름날이 계속되었으나 사내가 살고 있는 곳은 열대야와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낮에는 땀으로 샤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더웠으나 커다란 고층건물이 적고 여기저기에 자연물이 많아 낮의 열기가 밤까지 저장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엄청나게 더운 날엔 가끔 열대야가 있기도 했으나, 도시의 열대야에 비하면 시원한 밤이었다. 당연히 오늘도 예외없이 그렇게 덥지 않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는 밤이었다. 그런 밤 시간에 건물이 세워지고 상점가가 있는 지역을 넘어서 사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저녁 9시. 어둠이 서서히 하늘을 집어삼키는 시간이다. 이 늦은 시간에 버스 정류장에 온 이유는 어머니의 부탁 때문이었다. 듣자하니 도시에서 자신의 친구의 자식이 이곳으로 오는데, 지낼 곳이 바로 이 집이니 마중나간 후에 데려오라는 말을 곱씹으며 사내는 핸드폰으로 전송된 그 자식의 사진을 바라봤다. 어릴 때는 서로 만나서 논 적도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사내는 기억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일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어쨌든 최근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었기에 얼굴을 못 알아볼 일은 없었다. 한적하기 짝이 없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사내는 버스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시간을 고려해보면 슬슬 버스를 타고 이곳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이곳은 도시처럼 버스가 몇 분 단위로 오지 않았기에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는 시간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애초에 마중을 나갈 때는 다들 시간을 맞춰서 나가기도 했고.
마침 저 편에서, 버스 한 대가 천천히 오고 있었다. 깡촌은 아니었고 작게나마 있을 것은 있는 곳이라고는 하나 사람이 그렇게 많이 사는 곳도 아니었다. 사람이 붐벼서 미처 못 볼 일도 없겠거니 생각하며 사내는 버스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이내 버스가 도착하고 뒷문이 열렸다. 아. 사진 속의 그 사람이네. 또래로 보이는 그 존재를 파악하며 사내는 천천히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마중 나왔어요.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려고 도시에서 온 분 맞죠?"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마냥 딱딱하지는 않은 밝은 목소리가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이는 딱히 생각 안했는데 고등학생으로 이어도 되고 20대 초반으로 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아.
성별도 상관없고 맥커터만 아니면 돼! 배경은 한국으로 생각하고 있어.
더운 여름날이 계속되었으나 사내가 살고 있는 곳은 열대야와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낮에는 땀으로 샤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더웠으나 커다란 고층건물이 적고 여기저기에 자연물이 많아 낮의 열기가 밤까지 저장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엄청나게 더운 날엔 가끔 열대야가 있기도 했으나, 도시의 열대야에 비하면 시원한 밤이었다. 당연히 오늘도 예외없이 그렇게 덥지 않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는 밤이었다. 그런 밤 시간에 건물이 세워지고 상점가가 있는 지역을 넘어서 사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저녁 9시. 어둠이 서서히 하늘을 집어삼키는 시간이다. 이 늦은 시간에 버스 정류장에 온 이유는 어머니의 부탁 때문이었다. 듣자하니 도시에서 자신의 친구의 자식이 이곳으로 오는데, 지낼 곳이 바로 이 집이니 마중나간 후에 데려오라는 말을 곱씹으며 사내는 핸드폰으로 전송된 그 자식의 사진을 바라봤다. 어릴 때는 서로 만나서 논 적도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사내는 기억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일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어쨌든 최근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었기에 얼굴을 못 알아볼 일은 없었다. 한적하기 짝이 없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사내는 버스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시간을 고려해보면 슬슬 버스를 타고 이곳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이곳은 도시처럼 버스가 몇 분 단위로 오지 않았기에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는 시간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애초에 마중을 나갈 때는 다들 시간을 맞춰서 나가기도 했고.
마침 저 편에서, 버스 한 대가 천천히 오고 있었다. 깡촌은 아니었고 작게나마 있을 것은 있는 곳이라고는 하나 사람이 그렇게 많이 사는 곳도 아니었다. 사람이 붐벼서 미처 못 볼 일도 없겠거니 생각하며 사내는 버스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이내 버스가 도착하고 뒷문이 열렸다. 아. 사진 속의 그 사람이네. 또래로 보이는 그 존재를 파악하며 사내는 천천히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마중 나왔어요.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려고 도시에서 온 분 맞죠?"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마냥 딱딱하지는 않은 밝은 목소리가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이는 딱히 생각 안했는데 고등학생으로 이어도 되고 20대 초반으로 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아.
성별도 상관없고 맥커터만 아니면 돼! 배경은 한국으로 생각하고 있어.
#2익명의 참치 씨(scY1OAYLKC)2026-01-03 (토) 09:09:31
살점이 부식하는 냄새가 아릿하니, 기사는 자신을 에워싼 불모지를 탓했다. 출처며 원인또한 본인임을 알음에도 어영부영 모르쇠를 하려는 심정이니. 목적지는 없으나 발걸음의 의도는 명확하다. 발버둥이다. 그는 헛기침처럼 웃음을 흘렸다. 불모지의 바람이 웃음을 깎아내려 모래로 만들었다. 저주가 몸을 좀먹을수록, 그는 늘 주변을 탓해왔다. 칼날이 무뎌진 것도, 말이 쓰러진 것도, 하늘이 비를 아낀 것도.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때 네가 다가왔다.
바람보다 스산하고, 짐승보다 조심스러운 발걸음. 예전 같았으면 기척만으로도 전장을 갈랐을 존재였다. 기사는 입을 달싹였다. 눈이 호선을 그렸다.
"....."
네 이름이 불경스러운 입에 오른다. 기사는 고개를 기울여 여린 목을 한 줌 노출시켜 보였다. 잿빛 머리카락이 힘 없이 흘러내린다. 피로 물들여진 칼끝은 힘 없이 바닥을 향한 채로.
"먼 곳까지 걸음하게 만들었네요. 불편한 몸일 텐데."
/자기를 구해주고 치료해주었던 인외를 잡아먹어 저주받은 기사가, 쇠약해진 인외와 다시 마주하는 상황이야!
그때 네가 다가왔다.
바람보다 스산하고, 짐승보다 조심스러운 발걸음. 예전 같았으면 기척만으로도 전장을 갈랐을 존재였다. 기사는 입을 달싹였다. 눈이 호선을 그렸다.
"....."
네 이름이 불경스러운 입에 오른다. 기사는 고개를 기울여 여린 목을 한 줌 노출시켜 보였다. 잿빛 머리카락이 힘 없이 흘러내린다. 피로 물들여진 칼끝은 힘 없이 바닥을 향한 채로.
"먼 곳까지 걸음하게 만들었네요. 불편한 몸일 텐데."
/자기를 구해주고 치료해주었던 인외를 잡아먹어 저주받은 기사가, 쇠약해진 인외와 다시 마주하는 상황이야!
#3익명의 참치 씨(ilsx/m3fEC)2026-01-03 (토) 13:05:30
>>2
세상에 널린 들꽃처럼, 쉽게 꺾을 수 있는 목을 응시했다. 저곳에 약을 덧발라주었던 기억이 있다. 숲을 지키는 것들에게 머리를 조아려가며 구해온 약이었다. 그들은 약을 건네주면서 비웃었다. '네 정성을 알아줄까? 아닐 것 같은데!'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웃음소리가 아직도 선하다. 도망치듯 당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던가. '숲을 지키는 것들은 하나같이 악동이니 조심하세요.' 하! 그들은 분명 지금의 날 걱정했던 것이다. 뿔을 잃고 비루먹은 몸으로 또다시 다친 당신과 조우하는 나를.
기사에게 다가갔다. 새 떼가 부산스럽게 날아갔다. 기사에게 더 다가갔다.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따스한 초목의 색이던 눈동자에서 증오가 태동했다. 하지만 새 떼들의 울음은 구슬펐고, 빗물은 뺨을 계속 적셨다. 입을 다문 ◼️는 우울의 초석을 얼굴에 담았다. 함부로 말하거나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응시했다.
"제 살이 또 고파지셨습니까?"
세상에 널린 들꽃처럼, 쉽게 꺾을 수 있는 목을 응시했다. 저곳에 약을 덧발라주었던 기억이 있다. 숲을 지키는 것들에게 머리를 조아려가며 구해온 약이었다. 그들은 약을 건네주면서 비웃었다. '네 정성을 알아줄까? 아닐 것 같은데!'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웃음소리가 아직도 선하다. 도망치듯 당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던가. '숲을 지키는 것들은 하나같이 악동이니 조심하세요.' 하! 그들은 분명 지금의 날 걱정했던 것이다. 뿔을 잃고 비루먹은 몸으로 또다시 다친 당신과 조우하는 나를.
기사에게 다가갔다. 새 떼가 부산스럽게 날아갔다. 기사에게 더 다가갔다.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따스한 초목의 색이던 눈동자에서 증오가 태동했다. 하지만 새 떼들의 울음은 구슬펐고, 빗물은 뺨을 계속 적셨다. 입을 다문 ◼️는 우울의 초석을 얼굴에 담았다. 함부로 말하거나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응시했다.
"제 살이 또 고파지셨습니까?"
#4익명의 참치 씨(YXQsFEWj4C)2026-01-04 (일) 05:09:52
>>3
쇠퇴한 칼날이 떨궈진다. 둔중한 소리는 옅게 울리고, 이내 짧은 여운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본연의 쓸모조차 잃은 날붙이는 피와 뒤엉킨 인간 육체의 온갖 분비물, 농도 짙은 고깃덩이로 빚어진 하나의 유리화를 흉내 낸다. 형형색색의 빛이 성당 내부를 아른거리듯 스쳐가던 어린 시절의 파편처럼, 기사의 부식을 함께해 온 이 칼날 또한 결국 너의 저주를 잉태한 존재였다.
부식해 가는 몸의 열기는 빗물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징벌이란 제 본분을 망각한 채, 장기 곳곳에 서린 저주마저 네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린다. 모든 것은 제 주인에게 바치는 경외의 형상이다.
너를 마주한 기사의 눈에는, 한때 고여 있던 샘물이 이미 오래전에 말라버렸다. 공막에 뿌리내린 실핏줄은 끝내 터져 노을을 그려내고, 해가 곧 질 것이라는 사실을 침식된 기사의 모든 장기들이 묵묵히 찬송한다. 네 이름을 다시금 읊조리는 순간, 기사의 입가로 검붉은 혈이 흘러내린다. 주인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는, 내부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경고처럼.
“전부 먹어치우면, 저주도 없어지려나요?”
기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게 속삭였다, 조곤한 웃음도 빗물에 묻힌다. 손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너를 향해 뻗으려는 찰나 팔의 근육은 더 이상 그 무엇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심장이 무거워요.”
증세만을 내뱉었다. 네가 돌봐주었을 때와 같이. 너에게 천천히 녹아들기 시작했을 무렵의 목소리로.
쇠퇴한 칼날이 떨궈진다. 둔중한 소리는 옅게 울리고, 이내 짧은 여운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본연의 쓸모조차 잃은 날붙이는 피와 뒤엉킨 인간 육체의 온갖 분비물, 농도 짙은 고깃덩이로 빚어진 하나의 유리화를 흉내 낸다. 형형색색의 빛이 성당 내부를 아른거리듯 스쳐가던 어린 시절의 파편처럼, 기사의 부식을 함께해 온 이 칼날 또한 결국 너의 저주를 잉태한 존재였다.
부식해 가는 몸의 열기는 빗물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징벌이란 제 본분을 망각한 채, 장기 곳곳에 서린 저주마저 네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린다. 모든 것은 제 주인에게 바치는 경외의 형상이다.
너를 마주한 기사의 눈에는, 한때 고여 있던 샘물이 이미 오래전에 말라버렸다. 공막에 뿌리내린 실핏줄은 끝내 터져 노을을 그려내고, 해가 곧 질 것이라는 사실을 침식된 기사의 모든 장기들이 묵묵히 찬송한다. 네 이름을 다시금 읊조리는 순간, 기사의 입가로 검붉은 혈이 흘러내린다. 주인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는, 내부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경고처럼.
“전부 먹어치우면, 저주도 없어지려나요?”
기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게 속삭였다, 조곤한 웃음도 빗물에 묻힌다. 손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너를 향해 뻗으려는 찰나 팔의 근육은 더 이상 그 무엇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심장이 무거워요.”
증세만을 내뱉었다. 네가 돌봐주었을 때와 같이. 너에게 천천히 녹아들기 시작했을 무렵의 목소리로.
#5익명의 참치 씨(JVnuHM9cum)2026-01-05 (월) 14:31:38
>>4
앞으로 손을 뻗는다.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이 허공에서 유려하게 움직인다. 무언가 어루만지는 듯한 손동작이다. 심장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봤을 때, 겨우 반나절인가. 운이 없다면 더 일찍 죽겠지. ◼️이 입술을 깨문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자비로운’, ‘소원을 들어주는’ 따위의 수식어가 붙는◼️이······ 인간 앞에서 이런 표정이라니.
“제 뼈까지 모조리 씹어 드시면, 당연히, 저주도 사라집니다.”
턱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떨어진다. 기사가 ‘그 무렵의 목소리’로 말해도, 추억에 젖는 일은 없다. 사치니까.
기사에게 베푼 은혜가 재앙으로 돌아온 날 이후, 쇠약해진 몸만이 남았다. 시간은 흘러갔다. 어떤 날은 날씨가 좋았고, 어떤 날은 나빴다. 공물로 과일이 올라오는 날이 많았는데, 처음으로 어린아이가 올라온 날이 있었다. 살려달라고 우는 어린아이를 ◼️이 쳐다봤다. ◼️의 화를 해결하기 위해 산 제물을 바치자고 결정한 자들의 희생양이었다. 살려달라고 비는 인간의 처절함 앞에서, ◼️은 평생 알 일이 없었던 날것의 감정을 느꼈다. ◼️은 당신 덕분에 악신도 되어보았다.
······다 사치에 불과하다. 지난날을 부정하고 후회하며 이제야 깨달았다. 해결 방법은 없다. 전부 무의미하다. 다 먹으면 저주가 없어지냐고? 심장이 무겁다고? 역시, 저주도 사치였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입니까?”
앞으로 손을 뻗는다.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이 허공에서 유려하게 움직인다. 무언가 어루만지는 듯한 손동작이다. 심장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봤을 때, 겨우 반나절인가. 운이 없다면 더 일찍 죽겠지. ◼️이 입술을 깨문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자비로운’, ‘소원을 들어주는’ 따위의 수식어가 붙는◼️이······ 인간 앞에서 이런 표정이라니.
“제 뼈까지 모조리 씹어 드시면, 당연히, 저주도 사라집니다.”
턱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떨어진다. 기사가 ‘그 무렵의 목소리’로 말해도, 추억에 젖는 일은 없다. 사치니까.
기사에게 베푼 은혜가 재앙으로 돌아온 날 이후, 쇠약해진 몸만이 남았다. 시간은 흘러갔다. 어떤 날은 날씨가 좋았고, 어떤 날은 나빴다. 공물로 과일이 올라오는 날이 많았는데, 처음으로 어린아이가 올라온 날이 있었다. 살려달라고 우는 어린아이를 ◼️이 쳐다봤다. ◼️의 화를 해결하기 위해 산 제물을 바치자고 결정한 자들의 희생양이었다. 살려달라고 비는 인간의 처절함 앞에서, ◼️은 평생 알 일이 없었던 날것의 감정을 느꼈다. ◼️은 당신 덕분에 악신도 되어보았다.
······다 사치에 불과하다. 지난날을 부정하고 후회하며 이제야 깨달았다. 해결 방법은 없다. 전부 무의미하다. 다 먹으면 저주가 없어지냐고? 심장이 무겁다고? 역시, 저주도 사치였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입니까?”
#6익명의 참치 씨(WG17DvoJam)2026-01-06 (화) 09:25:26
전부 먹어치우면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 말에도 식욕이 돋지 않는 것은, 비단 제 주인을 지키려는 저주의 방어 태세만은 아니리라. 기사는 이미 납득하고 있었다.
네 표정을 바라보며, 기사는 실성한 사람처럼 빗물에 흐려진 웃음을 지었다. 무릎 꿇지 않고 버티는 자세는 명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발악에 가까웠다. 떨리는 손이 가슴팍의 휘장 위에 얹힌다. 달의 신앙을 섬기던 모 왕국의 표식이, 이제서야 가려진다. 너를 향한 예우가 뒤늦게 갖추어진다.
너를 삼킨 것은 실로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자신을 길러낸 국가와, 소속감을 주었던 왕실 군대를 보존하고 싶다는 마음. 곧 성인식을 마칠 공주님께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
신의 피는 맛보는 것만으로도 영생을 약속하고, 살을 삼키면 신좌에 오를 힘을 얻는다—이미 미쳐버린 신을 섬기는 집단에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를, 이 무지한 기사는 떠올렸던 것이다. 치명상을 입은 자신을 어루만지던 너를 마주했을 때, 얇은 희망이 움텄다. 스러져가던 국가 위에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바칠 미래가 개화할 듯 움직였다. 너를 보았다. 너를 먹었다. 피와 살을 삼키면서도 역겹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너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공물을 바치던 이단 집단을 특정해 사형까지 밀어붙였을 때조차, 기사의 얼굴은 냉랭했다. 인신공양이라는 중죄는 명분에 불과했다. 애초에 기사 또한 왕실이 달에게 바치던 어린아이들을 여럿 보아왔으니. 도축될 운명의 아이들의 눈을 마주할 때마다, 이것이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아는 기밀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역설적이고 쓸모없다고 느껴졌을 뿐이다. 왕국은 이미 내부로부터 썩어나가고 있었다.
“너무 많아요.”
그러나 막상 네 앞에 선 지금, 머릿속은 텅 비어 있다. 갈비뼈를 짓누르는 것은 꽉 찬 심장뿐이다. 기사는 흉측한 눈을 감는다.
“저의 신께선 오지 않으시겠죠?”
달은 뜨지 않는다. 그의 앞에 선 것은, 더없이 연약한 너의 모습뿐이다. 결국 너는, 기사와 함께 묻힌 흙더미 속으로 끌려 내려온 것이다. 허무한 숨을 뱉었다.
“제 달은, 어째서 저를 구해주지 않으셨던 걸까요. 저는… 당신에 대한 이야기에, 단 한순간도 현혹된 적 없는데.”
제가 당신에게 사죄하는 걸 허락해 주세요. 물 젖은 목소리. 입술만이 미약하게 달싹였다.
네 표정을 바라보며, 기사는 실성한 사람처럼 빗물에 흐려진 웃음을 지었다. 무릎 꿇지 않고 버티는 자세는 명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발악에 가까웠다. 떨리는 손이 가슴팍의 휘장 위에 얹힌다. 달의 신앙을 섬기던 모 왕국의 표식이, 이제서야 가려진다. 너를 향한 예우가 뒤늦게 갖추어진다.
너를 삼킨 것은 실로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자신을 길러낸 국가와, 소속감을 주었던 왕실 군대를 보존하고 싶다는 마음. 곧 성인식을 마칠 공주님께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
신의 피는 맛보는 것만으로도 영생을 약속하고, 살을 삼키면 신좌에 오를 힘을 얻는다—이미 미쳐버린 신을 섬기는 집단에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를, 이 무지한 기사는 떠올렸던 것이다. 치명상을 입은 자신을 어루만지던 너를 마주했을 때, 얇은 희망이 움텄다. 스러져가던 국가 위에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바칠 미래가 개화할 듯 움직였다. 너를 보았다. 너를 먹었다. 피와 살을 삼키면서도 역겹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너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공물을 바치던 이단 집단을 특정해 사형까지 밀어붙였을 때조차, 기사의 얼굴은 냉랭했다. 인신공양이라는 중죄는 명분에 불과했다. 애초에 기사 또한 왕실이 달에게 바치던 어린아이들을 여럿 보아왔으니. 도축될 운명의 아이들의 눈을 마주할 때마다, 이것이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아는 기밀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역설적이고 쓸모없다고 느껴졌을 뿐이다. 왕국은 이미 내부로부터 썩어나가고 있었다.
“너무 많아요.”
그러나 막상 네 앞에 선 지금, 머릿속은 텅 비어 있다. 갈비뼈를 짓누르는 것은 꽉 찬 심장뿐이다. 기사는 흉측한 눈을 감는다.
“저의 신께선 오지 않으시겠죠?”
달은 뜨지 않는다. 그의 앞에 선 것은, 더없이 연약한 너의 모습뿐이다. 결국 너는, 기사와 함께 묻힌 흙더미 속으로 끌려 내려온 것이다. 허무한 숨을 뱉었다.
“제 달은, 어째서 저를 구해주지 않으셨던 걸까요. 저는… 당신에 대한 이야기에, 단 한순간도 현혹된 적 없는데.”
제가 당신에게 사죄하는 걸 허락해 주세요. 물 젖은 목소리. 입술만이 미약하게 달싹였다.
#8익명의 참치 씨(97aae123)2026-02-15 (일) 17:48:57
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찾아온다. 바깥의 소리가 선명해진다. 운동장에서 재잘대는 소리. 복도에서 깔깔대는 소리. 겨울 바람이 스치는 소리...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부끄러워 빨갛게 잘 익어버리기 전 소리냈던 것은 단 세글자. 좋아해. 멋드러진 표현도 예쁜 선물도 없는 단 한마디.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면 터져버릴 듯 뜨겁기에 성급하게 말해버린 단촐한 고백.
엉망진창이다. 수습하기 위한 말은 일곱글자.
"계속 좋아해도 돼?"
예쁘장한 얼굴이 못나게 입술을 물었다.
/ 고백공격레쓰고.ᐟ
부끄러워 빨갛게 잘 익어버리기 전 소리냈던 것은 단 세글자. 좋아해. 멋드러진 표현도 예쁜 선물도 없는 단 한마디.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면 터져버릴 듯 뜨겁기에 성급하게 말해버린 단촐한 고백.
엉망진창이다. 수습하기 위한 말은 일곱글자.
"계속 좋아해도 돼?"
예쁘장한 얼굴이 못나게 입술을 물었다.
/ 고백공격레쓰고.ᐟ
#9익명의 참치 씨(55cd6c29)2026-02-15 (일) 22:39:08
>>8
그것은 마치 봄눈처럼,
그 뒤에 불어오는 하늬바람처럼.
무채색의 세계에, 지금껏 알지 못하던 색채가,
분홍빛으로 이지러진 네게서,
물그릇 위에 톡 떨어뜨려 연연히 흩어지는
로즈 매더 한 방울처럼.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빗속의 눈물처럼.
그래도, 그것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모든 것이 흐려져버린다고 해도, 한 점 아름다운 얼룩은 영영 사라지지 않겠지.
그래서, 「그래도」라고 말하고 싶었다.
"...잘 모르겠어."
"좋아하는 만큼, 같이 행복했으면 하는데..."
"내가 너와 같이 그럴 수 있을까, 모르겠어."
"나, 팔레트 말고는 잘 모르는 바보잖아."
지금 지을 수 있는 웃음은, 흰색뿐. 돌아보는 시선 뒤에 배경처럼 놓인, 새하얀 캔버스처럼.
"그래도... 네가 말해줘서, 나, 지금 정말로 기뻐..."
그나마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던 눈이, 자신없는 일 앞에서 언제나 그랬듯 내리깔린다.
"그러니까, 나한테... 많이 알려줄 수 있어? 나도... 너 좋아해도 돼?"
/그림밖에 모르고 살아온 미술학도 애가 갑자기 뇌리에 팍 꽂혀서 쓰고 보니 웬 괴문서가... 아니다 싶으면 스루해줘 TvT
그것은 마치 봄눈처럼,
그 뒤에 불어오는 하늬바람처럼.
무채색의 세계에, 지금껏 알지 못하던 색채가,
분홍빛으로 이지러진 네게서,
물그릇 위에 톡 떨어뜨려 연연히 흩어지는
로즈 매더 한 방울처럼.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빗속의 눈물처럼.
그래도, 그것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모든 것이 흐려져버린다고 해도, 한 점 아름다운 얼룩은 영영 사라지지 않겠지.
그래서, 「그래도」라고 말하고 싶었다.
"...잘 모르겠어."
"좋아하는 만큼, 같이 행복했으면 하는데..."
"내가 너와 같이 그럴 수 있을까, 모르겠어."
"나, 팔레트 말고는 잘 모르는 바보잖아."
지금 지을 수 있는 웃음은, 흰색뿐. 돌아보는 시선 뒤에 배경처럼 놓인, 새하얀 캔버스처럼.
"그래도... 네가 말해줘서, 나, 지금 정말로 기뻐..."
그나마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던 눈이, 자신없는 일 앞에서 언제나 그랬듯 내리깔린다.
"그러니까, 나한테... 많이 알려줄 수 있어? 나도... 너 좋아해도 돼?"
/그림밖에 모르고 살아온 미술학도 애가 갑자기 뇌리에 팍 꽂혀서 쓰고 보니 웬 괴문서가... 아니다 싶으면 스루해줘 TvT
#10익명의 참치 씨(b9243325)2026-02-16 (월) 00:14:40
>>9
예쁜 말로 나열된 거절. 고개를 숙였다. 깨물린 입술을 좀 더 꽉 물었다. 차갑게 식지 못하는 마음이 감당되지 않아 눈물로 흐를 것이 빤했다.
다만 돌아온 다섯글자. 그 다섯글자로 인해 고개를 들었다. 이상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좋아해도 된다는 허락같이 들렸다. 어쩌면 있는 힘껏 좋아해보라는 도발. 또는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보라는 협박.
생각보다 마음이 앞섰다. 이 고백도 그런 사고였다. 두번째 사고가 이어진다.
두 사람 사이 몇 발자국 남짓한 거리가 줄어든다. 내리깔고 있는 시선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만큼 가까워진다면 끌어안아보고 싶어질 것이다. 닿으면 이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말텐데도 저지를 것이다.
"응, 좋아해 줘."
눈을 맞추려 시선을 쫓는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져도 괜찮아."
울 것 같던 얼굴이 수줍게 미소지었다.
"내가 아는 건 전부 알려줄게."
/ 새벽감성에 젖은 글에 답레가 이어져 있어서 감동, 또 감동 뿐.
/ 캐조종 될 것 같아 애매하게 썼는데 고백공격캐가 미술학도캐 안으려고 한 거 맞아.ᐟ.ᐟ.ᐟ 불편하면 쓰루레쓰고.
예쁜 말로 나열된 거절. 고개를 숙였다. 깨물린 입술을 좀 더 꽉 물었다. 차갑게 식지 못하는 마음이 감당되지 않아 눈물로 흐를 것이 빤했다.
다만 돌아온 다섯글자. 그 다섯글자로 인해 고개를 들었다. 이상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좋아해도 된다는 허락같이 들렸다. 어쩌면 있는 힘껏 좋아해보라는 도발. 또는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보라는 협박.
생각보다 마음이 앞섰다. 이 고백도 그런 사고였다. 두번째 사고가 이어진다.
두 사람 사이 몇 발자국 남짓한 거리가 줄어든다. 내리깔고 있는 시선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만큼 가까워진다면 끌어안아보고 싶어질 것이다. 닿으면 이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말텐데도 저지를 것이다.
"응, 좋아해 줘."
눈을 맞추려 시선을 쫓는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져도 괜찮아."
울 것 같던 얼굴이 수줍게 미소지었다.
"내가 아는 건 전부 알려줄게."
/ 새벽감성에 젖은 글에 답레가 이어져 있어서 감동, 또 감동 뿐.
/ 캐조종 될 것 같아 애매하게 썼는데 고백공격캐가 미술학도캐 안으려고 한 거 맞아.ᐟ.ᐟ.ᐟ 불편하면 쓰루레쓰고.
#11익명의 참치 씨(efd7c2bc)2026-02-16 (월) 01:51:04
>>10
지금까지 내내 외면해 왔다.
가슴 속에서 주기적으로 몸부림치는 3백 그램짜리 고기덩이 하나가 날 살아있게 한다는 걸. 이건 살아있는 게 아니라 삶이라는 감옥 속에 붙들린 거라고.
그러나 지금 이 순간, 思考가 事故를 일으킨 순간. 지금껏 가슴 속에서 심박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몸부림을 이어오던 이것이...
퍼머넌트 알리자린 크림슨에서 버밀리온으로, 그 빛깔을 바꾸었다.
허공에서 머뭇거리던 손끝이 잘게 떨렸다. 어깨 너머로 보이던 풍경이, 소리가, 메아리치듯 멀어져 나가고, 기껏해야 컬러 차트 위의 헥스코드들 정도로 느껴지던 색깔들 위로,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고동이
네 눈동자 속에 담겨 있던 색채를 쏟아내고
그것이 팔레트 위의 유일한 채도가 되었다.
"...괜찮은 거야?"
평소에 쉬던 박자와 조금 어긋난 숨결이 접질려 나오고, 손과 손이, 등 뒤에서 조심스레 포개진다.
"그러면, 알려줘. 너무 아름다워서 무섭지만..."
고개를 숙여, 아직은 어설픈 몸짓으로, 머리에 뺨을 기댄다. 3백 그램의 이것이 내 온몸으로 뿜어내는 채도가, 아직 너무 낯설어서.
"너랑 같이라면, 난 괜찮을 것 같아..."
/아니요 어떻게 이걸 쓰루해.. 맞포옹레쓰기릿
/나야말로 아침에 몽실몽실한 글 고마웟
지금까지 내내 외면해 왔다.
가슴 속에서 주기적으로 몸부림치는 3백 그램짜리 고기덩이 하나가 날 살아있게 한다는 걸. 이건 살아있는 게 아니라 삶이라는 감옥 속에 붙들린 거라고.
그러나 지금 이 순간, 思考가 事故를 일으킨 순간. 지금껏 가슴 속에서 심박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몸부림을 이어오던 이것이...
퍼머넌트 알리자린 크림슨에서 버밀리온으로, 그 빛깔을 바꾸었다.
허공에서 머뭇거리던 손끝이 잘게 떨렸다. 어깨 너머로 보이던 풍경이, 소리가, 메아리치듯 멀어져 나가고, 기껏해야 컬러 차트 위의 헥스코드들 정도로 느껴지던 색깔들 위로,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고동이
네 눈동자 속에 담겨 있던 색채를 쏟아내고
그것이 팔레트 위의 유일한 채도가 되었다.
"...괜찮은 거야?"
평소에 쉬던 박자와 조금 어긋난 숨결이 접질려 나오고, 손과 손이, 등 뒤에서 조심스레 포개진다.
"그러면, 알려줘. 너무 아름다워서 무섭지만..."
고개를 숙여, 아직은 어설픈 몸짓으로, 머리에 뺨을 기댄다. 3백 그램의 이것이 내 온몸으로 뿜어내는 채도가, 아직 너무 낯설어서.
"너랑 같이라면, 난 괜찮을 것 같아..."
/아니요 어떻게 이걸 쓰루해.. 맞포옹레쓰기릿
/나야말로 아침에 몽실몽실한 글 고마웟
#12익명의 참치 씨(7cd505ae)2026-02-16 (월) 08:07:50
>>11
걱정 어린 질문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포심의 주인은 누구인가.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대책 없는 말을 해버렸는 지 되짚었다. 그러나 결론은 단순하다. 지금 감정에 솔직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아이가 마주 안아주어 차오른 기쁨. 함께 할 수 있다는 설렘.
"응. 괜찮아."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조금 더 가까워진다. 같이 있다는 감각을 또렷하게 만든다. 닿아있는 한 사람 만큼의 온도와 무게. 코 끝에 걸리는 향기. 가까이 들리는 목소리.
"하나도 안 무섭다~."
마법을 걸듯이 속삭인다.
"그치?"
/ 진짜 깊사 찐사를 하게 될 건 미술학도캐 같아서.. 이거진챠마싯타
/ 기분 안 나빠해줘서 고마와.ᐟ
걱정 어린 질문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포심의 주인은 누구인가.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대책 없는 말을 해버렸는 지 되짚었다. 그러나 결론은 단순하다. 지금 감정에 솔직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아이가 마주 안아주어 차오른 기쁨. 함께 할 수 있다는 설렘.
"응. 괜찮아."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조금 더 가까워진다. 같이 있다는 감각을 또렷하게 만든다. 닿아있는 한 사람 만큼의 온도와 무게. 코 끝에 걸리는 향기. 가까이 들리는 목소리.
"하나도 안 무섭다~."
마법을 걸듯이 속삭인다.
"그치?"
/ 진짜 깊사 찐사를 하게 될 건 미술학도캐 같아서.. 이거진챠마싯타
/ 기분 안 나빠해줘서 고마와.ᐟ
#13익명의 참치 씨(efd7c2bc)2026-02-16 (월) 09:47:27
>>12
더 이상 이런저런 말로 공연히 무심한 척, 태연한 척 포장할 수 없다. 그래, 무섭다. 타인은 지옥이다─ 각 사람은 저마다 개별적인 지옥이며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은 그 지옥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관계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이었다. 거대한 무심의 가면 뒤에 숨어 그 지옥들을 관조하며, 색을 알되 이해하려 들지 않고, 그저 본 것만을 백지 위에 뿌려낼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스라히 포근한 색채를 가진, 아득히 선명한 맥박을 가진, 부드러운 온도를 가진 지옥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다. ...내가 이런 것에 닿아도 되는 걸까. 언젠가는 떠나갈 텐데. 그때 건네어져 오는 말. 하나도 안 무섭다- 하고 상냥하게 속삭여오는 목소리. 어렵게 꺼낸 「그래도」라는 한 발짝에, 「괜찮아」 하고 내밀어지는 손길 같은 대답.
"...그러네."
왠지 눈시울이 뜨겁다.
"그래도 괜찮구나..."
괜시리 조금 더 꼭 끌어안아 본다.
"그러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오늘부터 1일」이라고."
"...새삼 조금 부끄럽네, 꿈꾸는 것도 같고."
"1일부터라고 해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그러니까, 많이 알려줘."
/정확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설날부터 이런 고급 설탕을... 마싯따.
더 이상 이런저런 말로 공연히 무심한 척, 태연한 척 포장할 수 없다. 그래, 무섭다. 타인은 지옥이다─ 각 사람은 저마다 개별적인 지옥이며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은 그 지옥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관계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이었다. 거대한 무심의 가면 뒤에 숨어 그 지옥들을 관조하며, 색을 알되 이해하려 들지 않고, 그저 본 것만을 백지 위에 뿌려낼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스라히 포근한 색채를 가진, 아득히 선명한 맥박을 가진, 부드러운 온도를 가진 지옥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다. ...내가 이런 것에 닿아도 되는 걸까. 언젠가는 떠나갈 텐데. 그때 건네어져 오는 말. 하나도 안 무섭다- 하고 상냥하게 속삭여오는 목소리. 어렵게 꺼낸 「그래도」라는 한 발짝에, 「괜찮아」 하고 내밀어지는 손길 같은 대답.
"...그러네."
왠지 눈시울이 뜨겁다.
"그래도 괜찮구나..."
괜시리 조금 더 꼭 끌어안아 본다.
"그러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오늘부터 1일」이라고."
"...새삼 조금 부끄럽네, 꿈꾸는 것도 같고."
"1일부터라고 해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그러니까, 많이 알려줘."
/정확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설날부터 이런 고급 설탕을... 마싯따.
#14익명의 참치 씨(cd6e3a9b)2026-03-04 (수) 10:18:09
어두컴컴한 공간에 검붉은 향이 가득 차 올랐다. 화살통을 등에 매고 활을 손에 쥐고 있는 사내는 벽에 기댄 채 숨소리만 조용히 헐떡였다.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지 그는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그저 벽에 등을 기대고 숨만 조용히 헐떡일 뿐이었다. 입구와 출구. 두 곳 모두가 꽉 닫혀있었기에 어떻게 나갈 방도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는 자신이 막 쓰러뜨린 마왕의 간부 중 하나였다.
마왕이 의식을 준비하는 동안,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눈앞의 간부는 용사를 함정에 빠뜨려서 이 공간에 가두려고 한 이였다. 허나 사내는 함정을 간파하여 용사를 힘껏 밀쳤다. 그 덕분에 사내는 혼자 이 공간에 갇혔고 간부와 1:1로 죽음의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리고 겨우겨우 그 사투에서 이겼으나 당연히 사내 또한 피해가 적지 않았다. 아직 목숨을 잃진 않았으나,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힘만으론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없었고, 자신의 동료들은 의식을 준비하는 마왕을 막기 위해 자신의 부탁으로 먼저 이 탑을 올라갔을 것이다. 즉, 자신을 구할 이가 없을 것이라고 사내는 생각했다.
'부디, 의식을 막고 세상을 구해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렇게 기원하는 것 뿐.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누군가가 새로 들어온 인기척일까. 아니면 아직 간부가 죽지 않고 일어선 것일까. 환청일지, 실제로 들리는 소리일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는 활을 들 힘은 없었고 대처할 재간도 없었다.
//간부가 살아있던 것도 괜찮고 다른 누군가가 들어온 것도 괜찮아!
마왕이 의식을 준비하는 동안,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눈앞의 간부는 용사를 함정에 빠뜨려서 이 공간에 가두려고 한 이였다. 허나 사내는 함정을 간파하여 용사를 힘껏 밀쳤다. 그 덕분에 사내는 혼자 이 공간에 갇혔고 간부와 1:1로 죽음의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리고 겨우겨우 그 사투에서 이겼으나 당연히 사내 또한 피해가 적지 않았다. 아직 목숨을 잃진 않았으나,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힘만으론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없었고, 자신의 동료들은 의식을 준비하는 마왕을 막기 위해 자신의 부탁으로 먼저 이 탑을 올라갔을 것이다. 즉, 자신을 구할 이가 없을 것이라고 사내는 생각했다.
'부디, 의식을 막고 세상을 구해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렇게 기원하는 것 뿐.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누군가가 새로 들어온 인기척일까. 아니면 아직 간부가 죽지 않고 일어선 것일까. 환청일지, 실제로 들리는 소리일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는 활을 들 힘은 없었고 대처할 재간도 없었다.
//간부가 살아있던 것도 괜찮고 다른 누군가가 들어온 것도 괜찮아!
#15익명의 참치 씨(1bc85196)2026-03-05 (목) 02:14:17
>>14
피비린내가 습하다. 새로이 들려오는 단화 소리는, 통증으로 먹먹한 귓가에도 고저없이 꽂히겠지. 기척을 숨기려 들 의도는 조금도 없어보인다. 소리가 단숨에 사라진다. 이내, 묵직한 것을 끄는 소리가, 계속해서 가까히 적셔져온다.
마족 소년은 당신의 곁에 서서, 간부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 들이민다. 한 손으론 시신의 턱을 놀리며, 피로 흥건해지는 자신의 옷가지엔 신경 쓰지 않듯 웃으며 흥얼거렸다.
"이야아," 시신의 턱을 자신의 발성에 맞추어 움직이며, 소년은 당신을 흘깃 바라본다.
"... 으아아왁???"
복화술 흉내는 당신의 몰골을 뒤늦게 눈치채고 나서야 내팽겨쳐진다. 고깃덩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육중한 소리가 울린 후, 소년은 당신의 안색을 이리저리 살핀다.
"마냥 좋아하려 했는데, 아니, 그쪽도 곧 죽을 것 같은 모양이네요...? 의식 있을까요, 궁수?"
피비린내가 습하다. 새로이 들려오는 단화 소리는, 통증으로 먹먹한 귓가에도 고저없이 꽂히겠지. 기척을 숨기려 들 의도는 조금도 없어보인다. 소리가 단숨에 사라진다. 이내, 묵직한 것을 끄는 소리가, 계속해서 가까히 적셔져온다.
마족 소년은 당신의 곁에 서서, 간부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 들이민다. 한 손으론 시신의 턱을 놀리며, 피로 흥건해지는 자신의 옷가지엔 신경 쓰지 않듯 웃으며 흥얼거렸다.
"이야아," 시신의 턱을 자신의 발성에 맞추어 움직이며, 소년은 당신을 흘깃 바라본다.
"... 으아아왁???"
복화술 흉내는 당신의 몰골을 뒤늦게 눈치채고 나서야 내팽겨쳐진다. 고깃덩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육중한 소리가 울린 후, 소년은 당신의 안색을 이리저리 살핀다.
"마냥 좋아하려 했는데, 아니, 그쪽도 곧 죽을 것 같은 모양이네요...? 의식 있을까요, 궁수?"
#16익명의 참치 씨(4a233afa)2026-03-05 (목) 10:43:02
>>15
처음에는 소리만 들리는가 했더니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이 공간에 자신과 저 간부만이 아니라 다른 이가 있다는 것이 그로서는 꽤 끔찍한 일이었다. 물론 자신은 머지않아 죽을지도 모르지만 네크로맨서가 이곳에 왔다면 저 간부는 물론이고 자신의 시체마저도 이용당해 제 동료의 뒤를 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를 약하게 악물며 손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신경이 끊어진 것처럼 팔에 아무런 감각도 돌아오지 않은 탓이었다.
"......"
사내는 놀라서 당황한 소년을 바라봤다. 자신의 모습을 살피다가 의식이 있냐는 물음에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말이지. 네 녀석...은 누구지? 여...기에... 들어와...서 뭘 하려는거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방금 전까지 간부의 시신을 잡고 있던 이였다. 알려줄지는 모르겠으나 목적 정도는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말을 이었다.
"네크...로...맨서냐? 아...니면... 이곳에 있...는 시체를 뜯어...먹어서 배...라도 채울 참이...냐?"
처음에는 소리만 들리는가 했더니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이 공간에 자신과 저 간부만이 아니라 다른 이가 있다는 것이 그로서는 꽤 끔찍한 일이었다. 물론 자신은 머지않아 죽을지도 모르지만 네크로맨서가 이곳에 왔다면 저 간부는 물론이고 자신의 시체마저도 이용당해 제 동료의 뒤를 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를 약하게 악물며 손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신경이 끊어진 것처럼 팔에 아무런 감각도 돌아오지 않은 탓이었다.
"......"
사내는 놀라서 당황한 소년을 바라봤다. 자신의 모습을 살피다가 의식이 있냐는 물음에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말이지. 네 녀석...은 누구지? 여...기에... 들어와...서 뭘 하려는거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방금 전까지 간부의 시신을 잡고 있던 이였다. 알려줄지는 모르겠으나 목적 정도는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말을 이었다.
"네크...로...맨서냐? 아...니면... 이곳에 있...는 시체를 뜯어...먹어서 배...라도 채울 참이...냐?"
#17익명의 참치 씨(47b78f52)2026-03-05 (목) 19:49:13
>>16
"낯가림이 있어서, 남이 보는 앞에서 식사를 하기엔 쫌."
역시, 알려주지 않는다. 마족이란 약아빠지고 악독한 미물이니. 부끄러운 몸짓을 연기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인간의 관찰을 오랜 기간 해온 마족이란 게 틀림없다. 소년은 당신에게 손을 뻗는다. 품 큰 소매가 바람결에 일렁인다. 만지지 않는다,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은, 손 끝이 당신의 뺨에 닿기 직전 멈춰선다.
"제 목적은 단순해요, 궁수. 구해드릴 테니, 제게, 궁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을 주세요. 아, 뭐, 궁수가 따로 뭘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름만 대면 제 이 번개같은 다리로~ 알아서 수거하겠단 말이니까요."
소년은 웃었다. 앳된 소리는 인간을 닮아 있었다.
"싫다. 마족이란....... 것을... 믿으라니..." 당신의 고통섞인 말투를 흉내내다, 자답한다.
"... 라고 말하시기 전. 조금만 고려해 주시길! 용사 일행은, 과연, 당신이 빠진 파티로, 마왕을 척살할 수 있을지.................? 과연? 과연...!"
간부의 시체를 깔고 앉은 소년은, 이내 턱을 괴어 뭇 여관 주인과도 같은, 인물좋은 웃음을 보인다.
"낯가림이 있어서, 남이 보는 앞에서 식사를 하기엔 쫌."
역시, 알려주지 않는다. 마족이란 약아빠지고 악독한 미물이니. 부끄러운 몸짓을 연기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인간의 관찰을 오랜 기간 해온 마족이란 게 틀림없다. 소년은 당신에게 손을 뻗는다. 품 큰 소매가 바람결에 일렁인다. 만지지 않는다,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은, 손 끝이 당신의 뺨에 닿기 직전 멈춰선다.
"제 목적은 단순해요, 궁수. 구해드릴 테니, 제게, 궁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을 주세요. 아, 뭐, 궁수가 따로 뭘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름만 대면 제 이 번개같은 다리로~ 알아서 수거하겠단 말이니까요."
소년은 웃었다. 앳된 소리는 인간을 닮아 있었다.
"싫다. 마족이란....... 것을... 믿으라니..." 당신의 고통섞인 말투를 흉내내다, 자답한다.
"... 라고 말하시기 전. 조금만 고려해 주시길! 용사 일행은, 과연, 당신이 빠진 파티로, 마왕을 척살할 수 있을지.................? 과연? 과연...!"
간부의 시체를 깔고 앉은 소년은, 이내 턱을 괴어 뭇 여관 주인과도 같은, 인물좋은 웃음을 보인다.
#18익명의 참치 씨(220e4d83)2026-03-06 (금) 12:37:30
>>17
식사. 즉, 자신이 죽은 상태라면 눈치볼 것 없이 이곳에서 마음껏 저 간부나 자신을 뜯어먹을 생각이었을지도 모르는 사실에 사내는 소름이 절로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것에 그는 겨우겨우 힘을 줘서 자신의 몸을 조금씩 움직여서 눈앞의 존재와 거리를 띄우려고 했다. 물론 몸에 힘이 없었으니 움직였을지는 알 수 없었고, 설사 움직였다고 하더라도 1cm도 안되는 아주 짧은 거리였을 것이다.
"뭐...라고?"
살려주는 대신에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달라는 그 제안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사내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마치 자신의 말을 따라하는 듯한 모습에 이어 자신의 동료를 들먹이며 웃음을 보이는 눈앞의 존재가 사내에게 있어선 악마처럼 보였기에 사내는 팔을 천천히 움직여서 근처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를 하나 겨우겨우 쥐었다. 물론 딱히 그 손에 힘은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잡기' 정도가 고작이었고 그것을 던질 정도의 힘은 더 이상 없었다.
"그걸... 받아들일...리가 없잖아. ...소중한...사람...이라니. 뭘...하려는거지."
이어 사내는 피가 섞인 타액을 근처 땅에 약하게 뱉었다.
"...애초..에 왜... 날 구하...려는거지? ...너희들...에게는... 난...적이지...않나? 날...살리...고 내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즐길...참이냐."
식사. 즉, 자신이 죽은 상태라면 눈치볼 것 없이 이곳에서 마음껏 저 간부나 자신을 뜯어먹을 생각이었을지도 모르는 사실에 사내는 소름이 절로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것에 그는 겨우겨우 힘을 줘서 자신의 몸을 조금씩 움직여서 눈앞의 존재와 거리를 띄우려고 했다. 물론 몸에 힘이 없었으니 움직였을지는 알 수 없었고, 설사 움직였다고 하더라도 1cm도 안되는 아주 짧은 거리였을 것이다.
"뭐...라고?"
살려주는 대신에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달라는 그 제안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사내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마치 자신의 말을 따라하는 듯한 모습에 이어 자신의 동료를 들먹이며 웃음을 보이는 눈앞의 존재가 사내에게 있어선 악마처럼 보였기에 사내는 팔을 천천히 움직여서 근처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를 하나 겨우겨우 쥐었다. 물론 딱히 그 손에 힘은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잡기' 정도가 고작이었고 그것을 던질 정도의 힘은 더 이상 없었다.
"그걸... 받아들일...리가 없잖아. ...소중한...사람...이라니. 뭘...하려는거지."
이어 사내는 피가 섞인 타액을 근처 땅에 약하게 뱉었다.
"...애초..에 왜... 날 구하...려는거지? ...너희들...에게는... 난...적이지...않나? 날...살리...고 내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즐길...참이냐."
#19익명의 참치 씨(a0d378d8)2026-04-27 (월) 23:52:48
야생화가 바다처럼 넘실대며 발목을 잡는 이 들판은, 한때 우리들 사이에서 '마지막 낙원'이라 일컬어지던 성역이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사랑을 속삭였고, 누군가는 다가올 평화로운 노년을 꿈꿨다. 그러나 지금, 코끝을 스치는 것은 흐드러진 꽃향기가 아니라 폐부를 찔러오는 비릿한 선혈의 내음과 화약 연기에 절여진 죽음의 취기뿐이다. 구름 사이를 뚫고 쏟아지는 무지개 빛깔의 햇살은, 마치 신이 이 잔혹한 살육의 현장을 구경하며 터뜨리는 냉소적인 웃음처럼 기괴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등 뒤와 어깨에 고슴도치처럼 박힌 수십 개의 화살깃이 바람에 떨릴 때마다, 신경을 짓이기는 감각이 뇌리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살을 뚫고 뼈에 박힌 이 철촉들은, 내가 끝내 지켜내지 못한 약속들의 차가운 증거이자, 정신을 놓으려는 나를 이 지옥에 붙들어 매는 잔인한 채찍질이다. 낡고 이끼 낀 갑옷 안에서 심장은 비명을 지르고, 무릎은 이미 축축한 흙바닥 속에 깊게 박혀버렸으나, 나의 영혼만은 아직 쓰러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꽃향기보다 더 달콤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환각처럼 피어오른다.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가던 따스한 황금빛 햇살, 내 손을 잡으며 떨리던 그녀의 눈물 고인 눈동자,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믿는다며 어깨를 두드리던 그의 굳건한 맹세. '지켜다오, 우리들의 약속을.' 그 한마디는 나를 이 영원한 전쟁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저주였으며, 동시에 이 무간지옥 속에서 나를 인간으로 남아있게 하는 유일한 구원이었다. 나는 기억해야만 한다. 내가 잊는 순간, 그들이 존재했다는 유일한 증거마저 이 들판의 거름으로 사라질 테니까.
서서히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바스락거리는 풀소리가 들려온다. 꽃을 즈려밟으며 이 이끼 낀 갑옷의 주인을 향해 조심스레, 혹은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 적일까, 아니면 이 비참한 연극을 끝내러 온 사신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기사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지만, 손에 쥔 부러진 검자루에는 힘이 들어갑니다. 당신은 기사에게 다가가는 생존자인가요, 아니면 그를 마무리지으려는 적군인가요?)
등 뒤와 어깨에 고슴도치처럼 박힌 수십 개의 화살깃이 바람에 떨릴 때마다, 신경을 짓이기는 감각이 뇌리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살을 뚫고 뼈에 박힌 이 철촉들은, 내가 끝내 지켜내지 못한 약속들의 차가운 증거이자, 정신을 놓으려는 나를 이 지옥에 붙들어 매는 잔인한 채찍질이다. 낡고 이끼 낀 갑옷 안에서 심장은 비명을 지르고, 무릎은 이미 축축한 흙바닥 속에 깊게 박혀버렸으나, 나의 영혼만은 아직 쓰러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꽃향기보다 더 달콤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환각처럼 피어오른다.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가던 따스한 황금빛 햇살, 내 손을 잡으며 떨리던 그녀의 눈물 고인 눈동자,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믿는다며 어깨를 두드리던 그의 굳건한 맹세. '지켜다오, 우리들의 약속을.' 그 한마디는 나를 이 영원한 전쟁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저주였으며, 동시에 이 무간지옥 속에서 나를 인간으로 남아있게 하는 유일한 구원이었다. 나는 기억해야만 한다. 내가 잊는 순간, 그들이 존재했다는 유일한 증거마저 이 들판의 거름으로 사라질 테니까.
서서히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바스락거리는 풀소리가 들려온다. 꽃을 즈려밟으며 이 이끼 낀 갑옷의 주인을 향해 조심스레, 혹은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 적일까, 아니면 이 비참한 연극을 끝내러 온 사신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기사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지만, 손에 쥔 부러진 검자루에는 힘이 들어갑니다. 당신은 기사에게 다가가는 생존자인가요, 아니면 그를 마무리지으려는 적군인가요?)
#20익명의 참치 씨(1de08d19)2026-04-30 (목) 08:41:48
피로 물든 풀숲 가장자리에서 그림자 하나가 떨어져 나와 조심스레 다가왔다. 패트릭. 그는 인간들의 야망이 남긴 잔해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학적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포식자로서의 성숙함을 갖춘 소년이었다. 그에게서는 들꽃 향기나 쓰러진 자들의 비극적인 이야기 향기가 나지 않았다. 세탁하지 않은 양모의 숨 막히는 퀘퀘한 냄새. 묵은 땀 냄새. 그리고 이전 '수확'에서 얻어, 손톱 아래 깊이 굳어버린 마른 피의 금속성 냄새. 그런 것들이 그가 몸에 두른 냄새였다. 그의 옷은 절망으로 직조된 누더기였다. 몸의 두 배나 큰 튜닉은 해진 삼베 끈으로 조여 있었고, 기름때 묻은 가죽 조끼는 사흘째 방치돼 부풀어오른 시체에서 뜯어낸 것이었다. 그의 발은 썩어가는 아마포로 감싸인 채 가죽 끈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그의 어깨에는 묵직하고 때로 뒤덮인 포대자루가 걸려 있었다.
그건 '대장'에게 바치는 그의 공물이었다.
지금은 가볍게 흔들리며 안에 톱니 박힌 단검 몇 자루와 잘린 손가락 붙은 은제 인장 반지 하나만 들어있을 뿐이지만, 패트릭은 알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그것이 눈에 띄게 무거워지지 않는다면 대장의 징 박힌 부츠는 지금 그의 갈비뼈를 좀먹는 굶주림보다 더 큰 고통을 선사할 것이다. 흰자위가 조금 누렇게 떴지만, 여전히 예리하게 번뜩이는 패트릭의 눈이 들판을 훑어보았다. 그는 특수한 종류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죽은 자의 무기력함과 죽어가는 자의 리드미컬하고 얕은 떨림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는 능력.
그리고 그 능력은 지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는 기사의 등에 박힌 화살 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은 속삭임으로 말했다.
"빌어먹게 나쁜 운이군."
그는 고급 강철의 번쩍임에 이끌려 갑옷 입은 기사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시체를 기대했다. 조용하고, 협조적인 보물단지 말이다. 하지만 10걸음 이내로 다가갔을 때... 그는 기사의 건틀렛에서 미세한 떨림을 보았다. 산 자는 골칫거리였다. 예측할 수 없고, 위험하며 , 발작적이고 무의미한 폭력을 행사했다.
패트릭의 손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꽂힌 녹슨 과일 깎는 칼로 향했다.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궁지에 몰린 짐승의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기사의 감염으로 인한 악취와 화살이 박힌 지점의 그을린 구리 냄새가 뒤섞여 소년의 코를 찔렀다. 그는 가만히 기사의 부러진 검의 위험성과 대장의 분노를 저울질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고, 회색 모래가 낀 이빨 사이로 숨이 턱 막혔다. 그는 기도를 드리거나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사의 죽어가는 손아귀가 저항 없이 칼자루를 놓을 만큼 약한지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패트릭은 그 자리에 멈춰선 채 기사의 움직임을, 그리고 자신의 힘을 가늠했다. 그가 과연 저 갑옷을 안전하게 벗겨낼 수 있을 것인지.
그건 '대장'에게 바치는 그의 공물이었다.
지금은 가볍게 흔들리며 안에 톱니 박힌 단검 몇 자루와 잘린 손가락 붙은 은제 인장 반지 하나만 들어있을 뿐이지만, 패트릭은 알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그것이 눈에 띄게 무거워지지 않는다면 대장의 징 박힌 부츠는 지금 그의 갈비뼈를 좀먹는 굶주림보다 더 큰 고통을 선사할 것이다. 흰자위가 조금 누렇게 떴지만, 여전히 예리하게 번뜩이는 패트릭의 눈이 들판을 훑어보았다. 그는 특수한 종류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죽은 자의 무기력함과 죽어가는 자의 리드미컬하고 얕은 떨림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는 능력.
그리고 그 능력은 지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는 기사의 등에 박힌 화살 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은 속삭임으로 말했다.
"빌어먹게 나쁜 운이군."
그는 고급 강철의 번쩍임에 이끌려 갑옷 입은 기사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시체를 기대했다. 조용하고, 협조적인 보물단지 말이다. 하지만 10걸음 이내로 다가갔을 때... 그는 기사의 건틀렛에서 미세한 떨림을 보았다. 산 자는 골칫거리였다. 예측할 수 없고, 위험하며 , 발작적이고 무의미한 폭력을 행사했다.
패트릭의 손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꽂힌 녹슨 과일 깎는 칼로 향했다.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궁지에 몰린 짐승의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기사의 감염으로 인한 악취와 화살이 박힌 지점의 그을린 구리 냄새가 뒤섞여 소년의 코를 찔렀다. 그는 가만히 기사의 부러진 검의 위험성과 대장의 분노를 저울질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고, 회색 모래가 낀 이빨 사이로 숨이 턱 막혔다. 그는 기도를 드리거나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사의 죽어가는 손아귀가 저항 없이 칼자루를 놓을 만큼 약한지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패트릭은 그 자리에 멈춰선 채 기사의 움직임을, 그리고 자신의 힘을 가늠했다. 그가 과연 저 갑옷을 안전하게 벗겨낼 수 있을 것인지.
#21익명의 참치 씨(8fd70570)2026-05-16 (토) 00:11:03
한 번은 돌아봐주려나.
수업 시간 중이었고, 내용이 너무 지루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시선이 칠판을 떠나 방황했다. 창 밖을 보려던 것이 아예 옆자리의 네게 멈춰서 버렸다. 사각사각 필기하는 소리와 선생님이 수업하며 나는 소리, 또 불쑥 다가온 여름을 달래듯 시원하게 부는 바람 소리.
널 가만 올려다보고 있으면, 그런 것들이 귀에서 멀어져 갔다. 멍 때리는 건가, 하면 뚜렷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귀여워 보이면 좋겠다.
어느 날부터 바라고 있었다. 그러니 눈이 마주치면 놀라지 말아야지, 예쁘게 웃어주어야지—하는 다짐까지 이어졌다. 다만 한가지 답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왜 쳐다보고 있냐는 질문이었다. 너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니까, 수업시간이 조금은 덜 지루해지니까, 그런데, 왜 하필 너에게 그러는지 영 미지수다.
좋아, 이제 딱 10초야.
아무리 그래도 마냥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마음 속으로 숫자 열을 세어서, 0이 되면 수업에 집중하기로 한다. 잠깐 사이 밀렸을 필기부터 쫓아야겠지.
# 풋사랑이 하고 싶은데 상대방 반응을 랜덤으로 맡겨볼까 싶어서 여기 올려용 화자는 아마 여캐......라고 생각하기는 함
수업 시간 중이었고, 내용이 너무 지루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시선이 칠판을 떠나 방황했다. 창 밖을 보려던 것이 아예 옆자리의 네게 멈춰서 버렸다. 사각사각 필기하는 소리와 선생님이 수업하며 나는 소리, 또 불쑥 다가온 여름을 달래듯 시원하게 부는 바람 소리.
널 가만 올려다보고 있으면, 그런 것들이 귀에서 멀어져 갔다. 멍 때리는 건가, 하면 뚜렷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귀여워 보이면 좋겠다.
어느 날부터 바라고 있었다. 그러니 눈이 마주치면 놀라지 말아야지, 예쁘게 웃어주어야지—하는 다짐까지 이어졌다. 다만 한가지 답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왜 쳐다보고 있냐는 질문이었다. 너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니까, 수업시간이 조금은 덜 지루해지니까, 그런데, 왜 하필 너에게 그러는지 영 미지수다.
좋아, 이제 딱 10초야.
아무리 그래도 마냥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마음 속으로 숫자 열을 세어서, 0이 되면 수업에 집중하기로 한다. 잠깐 사이 밀렸을 필기부터 쫓아야겠지.
# 풋사랑이 하고 싶은데 상대방 반응을 랜덤으로 맡겨볼까 싶어서 여기 올려용 화자는 아마 여캐......라고 생각하기는 함
#22익명의 참치 씨(f0891e47)2026-05-16 (토) 00:48:37
>>21
점점 더워지는 여름이라서 그런 것일까. 묘하게 집중력이 오래 가지 않았다. 이거 시험 나오는 거니까 꼭 기억해둬야 한다. 그런 선생님의 말씀 속에서도 수업이 너무 지루해서 그는 하품하는 것을 꾹 참고 괜히 두 손으로 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켜며 나름대로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잠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아예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수업 내용을 전부 들을 수는 있을테니 그는 애써 벌어질 것 같은 입을 어떻게든 꾹 닫으려고 하며 천천히 필기하며 수업 내용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집중하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를 수어 번.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도 바로 옆자리다. 누군가에게 주시당하면 묘한 느낌이 든다고 하지 않던가? 딱 그 느낌을 받던 그는 별생각없이 자신의 옆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아.
얼떨결에 눈이 마주친 것에 그는 살짝 당황하며 두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가에 차분하고 고요한 미소를 머금었다. 혹시 자신의 옆부분이나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싶어 태연하게 다시 앞을 바라보며 왼손을 올려 자신의 옆부분과 얼굴을 여기저기 더듬으며 뭔가 묻은 것이 없는지 확인했으나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그럼 나를 왜 본거지? 하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건 수업 중이니 힘들었다.
만약 옆을 바라보면 또 눈이 마주칠까? 그러면 뭐라고 해야하지? 무슨 반응을 보여야하지? 그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저 단순히 신경쓰였기에. 혹시나 또 자신을 보고 있을까 싶어서. 만약 앞을 보고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앞을 보자.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며 그는 살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재밌는 소재 같아서 이어둘게!
점점 더워지는 여름이라서 그런 것일까. 묘하게 집중력이 오래 가지 않았다. 이거 시험 나오는 거니까 꼭 기억해둬야 한다. 그런 선생님의 말씀 속에서도 수업이 너무 지루해서 그는 하품하는 것을 꾹 참고 괜히 두 손으로 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켜며 나름대로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잠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아예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수업 내용을 전부 들을 수는 있을테니 그는 애써 벌어질 것 같은 입을 어떻게든 꾹 닫으려고 하며 천천히 필기하며 수업 내용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집중하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를 수어 번.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도 바로 옆자리다. 누군가에게 주시당하면 묘한 느낌이 든다고 하지 않던가? 딱 그 느낌을 받던 그는 별생각없이 자신의 옆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아.
얼떨결에 눈이 마주친 것에 그는 살짝 당황하며 두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가에 차분하고 고요한 미소를 머금었다. 혹시 자신의 옆부분이나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싶어 태연하게 다시 앞을 바라보며 왼손을 올려 자신의 옆부분과 얼굴을 여기저기 더듬으며 뭔가 묻은 것이 없는지 확인했으나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그럼 나를 왜 본거지? 하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건 수업 중이니 힘들었다.
만약 옆을 바라보면 또 눈이 마주칠까? 그러면 뭐라고 해야하지? 무슨 반응을 보여야하지? 그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저 단순히 신경쓰였기에. 혹시나 또 자신을 보고 있을까 싶어서. 만약 앞을 보고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앞을 보자.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며 그는 살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재밌는 소재 같아서 이어둘게!
#23익명의 참치 씨(8fd70570)2026-05-16 (토) 01:10:21
>>22
10, 9, 8, 7….
7에서 카운트다운은 멈추었다. 그 순간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당황한 눈을 마주하니, 하품이 옮듯 그 감정이 고스란히 옮겨왔다.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 눈이 마주치니 놀라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많아봤자 고작 수초.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놀라기만 해서는 영 귀여워보이지는 않을테니까, 뒤늦게나마 꼭 눈웃음을 지었다.
살풋 웃기만 해도 되지 않았나, 하면 핑계가 있다. 네가 웃는 얼굴을 바라보기가 버거웠다. 바라봐주길 바랐지만 정말 그렇게 될 줄 몰랐는걸.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웃음을 갈무리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소리 지르고 싶어!
그것이 펜 끝에 나타났다. 필기가 딱히 많이 밀리지는 않았으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듯 펜이 마구잡이로 놀아댔다. 괜히 이미 지나온 교과서 앞장으로 거슬러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이번에는 다음장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네가 얼굴을 더듬고 있다는 건 인기척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 부끄러워서 가만 있을 수가 없던 탓이다.
이제 안 보고 있겠지?
그래,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네가 시선을 거뒀을까, 어쩌면 또 눈이 마주칠까, 내가 쳐다본 탓에 너도 나를 바라본 거겠지, 하지만 그래도—생각의 소용돌이는 행동을 부추겼다. 슬쩍 고개가 다시 돌아간다.
10, 9, 8, 7….
7에서 카운트다운은 멈추었다. 그 순간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당황한 눈을 마주하니, 하품이 옮듯 그 감정이 고스란히 옮겨왔다.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 눈이 마주치니 놀라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많아봤자 고작 수초.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놀라기만 해서는 영 귀여워보이지는 않을테니까, 뒤늦게나마 꼭 눈웃음을 지었다.
살풋 웃기만 해도 되지 않았나, 하면 핑계가 있다. 네가 웃는 얼굴을 바라보기가 버거웠다. 바라봐주길 바랐지만 정말 그렇게 될 줄 몰랐는걸.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웃음을 갈무리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소리 지르고 싶어!
그것이 펜 끝에 나타났다. 필기가 딱히 많이 밀리지는 않았으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듯 펜이 마구잡이로 놀아댔다. 괜히 이미 지나온 교과서 앞장으로 거슬러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이번에는 다음장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네가 얼굴을 더듬고 있다는 건 인기척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 부끄러워서 가만 있을 수가 없던 탓이다.
이제 안 보고 있겠지?
그래,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네가 시선을 거뒀을까, 어쩌면 또 눈이 마주칠까, 내가 쳐다본 탓에 너도 나를 바라본 거겠지, 하지만 그래도—생각의 소용돌이는 행동을 부추겼다. 슬쩍 고개가 다시 돌아간다.
#24익명의 참치 씨(f0891e47)2026-05-16 (토) 01:47:39
>>23
바로 옆에 앉은 이의 눈웃음이 묘하게 예쁘다고 그는 느꼈다. 원래도 예쁘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눈웃음을 지으니 괜히 더 예쁜 것 같아 그는 앞을 바라보면서도 그저 조용히 미소지었다. 예쁘다라는 말을 수업 중에 내뱉을 순 없었으니까.
바로 옆에서 이런저런 행동들이 일어나고 있었으나 앞을 바라보고 제 얼굴에 신경을 쓴다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던가의 이유로 그녀의 행동을 그는 미처 보지 못했다. 시선 한구석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 같긴 했으나 그저 필기를 하는 것 정도로만 보이기도 했고.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또 다시 눈이 마주쳤다. 아. 하는 짧은 소리가 입술 너머로 튀어나올 것 같았으나 간신히 그 소리는 다시 목구멍 속으로 넘어갔다. 그저 눈만 깜빡이며 그녀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그저 조용히 그녀의 눈을 계속 바라봤다. 하필 이번에는 비슷한 타이밍이다. 우연히 봤다라고 넘기기에는 누가 봐도 억지적인 상황. 다급하게 다시 앞을 바라보던 그는 노트 맨 끝자락을 펼친 후에 가장자리를 찢은 후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라는 메시지를 쓴 후에 슬며시 그녀의 앞으로 옮겼다.
바로 옆에 앉은 이의 눈웃음이 묘하게 예쁘다고 그는 느꼈다. 원래도 예쁘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눈웃음을 지으니 괜히 더 예쁜 것 같아 그는 앞을 바라보면서도 그저 조용히 미소지었다. 예쁘다라는 말을 수업 중에 내뱉을 순 없었으니까.
바로 옆에서 이런저런 행동들이 일어나고 있었으나 앞을 바라보고 제 얼굴에 신경을 쓴다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던가의 이유로 그녀의 행동을 그는 미처 보지 못했다. 시선 한구석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 같긴 했으나 그저 필기를 하는 것 정도로만 보이기도 했고.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또 다시 눈이 마주쳤다. 아. 하는 짧은 소리가 입술 너머로 튀어나올 것 같았으나 간신히 그 소리는 다시 목구멍 속으로 넘어갔다. 그저 눈만 깜빡이며 그녀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그저 조용히 그녀의 눈을 계속 바라봤다. 하필 이번에는 비슷한 타이밍이다. 우연히 봤다라고 넘기기에는 누가 봐도 억지적인 상황. 다급하게 다시 앞을 바라보던 그는 노트 맨 끝자락을 펼친 후에 가장자리를 찢은 후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라는 메시지를 쓴 후에 슬며시 그녀의 앞으로 옮겼다.
#25익명의 참치 씨(8fd70570)2026-05-16 (토) 02:27:44
>>24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진짜? 진짜로?
원래도 너를 보고 있자면 다른 것들은 잘 느껴지지 않고는 했다지만, 흐려진 것과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다르다. 슬쩍 돌린 시선이 마주친 때, 알 수 있었다. 어느 누가 먼저 가만 바라보고 있던 것이 아니라, 같은 때에 서로를 향했다는 걸.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숨 쉬는 걸 까먹었는 지도 모른다.
눈을 피하지도 못했다. 마주해버린 시선을 어떻게 해야할 지, 이 두번째 사고—어쩌면 사건일 지도 모르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영원같은 찰나에 꼭 갇혀버린 것 같았다.
시간은 금방 다시 흐른다. 네가 고개를 돌렸을 때부터, 느지막히 시건이 되돌아왔다. 제일 크게 느껴지는 것은 쿵쾅거리는 소리였다. 귀에서 빠르게 울리고 있는 그 박자의 정체는 심장이었다. 너무 놀랐나, 너무 부끄러웠나. 왠지 덥다. 이번에도 다시 시선을 거두었지만, 필기는 할 수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 아니?!
자리를 넘어온 찢어진 종이조각이 꼭 별똥별 같다. 너로부터 여기까지 날아와서, 크게 쾅 박혔다. 민망함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난다. 무슨 답을 해야할까, 답을 하는데 오래 걸리면 그것도 이상할 것 같다. 뭐라도 생각해내야만 한다. 서둘러 공책 맨 뒷장을 펼쳤다.
아니! 머리카락 뻗친 거 같아서
바람 때문이었나 봐
지금은 안 그래
미안
공부하는데 방해됐지
답이 길어졌다. 똑같이 모퉁이를 찢어서 건네자니, 아예 공책을 건네 필담을 하는게 나을 거 같았다. 그래서 그대로, 네 자리로 공책을 슥 밀어보낸다. 그러자면 드는 생각이, 너는 왜 날 다시 쳐다봤을까, 나도 물어볼 걸—하고 아쉬움이 고개를 디밀었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진짜? 진짜로?
원래도 너를 보고 있자면 다른 것들은 잘 느껴지지 않고는 했다지만, 흐려진 것과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다르다. 슬쩍 돌린 시선이 마주친 때, 알 수 있었다. 어느 누가 먼저 가만 바라보고 있던 것이 아니라, 같은 때에 서로를 향했다는 걸.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숨 쉬는 걸 까먹었는 지도 모른다.
눈을 피하지도 못했다. 마주해버린 시선을 어떻게 해야할 지, 이 두번째 사고—어쩌면 사건일 지도 모르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영원같은 찰나에 꼭 갇혀버린 것 같았다.
시간은 금방 다시 흐른다. 네가 고개를 돌렸을 때부터, 느지막히 시건이 되돌아왔다. 제일 크게 느껴지는 것은 쿵쾅거리는 소리였다. 귀에서 빠르게 울리고 있는 그 박자의 정체는 심장이었다. 너무 놀랐나, 너무 부끄러웠나. 왠지 덥다. 이번에도 다시 시선을 거두었지만, 필기는 할 수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 아니?!
자리를 넘어온 찢어진 종이조각이 꼭 별똥별 같다. 너로부터 여기까지 날아와서, 크게 쾅 박혔다. 민망함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난다. 무슨 답을 해야할까, 답을 하는데 오래 걸리면 그것도 이상할 것 같다. 뭐라도 생각해내야만 한다. 서둘러 공책 맨 뒷장을 펼쳤다.
아니! 머리카락 뻗친 거 같아서
바람 때문이었나 봐
지금은 안 그래
미안
공부하는데 방해됐지
답이 길어졌다. 똑같이 모퉁이를 찢어서 건네자니, 아예 공책을 건네 필담을 하는게 나을 거 같았다. 그래서 그대로, 네 자리로 공책을 슥 밀어보낸다. 그러자면 드는 생각이, 너는 왜 날 다시 쳐다봤을까, 나도 물어볼 걸—하고 아쉬움이 고개를 디밀었다.
#26익명의 참치 씨(f0891e47)2026-05-16 (토) 03:21:38
>>25
자신이 보낸 메시지의 답이 오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신처럼 노트 쪼가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공책을 밀어보내서 보낸 메시지를 그는 눈으로 읽었다. 머리카락이 뻗친 것 같다는 말에 그는 한쪽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여기저기 정리했다. 밑 부분에 지금은 안 그렇다는 말이 있긴 했으나 신경이 안 쓰일래야 안 쓰일 수 없었으니까. 괜히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그는 조용히 생각하다 그녀가 보낸 메시지 아래에 메시지를 적었다.
[아냐. 방해 안 됐어]
[알려줘서 고마워]
바람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고는 해도 알려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이어 그는 거기서 메시지를 끊을까 하다 괜히 소리없이 웃으며 메시지를 좀 더 추가로 적었다.
[이번 수업 너무 재미없어]
[시험 나오는 것만 아니라면 굳이 안 들었을 것 같은데]
[이거 끝나고 바로 매점 가서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실까 하는데 너도 갈래?]
왜 굳이 같이 가는 것을 권했냐라고 물으면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고마워로 끝내고 싶진 않았으니까. 어쩌면 수업이 지루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눈이 마주친 것 때문에 괜히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그 무엇이건 항상 사소한 것이 계기가 되지 않던가.
자신이 보낸 메시지의 답이 오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신처럼 노트 쪼가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공책을 밀어보내서 보낸 메시지를 그는 눈으로 읽었다. 머리카락이 뻗친 것 같다는 말에 그는 한쪽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여기저기 정리했다. 밑 부분에 지금은 안 그렇다는 말이 있긴 했으나 신경이 안 쓰일래야 안 쓰일 수 없었으니까. 괜히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그는 조용히 생각하다 그녀가 보낸 메시지 아래에 메시지를 적었다.
[아냐. 방해 안 됐어]
[알려줘서 고마워]
바람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고는 해도 알려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이어 그는 거기서 메시지를 끊을까 하다 괜히 소리없이 웃으며 메시지를 좀 더 추가로 적었다.
[이번 수업 너무 재미없어]
[시험 나오는 것만 아니라면 굳이 안 들었을 것 같은데]
[이거 끝나고 바로 매점 가서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실까 하는데 너도 갈래?]
왜 굳이 같이 가는 것을 권했냐라고 물으면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고마워로 끝내고 싶진 않았으니까. 어쩌면 수업이 지루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눈이 마주친 것 때문에 괜히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그 무엇이건 항상 사소한 것이 계기가 되지 않던가.
#27익명의 참치 씨(6f2ae074)2026-07-16 (목) 06:03:41
어디 갔었어?